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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2012-12-20 20:22:33, Hit : 1339)
전시 12.20

 

제12회 송은미술대상

2012_1221 ▶ 2013_0228 / 일요일,공휴일 휴관

초대일시 / 2012_1221_금요일_06:00pm

참여작가 / 백정기_윤보현_최선_하태범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일요일,공휴일 휴관

송은 아트스페이스 SONGEUN ARTSPACE 서울 강남구 청담동 118-2번지 Tel. +82.2.3448.0100 www.songeunartspace.org

지난 해 새롭게 개편된 송은미술대상이 12회를 맞이하여 총 4인의 수상 작가 전시를 개최합니다. 송은미술대상은 유망한 미술작가들을 발굴·지원하고자 2001년에 제정된 이래 공정한 지원기회와 투명한 심사제를 통해 수상자들을 배출해 왔습니다. ● 올해에는 572인의 지원자가 참여했으며 온라인 포트폴리오 예선심사와 본선 실물작품 심사를 통해 백정기, 윤보현, 최선, 하태범 작가가 수상작가로 선정되었습니다. 본 전시는 수상작가 4인의 작품세계를 선보이는 자리이자 대상 1인과 우수상 3인 수상자를 최종 확정하는 자리입니다. 최종발표는 전시기간 중에 공지되며 대상 수상자는 우수상 상금 외 추가 상금과 함께 향후 송은 아트스페이스에서의 개인전 개최 기회를 지원받습니다. ● 본 전시를 통해 수상작가들의 작업세계가 보다 널리 소개되고 한국 현대미술에 대한 관심과 소통이 확장되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한국미술계의 버팀목이 될 수상 작가 모두에게 따뜻한 관심과 격려를 부탁 드립니다.

백정기_Is of: Mt. Seorak in Autumn_단풍잎 색소 프린트_90×120cm_2012

백정기 작가는 1981년생으로 국민대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한 후 영국 첼시 미술학교를 거쳐 글라스고 미술학교에서 석사과정을 마쳤다. 총 5차례의 개인전을 개최한 바 있는 백정기는 실재(實在) 대상과 이를 둘러싼 의미화 과정에 대하여 고찰해왔다. 작가는 이전 작업에서 '바셀린'이 갖는 치유와 보호의 관념에 주목하여 바셀린으로 투구와 갑옷을 만들어 하나의 대상이 갖는 관념을 실존하는 의미 이상으로 확장시킨바 있다. 또한 우리가 관념적으로 떠올리는 대상이 실제로는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거나 혹은 실존하지 않음을 시각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사회 문화적인 통념과 실존간의 괴리감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푸른 연못(Blue Pond), 2010」은 물에 염료를 풀어 관념에 의거한 '푸른 연못'의 이미지를 실현시켰으며 「단비(Sweet Rain), 2010」프로젝트는 합성 감미료를 첨가하여 실제로 단맛이 나는 인공 비를 내리게 하여 관념적으로만 존재하던 단비를 현실적으로 체험 가능케 했다. 대상과 이로부터 파생되는 관념에 주목하는 그의 관심은 「Is of」 프로젝트에서 대상과 본질의 관계에 대한 사유로 이어진다.

백정기_Is of-Mt. Seorak in Autumn_분쇄된 단풍잎, 분쇄기, 추출기, 농축기, 혼합재료_가변크기_2012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Is of : Mt. Seorak in Autumn」은 잉크 대신 작가가 설악산에 가서 수집한 단풍잎으로부터 추출된 색소로 인쇄된 설악산의 가을 풍경 이미지이다. 작품의 이미지는 일반 잉크로 출력된 것에 비해 색감이나 선명도가 떨어져 상대적으로 재현의 완성도나 현실감이 떨어진다. 그러나 단풍이 든 설악산 이미지가 실제 현장의 단풍잎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서 재현 대상과 이미지간에 실질적인 동질성이 형성됨으로써 작품은 단순한 이미지 재현을 너머 본질의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 또한 작품 이미지 성분인 식물 색소는 공기와 햇빛에 노출될 시 색이 바래지는데, 작가는 이러한 변화 과정 또한 재현의 대상이 되는 '단풍이 든 설악산' 즉, 자연의 근본적인 속성과도 일치하고 있음을 주지한다.

윤보현_Glass Tube_유리관, 칼라 비디오, 음향_00:02:00_2012

윤보현 작가는 1975년생으로, 도쿄 다마예술대학에서 유리를 전공하고 로드 아일랜드 스쿨 오브 디자인 대학에서 유리 조형으로 석사과정을 마쳤다. 2001년 이래 일본, 한국, 미국에서 총 6차례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퍼포먼스, 설치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며 국내외 전시에 참여했다. 2009년 청주공예비엔날레 "만남을 찾아서 : Outside the box"에 참여하여 작품 「그림자의 구조(카니발)」로 꼭두각시 같은 인간 삶의 면모와 계급 구조를 그림자의 투영으로 조명한 바 있다. 작품 「이웃들」(2011)은 다양한 인종들이 살고 있는 자신의 동네 이웃들의 초상을 유리판에 불투명 색으로 실크스크린 한 후 빛을 투과시켰을 때 모든 초상이 흑백의 이미지로 반대편 벽에 투영되어 인종, 학벌, 직업의 구분이 무의미함을 은유적으로 보여주었다. 작가는 우리 삶의 의미와 관심사들을 매체 자체가 갖는 속성이나 비가시적인 성질을 통해 접근을 모색해 왔다.

윤보현_Glass Helmet_2004_유리, 칼라 비디오, 음향_00:03:00_가변크기_2004

본 전시에서는 유리 매체가 갖고 있는 투명함, 진동과 같은 고유 속성에 주목하여 확장 가능한 소통의 영역을 보여준다. 총 3점의 유리 오브제 작품과 이를 시연하는 동영상이 전시되는데, 「Glass Helmet」은 유리 주전자를 헬멧과 같이 머리에 쓰고 유리 가장자리를 손으로 문질러 소리를 내거나 2인이 서로 물을 주고 받는 사운드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유리 매체는 통상적으로 입거나 머리에 쓸 수 없으나 작가는 이를 보철과 같이 인체에 착용하고 물을 이용해 소리를 발생시켜 언어 외에 가능한 소통 방식에 대하여 모색한다. 「Glass Tube」와 「Glass Trumpet」 역시 유리 매체로 작가가 모두 직접 블로잉하여 만든 작품들로, 물, 불, 공기 압력 등의 요인들에 의해 소리가 진동되는 퍼포먼스 영상을 함께 선보인다. 작가는 유리가 갖는 비가시적인 속성들을 심도 있게 조명함으로써 우리 인식에 익숙한, 가시적인 범주 외의 현상을 제시하고 환기시킨다.

최선_가쁜 숨(검은 방)_LED 전구에 피_가변크기_2011

최선 작가는 1973년생으로 홍익대학교에서 회화를 공부하고 2004년 이래 총 5회의 개인전과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해 왔다. 작가는 예술의 본질과 의미에 대해 질문을 제기하고 작품이 담고 있는 주제와 그것이 표현되는 바에 대해 '가시적(可視的)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 '물질적인 것과 비물질적인 것', '선명한 것과 선명하지 않은 것', 궁극적으로 '예술적인 것과 예술적이지 않은 것'에 대한 이분법적인 경계가 갖는 모호함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작가는 우리의 동시대적인 이슈와 관심사들을 주제로 삼고 시각적인 환영(illusion) 혹은 전통적인 미술 매체범주에 포함되지 않는 질료와 접근에 주목하여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해 왔다. 10명의 여성으로부터 얻은 모유로 작업한 회화 「젖동냥」(2005)은 시간이 지나면서 악취를 풍기며 부패함으로써 모유가 갖는 숭고함의 이미지가 변질되는 과정을 보여주었으며 관객에게 각각 동일한 제조사의 붓, 물감, 패널을 제공하여 칠하게 한 「노란 벽」(2011)은 결과물은 동일하나 창조자가 서로 다른 개인이므로 작품의 주관성을 어떻게 구분 지을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한 작업이었다.

최선_흰 그림_면, 2012년 9월 경상북도 구미 봉산리 대기에서 채취한 불화수소산_90×160cm_2012

최선은 이번 전시에서 비가시적인 재료들로 회화와 비회화, 예술과 비예술 등의 상반되는 개념들을 보여주는 동시에 동시대적인 사회 이슈들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작가는 「흰 그림」이라는 동일한 제목 하에 서로 다른 두 작품을 선보이는데, 매우 얇은 유산지에 돼지기름으로 전체 면이 칠해진 작업은 관객이 많을수록 주위 온도가 상승하여 기름이 투명하게 변해 텅 빈 공백으로 남게 되는 회화 작업과 다른 한 점은 최근 불산 가스 누출 사고가 발생한 구미의 대기에서 채취한 무색무취의 회화 작업이다. 또 다른 작품 「자홍색 족자」는 구제역으로 생매장된 350만 마리 돼지의 숫자를 도살할 때 돼지 피부에 찍는 수성염료를 떠올리는 색으로 출력한 것으로 당시 끔찍했던 사건의 전말을 가시화시킨 작업이다. 색에 대한 접근에 있어 흰 그림과 대조를 이루는「가쁜 숨(검은 방)」은 전구 위에 실제 피를 바르고 이로 인해 전구가 비치는 방안이 붉은색을 띄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피가 검게 굳어짐에 따라 암흑의 방으로 바뀌는 작품이다. 이러한 과정 전반은 생명력이 넘치는 삶으로부터 미지의 죽음으로 나아가는 우리 삶의 여정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하태범_예멘_피그먼트 프린트에 페이스마운트_100×160cm_2012

하태범 작가는 1974년생으로 중앙대학교 조소과 학사와 석사 과정을 마치고 독일 슈투트가르트 국립 조형예술대학에서 조소로 석사과정을 밟았다. 2000년 이래 총 8차례의 국내외 개인전을 선보인 하태범은 우리 주변에서 발생하는 실제 사건, 사고 뉴스의 보도 이미지에 주목하여 작업을 전개해왔다. 그의 작업은 매일 쏟아지는 사건 및 재난을 보다 자극적인 장면으로 포장하려는 언론매체의 이미지 전달 방식과 참혹한 장면에도 무감각해지는 우리의 감성 및 시선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시작된다. 하태범의 재난 이미지들은 당시 긴박한 상황을 보여주는 혈흔이나 화재, 그을음 등의 요소들이 제거된 하얀 모형으로 재현된 것으로 뉴스를 바라보는 우리의 무미건조하고 냉정한 시선을 담고 있다. ● "보도사진의 이미지는 실제 사건의 모든 전말을 담지 못한다. 더욱이 스펙터클한 이미지는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소비의 대상이 되며 또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적 소비자들 내면의 이미지는 또 다른 허구로 다가온다." (작가 노트 중)

하태범_연평도_피그먼트 프린트에 페이스마운트_128×180cm_2011

그는 지진, 쓰나미 등의 자연재해나 전쟁, 폭탄 테러 등의 정치적인 이슈에 이르기까지 삶과 터전이 무기력하게 짓밟히는 참혹한 현장들을 재현하는데, 이에 대해 작가는 실제 보도사진의 모습 그대로 모형을 제작하여 사진 촬영하는 'Actuality' 접근과 실제를 바탕으로 하되 작가의 주관적인 사고를 개입하여 모형에 반영해 작업을 하는 'Imagination' 접근 두 가지로 구분을 짓는다. ● 이번 전시에는 9·11 테러, 연평도 등 폭격 및 테러 위주의 보도사진을 모형을 제작하여 촬영한 사진 작품들과 「전쟁 놀이(Play War Game)」 신작 영상 작품을 함께 선보인다. A4종이가 깔린 바닥 위로 집의 모형들이 등장하는 영상이 투사되면서 총격에 의해 파괴되어 가는 현장을 보여준다. 이는 보도사진의 자극적인 시선과 방관자적인 소비자의 시각을 보여주던 사진작업에서 더 나아가 전쟁 게임과 같은 시점과 파괴에 대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인간의 쾌감을 투사한다. ■ 송은 아트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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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버전을 위한 드로잉 Drawing for version 0.0

김병관展 / KIMBYUNGKWAN / 金炳官 / painting   2012_1222 ▶ 2013_0111 / 일요일 휴관

김병관_Drawing #0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6.8×91cm_2012

초대일시 / 2012_1222_토요일_06:00pm

관람시간 / 12:00pm~07:00pm / 일요일 휴관

가회동60 GAHOEDONG60 서울 종로구 가회동 60번지 Tel. +82.2.3673.0585 www.gahoedong60.com

"이미지가 논리적으로 재조합 됨을 신뢰하는가?" ● 흔히 '나는 대상을 인식 하였다.'는 의미는 이미 두뇌에서 분석작업을 마친 순간을 말한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반드시 이성적, 또는 논리적 분석 과정을 거쳐야만 대상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인가? 만일, 논리적 재조합에 의해 구축되는 이러한 과정이 '언어로의 변환작업' 이라는 논제가 가능하다면, 이러한 의문이 가능하다. ● "언어로 컨버팅 되기 이전의 대상은 과연 무엇인가?" 여기서 문제는 바로 컨버팅 프로세스에 대한 신뢰이다. 유감스럽지만, 견고해 보이는 이 시스템은 수많은 원인으로 매우 유동적이다. (자신을 둘러싼 시대의 언어가 완전한 것이라 믿는 멍청이들이 있을까?) 그 어느 곳에서도 완벽한 컨버팅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으며, 아이러니 하게도 오직 확실한 것은 자신이 가진 시스템에 대한 무한한 신뢰뿐이다. 하지만 이 신뢰가 바로 '완전한 오해'를 재생산 하는 근본적인 원인일 수 있다. 자기 신뢰에 대한 이러한 불신은 자신의 인식작용으로 인한 오해를 피하고자 하는, 최소한의 의지를 시작하게 한다. ● 그렇다면 이러한 의지를 지닌 드로잉의 목적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주의해야 할 것은 순수, 원초적 등의 개념으로 향하면 오히려 구제받지 못할 오해로 귀결될 위험이 가중된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개념들은 버전100쯤으로 생각한다.) 그렇다고, 자동기술법과는 관계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무의식의 과대포장으로 인한 퍼포먼스 일 뿐 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그저, '뇌에서 작동되는 분석 시스템을 신뢰하지 않기' 정도로 해두어도 충분하다. 드로잉을 통한 이 시도는 버전이 시작되기 이전의 상태, 아무것도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가 아닌, 분석과 오해의 시작전인 그곳으로 가기 위한 열망이며, 그곳이 버전0.0인 곳이다. ■ 김병관

김병관_Drawing #0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6.8×80.3cm_2012

한 순간 한 순간 마다 읽혀지는 김병관의 이미지들은 잡지책의 페이지를 넘기는 것과 다름 없다. 김병관의 드로잉을 보고 있노라면 아크릴 물감의 유전적 속성과 많이 닮아 있음을 느끼곤 한다. 빨리 마른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자면 미술의 영속성은 전시되기 이전의 상태에 머물러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을 한다. '전시'라는 장치보단 그려지기 전의 상태와 그려져 표현된 상태를 혼동해서 영구히 머물러 있게 만든다. 그림이 그림인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움으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표방된 -Image- 일런지던간에... 그런 그가 표현하고 그린 것은 무언가에 홀린 사람의 이미지들이 대부분이다. 그것들 중 이번 전시에서는 그녀가 존재한다. 제일 먼저 내게 보여준 그녀의 이미지가 그가 그리고자 하는 그 무엇이련가? 하여간에... ● 그는 그녀를 좋아한다. 그녀라는 존재는 잡지 속에서만 머물러 있는 그런 존재일 것이나 사랑도 한다. 그는 그런 그녀를 사랑하고 어루만지면서 그녀의 따스함과 이국적인 모습에 비춰 엉뚱한 대화를 하는 상상을 할 것이다. 텅 빈 공간이 아닌 따스한 햇빛이 꽉 찬 넓은 평원 같은 공간이다. 미국의 컬트무비에서나 나올 법한 아름드리 나무에 건조한 공기와 함께 그네(swing)가 매달려 있는 공원 같은 곳이다. 그런 곳에 그녀가 치맛자락 펄럭이며 띄어져 있고 그는 그녀를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녀는 푼수끼가 다분하다. 아니,, 어쩜 일탈에 목적을 두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가끔 엉뚱한 짓을 하는 그녀이다. 하지만 변화를 기대하고 있는 그녀이다. 그렇다고 어떤 무엇인가를 목적에 두지 않고 마냥 변화만을 기대한다. 어여삐 여겨봐야 맹하고 엉뚱하지만 밝은 웃음을 가지고 있는 그녀이다. ● 그는 가끔씩 그녀가 자신의 질문에 답해주기를 바라지만 질문이라는 것을 생각할 여력도 없이 그녀가 먼저 질문하기 일쑤다. 그렇다고 질문이 질문 답지도 않다. 아니, 질문이라기 보다는 웅얼거림에 가깝다. '궁시렁'이라고 표현하자. ● 그녀의 '궁시렁궁시렁'이 가끔은 짜증나도 잘도 참아내며 받아준다던가 아님 모른 척 귓가 주변에 떠다니게 냅둔다. 알려고 해봐야 궁시렁일 뿐인 것을 그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런 그녀를 그는 모른 척 놔둘 수도 없다. 단 한가지가 항상 그의 마음을 사로 잡기 때문이다. 냉소적인 향기를 뿜어내는 그녀… 어떤 향기도 그 공간을 지배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내음을 풍기는 그녀의 체취. 그것에 그는 마음 한구석을 전부 빼앗기고 있다. 냉소적이며 어느 순간엔 이지적 이기까지 한 그 내음을 그는 뿌리칠 수가 도저히 없다. 어릴 적 어느 순간에선가 맡아본 것 같은 그 향기를 그는 지금의 현실공간에 가득 담고 있다. 마약보다도 더 강한 중독성을 가진 그녀의 향기가 어떤 다른 형태를 취하려는지 몸부림 치고 비틀며 이 세상의 원초적인 단세포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음에도 그는 그 순간, 그녀의 근본적 외로움과 함께 취하여 쾌락에 몸을 맡기고 있는 자신의 몸뚱아리 속 부정맥이 꿈틀거리는 모습까지도 즐기고 있는 것이다.

김병관_Drawing #03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6.8×80.3cm_2012

김병관의 작업은 단순성에 기인한다. 약간은 모순 되어진 작금의 미술계에 내러티브적 구성력을 보여주기에 미술적 사고방식에 기인하기보다는 오히려 연극이나 무용, 영화라던가 애니메이션이라하는 '극'의 모습과 닮아있어 작품의 구조상 시놉시스의 비중을 더욱 많이 차지하고 있다. 화면에 뿌리는 물감이 있을 뿐이고 작품의 전개상 필요한 반전 부분이 있는 'Painting Show' 에 가깝게 느껴질 때가 많다. 이점이 이 작가의 가장 큰 매력이다. 현 미술계가 미술의 특정조건이 점점 불투명해지고 두꺼워진 상태에서 그의 작업들은 소스(sauce)자체가 두께감이 없다. 거둬낸 볏짚을 탈곡기에 넣어 껍질을 날려 까버리는 형국이다. 아니, 탈곡기는 그의 본 직업인 렌더링 같은 3D컴퓨팅을 하는 것이고 회화작업은 도리깨로 쳐내어 수작업으로 껍질을 분리하는 작업 같은 것이다. 쌀 도정의 단계적 절차를 거쳐 최종적으로 쌀을 씻어 밥물에 앉히는 순간까지 자신이 원하는 입맛에 맞출 수는 있다. 문제는 불 조절인데... 역시나 전기압력밥통 보다는 무쇠솥이 밥하는 맛은 있듯이 뜸들이는 시간을 잘 맞춰놔야지 제 맛이 날 것이다. 그런데, 김병관은 미디어 아트라는 첨단 장르에서도 자신의 입맛을 조절 할 줄 아는 작가로서의 능력치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소스가 다양한 것이 아니라 두께감이 없어야 가능한 일이다. 원재료의 맛을 알아야 소스와 와인도 마리아쥬가 가능해진다. 소스의 두께감이 두꺼워지면 원재료의 맛을 감춰 버리기 때문이다.

김병관_Drawing #04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6.8×91cm_2012

현재 우리나라의 문화에서 미술보다는 영화가, 영화보다는 음악이 대중성의 득을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이유는 이 소스를 바라보는 대중문화의 취향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미술을 덮고 있는 이 미술덮밥이 영화덮밥보다 냄새로 보나 모양으로 보나 훨씬 두껍고 짙은 소스로 쳐 발라져 있고 음악덮밥은 영화덮밥보다 좀더 얇고 옅어서 본 재료의 성숙도를 가늠하기 쉬워져 있다. 멘토링이니 거시기니 하는 도제양성-시스템이 음악계에 자리 잡힌 이유도 음악이 가진 배음구조의 공감각적 유전성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음악은 원음의 데이터베이스를 효과적으로 교육화 시킬 수 있을 만큼 공간의 두께감을 가지지 않고서도 보존력과 영속성을 지닐 수 있다. 축음기부터 MP3로 이어진 예가 대표적인 예인 것처럼 기본 속성 자체가 '0'과 '1'로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고 철저히 시간성으로부터 시작한 공간성과의 상관관계를 유지한다. 물론 시간예술에서 공간예술로 점유하는 공감각 증상을 소스로 대리하여 풀어나가기는 민망하다. 하지만 소스라는 것을 -양념- 으로 읽지 않고 속어로 읽으면 -건방짐- 쯤으로 사전적 해석이 가능한데... 두꺼운 소스일수록 건방떨기 민망한 쟝르라는 것이 내포되어 있다. 그러니까 얇을 수록 건방떨기 수월하여 본색을 드러내기 쉬운 것이리라. 이것이 현대 예술문화에서 장풍을 치느냐 마느냐로 귀결된다. 미술덮밥의 속성이란 것이 일단은 드러내기 보다는 깊이 감추어져 있어 자기들만 아는「Rare-Arts scene」으로 장식되어져 쉽게 눈치채지 못하게 하는 마법을 걸어놓기 일수다. 이것 자체가 얼마나 특혜 받은자들의 향이 짙은 소스란 말인가? 어떻게 보면 참 건방진 소스로도 읽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쉽게 그 밑에 있는 쌀알들은 건방 떨기가 무서울런지도 모르겠다. ● 김병관은 아주 얇은 소스를, 아예 소스 자체의 두께감이 없는 그 무엇인가를 열심히 바라보고 있다. 그러면서도 향기를 쫓는 일을 서슴지 않고 하고 있다. 시각적 냄새를 풍기려고 작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 2012년 12월, 망년회로 흥청거릴 즈음의「김병관 원맨쇼」를 흥겨운 관심으로 건방떨며 들여다 보아주기를 바란다. ■ POOky

김병관_Drawing #05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6.8×91cm_2012

"Images are able to recombine by log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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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ux

SPACE*SCAPE展 2012_1227 ▶ 2013_0117

박승훈_TEXTUS 072_디지털 프린트_125×100cm_2011

초대일시 / 2012_1227_목요일_06:00pm

참여작가 박승훈_박자용_베른트 할프헤르_이민경_이소영_이지연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일,공휴일_11:00am~07:00pm / 1월17일_10:00am~05:00pm

갤러리 룩스 GALLERY LUX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5번지 인덕빌딩 3층 Tel. +82.2.720.8488 www.gallerylux.net

『2012 Flux_SPACE*SCAPE』展을 열며 ● 이번『2012 Flux』展은 매년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며 선보이는 룩스의 연례기획전으로 국내외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관객과 소통하고자 노력해 온 작가들 중 룩스가 주목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아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하는 취지로 기획된 전시이다. 연례기획전의 큰 타이틀인『Flux』은 끊임없이 변모하며 이상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룩스의 소망을 담고 있으며 올해 전시에는 사진, 회화,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작업하고 있는 박승훈, 박자용, 베른트할프헤르, 이민경, 이소영, 이지연 등 여섯 명의 작가들을 초대하였다. ● 인간은 성장함에 따라 사람과 물체들 이외에 궁극적으로 자신이 경험했거나 존재했던 공간, 장소들에 애착을 갖기 시작한다. 추억에 의해 사로 잡힌 장소들을 처음에는 또렷이 인식 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기억은 점차 희미해지고 그 끝에는 흐릿한 공간의 기억만이 머리 속에 남는다. 이러한 공간이라는 주제는 많은 작가들에게 끊임없이 매력적인 영감과 소재가 되어 왔다. 이번 『2012Flux_SPACE*SCAPE』展은 우리가 존재하고 있는 공간과 그 공간을 바라보는 작가들의 다채로운 시각을 살펴 보고자 하는 취지에서 기획되었다. 이번 전시에 초대된 작가들은 그들의 사적 경험이 담긴 공간(空間)을 다양한 방법으로 전복시키거나 작가 스스로가 개입함으로써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공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박승훈_TEXTUS 076-1_디지털 프린트_93×153cm_2011

하나의 공간이 낱낱이 해체되고 다시 결합하면서 시간과 공간의 흔적이 겹겹이 중첩된 새로운 이미지로 탄생한다. 사진의 기존형식에 대해 실험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박승훈은 직접적이거나 혹은 간접적으로 접해 온 기억의 공간들을 찾아가 촬영한 후, 8×10사이즈의 대형필름을 손수 엮어서 포토콜라주의 형태로 재구성한다. 작가는 어두운 암실 속에서 마치 직물을 짜듯이 이미지의 파편들을 하나씩 붙여나간다. 디지털로 작업한다면 그 과정을 쉽게 컨트롤 할 수 있지만 작가는 이 모든 과정을 아날로그적인 수작업으로 진행한다. 때문에 이러한 작가의 인내와 수고로움이 묻어나는 제작방법은 그 행위 자체로도 고유한 가치를 가진다. 또한 과거의 기억의 조각을 찾아가는 작가의 긴 여정은 대상에 대한 그의 따뜻한 시선을 내포하고 있다.

박자용_여름밤의 몽상_피그먼트 프린트_70×100cm_2012
박자용_Regard-Souffle 시선-바람_피그먼트 프린트_70×100cm_2012

박자용은 건축물이 세워진 공간을 사진으로 촬영한 뒤 작가의 상상력을 덧대어 또 다른 느낌의 조형적 공간으로 변형시킨다. 실재와 허상이 충돌하고 작가의 감성과 개인적 경험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하나의 프레임 안에 오롯이 자리잡는다. 그의 작품에는 평온함과 안락함, 그리고 묘한 긴장감이 혼재되어있다. 삼차원의 세계와 이차원의 평면, 외부공간과 내부공간이 결합된 그의 작품에서 우리는 마치 꿈처럼 모호하게 느껴지는 가상의 공간과 조우하게 된다.

베른트 할프헤르_Haje story Nr3_람다 프린트, 싸이텍_20×30cm_2009
베른트 할프헤르_Haje story Nr5_람다 프린트, 싸이텍_20×30cm_2009
베른트 할프헤르_Tongidong Story Nr1_람다 프린트, 싸이텍_30×30cm_2009
베른트 할프헤르_Tongidong Story Nr4_람다 프린트, 싸이텍_30×30cm_2009

베른트 할프레르는 독일 출신으로 작가의 주된 관심을 도심의 경관과 그 공간 속에 자리한 인공물, 그리고 이를 조망하는 본인의 시각을 표현해내는 것이다. 철저히 관찰자의 입장을 취하고 있는 그는 세상의 여러 곳들을 찾아 다니며 보았던 풍경들을 카메라로 포착한 후 그 이미지를 쪼개고 다시 재편집하는 과정을 거친다. 또한, 작업은 한 장의 이미지 컷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동영상 편집에 가까운 기술로 나타내어지는데 때문에 찍혀진 대상의 장소성은 점차 사라지고 모호하고 기이한 패턴만이 작품 속에서 보여진다. 작가는 그 속에서 자신이 보았던 시간과 공간들, 그 자체의 순수성을 찾아내려 하고 있다. 조형성에 기반을 둔 독특한 구성방식과 작가의 치밀함에 의해 완성된 도시의 이미지들은 관람객의 시선을 작품 속으로 자연스럽게 끌어들인다.

이민경_더큰집(두번째)_아카이벌 잉크젯 프린트_85.5×100cm_2012
이민경_두개의-하얀집_아카이벌 잉크젯 프린트_64×100cm_2012

이민경의 공간에는 대상에 대한 아련함이 담겨 있다. 작가는 사진촬영 후 그 이미지를 공간모형으로 재구성함으로써 우리가 살고 있는 주위의 도시공간을 고찰하고 심도 있게 사색하고 있다. 그가 주로 다루는 소재들은 주로 도시의 낡은 다세대 혹은 연립주택으로 작가는 이러한 공간에 비추어 현 시대를 읽어내고자 하고 있다.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듯 유약하고 힘겹게 서 있는 가건물들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이 언제든 한 순간 무너져 내릴 수 있음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언젠가 마주쳤을 법한 일상의 공간들을 화면에 담아내는 그의 작품에는 사진 특유의 다큐멘터리적인 기록성과 대상과 담담히 마주하는 작가의 관조적 성격이 잘 드러난다. 작가는 개인과 사회의 정체성, 기억에 담긴 그 불확실한 감정들을 보다 선명하게 대면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안내하고 있다.

이소영_cross the inside_잉크젯 프린트_230×153cm_2011

공간의 축소 모형을 촬영해 만든 이미지 출력물과 설치 작업을 함께 발표해오고 있는 이소영 작가는 실재하는 건축물의 축소 모형을 만들고 그 내부를 촬영한 뒤 컴퓨터 프로그램을 사용해 여러 층의 레이어를 겹침으로써 기존의 공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허상의 몽환적인 공간으로 변화시킨다. 푸르고 창백한 공기가 부유하는 공간 안에서 작가는 자신과 자신의 세계가 실제로 존재하고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이지연_Exploration of spac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라인테이프_60×100cm×3_2012

이지연의 작품은 자신의 기억이 생성된 장소, 지극히 사적인 자신의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은은하고 단정한 언어로 풀어나간다. 작가는 라인테이프를 작업을 통해 공간을 분할하고 차분한 모노톤의 색을 입힌다. 화려한 기교 없이 선과 면으로만 분할 된 이 절제된 공간들은 그 자체로 아름다우며 정돈된 안정감을 주며 공간과 공간 사이의 비밀스럽게 감춰진 여백은 우리의 안정된 인식구조를 흔들어 놓는다. 작가에 의해 선택적으로 제거되어 비워진 공간은 이미지를 해석하는데 있어 많은 상상력과 자유를 부여한다. ●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공간은 켜켜히 쌓인 시간의 흔적으로부터 만들어졌고 이는 사적인 경험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때문에 우리는 같은 공간을 마주하더라도 개인의 경험이나 기억에 따라 상이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여기 모인 여섯 명의 작가들은 각자가 다른 감각을 가지고 그들 스스로가 매개가 되어 자신이 애착을 가지고 있는 공간의 이면에 감성을 부여하고 제3의 공간을 창출해낸다. 예술가들의 무한한 열정과 수고로움, 그 과정에서 탄생한 의미 있는 흔적의 결과물들을 만나볼 수 있는 이번 전시는 공간을 바라보는 여섯 작가들의 특별한 감성과 그들의 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소중한 자리가 될 것이다. ■ 박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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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he's Forest 레테의 숲

윤병운展 / YOONBYUNGWOON / 尹秉運 / painting 2012_1227 ▶ 2013_0215

윤병운_Silence_캔버스에 유채_97×145.5cm_2012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윤병운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2_1227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30am~11:00pm / 주말_11:00am~09:00pm

애술린갤러리 서울 ASSOULINE GALLERY SEOUL 서울 강남구 신사동 631-36번지 주명빌딩 B1 Tel. +82.2.516.0316 www.assouline.co.kr

ASSOULINE GALLERY는 프랑스의 명품서적 브랜드 ASSOULINE에서 운영하는 Contemporary Art Gallery 입니다. 12월 27일 윤병운 작가의 개인전으로 개관을 앞둔 애술린갤러리는 전세계에서 최초로 서울에 갤러리를 시작함으로써 앞으로 미술시장의 흐름을 주도할 유망한 젊은 작가를 발굴하는 것을 목표로 ASSOULINE이 가진 문화적 에너지와 함께 한국의 작가들을 세계에 소개 하고 대중들과 예술적 정보, 지식을 함께 교류하는 즐거움을 주는 문화공간이 될 것 입니다. ■ 애술린갤러리 서울

윤병운_Silence_캔버스에 유채_각 53×40.9cm_2012
윤병운_Silence_캔버스에 유채_각 90×90cm_2012
윤병운_Silence_캔버스에 유채_27.3×40.9cm_2012
윤병운_Silence_캔버스에 유채_80.3×116.8cm_2012
윤병운_Silence_캔버스에 유채_89.4×145.5cm_2012
윤병운_Intermission_캔버스에 유채_72.7×90.9cm_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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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파고스 Galapagos

2012_1228 ▶ 2013_0217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2_1227_목요일_05:00pm

참여작가 / 윌킴_강소영릴릴_송호준_안두진_정소영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일민미술관 ILMIN MUSEUM OF ART 서울 종로구 세종로 139번지 제1,2전시실 Tel. +82.2.2020.2060 www.ilmin.org

"그 문제에 답하려면 큰군함새와 인터뷰를 해야겠지만, 내가 알기로는 아직 아무도 그러지 못했어요. 그러나 목숨을 바쳐가며 그 새들을 연구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들의 견해에 따르면 암컷들은 사실 제일 좋은 둥지터를 가리키는 풍선을 선택한답니다. 그 견해는 생존의 견지에서 봐도 일리가 있어요. 그 견해에 따른다면, 우리는 다시 푸른발부비새의 구애춤이라는 참으로 불가사의한 문제로 올라가게 됩니다. 그 춤은 부비새의 생존에 필요한 집짓기나 물고기 사냥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어 보이니까요. 그렇다면 무엇과 관계가 있을까요? 용감하게 그냥 '종교'라고 할까요? 그럴 용기가 없다면 그냥 '예술'이라 불러도 좋을까요? 여러분의 생각을 말해보세요." (커트 보네거트, 『갈라파고스』, 박웅희 옮김, 아이필드, 2001, p.94-95)

윌킴_Naked Branched_수채 애니메이션, 단채널 영상_00:04:43_2007

동시대 아티스트의 작업은 우리가 흔히 '미술'이라는 단어에 기대하는 미적 유희이기 보다는 시각적 아름다움을 포함한 창의적 기술에 대한 논의의 시발을 만들어 낸다. 그것이 아름답던 혹은 그렇지 못하던 간에 인간이 만들어낸 기술의 중심에는 '생존의 문제'가 자리한다. 더하여 '진화심리학'에 따르면 예술은 생존 후의 잉여활동으로서의 가치가 아니라 생존의 기술을 강화시켜주는 기술이다. 진화심리학에서 인간심리의 보편성과 초기예술의 발생을 이야기할 때 기하학적 문양을 통해 위험한 자연적 공간에서 질서를 부여하고, 번식과 구애를 위해 장식과 치장이 생겨난 것, 사냥을 위한 집단의 제의를 위한 동굴회화를 이야기 한다. 이와 같은 인간이 생존을 위해 가지고 있는 보편적 노력과 그에 따른 부산물은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 또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지금 광화문의 밖에선 '생존'에 관하여 각자에게 '절대적이라 생각하는 것'에 대하여 끊임없는 발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일민미술관에서는 지금 '생존의 문제'와 관련하여 작가(예술가)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행하고 있는가? 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의 기회를 마련해보고자 한다.

강소영릴릴_용의 이빨-밀물과 썰물_2채널 영상, HD 컬러, 스테레오_00:15:00_2011

윌킴, 강소영릴릴, 송호준, 안두진, 정소영 5명의 작가들은 제각각 생존을 위한 창의적 기술을 제시한다. 가장 강한 힘을 가지는 것, 이와 관련한 기계를 발명하는 것, 기록을 남기는 것, 힘의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 공통된 경험을 위해 거대한 숭고함의 기점을 만드는 것에 관한 이야기는 회화, 영상, 설치 등 각각의 다양한 시각적 결과물로 보여진다. 물론 작품들은 아름다운(우세한) 모양새를 뽐내며 전시 될 것이다. 그것들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예술계'라는 집단에서의 생존에서 고안된 기술이라 판단할 수 있겠지만 공유하고자 하는 것은 보다 넓은 현실에서의 생존에 관한 이야기이다.

송호준_개인 인공위성 프로젝트_단채널 영상_2009~
안두진_Evade his eyes_캔버스에 유채_130×190cm_2008

전시에서는 『갈라파고스』라는 소설의 문구가 작품과 함께 배치된다. 『갈라파고스(1985, 커트 보네거트)』 는 진화론의 배경이 되는 에콰도르의 섬 갈라파고스를 여행하게 된 사람들이 운석에 의해 지구의 인간이 멸종된 이후 백만년에 걸쳐 물고기로 진화하여 살아남게 되는 과정을 묘사한 sf소설이다. 예술을 통한 기술은 식량, 주거, 환경적 위험의 극복과 같은 일차적 행위가 아니라 일차적 행위를 뒷받침 하고 그 결과인 생존을 '강화'시켜주는 기술이다. 따라서 소설의 스토리에 나오는 생존을 위한 일차적 행위들과 작가의 작품에서 다루어지는 기술의 연결이 예술과 생존의 관계의 논의에 대하여 흥미로운 매듭의 형태를 보여줄 것이다.

정소영_Stone tool I_혼합재료_120×78×60cm_2012

인류는 『갈라파고스』소설에서와 같은 생물학적 변이 없이 10만년 전 인류의 형태인 호미니드(hominid)가 출현한 이후 같은 물리적 구조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인간의 정서와 심리적 구조에 따른 개별적 기술은 끊임없이 진화를 거듭해왔다. 전시에서는 이것들이 동시대의 예술적 형태로 어떻게 나타났는가의 예시를 보여주는 작품들을 모아 전시하고 함께 논의 함으로써 생존의 모색을 위한 또 하나의 방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각각이 지닌 생존의 기술은 개개인의 생김새만큼이나 다양하면서도 인류라는 전체의 보편성을 공유하고 있다. 전시에서 작가들은 작품에서 시각적 설명을 위해 어느 정도의 격리된 상황이나 그에 따른 시각적 연출은 하지만 그 안에서 인간의 극단적 감정에 집중하거나 또는 격리된 상황에서 생명의 유지를 위한 논리적 방법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각각의 작품들과 그 집합은 창의적인 각자의 방법을 고안해 내기 위한 자극을 위한 장치로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작품은 개별로서 혹은 다른 작가의 것과 더해져 공공의 생존에 도움이 될 만한 새로운 기술을 제안할 것이며, 이러한 시각적 자극을 통해 관람객들로 하여금 개개인의 전략을 공유함으로써 외부에서 쟁취하지 않고도 각자의 내부에서 생존기술에의 진화 일보가 생겨나기를 기대한다. ■ 양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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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없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예찬Ⅰ

2012_1231 ▶ 2013_0207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2_1231_월요일_06:00pm

참여작가 / 김주리_목정욱_신건우_신기운_정재욱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_운생동건축사사무소㈜_월간 객석

관람시간 / 11:00am~07:30pm / 월요일 휴관

아트스페이스 갤러리 정미소 ART SPACE GALLERY JUNGMISO 서울 종로구 동숭동 199-17번지 객석빌딩 2층 Tel. +82.2.743.5378 www.galleryjungmiso.co.kr

덧없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예찬 ● 기술이 발전할 수록 속도는 더 빠름을 추구하게 되고, 또한 이와 더불어 다양한 시각기계의 등장과 발전은 시각의 힘을 더욱 강화시키게 되는데, 시각의 힘은 공간을 초월하며, 시각은 더 이상 공간에 제약을 받지 않게 된다. 공간의 탈 영토화를 꾀하고 있는 다양한 매체적 시각은 곧 탈 영토화와 더불어 또 다른 새로운 공간성을 창조하게 되기 때문이다. 시각의 물리적 저장고가 이제는 네트워크와 컴퓨터하드에 소장되게 됨으로 이미지의 수장고는 이미 탈 저장고의 개념을 겪었다. 이 때문에 실제적 시각이미지 장소는 소멸되었으며, 이 소멸과 더불어 지속적으로 같은 모습으로 영원할 것 같은 매체기술 저장고가 탄생되었다. ● 이러한 속도를 통한 공간의 점령 층은 점차적으로 가시화 되지 않은 형태의 비물질화로 변형되고 있다. 정보혁명의 시대의 그 가속은 운송수단에 발달하면서 공간과 거리의 문제를 축소시켰던 것과 유사하게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렇게 축소되고, 소멸되고, 사라지는 것에 대한 비관적 입장이 아닌, 이들 통해 좀 더 영원으로 가는 통로를 제시하고자 한다. ● "죽은 작가의 모든 원작이 존재하지 않고, 단지 그 작업을 유한 매뉴얼만이 존재 한다는 것은 시대와 기술이 발전됨에 따라 작업을 포장하는 재료만 달라지는 것이지, 작업의 중요한 개념과 영혼은 그대로 유지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보다 더 영원한 예술이 있을까" 라는 의문을 두고 5명 작가의 작업이 세상에 던지는 질문에 귀를 기울어 보려한다.

김주리_휘경揮景-h07_흙, 물_32×70×70cm_2012

영원히 보존될 수 없는 흙 조각을 모태로 제작에 임하는 김주리(Kim Ju ree)의 작업은 세심하게 다듬어져 있는 집들의 형태와 밀집적 치밀함이 물에 의해 스스로 무너져가는 상황을 연출시킨다. 다양한 자연재해를 통해 도시의 집과 건물 혹은 생태계들이 무너지고, 파괴되기도 하지만, 우리는 불가피하게 즉 예상하지 못했던 무너짐이 아닌 이미 짜여진 각본에 의해 사라지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어쩌면 사라져버리고 소멸되어 버리는 자연법칙을 스스로 자각하여 우연히 인간에게 벌어지는 상황이 일시적 최악의 소동이 아님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인간은 인류적으로 다양한 소멸과 생성의 역사성을 기록했으며, 습득했고, 또 그에 합당한 당대 최선의 논리와 체계를 구축한다. 김주리의 흙 조각의 무너짐은 이미 소멸되고 사라짐이 인식된 이후에 행위이기에 우리에게 무너지는 것 자체의 허무함과 동시에 또 다른 시작을 알리는 메타포가 존재한다. 즉 김주리의 조각은 사라지지만 그 조각적 소재와 그 속에 담긴 사유들은 고스란히 우리의 정신에 고이 축척 될 것이다.

신기운_God kill the queen(2nd ver)_FHD 영상_00:02:50_2012

물성을 가지고 있는 특정 오브제를 꾸준히 가루화 시켜 그 물성이 가지고 있는 시간성, 역사성, 사회성, 제도성등을 와해시키는 작업을 진행시키는 신기운(Shin Ki woun)의 작업은 그야말로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환희와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킨다. 그 무너짐은 전쟁과 자연재해에서 오는 파괴와 폭력과는 상이한 맥락을 가지며, 소멸과 사라짐은 오히려 더 길어질 수 있는 시간성, 더욱 물질화 되고 있는 상황에 대한 저항, 부재가 되면서 더욱 더 확연히 드러나는 특정대상의 현존성에 관한 이야기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또한 지속적으로 자신의 행위를 통해 한 시대를 아우르고 풍미할 수 없는 거대한 서사적 이야기들을 영원한 궁전 속으로 이끌어 가기 위한 시도를 진행하고 있다.

목정욱_The Urban Topography Research fig 10_C 프린트_70×95cm

청명한 하늘에 검은 연기가 자욱히 덮혀 건물의 형태가 한 순간에 붕괴되는 화면을 담아내는 목정욱(Mok Jung Wook)의 작업에서는 '건물이 무너진다'라는 어떠한 사실근거에 의해 전달적 측면보다는 그 무너지는 건물을 둘러싸고 있는 파도치는 것과 같은 검푸르면서도 현란한 연기들의 향연과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그러한 씬이 연출될 때 쨍쨍하고 푸프른 하늘의 장면이 하나의 샷으로 담겨져 있어 그냥 사라진다기 보다는 사라짐이라는 것에 그 어떤 애틋함이 더해진다. 그래서 그의 무너지는 사진에는 붕괴함의 파괴성 보다는 로맨틱한 상황이 예상된다. 이러한 스토리를 따라가다 보면 그의 사진은 건물폭파 장면을 담고 있었고, 그 붕괴와 사라짐은 특정 그 무언가가 사라지는 아쉬움을 찾아보기 힘들다. 관객은 그 건물이 어떤 건물이었는지, 또 어디에 위치하는지 모른다. 목정욱은 자신의 사진에서 그러한 컨텍스트를 모두 제거하여, 붕괴하고 무너지는 것에 대한 경의적 표명에 가까운 장면을 보여주며, 그러한 붕괴가 또 다른 새로운 것들이 창조되기 위한 약속임을 예상하고 상상할 수 있게 한다.

정재욱_전시출품작 연출이미지
정재욱_흩어진 시간_단채널 영상_2012

수 초내에 굳어버리는 얇은 석고를 소재로 작업을 제작하고 있는 정재욱의 작업은 그 작품을 향해 누군가의 감각이 더해지면 곧 바로 '스스삭'하고 석고의 특정형태가 부서진다. 정재욱(Jung Jae Wook)의 작업은 물리적인 소재가 사라져 없어지는 오브제는 아니지만, 그가 전시장에 상정해 놓은 특정 대상의 형태가 으깨지고 변형된다. 그것이 만약 석고로 떠낸 물건일 때, 사람이 손이 닿게 되면 깨져버리고, 그 형태는 곧 깨진 석고잔재로 남게 되어 그 이전의 형태를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이처럼 정재욱의 작업은 석고라는 물리적 재료의 속성은 지속 가능하지만, 형태는 외부 힘의 의해 와해되고 붕괴된다. 그의 작업이 깨지는 순간의 포착을 '덧없이 사라지는' 것으로 묘사할 수 있으며, 그 얇은 석고들이 관객의 몸과 감각에 의해 부서질 때, 그는 또 다른 작업결과를 획득함에 기획자는 그의 작업을 두고 덧없이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예찬'을 주목한다.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오브제에 대한 놀람의 향연과 더불어 그것이 관객들 개개인의 몸에 의해 부서질 때의 카타르시스를 직접체험하길 바란다.

신건우_Landscape-Lamentation_acrylic on resin on wooden board_110×230×15cm_2012_부분

신건우(Shin Gun Woo)의 화면에 등장하는 대상, 인물, 장소성, 사건의 네러티브, 공간성, 시나리오등의 상황들은 모두 과잉되어 있기에 어떠한 특정 스토리를 찾기 힘들다. 본 전시에서는 그의 작업을 통해 덧없이 사라지는 상황에 대한 연출보다는 무언가 덧없이 사라지고 난 이후의 상황과 암시를 드러내려고 하였으며, 더 나아가 덧없이 무언가 사라진다는 것은 과잉되고, 넘쳐나기에 무의미한 정황들을 내포하고 있음을 포착한다. 그의 이미지에는 하나의 단일이야기만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맹쾌하지 않으며, 지속적인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이번 전시에서 이처럼 사라지고, 소멸되어 없어지는 것들의 총합을 아무것도 없는 '무(無)'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은 가능성의 이야기들이 무한으로 펼쳐질 수 있다는 상황을 은유한다. 즉 이러한 맥락을 더 들여다 보기 위해 그의 작업 이면의 영역을 이끌어 내었다. 하지만 그 내용은 우리가 쉽게 인식할 수 없다. 다시 말해, 각자 다른 배경적 컨텍스트를 가진 사람들이 그의 작업을 마주하게 되면, 하나의 화면은 보는이 각자의 마음과 해석에 의한 이야기들로 메워진다. 이처럼 우리가 소멸시키고 없애려고 하면 할수록 더 많은 이야기들을 내포할 수 있는 상황이 이끌어짐을 보여주기 위한 섹션을 위해 신건우의 작업을 소개한다. ■ 이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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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Hysteria - To the Stage of Drive

염지희展 / YEOMJIHEE / 廉智嬉 / painting 2013_0102 ▶ 2013_0120 / 월요일 휴관

염지희_When Strangers Meet, in the silence park_종이에 혼합재료_112.1×162.2cm_2012

초대일시 / 2013_0102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30am~07: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아트사간 GALLERY ART SAGAN 서울 종로구 삼청로 22 영정빌딩 3층 Tel. +82.2.720.4414 www.artsagan.com

히스테리의 주체에서 충동의 무대로 From Hysteria / To the Stage of Drive ● 나의 작업에 있어 집요하게 파고드는 키워드는 '분열(split)'이다. 그것은 일관적인 정체성(identity)의 가능성에 대한 물음이자 그것의 불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나는 히스테리적 분열에 집중했는데, 히스테리는 심적 분열이 육체적으로 발현되는 증상으로, 분열이 체화(體化)되어 발현되는 모습을 상상적으로 형상화하는 것이 나의 주된 작업이다. '히스테리적 분열'의 형상화는 곧 '분열된 주체'의 모습을 탐구하는 것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분열된 주체'는 '타자'적인 자신의 틈(결여)을 내포하는 주체의 모습으로, 정체성의 형성에 있어서 '그게 아니야'라고 답하며 스스로를 끊임없이 분열시키는 '히스테리적 주체'의 모습에 가까울 것이다. 또한 '히스테리적 분열'은 이것, 저것으로 주체성이 전환되는 다양성의 차원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은 주체 본연의 차원에서 외상적인 불안(Žižek 1999: 400)과 긴장을 대면하는 차원이다. 즉, 지젝의 언급을 빌리자면 '히스테리적 주체'는 '근본적 불확실성의 곤궁' (Žižek 1999: 400)이라는 타자를 떠안고서 분열하는 주체인 것이다.

염지희_Before the dust wall_종이에 혼합재료_130.3×162.2cm_2012
염지희_Happening in your moment of decision_종이에 혼합재료_112.1×162.2cm_2012

히스테리적 분열의 주체와 더불어 그들이 위치해야 할 장소는 어떤 곳이어야 하는가? 히스테리적 주체가 자신의 잃어버린 대상-원인에 대한 영원한 추구에 붙잡혀 있는 멜랑콜리적 주체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이 제거할 수 없는 '구성적 과잉'에 근거하는 '충동'(drive)의 무대에 서있는 주체이기도 함을 전제해야 할 것이다. 즉, 히스테리적 분열이 발생하고 거주하는 곳은 결여와 틈이나, 그 틈이 온전하게 결여로써 기능하지 못하게 하는 나머지로써의 틈이 필요하다.

염지희_Hysteria in silence_섬유에 혼합재료_40.9×31.8cm_2012

본인의 작업은 분열하는 히스테리적 군상과 더불어 그들이 위치하는 '무대'라는 시공간을 표현하는 것이다. 히스테리적 군상들은 어떠한 의미로도 환원될 수 없는 것으로 전락한 분열하는 대상들의 모습이며, 그들은 히스테리적 위치에서 히스테리증자가 갖는 의혹, 물음이 생산하는/되는 일종의 무대에 위치한다. 그리고 히스테리적 주체와 무대는 다른 대상들에 의해 '노출'(expose)되는데, 이는 나의 무대를 이미 바라보고 있었던, 무대 밖 나머지의 존재이자 무대를 가능하게 하는 자에게 노출되는 것이다. 이로써 히스테리적 주체의 분열은 무대 위의 결핍을 드러냄과 '동시에' 무대 바깥과 함께 발생하는 장면이 된다.

염지희_Light them in the mistery stage_종이에 혼합재료_112.1×162.2cm_2011
염지희_Ophelia's chess board_종이에 혼합재료_112.1×162.2cm_2012

히스테리적 주체로써의, 그리고 충동의 무대를 전제하는 분열이 귀결되는 곳은 '타자'이다. 타자라는 존재는 나의 결여이자 나의 나머지로써 결코 채워지지 않고 지워지지 않는 것이 우리를 구성하는 핵으로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한 틈의 공간을 마련할 수 있는 제스쳐가 바로 '자기 분열'일 것이다. 그럼으로써 어떠한 것으로 구분되고 배제되는 것에 저항하며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인, '끊임없는 분열'이 우리에게 남겨져야 하지 않을까. ■ 염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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