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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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bel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2004-10-12 02:56:26, Hit : 2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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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n Fossey 이야기
(
'.
불신지옥이란 친구의 말이 떠오르는 게시물이다. 결국은 믿음의 문제이지만, 애정은 확실히 사람의 눈을 멀게 한다.
이성을 돋우어 줄 수 있는, 인간으로서 발전 가능케 하는 사랑이란 것은 정말 불가능한 것인가.
개인적으로 인류학하고 고고학이 정말 배우고 싶다는... 바램은 있는데, 행동으로 옮기진 못할 듯.
.'
)
+ + +
웹진 피플피플에서 펐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너희에게 반기를 들 수도 있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너희가 틀렸다고 말할 수도 있어.
-하지만 난 언제까지나 너희 편이야. 왜냐하면 너희가 옳다는 걸 믿으니까."

인류학자 루이스 리키(Rouis Leakey)의 말이다.
리키 박사는 인류의 기원에 관한 연구에 평생을 바친 인물로, 그는 세 명의 제자를 기용해 인류의 연결고리일지도 모를
유인원 연구 기회를 제공한다. 서두에 나오는 '너희'가 바로 이 세 명의 제자를 말한다.
1957년; 가장 먼저 비서의 신분으로 참여한 제인 구달(Jane Goodal)이 침팬치와 인연을 맺었고,
1966년; 다이안 포시(Dian Fossey)가 리키 박사의 제의로 고릴라 연구에 참여했으며,
1968년; 비루테 골디카스 (Birute Galdikas)가 오랑우탄에 자신의 인생을 바치게 된다.
당시 많은 전문가들은 리키 박사가 노쇠해서 망령이 났다고 비아냥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세 명의 제자는 아마추어 연구가였으며, 연구의 접근방법 또한 서툴기 그지 없었다.
게다가 젊은 여성이 연구를 한다는 것이 그 비난의 강도를 더욱 높였다. 그런 제자들을 리키 박사는 믿어주었으며, 결국 그들은
각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가 되어 구달 박사와 골디카스 박사는 현재도 자신의 연구에 최선을 다 하고 있다.
그럼, 다이안 포시는 지금 무얼하고 있을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불행히도 그녀는 1985년 밀렵꾼으로 추정되는 자에 의해 살해당했다.


세 명의 여성 중 굳이 다이안 포시를 선택한 것은, 삶을 영위하는 동안 업적의 영광을 누린 이들에 비해 사후에 칭송을 받는
사람들의 슬픔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기 위해서이며, 비극적인 생의 최후를 맞이했지만, 자신의 확고한 의지 속에서 살다간
그녀를 통해 내 삶의 자세를 다시 한번 곧추 세우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이안 포시는 1932년 1월 16일 캘리포니아주 페어펙스(Fairfax)에서 죠지 포시(George Fossey)키티 포시(Kitty Fossey)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나이 3살 때, 어머니는 과음을 일삼던 아버지와 이혼을 하고 포시가 5살 되던 해에
리쳐드 프라이스
(Richard Price)
와 재혼을 하게 된다. 하지만, 새 아버지는 딸에게 그다지 친밀감을 주지 못한 인물이었던 것 같다.
그녀가 10살이 될 때까지 가정부와 함께 저녁을 먹도록 했으며, 그녀의 진학을 위해서 한 것이라고는 얼마 안 되는 학자금을
융자해준 것이 전부였다고 하니 말이다.
그런 성장과정 때문인지 아니면, 유전적 형질 때문인지, 그녀는 이후 자립심은 강하지만 다소 자기 중심적이고 타인과의
조화를 쉽게 이루지 못하는 성격으로 성장하게 되며, 그에 따라 주변에 많은 적을 두고 살아간다.

1954년 다이안 포시는 산 호세 주립대학을 졸업한다.
대학에서 그녀의 전공은 처음에는 수의학이었지만, 이후 학교를 옮겨 물리 치료학으로 전공을 바꾼 후,
물리 치료사 자격증을 가지고 캔터키 주에 있는 코사이어 아동병원에서 근무를 하게 된다. 그녀는 자신의 직업에 긍지를 가지고
있었으며, 뛰어난 능력을 보였지만 그녀에겐 넓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도 늘 마음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 호기심의 발로로 1963년, 그녀는 돈을 융자해 6주간의 아프리카 여행을 시작한다.
여행의 목적은 올두비아(Olduvia) 유적지와 중앙 아프리카의 비룽가(Virunga) 화산지대마운틴 고릴라를 보기 위해서 였는데,
결국 이 여행이 그녀의 삶에 커다란 전환점을 만들게 된다.


당시 리키 박사는 같은 인류학자이자 동시에 아내인 메리 리키(Mary Leakey) 박사와 함께 올두비아에서 인류의 흔적을 탐사한다.
리키 박사는 인류의 시초를 알기 위해 평생을 바친 인물로, 그는 그곳에서 인류의 조상일 수 있는 원시형태의 인류 흔적을 찾고
있었다. 그런 리키 박사의 유적지를 보고싶다며 미국인 여성 관광객 한 명이 찾아오게 된다.
'귀찮은 관광객이로군!'
리키 박사는 흔히 있는 관광객으로 그녀를 맞이하게 되고, 유적지 관람비용으로 14실링을 요구한다.
다이안 포시는 흔쾌히 그 돈을 지불하고 아직 탐사가 시작되지도 않은 리키 박사의 유적지를 둘러보게 된다.
그러던 중 그녀는 그만 발을 헛디뎌 미끄러지게 되고, 그 덕분에 유적지는 부분적으로 파손이 되며 설상가상으로 그녀의 발목은
삐어버린다. 이것이 리키 박사와 다이안 포시의 운명적이며 다소 희극적인 첫 만남이다.
그녀에겐 당황스러운, 리키 박사에겐 짜증스러운 첫 만남을 뒤로한 채, 그녀는 메리 리키 박사가 붕대를 감아 치료해 준 발로
마운틴 고릴라를 찾기 위해 비룽가 화산지대로 가게 된다. 그리고 오랜 동안 고산지대를 헤맨 끝에, 마운틴 고릴라의 무리를
만나게 된다. 그 순간의 감동을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움푹 패인 눈 두덩이 사이로 빛나던 두 눈이 나를 적인지 친구인지 가늠하듯 초조하게 바라보는 그 순간,
나는 울창한 원시림을 배경으로 서있는 그의 거대한 몸집이 주는 위압감에 눌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프리카 여행을 마치고 캔터키의 직장으로 돌아온 다이안 포시는 지역신문인 루이스빌 쿠리어 저널(Louisville Courier-Journal)
자신이 비룽가 화산지대에서 경험한 고릴라 얘기를 몇 편에 걸친 기사로 투고하게 된다.
1966년, 때마침 강연 차 루이스빌에 온 리키 박사가 이 기사를 읽고는 다이안 포시를 만나고자 한다.
리키 박사는 이미 인류의 기원을 찾기 위한 실마리로 제인 구달을 기용해 침팬지를 연구하게끔 도움을 주고 있었다.
여기서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건, 우리는 흔히 다윈의 진화론을 배우면서 인류의 조상은 원숭이나 침팬지 등의 유인원이라고
배워왔지만, 실제 학계에서는 유인원과 인류를 비슷한 형질을 가진 전혀 다른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
그것을 잘 알고 있던 리키 박사였지만, 유인원에 관한 관찰을 통해 최초 인류의 생활방식에 어떤 연결고리를 발견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있었을 것이고, 그런 믿음이 제인 구달로 하여금 침팬지를 연구하게 하였다.
결국 리키 박사는 다이안 포시에게 고릴라에 대한 꾸준한 관찰을 할 수 있는지 여부를 물어왔다.
만약, 그녀가 그 일에 뛰어든다면 자신이 필요한 기금을 마련하겠다는 얘기와 함께.
다이안 포시는 오래지 않아 결정을 내렸고, 자신의 직장에 곧바로 사표를 냈다.
물론, 그녀의 부모는 그런 결정에 반대를 했지만 그녀의 고릴라에 대한 열정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다이안 포시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윌키 재단으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아 아프리카로 떠나게 된다.


고릴라는 크게 서부 고릴라동부 고릴라, 두 종류로 구분된다.
서부 고릴라는 다시 두 개의 군으로 나뉘며 대략 10만 마리서 아프리카중앙 아프리카에 살고 있으며,
우리가 동물원에서 쉽게 접하는 고릴라가 대부분 서부 고릴라인 로랜드 고릴라이다.
서부 고릴라와 비견되는 동부 고릴라는 세 개의 군으로 나뉘며 르완다, 우간다, 콩고 공화국에서 서식하고 있다.
동부 로랜드 고릴라는 대략 1만 2천 마리가 현재 보호 상태에서 살아가며, 나머지 두 개의 군인 브윈디 고릴라
마운틴 고릴라는 각각 350여 마리만이 보호되지 못한 채 그 생존을 이어가고 있다.

아프리카에 도착한 다이안 포시에게는 부족한 것이 많았다.
그녀는 동물학이나 자연학 등의 전문적인 식견이 전혀 없었다. 어떻게 관찰해야 할지도 몰랐으며,
어떻게 정리를 해 나가야 할지도 몰랐다. 그래서 그녀는 이미 침팬지를 연구하고 있던 제인 구달을 찾아가 며칠 간에 걸쳐
구달의 관찰 방식에 대해 배운다. 그리고 곧 리키 박사가 마련해준 나이로비(Nairobi)의 캠프로 가서 두 채의 텐트와
'릴리(Lily)'라고 이름 지어진 랜드로버 지프 차를 인수하게 된다.

나이로비에서 인수된 장비를 가지고 관찰을 위한 최종 목적지인 자이레(지금의 '콩고')에 도착한 그녀는 두 명의 현지인
조수와 사진 작가인 알란 루트(Alan Root)의 도움으로 캠프를 설치했다. 며칠 후 알란 루트는 예정된 작업을 마치고 다시
본국으로 돌아간다. 그때를 다이안 포시는 이렇게 회상한다.
"그가 떠날 때 그를 따라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기 위해 나는 텐트의 폴을 힘껏 껴안고 있어야 했어요."

그녀의 말처럼 자이레의 비룽가 화산지대는 생존하기에 험난한 자연조건을 가지고 있다.
고산지대인 만큼 추운 기온과 무성한 원시림으로 대낮에도 어둡기 그지 없으며, 발을 딛는 곳이면 질퍽한 진흙탕 투성인데다,
해마다 3미터에 가까운 강수량이 기록되고, 모든 것을 파괴해버리는 우박덩어리가 불현듯 쏟아지며, 가파른 벼랑길이 갑자기
튀어나오는가 하면, 어떤 옷이라도 뚫고 들어가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주는 독초들이 무성하니까 말이다.
게다가 그녀는 천식증상이 있었고, 애연가(愛煙家)이기도 했다.

그런 어려운 조건을 이기고 그녀는 비룽가 화산지대에서 고릴라 무리를 찾아낸다.
그리고 그 고릴라 무리로 점차 접근해가며 관찰을 시작한다. 하지만 인간을 본 적이 없는 고릴라에게 접근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많은 인내심을 요구하는 일이었으며, 보다 다양한 접근 방법이 필요했다.
하지만 다이안 포시의 고릴라에 대한 관찰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방식도 점차 발전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멀리 떨어진 채 조용히 무리를 관찰하기만 하다가, 이후 고릴라와 비슷한 소리를 내며 다가가
그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린 후 접근하는 방법을 쓰게 된 것이다.
모든 동물들이 불현듯 나타나는 대상에 경계심이나 공포심을 느끼는 것을 감안할 때, 그 방법은 큰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방식도 잠시, 다이안 포시는 곧 그곳에서의 연구활동을 접어야만 했다.
자이레 내부의 반란군 지도자가 그곳을 지배하게 되어 정치적으로 불안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곧 르완다로 캠프를 옮기게 되고
1967년, 국립공원 안에 카리소케(Karisoke) 캠프를 마련하게 된다. 결국 그녀는 르완다에서 새로운 고릴라 무리를 찾아내야
했고, 또 다시 그 무리에 접근하기 위해 처음부터 모든걸 다시 시작해야만 했다.


고릴라가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02년, 독일의 한 선장을 통해서 였다.
그 이후 매리언 C. 쿠퍼 감독이 1933년에 영화 [킹콩 KingKong]을 선 보이자, 사람들은 고릴라가 외모에서 풍기는
이미지만큼이나 매우 사나우며, 화가 나면 거대한 손으로 가슴을 마구 치며 날뛰는 포악한 동물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고릴라의 잘못된 인식을 처음으로 바꾼 사람이 조지 셀러(George Schaller)다.
자연학자인 조지 셀러는 1959년부터 1960년까지 아프리카에서 1년간의 관찰을 통해, [The Year of the Gorilla]라는 책을
저술했고 여기서 고릴라는 온순한 채식주의자이며, 작은 단위의 무리생활을 한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렸다.
하지만, 조지 셀러가 짧은 기간 동안 고릴라를 살펴 본만큼 대상의 잘못된 인식은 바꾸었지만, 깊이 있는 학술적 접근은
이루지 못했다. 이런 점에서 다이안 포시의 연구는 비록 관찰자의 감정이 개입되기는 했지만, 고릴라의 집단 생활 속의
사회성이나 계급구조, 생활방식 등을 오랜 기간의 연구아래 거두게 되었다.

르완다에서 연구를 계속하던 다이안 포시에게 고릴라는 여전히 대하기 어려운 존재였다.
고릴라 무리에게 가까이 다가갔지만 집단생활을 중요시 여기는 고릴라 무리는 쉽게 그녀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았고,
비록 온순한 기질을 가진 동물이었지만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하는 존재에 대해 상당한 경계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위험한 고비도 여러 차례 넘기곤 했다.
그런 단편적인 예로, 한 번은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사진 작가인 밥 캠벨(Bob Campbell)이 다이안 포시와 고릴라를 카메라에
함께 담기 위해 그녀에게 고릴라 무리에 좀 더 접근하길 주문했다. 그녀가 무리에 조금 더 다가갔을 때, 무리의 리더인
'래피키(Rafiki)'가 그녀가 자신들의 먹이를 노리는 것으로 생각했는지 그녀를 향해 공격해 왔다.
곧 그녀는 무리에 에워 쌓였고 그녀는 웅크리고 앉아 2시간 가까이 그들의 공포스런 괴성 속에 몸을 떨어야 했다.
결국 고릴라 무리를 관찰하기 위해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릴라 무리의 근처에서 얌전히 그들을 바라보는 것 뿐이었다.
그러다 행여 고릴라가 접근하게 되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 복종의 의미를 보여 그 위험에서 벗어나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러던 1970년 어느 날 그녀의 노력이 결실을 맺는 사건이 일어난다.
무리의 고릴라 중 수컷인 '피넛(Peanut)'이 그녀에게 가만히 다가와 그녀를 바라
보자, 그녀는 웅크린 채 그런 피넛의 시선을 피해 다른 곳을 보는 척해야 했다.
그렇게 한 참을 바라보던 피넛이 그녀의 손등을 만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 순간을 사진 작가인 밥 캠벨이 카메라에 담아냈고, 이것이 야생 고릴라와
인간이 접촉한 최초의 공식 기록이 되었다. 또한 이제 더 이상 고릴라 무리가
그녀를 위험한 존재로 여기지 않는다는 증거도 되었다.

3년이 넘는 꾸준한 관찰은 그녀의 고릴라 연구에 많은 성과로 다가왔다.
그녀는 고릴라 무리의 각 구성원에게 이름을 붙여가며 그들에게 애정을 쏟았다.
애정을 주는 사람을 동물들은 쉽게 구분한다고 한다. 매일같이 그녀의 얼굴을 대하는 고릴라 무리도 점점 다이안 포시의 접근을
허용하게 되었고, 자신들이 근접해서 그녀에게 호기심과 관심을 표현하기도 했다. '마초(Macho)'라는 암컷이 다이안 포시의
얼굴 앞에 다가와 그녀의 눈동자를 응시하는가 하면, 다이안 포시가 가장 애착을 느꼈던 아기 고릴라인 '디지트(Digit)'
그녀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며 놀기도 하고, 나뭇잎을 던지며 장난을 걸기도 했다.


고릴라의 행동양식에 관한 오랜 성찰과 세밀한 관찰은 학계에 새로운 보고나 다름없었다.
자연히 그녀의 연구는 기금을 후원한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를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1970년, 그녀는 학위를 받기 위해
캠브리지 대학에 들어가게 된다. 그것이 단지 고릴라 연구를 계속 수행하기 위한 명분에 지나지 않음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그 무의미한 시간을 못 견뎌한 듯 싶다.
"나는 이 곳이 너무 싫어요. 이곳은 아프리카가 아니니까요!"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온 다이안 포시는 이전보다 더 활발한 연구를 했으며, 고릴라 행동 연구에 보다 많은 성과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그런 성과와 더불어 바람직하지 않은 감정이 개입되기 시작했다.
과학자나 연구가가 연구대상이나 물체에 자신의 감정을 불어넣게 되면 객관성을 잃기 십상이다. 또한, 대상의 행동이 관찰자로
인해 영향을 받게 되면 예기치 못한 행동의 변형을 촉발하게끔 만든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말이다.
하지만, 다이안 포시는 과학자이기에 앞서 누구보다 외롭고 힘든 생활을 하는 사람이었다.
1976년 , 매일 계속되는 험난한 산행으로 발목에 몇 개의 금이 가고, 고산의 추위에 몸은 점점 약해져만 갔다.
하지만, 그녀의 고릴라에 대한 애정은 그녀를 캠프에서 오래 쉬지 못하도록 만들었고, 그녀는 다시금
차디찬 기온과 축축한 안개 속에서 고릴라 무리와 함께 지내게 된다. 그런 그녀에게 다가와 따뜻하게
감싸 안아 주던 것은 다름 아닌 '디지트'였다.
그녀와 '디지트'가 쌓아 나간 우정 속에 그녀는 자신의 잘못을 서서히 깨닫게 된다.
그녀가 단지 고릴라를 관찰하기 위해 고릴라 무리에 다가갔지만, 이제 모든 고릴라가 자신을 두려워
하기는커녕, 가족같은 친밀감을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그녀뿐 아니라 어떤 인간도 두려워
하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그녀는 이 온순한 고릴라 무리들이 밀렵꾼 조차 두려워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생각 하기 시작했다. 행여 자신의 무지한 애정이 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갈 덫이 될 수도 있다.
다이안 포시는 지금껏 수행한 관찰방법의 문제점을 알게 되었고, 그것을 고치고 싶어했다.
하지만, 이제 고릴라는 그녀에게 가족 그 이상의 무엇이었으니...



그녀의 우려는 곧 현실로 다가왔다.
비룽가 화산지대는 국립공원으로 법적인 보호를 받고 있었지만, 별 다른 자원이나 산업이 발달하지 못한 곳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동, 식물 등 천연자원은 매력적인 수입원이 될 수 있다. 동, 식물 보호를 부르짓는 사람이 문명세계에서 건너 온
사람들이라면, 그것으로 부를 꿈꾸고 사치를 누리려는 사람 또한 문명세계의 사람들이라는 점은 슬픈 아이러니이다.
다이안 포시는 국립공원 곳곳에서 덫과 함정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그것은 들소나 영양 등의 야생동물을 잡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았으나, 그 어두운 그림자는 서서히 고릴라의 영역까지
드리워져 왔다. 박제된 고릴라의 발과 머리가 높은 가격에 흥정되기 시작하자, 밀렵꾼들은 이전의 덫에 고릴라의 먹이를
올려놓고 그들을 유혹했다. 자연히 다이안 포시는 그런 덫과 함정을 제거하는데 점차 많은 시간을 쏟아야만 했다.
하지만, 막는 사람에 비해 포획자의 수는 자꾸만 늘어갔다. 많은 수의 고릴라가 다른 지역에서 희생되어 갔으며,
관광객이 있는 곳에서는 희생물의 손과 머리가 손 쉽게 팔려나갔다.
또한, 서구 문명국의 동물원은 앞을 다투어 살아있는 고릴라를 구하려 혈안이 되었다.
그곳에 보내기 위해서는 어린 고릴라일수록 가치가 있었기에 많은 어린 고릴라들이 포획되었고,
심지어 어린 고릴라를 잡기 위해 무리에 속한 어른 고릴라들을 무참히 도륙하기까지 했다.


끝내 다이안 포시는 경악하고 말았다.
1978년이 막 시작된 어느 날, 그녀의 가장 애정스런 친구인 '디지트'가 머리와 발이 잘린 채로 발견된 것이다.
게다가 '디지트'를 보호하려 했던 그의 가족들도 모두 죽임을 당했다.
그로부터 6개월 만에 어릴 적 자신을 이뻐해 주던 유일한 삼촌 '버트'의 이름을 따서 붙인 '버트 삼촌(Uncle Bert)'
그의 가족들이 역시 팔과 머리가 잘려나간 채 발견되었다.
다이안 포시는 자신의 캠프 근처에 그들의 묘지를 마련해서 고이 안장시켰다.
그리고 고릴라 보호를 위한 기금마련을 위해 '디지트'의 죽음을 서방에 알리고, '디지트 기금(Digit Fund)'를 설립하게 된다.
(1992년DFGF(Dian Fossey Gorilla Fund)로 개명되어 현재에 이른다.)


밀렵꾼과의 전쟁!
불의(지극히 주관적인)에 맞서는 방법에는 두 가지의 방법이 있다.
평화와 공존을 강조하여 설득하는 방법을 취하기에 시간이 너무 모자랐다고 여겼을까?
아니면, 그 경악의 분노를 누르기에 자신의 친구를 잃은 슬픔이 너무 컸을까?
다이안 포시는 고릴라 밀렵꾼에 강경하게 맞서기로 결심한다.
그녀는 고릴라 보호를 위한 치안대를 조직하였고, 밀렵꾼의 목에 현상금을 내 걸었다.
공원 내에 들어온 그들의 가축은 무참히 도살하였으며, 밀렵꾼의 집에는 불을 질렀다.
그리고 치안대에 총을 지급하고 밀렵꾼을 사살하도록 지시했다.
이런 모든 행동을 '적극적 보호(active conservation)'라는 명분 아래 실행했으며, 그 강도가 거세짐에 따라 그녀를 비난하는
목소리도 점차 커져, 학계에선 그녀가 캠프의 연구활동보다 전쟁에 열광하는 사람이라고 멸시했다.
다이안 포시는 그런 비난에 흔들림 없이, 오히려 자신은 주술사이고 자신에게 대항하는 자들에게는 가공할 저주를 내릴 수
있다고 위협하며, 자신에게 잡힌 밀렵꾼은 잔인한 고문을 당한다는 소문을 내기까지 했다.
이런 그녀의 행각이 알려지자 미국 언론에서는 그녀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보도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이런 긴장이 고조됨에 따라 다이안 포시는 르완다에서 1981년부터 1983년까지 강제 추방을 당하고 만다.


모든 긴장이 완화되자 다이안 포시는 다시 르완다로 돌아오게 된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다음 날인 1985년의 12월 26일 아침, 그녀는 자신의 거주지에서 정글도로 추정되는 큰 칼로
입과 코 사이의 얼굴이 절단된 채 발견된다. 살인자가 밝혀지진 않았지만, 그녀의 '적극적 보호'에 앙심을 품은 밀렵꾼의
소행으로 짐작될 뿐이다. 다이안 포시의 시신은 그녀가 그토록 사랑했던 '디지트'와 고릴라 가족들 묘지 옆에 나란히
안장되었으며 그 묘비명에는,

----
Dian Fossey 1932-1985
----'그 누구보다 고릴라를 사랑했던... (No one loved gorillas more...)'이라고 쓰여졌다.


35살의 나이에 자신의 꿈을 위해 아프리카 땅을 밟은 여인 ; 다이안 포시.
그녀의 연구방법은 과학자로서는 무모할 정도로 자신의 감정을 관찰대상에 개입시켰고, 고릴라 무리에게 필요 이상으로 접근
함에 따라 그들의 생활방식에 필요치 않은 동기유발을 가져왔다. 그것은 제인 구달 박사에게서도 발견되는 공통 사항이다.
무엇보다 그녀가 주창한 '적극적 보호'는 결국 폭력과 밀렵의 또 다른 이름이었을 뿐, 명확한 '정의'를 구성하기에는 너무
주관적인 감정의 표출이었다.
어린 시절, 거미줄에 얽혀 죽음을 목전에 둔 잠자리를 떼어내 날려주고 그 거미를 불 태워 죽인적이 있다.
거미의 잘못인가? 나의 잘못인가? 모든 생존을 위한 행위에 인위적인 작용이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나의 견해다.
비록 무참하게 고릴라가 도륙되었다고 하지만, 지역적인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그 행위 자체만을 비난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한 행동이다. 제 3세계(말도 안 되는 서열 매김이지만) 국가의 빈민의 책임 중 대부분은 서구에 있으며,
그들의 생존을 위한 법칙을 구성한 것 역시 서구의 사치와 욕구에 있다.
다이안 포시가 총을 빼 들고 싸워야 할 대상은 자신의 세계에 있었을 뿐이다.
그녀가 죽음으로 내 몬 밀렵꾼들은 죤 웨인의 총에 쓰러져 간 인디언과 다름이 없다.
자신의 토지와 가축을 보호한다는 미명아래 살해된...

많은 논쟁을 불러 일으키는 그녀의 삶이었지만,
멸종위기의 동물을 살려내기 위한 그녀의 노력만큼은 세월이 지나도 퇴색되지 않는 듯 하다.
그녀의 죽음은 비극적이었지만, 그로 인해 그녀의 얘기가 널리 퍼져나갔고 곧 고릴라를 위한 기금조성의 발판이 다져졌다.
현재 그녀를 기리는 기금재단이 마련되어 있으며, 고릴라 관광 프로그램과 르완다 정부의 고릴라 보호정책에 힘입어
그들을 보호, 육성하고 있다. 하지만, 고릴라의 숫자는 여전히 감소추세에 있다고 한다.


다이안 포시의 고릴라 관찰의 많은 에피소드들이 1980년 책으로 출간된 바 있다.
[Gorillas In The Mists (안개 속의 고릴라)]라는 제목의 이 책은 다이안 포시가 1980년 코넬 대학에서 직책을 맡으며 저술하여
1983년 출간된 것으로, 자신이 보고 겪은 고릴라 탐사와 애정 어린 친구 '디지트'에 관한 얘기들이 담겨있다.
이후, 1988년 이 책을 기반으로 한 영화가 동명의 제목으로 만들어지게 된다.
다이안 포시가 고릴라 연구에 이바지 한 19년 간의 삶을 훌륭하게 담아낸 이 영화에서 시고니 위버(Sigourney Weaver)
다이안 포시를 연기하며, [F/X]브라이언 브라운(Bryan Brown)이 그녀가 짧게 나마 사랑의 감정을 품었던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진작가로 출연한다. 물론, 영화적인 묘미를 위해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실제, 시고니 위버는 이 영화가 발표된 이후 DFGF(다이안 포시 고릴라 재단)의 명예회장으로 추대되었다.


DFGF에서 운영하는 사이트
www.gorillafund.org 를 방문하면, 고릴라 보호에 관한 방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며,
고릴라 보호기금 마련에 동참할 수 있다. 끝으로, 고인과 그녀가 사랑했던 고릴라 친구들의 명복을 빌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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