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대

1360  1/68   회원가입 회원로그인
  View Articles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2012-11-15 19:34:48, Hit : 1117)
[re] 2012 전시정보

 

EPISODE I : Shall We Dance

김영삼_김준식 2인展 2012_1115 ▶ 2012_1214 / 주말,공휴일 휴관

김영삼, 김준식_우리집에서놀자!_수묵, 유채_62×134cm_2012_부분

초대일시 / 2012_1115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주말,공휴일 휴관

리나갤러리 LINA GALLERY 서울 강남구 논현동 229-26번지 해광빌딩 1층 Tel. +82.2.544.0286 www.linaart.co.kr

한국 문인화단의 대표 작가 김영삼, 컨템퍼러리 아트의 떠오르는 샛별 김준식. 너무도 다른 스타일을 선보이고 있는 두 사람의 만남은 많은 갤러리에게 '물음표(?)'를 던질 것이다. 동양화와 서양화라는 다른 길을 걷고 있는 두 작가의 만남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두 사람의 작품세계를 각각 살펴보면 이러한 걱정은 기우였음을 알 수 있다. ● 먼저 김영삼 작가를 살펴보자. 문인화라고 하면 매·난·국·죽이라는 한정된 틀 안에서 한 번의 붓 터치로 완성되는 그림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김영삼 작가의 작품은 그러한 편견이 동양화에 대한 고정관념이었음을 보여준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그의 이력에서 알 수 있듯 김영삼 작가는 '문인화'라는 큰 장(場) 안에서 현대적인 요소들을 실험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예를들면, 전통 한지에 서양화의 재료들을 도입하여 문인화를 그리는 식이다. ● 40여 년의 경력을 가진 베테랑 문인화가지만, 김영삼 작가는 작품을 위해 연습과 도전을 끊이지 않는다. 3개월에 1000장이 넘도록 연습하고,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200여 장의 그림을 그려 그중 한 작품을 선택해 세상에 선보인다. 이러한 정신은 처음 붓을 잡을 때부터 이어져 온 것으로 그를 작가 이전에 '장인'으로 보게 하는 이유다 ● 그리고 김준식 작가도 들여다보자. 김준식 작가의 작품은 현대인들이 좋아하는 현대미술 그 자체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세세히 살펴보면 동양의 미를 잘 살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준식 작가는 동양의 젊은 작가들이 서양의 붓을 잡은 후로 동양의 미적기준이 등안시되는 것 같아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런 연유에 동양미술에서 '현대의 미'를 찾기 시작했다. 여러 준비의 날을 거친 끝에 김준식 작가는 자신만의 리얼리즘 작품 세계 속에 동양화에 담긴 현대의 미를 접목시켰다. 이렇듯 두 작가는 동양화가, 서양화가로 분류되는 지금의 미술계에 커다란 질문을 던짐과 동시에 새로운 가치를 제안하고 있다. ● 두 작가의 만남을 소개하는 '리나 갤러리'는 이번 전시회가 많은 사람들에게 현대미술의 발전방향과 전통 문인화의 미래에 대한 화두(話頭)가 되기를 바란다. 또 두 작가가 만나 탄생시킨 '우리집에서 놀자'의 작품을 통해 동․서양화의 접목이 어떻게 시너지를 내는지를 보여주는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리나 갤러리'에서 소개하는 이번 전시에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호응을 기대하는 바이다. ■ 리나갤러리

김영삼_맑은바람 좋은생각_수묵, 혼합재료_50×80cm_2012
김영삼_맑은바람 좋은생각_수묵, 혼합재료_50×80cm_2012
김영삼_봄날의 환희_수묵, 혼합재료_67.5×68.5cm_2012
김영삼_홍매_수묵, 혼합재료_53×45cm_2011

우송헌 김영삼의 신작에 대한 단상 ● 요즘 시대에 통하는 문인화는 어떤 양식일까? 우리는 한국문인화단의 중진그룹을 대표할만한 작가로서 항상 문인화단의 전위에 서서 앞서가는 작품양식을 선보이는 우송헌 김영삼 선생의 작품을 통해서 현대적인 문인화의 본질과 의미구조에 대한 답변을 얻을 수 있다. 사실 문인화단에서는 아직도 화려했던 과거의 전통만을 강조하거나 중국화론 몇 구절을 금과옥조로 여기면서 박제된 양식을 고집하는 일군의 작가들이 많은 형편이다. 시대문화를 담아내지 못하는 예술은 동시대인들에게 감동을 주지 못할 것은 자명하다. (중략) 일반적으로 화폭에 등장하는 이미지는 두 군데서 온다. 먼저 것은 외부대상의 윤곽이 화폭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고전회화의 이미지는 이렇게 외부세계의 '모방'이었다. 나중 것은 그 이미지가 예술가의 '내면'에서 화폭 위로 나간 것이다. 20세기 현대회화의 이미지와 현대문인화는 예술가의 내면의 '표현'이다. 고전예술의 원리가 '재현론'이라면 현대예술의 원리는 '표현론'이라고 할 수 있다. 재현하지 않는 그림이 뭔가를 전달한다는 게 잘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음악의 경우를 떠올려보자. 음악은 현실을 재현하지 않으나 듣는 이의 영혼을 울리며 정신적 메시지를 던져주지 않던가. 여기서 현대문인화는 음악에서 길을 물을 수도 있다. 자연현상을 모방하는 것에 목적을 두지 않는 예술가, 즉 내면의 세계를 표현하고자 하는 예술가는 그 같은 목표들이 음악에서 얼마나 자연스럽고 용이하게 달성되는가를 알기 때문이다. ● 이제 우송헌은 외부세계의 모방에 그치지 않고 작가 자신의 내면에 있는 조형미감을 세계를 향해 내비치기 시작했다. 그의 분명한 조형철학이 문인화단에 조금씩 울려 퍼지고 있다. 우리가 한발 앞서 성큼성큼 걷고 있는 그의 조형메시지에 귀를 기울일 차례가 된 것이다. (평론글 중 일부발췌) ■ 정태수

김준식_DIY Maehwa with Hulk and Homer_화선지에 유채, 나뭇가지_50×121cm_2012
김준식_DIY Maehwa with turtles and Super Mario_화선지에 유채, 나뭇가지_50×140cm_2012
김준식_Maehwa of Basquiat_화선지에 유채_73×50cm_2012
김준식_Maehwa of the Smurfs 3rd Ver._화선지에 유채_166×50cm_2012

새로운 리얼리즘 인가 아니면 새로운 팝아트 인가? ● 김준식의 매화 나뭇가지를 주제로 그린 그림을 한번 보자. 이 작품들을 보게 되면 첫눈에 매화가 그려진 중국 전통 수묵화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 하지만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보면 마치 캠밸 깡통이 팝아트의 허상이었던 것처럼, 수묵 매화 또한 하나의 허상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림 속의 나뭇가지는 그림이지만, 실제 나뭇가지를 캔버스에 붙여 놓은 것처럼 보이게 한다. 또한 두 가지 다른 스타일의 화법 대비를 통하여, 그의 작품 의도를 표현하고 있다. 몇몇 작품 중에 어떤 꽃은 그려 넣은 것이 분명하게 보이고, 또 어떤 꽃들에는 실제 꽃을 붙여 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시 한번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면 두 종류의 꽃들이 모두 그려 넣은 것이고, 이것은 그림과 실제 꽃의 차이가 아니라 두 가지 다른 화법의 차이였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어떤 화가들은 실제 대상을 그림에 그대로 붙여 넣어서 회화를 더 힘있게 만들기도 한다. 만약에 화가 자신이 그림을 실제 대상처럼 완벽하게 그려 넣을 수 있는 능력이 된다면, 이것은 그의 회화 능력이 이미 출중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결국 김준식이 팝아트의 캠밸 깡통과 동양화 속의 매화를 이용한 이유는 바로 그의 회화 능력을 표현해 내기 위해서이다. 그의 그림은 사람들에게 서양의 팝아트 방식과 정반대인 매화가 그려진 동양화 전통 방식을 한번에 보임으로써 그 무엇도 그의 회화 능력을 감추지는 못한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 김준식의 작품들은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사이의 충돌을 표현하였지만, 이러한 내용보다 중요한 점은 바로 그의 회화 능력이 사물을 진짜 같이 재현해 낼 수 있는 그림 실력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우리는 아마도 김준식을 하이퍼 리얼리즘이나 사진 사실주의의 범주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그의 작품에는 여러 가지 다양한 기교와 스타일이 섞여있다. 그렇기 때문에 하이퍼 리얼리즘과 비교해 보면 훨씬 자유분방하다. ● 아마도 우리는 이것을 새로운 리얼리즘, 요즘 시대에 적응한 사실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 듯 하다. (평론글 중 일부발췌) ■ Peng Feng

 

 

-------

 

On the Dark

한조영展 / HANJOYOUNG / 韓照永 / painting 2012_1116 ▶ 2012_1125

한조영_Aurora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0×120cm_2012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00114f | 한조영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2_1116_금요일_05:00pm

후원 / 서울문화재단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가나 컨템포러리 GANA CONTEMPORARY 서울 종로구 평창동 98번지 Tel. +82.2.720.1020 www.ganaart.com

어둠 속의 빛을 따라 도시의 오로라를 만드는 젊은 상상가 ●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19세기 철도망의 확장은 도시가 일상의 공간으로 인식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자연 속에서의 체험은 철도망을 통해 도시 안에서의 경험으로 바뀌어 많은 예술가들에게 작품의 영감을 가져다 주었다. 단절된 시간 속에서 경험하게 되는 공간은 도시를 이루는 빌딩, 역, 극장, 다리 등 개별 요소로 조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구성 요소의 단순한 총합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닌, 총체적인 무언가로 인식하게 되었다. 이러한 인식은 지금도 공간에 대한 경험을 통해 도시를 표현하는 데 있어 유효한 방식인 듯 하다. 도시에 대해 여러 감각기관을 통해 경험한 바를 시각 예술을 통해 표현함에 있어 도시 공간은 '장소'로 변화되어 드러난다. 장소는 경험의 주체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감각 기관을 통해 얻게 되는 감각의 결과로 얻어지는 총체적인 인식물이다. 여기서 중요한 지점은 감각 기관의 총합이 아닌 자신의 감성이 더해진 일종의 감성적인 인식 공간이라는 점이다.

한조영_Aurora_캔버스에 혼합재료_130×130cm_2012
한조영_Aurora_캔버스에 혼합재료_200×200cm_2012
한조영_Grid of space_캔버스에 혼합재료_100×100cm_2011

도시 공간이 시각 예술 안에서 '장소'로 드러남은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장소는 경험의 주체가 자신이 요구하는 "생물학적인 필요가 충족되는 가치의 중심지로서" 위치되는 곳으로, 일종의 안식처가 된다. 공간이 낯설고 두려움을 유발하는 성격을 지는 곳이라면, 장소는 다종의 감각의 중복된 경험을 통해 일어나는 정서적인 안정을 유발하는 곳으로, 일종의 안전지대 같은 기능을 한다. 많은 시각 예술 작품 속에서 도시는 '장소'로서의 의미를 갖고 표현되고 있다. "19세기 도시"의 상징인 파리의 거리를 거닐던 '산보자(Flaneur)'는 현재에도 여전히 도시 곳곳에 존재하여, 서울이라는 대도시를 배경으로 '산보자'로서의 다경험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산보자'로서의 주체적 시각을 보여주는 많은 작품들이 근접 거리에서 관찰한 빌딩, 아파트나 자신의 삶의 반경에서 일상적으로 다니는 거리와 골목은 작가마다 그들만의 방식으로 재조합되거나 극대화되어 작품 안에 옮겨져 있다.

한조영_Off the map_캔버스에 혼합재료_112×162cm_2011

한조영 작가 역시 도시의 풍경을 소재로 하고 있으나, 다른 작가와 차별점을 긋는다. 그에게 서울이라는 공간은 일상적 삶이 축적된 경험의 집합체인 '장소'로 인식되지 않는다. 그는 "삶의 공간에 귀속되지 못하고 맴도는" 이방인으로서 대도시의 공간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초기작부터 등장하는 스펙터클한 도시 야경은 작가의 복잡한 심리가 투영된 상징적 풍경으로, 도시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존재의 불안, 채워지지 않은 욕망, 현재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일탈의 욕구가 그 안에 은유적으로 투영되어 있다. 한조영 작가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도시의 풍경은 평지보다 상당히 높은 지점에서의 시점으로 그려지고 있는 점 역시 그의 도시에 대한 심리를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도시 안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삶의 형태가 도시 야경 속에 점의 형태로 추상적으로 드러난다. 편입되고자 하는 공간에서 멀찍이 떨어져 관망하는 이방인의 감정 역시 구체화되지 않고 어둠 속의 도시에 은유적으로 스며들어 있다. 그가 도시를 바라보는 주된 심리 상태를 불안과 낯설음으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부정적인 감정 상태가 아님은 전작 「Recycling City」 시리즈에서 확인할 수 있다. 「Recycling City」에는 그 곳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층적인 삶 속에 작가 역시 편입되고자 하는 바램이 드러나 있다. 작가는 용도가 폐기되거나 버려진 폐품을 오브제로 한 시리즈를 통해 이것들이 도시의 구성요소로 다시 사용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도시라는 '공간'이 경험과 기억이 집적된 '장소'로 변화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한조영_Off the map_캔버스에 혼합재료_112×162cm_2012

최근작 「Aurora」 시리즈에서 작가는 오로라라는 소재에 집중하고 있다. 어린 시절 경험하기를 꿈꾸었던 오로라는 여전히 그에게는 동경의 대상이다. 소재의 변화가 도시를 떠나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이도현상(移都現像)'으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그에게 있어 바라보기의 대상은 여전히 도시이다. 오로라는 작가가 어렸을 적 가졌던 밤하늘에 대한 동경의 대상에서, "현실과 이상의 간극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에너지"에 대한 상징이 되었다. 도시는 작가가 성년이 된 이후 줄곧 삶의 무대였다. 도시는 작가가 벗어날 수 없는, 아마도 벗어나고 싶지 않은 매력적인 대상이다. 그 안에서 작가는 끊임없이 이질감을 느끼면서, 주변인으로서 경계를 지으려고 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그 중심으로 다가서려는 노력과 중심이 되고자 하는 욕망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벗어나고 싶지 않음을 주변을 서성이는 듯한 행동으로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가 앞으로 보여줄 도시의 '산보자'로서의 행보는 오로라를 꿈꾸는 상상가로서 이전보다는 긍정적으로 '어둠' 보다는 '빛'을 따라 궤적을 그릴 것이다. ■ 박미연

한조영_Recycling city_캔버스에 혼합재료_80×150cm_2012

An imagineer of city light aurora

 

 

---------

 

이기적 진실(True Enough)

신원삼展 / SHINWONSAM / 申元三 / painting 2012_1116 ▶ 2012_1130 / 월요일 휴관

신원삼_化46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색연필_130.3×162.2cm_2012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10730c | 신원삼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30am~07: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온 GALLERY ON 서울 종로구 사간동 69번지 영정빌딩 B1 Tel. +82.2.733.8295 www.galleryon.co.kr

빨가벗은 사람과 푸른 풍경 ● 근래 자주 보게 되는 지진이나 태풍 같은 천재지변과 환경오염은 인류에게 다가오는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환경오염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고 일본 해안가에 덮친 파도나 태풍의 잔해를 보면서 인간의 능력이 보잘 것 없음을 실감나게 한다. ● 인간은 자연 앞에서 과연 얼마만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그렇게 위대한 자연을 지배하기 위해 인간은 얼마나 많은 파괴와 과오를 저지르고 있는가? ● 현대인의 자연을 극복하기 위한 파괴적인 행위들은 주변 환경을 점점 황폐하게 만들고 있다. 인류는 산업 혁명 이후 새로운 기계들을 발명하면서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게 된다. 그 결과 인류는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워졌지만 화석 연료의 대대적인 사용으로 갖가지 환경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연료의 대량소비에서 발생하는 대기 오염, 산성비, 지구 온난화, 석유 채굴과 운반과정에서 유출 사고로 자연 환경은 무자비하게 훼손되고 있다. 이러한 소비적인 행위는 제품을 제작하기 위한 것 뿐 아니라 소비재를 얻기 위해 사람들이 파괴 하는 것, 그것을 사용하면서 낭비하는 에너지 등은 점점 더 피폐한 주변 화경을 만들고 있다. 21세기에 들어서서 인류는 더욱 더 소모적인 경제 활동을 집착하고 있다. 우리가 소비하는 농산물을 비롯하여 기계들, 전자제품들을 만들기 위해 파괴되는 자연은 실제 우리가 사용하고, 소비하는 소모품의 몇 십 배가 된다고 한다. 인간은 자신의 조그마한 편리를 위해 얼마나 많이 에너지를 소모하고 자연을 파괴하는지 말해주고 있다. 현재의 환경 재난은 인간의 욕망 과잉에 따른 결과를 보는 것 같다.

신원삼_化47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색연필_116.8×182cm_2012

이러한 주변의 환경변화를 보면서 예술가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예술이 환경재앙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작가들은 생태주의자나 환경주의자들처럼 직접적으로 사회에 소리치고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행동주의 작가들은 사회참여를 주장하며 그렇게 하였다. ● 작가는 개인인 자신으로부터 발생하는 에너지 뿐 아니라 우리보다 앞에 있는 축적된 힘, 문명으로부터 나오는 발전적인 어떤 힘을 감각적으로 느끼고 그로부터 기운을 받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주변으로부터 영향 받고, 그것에 대한 작가의 견해들을 제시하는 것이 작품이다. 그것은 다양한 방법들로 가능하다. 어떤 작가는 예술 자체 문제에 파고들기도 하지만 그들이 살고 있는 세계를 바라보면서 느낌을 솔직하게 털어 놓으며 주변 사람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진실을 찾아내기도 한다. 그렇다고 저널처럼 현실을 직접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예술적 표현을 사용하여 은유적인 암시를 시도하게 된다. 작가들이 제작하는 작품은 또한 미적 가치에 대한 언술이라고 본다. 그들의 작품은 세상에 대한 진실과 함께, 그 속에 주어지고, 스스로 벗겨지는 존재 자체를 보여주는 작업이다. 그러한 작품에서 초월적인 힘을 기대하면서 생성되는 가치가 행동주의 언술만큼 영향력을 발휘한다.

신원삼_化48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색연필_97×291cm_2012

신원삼의 작품은 현재의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으로 현실을 과장하면서 풍자적이기도 하고 초현실적이다. 그의 작품에서 미래 인류 환경에 대한 어두운 시선 자체가 새로운 세계에 대한 해석이기도하다. 주변 환경의 변화를 보면서 절박한 위기의식에서 솟아 나온 애련한 상상력을 지닌다. '애련하다'고 표현한 것은 작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미래가 어둡지만 작가의 순진한 감정으로 바라보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사실주의자들처럼 사회개혁에 참여하려는 이데올로기를 작가는 의도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마음에 배어있는 감성이 그러한 것뿐이다. 우리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현재의 세계가 밝고 따듯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면에 많은 두려움을 안고 지내고 있음을 작가는 느끼고 있다. 어쩌면 누구나 다 그러한 감정은 있지만 애써 그것을 상기하려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신원삼_化49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색연필_130×89.4cm_2012

신원삼의 작품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개성이 없다.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같은 의복을 입은 사람들과 똑같이 성형을 하고 유행을 따라 유사하게 치장하여 똑같아 보이는 현대인의 모습이다. 동질화된 인간은 각자의 개성을 벗은 채, 표정이 있지만 푸른빛의 사람들은 창백하게 벌거벗은 모습으로 거리를 헤맨다. 그들은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하는 것 같지만 한결같은 표정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현대인의 상황이다. ● 그들이 서있는 장소는 커다란 공장처럼 지붕으로 가려진 공간으로 묘사되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어두움이 드리워져있는 도시에서 사람들은 무리지어 움직인다. 철골로 이루어진 커다랗고 묵직한 지붕은 사람들이 하늘과 접촉을 차단하고 있다. 누가 만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빛이 차단된 공간으로 묘사되면서 산업화된 도시 이미지의 폐허와 공유되고 있다. 조지오웰이나 헉슬리가 묘사한 「1984」, 「멋진 신세계」에서 피지배자들이 거주하는 공간의 모습이나, 최근의 영화 『배트맨』에서 지하의 사람들 같다. 빛이 차단된 공간은 어두울 뿐 아니라 진실을 알 수 없는 왜곡된 세계이다.

신원삼_化50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색연필_89.4×130cm_2012

신원삼의 작품에서 이미지는 대상의 외곽선을 모호하게 하고 의도적으로 붓 자국을 남기는 기법으로 일반적인 표현주의의 동적이고 감정적인 기법과 유사하다. 공간과 사람들의 이질적인 세부묘사는 사물들의 관념적 관계를 암시한다. SF영화의 장면처럼 도시의 막힌 건축물들과 막힌 공기, 유리같이 냉랭한 공간의 차가움과 유령처럼 도시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은 도시의 일부분처럼 보인다. 도시의 정적 너머의 차가운 빛을 발산하는 사람들의 무거운 동세가 붓 자국을 따라서 서서히 흐르고 있다. 공간의 문맥적 관계를 벗어난 빨가벗은 인간들은 자신의 정체성에대한 의문을 간직한 채 헤매고 있다. 그림 전체를 덮고 있는 푸른색은 냉정함, 예리함, 비감정적, 무표정한 감성으로 나타난다. ● 푸른 도시 풍경은 현대 대도시의 일상적으로 지나가는 지하철, 지하도, 육교 등 일상적이고 평범한 공간, 무의미하고 과장되지 않는 구성, 추한 것에 대한 반발이 없음을 무심코 드러낸다. ● 표현주의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있는 신원삼의 작품은 어둡기만 한 것이 아니다. 현실 너머에 있는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있다. 허구적인 진리를 찾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있는 자신의 모습과 연관시켜보면서 삶으로서의 창조적 활동, 그것으로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수 있다는 꿈을 찾는다. 빨가벗은 사람들은 복잡한 대도시에서 살고 있는 현대인의 모습이다. 화려한 조명 아래서 활동하지만 실제는 불빛이 다다르지 않는 어둠 안에 가려진 사람들이다. ■ 조광석

신원삼_化5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색연필_150×200cm_2012

Naked humans and blue landscape

 

 

---------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유럽현대회화

The Future Lasts Forever : Contemporary Paintings from Europe展 2012_1116 ▶ 2012_1213 / 일,공휴일 휴관

초대일시 / 2012_1116_금요일_06:00pm

작가와의 대화 / 2012_1116_금요일_04:00pm~06:00pm 수잔 쿤_우베 코브스키_에릭 슈미트

참여작가 수잔 쿤 Susanne Kühn_틸로 바움가르텔 Tilo Baumgärtel 우베 코브스키 Uwe Kowski_슬라보미르 엘스너 Slawomir Elsner 크리스티안 헬미흐 Christian Hellmich_페터 부쉬 Peter Busch 페터 보니쉬 Peter Bönisch_에릭 슈미트 Erik Schmidt 카로 니더러 Caro Niederer

작가특강_수잔 쿤 / 2012_1115_목요일_11:00am_인터알리아 뮤직홀 회화, 드로잉 그리고 건축가와의 협업 라이프치히와 미국에서의 시간이 작업에 미친 영향관계 참가신청 문의 / 02.3479.0163 / subi47507@interalia.co.kr

협찬 / 한솔제지_BMW 코리아_크롬바커 코리아

관람시간 / 09:30am~06:00pm / 일,공휴일 휴관

인터알리아 아트컴퍼니 INTERALIA ART COMPANY 서울 강남구 삼성동 147-17번지 레베쌍트빌딩 B1 Tel. +82.2.3479.0114 www.interalia.co.kr

"But, The Future lasts forever..." (Louise Altusser, 1985) ● 인터알리아는 세계 미술계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로 기대와 관심을 가져야 할 동시대 해외미술을 소개하고 있다. 첫 유럽전시로 독일현대회화작가들이 중심이 되어 참여하는『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유럽현대회화』전시를 선보인다. ● 본 전시는 과거로부터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살아남아 그 영원한 가치를 인정받을 가장 오래되고 지속가능한 매체인 회화에 주목하고자 한다. 지금, 이 시대는 다매체 시대에 다양한 장르가 결합되고 새로이 등장하며 그 화려한 나날을 보내고 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본인은 너무나도 익숙하고 어쩌면 식상해져 버린 평면회화의 가치와 의미를 이 눈부시며 변덕스러운 시대에 진지하게 생각해보며 그 가치와 의미를 찾아 공유하고자 한다. ● 영국의 사치갤러리는 2005년부터 2006년까지 6부작에 걸쳐 우리 시대 회화의 재부활을 겨냥한 블록버스터급 전시『회화의 승리(The Triumph of Painting)』展을 개최했다. 이를 통해 총 44명의 세계적으로 명망있는 회화작가들을 주목했다. 다매체로부터 이미지 세례에 맞서고 있는 새로운 우리 세기에 어떻게 회화가 생존하고 있는지를 정의 내리는 전시였다. 또한, 회화가 어떻게 이미지 시대를 흡수하고, 그 자체의 중심 영역에서 자리 자리매김하는지를 보여줬다. 이 심도 깊은 전시로 전 세계적 주목을 받은 바 있고, 그 후 6년이 지난 지금 회화는 다시금 미술 영역의 가치의 중심에서 우뚝 서있다. ● 하나의 텅 빈 캔버스는 무한히 비워질 수 있고, 또한 무한히 채워질 수 있는 공간이다. 그곳에서 매체는 씨를 뿌려 발아하고, 뿌리를 내려 매체의 결실이 맺어지는 탄생의 공간이 성립된다. 이 탄생의 공간은 시대의 변화 속에 끊임없이 도전을 받아왔고, 끊임없이 공격받아왔지만 여전히 우리 시대에 그 존재는 살아내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살아 있을 것이다. 작가와 그가 대면하고 있는 텅빈 캔버스 안에서 어떤 매체보다도 직접적인 소통이 밀도 깊게 진행된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누구인가. ● 하나의 붓질에 하나의 사유가 흘러 들어가 있고, 차곡차곡 붓질이 만들어낸 화면의 변주 안에서 우리가 만나는 것은 물질 이상의 한 '온전한 세상'이다. 여기서 온전한 세상은 무결점의 인간성이 배제된 완벽한 세상이 결코 아니다. 회화의 가치 안에는 인간 본연의 가치와, 창조성의 유의미함을 함께 가지고 갈 수 있는 세계가 화면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다. 그 꿈틀거림은 화폭 안에 갇히지 않고 그것을 펼쳐내는 작가에서, 더 나아가 마주하는 대상에게로, 그리고 그 작품 자체로써 열린 세계로 확장되어 나아가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회화가 지니는 그 힘은 시대를 거스르지도 않으며, 시대에 적대적이지 않으며 그 고유성 안에서 스스로의 존재를 확립하고, 스스로 존재 이후에도 존재하며 나아가고 있다는 지점에서 가치와 의미를 찾아 볼 수 있겠다. 본 전시는 여기서 작가와 매체 사이에 연결된 관계, 태도와 자세의 의미와 가치를 중심으로 살핀다. 또한, 창조된 하나의 온전한 세계 안으로 각자의 날개를 펼치고 들어가 낯설음과 새로움의 경험을 통해 지금의 삶과 존재의 의미를 묻고 있는 진중한 그들의 세계를 만나고자 한다. ● 본 전시는 회화의 복권이자 부활이며, 그 가치의 재발견이 되는 자리가 될 것이다. 본 전시를 통해 소개되는 작가들의 작품은 우리 시대 이후에 도래할 미래에도 영원히 지속되어 그 가치를 인정받을 엄선된 작가에 대한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The future lasts forever). 역사는 우리보다 상상력이 더 풍부하다고 한 마르크스의 말을 알튀세르(L. Altusser, 프랑스 철학자)는 언급하고 있다. 미술의 역사는 더 말할 것이 없으며, 그 역사의 한 페이지를 만들고 있는 시대의 중심 작가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다.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그리고 본 전시의 작가들의 가치는 미래를 관통하며, 그 작품의 진정성과 가치를 발견한 이에게 또한 충분한 가치와 의미를 선사하며 함께 살아남을 것이다. ● 전세계 미술시장에서 회화의 영역과 가치가 확장되고 다시금 부활되는 시점에서 과거의 권위와 의미를 되새기며 다시금 주목한다. 특히, 유럽의 회화 중 전통성을 가지고 현대에도 여전히 그 가치와 영향력을 지닌 독일 중심의 작가 9인을 선정하여 90여점의 작품을 소개하는 특별한 자리가 될 것이다. ● 이들은 독일 내에서뿐 아니라 이미 저명한 해외갤러리의 소속작가로 활동하며 이미 국제적으로 경쟁력 있고, 주목할 만한 작가로 회화의 진정성과 독일 및 유럽 회화의 가치를 한국에서 직접 대면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우베 코브스키 Uwe Kowski_Asche_캔버스에 유채_85×100cm_2011

우베 코브스키 Uwe Kowski ● 정형화되지 않은 선과 면,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색(또는 색감)이 상호간에 조화를 이루며 코브스키의 캔버스 위를 떠다닌다. 그의 작업을 처음 마주하는 이라면 누구나 이 얽히고 설킨 드로잉과 색면이 만나 빚어내는 빛나는 설레임을 목격하지 않을까 한다. 의미심장한 하나의 출발이 꼭 계획된 결과만을 도출하는 하나의 완벽한 길을 향하는 구속이 아니라는 것을, 그의 그림 안에서 어렴풋이 짐작해본다. 작가가 말하듯 시작점에서 그에 대한 아이디어를 구체화시키는 것은 다양한 상황 속에서 떠올라 달라지며 어디로 튈지 모른다. 바람이 꽃에서 떨궈낸 씨앗은 어디론가 날아가 머문 자리에서 빛나는 꽃을 피워낸다. 이것은 비단 한 폭의 캔버스 안에서 경계 지워지는 회화만의 영역은 아닐 것이다. 더 이전의 그의 작업은 텍스트와 글쓰기에 의한(즉, 일종의 선에 의한) 시작이 겹겹이 쌓이는 색과 면의 만남으로 쓰기와 지우기를 반복하며 새로운 만남이 만들어 지곤 했다. 그리고 그의 작업은 회화, 매체 그 가장 고유의 재료를 가지고 그 안에서 무수히 변화, 발전하고 있다. 그 자체 안에 완벽하고 무궁한 세계를 끊임없이 발견해가는 과정이 그의 작업이다.

수잔 쿤 Susanne Kühn_The Flood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40×220×5cm_2010

수잔 쿤 Susanne Kühn-그 풍경 너머, 자연과 인위가 하나되다. ● 자연(自然)과 인위(人爲)의 공간이 결합되고 확장된 낯선 풍경이 펼쳐져 있다. 우리는 어디선가 이런 풍경을 결코 본적이 없을 테지만, 한번쯤은 상상해 본 경험이 있지 않을까. 이상적인 풍경을 담으려는 의도는 없었다. 회화적 언어이기에 확장시킬 수 있는 한계와 경계를 강한 붓질로 넘나들 수 있는 고유의 영역이다. 그 안에는 빛, 형태, 공간의 양식과 내용의 실험에 기반해 우리 안에 상상할 수 있는 풍경 너머의 세계를 끌어내는 힘과 열정적 모험이 담겨있다. 풍경에는 한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대개가 작가의 주변 인물이며 그와 연결된 아이디어에서 구도와 오브제들이 함께 풍경에 꼬리를 물고 구축된다. 우연할 수도 있고, 낯설 수도 있는 이 풍경화와 그 안의 인물은 진지하고 사유적인 태도로 읽힌다. 동양적 사유는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자연과 인간이 하나라는 근본에 집중한 바 있다. 그녀의 작품 안에 결합된 자연과 인공의 결합과 확장에서 더불어 동양적 맥락을 잠시 생각해 보게 된다. 역동적인 상상력과 참신한 사유로 만들어진 쿤의 풍경화는 지리한 일상의 현대인에게 강하고 뜨거운 삶의 에너지와 역동을 한번쯤 되새기게 한다.

틸로 바움가르텔 Tilo Baumgärtel_Untitled_캔버스에 유채_180×220cm_2012

틸로 바움가르텔 Tilo Baumgärtel ● 틸로 바움가르텔의 작품은 익숙한 것으로부터 탈피해서 끊임없이 낯설음의 경험을 만들어준다. 그것으로 인해 오히려 건조한 삶과 일상을 창의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한 폭의 그림에서 대면할 수 있다. 이것은 예술이 지닌 고귀한 가치라고 긍정한다. 차갑고도 기이한 내러티브가 스멀거리고 뭉글거리며 다가오는 그의 작업은 무뎌진 우리의 촉(觸覺)을 긴장시키고 감각을 살아나게 해주는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삶은 원래 불안한 것이다라는 전제하에서도 우리는 번번히 그 말을 놓치며 끊임없이 지속해 잡을 수 없는 안정을 추구하려 애쓴다. 그가 그림으로부터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우리 안에 숨겨진 소시기적 불안을 자꾸 끄집어 내며, 인간의 근본적인 불안-죽음에 대한 공포-까지 상상하게 하고 있다. 마치 어두운 과거에 발목을 붙잡혀 악몽을 꾸는 아이처럼 되돌아가고 있는 듯한 느낌, 결코 자라지 않고 어른이 되지 않을 것 같은 느낌. 이런 작용들은 그의 그림에 전반적으로 직설적으로 깔려있다. 기이하고 기발하며 환상 같은 그의 이야기가 있는 풍경은 한번 보면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페터 부쉬 Peter Busch_Ausgang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0×150cm_2007

페터 부쉬 Peter Busch-서늘한 풍경, 그 속으로 느슨히 귀를 기울이다. ● 그의 작품에서 풍기는 스산한 안개 속의 풍경은 그의 작업 전체에 깃든 푸른 색조와 절묘하게 섞인 흰빛의 결합에서 나올 것이다. 한때 애착을 가지고 머물렀을 듯한 풍경이지만 이젠 빛 바랜 추억이 된 사진처럼 떠올려지는 풍경의 조각들이 그의 작품 하나 하나에 녹아있다. 이제 그곳과 그곳에 머물던 이의 존재는 더 이상 빛나지 않으며, 더 이상 지금이라는 현재 속에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바람 부는 과거의 먼지 속으로 사라져가고 있는 중이다. 그가 블루와 그린에 화이트를 섞을수록 더 옅게 말이다. 사소한 일상 같은 풍경이면서도 이제는 아주 특별한 추억과 기억의 공간이 되어버린 낯선 곳을 그는 채집했고 그렸고, 우리는 갈망한다. 페터 부쉬의 서늘한 풍경은 신비스러워 보기기마저해 보는 이의 시선을 붙들고 만다. 서늘하다는 것은, 놓쳐 버린 그리움 같은 것이며 되가지고 싶은 어떤 것을 함축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자꾸만 뒤돌아 보고 싶고, 긴장을 늦춘 그의 느슨한 풍경 안으로 가끔은 귀를 기울이고 싶어지지 않는가.

슬라보미르 엘스너 Slawomir Elsner_From the series of little improvisation_ 캔버스에 유채_75×80cm_2012

슬라보미르 엘스너 Slawomir Elsner ● 폴란드 태생으로 독일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슬라보미르 엘스너의 작업은 사진을 기반으로 한 회화 작업을 보여준다. 카메라의 뷰파이더가 일상 속에서 우리가 놓쳤던 구석들과 틈새를 잡아낸다. 작가에 의해 포착된 장면은 스쳐 지나갈 수 있는 후미진 곳일 수 있고 그곳을 또 다른 시각, 상상력이 발휘되어 다시 발견하며 캔버스로 옮겨낸다. 페인트 칠이 떨어진 낡은 벽면의 사진을 들여다보면 때론 인물로도 새롭게 읽혀지고, 아스라함이 담긴 새로운 형상으로 다시 표현된다. 결코 일상과 동떨어져있지 않으면서 그 안에서 새로운 시각으로 발견되는 모든 것들을 엘스너는 독특하게 표현해 내고 있다. 사진 같은 회화, 회화 같은 사진이 아니라 둘 사이의 경계를 완충화시켜 재치있게 재발견한다. 그의 작업은 스토리가 있는 수필같으며, 그의 표현은 대상에서 스토리를 제거한 한편의 시와 같이 다가온다.

에릭 슈미트 Erik Schmidt_Burleske Betriebsamkeit/ Burlesque Hustle_ 캔버스에 유채_190×130cm_2008

에릭 슈미트 Erik Schmidt ● 에릭 슈미트는 독일 고유의 사냥풍경(Hunting Grounds)을 담아낸 작업, 도시인들의 일상풍경을 스냅샷으로 찍은 듯한 풍경화 작업 등으로 유명할 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지역을 여행하며 그만의 색채와 표현기법으로 생생하게 화면으로 옮겨낸다. 시각적으로는 감각이 충만하고, 강한 마티에르는 기억을 더 강렬하게 세우며 인상을지운다. 그의 작업은 공격적인 질감 표현으로 화면은 평면적이기 보다는 마치 조각의 반부조처럼 느껴진다. 두텁게 오일을 직접 짜발라 그리는 방식에서 이런 효과가 나타난다. 정적인 풍경이 충분히 질료의 속성을 잘 살려내는 그만의 독특한 그리기 방식과 색의 조합은 하나의 강렬하고도 인상적인 또한 이국적인 풍경을 제시한다. 아나 호이그만(Ana Finel Honigman)에 따르면 삐죽삐죽하고 날카롭게 쌓아올려진 오일의 물성적 질감은 강한 제스처로 슈미트가 만들어낸 잔잔한 풍경 이미지에 강렬히 눈길을 사로잡은 대비를 만들어낸다고 한다. 좀 더 가까이 가서 보면, 그의 이런 풍경 작업은 색채적 풍부함뿐만 아니라 깊이와 묵직함을 동시에 지니고 있어 회화의 매력을 발산시킨다.

크리스티안 헬미흐 Christian Hellmich_Station_캔버스에 유채_281×409cm_2008

크리스티안 헬믹 Christian Hellmich ● 크리스티안 헬믹의 회화는 기하학적이고 비정형적인 건축적 구조를 보는 듯하다. 초기의 아이디어는 작가가 경험한 한 세계로부터 출발하고, 그 표현의 매체는 그가 믿는 가장 적합한 매체인 회화로 확장되어 표현된다. 즉, 자신으로부터 출발한 세계에 대한 회화적 풀이가 그의 추상적 작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사실 그것은 쉽게 파악되는 종류의 것은 아니다. 자신 안의 내재적 세계를 자신 밖으로 캔버스를 통해 하나의 사건으로 승화시켜 표출하는 포괄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차원이 선과 구조, 색에 의해 다차원적으로 변형되어 보이는 그의 작업은 그 안의 심리적, 환경적 기재에 의해 변화무쌍하다고 보는 것이 적당할 것 같다. 그는 새로운 상징체를 세우기 위해 기존의 공간을 해체하고 다시 구조를 세우고 다양한 시공간적 맥락의 시도에 도전을 하며 회화의 영역과 기능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카로 니더러 Caro Niederer_Strand / Beach_캔버스에 유채_146×114cm_2008

카로 니더러 Caro Niederer ● 카로 니더러는 자신의 일상의 삶으로부터 채집된 다양한 상황과 장면들을 작품 속에 녹아낸다. 회화 뿐만 아니라, 조각, 타피스트리, 사진과 비디오 작업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것은 한 장의 엽서로부터 시작되기도 하고, 그녀의 생활 속 한 기억으로 남겨진 사진에서 출발하기도 한다. 그녀 삶과 회화의 원천이 되어주는 주변환경을 관찰하고 그것으로부터 사유하고 발견하고 반영하는 결과는 결코 삶과 분리되지 않은 세계를 펼쳐낸다. 삶 속에서 변주되고 다시 의미를 띠며 등장하는 많은 오브제와 상황들은 작가와 관람자를 보이지 않는 투명한 끈으로 연결시킨다. 결코 나와 다르지 않은 저 멀리 어느 너머에 존재하는 이에 대한 소박한 상상과 꿈에 대한 공유가 기꺼이 그녀의 작업에 녹아있는 것이 아닐까. 그녀 작업에 전반적으로 유지되는 세피아톤은 과거에 대한 기억과 추억을 상징하는 의미로 브라운 페인팅으로 일컬어진다. 하나의 티끌에 우주가 담겨있다고 한다. 하나의 온전한 작품 안에 등장하는 오브제들과 풍경은 맑게 얽혀있는 그물처럼 보는 이를 끌어들인다. 페터 보니쉬 Peter Böhnisch ● 페터 보니쉬는 드로잉을 바탕으로 다양한 평면 매체를 활용해 작업을 한다. 내적, 심리적 상태를 반영하는 가장 효과적인 드로잉을 바탕으로 종이뿐만 아니라 판지나 나무, 책 등을 사용해 왔다. 최근 그의 회화 작업은 자신 안에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착상과 심리적 흐름을 생동감 있게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표현한다. 그의 작업은 감성에 기초한 신비적이고 몽환적인 흐름을 보여주기도 한다. 구속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자재로 펼쳐내는 그의 젊고 재치있는 감각은 때론 순수하고 원시적인 태고의 한 시절을 상기시키는 듯한 이미지로 구성되기도 한다. 낯설지만 익숙한 작가의 한 내면을 대면하는 순간의 어떤 모호하면서 신비로운 느낌이 그의 그림 전반에 어우러져 있다. 지속되고 지켜보아야 할 진행형의 그의 작업은 순수하면서 참신한 세계를 보여준다. ■ 조혜영

페터 보니쉬 Peter Bönisch_Ohne Titel / Untitled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잉크, 안료_120×200cm_2011

"But, The Future lasts forever..." (Louise Altusser, 1985)

 

 


번호별로 보기
여러개의 게시물 정리 제목별로 보기 이름별로 보기 날짜별로 보기 조회별로 보기
1360     [re] [펌]포럼A 주재환 인터뷰(잘린 것 나머지) [1] zabel 2002/12/20 7744
1359   [펌]용어해설 [1] zabel 2003/11/21 5478
1358   애교의 여왕 Nancy Lang [1] zabel 2004/04/08 4979
1357   전시 11.24 2008/11/24 4900
1356   전시정보 1.14 2013/01/13 3201
1355   Dian Fossey 이야기 zabel 2004/10/12 2367
1354     [re] 전시 2012.11.27 2012/11/30 1891
1353       [re] 전시 2012.11.27 2012/12/09 1862
1352   전시 2013.1.1 2012/12/31 1691
1351   전시 2012.11.27 2012/11/27 1678
1350   2012 전시정보 2012/11/15 1485
1349   결정적 죽음 zabel 2004/08/05 1459
1348   전시 12.20 2012/12/20 1339
1347       [re] 2012 전시정보 2012/11/15 1213
   zzcchh.com 로 가입바랍니다. 2014/08/19 1151
    [re] 2012 전시정보 2012/11/15 1117
1344   ending 1.30 2013/01/30 1021
1343   [info] sora.net 2006/09/24 906
1342   0 & 冷 [2] zabel 2004/06/19 832
1341   [펌] Fred Wilson 이야기 zabel 2003/08/20 750
  1 [2][3][4][5][6][7][8][9][10]..[68]  
Copyright 1999-2022 Zeroboard / skin by uZ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