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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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2007-07-18 19:00:03, Hit : 538)
전시 7.18



Red-Eyed Brother

레슬리 드 챠베즈 회화展

2007_0731 ▶ 2007_0826



레슬리 드 챠베즈_The Big Brother_캔버스에 유채_152×122cm_2007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아라리오 서울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7_0731_화요일_6:00pm




아라리오 서울
서울 종로구 소격동 149-2번지
Tel. 02_723_6190
www.arariogallery.com






아라리오 서울에서는 아라리오 전속작가인 레슬리 드 챠베즈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는 레슬리의 페인팅과 비디오 인스톨레이션 등 총 13여 점의 작품이 선보여질 예정이다.




레슬리 드 챠베즈_Madam P_캔버스에 유채_152×122cm_2007


1978년 필리핀에서 태어난 레슬리는 자신의 모국인 필리핀의 굴곡진 사회적 역사적 상황을 작품에 반영하는데, 그의 작품은 어둡거나 원색적이며 많은 상징과 은유를 내포하고 있다. 사실 필리핀은 약 350년 간 스페인, 미국이라는 강대국의 지배하에 놓여있었으며 이러한 식민통치의 역사는 뿌리 없는 문화와 분열된 정체성으로 점철되어 필리핀이라는 동남아의 섬나라를 불안정하게 지속시켜 왔다. 또한 경제적인 궁핍함과 정치, 사회적 불안감등은 필리핀 젊은이들 사이에서 사회에 대한 불만을 고조시켜 저항의식과 비판의식이 팽배하게 만드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레슬리 드 챠베즈_The Mourning_캔버스에 유채_152×122cm_2007



레슬리 드 챠베즈_Abracadabra_캔버스에 유채_195×195cm_2007



레슬리 드 챠베즈_Malevolent Reality_캔버스에 유채_195cm (diameter)_2006


이러한 비판과 저항의 에너지는 레슬리의 작업에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데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힘을 가진 세력에 의해 핍박 받으며 고통스러워 하거나 자신이 처한 상황을 냉소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또한 중세의 종교화에서나 볼 수 있는 구도와 아치형의 캔버스는 특정 종교와 연관이 있는데, 1521년부터 약 300년 간 스페인의 식민통치는 필리핀의 종교를 이슬람에서 카톨릭으로 개종시키기에 이르렀으며 실제로 필리핀에는 카톨릭의 종교화가 많이 남아있고 현재 그들의 종교에 대한 믿음은 맹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 처음 선보이는 비디오 설치 작품에서는 카톨릭에 대한 필리핀인들의 광적인 집착을 보여주는데, 종교적인 신념보다는 믿고 있다는 행위 그 자체에 의미를 부여해 종교행사에서조차 폭력성을 드러내는 필리핀 인들의 이중적인 모습을 통해 필리핀 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또한 레슬리 작품에 나타나는 독수리, 코카콜라, 말보로 담배, 그리고 특정 국가의 국기를 상징하는 색상 등은 약 50년 간의 필리핀을 지배했던 미국을 상징하는 것으로,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 전반에 영향을 주고 그들의 의식까지 점령했던 미국 문화에 대한 분노이다.




레슬리 드 챠베즈_Maggots_캔버스에 유채_160×130cm_2007



레슬리 드 챠베즈_Kadilman sa Lungga (Darkness in the Cave)
캔버스에 유채_183×122cm_2003



레슬리 드 챠베즈_Sinner Man_캔버스에 유채_100×100cm_2005


레슬리의 작품은 식민지 지배로 잉태된, 강압에 의한 문화가 야기하는 부정적이고 혼란스런 상황들을 은유와 상징으로 표현하며 강하게 비판한다. 또한 그는 예술은 그 예술이 기반하는 사회와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으며 그 누구도 그것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작품을 통해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 아라리오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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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상상과 해석

제20회 선미술상 수상작가 김범 작품展

2007_0720 ▶ 2007_0804



김범_잠자는 통닭 (브로컬리를 곁들인)_왁스, 도자접시_27×21×8cm_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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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724_화요일_05:00pm




선화랑 · 선 아트센터
서울 종로구 인사동 184번지
Tel. 02_734_0458/5839
www.sungallery.co.kr






유쾌한 상상과 해석 ● 흔한 일은 아니지만 필자가 망치를 써야 할 일이 있을 때마다 기억나는 것이 하나 있다. 만삭의 모습을 한 망치이다. 작가 김범이 97년 광주비엔날레에서 보여준 대표작으로, 그 넓은 전시장에 달랑 망치 오브제 하나가 놓여 있었는데, 손잡이가 볼록한 것이 이름 하여 ‘임신한 망치’였던 것이다. 전시장의 많은 관객들이 보면서 발칙하고도 기발한 상상력과 해학에 하나같이 즐거워했던 것을 지금도 필자는 생생히 기억한다. 우리는 사물에 어떤 영혼이나 정령이 깃들어 있다는 정도의 상상을 해본 적은 있지만, 무기체 사물이 임신을 하는 따위의 생물학적 상상을 가져본 일은 없었던 것 같다. 아무튼 관객들에게는 즐거운 체험인 것이 분명해 보인다.




김범_무제 (지평선 위의 업무)_빗자루_21×17×164cm_2005


이제 일반인들에게 작가 김범은 ‘임신한 망치’의 작가로 기억되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 많은 블로그 같은 데서도 그 작품의 이미지들이 자주 회자되고 있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대개 비엔날레와 같은 대형 전시에서는 야심적이고 의욕적인 작품들을 선보이기 마련이다. 그런데 작가는 싱겁고도 허무한(?) 제스츄어로써 관객들의 허를 찌르며 김을 다 빼놓고 만다. 게다가 그의 오브제는 일상과 범속함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 사물과 사태의 것이니, 그러한 역사적 공간에서는 허무감이 더할 법도 하다. 아무튼 바로 이 기념비적 작품은 오래도록 우리 기억 속에서 반추되고 있다. 그런데 도구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망치가 만삭인 장면이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만을 주면서도 어떤 생각과 상상의 세계로 몰아간다. 작가의 이러한 물활론적 해석은 우리가 세계를 바라볼 때 감성적으로는 보다 유연하고 예민하게, 그리고 사유에 있어서는 현상과 실체에 대해 자유롭고 진지하게 넘나들 것을 시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그의 작업 전체는 평범한 사물 앞에서도 낯설게 느껴질 정도로 기발하며, 예의 해학과 풍자가 어떻게 돌출할지 예측하기 어려운 문맥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기도하는 통닭’의 경우도 임신한 망치 못지않게 사물에 대한 기발한 해석 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준 작품으로 평가된다. 빗자루 손잡이에 온갖 불결한 이미지들이 조각되고, 그 끝이 정화와 열반의 상징인 연꽃으로 표현되고 있는 ‘지평선 위의 업무’ 경우에는 섬세함과 몰입을 즐기는 장인적인 면모까지 목격되고 있다.




김범_백자청화스피노사우르스문호_지점토에 볼펜과 투명락카_28×39cm_2004



김범_백조_스치로플, 모터, 스크루, 무선수신기, 목재, 등_70×75×30cm_2004


작가의 작업은 대체로 해학적인 내용으로 웃음을 자아내지만, 더욱 근본적인 것은 도발적인 상상력과 경쾌한 순발력, 재치와 재능이 번득이는 기발한 해석 능력에 기초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만삭의 '임신한 망치' 외에도 그의 많은 작업들이 상상력과 순발력, 해석 능력이 결합되어 창출되어진 산물들이다. 작가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같은 공학적 상상을 많이 펼친다. 어떤 사회적 권력과 관련되는 시설물들에 대해 폭로하고 있는 것 같은 일러스트레이션을 연작으로 선보이고도 있다. 국경검문소, 등대, 구름 모양의 첩보 비행선 등에 대한 설계도에서 기우(杞憂)와도 같은 권력의 음모에 대한 불안을 폭로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작가에게 흔하지 않은 비디오 영상작업 가운데 ‘무제(뉴스)’(2002)가 있다. 약 1분 40초간의 뉴스로서 전달되는 뉴스 내용은 어떤 특정 날짜, 특정 시간대의 기의(記意)이지만, 기표적(記標的)으로는 한 자 한 자를 각기 다른 뉴스에서 차용, 채집하여 모자이크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기표와 기의 혼동, 진실과 조작(편집)의 혼동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는 대목이다. 이러한 기발한 발상조차도 김범다운 것이지만, 그 작품이 암시하고 있는 의미야말로 오싹한 무언가가 암시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탁월한 해석능력도 그렇다. 그밖에도 지극히 단조로운 시지각적 전도나 착시의 예들이 소박하게 그려져 있는 작품들이 있다. ‘누드’, ‘자동차 열쇠’, ‘현관열쇠’ 등이 그것이다. 생활 속에서 경험적으로 채집한 것들을 다시 부분적으로 혹은 단조로운 실루엣으로 변환시켰을 때, 우리의 시지각은 아주 왜곡된 정보를 생산하거나 해석해내곤 한다. 누워 있는 누드의 경우 다리 방향에서 본 실루엣 형태지만 그것은 다른 사물을 연상시키는 아이콘으로 인지되고 있으며, 열쇠 연작의 경우도 자물쇠의 개폐 단서가 되는 날 부분의 꼴들이 험준한 산의 공제선을 읽게 하는 실루엣으로 인지되고 있다. 지극히 단조롭고도 사소한 이미지이나, 그것에 내재된 메시지는 무언가 진지한 내용의 담화를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눈, 특히 망막을 통한 사물의 인지와 해석이 가지는 독재적 권위에 대해 모종의 냉소를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김범_첩보선_청사진_56.5×80.5cm_2004



김범_첩보선 (조감도)_종이에 색연필_52.5×39cm_2004



김범_일광욕하는 여인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5.5×51cm_2007


작가의 작업이 이렇게 해학적인 것이 있는가 하면, 철조망, 칼, 안구수집기 등과 같이 섬뜩한 소재의 블랙코미디 같은 문맥의 작품들도 적지 않다. 보통의 사물이 흉기가 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탐구에서도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업이 대중들에게 그렇게 어렵거나 무겁지 않고 친근하게 접근되는 장점이 있다. 어딘지 모르게 신랄하고 긴장이 팽팽할 것 같은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복싱에서의 잽과 같이 가볍고 경쾌한 풋웍으로, 그리고 반드시 한번은 웃게 하는 부드러운 방식의 접근을 함으로써 공격의 날을 숨기고 있을 뿐이다. 실제로 그의 작업은 치밀하고 진지한 아이디어나 컨셉트에 비해 드로잉이나 오브제의 설정과 조작이 단순하고 다소 엉성한 듯하게 이루어진다. 이렇게 보면 그의 작품들이 즐겁게 웃으면서 접근할 수 있는 세계이기에 대중들에게도 널리 사랑 받을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우리의 현대미술이 대중과의 친화를 절대명제로 삼고 있지만 요원한 과제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하지만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작가와 같은 방식은 아무런 거부감 없이 대중들에게 흡입되고 교감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작가의 작품은 오브제든, 드로잉이든, 비디오든 웃음을 금하는 작품은 없다. 즐겁게 교감하고, 또한 무언가 한번쯤 생각하게 하는 것, 바로 그거면 대단한 성취 아닌가? 허무 개그 비슷하게 다가오지만 무언가 우리의 생각을 깊이 끌고 가는 매력, 그것이 바로 김범의 예술이다. ■ 이재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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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달동네

이창원 개인展

2007_0723 ▶ 2007_0731



이창원_잊혀진 달동네_한지_68×40×80cm_2007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한전프라자 갤러리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7_0723_월요일_05:00pm




한전프라자 갤러리
서울 서초구 서초동 1355 한전아트센터 전력홍보관 1층
Tel. 02_2055_1192
www.kepco.co.kr/plaza






잃어버린 풍경을 찾아... ● 학창시절의 추억을 쫒아 발자취를 찾아가다 보면 낯선 길과 풍경에 그 기대감을 잃어버리게 된다. 어디에서도 예전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고, 낡은 것은 새롭게 고치려 혈안이 되어있다. 현대는 신도시 개발로 인하여 급속히 변화해왔다. 좀 더 풍요롭고 편리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산을 깎아서 도로를 만들고, 도시 곳곳에 고층 빌딩이 들어서고, 도시재개발로 인해 현대인의 주거문화는 숨 가쁘게 변화했다. 높아만 가는 빌딩과 복잡한 도로들, 재건축 공사현장은 어느 도시를 가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들이다. 때문에 소음과 공해로 인하여 인간은 때때로 도시화에 지독한 갈증을 느끼기도 하지만,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진정으로 꿈꾸고 갈망하는 “행복 도시”의 길이기도 하다. 현대 도시의 건물들은 마치 성냥갑 같은 빌딩숲을 이루고 있다.




이창원_도시유감_한지에 채색_200×120cm_2007



이창원_도시유감_한지에 채색_255×112cm_2007


나는 수많은 빌딩과 고층 아파트와 도로가 있는 현대 풍경을 그리며, 그 안에 잃어버린 풍경도 그린다. 잊혀진 달동네는 동네 어귀에 낙서했던 담 벽락과, 힘들게 올랐던 계단과 가로등 옆 동네 슈퍼까지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 창문과 문은 자유롭게 여기저기 나름대로의 멋을 찾아 뚫려있다. 사람들, 저마다의 생활과? 환경이 다르듯 집들은 각자의 형태와 색깔로 자유롭게 밀집해있다. 그 안에 정이 있고 사랑이 있었다. 우리는 철거되는 옛 집에 삶의 애환과 지난 추억들을 묻어두고, 새로운 인공 도시 속에서 행복을 꿈꾸고 있다. 잊혀진다는 것은 그만큼 추억할게 많아진다...




이창원_잊혀진 달동네_한지_40×30×25cm_2007



이창원_잊혀진 달동네_한지_60×42×45cm_2007



이창원_잊혀진 달동네_한지_122×36×40cm_2007



이창원_잊혀진 달동네_한지_93×36×107cm_2007


내 작업은 수묵과 한지를 이용한 콜라주 기법으로 도시의 복제성 획일성 몰개성 속의 다양성과 그 도시만이 지니고 있는 표정을 연출한다. 전통 발묵과 파묵의 방식을 벗어나 백발법과 배채법을 혼용하여 서울의 밀집공간이 주는 다양한 표정을 포착하려 하였다. 또한 작업에서 보여주고 있는 달동네의 풍경과 현제 우리 삶의 모습은 사진이나 문헌이 그 시대를 반영하듯이 시대적 기록성을 반영하게 된다. ● 달이 왜 자꾸 나를 따라 오는지 의아해했던 경험이 있다. 고개만 들면 어디서든 별과 달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수많은 빌딩과 건물들 속에 가려서 좀처럼 확 트인 밤하늘을 볼 수 가없다. 예전엔 잠깐 지나가는 소낙비에 온 몸이 다 비에 젖었지만 요즘은 우산이 없어도 충분히 비를 피할 수 있다. 유감스럽게도 도시에는 빌딩이 너무도 많다. ■ 이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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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에서 꿈꾸다 (Siesta in the Forest)

이우림 회화展

2007_0724 ▶ 2007_0803



이우림_숲속에서_캔버스에 유채_162×130.3cm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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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724_화요일_05:00pm




갤러리 우덕
서울 서초구 잠원동 28-10 한국야쿠르트빌딩 2층
Tel. 02_3449_6072






이우림- 숲길에서 꿈꾸다 ● 이우림의 그림은 정교한 사실주의에 기이한 상황성이 가미되어 있다. 거의 사진에 흡사할 정도로 사실주의기법으로 그가 그려놓은 대상은 정밀하고 산뜻한 묘사로 응집되어 있다. 그러나 각각의 대상들은 일관된 맥락아래 놓여져있다기 보다는 낯설고 허구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한 눈에 봐서는 알아차리기 어려운 트릭 같은 균열이 은연중 숨겨져 있는 식이다. 초현실주의자들이 즐겨 구사하던 ‘뜻밖의 만남’같은 연출이 두드러진다. 그런가하면 동일한 상징들이 반복해서 등장하고 서로 연결되어 이야기를 전달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그림은 일종의 문장과도 같다. 한결같이 인물화와 사물을 그린 그림에 풍경이 덧붙여진 형국이다. 그것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이나 드라마의 세트장처럼 펼쳐진다.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 자신만의 심리적인 드라마,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인물과 옷, 풍경, 빛과 그림자 등을 배치한다. 모종의 장면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것이 작가의 의도이자 그의 그림이다. 모든 그림은 현실로부터 출발해 그 현실의 내부에 가려진 부위를 드러내거나 볼 수 없는 그러나 분명 감지하고 느끼고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를 그려내는 일이다. 현실의 대상에 저당 잡힌 구상미술이나 사실주의에서 조금 떨어져 나와 눈에 보이는 부분에 상상으로 본 것을 결합해낸 그런 상상되어진 구상화다. 진부한 사실주의나 상투형의 구상화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의 하나가 이 같은 환상성을 가미하거나 초현실주의적 연출 내지는 미묘한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상황연출이다. 최근 회화의 추이가 바로 이러한 경향성을 강하게 드러낸다. 극사실주의에 환상과 초현실주의, 그리고 팝 적인 이미지가 결합되는가 하면 디지털시대에 따른 이미지편집과 재구성의 영향을 반영하는 자의적인 구성과 현실과 비현실의 착종 같은 기법과 방법론이 바로 그것이다. 거의 자폐적인 그리기에 판타지와 허구성의 미묘한 어울림은 동시대 미술문화의 초상이다.




이우림_숲길에서_캔버스에 유채_130.3×89.4cm_2007



이우림_몽(夢)_캔버스에 유채_145.5×112.0cm_2007


작가는 ‘몽’이란 제목을 단 이야기그림을 통해 독특한 장면을 보여준다. 그 장면은 작가의 상상력/의도에서 나온 것이고 그 상상력이란 결국 작가 자신이 이해하는 현실과 비현실, 꿈에 해당하는 이미지일 것이다. 그와 동시에 구상화, 극사실주의를 유지하면서 이를 자기 식으로 변형하거나 독자적인 스타일로 만들려는 의도 아래 이루어진 그림이라는 인상이다. 그런 모든 것은 ‘몽’이란 단어에 내재되어 있다. 작가는 숲과 인간, 남자와 여자, 빛과 어둠, 사람과 계단 등 상반된 요소들을 배치하고 그 두 개의 다른 세계가 결합되어 파생하는 에너지(분위기나 느낌)에 주목한다. 그 에너지는 긴장감이나 낯설음, 이상한 혼란, 혹은 나른하고 몽롱한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준다. 그것은 분위기, 전체적인 톤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니까 그림에는 한결같이 숲과 출입문, 계단이 주 무대로 설정되고 빛과 어둠, 하늘과 숲, 남자와 여자, 단색과 원색의 꽃무늬 등이 대비되어 있다. 그것은 구체적인 장면이자 현실 장면인 것 같으면서도 그것과는 어딘지 어긋나 보인다. 이러한 장면연출과 상황성은 초현실적이기도 하고 몽롱하면서도 비현실감이 감도는 미




이우림_숲속에서_캔버스에 유채_162×112.0cm_2007



이우림_몽(夢)_캔버스에 유채_145.5×112.0cm_2007



이우림_몽(夢)_캔버스에 유채_162.0×130.3cm_2007


묘한 긴장감을 부여하기 위한 작가의 의도에서 나온다. 작가는 자신이 그림을 통해 보는 이들로 하여금 그 이상한 공간,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접점으로 들어오기를 권유한다. 인물과 꽃무늬 옷, 앵무새와 살찐 소파, 토끼 등은 보는 이들에게 궁금증과 호기심, 상상력을 자극하는 매개가 된다. 그 매개를 징검다리 삼아 그림 안으로 들어가 이런 저런 생각에 잠기게 하려는 의도를 보여준다.




이우림_몽(夢)_캔버스에 유채_175×125cm_2007



이우림_몽(夢)_캔버스에 유채_30.3×89.4cm_2007


그림에는 대부분 배경으로 숲이 등장한다. 모두 역광으로 비치는 햇살에 의해 숲의 경계는 녹아내리고 투명하게 부서진다. 반면 그 안쪽은 상대적으로 깊은 어둠과 심연을 드리우면서 더욱 짙고 캄캄하다. 그 사이에 인물이 돌연 출현해 자리한다. 그/그녀는 앉아있거나 뒤돌아서있다. 남자의 초상이 관자를 향해 얼굴을 보인다면 여자는 주로 뒷모습만을 보여준다. 어둡고 눅눅한 숲을 배경으로 하거나 그 숲을 향해 서있는 누군가의 모습은 자연과 영적인 교류를 나누거나 그 기를 흡입하거나 또는 내밀한 명상을 하는 중으로 보인다. 그림에 등장하는 남자는 매우 짧은 머리에 동안의 얼굴을 지니고 있는데 흡사 티벳 승려의 얼굴을 닮았다. 어른도 아니고 아이도 아닌 모호한 나이를 지닌 남자다. 그는 단독으로 혹은 한 쌍으로 계단이나 물속에 쭈그리고 앉아 있거나 숲을 등지고 있다. 남자의 초상은 초점을 잃거나 망연한 눈망울로 몽롱한 잠에 취해있는 듯, 꿈을 꾸고나 상념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는 오수를 즐기는 듯하다. 아니 한여름 낮 시간에 몽상에 잠겨있는 듯 하다. 그것은 일종의 구도와 상념에 잠긴 표상이자 동시에 현실과 비현실이 사이에서 경계에서 잠겨있는 그런 얼굴을 보여준다. 보여주는 얼굴과 감추어진 얼굴이 교대로 등장한다. 여자는 온몸을 화려한 꽃무늬 천으로 감싼 옷을 입고 있는데 그 패턴, 문양은 녹색/단색의 숲과 연관되어 그로부터 도출된 원색의 꽃들을 보여준다. 길데 딴 머리를 하고 숲을 향해 뒤돌아서있거나 앉아있는가 하면 계단에 누워있다. 숲에서 나온 손, 그 손이 마치 숲이 애무하거나 붙잡고 있는 듯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있다. 여기서 자연은 의인화된다. 인간과 자연의 내밀한 교호와 은밀한 접촉, 교류는 이 그림의 주제이기도 하다. 그것은 결국 자연과 함께 하는 인간의 존재에 대한 묵시적인 이야기다. 자연/ 생명체와 인간이란 존재는 분리되거나 유리될 수 없다. 여전히 인간은 자연을 통해 아름다움을 깨닫고 문명과 도시에서 비롯된 상처를 보듬고 치유하는 동시에 자신의 내부로 들어가 비로소 명상과 휴식을 갖는다. 인간이 꿈꾸고 다른 세계의 비전을 갖는 것 역시 자연으로부터 비롯된다. 이우림은 그런 자연과의 내밀하고 비의적인 접촉과 만남을 통해 현대인이 상실하고 망각한 본원적인 힘과 영성을 새삼 환기시킨다. 그 안에 이미지의 주술성과 신비스런 힘에 대한 동경과 믿음이 얼핏 스며들어있다. ■ 박영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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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내부의 선과 확장된 시각

류민영 회화展

2007_0718 ▶ 2007_0724



류민영_고이 접어 나빌레라_장지에 먹, 분채_90×162cm_2007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드림 갤러리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7_0718_수요일_06:00pm

갤러리 꿈, 신진작가 발굴 프로젝트 “희망전”




드림 갤러리
서울 종로구 인사동 168번지 고당빌딩 3층
Tel_02_720_4988
www.dreamgallery.org






공간 내부의 선과 확장된 시각 ● 류민영의 회화의 출발은 선의 예술인 서예로부터 출발한다. 서예는 점획이란 형태와 필선이란 질량으로 이루어지며 그 가운데 필선의 질량, 곧 선질(線質)은 글씨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동양화론에 있어서 서예는 전통 회화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남제(南齊) 사혁이 「고화품록(古畵品錄)」에서 그림의 주요 덕목을 육법(六法)으로 제창하면서 대상물의 형태를 뼈대 있는 필선으로 묘사해야 한다는 ‘골법용필(骨法用筆)’을 제일의 덕목으로 거론한 것이나, 오대(五代)의 형호(荊浩)가 「필법기(筆法記)」에서 사람의 기질에 따라 필선의 성격이 나타난다고 하여 근(筋), 육(肉), 골(骨), 기(氣)의 사세(四勢)로써 그림을 설명한 것과 유사하다. 글씨는 그림처럼 구체적 형상을 표현하는 조형예술은 아니지만 문자를 다양하게 구성하는 조형적 성격을 가지므로 근본적인 필법에 있어서는 상통하기 마련이다.




류민영_침잠하는 시간 속으로_장지에 먹, 분채_125×40cm_2007



류민영_조용히, 잔잔히_장지에 먹, 분채_90.5×116cm_2007


오랜 숙련의 시간동안 전서, 예서, 해서, 행서로 표현되는 필의 서로 다른 성격과 감정을 익히며 차차 글씨가 가지고 있는 선적 요소뿐만 아니라 붓 길이 지나가지 않는 여백의 공간에 시선이 머물게 되었다. 남아 있는 흰 공간을 바라보며 이것을 단순히 이차원의 평면의 세계가 아닌, 이차원과 삼차원의 공간을 넘나드는 새로운 공간으로 인식하게 되면서 선을 표현하기 위해 남겨 두었던 공간이 아닌 선과의 소통의 공간으로 작업을 진행시켜 나간다. 이것은 종교적 영향을 통해서 시각이 확장 되면서 공간의 범위가 무한대로 팽창하게 된다. 전 지구적 관점에서 자연이란 공간 속에 살아 숨 쉬는 자유로운 선을 표현하기 시작하면서, 일차적 관점에서 이것을 화면 재구성을 통해 선적인 요소를 부각 시키는 작업을 진행 시킨다. 동시에 대자연 속에 펼쳐지는 선과 서예의 선이 한 화면에서 중첩되게 나타나는 작업을 통해서 신비로운 공간 내부의 선을 경험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갤러리 꿈에서 진행한 '2006 갤러리 꿈과 신진, 신인 작가와의 예술 활동 공동 발전 프로그램<희망>" 프로젝트를 통한 기획 전시로 갖게 된다.




류민영_대지의 숭고함_장지에 먹, 분채_43×97cm_2007


나의 회화는 선의 예술인 서예로부터 출발한다. 오랜 숙련의 시간동안 전서, 예서, 해서, 행서로 표현되는 필의 서로 다른 성격과 감정을 익히며 차차 글씨가 가지고 있는 선적 요소뿐만 아니라 붓 길이 지나가지 않는 여백의 공간에 시선이 머물게 되었다. 남아 있는 흰 공간을 바라보며 이것을 단순히 이차원의 평면의 세계가 아닌, 이차원과 삼차원의 공간을 넘나드는 새로운 공간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나는 선을 표현하기 위해 남겨 두었던 공간의 해석을 통해서 선과 공간의 소통을 시도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종교적 영향을 통해서 시각이 확장 되면서 자연이란 광범위한 공간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자연 속에 살아 숨 쉬는 자유로운 선을 부각 시키는 작업을 진행 시켰다. 동시에 대자연 속의 선과 서예의 선을 한 화면에서 겹쳐 표현하는 작업을 통해서 신비로운 공간을 창출해보았다. ■ 류민영




류민영_따스한 대지의 숨결_장지에 분채_388×130cm_2007



류민영_대지의 생명력_장지에 먹, 분채_190×145cm_2006


The lines within space and an expanded perspective ● My art and painting begin from calligraphy, which is called "the art of lines." As I have practiced different types of traditional calligraphy such as Jeon-seo, Ye-seo, Hye-seo, Hang-seo, and tried to learn different qualities and sentiments from each type of writiing, I became interested in not only a linear quality of calligraphy but also a concept of blank space around the letters. The blank space, for me, was no longer simply 2-dimensional space. I started to recognize the blank space as a new place where 2-dimensional and 3-dimensional spaces can coexist. Effort to understand the blank space led me to attempt the communication between lines and space. As religious influence brought nature into my interests, I began to seek for lines hidden in nature and tried to express those on my works. Also, by overlapping lines from nature and lines from calligraphy in the same space, I created mysterious and fantastic space. ■ Ryu min young

부대 행사_전시 오프닝 (2007년 7월 18일 5시 30분)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재학생들이 결성한 ‘낭만 음악대’의 연주와 이화여자대학교 무용과 석사 재학 중인 한혜주(23)씨가 퍼포먼스를 펼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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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마르지 않는 시간

이신구 사진展

2007_0719 ▶ 2007_0808



이신구_꽃이 마르지 않는 시간_디지털 프린트_각 90 70cm_2007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갤러리 보다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7_0719_목요일_06:00pm

갤러리 보다 기획 초대전




갤러리 보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1461-1 한라기산 B/D 2F
Tel. 02_3474_0013
www.bodaphoto.com






이신구는 대학교에서 광고사진을 전공한 전문사진가이다. 그는 주로 가구나 그릇 등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이는 생활용품과 소품을 독특한 느낌으로 표현해 내는데 남다른 실력이 있다. 이신구의 사진에서는 묘하게도 마치 수채화 같은 정물화의 느낌이 묻어나는데, 아마도 작가가 촬영한 광고 이미지를 작가의 회화적 순수 시각을 통해 사진적인 이미지로 재해석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신구_꽃이 마르지 않는 시간_디지털 프린트_각 90 70cm_2007


그의 광고 작업들 중 인상적인 것은 자연 속에 놓여 있는 강렬한 붉은색의 가구들, 즉 집안에 있어야할 가구들의 본질성을 자연 속에 대입, 인간의 생활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는 의미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가구와 그릇 그리고 뒷 배경인 꽃 벽지를 합성하여 리빙 제품들의 이미지들이 꽃 벽지와 중첩되어 마치 가구가 벽지의 일부처럼 보여주는 작업들을 보여주고 있는데, 자연과 가구, 벽지와 가구들의 이미지들이 광고 이미지와 순수미술에서의 초현실적 이미지로서 함께 어우러져 보여지고 있다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다.




이신구_꽃이 마르지 않는 시간_디지털 프린트_각 90 70cm_2007



이신구_꽃이 마르지 않는 시간_디지털 프린트_각 90 70cm_2007


그리고 꽃 사진은 검정색과 흰색배경의 여백과 꽃으로 채워진 공간들의 디자인적인 요소로 인해, 꽃의 텍스쳐나 질감보다는 꽃의 색감이나 줄기들이 주는 선이 더 강조되고 있다. 그 결과로서 그의 사진은 사진적인 정물화와 회화적인 정물화의 특성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어 작가의 독특한 감성이 잘 드러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김수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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