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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2008-11-24 19:02:06, Hit : 4899)
전시 11.24



Emotional Space

김범수展 / KIMBUMSU / 金範洙 / sculpture

2008_1126 ▶ 2008_1221 / 월요일 휴관



김범수_Contact_영화필름, 아크릴, 레진_110×610×20cm_2008




초대일시_2008_1126_수요일_05:00pm

후원_한국문화예술위원회
협찬_CJ 문화재단, 현대아크릴

관람시간 / 10:00am~06:30pm / 월요일 휴관





사비나미술관_SAVINA Museum
서울 종로구 안국동 159번지
Tel. +82.2.736.4371
www.savinamuseum.com






패턴과 장식, 빛과 어둠을 머금은 오브제 ● 김범수의 작업은 뉴욕 유학시절 벼룩시장에서 우연하게 구입한 오랜 영화필름이 그 발단이 되었다. 당시로선 작업과의 연계성을 인식했다기보다는 단순한 취미와 호기심이 발동했을 것이다. 그리고 작업실에 돌아와 상영된 형태로 필름 속 이미지를 보면서 작가는 색다른 경험에 빠져든다. 현재가 집어 삼킨 줄로만 알고 있었던 과거가 현존하고, 부재가 존재를 고집하는 아이러니를 경험한다. 그리고 역사적 관음과 물신적 관음 그리고 가상적 관음과 맞닥트린다. 결국 시각예술이란 이런 온갖 형태의 관음증에 복무하는 것이 아닌가. 관음증의 문법은 필연적으로 암시적이고 상기적이다. 부재하는 것들을 말하는 방법이고 기술이기 때문이다. 영상이란 부재하는 것 곧 그림자가 아닌가. 일종의 빛 그림이다. 필름이라는 물질에 빛이 투과되면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 모르긴 해도 처음의 영화적 서사로부터 이렇듯 이미지가 재생되는 메커니즘에로의 이행이 자연스레 이뤄졌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작업 속엔 운명적으로 서사와 조형이, 이야기와 구조가, 빛과 어둠이, 물질과 영상(그림자)이 길항하고 부침하며 뒤섞여있다. 그 내부로부터 탈장르를 실행하고 있고, 요새말로는 통섭의 원리를 잉태하고 있는 것이다(통섭의 원리를 굳이 거대담론의 차원에서 이해할 필요는 없다. 이는 거대담론과 똑같이 미시담론의 층위에서도 작동하는 것이며, 나아가 오히려 이런 미시담론에 힘입어 거대담론의 틀을 깨는 전략적이고 실천적인 차원에서 이해되어져야 한다). ● 영상이란 분절된 순간이 연이어진 것이다. 해서, 필름 속엔 외관상 동일하거나 어슷비슷해 보이는 순간적인 이미지들의 연쇄가 기록되고, 이로부터 패턴화된 이미지가 가능해진다. 그리고 작가는 필름으로부터 이런 패턴화된 이미지를 조형의 요소로 끌어내는 과정을 통해서 영화적 서사를 순수한(?) 시각정보로 전이시킨다. 이로써 작가의 작업은 외관상 순수한(?) 조형예술의 소산처럼 보이면서도 그 이면에서 영화적 서사를 철저히 털어내지는 못하는, 부지불식간에 영화적 서사를 암시하고 상기시키는 어중간한 위치를 점유하게 된다. 말하자면 예술의 미덕인 소위 경계 위에 서기에 성공한 것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하튼 작가가 유별나게 변칙을 감행한 것은 아니다. 서사를 암시하는 형태, 물질, 이미지란 조형예술이 공유하는 문법이 아닌가. 해서, 작가의 작업은 조형예술에 대한 변혁이나 반칙으로서보다는, 이를테면 어떠한 물질적 매개도 경유하지 않은(물신화의 혐의로부터 자유로운) 순수한 서사 가능성을 묻는 것과 같은 급진적인 경우로서보다는 조형예술 고유의 표현영역을 확장시키고, 그 생리를 더 유연하게 가져간 경우로 보인다. ● 작품의 제작과정을 보면, 우선 투명 아크릴 판을 이용해 그 전면이 편평한 입체패널이나 박스 구조물을 만들고, 그 위에 자잘한 조각들로 분절된 영화필름을 일일이 붙여 나간다. 이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원하는 패턴이나 형상이 만들어지고 나면, 최종적으로 그 위에 투명 레진을 덧발라 마무리한다. 레진은 필름조각들의 접착성을 더해줄 뿐 아니라 필름 자체의 투명성을 강화해주는 효과도 있다. 그리고 이때 필름조각을 붙여나가는 양상을 보면 그 목적이 특정의 패턴을 얻고자 하는 것인 만큼 같은 문양, 같은 색상을 조합해 재구성하는데, 이로써 특정의 색띠를 중첩시키거나 병치하는 식의 패턴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말하자면 필름 자체는 서사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지만, 정작 이를 이용해 조형물을 만드는 과정에서 서사는 순수한 구조와 형식적 요소로 그 형질이 변환되는 것이다. 그리고 대개는 이렇게 완성된 패널이나 박스 이면에다 조명을 장착해 사실상 라이트박스의 형식으로 마무리한다. 이렇게 완성된 단위별 구조물 자체를 독립적인 작품으로 제안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이를 재차 재조합하거나 중첩시켜 일정한 형태(이를테면 무슨 구름모양이나 유기체 형상을 연상시키는)를 만든 것을 벽면이나 공간 그리고 때로는 천장을 이용해 설치한다. ● 이로써 평면과 입체, 회화와 조각, 구조와 패턴, 그리고 오브제와 공간설치의 경계를 넘나들며 이 모두를 내부에 포섭해 들이는 유기적인 작업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여기에 빛이 더해져서 명상적이고도 환상적인 감각적 효과를 연출해내는 것이다.




김범수_Contact_영화필름, 아크릴, 레진_110×610×20cm_2008_부분


이번 전시의 주제는 사랑이다. 조형물에 사용된 주요 필름 역시 「감각의 제국」, 「바보」, 「첫사랑」, 「왁스마스크」 등으로서, 이 중 「왁스마스크」를 제외한 모든 필름들이 하나같이 사랑을 테마로 한 영화들이다. 필름을 내용으로서보다는 물질로서 사용하는 만큼 서사가 결정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하튼 작가는 영화적 서사의 가능성의 끈을 놓고 싶어 하지는 않은 것 같다. 해서, 영화적 서사를 조형문법 특유의 재현의 층위로 끌어올리는 방법을 모색하는데, 그 과정에서 상상력이 개입될 여지가 조성되고, 상상력은 한정된 형태와 같은 기술적인 제약에 맞닥트린다. 이처럼 서사의지와 조형의지가 부닥치면서 또 다른 서사를 불러들이는 것, 그렇게 새로운 서사가 꼬리를 물고 이어지게 하는 것, 그러면서도 비록 처음의 서사가 발단이 되었지만 이에 예속되지는 않는 새로운 서사의 연쇄가 가능해지는 형식실험의 일단을 확인해볼 수 있다(자크 데리다의 산종이론에서 하나의 의미는 또 다른 의미를 불러들이는 계기로서만 의미를 가지는데, 이렇게 불러들여진 다른 의미는 그 의미하는 바가 처음의 의미와 같지 않다). Hidden Emotion(숨겨진 혹은 잠재된 감성을 찾아서) ● 작가의 작업 전체를 지배하는 대전제에 해당한다. 작가는 말하자면 이 전제나 제명 하에서 자신의 대부분의 작업을 풀어내는 한편, 이를 통해 때로는 자신에게마저 알려져 있지 않은 숨겨지거나 잠재된 감성을 일깨우고 객관화하는 것이다. 이 일련의 작업들은 그때그때 주어진 상황논리에 따라서 매번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변태되는 것이 특징이다. 그 형태를 보면 각종 크고 작은 원형들이 어우러지고 포개어진 전체 형상이 흡사 비정형의 유기(체)적 덩어리 같고, 뭉게구름 같고, 핵융합반응을 형상화한 것 같고, 우주가 처음 생성되는 빅뱅의 순간을 표현한 것 같은 스펙터클한 장관을 연출한다. 작가는 이번 작품을 영화 「시네마천국」에서 주인공 토토가 불탄 옛 극장에서 어린시절 보았던 키스장면만을 모아놓은 필름 조각을 보며 그 때를 회상하는 장면을 상상하며 제작했다고 한다. 주지하다시피 「시네마천국」은 영화를 소재로 한 영화로서 메타영화, 이중영화, 액자영화의 전형을 예시해준다. 이 영화의 진정한 주제는 말하자면 영화의 아우라(이를테면 우리는 영화가 그려 보이는 가상현실을 통해서만 진정으로 꿈꿀 수 있다는 식의)인 것이다. 작가는 이 작품에다 조명을 장착해 페이드인이나 페이드아웃 시키는 방법으로써 이러한 아우라를, 판타지를, 꿈을 추체험하게끔 유도한다.




김범수_100 kinds of love_영화필름, 아크릴, LED조명_80×330×110cm_2008


Contact(접속) ● 매번 대면할 수 있는 우연한 기회가 있었지만, 사실은 결코 마주할 수 없었던 남녀를 다루고 있는 영화 「접속」을 테마로 한 작업이다. 이 영화에서의 접속은 오프라인상의 접속을 의미하며, 온라인상의 접속을 의미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온라인상의 접속으로 나타난 새로운 연애풍속도를 예시해주는 한편, 이로써 결코 진정으로 접속(사랑)할 수는 없는 현대인의 공허함을 그린다. 여기서 작가는 그 남녀들이 얼마나 접속을 원했을까 라고 상상하고, 마침내 그 접속을 실제로 실현했다고 가정한다. 그리고 남녀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포옹하기 위해 서로를 향해 질주하는 극적 순간을 형상화한다. 그런데, 그 형상은 엉뚱하게도 만화적이다. 그 남녀 주인공은 말하자면 무슨 동물(이를테면 개 같은)을 의인화한 만화영화 속 캐릭터 같고, 내달리는 발은 맹렬하게 구르는 차바퀴 같고, 심지어는 바람을 가르며 질주하는 흔적마저 뚜렷하다. 극적 순간을 표현하기에 만화는 현실보다 더 적격이다. 만화는 현실을 더 생생하게 해주고, 더 실감나게 해주고, 더 극적이게 만들어준다. 작가는 유년시절 보았던 만화영화 속 주인공을 빌려 이렇듯 사랑의 극적 순간을 표현하고, 그 가슴 떨리는 현장에 동참하게 한다.




김범수_Hidden Emotion-Ⅰ_영화필름, 아크릴, 레진_310×450×50cm_2008


Love(100가지의 사랑) ● 하트를 형상화한 총 70여개(사실상 100개를 의도했지만, 여기서 숫자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에 달하는 패널 작품을 모아 하나의 전체 작품으로 재구성해낸 일종의 모자이크 식의 작품이다. 각각의 패널 속에 하트 모양과 일치되게끔 LED를 장착해 조명효과를 극대화하는 한편, 이를 통해 사랑에 대한 판타지를 추체험하게 했다. 다른 작품들에 비해 사랑이라는 주제가 상대적으로 더 뚜렷하게 부각된 경우로서, 영화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랑 이야기들, 이를테면 간절하고 절실한 사랑이나 잊혀지고 흐릿해진 사랑 등등 사랑의 다양한 방식을 예시하고 그 진정한 의미를 묻는다. 여기서 사랑 이야기는 사실상 삶에 대한 이야기 곧 존재론적인 이야기와 동일시된다. 사랑의 스펙트럼 속에는 말하자면 삶의 희로애락이, 애와 증이, 희와 비가 고스란히 투사되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잊혀지고 지워진 사랑을 표현할 때인데, 작가는 필름 자체의 성질을 이용해 이를 해결한다. 즉 필름은 수분에 취약한데, 작가는 장기간 대기의 습기에 노출된 필름의 상이 부분적으로 흐릿해지거나 지워지는 자연현상을 이용해 이를 표현하고 암시한 것이다(그렇다고 작품의 내구성에 문제가 있는 정도는 아니다).




김범수_Beyond Description_영화필름, 라이트박스_가변설치_2008


Beyond Description(서술을 넘어서) ● 이 작품에서 작가는 말로써 형언할 수 없는, 언어로 환원할 수 없는 어떤 절대적이고 내면적인 경험을 암시한다. 작품이 설치된 지하라는 공간적 특수성을 이용해 전체적으로 어두운 가운데 은근하게 빛을 발하는 내면적 아름다움과 사유와 명상으로 공간을 가득 채운다. 오브제와 공간이 일체화된 경우로써 장소특정성을 강하게 부각하는 편이며, 관객들 저마다의 경험과 기억 그리고 관점에 따라서 다양한 감각경험이 가능하게 했다. 이 작품은 말하자면 의미로서보다는 감각적인 경험으로써 어필되게끔 유도한 것이다. 그 분위기로 치자면 특히 종교적인 아우라를 불러일으키는데, 흡사 이름모를 작은 교회의 세로로 긴 스테인드글라스 창을 통해 빛이 투과되는 것 같은 내면적이고 명상적이고 성스러운 기운에 감싸이게 한다.




김범수_Beyond Description_영화필름, 라이트박스_가변설치_2008_부분


이 일련의 작업들에선 각종 패턴들이 두드러져 보인다. 크고 작은 격자구조가 중첩된 기하학적 패턴, 원형들이 병치된 유기적 패턴, 그리고 때로 격자와 원형이 서로 어우러진 그 구조가 상대적으로 더 복잡하고 복합적인 패턴들이다. 이런 정형화된 패턴들과 함께, 패턴은 때로 하트나 불꽃 모양, 나뭇잎 모양, 영문자 X자나 십자가 모양, 다이아몬드 모양, 아치 모양, 그리고 만곡 패턴 같은 여러 변형패턴으로 확장되고 변주된다. 이 패턴들 대개는 중심성이 강하고 좌우대칭이 엄격히 적용된 전통적인 종교적 도상화의 패턴을 닮아있다. 흡사 중심으로부터 외부로 무한정 확장되는 빛, 기, 에너지의 방사 현상을 물리적으로 형상화한 것 같다. 말하자면 그 자체 세속적인 도상으로서보다는 어떤 신성한 존재, 어떤 구체적인 형상으로도 환원되어질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의 신성을 표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가하면 패턴들은 우주의 이치나 원리를 도해한 만다라를 상기시킨다. 여기에 일말의 아이러니가 개입하고 작용한다. 작가의 작업은 비록 영화적 서사를 함축한 세속적인 소재를 취한 것이지만, 정작 그 형상은 어떤 성스러운 경지를 불러일으킨다. 패턴으로 나타난 기하학이(신성비례로부터 예시되듯 예로부터 기하학은 어떤 성스러운 경지나 존재와 관련이 깊다), 필름의 투명성이, 어둠을 부드럽고 신비롭게 감싸는 빛이 이런 아우라를 가능하게 한 것이다. ● 이와 함께 작가의 작업은 조형작업이 갖는 실체감을 넘어 일종의 그림자 조형으로 부를 만한 한 지점을, 그 가능성을 예시해준다. 우리가 영화로 지각하는 시각정보가 사실은 그림자를 실체로서 받아들이는 것이듯, 작가의 작업에서 아우라를 내뿜는 것으로 치자면 필름으로 구조화된 조형물보다는 오히려 그 조형물 뒤에 맺힌 그림자가 더 눈에 들어오고 더 마음을 끈다. 그리고 그 끌림이 단순한 실상과 허상, 실제와 허구와의 경계에 대한 인식을 넘어 어떤 부재하는 존재, 암시와 상기를 통해서만 겨우 표상되는 존재와 대면케 한다. 영화(영화필름)를 회화처럼 사용하는가 하면(평면상에 조립된 패턴이 두드러져 보이는), 조각처럼 사용하기도 하는(입체로 나타난 필름을 지지해주는 지지대의 구조가 두드러져 보이는) 작가의 작업을 읽다보면, 독해 내내 영화의 내러티브가, 미장센이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옴을 느낀다. ■ 고충환




김범수_Contact-Ⅱ_영화필름, 아크릴, 레진_110×35×90cm_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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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展 / KIMJUNGHO / 金楨昊 / painting

통인옥션갤러리_2008_1126 ▶ 2008_1208
WOW GALLERY_2008_1218 ▶ 2008_1230



김정호_부유하는 통나무_The Floating Log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80.3×100cm_2008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김정호 홈페이지로갑니다.




초대일시_2008_1126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통인옥션갤러리_TONGIN GALLERY
서울 종로구 관훈동 16번지 통인빌딩 5층
Tel. +82.2.733.4867
www.tongingallery.com



WOW GALLERY
Floor 4,Number 14,Huajiadinanjie wangjing chaoyang
Beijing, CHINA
Tel. +86.10.6475.9382
wowart.blog.163.com






나무의 이미지를, 사랑하는 남녀의 모습과 아늑한 그들의 공간으로 형상화하는 김정호 작가의 작품은 소박함과 따뜻함을 이끌어 낸다. '무위자연'(無爲自然)과 '무용지물'(無用之物) 즉 쓸모없고 무가치 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오히려 더 소중하고 중요할 수도 있다는 작가의 말과 같이, 우리는 그의 작품을 통해 우리의 소소한 일상으로 회귀해 보게 되고 그 안에서 꽃봉오리 같은 희망과 기쁨을 얻는다. 작품 속에 첨단기술을 차용하고, 그 소재와 방식에 제한이 없는 하이브리드(hybrid) 미술 시대의 화려한 이미지 범람 속에서, 김정호의 작품은 사랑이라는 미술사의 오래된 주제로 자칫 작품이 가지고 있는 매력을 각인 시키지 못한 채 지나쳐 버릴 수도 있다. ● 그러나 그의 작품은 오히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더 빛을 발한다. Digital Technology앞에 감탄과 신비감이 존재한다면, 김정호의 작품 앞에서는 안식과 치유와 같은 감성적 접근이 있기 때문이다. 사랑이라는 주제로 보기 좋고 예쁘게 그려진 그림은 많다.




김정호_방랑자여_A Wanderer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3×193.9cm_2008



김정호_지붕위에서_On the Roof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0.9×116.7cm_2008


그러나 마음을 움직이는 그림은 결코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것으로 감동을 주는 건 쉬우나, 익숙한 것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이목을 집중시키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작가의, 주제에 대한 진정성과 혜안, 그리고 날카로운 표현력이 바탕이 되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작품 속 주인공들은 늘 자연 앞에 작게 표현되고, 집과 같은 물질적인 요소들은 사람보다도 더 작게 표현된다. 동양의 군집도에서 중요한 의미를 두는 사람에게 좀 더 중심적인 위치에 크고 자세한 묘사를 할애하고 그렇지 않은 인물에게는 변방의 위치에 대강의 외형만 묘사하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자연과 합일 하는 삶, 그 안에서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과 물욕에 관한 해탈을, 작가로서 권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무성한 나무뿌리, 그 하나하나의 존재 같이, 우리의 마음속에 나 자신으로서 살아가는 의미와 가슴 떨리는 희망의 울림을 기대해 본다. ■ 옥자경




김정호_책읽는 여자_A Woman Readingr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7×90.9cm_2008



김정호_연인_Lover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7×130.3cm_2008


바람에 따라 사막의 지형이 변해 땅을 믿지 못하고 하늘의 별을 보며 이동하는 목동같이 서양은 하늘을 존중한 반면 동양은 땅에서 곡식을 얻어가며 모성의 대지를 동시에 존중했다. 그 대지엔 뿌리를 내리고 하늘을 향해 비를 기다리며 두팔을 벌리고 있는 나무의 형상을 동양에선 우주에서 가장 완벽한 형상중에 하나로 신성시하며 숭배해왔다. 그 자연의 대표적 상징인 나무가 뿌리와 가지 잘린 통나무가 돼어 그 영혼이 정처없이 뜨다니며 온 도시와 우주를 부유한다. ● 또한 의인화된 통나무들의 내제한 사랑과 끝없는 연가들은 ‘무위자연’(無爲自然)과 ‘무용지물’(無用之物) 쓸모없고 보잘것 없는것이 더 쓸모있고 중요하기도 하다는 옛 성현들의 가르침과도 맥을 같이한다. 자연우주사랑의 매개체로서의 통나무들은 한없이 자연과 예술을 사랑하는 방랑자의 음류시와도 같이 그 본연의 작품들을 토해내며 수없는 잎사귀들의 사연들을 연주한다. ■ 김정호




김정호_시인에대하여_About poets_에칭_40×60cm_2008



김정호_책읽는 여자_A Woman Readingr_에칭_40×60cm_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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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학습_Politeness Lesson

정유미展 / CHUNGYUMI / 鄭唯美 / painting

2008_1127 ▶ 2008_1203



정유미_김 치~_장지에 먹, 아크릴_144×160cm_2008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이미지 속닥속닥 Vol.080329a | 정유미展 으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8_1127_목요일_06:00pm

SeMA 신진작가 지원展

관람시간 / 10:00am~06:00pm





유아트스페이스_YOO ART SPACE
서울 강남구 청담동 101-6번지 2,3층
Tel. +82.2.544.8585
www.yooartspace.com






친철 학습 ● 어린 시절 우리는 자유로운 감정표현과 의사표현 속에서 살아간다. 기분 좋으면 웃고, 무언가 맘에 들지 않으면 울고, 아니면 그저 가만히 있는다. 그렇더라도 아무 문제가 없으며 오해를 받지 않는다. 표정이나 감정표현에 대해 의무나 책임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성장하면서 달라진다. 사회 속에 던져지며 가족 외의 여러 구성원들 속에 위치하면서 본래의 얼굴 이외의 다양한 사회 심리적 가면(Persona)을 지니고 살아가게 된다. 학생으로서, 직장인으로서, 때로는 군인으로서 요구되는 성향을 자신의 본질과는 상관없이 상황에 따라 드러내 보이게 된다. 이러한 가면을 통한 소통의 중심에는 ‘인사’가 있다. 흔히 타인에 대한 존중으로 얘기되는 인사는 사회 활동의 기본 요소이자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를 읽어내게 하는 요인으로, 인사에 대한 분석만으로도 사람 사이의 관계와 거리, 내적 심리를 분석할 수 있는 하나의 문화적 개체이기도 하다. 인사는 일반적으로 서로 아는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행위이다. 낯선 이와 인사하는 경우가 드문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타인과의 인사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직업적인 의무에 의한 것이 그 중 하나로, 경비원이나 운전기사, 판매원 등 서비스 업종에서 주로 보여 진다. 대부분 제복이라는 관습과 함께 부여되어 있는 이들의 인사는 개인적 의지나 감정은 제복 안에 숨겨진 채, 의무적인 행동과 표정으로써 내보여지는 경향을 띤다.




정유미_다 같이 김치~_장지에 먹, 아크릴, 채색_142×190cm_2008


작가 정유미는 작품의 소재이자 주제로서 이러한 ‘인사’에 주목한다. 특히 의무적인 인사가 만들어내는 어색한 장면을 주시하며 인사를 포함한 사람들의 일상 속 행동습성의 틈을 읽어내어 회화작품으로 내보이고 있다. 전통 재료와 기법에 꾸준히 천착하는 ‘그리기’에 충실한 한국화가 이면서도 한편으로 한 사람의 문화관찰자로서의 작가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고 말할 수 있겠다. 회화의 소재적 출발점으로서의 ‘인사’도 독특하지만, 그것을 구현하기 위한 매개체로서 등장하는 ‘아저씨’라는 인물적 소재도 흥미롭다. 우리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 중 미술의 소재로서 ‘아줌마’도 아닌 ‘아저씨’가, 그것도 경비 또는 운전기사라는 직업군의 아저씨가 이렇게 관찰되고 부각되어지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 작가의 작품에는 대부분 어정쩡한 미소를 띤 아저씨들의 얼굴이 등장하며, 이는 다시 한 사람의 얼굴 클로즈업 작업과 군상작업으로 나뉜다. 이들 작품의 제목은 각각 「김치~」와 「다 같이 김치~」로 부여되어 있어, 제목을 통해 우리 문화 속 유사한 일면으로 사고의 폭을 확장하게 된다. 사진을 찍을 때 사용하는 ‘김 치~’라는 말에 담긴 약간의 작위성과 의도성이 ‘의무적인 어색한 인사’와 같은 맥락에 있기 때문이다. 한편, 얼굴작업과 군상작업 외에 근래 작업에서 등장하는 또 하나의 연작은 완장이나 모자 등, 아저씨들의 표정을 만들어내게 하는 동인으로서의 오브제들을 그린 작품들이다. ● 우선 작품 속 아저씨들의 특징을 살펴보자. 우리나라 중년 남성들의 전형을 보여주는 그들의 얼굴은 처지고 주름진 눈, 납작한 코, 금니를 내보이는 입 등으로 구성되며 모두 먹으로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이들의 얼굴 표정은 모두 어정쩡한 미소를 띤 모습이다.




정유미_김 치~_장지에 먹, 아크릴_140×160cm_2008



정유미_김 치~_장지에 먹, 아크릴_142×172cm_2008


눈은 안경이나 선글라스에 가려져 있기도 하나, 하나 같이 어색한 미소의 얼굴이다. 실제로 작가의 말에 의하면 표정에 작용하는 요소는 눈보다는 입과 입 주위의 근육이 더 중요하다고 한다. 이러한 그들의 맨 얼굴은 옅은 먹을 여러 번 쌓아 올리는 과정을 통해 밀도 있으면서도 부드러운 필치로 묘사된다. 다음으로 그 위에 분채와 아크릴물감으로 그려지는 얼굴 외의 요소들을 살펴보자. 우선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이 착용하고 있는 선글라스와 돋보기안경은 샛노란 빛의 금테로서, 그 원색적인 색감은 금니에서도 함께 발견된다. 젊은이들과 달리 별 거부감 없이 앞니 중 하나를 금으로 대체한 그들의 무신경함은 안경에 그대로 붙어있는 도수 표시 스티커에서도 읽혀진다. 노란색과 파란색 등 의복의 색은 운전기사와 경비아저씨들의 대표적인 옷 색깔에 근거한 것이다. 또 하나의 중요한 등장요소는 바로 모자로서, ‘친절’ 등의 단어와 상호가 크게 새겨져 있다. 더불어 독수리와 월계수 잎 등의 형상이 샛노란 색채로 수놓아져 있는데, 장식이 많은 모자는 ‘반장경비’를 나타내는 것이라 한다.




정유미_다 같이 김치~_장지에 먹, 아크릴, 채색_114×243cm_2008


이상의 요소들은 옅은 먹에 의한 얼굴묘사와는 대비되게 선명하고 강한 색감의 분채와 아크릴물감으로 칠해져 있다. 이러한 대비에 의한 이질감의 형성은 이 그림들이 단순한 초상화가 아닌 끊임없이 작품을 읽어내게 하는 기호들의 집합으로 기능하도록 한다. 그림 안에서 하나의 단서들로 자리 잡고 있는 기호들이 평소에는 일반인들의 관심을 거의 받지 못하는 오브제들이라는 점 또한 흥미롭다. 초상화와의 차별성 혹은 다양한 해석가능성의 여지는 필요한 부분만을 취한 클로즈업과 화면의 확대된 크기에 의해 더욱 강화된다. 또한 초기의 작업이 특정한 인물에 대한 묘사로써 출발했다면, 최근의 작업에서는 작가의 기억과 순간순간의 에스키스에 의존하여 작가가 생각하는 하나의 이미지로서의 얼굴 표현이 보여 지고 있다. 작가가 생각하는 마음 속 인물군의 유형화라 할 수 있겠다. ● 작품 전반에서 읽혀지는 것 중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이들의 ‘표정’이다. 얼굴이 등장하지 않는 모자나 완장 그림에서도 대상의 상징성에 의하여 그 뒤에 가려진 그들의 표정을 자연스레 떠올릴 수 있다. 모자의 경우 인사할 때의 각도 그대로 표현되어 있기도 하다. 의무적으로 부여된 ‘친절’이라는 명제와 함께 공존하는 어색한 표정들은 외면과 내면의 간극을 그대로 담아낸다. 그리고 한편으로 그 어정쩡함은 관람자에게 일견 유쾌함, 혹은 희극성을 느끼게도 하는 이중적 특성도 지닌다.




정유미_저 이래 뵈도 모범 운전자입니다_장지에 채색_70×63cm_2008


작가는 작품 속에 담아내고 있는 어색한 표정과 관련해 단지 우리나라 특정 직업군의 특성, 혹은 감정 표현에 익숙하지 않은 중년 남성의 특징을 거론하는 선상을 넘어 한국 사람들의 전반적인 성향과 연관 짓는다. 서양에 비해 타인의 시선에 크게 신경을 쓰는 우리는 마음과 행동의 일치가 쉽지 않은 탓에 자연스러운 인사가 오가는 것이 더욱 어렵다. 작가가 관찰한 바에 의하면, 그리고 우리가 일반적으로도 유추할 수 있듯 그림 속 아저씨들의 인사에 대해 상대편의 인물들도 속마음이 어떠한가에 상관없이 그다지 자연스럽게 반응하지 못한다. 작가는 이러한 현실을 읽어 내보일 뿐 아니라, 작품을 통한 소통과 교감 속에서 우리의 인사 문화, 나아가 우리의 소통방식이 조금은 달라졌으면 하는 마음도 가지고 있음을 작가 노트를 통해 밝힌 바 있다. 이러한 점에서 단순한 문화관찰자 이상의 작가의 역할을 생각하게 한다. ● 우리는 모두 같은 세계를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남다른 눈으로 세상을 포착하고 자신만의 언어로 녹여내는 이들이 바로 예술가일 것이다. 그것이 세상에 대한 재현이건, 변주이건, 비판이건 그들의 시선을 읽어내는 것은 우리들 일상의 하나의 쉼터이자 때로는 양식이 되곤 한다.




정유미_다 같이 김치~_장지에 먹, 아크릴, 채색_143×243cm_2008


더욱이 오늘날 다변화된 미술의 상황에서 작가의 역할과 영향의 범주는 정의할 수 없으리만큼 다양하다. 개인의 내면에 천착하거나 사유하는 단계를 넘어 세계에 대한 여러 해석과 의견을 제시하며, 때로는 사회 활동가 이상의 프로젝트를 실행하기도 한다. 단, 최근의 경향을 보면 과거의 민중미술과도 같이 직접적으로 사회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거나 하기 보다는 한 사람의 관찰자나 연구자로서 관조적인 작업경향 속에 녹여내는 방식이 주를 이룬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그것이 설치, 영상, 뉴미디어 등을 이용한 다매체적 프로젝트형 작업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은 요즈음에 한국화의 범주에 드는 정유미의 회화작업은 일단의 차별성을 가질 수 있다고 보여 진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간주되는 ‘그리기’로써 한국화의 재료를 기반으로 작업하지만 그 안에서 재료에의 연구가 내용의 구축과도 연계되며, 사회적인 상황과 징후들에 주목하고 그것을 읽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회화라는 가장 기본적인 매체 안에서 다소의 희소성을 획득할 수 있는 하나의 지점이기도 하다. 특히나 최근의 신진작가들에게서 보여 지는 구상회화들이 시장의 논리와도 맞닿아 있는 극사실과 네오팝, 혹은 초현실적 경향이 지배적임을 상기할 때, 자신만의 시각을 가지고 그리기의 방식으로써 작품세계를 구축해가고 있는 이 작가의 연구가 의미 있는 축적을 이루어가길 더욱 기대하게 된다. ■ 최정희

서울시립미술관 SeMA 신진작가전시지원프로그램
본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시행중인 2008 SeMA 신진작가전시지원프로그램 선정작가 전시입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전시장 임대료(500만원 이내), 도록, 엽서 등 인쇄물 제작, 온-오프라인 광고를 통한 홍보, 전시 컨설팅 및 도록 서문, 워크숍 개최 등 신진작가의 전시전반을 지원하는 SeMA 신진작가전시지원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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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 Project

갤러리 고도 기획展

2008_1126 ▶ 2008_1216






1부
2008_1126 ▶ 2008_1202
초대일시_2008_1126_수요일_05:00pm
참여작가
고영미_김규동_김다해_박기훈_박성현_유갑규_이영진_전채강_주대희_한조영

2부
2008_1203 ▶ 2008_1209
초대일시_2008_1203_수요일_05:00pm
참여작가
강호성_민준기_오은정_윤지영_이정민_장아로미_장영진_전웅_정철규_한윤희

3부
2008_1210 ▶ 2008_1216
초대일시_2008_1210_수요일_05:00pm
참여작가
강성오_김용철_김지영_김진경_김효숙_박상호_백성준_정인완_정일영_찰스장_허정수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갤러리 고도_GALLERY GODO
서울 종로구 수송동 12번지
Tel. +82.2.720.2223
www.gallerygodo.com






우리가 살아 가고 있는 21세기는 세계화의 세기이자 문화의 세기로 특징지어진다. 세계 곳곳에서 확연히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게 이 두 가지 전쟁(경쟁)이 격렬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화상으로서 뼈저리게 느낀다. 우리 문화계의 지형에서 특이하게 성공하고 있는 분야는 아시아에서 선전하고 있는 한류열풍이다. 멜로 드라마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 한류열풍은 그저 일회성 즐거움을 제공하고 그 수명을 다하는 소비재가 아니라, 인간의 창작활동을 통해 창출된 중요한 재화로서 자리매김하며 국부를 축적시키는 산업의 축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지금까지 세계미술계의 언저리에서 맴돌았던 한국미술도 이제 절치부심하여 세계무대에서 마땅한 자리를 확보하고 영향력을 확장해야 하는 시점이다.




고영미_김규동_김다해_박성현



박기훈_유갑규



전채강_이영진_한조영



주대희_강호성_민준기



윤지영_이정민


예년에 경험 할 수 없었던 후끈 달아오르던 미술시장의 활황이 이제 그 거품을 빼고 있다. 곪은 곳은 터지게 마련이고 새 살이 돋아나야 한다. 주어진 환경과 통념들에 적당히 편승 하려 하는 풍토들은 이제 발붙일 자리를 잃고 있다. 동시에 젊은 작가들에게 거는 기대와 희망은 그 어느 때 보다 강함을 체감할 수 있다. 젊은 작가들에게는 더 없이 좋은 기회의 시기가 돌아오고 있다. ● 가파르게 진행되어온 현대미술을 따라잡기에 연연했던 시기가 우리에게 있었고, 1980년 후반부터 대중화 되기 시작한 유학 자유화의 바람으로 세계 곳곳에서 이방의 삶을 몸소 체험하며 공부한 세대들이 있었고, 이들의 자양분과 지도 속에서 성장하고 정보화 사회의 혜택을 입은 젊은 작가들은 문화다원주의라는 피할 수 없는 과제를 제기하고 있다. 한국 미술의 지역성을 극복하고 세계 문화의 보편성과의 연결하는 문제 그리고 궁극적으로 한국 미술의 새로운 정체성을 만드는 과제가 이들에게 가장 핵심 사안이 될 것이다. 그것은 작가 자신과 사회(세계)에 대한 깊은 이해와 관심 속에서 성취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오은정_장영진_장아로미



정철규_전웅_한윤희



강성오_김용철



김지영_김진경_김효숙



박성호_백성준_정인완



정일영_찰스장_허정수


이번 전시는 갤러리고도에서 2008년 새롭게 발견 된 한국미술계와 국제무대에서 자리매김을 할 가능성과 역량이 있는 젊은 작가 31인으로 구성된 기획전이다. 프로젝트라고 이름한 것은 이것이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함께 커나가는 중장기적인 시스템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이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 중에서 일부는 갤러리고도와 함께 2009년 국제 아트페어와 해외 옥션 및 비중 있는 국내 전시 등에 참여할 것이다. 이를 통하여 작가들은 국내외에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고 평가 받을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제공받게 될 것이다. ● 비록 경험들이 다소 부족하고 이들이 가야 할 길이 멀다 해도 이들이 가진 열정이 관람자에게 다가가기를 바란다. 많은 관심과 애정을 바란다. ■ 김순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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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민화展 / SUNGMINHWA / 成玟和 / painting

2008_1125 ▶ 2008_1220 / 일,월요일 휴관



성민화展_2008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이미지 속닥속닥 Vol.060707a | 성민화 개인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8_1125_화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월요일 휴관




가인갤러리_GAAIN GALLERY
서울 종로구 평창동 512-2번지
Tel. +82.2.394.3631
www.gaainart.com






일상의 공간에 대한 밀착된 시선 ● 스물 여섯의 나이에 처음 독일 땅을 밟았던 젊은 유학도는 어느덧 마흔이 되어 아직 그곳에 살고 있다. 학창 시절 브라운슈바이크에서 만난 남편과 베를린으로 옮겨 와 산 지도 벌써 십 년이다. 이제 그녀에게 독일은 이국 땅이라고 하기에는 훨씬 친숙한 나라이고, 베를린은 최근 급부상하는 문화의 중심지기 이전에 그녀에게 삶의 공간이다. 소소한 일상의 공간에 대한 내밀한 관찰을 작업의 출발점으로 삼는 작가 성민화의 이야기다.




성민화_Street lights, Stein Platz_나무에 레이저_380×166cm_2008


조소를 전공한 성민화는 그간 전형화된 조각 작품이 아닌 공간을 해석하고 관객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설치 방식을 고수해왔다. 초기에는 플럭서스나 해프닝과 같은 독일 성향의 ‘오브제 설치’가 대부분이었다면 몇 년 전부터는 일상에 대한 자신의 밀착된 시선을 담은 ‘드로잉 설치’를 주로 하고 있다. 이제는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타지인 그곳에서 그녀는 자신과 좀 더 긴밀해지고 스스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밖에 없을 것이고 이에 드로잉이 적합한 방식이었으리라 짐작해 본다. 그러나 성민화의 '드로잉 설치'는 일반적인 드로잉과는 달리 몇 단계의 과정을 거쳐 다른 형태로 재탄생 한다. 작가는 자신의 일상에서 마주친 장면을 종이에 얇은 선묘(線描)로 드로잉하고 그것을 컴퓨터 상에서 확대하여 분할한 뒤 다른 재료의 분할된 평면에 손 혹은 기계로 재현해낸다. 그리고 그것들을 재구성해 배열하고 특정 공간에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설치하는 것이다. 이러한 성민화의 작업을 '드로잉 설치'라 지칭하는 것은 이렇듯 드로잉과 설치 두 요소가 작업 안에 핵심적인 양 축이 되기 때문이다.




성민화_Every second day-March street_종이에 레이저프린트_33×850cm_2008


이번 『Walk』전은 작가의 드로잉 설치가 처음 시도된 『Haus』전(2006)의 연장선상에서 그 내용과 형식 모두 한층 폭이 넓어졌다고 하겠다. 먼저 내용적으로는 지난 전시가 작가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집과 집 안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을 다루었다면, 이번 전시는 집 문밖을 나서 그녀가 자주 다니는 거리로 공간이 확장되었다. 흥미롭게도 작품 제목을 통해 우리는 그녀의 생활반경을 엿볼 수 있다. ‘즐거운 나의 집(「Home sweet home」)’을 ‘나서(「Way Out」)’ 걷다 보면 ‘슐뤼터 가의 집들(「Neighbors, Schlueter street」)’을 만나게 되고, 거기서 한참을 더 걷다 보면 ‘마아치 가(「Every second day, March street」)’가 나오며, 슐뤼터와 마아치 가(街) 사이에 삼각형을 이루는 지점에는 그녀가 자주 가는 ‘슈타인 광장의 오래된 가로등(「Street lights, Stein Platz」)’이 보인다. 이렇듯 그녀의 시선은 ‘집(「Haus」)’에서 나와 ‘걸으며(「Walk」)’ 만나는 곳들로 자연스레 이동하였다. 그러나 이 모두는 작가의 삶의 공간이라는 하나의 틀로 묶이며, 작품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장면은 작가의 친숙한 시선을 따라 그려진 것들로 그것을 바라보는 관객에게 역시 낯선 이국의 풍경이 아닌 친숙한 삶의 공간으로 다가온다.




성민화_Way Out 3 (Purple)_캔버스에 잉크_152×117cm_2008



성민화_Way Out 2 (Grey)_캔버스에 잉크_122×96cm_2008


한편 형식적인 면에서도 새로운 시도가 두드러진다. 지난 『Haus』전에는 일정한 규격의 압축 폼보드에 디지털로 변환한 드로잉 이미지를 ‘평판 출력’으로 올리는 작품이 주를 이루었다면, 이번 전시에는 이미지를 두꺼운 반투명 종이나 천 위에 레이저 프린트로 찍어내거나 나무 판 위에 ‘레이저 인그레이빙’ 기법으로 파내는 등 재료와 기법 면에서 훨씬 다채로워졌다. 또한 재료와 기법이 달라짐에 따라 분할된 화면의 크기나 배열 방식 또한 달리 하여 작품마다 적극적인 변주를 시도했다. 예컨대 각기 다른 집의 현관문과 계단을 그린 드로잉을 컴퓨터 상에서 확대, 분할한 뒤 그것들을 다시 크기가 다른 캔버스 위에 손으로 그려 완성한 「Way out」 연작은 크기와 비율뿐 아니라 높낮이가 다른 여러 개의 화면에 상이한 크기와 시점의 분할 이미지를 그려 넣고 퍼즐을 맞추듯 배열하였다. 이에 관람자 역시 이미지를 하나로 연결해 보고자 적극적인 시선으로 참여하게 되는 이 작품은 공간에 대한 작가의 뛰어난 해석이 돋보인다.




성민화_Himmel. Berlin_나무에 레이저_25×49cm_2008



성민화_Casa de l’Amiga Onda_샤틴에 UV 프린트_70×155cm_2008


이렇듯 성민화의 ‘드로잉 설치’는 작가가 그린 원래의 이미지를 확대하고 분할하여 재배열함으로써 작가의 단일 시선이 아닌 관람자의 개입으로써 비로소 작품이 완성된다. 그것은 디지털이 개입되어도 차갑거나 매끈하지 않다. 아무리 새로운 소재와 첨단 기법을 사용하고 단위 화면들을 반복적으로 배열하여도 그녀의 작업은 여전히 따뜻하고 거칠다. 그것은 직접 그린 손 드로잉을 원본 이미지로 하기 때문이며 그보다 오물조물, 뚝딱뚝딱 자르고 붙이고 만지며 무언가를 만들어내기를 좋아하는 천성을 가진 그녀가 자신의 삶 안에 작업을 녹여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그녀는 집 밖을 나와 가벼운 걸음을 내디뎌 걸어가고 있다. 그녀의 작업이 앞으로도 그렇게 삶에 밀착하여 또 다른 모습으로 보여지기를 기대한다. ■ 신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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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nitascape

주도양展 / ZUDOYANG / 朱道陽 / photography

2008_1127 ▶ 2008_1231 / 일요일 휴관



주도양_Flower_디지털프린트_125×123cm_2008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주도양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8_1127_목요일_05:00pm

7th 세오영아티스트 주도양
Vanitascape展
2008 경기문화재단 우수작품창작활동 선정사업

관람시간 / 10:00am~07:00pm / 목요일_10:00am~09:00pm / 일요일 휴관





세오갤러리_SEO GALLERY
서울 서초구 서초1동 1666-12번지 꿈을 꾸는 세오빌딩 2층
Tel. +82.2.583.5612
www.seogallery.com






위에서 내려다본 세상, 밑에서 올려다본 세상: Vanitascape ● 주도양의 사진은 유리구슬에 비친 세상을 들여다보는 관점과 땅 속 깊은 둥근 관에서 세상을 올려다보는 관점으로 이루어진 작업이다. 회화가 시작된 시기부터 화가들은 2차원 평면에 이미지로써 사실적 재현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것은 원근법의 발견과 함께 새로운 시공간의 화면을 실현시켜주었다. 19세기 말 빛을 따라 현란한 순간을 잡아내는 인상파작가들은 다양한 시각적 표현을 위해 사진의 기초적 렌즈를 통한 시각을 이용하였다. ● 사진의 태생은 현실을 사실 그대로 포착한 재현의 수단에서 시작하였다. 20세기 초까지 사진은 기록성과 보존의 가치를 계속 추구하였고 현실을 재현하는 그림에 영향을 미치면서 화가의 보조수단으로 존재하였으나 예술로서의 독립된 장르를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과학과 광학적 기술에 매료된 사진작가들은 사진을 어떻게 하면 예술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인가 보다는 기계와 화학적 재료를 이용하여 정밀하면서 고도의 기술로 다루는 일에 관심을 갖는다. 오늘날 사진은 기계의 발전에 의한 시대적 호응과 예술로서의 독창적 표현기법을 시도하는 작가들에 의해 엄연히 시대를 주도하는 새로운 가치를 지닌 예술적인 장르로 자리잡고 있다. ● 주도양은 미술과 사진의 역사를 연구하면서 사진으로 이 시대의 예술을 표현하고자 실험하는 젊은 작가다. 그의 사진은 인간의 신체가 한 방향으로 향하면서 보게 되는 시야가 아니라 360도 회전하면서 볼 수 있는 풍경을 보여준다. 이것은 카메라의 둥근 렌즈에 비친 세상이기도 하고 타자의 동공에 비쳐 반영된 세상이기도 하다. ‘우리가 세상을 향해 보다’라는 일방향성 주체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몸을 움직여 세상 전체를 확인하면서 세상이 나를 바라보는 전방향성 대상으로서의 관점이다.




주도양_Dohwa2-1_디지털프린트_125×123cm_2008


주도양의 사진이 검은 배경 안에서 하나의 세상을 온전히 보여주는 것은 마치 창조주나 지구 궤도를 벗어난 우주인이 보는 검은 우주에서의 지구의 모습과 같다. 그러나 지구는 모든 사물이 한데 모여 있는 총체적인 개념의 전체 풍경이 아닌 부분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 부분은 전체로서의 풍경을 지양하는 시뮬라르크다. 이 풍경은 우리 눈으로 한 번에 볼 수 없는 것으로 디지털 기계의 힘을 빌려 조합시켜 나온 총체적 소산물이다. 주도양은 인간인 ‘나’라는 관찰자가 중심이 되어 이끌어온 역사와 관점에서 관찰 ‘대상’과 대상을 뛰어넘은 '창조주'의 관점을 통해 실제의 '또 다른 시각’ 또한 늘 함께 존재하고 있다는 새로운 사실성을 표현하고자 한다. 주도양은 기존의 관찰자와 관찰 대상의 관점 해체로 새로운 시대 안에서 인간 내면의 깊숙한 현상에 대한 철학적 탐구와 함께 형식이 철저한 연구를 통해 덧입혀지기를 실험하고 있다. ● 사진은 한순간을 포착해 찍거나 오랫동안 그 장면을 기다렸다가 찍을 수도 있고 또 카메라의 노출을 조정하고 시간을 두면서 원하는 장면을 얻을 수도 있다. 그러나 주도양의 사진은 한 번에 이런 사진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같은 장소에서 여러 장면을 찍어 원형 시점으로 표현한 것이다. 시간에 따라 풍경은 조금씩 변하므로 같은 장소에서 찍더라도 시공간이 완전히 같은 풍경을 만들어내는 것은 쉽지 않다. 사진 찍기, 오려내기, 붙이기, 같은 분위기로 만들기 등 디지털 조작에서도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하는 작업이다. 그리고 관찰, 광학적인 기술, 섬세함뿐만 아니라 마지막 작가만의 독창적 표현까지 포함되어야 비로소 이런 예술작품으로서의 사진이 탄생하는 것이다.




주도양_Flower6_디지털프린트_125×123cm_2008



주도양_Flower8_디지털프린트_125×123cm_2008


둥근 볼에 갇혀 있거나, 반영된 풍경 ● 주도양의 사진 도화(Dohwa)와 도원(Dowon) 그리고 꽃(Flower) 시리즈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주변 풍경의 부분들을 조합한 화면이다. 도원과 도화 시리즈에서 보여준 복사꽃이 만발한 지구는 아름다우면서 경이롭기까지 하다. 봄의 자연공간이 아니더라도 도시의 정원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복사꽃이지만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자연의 일부가 아닌 자연 전체를 느낄 수 있다. 비록 아파트 앞마당에 몇 그루 피어 있는 작은 부분이지만 그것에 몰입하면 다른 세계를 맛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일상에서 만나게 되는 유토피아다. 도화나 도원이라는 제목에서 보듯이 작가는 무릉도원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다. 현대인의 대다수가 도시에서 살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사계절을 거의 느끼지 못하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관심을 갖고 보는 세계만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 데카르트의「제1철학에 관한 성찰」에서 “꿈속에서 당신은 자신이 의자에 앉아 책을 보고 있다고 느낄지 모른다. 하지만 사실 당신은 깊은 잠에 빠져 있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장자가 꿈속에서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다녀 나비인지 장자인지 모르는 호접몽과도 같다. 우리 주변을 이루고 있는 도시, 빌딩, 땅, 공기, 꽃 등 모든 외부적인 요소는 우리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고안된 꿈일 수가 있다. 또 우리는 그 세계 중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천국과 지옥을 경험하게 된다.




주도양_Sun Flower1_디지털프린트_125×123cm_2008



주도양_Park4_디지털프린트_125×123cm_2008


주도양의 사진은 환상적 혹은 초현실적인 이미지로 조작된 것 같지만 사실은 실재다. 그는 조작된 이미지라는 것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 둥근 유리구슬에 갇혀 있거나 둥근 유리 볼에 반영된 영상과 화면 같은 테크닉을 사용하였다. 이것은 데이비드 호크니가 저술한『명화의 비밀』에서 15세기 초 앵그르, 뒤러, 벨라스케스 등 화가들이 회화의 사실성을 더욱 돋보이도록 거울과 광학적인 기계를 이용하고, 새로운 관점을 보여주기 위해 원근법을 해체한 포토 콜라주를 사용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실재의 사실성이 전부였던 시대의 뒤러의 수채화, 홀바인의『대사들』에 나오는 왜곡되고 일그러진 해골 형상, 반 에이크의『아르놀피니의 결혼』에 등장하는 볼록거울처럼 보이지 않은 이면을 탐구해 세상을 그려내고자 하는 화가들의 위트도 발견할 수 있다. ● 호크니는 거울에 반사된 이미지나 거울로부터 투영된 이미지 사이에는 중대한 차이가 있다고 하였다. 전자는 신체를 필요로 하고 보는 사람의 위치에 따라 달라지지만, 투영은 거울 속의 수학적 지점, 아무도 보지 못하는 세계라는 것이다. 주도양은 이 두 가지 관점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곤충과 같은 다른 피사체가 보는 시점까지도 보여주고 있다.




주도양_Wishes6_디지털프린트_125×123cm_2008


소크라테스의『변명』을 보면 도시를 말에 비유하면서 신이 그에게 말파리와 같은 존재가 되어 하루 종일 멈추지 않고 사람들 사이를 옮겨 다니며 그들을 찔러 행동하게 하고 도시전체를 진실에 눈뜨게 하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지금까지의 역사는 ‘나’라는 존재가 주체가 되어 모든 것을 지배하고 조정해야 된다는 오만과 교만이라는 욕망의 역사였다. 만약 이대로 진행되어 가다가는 지구와 인류의 미래는 매우 암울하며 파멸까지 갈 수도 있을 것이다. ● 사진은 늘 '순간-지나간 기억'을 찍는 시간을 다루고 있다. 앙리 베르그송이“우리들 기억은 사진으로만 재현된다”고 한 것처럼 사진은 '기억-이미지'라고 이해되고 있다. 하지만 주도양의 사진은 순간을 연속으로 이어 새로운 공간을 만들고 다양한 시점으로 표현하여 '과거-현재-미래'를 관통하는 초월적 시공간을 보여준다. 마치 어린왕자가 방문한 별이나 천사가 내려다본 지구, 개미가 올려다본 풍경이며, 어릴 적 만화경을 통해 본 기억 속의 풍경을 보는 듯하다. ● 눈을 대변한 사진의 일방적인 시각에 갇혀 있는 우리에게 주도양의 확장된 시공간의 실재를 재현한 사진은 환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디지털로 조작된 세계는 우리를 더욱 함정에 빠뜨린다. 주도양의 바니타스-스케이프 사진은 역사와 인식에 갇혀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에게 실재와 가상, 신체와 정신, 기계와 신체, 대상과 주체 간의 관계를 열려 있는 눈으로 바라보며 세상의 실체를 알게 한다. ■ 김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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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dow in Colors

감성원展 / KAMSUNGWON / 甘盛遠 / mixed media

2008_1128 ▶ 2008_1207



감성원_Shadow in Colors_캔버스위에 아크릴, 목탄, 열성형 된 판유리_52.5×227×27.5 _2008_부분




초대일시_2008_1128_금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30am~06:30pm




노암갤러리_NOAM 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 133번지
Tel. +82.2.720.2235
www.noamgallery.com






빛의 그림자, 또는 그림자의 빛 ● 일반적으로 회화는 색으로 가득 차 있는 세계로서 존재한다. 색에 의해서 선이 생기고 형태가 나타나고 빛이 표현된다. 이들은 그림자에 의해서 화면 안에 세계의 깊이를 구성한다. 하지만 인상주의로 접어들면서 그림자는 제거되었다. 왜냐하면 화면에서 환영을 발생시키는 것이 그림자의 유일한 기능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림자는 긍정성보다 부정성을 지시하고, 또한 허상으로 여겼기 때문에 그를 제거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다. 그림자는 색으로 대체되고 화면은 빛의 성질만을 띄게 된다. 이로써 회화는 색의 가치와 평면성이라는 매체적 속성은 확인했지만, 그림자가 사라지면서 화면의 형상들은 실체의 가치를 잃었다. 하지만, 그림자가 인위적인 측면에서 실체와 분리될 수 있다 하더라도 자연적인 측면에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그림자는 제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빛이 김각적인 세계와 함께 나타나는 한 필연적으로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림자가 제거되던 시대나 전후에도 심연의 어둠이나, 사물의 무게를 추구하는 회화에서는 그림자의 존재는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감성원_Shadow in Colors_캔버스위에 아크릴, 목탄, 열성형 된 판유리_52.5×227×27.5 _2008


빛과 그림자는 밝거나 어둡고, 따뜻하거나 차갑고, 날카롭거나 부드러운 느낌처럼, 여러 면에서 상반되지만, 비물질적이면서 김각적이고, 실체가 아니면서 실체를 드러나게 하고, 실체와 분리불가능성을 갖고 있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그리고 서로를 규정하기 때문에 반드시 동시에 존재한다. 그러나 그림자는 항상 부정적인 측면만을 담당했다. 빛과는 반대로, 몸에서 빠져나가는 듯이 있고 마치 지하로 들어가는 통로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빛의 속성이 신성함을 지닌 이데아를 상징한다면, 후자는 악함을 지닌 죽음을 상징한다. 하지만 신이 그랬듯이 빛이 지닌 또 다른 속성은 파괴적이다. 눈을 멀게 하고, 날개를 불태운다. 즉 처벌하는 힘을 지녔다. 반면, 그림자의 또 다른 속성은 포용적이다. 땅에 가까운 그림자는 빛의 이면에서 실체를 지탱하면서 눈먼 자의 길을 안내하고, 재(灰)를 흡수한다. 이렇듯 이성의 편에서 비롯된 그림자의 부정성은 사실 김성의 편에서 보게 되면 그 반대의 속성이 강하다. 실제로 빛의 폭력성은 포용적인 그림자에 의해서만 김춰질 수 있다. 이성과 김성, 선과 악, 과거와 미래가 그렇듯이 빛과 그림자의 관계에도 역설이 존재한다. 샤르트르 대성당 안의 신성함은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빛에 의해서이다. 우리가 여기서 성스러움을 느낀다면, 그 이유는 빛으로 여겼던 것이 사실상 그림자였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빛의 그림자이자 색의 그림자이며, 그림자가 우리를 신성함으로 안내하는 것이다. 예술가는 이러한 역설을 담당한다. 그림자를 지켜내는 작가는 물론이고, 빛을 표현하려는 작가에게도 마찬가지다.




감성원_Carrefour-rouge_열성형 된 판유리_104×104×21.5_2008


“나의 작업은 빛을 캔버스위에 조사(照射, irradiate)하거나, 라이트 박스로 빛을 준비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유리를 자르고, 부수고 채색하고 굽거나, 목탄그림으로 빛을 가리면서 빛을 조형화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작업을 진행하다보면, 어느덧 빛이라는 출발점보다는 생각지 않았던 그림자 만들기에 빠져드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빛의 조형화를 위한 단계일 뿐이었지만, 능동적으로 ‘작용’하는 매체로써 빛과 유리를 택한 내게 그림자는 빛과 공존하는 커다란 모순이다.” ● 작가가 고백하듯이 빛을 표현하고자 했던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그림자를 표현하게 된다. 애초에 그가 빛을 의도했던 것은 개별적이고 소외되며 익명적인 것들에 빛의 속성을 부여하기 위해서였다. 빛은 능동적이고 긍정적이며 리듬적이어서 음악이고 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빛은 그림자와 공존하므로 비능동적이고 파괴적이어서 비긍정적이고 날카로워서 비리듬적이다. 따라서 빛을 표현하려고 하더라도 실제로 표현되는 것은 그림자가 된다. 작가가 의도했던 구원의 힘은 그림자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작업을 진행하면서 그가 마주치게 된 우연하고도 필연적인 방식은 김각적으로 소생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통해 빛을 향해 다시 오르려는 그 김각의 노력을 느끼며, 되찾은 실재에서 오는 기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는 작가의 의도와는 무관하다. 빛에서 그림자로의 전이는 작가가 자신의 표현을 수동성에 맡겼기 때문이다.




감성원_La distance_열성형 된 판유리_52.3×229×28.5_2008_부분



감성원_La distance_열성형 된 판유리_52.3×229×28.5_2008


이제 그림자로서 드러난 세계는 거꾸로 영향을 미친다. 그림자는 음악에서의 피아노나 성대(聲帶), 시에서의 잉크에 묻어난 단어의 역할과 동일하게 화면에 수직으로 설치된 채색된 유리판에게 영향을 주고, 동시에 유리를 통과하기 전의 빛에게까지 영향을 준다. 그렇게 빛을 드러나게 하기 때문에 빛은 그림자를 통해서 완성된다. 이렇듯 포용적인 그림자의 속성에 의해서 유리판의 유연한 곡선은 고요한 산수가 되고, 서있는 인물은 포근한 안식을 얻으며, 거친 듯 표현된 달의 표면은 김성적인 빛을 발산한다. 이러한 현상은 라이트박스의 형상에서도 마찬가지로 일어난다. 화면 안쪽에 목탄으로 그려진 이미지들은 그림자가 되어 화면 밖으로 드러난다. 그림자는 유리판의 역할과 동일한 목탄에 영향을 주면서 양김을 지닌 나무가 되고, 연인이 되고, 고양이가 되고, 엠페도클레스의 신발이 된다. 그리고 전기가 변환된 최초의 빛은 물질적 가치를 지닌 흰색의 가치를 갖게 된다. 작품의 가장 중요한 물질적인 요소인 유리판이나 목탄은 그림자의 강요에 의해서 그림자-빛의 모습을 드러내는 데 필요한 의식을 치르고 있는 듯하다.




감성원_Toung-I_라이트박스, 목탄, 천_97×130×20_2008



감성원_La Distance_라이트박스, 천, 신발_50×40×23_2004


회화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표현들과 물질들, 그리고 기억들은 자신의 진정한 내용을 간직한 채로 드러난다. 따라서 겉으로 드러나는 외적인 형태들이 아니라, 그 속에 살아있는 힘들과 긴장들, 즉 에너지들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감성원의 작품은 빛의 속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것 같지만, 빛은 오히려 외적인 형태로서 작용하는 것 같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서 빛의 화려함과 밝음을 보는 것보다, 빛을 신성하게 해주는 아늑함을 느끼길 바란다. 아늑함에서 음악적으로 발산되는 진동과 버려졌던 그림자의 진리를 떠올리면서. ■ 박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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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te-Specific

채지영展 / CHAEJIYOUNG / 蔡知怜 / installation

2008_1203 ▶ 2008_1216



채지영_Words and Beyond_복합재료, 조명, 사운드_가변설치_2008




초대일시_2008_1203_수요일_05:00pm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신진예술가지원展

관람시간 / 10:30am~06:30pm





큐브스페이스_CUBESPACE
서울 종로구 인사동 37번지 수도약국 2층
Tel. +82.2.720.7910






최근 수년간 주로 해외에서 Site-Specific Installation 작업을 해온 작가 채지영의 다큐멘트전이 12월 3일부터 16일까지 인사동 큐브 스페이스에서 열린다. 작가의 최근의 작업은, 올해 10월 네덜란드 헤이그 Pulchri갤러리에서 있었던 타악기 연주그룹 Slagwerkgroep Den Haag과 작곡가, 댄서, 오페라 가수등과의 collaboration이었다. 갤러리 안에 설치된 작가의 설치작업들이 음악 공연의 무대로써의 역할을 넘어서 공연의 내용과 음악, 조명, 퍼포머들의 연기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여 발전 되어진 여러 장르가 복합이 된 일종의 종합예술이었다. ● 주로 그의 작업은 일정 기간 작가가 머무는 지역 사회와 주민들의 삶과 연관된 설치 작업으로써 그 지역의 특정한 장소를 선택해 설치 작업을 하고 지역 주민들을 초청하는 전시의 형태였다. 작가는 작업에 앞서 그 지역사회를 이해하기 위해 충분한 시간을 갖고 그들의 역사와 산업, 지형 등에 대해 공부하는데 할애한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고, 역사적인 장소들과 전통적인 산업 지역을 방문하고 지역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문화 행사에 참여하는 그 모든 과정들은 작업의 중요한 부분들이다. 그리고 나서 그 지역에서 한 특정 장소를 선택하여 그들의 문화에 대한 작가의 이해나 경험을 설치작업으로 이야기 한다. 그 장소는 버려진 집이 되기도 하고 물류 창고나 호수 위, 또는 닭장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현장으로 초청된 지역주민들의 체험과 친밀한 소통을 통해 작품은 완성이 되는 것이다. ● 작가의 작업은 사람들이 그들의 삶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공존하는지를 관조와 경험을 통해 반응하고자 하는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그들의 삶 속으로 융화되고자 하는 노력이기도 하고 서로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을 모색하고자 하는 것이다. 문텈 높은 미술관이 아닌 관객들이 직접 만지고 느끼고 작품에 참여 할 수 있는 공간, 그들에게 편안하게 접근하는 작품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 궁극적인 작가의 의도이다. ■ 큐브스페이스




채지영_Substance and Light_조명, 아크릴, 센서, 스피커, 컴퓨터 프로그래밍_2006~2007


범문화적 친밀함의 예술 ● 오늘날 예술의 한 이슈는 어떻게 몇몇 예술가가 독립적으로 법인기관의 기능을 하면서 실험적이고 창조적인 방법으로 그들의 작업을 계속 해나가느냐 하는 것이다. 종종 이 예술가들은 그림이나 조각과 같은 재현의 고정된 형태보다는 상호작용적인 참여를 요구하는 일시적인 형태에 더 관심을 둔다. 채지영의 시간에 근거한 설치는 이런 현상의 우선적인 예시를 제공한다. 관객들을 놀라게 하는 센세이셔널한 이미지를 만드는 대신 채지영은 소비자에 의해 이끌어지는 현대사회의 하부 아래에 존재하는 자연의 구조 속 더 깊은 내부를 들여다본다. ● 채지영이 세계화와 개발을 언급하는 기술적 이론을 채택하는 대신에 채지영은 삶에서 의미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찾고 새로운 시적인 것들에 향하여 그의 열정을 승화시킨다. 채지영이 범문화적 친밀함으로 전개 해온 것은 일종의 시적인 것에 가깝다. 자연 안에서 감각적인 연관성을 다루는 새로운 예술형태를 이끌어 오면서, 그리고 일상의 의식과 습관의 학습에 대한 정신적인 적용을 전개해오면서 채지영은 정신과 육체 모두에 자양분이 되는 시적인 것을 제공한다. 상호 주체적인 참여를 통해 정신과 몸이 하나가 될 때, 그것은 바로 가장 귀한 감각 안에서의 아름다움을 관객들이 경험 할 수 있도록 하는 순간인 것이다. 아름다움이 표면에 있지 않고 좀 더 깊은 것- 빤한 유흥지의 그 광경 너머에 있는 또 다른 세계로 우리를 이끄는 자연의 광경, 예술가가 그 중요함을 찾기 위해 헤메이는 그 세계- 에 있다. 아름다움은 공격적이고 속임과 공포, 탐욕에 빠진 혼돈의 세상 속에서 구속되지 않는 창조적인 자유를 발견하도록 이 방랑 예술가를 자극한다. 많은 위대한 시인들과 사상가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것을 이야기 해왔다. 오래된 산스크리트 시 Bhagavad-Gita에서, Sri Krishna가 그의 제자 Arjuna에게 말한다: 지식을 소유하는 것, 빨리 마음을 다잡는 것, 자유를 찾는 그, 공포를 물리치라, 분노를 밀어내고 열정을 버리라.: 진실로 그는 영원히 자유롭게 되었다.




채지영_Gazebo Installation_사운드, 테이블, 철 프레임, 삼베에 프린트, 글자_2005



채지영_Utica Tree_나무에 호스, 분사기, 물, 영상_2003


마음과 몸이 따로 떨어져 있을 때 우리는 혼돈 속에 빠진다. 우리 자신과 다른 이와의 관계 속에서 일상의 대상들과의 연합 안에 내재한 아름다움을 지각하는 대신, 더 표면적인 매력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몸과 마음이 감각적 인식의 형태로 결합되기 때문에 진정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우리는 자연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몸과 마음이 나누어 질 때 우리 자신은 더 이상 자연의 일부가 아닌 것이다. 우리들은 광고와 유흥의 세계, 눈먼 관대의 세계, 무엇이 진짜인지 잡을 수 없는 세계에서 불안하게 산다. 매력은 감정이나 생각 없이 눈이 먼 즉각적인 유혹을 통해 자기 분리를 끌어낸다. 대조적으로, 아름다움은 자연에 관련된 그들의 현실을 보는 사람들 사이에 느껴진다. 아름다움은 비현실 세계에서 우리를 유혹하는 것 너머를, 그리고 명확함 그 이상을 너머 보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채지영은 방랑 예술가이며 인식의 명확함을 통해 작업에 집중함으로써 치유하는 방법, 즉 겸손한 진실을 찾는 예술 치료사이다. -중략-




채지영_Barn Installation_사운드, 진흙, 목초, 물, 조명, 호스_2002


채지영의 설치는 결코 영구적 이도록 계획되지 않는다. 그것은 일시적이거나 덧없다. 그것은 짧은 기간 동안 설치된다. 이처럼, 시간은 우리가 채지영의 작업을 볼 때 중요한 요소이다. -중략- ● 다시, 이것은 채지영이 매력적인 형태의 스펙터클 함에는 관심이 없고 명상을 하게 하는 시간에 기초된 예술에 더 관심이 있다는 증거이다.




채지영_Warehouse Installation_조명, 연, 목재, 흙, 그네_2002



채지영_Floating Lights on the lake_레진, 조명, 파워서플라이, 전선, 모래_2001


빛, 물, 시간, 과정, 자연 - 이들은 채지영의 작업의 구성 요소이다. 그것들은 단지 구성 요소만이 아니라 의미를 내포한 개념인 것이다. 일시적이고 짧은 기간 설치되어 관객의 방문을 받는 설치작업을 통해, 채지영의 작업 안에는 인내해나가는 무언가 전체론적인 것이 있다. 있다. 채지영은 관객이 작업을 방문할 뿐만 아니라 그 참여자가 되기를 원한다. 그는 관객이 상호작용하는 행위자로써 작업에 연관이 되고 이로써 그 작업이 예술로써 체험되어지는 것을 원한다. 채지영은 관객이 작품에 대한 기억을 오래 간직하기를 바랄 것이다. 관객이 참여자가 되고 그들이 무언가- 작업이 이뤄지는 그 순간에 강렬하게도 아름다운, 동시에 일반적이고도 특정한 무언가- 를 가져가도록 하는 것이 채지영의 의도이다. -중략- ● 더 최근의 빙햄튼에서의 작품 Gazebo는 천으로 만들어진 텐트의 공간 속으로 관객을 끌어들이고 작은 천 조각에 개인적인 메시지를 써서 텐트 안 벽에 꼽게 한다. 이 작품에서 채지영은 관객들에게 일상의 짐에서 자유로워지고 새로운 경험에 마음을 열고 방랑 예술가가 되길 요구한다. Gazebo는 거주지가 아닌, 일상생활의 공간이 아닌, 정신적인 머무름, 몸과 마음을 위한 머무름의 공간이다. 그것은 그 시간 안에서 모든 것들이 하나가 되는 장소이고, 아이와 어른들이 그들 스스로가 되어 자신을 자각하는 것을 배우는 장소이며, 자신이 무얼 느끼던 말하고 쓸 수 있는 기회를 관객에게 주는 장소인 것이다. 핵심을 말하면 Gazebo는 매일 일상에서의 사람들이 예술의 정신 안의 그 한 순간을 위해 살수도 있는 장소인 것이다. 이것이 채지영의 작업의 주제이다. 채지영은 범문화적 친밀함을 구체화 하는 작품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 로버트 C. 모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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