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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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2007-10-12 14:53:49, Hit : 450)
전시 10.12



조진구 사진전/있을법한 풍경



청담동 갤러리 라운지 듀플렉스(010-3054-0002)
2007-10-13 ~ 2007-10-23


있을 법한 풍경
청담동 갤러리 라운지 듀플렉스(Duplex)에서는 10월 13일부터 23일까지 10일 간 조진구의 첫 번째 전시회인 ‘있을법한 풍경’을 개최한다.

이번 사진전은 기존의 폐쇄적이고 특권적인 전시와 차별되어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순수미술 브이제잉(VJing)과 디제잉(DJing)이 결합한 새로운 형식의 ‘아트파티`를 추구하고 있다.

순수 사진은 디지털 영상화 되어 VJ영상 속 대형화면으로 관객에게 다가서고, DJ의 플레잉(playing)은 클러버(clubber)들의 환호 속에 사진영상과 묘한 조화를 이루어 갤러리 라운지 듀플렉스의 전시공간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건축구조와 인테리어에 어우러져 입체적으로 전시된다.

이번 전시회는 장르의 혼합을 통한 실험적이며, 새로운 예술문화 공연의 추구로 침묵만 가득했던 기존 전시에서는 볼 수 없었던 관객의 참여와 그들의 열정이 결합하여, 문화예술이 단지 소수를 위한 볼거리가 아닌 다수를 위한 유희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할 것이다.

이번 전시의 모티브인 나무와 공사장은 주변에 흔히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풍경이다.

특히 공사장의 사물들은 험하고 인위적으로 왜곡된 형상이지만 그 자체와 그들이 가진 공간감으로서 주위의 피사체와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발산하며 외로움과 고독을 표현하기도 한다.

물적, 심적 영역이 동시에 실재함을 사진적인 언어로 표현하고 있는 작가는 사진에서 관람자의 시선이 머무는 것을 매개로 무가치한 공간에 눈길을 준 순간 끊임없이 변화하고 재탄생하는 생명력을 느낄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뉴욕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성장한 작가는 20세에 다시 뉴욕으로 건너가 SVA(School of Vision Art)에서 사진을 전공했으며 서울 신사동에서 KOKUMA Photo Studio를 운영하였다.

국내 탑 가수인 보아와 세븐 노래의 작곡을 비롯해 칼 콕스 등 세계 유수한 디제이들과 함께 작업 한 유명 작곡가이자 프로듀서로서 일본 탑 디제이 반열에 오른 하라다 켄(Harada, Ken)이 이번 전시회의 디제잉 파트를 맡고 있어 더욱 눈길을 끈다.

사진 전시는 10월 13일부터 23일까지 10일 간 열리며, DJ party는 20일 하루.

- DJ Party 문의 : 박소영(딥사운즈 프로 홍보 담당), 010-3054-0002
글 / 갤러리 라운지 류플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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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communication

일본 컨템포러리 아트

2007_1012 ▶ 2007_1230



모모요 토리미슈_인사이드 트렉_가변설치_2004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성곡미술관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7_1011_목요일_05:00pm

참여작가_모모요 토리미슈_테슈야 이시다_뉴보 아베_리카 사사키

기자간담회_2007_1011_목요일_02:00pm ~ 03:00pm
작가와의 대화_2007_1011_목요일_03:00pm ~ 04:00pm

주최_성곡미술관
기획_Yuzo Ueda (Director of Q Concept INC.)
협찬_Japan Foundation, 까사미아(우피아)





성곡미술관
서울 종로구 신문로 2가 1-101번지
Tel. 02_737_7650
www.sungkokmuseum.com






우선 배경에 대해 ● 베를린 장벽해체 이후 세계는 순식간에 급변했다. 그 때까지 세계를 지배해 왔던 이데올로기와 냉전구조는 붕괴되었고, 자본주의 체제가 승리하면서 정보의 해제와 금융시장의 글로벌화가 시작되었다. 종전에는 국방통신시스템이었던 인터넷의 보급으로 일반대중의 커뮤니케이션의 방식도 일변했다. 경제의 자유화와 중국을 포함한 사회체제의 변화로 사람들의 이동이 자유로워졌으며, 물자도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제 우리는 지구상 어디에 있어도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었고, 시차는 있지만 전자테크놀로지 덕분에 세계가 동시에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글로벌리즘 시대의 인간들은 지역 및 국경, 습관, 언어, 종교를 넘어 상호교환 가능한 매체들 속에서 산다. 인터넷 덕분에 매체들의 경계는 사라져 세계는 평면화되고 획일화되었다. New York, Tokyo, Seoul, Beijing에서 스타벅스의 커피를 마시고, Amazon.com에 들어가 전 세계의 읽을거리를 다운로드하며, 일본 애니메이션과 게임을 즐기고, 음악과 영화를 다운받으면서 세계 어디서든지 같은 일상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글로벌화의 혜택으로 대다수의 현대인이 비슷한 음식을 먹고, 비슷한 옷을 사며, 비슷한 것을 보고, 비슷한 사고를 하면서, 비슷한 환경에서 살게 되었다. 그러나 글로벌라이제이션의 유일한 채널이던 미국의 지배가 종식되고, 테러와의 싸움으로 새로운 대립이 시작되었다. 세계 시장경제의 발전은 지역격차를 낳아 다수의 빈곤층이 출현했고, 인터넷을 이용한 국제범죄도 늘어났다. 결국 모든 것이 평등하게 된 것은 아니다. 우리들은 이 글로벌라이제이션 속에서 살며, 이미 거기서 벗어날 수 없는 불행 속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테슈야 이시다_무제_캔버스에 유채_45.5×53cm_2004


커뮤니케이션의 증대 ● 우리는 예술 관련 일에 종사하고 있다. 급속히 진전되는 정보화 사회, 국제전의 증대, 광주 비엔날레를 위시해 부산 비엔날레, 베이징 비엔날레, 광저우 비엔날레, 칭다오 비엔날레, 싱가폴 비엔날레, 후쿠오카 비엔날레, 요코하마 트리엔날레, 츠마리 트리엔날레등 아시아 지역에서도 90년대부터 국제전이 급증한 것은 문화의 글로벌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아시아에서 민주화 운동과 국제전이 때를 같이 하고, 사람들의 이동이 글로벌라이제이션의 흐름을 타면서, 아시아에 자유를 가져온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와 같은 문화의 국제화, 혹은 민주화는 앞에 언급한 이데올로기의 붕괴에 따른 커뮤니케이션의 증대에 의해, 예술가들의 작품이나 사고방식에도 영향을 미치고 세계화시켰다. 물론 지역 격차를 뛰어넘는 커뮤니케이션은 인터넷을 이용한 정보의 교환으로 가능해졌다. 팩시밀리나 전화, 편지와는 달리, 인터넷은 엑셀 수식과 PDF를 사용한 화상처리를 할 수 있으며, 비디오넷으로 만 배 이상의 정보를 순식간에 보낼 수도 있게 되어, 그 결과 세계는 수 초안에 확실한 정보를 주고 받을 수 있게 되었다. 통신 속도의 발달로 사람들의 생활 양식은 시간상의 이동개념에서 공간상의 이동개념으로 변화되었다. 시간에 대한 사고, 원근의 거리 개념을 소멸시켰고, 인터넷은 24시간 지구상에서 Google을 움직이고 있다. 인터넷의 보급뿐만 아니라 휴대폰의 발달 또한 사람들의 커뮤니케이션을 한층 증대시켰다. 지구상에서 교신되는 커뮤니케이션이 눈에 보이는 전자파라면,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는 사람들의 커뮤니케이션의 전자파가 작열하는 천체일 것이다. 매일 원폭이나 수폭 이상의 에너지가 방출되고 있을 것이다. 커뮤니케이션의 증대가 사람들의 생활을 풍요롭게 하고, 예술 작품 역시 사람들의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그 역할이 바뀌어, 작품의 표현은 강도 높은 메시지를 지니게 되었고, 보다 다수의 사람들을 향해 있으며, 사회환경의 문맥 안에서 작품을 제작하는 경향이 강해졌다고 하겠다.




뉴보 아베_벨런스_나무, 아크릴_190×100×8cm


사회와 개인을 맺는 것 ● 이처럼 글로벌화된 매체가 넘쳐나는 생활 환경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가? 예술을 통해 세계의 존재방식을 더 사유해 보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여기에 네 명의 일본 예술가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들에게 공통되는 것은 인간을 모티프로 그들이 살고 있는 환경과 마음의 균형(심정)을 테마로 하고 있는 점이다.




리카 사사키_마리아8861_혼합재료, 아크릴_200×140×3cm


현재 New York을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는 모모요 도리미츠 ● 도리미츠의 작품 「Inside Track」 은 글로벌기업에 종사하는 기업가들, 세계를 무대로 일하는 기업전사의 모습을 한 오피스 워커 로봇(공업제품)이, 마루에서 네발로 기는 포복 자세로 전진한다. 이 작품은 기업의 최전선에서 쉬지 않고 일하는 샐러리맨을 전사의 모습으로 만들어, 전장(회사내부)을 이동한다. 어디에나 있는 듯한 그 전사들, 유머러스하며, 시니컬하게 보이는 Mr.Mark, Mr.Lee, Mr.Gunter는 비지니스를 시작한다. 이 작품은 광주 비엔날레(2004)에 출품한「Horizons」시리즈를 한층 발전시켜, 장소를 비지니스 오피스 안으로 옮겨 상황을 전개시키고 있다. 광주 비엔날레에서는 백 개 이상의 슈트를 입은 병사인물상, G.I.Joe들이 중동지역에 매장된 오일을 둘러싼 쟁탈전을 노골적으로 보여주었다. 백 개의 샐러리맨 상들은 단 세 개의 배터리의 힘으로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한다. 싸우는 전사(회사원)가 벽에 부딪치거나 백색의 빌딩을 들이받아 건물을 부수면서 전진해 간다. 배터리가 떨어지면 비지니스는 중단된다. 넥타이는 단정히 매고 있으면서 하반신은 느슨하게 질질 끄는 자세, 뒷모습은 관람객들을 비추면서 그들을 웃을 수도 없게 한다. 그들 덕택에 천연자원을 지니지 못한 일본과 한국의 경제는 유지되며, 중동 원유의 혜택을 입어 우리의 매일의 생활이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친다. 우리들은 비행기나 차에 타면서, 석유를 원료로 한 천을 이용한 옷을 입으면서, 생활의 전부를 중동의 석유에 의존하며 산다. 그래서 우리는 이 백개의G.I.Joe들에게 성원을 보내고 싶은 기분이 되고 마는 것이다. 도리미츠는 1990년대 도쿄에서 「미야타 지로」라는 샐러리맨 로봇을 만들었다. Made in Japan 의「미야타 지로」역시 일본에서 포복 전진하며 도쿄의 거리에서 활약한다. 사회적 지위를 지닌 기업전사 Mr.Mark, Mr.Lee, Mr.Gunter 그리고 MR.미야타는 글로벌라이제이션 속에서 살아 남는 아버지상이 되어 귀염성스런 기분과 증오스러움이 섞여, 비극의 드라마가 되어 우리에게 호소해 온다. 틀림없이 한국의 관객들도 이 로봇 기업가들을 보고 웃을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아프간 인질사건은 이와 같은 중동의 유전 쟁탈전에서 비롯된 비극이었으며, 민간인이라고 할지라도 국가의 비극이 되는 상황을 우리는 연일 뉴스를 지켜보았던 것이다. 도리미츠가 추구하는 커뮤니케이션은 비극의 아버지 상이긴 하지만, 일벌레 인간이 인간적이고 씩씩하게 사는 보통 사람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로 읽을 수 있다.




모모요 토리미슈_인사이드 트렉_가변설치_2004


데츠야 이시다 ● 데츠야 이시다는 2005년 도쿄 근교의 레지던스 타운인 마치다시에서 오다큐 전철 건널목 사고로 서른 한 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일주기 추도 전람회에서 필자가 NHK일요 미술관의 책임프로듀서에게 소개하였고, 그 후 45분길이의 다큐멘터리가 제작 방영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화집(求龍堂출판)은 3만부가 팔렸으며, 많은 젊은 관객층이 이시다의 작품을 보고 오열했다. 그가 일상을 그린 그림은 보는 사람의 마음에 생의 슬픔과 괴로움이라고 할 비통함을 안겨주었다. 이시다의 슬픔은 개인적인 비극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일본에서는 연일 보도되는 젊은 층의 이지메, 살인사건, 자살 등이 현대인의 비극을 보여준다. 전국 각지의 학교 교육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지만, 사건은 그치지 않는다. 소년의 목을 잘라 교문 앞에 놓는 범죄, 소년의 버스 하이잭, 인터넷에 살인을 예고하고 게임 감각으로 친구를 살해하고는, 다시 게임과 같이 리셋트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소녀도 있었다. 개인의 의사를 억누르는 획일화된 교육환경 속에서 일어나는 이와 같은 비극을 접할 때 마다, 피해자도 가해자도 불행하다는 생각이 든다. 학력 우선의 사회, 타자를 받아들이지 않는 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가치를 결정짓는 것은 타자를 부정하는 것이리라. 행복도 불행도 사회의 제도에 의해 결정되는 집단 논리가 개인을 말살해, 그 집단으로부터 소외되는 자는 부정되고 만다. ● 이시다의 작품 「Analysis」(분해-1999)는 볼트로 만들어진 인간으로 작가 자신이다. 볼트는 대량 생산되는 공업 제품이다. 사회의 인간들이 부품처럼 보였는지, 부품으로 이루어진 그의 집안은 황폐해진 비참한 양상을 표현한다. 도리미츠의 로봇역시 엘리트라고 불리는 고학력의 사회인을 상정하며 인간적인 감정이 결여된 대량생산의 공업제품처럼 보인다. 그것은 마치 충족될 수 없는 인간사회의 환경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는 것 같다. 처음으로 이시다의 그림을 보았을 때의 충격은 소년 살인 사건의 뉴스를 들었을 때나 이지메로 자살한 소년 소녀들의 불행을 알았을 때의 그것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것은 대다수의 현대인이 매일 겪는 인간의 슬픔, 애처로움과 닮은 감정이었다. 특히 현대 일본사회에서는 회사나 학교와 같은 조직 안에서 관리되고 폐쇄된 개인주의가 철저히 지켜져 만연하고 있는 게 아닐까. 종교심이 희박해진 현대사회에서는 마음의 연대를 구할 수도 없이, 부모자식의 연대도, 사람들 사이의 신뢰 관계도 허약해져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이 “부재화하는 자기” 혹은 “투명한 존재”임을 알고 있는 게 아닐까. 그것은 현대일본사회가 일으킨 집단적 병폐인 것이다. 불행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하는, 무너진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증명이며 실감(현실)일 것이다. 이시다가 추구하는 커뮤니케이션은 자신을 향한 또 한 사람의 내면의 타자에 바쳐진 경의일지도 모른다.




테슈야 이시다_브레이크업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1.8×73cm_1999


뉴보 아베 ● 뉴보 아베의 「self-portrait: 자화상」는 목조로 제작된 작품이다. 검은 색으로 칠한 평균대는 학교 체육시간에 쓰던 체육기구를 생각나게 한다. 그 평균대 위에 본인과 같은 인물이 균형을 잡고 한쪽 다리를 올리고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모습이다. 검은 색으로 칠한 학교 평균대는 인간사회의 제도를 암시하면서, 불안정한 미지의 세계를 예측하고 있는 것 같다. 아베의 작품은 이시다와 같이 불안한 자신의 자화상과 같이, 자신의 심경을 작품화하고 있는 것이다. 얼굴에는 검은 붕대가 감겨있어 표정을 알 수도 없다. 보이지 않는 얼굴이 관람자를 한층 불안하게 한다. 평균대 위에서는 미래를 볼 수도, 과거로 돌아갈 수도 없으며, 양 팔을 올리고 평균대(사회)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떨고 있는 듯 하다. 발끝은 극명하게 새겨져 착지점이 안정감 있게 보인다. 이 작품은 머리에 또 하나의 얼굴을 가진다. 관객은 볼 수 없지만 작품 위에서 보는 시점을 상정해 만들어진 얼굴이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사람은 그 시선을 아프도록 느낀다. 아래로부터 쳐다보면 높이 나는 새처럼 보인다. 이 작품은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보는 사람에게 균형을 요구한다. 같은 경향의 작품 「Balance」도 마찬가지로 균형을 잡은 자화상과 같지만, 잘 보면 머리가 없다. 양팔을 벌린 머리가 없는 소년과 같은 형태가 십자가의 그리스도상과 같다. 한쪽 구두는 벗어 버렸는지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가 그의 구두 한 짝을 어딘가에 감추었음에 틀림없다. 이지메를 당한 소년처럼 괴로워 보이기도 한다. 아베가 추구한 커뮤니케이션은 사회 속에서 잃어버린 자신과 만나고 싶다는 메시지를 담은 커뮤니케이션인 것이다.




뉴보 아베_자화상_나무, 아크릴_100×180×60cm


리카 사사키 ● 리카 사사키의 작품 표현은 도리미츠, 이시다, 아베의 작품과는 구별되는 특징을 갖는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앞의 세 작가의 작품의 배경으로, 세 사람의 신체의 연장선상에 있는 뇌, 사람들의 감정이나 이성적 감각을 조작하는 뇌(=마음)를 제시했다. 사사키는 자신의 뇌를 스캔해 캔버스에 옮기는 작업을 한다. 실리콘으로 뇌를 만들어 찍어 확대하거나, 변형시킨 사진을 보여준다. 우리는 이 전시에서 마음의 문제를 물으면서 마음의 소재를 생각해 본다. 대뇌와 소뇌, 우뇌와 좌뇌와 같이 뇌는 몇 개의 세포로 연계되어 감정 조작을 신호로 바꾸어 전달한다. 슬픔이나 기쁨이 신호가 되어 마치 통신 시스템과 같이 감정을 전한다. 뇌세포는 시각을 이미지로 상상하거나, 언어를 기억하거나, 계산을 처리하거나, 상황을 구성하고 편집하는 기능 등, 그 어떤 슈퍼컴퓨터에 못지 않은 능력을 지니고 있다. 사사키의 작품은 인간의 처리 능력을 지닌 뇌, 복잡하고 단층이 몇 겹이나 겹쳐진 뇌 그 자체를 보여준다. 마치 영화 「매트릭스」처럼 우리가 매스미디어 속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상징화시켜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사사키가 원하는 커뮤니케이션은 우리 자신을 컨트롤하는 기능, 뇌 자체가 감정을 지닌 인간적인 부분에서 기능만을 시각화해서 보여줌으로써, 우리들 자신의 뇌(=마음)가 시스템화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리카 사사키_칼레이도스코프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97×260×3cm


그리고 Dis-communication ● 이번 전시의 컨셉인Dis-communication은 현대사회에서 글로벌화에 따라 일어나는 소통의 부재를 추구하는 예술가들의 메시지이다. Dis-communication은 통신수단의 발달과 미디어의 진화로 인해 정보화 사회 속에서 사라져가는 소통, 인간의 감정이나 감성에 호소하는 슬픔, 괴로움, 기쁨, 유머, 냉소가 교차하는 인간 마음의 정보, 전하고 싶어도 전할 수 없는 소통의 문제를 다룬다. 이 네 명의 예술가들에게 공통된 태도와 의식은 냉소와 유머로 이 현대사회를 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마음의 충격으로 다가온다. 왜냐하면 우리들 역시 그들과 같이 도시에 사는 의식을 가진 가해자이며 피해자이기도 한 현대인이기 때문이다. 신체적 경험을 바탕으로 세계를 파악하는 그들의 통찰력은 사회라는 인간세상에서의 개인, 또는 자신만의 독특한 정신 세계 속에 속한 한 개인과의 차이에서 일어나는 아픔을 묻는다. 이번 〈Dis-communication〉전이 일본의 예술가들을 모두 한국에 소개하는 전시라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일본뿐 아니라 한국의 젊은이들도 역시 글로벌라이제이션 속에서 또 인터넷사회 속에서 생활하고 있기에 여기에 소개하는 예술가들의 메시지는 한국인들에게도 공감할 수 있는 공통된 의식으로서의 소통의 기능을 할 것이라 믿는다. ■ 유조 우에다 (김혜신 역)

Dis 는 모욕, 비난, 남에게 거역하다, 남을 바보 취급하다, 남을 모욕하다, 비난(비판)하다 라는 의미이다. discommunication(커뮤니케이션이 없는 것[상태], 말이 안 통하는 것)이라는 해석에 dis를 강조해Dis-communication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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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生態)의 메아리~몸

李 반 개인展

2007_1012 ▶ 2007_1120 / 월요일 휴관



李 반_생태의 메아리-태양을 나르는 여인_캔버스에 유채_290×218cm_2007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아르코미술관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7_1012_금요일_05:00pm

2007 아르코미술관 대표작가초대展

작가와의 대화_아르코미술관 3층 세미나실
2007_1027_토요일_02:00pm

작가와 함께하는 벽화기행
모집기간 / 2007_1012 ▶ 2007_1027
2007_1103_토요일_08:30am ~ 07:00pm

관람시간_11:00am ~ 08:00pm





아르코미술관
서울 종로구 동숭동 1-130번지
Tel. 02_760_4602
art.arko.or.kr






한국문화예술위원회(위원장 김정헌) 아르코미술관 대표작가전은 우리나라 미술계에서 독창적인 작업세계를 형성해온 중요한 원로작가를 대상으로 한다. 작품의 실험적 경향 등으로 인해 미술사적 의미와 대표성에서 소외되고 조명되지 못한 작가의 작품세계를 총체적으로 재조명함으로써 한국 현대미술사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며, 나아가 한국 현대미술사의 정리 및 연구의 토대를 마련하는 전시이다. 올해의 전시는 아르코미술관이 미술회관 시절이었던 1986년의 개인전 이후, 같은 장소에서 약 20년 만에 가지는 작가 李 반의 개인전이다. '분단 한반도'의 미술작가 李 반 선생은 1987년부터 비무장지대와 관련된 예술문화운동을 집중적으로 전개해 온 DMZ 문화운동의 산실이다. ●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으로 화해와 공존으로 향해가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작가 이반의 비무장지대문화예술운동을 새로이 조명해보는 것은 현상적(정치이념), 지리적(분단), 환경적(초자연 생태환경)으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 이반의 비무장지대 관련 예술문화운동에 대한 다양한 기록물들과 더불어, 그 동안 선보인 적 없는 거대한 평면의 인체작업, 한국의 근현대사 목탄 작업 등을 보일 것이다. 대규모 회화 인체 작업과 목탄작업은 작가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면서, 작가 李 반의 조형의미와 개념을 총체적으로 제시할 것이다.





李 반_두 아름 그리움에 두 곂의 고통_판넬 위에 천, 목탄_360×240cm_2000 ~제작중


작가 李 반 선생은 제 24회 서울올림픽 개최와 관련해 공식예술판화포스터 작가로 선정되었다. 1987년 남관, 김기창 선생등과 함께 시카고의 랜드팔 판화공방(Landfall Press)에서 <비무장지대를 민족 공원으로 만들자>라는 ’88 올림픽 공식예술판화를 제작한 이후, 오랫동안 집중해 온 비무장지대 예술문화 운동들을 본격적으로 기획하고 주도하였다. 2000년부터는 한국의 근현대사를 주제로 한 대형 목탄화 들을 제작하였고, 안성 고삼호수 부조벽화와 도라산역 통일문화 광장의 대형 벽화를 제작하는 등 분단 한반도의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잊지 않고 꾸준하게 작업해 오고 있다. ● 제 1전시실에는 1987년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는 李 반 선생의 비무장지대 관련 작업들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각종 자료들과 실물들을 비롯하여 현재에도 진행 중에 있는 목탄화, 도라산역 벽화작업에서 공개되지 않은 작품들이 총 망라되어있어 우리나라의 현실, 사회 속 문화 운동가로서의 李 반을 만날 수 있다.




李 반_생태의 메아리 - 몸, 부활_캔버스에 유채_259×163cm_2007


1990년대 비무장지대 관련 작업백두한라수토통합통혼제_1990년에 시작하여 1991년까지 행해진 통합통혼제는 총 6차로 진행되었다. 1990년 7.4 남북공동성명 이후 거행되기 시작했으며, 이 중 제 1차는 한라산에서, 제 2차는 백두산에서 그리고 제 3차는 다시 한라산에서 시행되었다. 작가 李 반 선생은 천지의 수토와 백록담의 수토를 섞는 행위, 남과 북을 남녀로 의인화시켜 하나가 되는 상징적 행위를 마치 ‘제례의식’처럼 보여 주었다. 특히 공간 창립 3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에서 보여 주었던 제 4차 통합통혼제에서 李 반 선생은 백두산과 한라산의 물과 흙을 섞은 후 그것으로 거대한 한반도를 그리고, 자신의 맨발의 끝을 한라산에, 머리는 백두산에 닿도록 엎드리는 행위를 했다. 살아있는 몸을 통해 허리가 끊긴 한반도가 하나 되게 하고 통혼을 하게 함으로써 남북 화해와 통일에 대한 염원을 강하게 표현한 것이었다. 이후 91년에 거행된 제 5차, 6차 통합통혼제는 일본, 스페인에서 행해졌는데, 두 국가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그 의미와 내용들이 확장되는 결과를 볼 수 있었다.




李 반_고향에서_캔버스에 유채_259×194cm_1984


비무장지대예술문화운동 작업전(Front DMZ) ● 1991년도에 시작되어 97년까지, 2년마다 총 4회에 걸쳐 진행된 이 작업전은 비무장지대에 관한 한 정치·경제적 계획보다는 예술·문화적 계획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선언으로서의 운동이었다.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비무장지대가 머지않아 남과 북이 평화로워질 때, 이 땅은 되살아난 생명과 평화의 상징, 분단의 역사가 승화된 창조와 희망의 공원으로 개발이나 상행위를 할 수 없는 자연공원으로 보전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Front DMZ를 기획하고 주도한 작가 李 반 선생은 거의 모든 장르의 예술가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함으로써 이러한 예술문화 운동이 정치와 사회 변화를 이룰 수 있기를 희망했다. 이와 함께 비무장지대에 대한 토론, 학술회의도 국내·외적으로 활발히 진행시켰으며 이러한 비무장지대 관련 활동과 움직임을 위해 모았던 자료와 그 결과물들을 엮어 1997년 『비무장지대의 과거·현재·미래』를 편찬하였다.




李 반_팽창력 - 비무장지대의 겨울_혼합재료_227×181cm_1978


2000년대 한국근현대사 목탄화 ● 작가 李 반 선생은 1999년 경기도 안성에 작업실을 마련한 이후, 대형 평면회화작업을 꾸준히 진행해왔다. 총 14점으로 계획되어 진행 중인 가운데 이번 전시에는 3점의 작품이 공개된다. 정주영, 신동엽, 한용운, 고 은 등 한국의 정치ㆍ역사ㆍ사회적으로 중요한 인물들과 순간들을 한 눈에 보여주고 있어 시대의 자화상을 방불케 한다. 작가 스스로 이 작품을 일컬어, 분단한반도의 현실을 반영한 비무장지대 작업전의 연장이라고 언급한 만큼, 이 목탄화 시리즈는 시끄러운 한반도의 지난 역사들을 그렸을 뿐 아니라, 발전적인 미래상까지도 제시한다.

2007년 벽화 ● 작가 李 반은 통일부의 위촉을 받아 2005년도부터 도라산역 통일문화 광장에 벽화작업을 시작했다. 비무장지대 작업전, 회화와 함께 이 벽화 작업은 작가 李 반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로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만해 한용운의 생명사상을 축으로 작업되었으며 현재 도라산역에는 총 14점이 전시되었고, 도라산 역사에서 미처 선보이지 못한 작품들이 이번 전시를 통해 모두 공개된다. 각종 영상 ● 비무장지대 작업전과 관련하여 빼놓을 수 없는 ‘짓거리’(퍼포먼스)를 비롯하여, 작품제작과정 등이 담긴 영상이 전시될 것이다. 이처럼 제 1전시실에서는 매체를 불문하고, 그의 일관된 주제의식이 담긴 다양한 작품들을 다각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李 반_경기도 안성시 고삼호수_수문벽화_10×290m_2005~2006


제2전시실 ● 작가 李 반은 이례적으로 대학원을 졸업하기 이전인 1968년에 첫 개인전을 열었다. 작업 초기부터 뿌리의 팽창력을 주제로 작품제작을 해 왔는데, 이후 다양한 사물들의 물리적인 변화와 변형에 관심의 초점을 두었다. 회화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라고 여겨졌던 캔버스와 물감을 가지고 그러한 관심들을 표현하면서 물성을 드러내는 작업들을 선보였다. 특히 물감이 두텁게 발린 캔버스를 뚫는 작업을 통해 팽창의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구현해 내었다. 하지만 캔버스의 그러한 뚫림은 작가의 행위를 통해서만 구현되는 것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신체성이 부각되었다. 이러한 신체성은 90년대의 다양한 짓거리들에서 행위하는 신체를 통해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작가는 이러한 작업들을 통해서 드러난 신체성 뿐만 아니라, 작가로서 李 반식의 인체조형에 관한 고민을 꾸준히 해 왔으며, 2007년 신작 〈생태의 메아리~몸〉연작에서 이를 풀어내고 있다. 이와 같이 제 2전시실에는 과거 70년대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온 인체의 조형적 탐구에 대한 집념을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작가 李 반 선생의 내재적인 힘이 회화 작품 안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 조형적인 탐구가 어떤 흐름을 갖는지 그 여정을 보여줄 것이다.




李 반_작업실전경


1970-1980년대 평면작업 ● 작가 李 반 선생의 초기 70~80년대 작품에는 팽창, 수축, 뚫음, 구김, 찢음 등과 같은 사물의 물리적인 현상에 주목한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1973년 이후 줄곧 ‘뚫음’을 추구해오던 李 반 선생은 84년 개인전 “구기고 흩어지는 이름들” 을 기점으로 ‘구김’ 연작으로 그 성격이 변화하였다. ‘구김’ 연작에서는 ‘뚫음’ 연작에서 예견되었던 신체성이 더욱 극적으로 확대되어 나타나는데, 이 때 ‘뚫림’과 ‘구김’은 단순한 조형성에 입각하여 채택된 것이 아니라 전쟁의 상처와 분단의 고통, 군사정권의 폭력에 대한 저항의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으로써 李 반 선생의 내재적인 힘이 담긴 행위적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이번 전시를 통해 선보이는 ‘뚫음’ 연작들은 흰 색 물감과 브론즈의 푸른색, 그리고 붉은 황토 등 다양한 재료들의 특징들이 서로 다른 느낌의 물성을 만들어 내는 것을 경험할 수 있게 한다.

2007년 〈생태의 메아리~몸〉 ● 1980년대 다양한 사물들을 이용한 프로타주 기법이 이번 신작에서 다시 선보인다. 하지만 그 이전 작품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인체들이 다양한 형상들로 구겨진 천에 탁본처럼 찍혀 나와 그림자처럼 캔버스 위로 드러난다. 작가는 피부-살결 같은 분홍빛을 띠는 〈생태의 메아리~몸, 태양을 나르는 여인〉, 〈생태의 메아리~몸, 천지창조의 그림자 A, B〉 등을 통해 자연으로서의 인간을 李 반식의 인체 조형성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림자에는 경계선이 존재할 수 없다. 허상적 선도 아니다. 어두움과 밝음, 가까움과 멀음, 강약, 너와 나, 이것과 저것, 저쪽과 이쪽, 있음과 없음 등, 경계선이 없는 경계선이어야 한다. 그래서 절대적 경계선의 회화인 것이다."(작가노트 중에서)

작가와의 대화
○ 참여작가 : 李 반
○ 일시 : 2007. 10. 27 (토), 오후 2시
○ 장소 : 아르코미술관 3층 세미나실

작가와 함께하는 벽화기행(비무장지대 내 도라산 역, 안성시 고삼호수)
○ 참가자 모집 : 10월 12일~10월 27일 (선착순 35명)
○ 참가비 : 20,000원(교통비, 식사비 등 부대비용 포함, 전시 관람권 증정)
○ 참가신청 : art@arko.or.kr 혹은 02)760-4855/4893
○ 일시 : 2007. 11. 3 (토), 오전 8시 30분 ~ 오후 7시

교육프로그램
○ 어린이 참여프로그램
“부모님과 함께”
평일: 10.18/ 10.25/ 11.01/ 11.08/ 11.15, 3:00~5:00 pm
주말: 10.20/ 11.01/ 11.18 11:00am~1:00pm, 2:00~4:00 pm
워크샵 “arTko"
매월 둘째, 넷째 주 토요일 / 둘째 주 일요일 10.13/ 10.14/ 10.27
11:00 am~1:00 pm, 2:00~4:00 pm
○ 색다른 상상
10.17/ 10.24/ 10.31/ 11.07/ 11.14, 3:00~5:00 pm
○ 학교연계프로그램
“움직이는 미술관(대규모)”, “In & Out(소규모)” 단체별 시간 조정

* 프로그램 및 일정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미술관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http://art.arko.or.kr / 02 760 4602, 4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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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장섭_주재환展

2007_1005 ▶ 2007_1030



손장섭_금강산거시기바위_캔버스위에아크릴_60×72cm_2007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갤러리 눈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7_1005_금요일_06:00pm






갤러리 눈 창덕궁점
서울 종로구 와룡동 5-14번지
Tel. 02_747_7277
www.110011.co.kr






높은 구름의 고개를 넘어 가을이 왔습니다. 가을 하늘의 청명함처럼 우리 미술계에 작가정신을 일깨워주시는 손장섭, 주재환 두 분 선생님을 모시고 갤러리 눈에서 전람회를 엽니다. 모처럼의 좋은 전시에 미술애호가 여러분들의 관람을 바랍니다.




손장섭_금강산폭포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60cm_2007



손장섭_남해부표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0×72cm_2007



손장섭_울진에서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0×72cm_2007



손장섭_울진향나무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0×72cm_2007



주재환_캔디1_캔버스에 오브제_53×45cm_2007



주재환_캔디3_캔버스에 오브제_53×45cm_2007



주재환_캔디6_캔버스에 오브제_65×53cm_2007



주재환_캔디8_캔버스에 오브제_53×45cm_2007



주재환_캔디10_캔버스에 오브제_53×45cm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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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ght and Structure

갤러리 보다 기획 Noah McLaurine 사진展

2007_1004 ▶ 2007_1017



Noah McLaurine_Light and Structure_디지털 프린트_각 100×80cm_2007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갤러리 보다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7_1004_목요일_06:00pm

갤러리 보다 기획전




갤러리 보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1461-1 한라기산 B/D 2F
Tel. 02_3474_0013/4
www.bodaphoto.com






이 전시는 우리의 주변과 그 주변이 우리에게 주는 영향을 보여주기 위한 나의 표현의 산물이다. 이 전시 안에서, 보이는 주변의 것들이란 바로 내 밖에 존재하는 형태적인 외형이다. 나는 이런 outside 세상 속에서 우리에게 행하여지는 반작용적인 요소들이 다시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을 탐구 하고, 이 전시를 통해 그것들이 보이길 바라며 이 작업을 진행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내가 얻은 이번 전시의 시각적 소재 두 가지는 바로 Light and Structure 이다.




Noah McLaurine_Light and Structure_디지털 프린트_각 100×120cm_2007


Light (빛) 은 outside 세상 속에서의 중요한 요소임에는 틀림없다. 물리학적인 의미에서 light (빛) 이 세상의 색을 만드는 것이며, 정확히 어떤 효과를 내는지는 알지는 못하지만 우리의 감정적 상태에 영향을 주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번 전시에 표현된 나의 모든 이미지는 이른 아침과 늦은 저녁에 촬영 되어 진 작품이다. 이 시간은 Light (빛) 의 감정적 의도를 표현 하는 데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때이다. 이른 아침의 light (빛) 은 우리를 명료하고 강한 감정적 위치에 놓이게 하고, 저녁의 light (빛) 은 그 풍부한 황금색 물결로 인해 슬프고도 고요한 감정적 동요를 낳기 때문이다.




Noah McLaurine_Light and Structure_디지털 프린트_각 100×80cm_2007


Structure (구조) 는 형태적인 측면에서 감정적 동요를 제공한다. 만약 좋은 light (빛) 으로 색감적 측면에서 효과적인 감정적 표현을 했다 하더라도, 형태적인 면에서 그 빛을 뒷받침 해주지 않는 다면 그 빛은 그저 낭비 되어 버린 쓰레기에 지나지 않다. Stephen Shore의 현란한 이미지들은 light (빛) 과 Structure (구조) 의 - Stephen Shore의 image 속에 등장하는 건물들 - 완벽한 조화 속에서 그 현란함을 더하고, 완성되어진다. 또한 William Eggleston의 작업 속에서 강하고 풍부한 색, 즉 빛이 만들어내는 효과에 의해 이미지 중앙에 위치한 세발자전거의 시각적 품위와 강한 호소력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light (빛) 과 structure (구조) 는 내 작업의 내용과 형태를 담는 가장 좋은 소재가 된다. 이들의 아름다움은 바로 나에게서 나의 외적인 세계에 대한 아름다움을 끌어내고 있다. 나의 모든 이미지는 이러한 강력한 빛의 능력을 가진 색들이 존재하며, 이 색은 나의 사진들을 강력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힘이 된다.




Noah McLaurine_Light and Structure_디지털 프린트_각 100×80cm_2007


The aim of this exhibition is to highlight the ways that we react to our surroundings and the effect that those surroundings have on us. The surroundings that I have chosen to explore are external. I want to explore what influences our reactions to the outside world. There are two main factors in this respect: light and structure. Light is by far the most important element of the external world. It (literally) colors this world and, thus, affects our emotional state to a degree that is hard to fully comprehend. All of these images were taken either early in the morning or in the late afternoon. During these times, light is at its most (emotionally) intense. Morning light allows us a clarity and strength that makes up for whatever doubts we may be feeling about our reasons for rising so early. Afternoon light, in its rich orange glow, evokes a strange sense of sadness and serenity. Structure provides these emotional responses with form. The quality of light may be beautiful, but if the structure photographed does not match that beauty, the light is wasted. The deceptive beauty of Stephen Shore’s images lie in the fact that light matches form so well. Buildings are granted beauty through their relationship to light. A similar thing can be said about William Eggleston. A tricycle placed in the center of the frame gains a certain dignity and eloquence when coupled with rich, strong light. Thus, light and structure represent the content and form of my images. Their beauty allows me to express the beauty of the external world. These images are all in color, for so much of light’s strengthresides in its color. And it is this strength that makes all photos great. ■ Noah McLaur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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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적 현실-complex

설총식 개인展

2007_1010 ▶ 2007_1016



설총식_The walker_F.R.P위에 우레탄 페인팅_107×77×225cm_2007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이미지 속닥속닥 Vol.050914a | 설총식 조각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7_1010_수요일_05:00pm

작가와의 만남_2007_1012_금요일_04:00pm / 사회_김준기

후원_문화예술위원회





관훈갤러리 신관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5
Tel. 02_733_6469
www.kwanhoongallery.com






우화소설(寓話)【명사】: 인격화한 동식물이나 다른 사물에 비겨 풍자나 교훈의 뜻을 나타내는 이야기《이솝 우화 따위》. -한글과 컴퓨터 사전
우화소설(寓話小說)【명사】: 무생물ㆍ동물ㆍ식물 등을 인간과 같이 언동을 부여하녀 인격화시킨 소설. 풍자적인 성격을 띠고 있으며, 윤리적인 교훈이 제1차적인 목적이 되고 있음. -국어대사전(이희승편저)


표현주의적 우화(寓話)의 세계 ● 설총식의 작품들은 관객들에게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한다. 이러한 작품의 성격을 어렵게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흔히 ‘서사적narrative’이라고 말한다. ‘이야기’ 혹은 ‘서사’는 주로 문학이라는 장르가 담당했다. 특히 지난 모더니즘 시대에 미술은 오직 미술만의 순수성을 추구하여 가능한 한 ‘이야기’를 멀리했다. 오직 ‘시각’, 그리고 미술품을 구성하는 손질과 물질의 기본과 본질에만 매달렸다. 따라서 미술에서 문학적이거나 서사적 요소는 천하거나 불필요한 것으로 여겼고, ‘이야기’가 있는 작품은 모더니즘의 수직적 계층분류에서 ‘저급미술low art’로 취급했다. 이러한 모더니즘 시대 미술의 진행방향은 절대주의 혹은 미니멀리즘에서 그 극단적인 모습을 띠었다. 캔버스나 마포 위에 흰색 유화물감을 그저 수평으로(혹은 무작위로) 칠하고, 작품 제목도 물감회사 이름 그대로 〈Winsor White #00〉으로 했던 로버트 라이먼Robert Ryman의 작품이나, 캔버스 위에 푸른색 물감을 수직으로 긋거나 점을 찍는 것으로 작품을 마무리하고 제목을 〈선에서〉 혹은 〈점에서〉로 붙였던 이우환을 떠올리면 모더니즘 미술의 한 끝 지점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모더니즘이 선호했던 추상미술도 이러한 방향과 깊은 관련이 있다. ● 설총식의 작품은 모더니즘이 추구한 바로 그러한 방향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그의 작품은 추상이 아니라 형상적figurative이다. 모두 인간과 동물들의 모습이다. 정확히 말하면 의인화된 동물들이다. 원숭이, 곰, 철새, 사자, 부엉이, 뱀, 고양이 등 그것들이 각각 우리에게 이야기를 건넨다.




설총식_The walker_F.R.P위에 우레탄 페인팅_85×85×190cm_2007


그래서 그의 작품들은 문학 중에서도 우화(寓話:fable)를 연상케 한다. 한국의 〈토생전〉, 그리고 이솝Aesop이나 라퐁텐느Jean de la Fontaine의 저작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우화들은 동물이나 식물들을 의인화 하고, 그들의 사고방식과 행동결과를 통해 인간에게 어떤 지혜나 교훈을 준다. 거의 모든 언어문화권에서 우화가 발생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우화의 오랜 역사는 그것이 인류에게 얼마나 보편적이며 두루 흥미를 끌어왔는지 증명한다. 작가는 관객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싶어 하고, 그의 그러한 욕구가 우화의 흥미와 보편성에 주목하게 했을 것이다. 그의 작품은 모더니즘의 미학처럼 다만 거기에 자족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무엇인가를 외부로 말하고, 묻고, 자극하고, 반응을 기대한다. ● 관객과 소통하기 위해서 작가는 우선 작품들이 관객들의 눈에 띠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는 동물과 인체를 결합한다. 그래서 동물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고, 인체는 각각 동물의 외형적 특징과 비례를 갖고 있다. 이를테면 원숭이의 긴팔과 곰의 굵고 짧은 다리 등이 그러한 것이다. 얼굴은 동물의 형상이나, 그러나 거기엔 인간의 표정과 몸짓이 있다. 작가는 그러한 형상에 정성들여 색채를 입힌다. 일반적인 조각작품에서 보기 힘들만큼의 화려한 채도를 거기에 가한다. 그가 만드는 작품은 실내에 국한하지 않고 특별히 야외설치를 예정하고 제작하기 때문에 우레탄과 같은 강한 도료를 쓴다. 동물과 인간이 오버랩된 독특한 형태와 동작, 선명한 색채가 먼저 관객의 눈길을 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작품의 전체를 읽게 만든다.




설총식_Cat-Cher_F.R.P위에 아크릴 페인팅_64×20×15cm_2005


우리는 그의 작품을 기원전의 이솝우화에서부터 20세기의 우화소설 조지오웰George Orwell의 〈동물농장〉처럼 읽을 수 있다. 그 우화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단지 동물의 세계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들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환경과 조건들, 주변의 여러 성격과 거기에 반응하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시대상과 사회상이 노골적으로 혹은 은유적으로 나타난다. 동물들은 각각의 신체와 행동적 특징을 지닌 채, 인간의 옷을 입고 있다. 그 행위와 포즈, 그리고 옷 등에서 우리는 그 동물의 사회성을 읽을 수 있다. 이를테면 〈집시 시리즈〉의 철새는 겉보기는 그럴듯하지만 뿌리 없이 떠도는 사람들을, 곰은 삶의 진정한 자유를 잃고 하루하루 주어진 일만 되풀이 하며 사는 “미련 곰탱이”들을, 사자는 남성의 성적 욕구와 갈등을, 고양이는 기회주의적 처신을 의미하거나 상징한다. 그리하여 그것들은 다시 나 자신과 우리의 욕망과 부대낌,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이 세계의 조건과 구조를 생각하게 한다. 우리로 하여금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것’, 이를테면 자신과 이 세계를 객관적으로 돌아보게 하는 것, 그 기회를 우리는 설총식의 작품 앞에서 가진다. ● 그런데 작가가 그리고 있는 그 세계는 어떤 세계일까. 내가 보기에 그 세계는 작가가 구사하는 색채와는 달리 그리 밝지 않다. 우리의 삶이 얼마나 본질을 떠나 겉돌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진정한 생명력을 잃고 비창조적으로, 그리고 수동적으로 연명하고 있는지를 나는 그 작품들에서 읽는다. 책가방을 메고 그저 주어진 길만 가는 곰부자(父子), 그럴듯한 옷을 입고 하늘을 날고 있으나 어딘지 부질없는 욕망과 지친 표정의 새들, 욕망에 가득찬 표정으로 줄잡고 기어오르는 고양이, 복지부동의 자세로 앉아있는 〈자리 지키기〉의 원숭이, 뒤집어진 밥그릇 위에 두 손을 모으고 앉아있는 충견, 한 마리의 생선처럼 접시위에 뒤집어져 있는 남자 등, 그가 그동안 보여준 우화속의 동물들은 한결같이 우리들 삶의 고단함을 보여준다. ● 내가 알기론 작가 설총식은 말이 적은 사람이다. 현실세계에서 내뱉지 못하고 있는 말들을 그는 작품세계에서 풀어 펼쳐보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언젠가 이 작품들이 모여, 조지 오웰이 아니라, 설총식의 〈동물농장〉이 우리 앞에 펼쳐질 수도 있겠다고 상상하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는 점입가경으로 그가 펼쳐보일 아름답고 쓰라린 우화를 기대해도 될 것이다. 우리의 현실이 보다 더 생생하고 신랄하게, 그리고 밝음과 어둠이 교차하며 드러나는 입체감 있는 드라마를. ■ 이태호




설총식_Two Fighter_F.R.P위에 아크릴,우레탄 페인팅_245×125×185cm_2007


fable 【noun】: a short tale to teach a moral lesson, often with animals or inanimate objects as characters; Aesop's fables fable novel 【noun】: a narration intended to enforce ethical lesson with satirical feature, as its primary purpose, usually involving personified animals

The World of Expressionistic Fable ● Seol's works of art tell a story enthusiastically. Some pedantic people call it narrative. The role of tales and narrations is usually assigned to the genre of literature. During the Modernism era, artists definitely kept a distance from 'narration' in its pursuit of pure art itself. 'Aesthetic gaze' only served as an essential component along with the artistic treatment of materials. Literary and narrative elements in visual art were treated low or unnecessary, therefore art with a narrative was felt demeaning by its own hierarchial arrangement. The prevailing current of Modernism reached to the extreme in Absolutism and Minimalism. In the case of Winsor White #00 by Robert Ryman, lines were delineated with white oil pigment horizontally (or randomly) and the title was after the pigment manufacturer. With the vertically drawn line with blue pigment on a canvas or a single dot in On The Line and On the Dot by Lee UFan, you would not feel very hard to understand the extreme polarity of Modernistic art. Abstract art preferred by Modernism was deeply involved with these features as well. ● Seol's works confront face to face with those pursuits of Modernism, as he employs the strategy of expressing figurative rather than abstractive. They are mostly images of human beings and animals. Specifically, they are personified animals. Monkeys, bears, birds, lions, owls, snakes, and cats talk to the viewer.




설총식_그녀의 경쟁력_F.R.P위에 아크릴 페인팅_40×30×30cm_2006


They are associated with fable novella among genres of literature such as Story of Sir. Hare of Korea, the well-known stories of Aesop's and Jean de la Fontaine's, enforcing moral truth through the consequences of their behaviors or mental structure. The ubiquitous presence of fable beyond the barriers of linguistic zones evidently reveals the extent to which fable has played a significant role as one of the most enduring forms of folk literature. Seol's yearning for the communication with the audience must have led himself to give attentions to the playfulness and universal traits of fable. Unlike the self-sufficing aesthetics of Modernism, Seol's works talk outwardly, pose questions, stimulate and expect responses. ● Seemingly Seol assumes that works need to stand out in order to ascertain a preferable communication with the spectator. Combining animals and human beings, the animals resemble humane forms, and human bodies have external physical traits and proportion of animals. Among those are long arms of a monkey and stout legs of a bear. Animal faces put on peculiar facial expressions and body movements of human beings. The exuberant coloring, as a result of great efforts, is not usually seen in other sculptures. Seol employs strong pigments like urethane as most of his works were intended for the outdoor installation. The audience are drawn attentions to the hybrid in forms and movements combining animals and human figures, along with clearly contrastive colors, thus proceeding to appreciate the rest whole of the works.




설총식_Artist_F.R.P위에 아크릴 페인팅_25×45×20cm_2005


We may get access to Seol's works like Aesop's fable in the mid-sixth century BC and Animal Farm by George Orwell in the twentieth century. The animals present in the fables inhabit some peculiar worlds. They depict environmental conditions where people dwell in as well as a variety of human characters. They metaphorically or bluntly address the realities of our time and our society. Social characteristics are readable through behaviors, positions and outfits, despite their inherent physiognomy and behavioral traits. Gipsy Series shows a bird as a metaphor for people wandering from place to place despite the sumptuous finery. A bear is for a dullard stuck in daily routine and missing genuine freedom in life, while lions are for males suffering from sexual desire and conflicts, and cats are for opportunists. These lead us to look back on the conditional structure of our surroundings which are full of tugs of war between ourselves and our desires. Seol's works suggest an opportunity to meditate and retrace our steps and the world.




설총식_Gypsy_F.R.P위에 아크릴 페인팅_가변설치_2007


What sort of world does Seol portray? Unlike the external glitter, they look quite dim. They let the viewer notice how far our lives have gone astray from the essence of life, with no vitality to liven up drab and humdrum lives. Bear father and son wearing bags, walk through all the way but apparently with no destination. Birds are flying tired with insatiable desires, and a cat is clawing his way up with the greedy face. A monkey is sitting shrinked with fear in Holding a Position, and a dog is folding his hands on the overthrown bowl, and a guy is lying on his stomach like a fish on a tray. The animals shown in his sculptural fables display the agony of living in our lives. ● Seol speaks less than others, as far as I know. He probably expresses what he could not spit out in the actual world through the visual expressions. I dream of a moment when these works gather and create another version of Animal Farm. The sculptural drama by Seol will be tinged with bittersweet hue and interwoven with the contrast between brightness and darkness, uncovering the stark reality of our vivid lives. ■ Lee Tae-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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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예철 그림조각展

2007_1010 ▶ 2007_1016



박예철_관계_painted steel_70×6×40cm_2007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모란갤러리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7_1010_수요일_06:00pm




모란갤러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7-28번지 백상빌딩 B1
Tel. 02_737_0057
www.moranmuseum.org






重 輕 森 林 : 중경삼림 가볍고 무거운 숲 사이에서... ● 미니멀리즘 조각은 단순하면서도 조형적 매력을 한껏 느끼게 해주는 작품들로 예술의 격동기를 함께해 왔다. 추상적 형상을 통해 전통적인 재현미술의 환영을 포기하고 자연의 모방이란 고전적 발상으로부터 해방되면서 현대조각의 격동기가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추상조각은 지나치게 형이상학적으로 제작되어 예술의 자율성을 무시한 채 엘리트주의의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작용한다. 이는 내용의 부재란 비판 앞에 노출되며 대중과의 간극을 벌려놓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 반면 매스미디어가 쏟아내는 대중이미지의 차용으로 시작된 팝 아트는 대중적 이미지를 전략적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예술의 순수주의에 대하여 비평을 가한다. 저급하고 가벼운 의미를 매체들과 실생활의 오브제의 등장은 소위 고급예술을 지향하는 미술관을 점령하기 시작하며 급기야 수퍼마켓에 놓여있던 비누상자마저 예술작품으로 분류된다.




박예철_새빨간_painted steel_140×15×110cm_2007



박예철_영희_painted steel_30×5×40cm_2007


포스트 모던이후 동시대 예술은 더 이상 존재에 대한 탐구나 엥포르멜과 같은 추상적인 조형성과 형이상적 원초적 물음을 고려할 필요가 없어졌다. 작가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작은 현상에 주목, 그 주위를 아우르는 경험들을 작품에 녹여내고 보는이의 공감을 끌어내는 것으로 진화한다. 이는 곧 작품을 통해 타자와의 소통이 예술적 가치의 우위로 인식되는 계기로 전환되며 더 이상 예술은 심각한 것이 아닌게 되어버린다. 여기서 우리는 작품이 대중과 맺는 관계나 소통에 대한 문제를 떠올릴 수 있다. ● 작품은 생산자에 의해 생겨난 물질이나 이미지다. 작품을 생산한 작가와 관계를 맺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감상하는 관객과도 관계를 맺고 있다. 나아가 현재의 작품들은 하나의 대상으로 관객에게 던져지고 관객들은 여기에서 의미들을 찾아낸다. 작품은 관객에게 무한히 열린 대상이 되어 서로간의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포스트 모던 이후 작품과 관객 나아가 예술과 대중의 소통이 강조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 앞서 밝혔듯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대중들은 예술적 아우라만을 바라보지 않고 우리들과 소통 할 수 있는 작품들을 요한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들은 대중과 예술사이의 경계에서 심각한 고민과 갈등 안에서 작업에 임한다. 박예철도 마찬가지다. 보는이의 소통을 이끌어 내려는 노력에 더해 전통적인 조각의 양식을 빌려 시각적 조형성과 조각의 정체성을 살려내려 애쓰고 있다. 그것은 다소 친근한 만화캐릭터, 혹은 어릴 적 친구의 그림에서, 조카의 그림일기에서 보았을 법한 형태의 입체로 등장한다. 친근하고 단순하며 귀여운 빨간색의 강아지, 허리가 긴 개, 다소 유치해 보이는 듯한 도시의 이미지로 비추어진다.




박예철_꿈_painted steel_가변크기cm_2007



박예철_젊은 조각가_painted steel_75×30×90cm_2007


박예철에 작품의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작가가 살아오면서 상상했던 사물들이다. 각각의 캐릭터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연관되어 보이기도 하나 딱히 드러낼만한 연결고리는 없다. 작가는 그저 제시할 뿐이다. 자신의 기억 속 캐릭터 사이사이를 비워놓고 관객으로부터 그 연결성을 이끌어 내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다. 관객들은 박예철의 캐릭터들과 그들이 놓여있는 위치 혹은 형태와 색에 따라 각각 캐릭터들 사이에서 서사구조를 유추해내게 된다. 박예철은 그렇게 타자와 자유로운 관계를 유도한다. ● 오늘날 조각으로 인식되는 객체는 입체 혹은 조형의 의미가 더욱 강조되고 있다. 깍고 다듬는 과정에서 물성에 대한 고민들이 한가지 매체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물들이 재료이자 작품으로 바뀌게 되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박예철은 물성의 이해에 대한 면에서 전통적인 조각의 영역을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것에 얽매이지도 않는다. 다만 이전과는 다른 차원으로 철에 접근하며 자신의 가진 예술적 층위를 들어내는데 적극 활용한다. 작가는 철을 다루는 (붙이고 갈아내고 새기고 두들기는) 과정으로부터 탈피하려 한다. 이는 작가가 현대조각을 이야기 할 때 빠질 수 없는 철조각을 계승함과 동시에 적극적으로 개척해내려는 노력으로 해석된다. 작가가 조각에 대한 접근에 있어 재료에 충실하려하기 보다 재료를 재대로 이해하고자 하는 실험정신이 담겨 있는 것이다.




박예철_뷰티풀_painted steel60×6×24cm_2007



박예철_2007 대한민국_painted steel_30×30×30cm_2007


그렇기에 철에 다가가는 박예철의 감성은 남다르다. 우리가 그동안 알고 있던 철의 속성을 최소한으로 시각화 시키며 작가가 발견한 새로운 시도와 우연적인 결과를 추구한다. 작가는 용접 후에 용접부위를 갈아내고 색을 칠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색을 먼저 칠하고 용접하여 용접부위 주변의 안료들이 자연스럽게 타들어가는 효과를 연출한다. 이렇게 되면 용접 자욱과 함께 면의 중심으로부터 외각용접 부위를 향해 자연스러운 그라데이션을 형성한다. 작품 주변의 테두리는 명확해지고 작품에 대한 주의력을 확장시킨다. ● 알 수 없는 텍스트들을 철 표면에 새기는 방법 또한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철에 대한 접근이다. 신문지 뭉치에 쌓여진 도색된 철을 물로 불린 후 표면을 씻겨내면 표면엔 신문지의 텍스트와 이미지가 새겨진 안료들만 남게 된다. 이렇게 신문과 잡지에서 오려진 불특정한 이미지들의 큐빅은 차곡차곡 쌓여 또 하나의 이미지 큐빅으로 탄생된다. 여기에 등장한 대중이미지들은 서로 접촉하고 충돌하며 새로운 의미를 창출해낸다. 좌우가 뒤바뀌고 단락이 끊긴 텍스트들은 이미지로 변화되어 큐브들의 집합에 치환된다. ● 그의 조각은 자신의 기억 속에 내재하는 유아적 모티브를 환기 시키고 거기에 철의 다양한 실험을 거친 시각적 조형성을 더해 대중과 소통하려는 흔적이 느껴진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조각의 태생적인 한계를 철 조각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이해된다. 박예철은 마치 무거움과 가벼움의 숲에서 단서를 찾아 나가고 있는듯하다. 그리고 그 숲을 개척해 나가는데 보는 이의 감성도 함께 동참시킨다. 때문에 그의 작품에는 중경(重輕)이 함께 묻어난다. ■ 황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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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un

Noguchi Rika 사진展

2007_1002 ▶ 2007_1111 / 월요일 휴관



Noguchi Rika_The Sun #3_컬러인화_46.3×65.3cm_2006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몽인아트센터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7_1011_목요일_06:00pm

주최_몽인아트센터
전시기획_사무소

관람시간_11:00am ∼06:00pm





몽인아트센터
서울 종로구 삼청동 106
Tel. 02_736_1446~8
www.mongin.org






"나는 진실을 찍고 싶다.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을 발견하고 싶다."
"내가 다이버를 처음 만난 것은 어느 겨울날이었다. 그는 마치 달을 향해 떠나는 우주항해사처럼 보였다."




Noguchi Rika_The Sun #11_컬러인화_46.3×65.3cm_2006


도시풍경과 자연풍경을 찍는 사진작가 노구치 리카의 사진은 낭만적 풍경의 전통에 속해 있다. 큐 레이터이자 평론가인 가네히라 히코타로는 노구치 리카를 일본 현대미술의 주역으로 떠오르고 있는 잠재력이 있는 작가들 중 하나로 꼽으며 그의 작업 〈The Sun〉(2005-2006) 시리즈에 대해 그리 새 롭지 않은 태양이라는 소재를 신선하게 바라봤다는 점이 이 작품의 미덕이다. 그녀는 필터를 통해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존재하는 태양을 작고 조용하며 건강하고 기쁨을 느끼게 하는 존재로 보여줌 으로써 고요한 세계관을 표현했다 고 평가했다. 노구치 리카가 속한 세대, 즉 1960년대 후반 이후 에 출생한 작가들은 이론적이기보다는 감각적이며 지각(知覺)적인 경향을 보여주고 있으며, 최근 이러한 특징을 하나의 전시로 묶어냈던 것이 미술평론가 마쓰이 미도리(Matsui Midori)가 기획했던 〈The Door into Summer: The Age of Micropop〉(Contemporary Art Center, Art Tower Mito, Ibaraki, 2007)이다.




Noguchi Rika_H-2A · F4 #1_컬러인화_240×96cm_2002


노구치 리카는 우리가 무심히 지나쳐 버리는 현실의 여러 모습들을 카메라 렌즈를 통해 재조명함으 로써 삶의 본질을 탐구한다. 핀홀 카메라(pinhole camera: 렌즈 대신 어둠상자에 작은 구멍을 뚫은 사진기)를 사용하여 태양빛의 과장된 효과를 포착해낸 〈The Sun〉(2005-2006) 시리즈와 하얗게 쌓인 눈(雪)을 촬영하여 흰 종이에 옵셋 인쇄한 〈White Paper〉(2007)는 지각되지만 결코 물질적인 실재 로서는 인지되지 않는 상황을 통해 빛, 암흑, 흰 색이라는 세상의 기본적인 요소를 부각하여 원론 적인 시각 세계를 구현해낸다. 또한 파란색과 녹색의 섬세하고 미묘한 바닷물의 색채로 뒤덮인 (2004) 시리즈와 우주 공간이라는 도달할 수 없는 초월적 공간에 대한 자신 의 호기심을 담아낸 〈I Dreamt of Flying〉(2003) 시리즈, 〈H-2A?F4〉(2002) 시리즈에서는 실존하지 만 아직은 낯선 미지의 공간들을 들추어내고 재조명한다.




Noguchi Rika_Color of the Planet #1_컬러인화_100×150cm_2004



Noguchi Rika_Color of the Planet #4_컬러인화_100×150cm_2004


이렇듯, 해와 눈, 바다와 하늘 등 의도된 설정 없이 포착해내는 피사체들, 그 조용한 기다림의 시간 끝에 탄생한 작품들에서는 노구치 리카 만의 차분한 서정성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드러난다. 상상적 요소들로 구성된 노구치 리카의 미적 제안과 그의 최근 여정을 보여주는 이번 전시는 실재하는 객관적 사실을 상상적이고 비현실적 인 화면으로 전환시켜 관람자에게 제시한다는 측면에서 단연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해온 노구치 리 카의 작품세계를 고스란히 전해줄 것이다. ■ 몽인아트센터




몽인아트센터 전경


몽인아트센터 소개 ● 2000년 개관 후, 4년간 다양한 전시를 통해 유망한 신진작가들이 국 내는 물론 국제미술계로 도약할 수 있는 기반 마련에 주력해온 갤러리사간은 새로운 전시시스템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고자 2006년 12월에 창작스튜디오인 몽인아트스페이스(중구 신당동 소재, 연면 적 500평 규모)를 개원했으며, 2007년 5월 전시공간인 몽인아트센터(종로구 삼청동 소재, 연면적 460평 규모)를 개관했다. 지난 2004년 이후 만 3년간의 공사를 마무리 짓고, 2007년 5월 삼청동의 새로운 전시공간으로 자리를 옮겨 보다 의욕적인 활동을 시작하는 몽인아트센터는 국내외 동시대 " 미술"과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교류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가 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국내외 미술계의 움직임을 대중들에게 균형 있게 소개하 고, 실험성과 대중성이 조우하는 이상적인 접점을 제시함으로써 몽인아트센터만의 시각을 견지하려 고 한다. 이러한 시도를 통해, 지속적으로 고조되어가는 미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성실히 수용하 고 그들의 문화적 갈증을 충분히 해소시킬 수 있는 역량 있는 공간으로 자리잡기를 기대한다.




몽인아트센터 오시는 길


서울의 대표적인 문화 지역인 삼청동 화랑가에 위치한 몽인아트센터는 지상 5층 지하 1층의 콘크리 트 건물 세 채로 구성되어 있다. 건축가 조병수의 설계로 2004년 착공된 이 건물은 2007년 4월 완 공과 더불어 서울 구시가의 새로운 명소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노출콘크리트로 마감된 외부 벽면 과 지상 2층 전면에 적용된 U글라스는 미니멀하고 육중한 건물의 외관에 세련미를 더하고 있으며, 조명 디자이너 고기영이 만들어낸 건물 내외부의 조명은 건물과의 조화를 통해 건축의 예술적 완성 도를 높여주고 있다. 또한, 건물 입면의 좁은 틈새들을 통해 실내로 유입되는 자연광과 지상 2층 건물 외부로 이어지는 야외 수정원은 도심의 혼잡함에서 벗어나 잠시의 여유로움을 음미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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