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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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2007-08-01 21:35:23, Hit : 568)
전시 8.1



스튜디오 가는 길

김윤경 회화展

2007_0808 ▶ 2007_0814



김윤경_스튜디오 가는 길_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_145.5×56cm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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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808_수요일_06:00pm

난달 2007-10 창작지원기획展




스페이스 아침
서울 종로구 화동 138-7번지
Tel. 02_723_1002
mooze.co.kr






시간의 중첩된 잔상풍경과 기록풍경 ● 길의 속성은 여러 갈래로 나뉜 수많은 가능성의 연속이다. 목표를 향해 딛고 나아가는 걸음의 향보에는 항상 몇 갈래로 나누어지는 결정적 선택의 순간지점에 도달하게 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여김 없이 하나의 길을 선택하여 접하게 된다. 많은 길이 얽히고 설케 있는 길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하나의 길 밖에 남지 않게 되고 그 위에서만 거닐게 될 것이다. 하나의 선, 홀로된 길은 외관상으로 정해져 있지 않지만, 실질적으로 결정지어진 운명적인 루트가 여기에 속한다. 모든 길은 하나의 길로 모아지고 하나의 사건에 집중되어지기 시작한다. 사람은 출발점과 도착점을 항상 정해놓고 움직이기 시작하는데, 이는 평범한 길에 자신만의 통찰력을 발휘하여 목표에 의미를 둔다는 것을 지칭할 수 있다. 그것은 살아 숨쉬는 삶의 체취의 길 위에서 걷고 뛰어다니고 싶은 의지에서 우러나왔다고 볼 수 있다. 이제 더 이상 길은 걷기 위한 무기성의 도구적 통로가 아닌, 인간의 온기가 서려있는 생명기록의 루트와 같은 것이다. 일상의 평범한 길 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자신 하나뿐인 인생의 기록적 풍경의 일부이다. 수많은 길의 갈림길을 거침에도 불구하고도 하나의 길로 연결되어져 있기에 길은 하나이며, 그 길을 선택하여 걷는 인간도 마찬가지로 오직 한 사람이다. 이들은 인생의 옳고 그름의 길을 벗어나 삶의 일방통로만을 개척하며 걸어 나아가야 하는 숙명에 처해있다. 유일무이한 길은 시간의 연속성과 더불어 삶의 기록적 풍경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인간은 매번 시작지점에서 출발하여 도착지점에 도달하고 다시 되돌아간다. 이 과정에서 시간의 회전성은 하나의 길과 함께 이동한다. 그렇지만 시간의 회전은 사건의 중심을 움직이게 만들며, 하나의 길 위에 시간의 사건이 전개되고 결말을 맺는 것을 도와주게 된다. 시간의 사건은 기록적 풍경과 밀접한 관계로 하나의 길 위에서 벌어지는 같은 공간의 중첩된 다른 풍경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길이 시간에 의해 기록적인 풍경이 변모하게 된다는 것을 암시해주고 있다. 인간에게 기록적 풍경은 우림의 길과 도심의 길로 양분되어진다. 우림은 자연의 순환적인 시간에 의한 영원성을 가진 것에 반해서 도심의 길은 인간에 힘에 의한 목적지향적인 다양한 변이성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서 도심의 길은 인간에게 삶의 길이 인공적으로 조성되고 구성되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빌딩과 잘 조성된 도로의 지속적인 발전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동일한 길에서의 풍경을 다른 모습으로 상이하게 만들어내고 있다. 삶의 윤택과 편리성을 찾기 위한 인간의 몸부림이 그대로 녹아 드러나는 반사거울의 창과 같은 것이다. 매일 지나치는 하나의 길 위에 인간의 거침없는 목적지양적인 요구성이 빚어내고 있는 기록의 잔상이다. 김윤경은 외형적으로 항상 새로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목적지향적인 다변성”을 반대적 입장의 관점에서 우리의 외로운 삶의 사실성에 입각한 “고발성 기록적 풍경”으로 말하고 있다. 콘크리트의 인공적인 재료에 의해 건설되어지는 건축양상들이 새로운 욕망에 의해 되풀이되며 재건축되는 한 단면의 현상을 시간적 변화성을 염두에 둔 어긋난 조각으로 비추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유리에 비춘 깨어진 도시의 잔상으로 조각을 집약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과 같은 전제이다. 사실적인 현상 풍경이 인공적으로 비추어진 허상 풍경들 사이에서 “시간이 재조합된 잔상적 풍경”과 “사실성에 비추어진 진실한 삶의 기록적 풍경”의 하나의 길 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두 가지 이색적인 풍경구조를 유추해 볼 수 있다.




김윤경_스튜디오 가는 길_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_145.5×56cm_2007



김윤경_스튜디오 가는 길_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_145.5×56cm_2007


“시간이 재조합된 잔상적 풍경”은 사실적인 풍경을 허상으로 위장시키고 있다. 건물의 풍경은 모두가 사실에 입각한 시각적인 요소를 모두 지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겉으로 깨어진 유리창에 비추어진 잔상풍경으로 모아져 있는 착각으로 보인다. 충격에 의해 깨어져 서로 어긋난 선들 사이로 서로들 간의 파편 조각 결합들이 만든 짜깁기 건물풍경이다. 현실속의 건물이 그대로 등장하는 것은 외형적으로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인간이 가진 욕구에 대한 열망성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현실의 시각적인 진실성에 대한 부분을 인정과 동시에 시간의 연속성에 대한 진리성을 망각하지 않은 데에서 온 것으로 본다. 이러한 두 가지(진실의 본질성, 시간의 연속성)를 특성을 통해 내세우고 있는 것은 인공적인 인간미에 대한 냉철한 비판적 비수를 간접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사실성에 의해 감추어지고 있는 인간에 대한 절대적인 완벽성이라는 자만성이 여기에 속한다. 스스로가 세워둔 세상에서 만들고 부숴버리는 반복과정에서 폭력적인 성향을 사실성에 입각한 진상속에서 허상의 잔상으로 정화시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루 동안에 걸어온 길을 거슬러 올라가며 그려낸 건물의 풍경들은 모두 정면을 응시하도록 재조합하고 있다. 건물의 상호와 특징적인 요소를 가장 많이 지니고 있는 부분은 정문에 해당하는 앞면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오고가는 출입구가 숨통을 연결시켜주면서 가장 경계심이 강한 경계배타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건물이 가지는 위풍당당한 모습은 일개 인간의 거만한 모습과 흡사한 이미지를 심어준다. 이러한 사람과 건물이 동일시하려는 초기적 요소는 2004년 전작 ‘내가 다니는 풍경’에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하늘과 지면을 최대한 배제시키고 지평선 중심에서 수평으로 길게 건물들을 펼쳐 늘어뜨리고 있다. 그녀의 수평선에 위치한 건물들은 자신이 속해 있는 풍경을 정면만 포착하여 재결합시킨 것으로 매우 관조적 입장에서 바라보고 있다. 일렬로 나열된 건물 하나하나는 자신이 정면으로 바라본 각도에서 찍은 사진을 모아 나열한 것으로, 여기에서 주목 할 점은 건물의 정면을 응시시키는 파노라마식나열과 사진기의 시간과 빛의 역학적 변화성의 따른 관계를 살펴보아야한다. 파노라마식 배열과 함께 사진의 파노라마식 촬영은 시간개념의 차이가 깊숙이 작용하여 다양한 변화의 추이를 기다린 결과물로 보인다. 사진의 연속촬영에서 시간의 빛은 같은 피사체의 만나는 부분과 부분이 각각의 다른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관찰적 사고로 얻어진 자료적 결과는 같은 건물이지만 약간은 다른 이색적인 색채와 구조물의 굴곡을 가져다주기에 충분한 변화요인으로 등장한 것이다. 마치 칼에 베워져 흘려 내려가는 조각처럼 창문과 창문이 어긋나고, 벽돌과 벽돌 간에 색들의 채도가 다른 것처럼 그녀는 건물의 피사체를 통해 시간을 베어 버렸다. 이처럼 시간을 베어버린 결과의 구조물에 대한 파격성이 이번 신작 ‘스튜디오 가는 길’에 와서는 한층 구체화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일차적으로 관조적인 입장에서 바라본 건물의 형상에 포커스가 맞추게 되면서 정확한 구조물의 조합구조성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확대된 이미지는 극대화로 이어져 화면은 이제 건물구조의 정면과 측면이 재조합되면서 발생되는 부피감과, 원근감에 대한 미묘한 시각적인 환영을 빠져들게끔 한다.




김윤경_스튜디오 가는 길_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_145.5×56cm_2007



김윤경_스튜디오 가는 길_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_145.5×56cm_2007


“거울의 깨진 잔상”과 “사진조각의 조합된 잔상”은 피사체에 대한 투영된 잔상이라는 하나의 공통점으로 모아져 사실성에 대한 허상성의 깊은 고찰로 보인다. 유리의 깨진 조각 잔상처럼 보이는 이미지의 조합은 여러 장의 사진 조합결과에서 나오게 된 것이다. 사진조각을 모아 다시 건물을 세우고 붙여 길을 만드는 과정은 자신이 원하는 길의 사실에 근거한 진솔성이 가미된 이야기를 구성해내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은 사진조각을 컴퓨터의 이미지로 조합 편집된 다음에 그것을 출력하여 재현하는 과정을 거친다. 사진촬영과 컴퓨터작업의 조합과 편집과 출력의 두 번의 진상에서 걸러지게 되는데 이는 의도된 잔상을 이끌어내기 위한 방법으로 해석된다. 유리의 깨진 잔상이나 사진의 조합된 잔상은 결국 하나의 진상과 허상 사이에 존재하는 그녀만의 잔상을 만들어냈다. 이곳에서의 공간은 잔상과 허상에 대한 서로 상대적으로 맞물려 조합과 분열이 난무하고 있다. ‘전화 부스’에서의 매우 어긋난 조각들은 마치 허상에 대한 반발심처럼 극과 극으로 자기력이 발생하듯 서로 끌어당기며 밀리기도 하는 결합성과 분열성의 이중적인 면도 함께 보여주고 있다. 이차적으로 사진 한 장의 국한된 시점에 벗어나 사진을 겹치면서 생성되는 차별성이 있는 공간운용법을 보여주고 있다. 수평적인 정면시점조각들 간의 차이점을 극대화시켜 “등위시점”을 “상하조합시점”으로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정면을 응시한 시점은 이전과 동일하나 공간 재조합 과정의 틈 사이에서 상하의 높이를 조절하여 시점의 차별화를 시도했다. 이러한 높낮이 시점차이는 수평선상의 획일적인 공간을 활동적이고 살아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장치로 사용되어지고 있다. 조합의 과정에서 건물의 밑에서 위로 올라 보듯, 하층부분은 넓게 자리 잡고 상층부분으로 올라갈수록 좁아지게 결합하여 시점의 면적대비비율성 차이를 높여 시각적 대비의 즐거움을 추구하고 있다. 정면의 등위시점을 조각의 결합과 분리의 원리를 적절히 이용하여 화면의 다층적인 볼륨감을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조각이 지니고 있는 시간의 차이는 변화되는 현실에 대한 반발적인 표현으로 조각의 재조합과 재결합 그리고 분열을 시간의 흐름에 따른 도시의 빠른 생명성으로 유입시키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매일 비슷하지만 조금씩 변해가는 도시의 풍경을 이처럼 재조합과 분열을 통하여 미세한 조직의 움직임으로 보여주고 있다.




김윤경_스튜디오 가는 길_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_145.5×56cm_2007



김윤경_집_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_90.9×72.7cm_2007


“사실성에 비추어진 진실한 삶의 기록적 풍경”은 인간에 대한 솔직한 외로운 담화문이다. 그녀의 도심거리에서는 인간 존재여부를 찾아 볼 수 가 없다. 오직 도심의 풍경들만이 화면의 중심에서 주인공처럼 가득 채워져 있다. 도심의 건물들은 인간의 대용물로 모든 상황전개에서 중요한 매개체로 등장한다. 이들은 인간을 대신하여 외로이 자리 잡고 있으며, 그들 간의 연결된 건물의 유기적 구조성은 사회적 상호 유기적 관계를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2003년 전작 ‘있는-카페’에서 홀로 중앙지평선 길 위에 등장하는 카페에서 볼 수 있듯이 매우 고립되어 있으며 적막이 흐를 정도로 조용하면서 냉철하게 표현되어있다. 이러한 외로운 정서는 이번신작에 와서도 그대로 전달되어 건물의 구조자체에 새어나오는 슬픔이 전체화면에 전율까지 느끼게 한다. 여기에 덧붙여 간판, 전봇대, 전선, 신호판 등의 극사실적 표현은 현실성에 대한 현장성을 살려주고 있다. 또한 길의 목적지가 되는 ‘집’, ‘사곡다방’, ‘파트타임’의 장소처럼 꾸임 없고 지극히 일상적으로 평범한 곳을 재현하는 그녀는 인간의 욕심으로 만들어 낸 도심 안에서 숨김없이 사실적인 인생이야기를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걸어 다니는 길은 언제나 자신의 모든 이야기를 숨겨놓은 터전으로 본 것이다. 간판에 등장하는 상호는 욕망을 채울 수 있는 충전소와 같으며 그 곳에서는 스스로 즐거움과 행복을 찾기도 한다. 사실성에 근거한 묘사법은 현시점의 시간성을 그대로 옮겨 놓게 되는데, 간판의 많은 이야기가 삶의 사실적인 기록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길 위에 펼쳐진 사실적인 도심풍경은 인간의 인생의 지도가 기록되어진 삶 속 체취의 길로 보고 있다. 다시 말해서 건물이 가지고 있는 인간의 탐욕성과 더불어 만들어지는 현실사회내부의 외로움에 맞서 세상에 대한 표출방법으로 진실성을 가지고 침착하고 냉철하게 다가가고 있음을 대변해준다. 숨김없고 치밀하게 계산된 묘사력은 사실적 일상사건에 대한 제대로 된 관찰자의 소화력을 발휘한 것으로 인간 삶의 고발성 성격의 기록적 풍경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김윤경_파트타임_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_90.9×72.7cm_2007



김윤경_사곡다방_캔버스에 유채_15.8×22.7cm×4_2006


하나의 길 위에 펼쳐진 도심의 공간은 인간에게 있어 욕구의 발상지이며 해소지 역할을 한다. 극 사실적인 묘사는 피사체에 대한 정신을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건물과 사람이 공유체가 되어 살아 있는 기록이 되어버리는 순간을 일컫고 있다. 이러한 숨 쉬고 있는 기록으로 재탄생하기 위한 구조적 재제를 정리해 보면 1. 시간의 연속성 - 정면을 응시한 파노라마 인생, 2. 재조합의 재현성 - 진상과 허상의 잔상관계, 3. 확장된 공간성 - 등위시점의 상하조합시점변형, 4. 극 사실성 - 사실적 묘사와 기록적 풍경의 관계로 구분 지어 볼 수 있었다. 지금까지 그녀는 현실 속에서 재현되고 있는 사실감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받아드리고 단연코 왜곡하지 않으려고 한다. 단지 사실성에 근거한 그녀의 감성적인 코드를 입력하여 하나의 사실적변이의 조각을 만들어 낼 뿐이다. 그것은 자신과 결부되어져 있는 모든 현상자체를 진실성이 곁든 삶의 한 조각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도심은 스스로 의도한 대로 흔적이 모여 조합되고 결합하길 바라고 있다. 솔직 담백한 사실적 재현법과 잔잔한 재조합구조가 폭넓은 시야와 함께 한층 더 시끌벅적한 유기적 조합구조로 변모한 또 다른 길의 풍경이 기다려진다. ■ 조동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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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離脫)-경계 넘나들기

충무갤러리기획展

2007_0807 ▶ 2007_0921



이탈(離脫)-경계 넘나들기 충무갤러리기획展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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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807_화요일_05:00pm

김상균_김연희_김영훈_방인희_홍정표_황인선

주최_충무아트홀





충무갤러리
서울 중구 흥인동 131 충무아트홀
02_2230_6629
www.cmah.or.kr






미술, 이탈을 꿈꾸다... ● 충무갤러리기획 〈이탈(離脫)-경계 넘나들기〉전은 ‘간접성’과 ‘복수성’을 이용한 다양한 작품들로 구성된 전시이다. 현대미술은 복수예술이 가능한 간접성 때문에 일품예술이란 아우라를 벗어날 수 있었다. 또한 직접 그려 표현한다는 기본골격에서 벗어난 작가들은 매체의 다양화를 통해 범위를 확산시켜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어떤 범위나 대열 따위에서 떨어져 나간다’는 이탈의 의미처럼 이번 전시작들은 실험판화와 캐스팅기법을 넘나들며 그리지 않고 ‘떠내는’ 작업으로 전통미술의 경로를 이탈한다. 하나의 건축물을 만들듯 골조를 만들고 시멘트를 부어 형태를 떠내어 완성하는 김상균은 현대의 회색도시를 대변하며 자신만의 인공정원을 만든다. 간접성과 복수성을 내재한 대표적 장르인 판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김영훈은 같은 인물의 반복적 나열을 통해 자신 안에 내재된 또 다른 나를 찾아 나간다. 김영훈이 인물표현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했다면, 황인선의 정체성 찾기는 밥과 김치 캐스팅작품을 통해 이루어진다. 언어를 뛰어 넘을 수 있는 음식문화의 의미를 해학적으로 되새겨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음식처럼 일상적 소재를 극대화 한 방인희는 옷을 소재로 한다. 작가의 옷들은 올이 풀리고, 닳고, 얼룩져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특히 천을 직접 찍어내는 콜라그래피 기법으로 촉각을 자극하는 독특한 작업을 완성한다. 예술은 어디에나 존재한다고 말하는 홍정표는 익숙한 소재를 실리콘과 레진으로 직접 떠내는 작업을 보여주며, 마지막으로 김연희는 한지로 캐스팅한 물고기 떼를 천장에 매달아 바다 속을 유영하듯, 하늘을 날듯 이중적 공간상상이 가능하도록 표현하고 있다.




김상균_인공낙원_시멘트 캐스팅_2006_부분


김상균 - 인공낙원. 그 기묘한 공간 ● 작가는 실제 건축물 신축현장에서 사용하는 거푸집 제작방식을 취하고 있다. 기둥, 바닥, 벽 등 시멘트를 부어 만들 모양의 틀(거푸집)을 짠 후, 시멘트를 부어 넣고 굳은 뒤 틀을 떼어낸다. 이렇게 떼어낸 여러 개의 축소된 건축형태는 본래의 용도를 상실한 채 재조합의 방법에 따라 새로운 형태와 의미를 부여 받게 된다. 작가 역시 간접성(틀)을 이용한 복수 형태를 통해 자신의 ‘인공낙원’을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아무런 걱정이나 부족함이 없이 살 수 있는 즐거운 곳’을 낙원(樂園)이라 말한다. 그러나 작가가 만든 인공낙원은 획일화 된 건축물들로 가득한 현대의 회색도시를 의미한다. 어느 때부터인지 우리주변은 초록의 자연보다는 인위적이고 중성적인 회색의 풍경이 감싸고 있고 이런 건조한 환경에 익숙해져 있다. 우리는 화려한 간판과 조명으로 치장한 건축물이 가득한 도시를 역설적이게도 무채색으로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눈에 보여 지는 현상에 대한 표현이기보다는 심리적인 상태, 즉 작가가 작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인공낙원인 것이다.




김영훈_Tell me the truth_메조틴트_63×30cm_2007


김영훈 -Tell me the truth ● 예술가들은 창작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기본적인 욕망을 갖고 있다. 이는 비단 예술가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와의 인적?물적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 번 쯤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한다. 자신이 과연 누군가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된 작가의 작업은, 하나의 세포가 여러 개로 분열하듯 인물의 반복적 배열을 통해 자신 안에 내재된 또 다른 나를 찾아 나간다. 판화는 이러한 표현에 가장 적합한 장르이다. 직접 그리지 않고 판을 이용해 떠내기 때문에 같은 이미지를 반복할 수 있는 것이다. 얼굴과 손의 표정 외에 극단적으로 단순화 된 인물은 온 몸에 검은 옷을 두르고, 때로는 영혼을 교감하듯 서로를 바라보며, 때로는 샴쌍둥이처럼 둘이 한 몸을 하고, 때로는 여러 명이 무리지어 한 곳을 응시한다. 이러한 인체 작업을 통해 외부세계와 내부세계의 경계에서 불안하게 존재하는 작가의 정체성의 근원적 실마리를 찾고자 하는 것이다.“나는 나의 영혼에게 결코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있다. 그 물음에는 삶과 죽음이 있고, 우주의 시작과 끝이 있고, 그 너머 있는 미지 세계에 대한 문제들로 가득 차있다.”




방인희_a jacket_디지털프린트, 콜라그래피_140×110cm_2007


방인희- 시간을 기록한 옷 ● “당신은 어떤 방법으로 시간을 기록해 둡니까?” 이에 대한 대답은 각자의 생활과 사고방식에 따라 다를 것이다. 작가가 선택한 방법은 실제로 작가가 착용했던 스웨터, 스커트, 재킷과 같이 옷을 통한 기록이다. 새 옷이 주는 낯설음과는 달리 체형에 맞게 형태를 잡아가며 늘어난 스웨터의 포근한 안정감, 여러 번 세탁으로 탈색된 청재킷의 자연스러움, 얼룩진 흰 스커트 등 옷은 시간을 품기에 충분한 대상이다. 타임캡슐처럼 어느 날 옷장 깊숙이 나프탈렌 냄새와 함께 두 손에 쥐어진 옷은 지난 추억도 함께 떠올리도록 하는 대상인 것이다. 이러한 표현을 위해 작가는 판화기법을 충분히 활용하고 있다. 실물크기에 가깝게 디지털프린트로 옷의 형태를 출력하고, 그 위에 옷을 직접 찍는 콜라그래피 기법으로 질감을 표현하여 촉각적인 표현을 극대화하고 있다. 사회적 신분을 파악할 수 있는 옷은 기호로써 작용하지만, 삶의 흔적을 담고 있는 작가의 판화작품은 작가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또 다른 분신인 것이다.




황인선_김치행진Ⅱ_한지캐스팅,염색_바닥설치_2004


황인선 - 밥상위의 연금술 ● 작가는 한국의 대표적인 음식인 김치와 주식인 밥을 캐스팅기법으로 표현한다. 여러 개의 김치와 쌀알 가득한 밥그릇을 한지로 캐스팅한 작품들은 ‘김치행진’과 ‘하루 또 하루’라는 재미있는 제목을 달고 바닥에 나열되고, 벽에 붙여지고, 천장에 매달려 설치된다. 또한 누룽지를 연상시키는 밥풀로 직접 떠낸 한 쌍의 찻잔은 ‘대화’라는 제목처럼 서로 바라보고 있다. 이처럼 작가는 밥과 김치라는 일상적 소재의 극대화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주식의 의미를 해학적으로 되돌아볼 수 있게 한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작가는 ‘식생활과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음식은 문화교류를 위한 가장 쉬운 방식으로, 한국의 대표적인 음식인 밥과 김치를 주제로 한 작품으로 민족성과 작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것이다. 즉 우리의 밥상에 올라오는 가장 기본적인 음식인 밥과 김치라는 상징적인 오브제의 직접적으로 표현은 소외되어 있던 일상과 예술을 적극적으로 결합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캐스팅기법으로 기본형을 만들고 염색과 바느질 그리고 판화기법(목판과 석판)을 통해 시각과 미각뿐만이 아니라 촉각까지 자극하고 있다.




홍정표_Artactually - krispykreme_혼합재료_28×37×34cm_2007


홍정표 - 난해한 현대미술 떠내기 ● 일상에 근접하고자하는 현대미술의 적극성은 아이러니하게도 지나친 개념화로 인해 해석이 불가능한 작품을 양산하고 있다. 이에 반기를 든 작가는 조형적인 미(美)를 추구하는 미술의 본질에 충실하고자한다. 개념화된 소재보다는 익숙한 음악의 친근함처럼 일상적 소재를 통해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가고자 하는 것이다. 실제 고등어와 오징어를 실리콘으로 떠서 틀을 만들고 이 형틀에 투명 레진resin을 부어 모형을 떠내고 채색을 통해 완성한다. 이처럼 고등어와 오징어, 도넛, 아이스크림과 같은 소재를 다룬 “art actually”는 영화 “love actually”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제목으로 “사랑은 어디에나 존재한다”라는 말처럼 “예술은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작가에게 있어 작업은 자기충족의 수단이 아니라 대중과 호흡하고 일상과 관계를 맺는 미적 매개물인 것이다.




김연희_머문풍경 & 머물풍경_닥종이, 송진, 가변설치_2004


김연희 - 날개를 단 물고기 ● “나는 내가 공중에 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갑자기 어디선가 한 무리의 물고기 떼가 소리도 없이 나타났다. 물고기 떼는 나를 향해 똑바로 날아와 내 가슴을 관통해 지나갔다. 내가 잠에서 깼을 때에는 시간을 알 수 없는 시간이었다. 삶은 비워지고 채워지고 끝없이 지속되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물고기는 여러 상징 문양의 중요 소재로 사용되고 있다. 특히 불교에서는 물고기가 맑은 연못 속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며 노는 모습을 일체의 제약으로부터 벗어난 해탈의 경지를 상징한다. 작가 역시 닥종이와 송진을 사용하여 떠내진 물고기를 여러 마리 떼를 지어 천장에 매달아 설치한다. 물고기는 물에 살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것처럼 작가에 손끝에서 새로운 생명을 부여 받은 물고기들은 물과 뭍의 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날개를 달고 있는 것이다. ■ 오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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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속의 풍경

정수영 회화 연장展

2007_0718 ▶ 2007_0806



정수영_기억속의 풍경_종이에 먹, 회반죽, 콘테_90×72cm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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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720_금요일_05:00pm




관훈갤러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5
Tel. 02_733_6469
www.kwanhoongallery.com






기억의 숲 The Memory of a Forest ● 현대 도시는 밀집된 아파트 단지와 고층건물로 가득하여 하나의 거대한 숲을 이루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콘크리트와 철근으로 이루어진 인공 조형물 속에서 살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이제 인공의 숲 안에는 전원에 대한 향유의 충족을 위해 약간의 자연의 숲이 조성되어 있을 뿐이다. 이러한 사실이 서글픔이 되기도 하나 그 미비함보다는 위안이 됨은 다행이다. ● 과연 인간에게 숲이란 어떤 의미일까? 숲은 인간에서 산소를 공급하고 그늘을 제공하며 심리적인 안정을 주기도 한다. 이와 같이 자연과의 유기적 관계에 대한 애착은 우리로 하여금 이곳을 끊임없이 찾을 수밖에 없게 한다. 따라서 인간에게 숲이란 광대한 의미로 자연 본연의 모습이라 이해할 수 있다. ● 정수영은 우리와 가장 가까운 곳으로의 자연, 즉 숲을 소재로 선택하였다. 그는 인물, 나무, 돌, 바람, 구름 등과 같은 자연의 질서와 자연의 모습에 관심을 두었다. 그럼, 작가에게 자연이란 무엇인가? 작가가 다루고 있는 숲의 의미와 형태는 무엇인가? 그것은 작가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자연, 그리고 사물의 본질이다. ● 이와 같은 시각은 일찍이 북송 시대의 소식(蘇軾, 1036-1101/東坡)의 회화사상까지 거슬러 올라 갈 수 있다. “내가 일찍이 그림을 논해 보니 사람이나 동물(날짐승), 궁궐과 가옥, 기물은 다 언제나 상형(常形, 일정한 형상)이 있고 산과 돌, 대나무와 나무, 물결, 안개와 구름은 비록 상형은 없어도 상리(常理, 일정한 원리)는 있다. 상형을 잃고 있어도 사람들은 다 아는 바이다. 상리가 부당하면 그림에 밝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림을 알지 못한 사람이다.”




정수영_기억속의 풍경_종이에 먹, 회반죽, 콘테_72×90cm_2007



정수영_기억속의 풍경_종이에 먹, 회반죽, 콘테_72×90cm_2007



정수영_기억속의 풍경_종이에 먹, 회반죽, 콘테_173×226.5cm_2007



정수영_기억속의 풍경_종이에 먹, 회반죽, 콘테_130×97cmcm_2007


정수영의 작업에는 상리(常理)가 있다. 이 상리는 작품을 볼 때 단순히 상형(常形)이라는 형태적 측면의 집중이 아닌, 표현대상의 상리(常理), 즉 내적인 규율과 관계된 예술의 본질적 측면에 중점을 두는 것이다. 작가는 사물을 통해 내면의 본질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서 그에게는 형태라는 것이 의미가 없다. ● 처음 정수영의 작품을 보았을 때, 전경에 작게 배치된 인물, 중경의 구름 그리고 원경을 가득 메운 우뚝 솟은 산들로 마치 중국의 산수화를 보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 속의 구성요소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시각의 한계에서 벗어나 대상의 근원을 찾아 사물을 표현하려는 의도를 엿볼 수 있다. 그에게는 대상의 사실성이나 시·공간성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단지 돌, 산, 나무 등 자연의 형태만을 차용했을 뿐이다. 각 요소들은 작가의 기억으로 재구성되어 그 구성물들로 숲을 이룬다. 작가는 사실주의의 형태보다는 이상주의적인 상리(常理)의 형태나 상외(象外, 마음이 형태를 초월하여 밖에서 형성하는 외형)의 형태를 더 중요시하였다. ● 정수영은 자신이 생각하는 기억의 숲을 “항상 알 수 없는 형상과 이미지로 가득 채워져 있어 쉽게 노출되지 않는 미지의 대상이며 잊혀진 수많은 기억들을 생생하게 끄집어내는 공간이라는 의미를 가진다.”라고 말한다. ● 이처럼 작가는 이 세상의 모든 관념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관념적인 형태와 관념적인 색채들로부터의 탈출을 위해......




정수영_기억속의 풍경_종이에 먹, 회반죽, 콘테_72×90cm_2007



정수영_기억속의 풍경_종이에 먹, 회반죽, 콘테_72×90cm_2007



정수영_기억속의 풍경_종이에 먹, 회반죽, 콘테_72×90cm_2007



정수영_기억속의 풍경_종이에 먹, 회반죽, 콘테_72×90cm_2007



정수영_기억속의 풍경_종이에 먹, 회반죽, 콘테_130×190cm_2007


정수영은 ‘콩테와 호분’을 주재료로 사용하였다. 이로써 단순한 색채로 대상의 본질을 간략한 필치로 나타낼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정신성의 함축된 표현에 있어서 작가에게 적합하기 때문이다. 진하지만 부드러운 효과를 내는 콩테. 짧은 터치로 이루어진 우뚝 솟은 기암괴석, 선과 면으로만 존재하는 인물들, 안개 속에 있는 것 같은 구름들은 상상과 기억의 장소로 작가가 만들어 낸 기억의 숲에 놓여있게 되었다. ● 단순한 선과 면으로만 그리던 작가는 이제 새로운 시도를 한다. 작가에게 있어 색채는 사물을 보다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라고 생각하여 색채의 사용을 자제하여 왔다. 그러나 근래에 무지개 색채의 사용과 함께 시작된 변화는 이번 작품을 통해 나뭇잎과 잘려진 하늘에 새로운 색채를 첨가해 보았다. 작가는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색채를 사용하는데, 이는 작가만이 기억하고 있는 자신만의 나뭇잎과 하늘을 형상화하려는 작은 출발이다. 정수영은 점차 색채의 새로운 변화를 모색한다. 이러한 시도는 작가가 그동안 작업을 통하여 고민해 오던 것으로 그에게 있어 새로운 도전의 의미가 된다. ● 정수영은 사물에서 오는 형태의 중요성보다는 기억의 뉴런(neuron)을 통한 사건의 주관적인 이해에 초점을 두고 있다. 작가는 인물에 익명성을 부여하였으며, 시공간의 초월성, 그리고 사물의 정형성을 파괴하여 인상이나 이미지를 중심으로 단순하게 변형된 형상으로 재창조함으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내면적인 시각을 눈뜨게 한다. ■ 최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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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FT POWER

세계여성포럼 기념 현대미술展

2007_0802 ▶ 2007_0914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한국국제교류재단 문화센터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7_0802_목요일_05:30pm

기자 간담회_2007_0802_목요일_11:00am

참여작가
장영혜중공업_조덕현_최정화_천경우_나탈리 뒤버그(Nathalie Djurberg)
아나카트리나 돌븐 (AK Dolven)_비드야 가스탈동 (Vidya Gastaldon)_김홍석_이용백
신미경_베로니카 위만(Veronica Wiman)

큐레이터_이지윤

주최_MBC-세계여성포럼 조직위원회
주관_(주)문화방송
후원_한국국제교류재단 문화센터
기획_숨SUMM project





한국국제교류재단 문화센터 / 2007_0802 ▶ 2007_0815
서울 중구 순화동 7 중앙일보빌딩 1층
Tel. 02_3789_5600


세계여성포럼 대회장 / 2007_0912 ▶ 2007_0914
서울 광진구 광장동 21, W 서울 워커힐
Tel. 02_465_2222






현대미술전 SOFT POWER는 세계여성포럼을 기념하기 위해 기획된 행사로 포럼보다 한달여 앞서 오는 8월2일부터 15일까지 한국국제교류재단 문화센터 (중앙일보 빌딩 1층 - 구 호암갤러리) 에서 개최된다. 이후 세계여성포럼 기간인 9월12일부터 14일까지는 포럼 행사장인 쉐라톤 워커힐 호텔과 W 서울 워커힐에서 포럼과 동시에 진행될 예정이다. ● 전시 제목인 SOFT POWER는 SOFT 와 POWER 라는 두 개의 단어가 만나, 모순적이면서도 중의적인 의미를 갖는다. 하버드 케네디 스쿨의 학장인 조셉 나이(Joseph Nye)에 의해 처음으로 사용된 이 개념은 정치 경제 외교학적 의미로서 무력과 금력에 대항하는 힘으로 여러 가지의 다양한 협상과 차별화, 또한 더 나아가 끌릴만한 다른 이익을 주는 접근법을 통해 그 이루고자 하는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말한다. 무력과 금력에 의한 힘의 논리와 병행적으로 이 시대는 Soft Power 필요성을 더욱 절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 본 전시는 이러한 Soft Power의 개념이 문화적 개념으로 어떠한 함의를 갖는지, 동시대 현대 미술 작가들을 통한 접근을 시도한다. ● 이미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이들 작가들은 글로벌 시대의 Soft Power라는 주제를 일관되게 보여주고 있다. 주제의식을 놓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해석으로 유연성을 잃지 않는 것 - 즉, 원심과 구심작용을 통한 미학적 관점에서 여성의 Soft Power는 이들 작품을 통해 정치-경제-사회적 관점으로 승화되고 구체화된다. ● 본 전시는 그 어떤 페미니즘 차원의 여성 작가들에 의해 보여지는 작품들로 구성된 것이 아닌, 다양한 면에서의 Soft Power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을 시각적인 작품으로서 소개하는 것이다. 즉, SOFT POWER 라는 전시제목이 묘사하듯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수성과 유연성으로 여성의 위치에 대한 정치, 문화, 사회적인 관점과 더불어 미학적인 관점에 이르는 다양한 해석의 방법을 이용해 현대 사회에서의 진정한 여성성과 소프트 파워에 대한 개념을 고찰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장영혜중공업_THE ART OF SLEEP_온라인 플래쉬 에니메이션_00:18:26_2006
www.tate.org.uk/netart/artofsleep


인터넷 아트로 시작해 다양한 언어 플레이로 작업을 하는 2인 작가그룹 장영혜중공업 (장영혜, 마크 보그)은 본 포럼의 주제인 리더쉽과 성공의 재조명등의 내용을 담은 신작을 이번 전시를 통해 새로 소개한다. Soft Power의 구성요소 가운데 중요한 미디어인 컴퓨터와 인터넷을 이용한 텍스트 작업으로 Soft Power에 대한 작가의 선언이 담긴 내용을 한글과 영어, 중국어로 발표할 예정이다.




조덕현_거울 나라의 앨리스_캔버스에 흑연, 목탄_2006_런던 아시아 하우스


인물과 역사속의 이미지를 결합과 합성을 통한 또 다른 리얼리티로 제시하는 작업을 해 온 작가 조덕현은 본 전시에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로이 제작된 대형 인물화를 소개한다. 본 인물의 주인공들은 작가의 해석과 실제 여론조사를 통해 선정된 'Soft Power'를 지닌 인물들의 이미지를 합성-재현한 것이다. 1차 전시에서 소개되는 첫번째 회화의 주인공은 작가가 해석한 Soft Power를 지닌 인물인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과, 여왕과 같은 해에 태어난 작가의 어머니의 이미지를 합성한 것으로 동서양이 합쳐진 새로운 인물이다. 실제적인 정치적 권력보다, 상징적인 권위와 파워를 상징하는 여왕의 아우라(Aura)는 지극히 개인적인 해석으로 접근된 어머니의 이미지와 결합되어 나타난다. 1차 전시에서는 2차 전시에 소개될 인물의 이미지는 빈 캔버스로 남아 전시되고, 차후 포럼에 참여하는 연사들을 대상으로 조사, 선정한 인물을 소개하게 된다.




최정화_No Lotus_방수천, 통풍기, 전동기, 제어장치_지름 400cm, 높이 140cm_런던 아시아 하우스


전 세계적으로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환경문제는 재활과 재생을 주제로 다루는 최정화의 작업으로 표현된다. 마치 쓰레기장에 산처럼 쌓여있는 듯 펼쳐진 수만개의 플라스틱 바구니로 엮여 제작된 작품 숲(Foreset)은 이번 현대미술전에 처음 소개되는 작품으로 하찮은 일상의 물건들을 새로운 환경을 구성하는 물질로 대체시킨다. 또한, 세계여성포럼기간 중 쉐라톤 워커힐 호텔에 설치될 작품 NO LOTUS는 기존의 분홍빛 여린 이미지의 연꽃이 아닌 움직이는 검은 대형 연꽃으로 현대사회의 공해가 뿜어내는 새로운 꽃 기종으로 해석될 수 있다.




천경우_Versus #3_칼라인화_66×90cm_2006~2007


독일에서 활동중인 작가 천경우는 카메라 렌즈의 오랜 노출을 통해 이미지의 순간적인 표현을 넘어서는 작업을 펼친다. 특히 사진작업 Versus시리즈를 통해 사람들의 다양한 관계성을 표현한다. 이와 함께 시각장애를 가진 인도계 여인을 찍은 작품 Believing is Seeing을 통해, 겉으로 표현되는 상태나 영향력 넘어 숨어있는 가치와 변형적인 에너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세계여성포럼 기간중 열리는 2차전시에서는 사람 '인' (人)이라는 한자에서의 한 획을 세계여성포럼에 참여하는 관객과 퍼포먼스로 진행한다. 즉, 짝을 이룬 사람들이 사람 '인'(人)의 한 획을 뜻하는 긴 의자에 얼굴을 마주하고 앉아 서로의 숨결을 느끼며 대화를 시작하는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되며, 이어 9월15일부터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카사 아시아 CASA Asia 국제 전시에서는 사람 '인'(人)의 다른 획으로 이어지는 연계 퍼포먼스로 진행된다.




나탈리 뒤버그_Birthday Party_싱글채널 DVD_00:06:35_2005


베를린에 거주하는 스웨덴 출신 나탈리 뒤버그 (Nathalie Djurberg)는 주로 성 폭력문제나 정치적 차별성, 배타성등과 같은 무거운 주제들을 클레이 애니메이션을 통한 매우 동화적이고 우화적인 방법으로 소개한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New Movements in Fashion 과 같은 작업은 여성들 사이 존재하는 권력과 갈등 문제를 매우 유머있고 재치있게 접근하고 있다. 또한 작품 The Natural Selection에서는 글로벌시대 가치 기준의 부재를 실감하게 하는 코스모폴리탄들의 비논리적인 사고를 풍자하고 있다.




아나 카트리나 돌븐_Madonna and Man London_HD 비디오_00:04:30_2005


노르웨이의 대표적인 현대미술영상작가인 아나 카트리나 돌븐 (AK Dolven)은 실제 유럽 대기업 여성 CEO를 초청해 제작한 작품 런던의 마돈나' 와 '오슬로의 마돈나' 을 소개한다. 여성 기업인과 남성의 이미지를 마치 피에타(성모 마리아)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형태로 구성한 영상 설치 작업은 냉철한 권력관계와 어머니로써의 여성성이 대립하는 힘의 모순관계를 관객 스스로 질문하게 한다. 특별히 실제 여성 CEO들이 등장함으로써, 이들에게서 느껴지고 전달되는 카리스마는 이미지가 작품성을 넘어서는 실존성에 다다르게 한다.




비드야 가스탈동_부유하는 산_양모, 철사줄_240×270cm_2006


프랑스 작가 비드야 가스탈동 (Vidya Gastaldon)은 동양사상과 자연에 대한 신비로운 힘을 시각화한 부유하는 산(Floating Mountains)이라는 작품을 소개한다. 멀리서 보면 마치 떠 있는 산의 이미지처럼 보이지만, 각 작품을 이루고 있는 것은 수만개의 실이 얽히고 꼬여 제작된 실타래이다. 오랜 기간 매우 여성적인 소재로 인식되던 실이나 천 등의 단순한 소재들은 섬세하지만 장엄한 경험을 동시에 전달한다.




김홍석_Love_철판_80×155×160cm_2004_오스트리아 비엔나 쿤스탈레


김홍석은 우리 삶과 사회에 내제된 여러가지 가치와 문화적 코드 등 여러가지 기준에 대한 끊임없는 재해석과, 작가적 해석작업을 통해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기존 개념에 대한 개인적이고도 다양한 해석과정은 힘의 논리 개념에 매우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중요한 요소임을 제시하고 있다. 본 개념에 상징적인 작업이자 단어인 'LOVE' 작업은 미국의 모더니즘 조각가 로버트 인디아나 (Robert Indiana)의 작품을 포스트모던한 입장으로 재해석해 제작한 작품이다. 낡고 부서진 작품 'LOVE'는 의자로써의 기능이 추가된 정체성을 부여받아 진화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용백_angel- soldier_싱글채널 HD 비디오_00:17:00_2006


이용백의 엔젤 - 솔져 (Angel - Soldier) 영상 작업은 꽃밭 속에서 꽃으로 위장한 뒤 서서히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군인들의 퍼포먼스를 담은 영상작업을 소개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표면적인 힘과 대조되는 Soft Power의 성격은 보이지 않는 힘으로서의 존재성을 인식하게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이 진행중인 분단 조국의 상황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이용백의 작품 속 무장한 군인들은 동시에 글로벌시대에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는 다양한 경제-정치전들을 떠올리게 한다. 이번 작업은 이 같은 힘의 논리에 희생된 수많은 영혼에 대한 추모의식과 같은 퍼포먼스로도 읽혀질 수 있다.




신미경_Translation Buddha_비누, 철강 보강제_93×16×23cm_2006_런던 아시아 하우스


런던에서 활동하는 있는 신미경은 다양한 비누 조각상들을 소개한다. 비누라는 새로운 조각의 소재를 이용해 작가는 르네상스 대리석 조각, 중국 도자기, 또 정교한 불상 등에 대한 작가적 재해석을 시도한다. 새롭게 제작된 이 비누 조각상들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아시아 작가의 시각에서 제작된 다른 종교적, 역사적, 문화적 문맥을 경험하게 한다. 본 작업들은 비누로써의 기능을 가지고 일반인들이 사용할 수 있게 공공 화장실에 설치돼 계속적인 변형과정이 진행될 예정이다.




Zanele Muholi_난도 마피사 와 무표 시비야_람바다 프린트_76.5×76.5cm_2006


스웨덴 출신페미니즘 운동이 강하게 일었던 스웨덴의 전통을 이어받아 포스트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진행되는 본 '젠더와 공포 (Gender & Fear) 프로젝트는 참여관객에게 그들이 여성으로서 두려움을 느끼는 장소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이야기하도록 해 성차별적인 지역과 장소에 대해 고찰하는 기회를 갖게 한다. 베로니카 위만은 '자넬레 무홀리' 의 사진시리즈 작업과 영상작업을 함께 소개하며, 포럼기간 중의 인터뷰는 남아공에서 연계돼 진행된다.의 큐레이터겸 작가로써 지난 4년간 젠더와 공포 프로젝트를 국제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베로니카 위만 (Veronica Wiman)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대표적인 사진작가인 자넬레 무홀리 (Zanele Muholi)의 작품을 소개한다. 70년대부터 페미니즘 운동이 강하게 일었던 스웨덴의 전통을 이어받아 포스트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진행되는 본 '젠더와 공포 (Gender & Fear) 프로젝트는 참여관객에게 그들이 여성으로서 두려움을 느끼는 장소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이야기하도록 해 성차별적인 지역과 장소에 대해 고찰하는 기회를 갖게 한다. 베로니카 위만은 '자넬레 무홀리' 의 사진시리즈 작업과 영상작업을 함께 소개하며, 포럼기간 중의 인터뷰는 남아공에서 연계돼 진행된다. ■ 이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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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EY IN A SUITCASE

로와정 드로잉·설치展

2007_0727 ▶ 2007_0814



노윤희_정현석_We need a talk_fabric_life size_2007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진흥아트홀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7_0727_금요일_05:30pm

진흥 New Artist 2007 선정작가 초대展

관람시간_10:00am~07:00pm / 일요일·공휴일 휴무





진흥아트홀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 104-8번지 진흥빌딩 1층
Tel. 02_2230_5170
www.jharthall.org






흡수하려는 욕망의 본질 ● 'Roh wa Jeong'이라는 팀으로 활동하는 노윤희, 정현석 작가는 생년월일이 동일한 작가이다. 같은 해 다른 성 정체성으로 태어난 이들이 서로에 대해 이해하고 탐구하는 과정은 이들 작품의 본질과 유사한 점이 있어 흥미롭다.




노윤희_정현석_private moment_fabric_life size_2007


'Roh wa Jeong'의 작업에서 남성과 여성은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서로에 대한 정체성을 탐구한다. 두 자아는 완전하게 하나가 되고 통일되지만 고유의 정체성을 잃지 않은 채 존재한다. 곧 다른 성 정체성을 지닌 타인에 대한 완전한 결합은 새로운 성격의 창출이 아닌 '혼합'mixture 의 형태를 지닌다. 곧 상대의 정체성에 대해서 온 몸으로 흡수하고 받아들여 완전한 존재의 이해로까지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노윤희_정현석_breakfast_digital image_가변크기_2007



노윤희_정현석_breakfast14_digital image_가변크기_2007



노윤희_정현석_breakfast11_digital image_가변크기_2007


〈breakfast〉라는 작품에서 음식으로 물성화 된 여성은 남성의 아침 식사가 된다. 이것은 매우 원초적인 표현 방법으로서 남성이 여성에 대해 심연 깊숙이까지 알고 공유하고자 하는 욕망을 나타낸다. 여성을 음식물로써 섭취한 남성은 언어로 표현되지 아니하는 여성의 미세한 감정과 미세한 변화의 흔적들을 어느 것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흡수하여 이해의 폭과 깊이를 본질로까지 이끌어 나가고자 한다. 이러한 이해의 과정이 물성화라는 다소 자극적인 방법으로 표현되었을 뿐 상대에 대한 인식의 폭과 깊이를 넓히고자 하는 욕망에 폄하를 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노윤희_정현석_we need a talk (실제작품)_2007


그럼에도 이러한 강한 욕망은 〈costume〉 작업에서 일부 한계를 드러낸다. 완전하게 서로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하나로 혼합, 흡수 되고자 하는 욕망은 실제적인 〈costume〉작업에서 이상적으로 완벽하게 결합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두 남녀가 함께 입는 하나의 속옷, 대화하기에 가장 좋은 형태를 지닌 마주 연결된 옷 등은 강제적으로 둘 사이를 묶어 주고 대화의 장으로 이끌지만 그 결합이 물리적 한계를 지닌 형태를 띠며 부자유스러움을 보여 준다. 이것은 두 사람의 정체성이 고유성을 유지하면서도 하나로 완전히 흡수하려는 욕망이 현실적인 부분에서 쉽지 않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서로에 대해, 혹은 타인에 대해 완전히 인식하려는 이들의 노력은 앞으로 계속 될 것이다. 또한 서로 다른 정체성이나 다른 생각, 가치관을 가진 채 단절 되어 있는 현대인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는 점에서'Roh wa Jeong'의 작업을 긍정적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 구자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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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illeben (Still Life)

Michael Wesely 마이클 웨슬리 사진展

2007_0801 ▶ 2007_0831



마이클 웨슬리_16.2-22.2.2007_컬러프린트_180×220cm_2007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더 컬럼스 갤러리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7_0801_수요일_06:00pm

큐레이터_김미동_오선영




더 컬럼스 갤러리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63-14
Tel. 02_3442_6301
www.columns.co.kr






2004년 새로운 모습으로 전세계 미술 애호가들과 대중 앞에 선 뉴욕의 모마 미술관 Museum of Modern Art은 3년 동안의 레노베이션 과정을 기록한 사진전과 함께 재개관하였습니다. 그 3년간의 공사 기간 전 과정을 독일 사진 작가 마이클 웨슬리 Michael Wesely 가 한 폭의 사진 속에 응축 시켜 담아내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의 장시간 노출 작업을 진행한 마이클 웨슬리는 올해 3월부터 7월까지 꽃을 소재로 한 노출 작업을 네덜란드의 헤이그 시립미술관 Gemeente museum, Den Haag 에서 개최하였고 뒤이어 오는 8월 더 컬럼스에서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마이클 웨슬리_24.12.2005 -3.1.2006_컬러프린트_200×180cm_2006



마이클 웨슬리_9.5.-17.5.2005_컬러프린트_200×180cm_2005


빛이 부족한 공간에서 셔터를 장시간 열어 놓아 피사체의 움직임을 마치 연기처럼 만져지지 않는 신비스러운 이미지로 표현하는 기술을 카메라 쉐이크 camera shake 라고 합니다. 이러한 기법으로 만들어낸 이번 프로젝트는 꽃의 일생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긴장감 넘치는 오롯한 봉오리에서부터 위풍당당한 만개(滿開), 그리고 처연하지만 업(業)을 다한 엄숙함이 시간의 겹을 이루며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처음과 끝, 번성과 쇠락, 환희와 비애, 희망과 절망.. 웨슬리가 카메라라는 눈을 통해 오랜 시간 지켜본 꽃의 일생은 하나의 공간 속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부침(浮沈)을 보이는 것이 마치 우리의 인생과도 같아 보입니다. 웨슬리의 작품은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부케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여주되, 사진 기술을 이용하여 현재가 과거가 되고 미래가 현재가 되는 시간의 움직임을 시적인 아름다움으로 표현하고 있기에 사진의 사실적 재현이 나타내는 상징적 의미와 사회적 기능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합니다. 다시 말해, 사진의 예술로서의 기능과 매스 미디어로서의 기능을 절묘하게 혼합하여 각 분야의 특성을 최대한 살려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이클 웨슬리_19.3.-27.3.2007_컬러프린트_220×180cm_2007



마이클 웨슬리_7.6.-19.6.2005_컬러프린트_200×180cm_2005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나 같은 시기의 스페인 보데곤 bodegon 그림에서 보이는 극사실주의적 꽃들과 과일, 새 등의 모습이 너무나도 사실적이라 오히려 선뜻 마음을 주지 못하고 눈을 비비며 다시 보고 또 보며 서서히 이면에 깔린 의미를 깨닫는 것처럼 작가는 “사실의 극대화” 라는 기법으로 꽃의 상징적 의미를 고찰하되 동시에 전혀 다른 새로운 관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관객이 사물을 바라보는데 있어 매스미디어적 관점과 예술적 시각이라는 두 가지 접근법을 가지고 보다 확대된 시야로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을 제공하게 될 것입니다. ■ 장동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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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ing him as he painted.

신창수 유작展

2007_0801 ▶ 2007_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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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804_토요일_05:00pm






갤러리 토포하우스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4번지
Tel. 02_734_7555
www.topohaus.com






기억과 상상 - ‘길’로부터 ● 작가 신창수가 부단히 모색하는 창작에의 열정으로 자신만의 개성을 성취하는 길을 지향해 나갔다고 할진대, 우리는 그가 실제 ‘길’이라는 자신의 미적 대상을 작품화해 온 사실을 검토해야 할 필요성에 직면한다. 그가 ‘길’을 소재와 테마로 삼기 시작한 것은 2004-2005년 의 일로,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지만 앞서 살펴보았듯이 그것이 대학시절부터 탐구해왔던 ‘나무’라는 미적 대상으로부터 2001-2002년의 ‘집’ 시리즈, 2003년의 ‘지도’ 시리즈로 그 범위가 확장되어 온 것임을 쉬이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부산에서 미술학원을 운영하며 작업을 병행해나가던 6년여의 시간을 정리하고 경기도 여주로 처음 이주하면서 변화의 길을 모색했다. 그 변화의 발단은 미술학원 운영이 어려워져 처분을 필요로 했던 탓도 있었지만 작업을 위한 시간 투자가 어려워 늘 고민했던 이유에 근거하기도 한다. 새로운 길을 모색하며 결단한 뒤 이주한 새로운 물리적 환경 속에서 그는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지 간에 분명코 변화의 흐름을 맞이했다. 환경이 바뀌면 사람도 바뀐다는 말이 분명 맞는 것일까?   그는 이후 경기도 양평으로 이사하면서 그의 새로운 작업을 모색하는 단초를 별안간 맞닥뜨리게 된다. 순전히 우연한 기회로, 20여분이 걸리는 거리를 6시간이 넘도록 밤새 걷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그의 진술대로 그는 그 후에도 밤 풍경에 매료되어 그 길을 네댓 번을 더 걸었고 다른 장소를 통해서도 자주 밤길을 걸어 아침에 작업실에 도달하곤 했던 것이다. 그 다음날 몸살로 하루 종일 누워 지내야만 할 정도로 체력을 소진하는 일이었음에도 그는 왜 그토록 밤에 길을 걸어 다녔던 것일까? 그는 당시 차도 없었지만 운전하는 것을 싫어해 웬만한 곳은 걸어서 다니던 습관이 있었는데, 그런 이유는 길을 걷는 가운데 주변의 잡풀들이나 생명체를 발견하는 여유로운 맛에 매혹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걷기의 여유로움이 우연한 기회에 밤길로 바뀌었고 밤길을 걸어가면서 그는 낮에 걷던 길에서 느낄 수 없었던 오묘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세세하고 화려하기까지 한 낮 풍경의 세밀함이 한꺼번에 묻혀 버린 상태에서 시야의 뒤편에 숨어있어 낮에는 보이지도 않던 커다란 형상들이 전면에 나서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여주는 감성의 풍경에 그가 푹 빠져든 것이다. ‘밤길 걷기’의 매력이 ‘낮길 걷기’의 매력을 잠식해버리고만 것이다. ● “시야가 제한되니 감성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 즉, 또 다른 방법으로 자연을 보는 법을 알았다. / 내가 ‘그 길’을 걸어가듯이 그 길은 내게 다가왔고 / 이게 우리의 만남이었다.” 우리는 여기서 그가 이러한 밤길을 소재로 작업했던 ‘길’ 시리즈의 어슴푸레한 풍경들을 떠올리면서 시각성에서 자유롭게 하는 밤의 풍경이 촉발시키는 상상의 기능을 떠올려 본다. 사물이 명료하지 않은 모습으로 시선 안으로 들어올 때 그 이미지는 모호하다. 어두움이 사물의 윤곽들을 덮고 새로운 이미지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미적 대상의 시각 주체는 이러할 경우 상상에 의존한다.




신창수_현대인-위축



신창수_사는 것에 대하여


상상(想像, imagination)이란 무엇이던가?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현상이나 사물에 대하여 마음속으로 그려보는 심상(心像)이며 그러한 심상을 새로운 형태로 재구성하는 정신작용이 아니던가? 어둠 속에 묻혀 있는 사물들은 시각 주체에게 온전히 경험되지 않게 되어 시각 주체의 상상력을 발동시킨다. 여기서 시각 주체는 이러한 기억된 생각의 고리를 꿰어 맞추며 상상력에 힘을 보탠다. 상상 작용은 바로 이와 같이 기억과 같은 과거의 경험에 의지하고 이를 재구성하여 새로운 것을 창출하려는 행위이다. 상상이 공상이나 망상, 환상과 같은 지점은 현실적이지 않은 데 있으면서도 다른 지점은 그 현실성을 늘 상정하고 있다는 지점이다. 달나라 여행의 공상이 현실화되어 상상을 가능케 했다는 예들처럼 말이다. 현실성의 기반을 폐기처분하지 않는 상상은 인식 주체의 과거의 기억과 연계한다. 그러나 상상은 기억을 재생하는 차원에 머무르지 않는 역동성이 주요하다. 경험적 기억을 단순히 재생하지 않고 복합적인 연결고리를 통해 새로운 형태로 재구성해내는 작용이 상상인 탓이다. 또 하나, 상상은 늘 이미지와 관계한다. 불어로 상상(imagination)은 그 어원상의 근원에서 살펴보듯이 이마쥬(image)와 관계한다. 상상적(imaginaire), 상상적인 것(l'imaginaire)이라는 파생어에서 여전히 발견되듯이 상상은 바슐라르(Gaston Bashelard) 식으로 ‘이미지의 현상학’이라 표현할만하다. 좀 어려운 말로 풀이되지만, 이미지는 시각 주체와 미적 대상 사이에서 발현되면서 ‘현상학적 환원(reduction phenomenologique)’을 거쳐야만 그 존재를 명확히 규명할 수 있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객관성에 기초한 관찰과 연구를 통해서는 이미지의 역동성이나 통주관성(通主觀性)을 살필 수 없고 개인적인 의식과 주관성을 연구하는 현상학적 방법론으로써만 이미지의 역동성이나 통주관성을 살필 수 있다는 것이다. 바슐라르에 의하면 이미지의 현상학이란 ‘개인적인 의식 속에서의 이미지의 시발(始發)에 대한 고찰’을 의미한다. 이러한 이미지의 문제를 철학적으로 밝히기 위해서 바슐라르는 반대로 상상력의 현상학에 이르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미지는 상상력의 직접적인 산물이기 때문이며 미래로 열려있고 생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지의 현상학은 상상력과 만나고 상상력의 현상학은 이미지와 만나듯이 이미지와 상상은 그의 관점에서 하나의 몸이다.




신창수_섬



신창수_폭우


작가 신창수가 독특한 체험으로부터 시도한 시리즈 작업 ‘길’에서 우리는 바슐라르 식의 상상(력)과 이미지의 현상학을 목도한다. 어둠이 감싸고 있는 풍경의 개별 요소들은 숲과 같은 거대한 덩치의 실루엣 속에 스며들어 개체의 구체적 이미지들을 상실하면서도 우리로 하여금 나무 혹은 숲, 잡초, 넝쿨, 논두렁과 밭두렁, 바위 들을 희미하게 분간케 한다. 우리의 기억의 경험이 일으키는 상상작용이 그 안에서 일어나게 하는 것이다. 작가는 길이 있는 풍경을 재현(representation)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그 이미지를 현시(presentation)하는 데 일차적 관심이 있는 탓에 은은한 어두움의 실루엣 안으로 자연 개체의 사물들을 녹여 낸다. 구체적으로 이러한 이미지를 창출하기 위해서 작가는 장지 위에 먹을 묻힌 붓을 거칠게 찍어댄다. 사실 그 붓은 온전한 붓이 아니다. 작가가 멀쩡한 붓끝을 짓이겨 놓고 그 위에 본드를 묻혀 말려낸 특수한 붓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붓끝이 제각기의 모습대로 뭉개져 굳어버린 도구는 더 이상 그리기의 도구로 기능하지 못하고 단지 찍기의 도구로 기능할 따름이다. 장지 위에 물감이 스며드는 깊이를 온전히 창출할 수 없는 ‘붓 아닌 붓’은 재현적인 화면의 디테일과 구체적 형태를 만들어내는 것보다 화면 전체의 밀도를 다지는데 더 유효하게 사용된다. 먹을 찍어가는 과정 속에서 잡초와 넝쿨은 뒤섞이다 형태를 희미하게 드러내고 이내 상호 침투하면서 그들은 뒤섞인다. 신창수의 길이 있는 풍경 이미지는 그가 진술하듯, 며칠을 두고 창작할 작품에 대해 고심한 후 실제 작업에 들어갈 때는 순식간에 나온 것들이다. 그도 그럴 것이 교통편의 한계나 물리적 거리의 한계로 인해 작업 재료를 수월하게 충당할 수 없는 여건상, 그는 작업의 모든 과정을 맘속에 몇 번이나 그리고 그리면서 꼼꼼하게 계획하는 방식들을 구사한 것이다. 그 외에도 실제 창작 과정에서의 이미지 생산의 즉발성은 작가가 이미지의 재현이 아닌 이미지의 현시에 천착하는 탓에 발생되기도 한다. 따라서 이미지의 구체성이 아닌 그 전체성에 관심을 모으는 작가의 입장으로서는 이미지 창작이 순식간에 성취되는 것은 처음부터 의도된 것이다. 이미지의 현시라는 차원에서 이러한 창작 과정은 바슐라르 식으로 작가(신창수)와 미적 대상(길이 있는 풍경) 사이에서 벌어지는 ‘현상학적 환원’이자 ‘상상력의 현현’이다. 즉 바슐라르의 용어를 빌면 ‘이미지의 현상학’이자 ‘상상(력)의 현상학’인 셈이다. 이미지의 현시를 위해서는 어떠한 특정 지역의 풍경을 구조화하고 구체화하는 것 보다는 심상적 이미지로 풀어내려는 상상작용이 더 유효하다. 그래서 실제적 지명을 떠올리고 작업한 몇몇 ‘길’과 관련한 작업들은 그 지역의 구조적 외양의 큰 틀만 유사할 뿐 이미지의 개별 요소들은 모두 작가의 상상작용에서 유발된 것일 뿐이다. 이러한 이미지의 전체성을 강조하기 위해 작가는 길이 있는 풍경을 ‘부감법(俯瞰法)’의 투시 방식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작품을 순식간에 그려내는 그의 창작 방식은 미학적이고 전략적인 차원에서 고려되었다고 평가하기 보다는 그의 복잡다단한 바이오그래피가 유발시키는 심정적 차원에서 기원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시리즈 작업 ‘길’을 구체화시킨 2004-2005년 당시, 그는 가족을 떠나 홀로 양평에 둥지를 틀고 기약 없는 작가의 미래를 위해 힘들게 삶을 개척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사랑했던 사람으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중이었다. 더욱이 2005년 암으로 이미 오래전 세상을 떠난 그의 아버지를 따라 그의 형이 간암으로 세상을 갑자기 등졌으니 그에게 2000년대는 힘겨운 고행의 나날이었으리라. 작가노트에서 밝힌 그의 말대로 창작시에 순식간에 작업들이 생산될 수 있었던 까닭은 작가노트에서 밝힌 그의 말대로 ‘한(恨)이 많이 묻어 있고’ 괴로운 일들이 많아 ‘그 하나하나가 감정의 폭풍 속에서 나온’ 탓이다.   따라서 암울하고 불운한 체험들이 작가 신창수의 작품들을 어둡게 보이게 했으리라는 추측은 과장된 것이 아니다. 그의 시리즈 작업 ‘길’이 모두 저녁 혹은 밤, 새벽과 같이 햇볕이 없는 시간을 그린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은 그런 연유에서이다. 물론 그의 ‘길’ 시리즈가 밤에 우연히 길을 걸었던 경험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특별하게 그가 모든 작품을 ‘밤에 걸었던 길’ 혹은 ‘밤에 보는 길’ 식으로 명기하고 있지 않았음을 상기할 때 그의 길은 한 낮이거나 아침이거나 어느 오후의 길일 수도 있다. 더욱이 2006년 초 그의 부산 시립미술관에서의 2회 개인전을 준비할 당시 기획자의 강권에 못 이겨 <밤에 난 길을 나서다>라는 전시 타이틀을 허락했지만 그가 그 타이틀을 못내 못마땅해 했었다는 한 지인의 증언을 되새긴다면 이러한 우리들의 견해는 충분히 타당해진다.  




신창수_자화상



신창수_무제


우리는 여기서 작가 신창수가 2001-2002년의 시리즈 작업 ‘집’에서 ‘집’을 ‘사람’과 동격으로 진술했던 사실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겠다. 그에게 ‘길은 그가 그동안 만났고 헤어진 사람들의 흔적이자 그가 앞으로 가야할 방향에 대한 희망’이다. 즉 그의 진술어법에 따라 말하면, ‘길’은 ‘사람들의 흔적’과 동격인 셈이다. 만남은 늘 헤어짐을 전제로 한다는 이야기가 실제로 그에게 실현되고 만 몇몇 사건 덕에 그는 사람과의 새로운 만남 자체가 버거웠을 법하다. 그의 고백을 들어보자. “누구라도 그러하겠지만 / 나도 큰 병이 있다. / 사람을 그리워하는 병이라고 / 말하고 싶다. // (중략) // 여기 양평에 와서는 / 사람을 만나는 일이 힘들다. / 사람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 그 사람들이 / 다음날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오는 것 / 그것이 힘들다. / 그래서 갈 때는 마중을 안 한다. / 천천히 사라지는 실루엣을 보고 있으면 / 마음이 너무 저려온다. / 난 아직도 / 그 병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 오히려 만나 좋은 시간보다 / 헤어지는 시간이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 난 아무리 생각해도 / 산 속 깊이 숨어있어야 하는 / 팔자인가 보다. (중략)” 사람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체험이 그를 더욱 더 작업에 정진하게 하고 ‘사람의 흔적인 길’을 통해서 상상력의 현현을 드러내게 했는지 모를 일이다.  




신창수_Y-T003D



신창수_고달사L형작업실


‘Box’에게로   작가 신창수는 이제 고인이 되었다. 그는 2006년 부산시립미술관에서의 2회 개인전을 준비하는 2005년 한 해 동안 담낭암과 투병하면서 시리즈 작업 ‘길’과 더불어 ‘Box' 시리즈 제작에 매진했다. 이 'Box' 시리즈는 그가 전시를 위해 열정을 다해 준비했던 작업이었지만 끝내 개인전에 포함되지를 못했다. 이번 ‘작고 1주기 기념 유작전’에서 빛을 보게 될 Box 시리즈는 앞서 시리즈 작업인 ‘집’의 경우와 같이 내밀한 추억의 공간으로 읽힌다. Box의 표면에 혹은 그 내부에 ‘집’ 시리즈작업과 ‘길’ 시리즈 작업이 한데 얽혀 있다. 기다란 박스에는 ‘길’을 그렸고 담뱃갑처럼 작은 박스에는 올망졸망한 ‘집’들을 그려 넣었다. 과일 박스, 서류 파일, 검은 콩 두유 박스, 전기 톱날 포장 박스, 계란 박스 등 크기도 다양하고 그 형태도 다종다양한 박스들을 전개도처럼 풀어 헤쳐 그 위에 집 혹은 길을 그리기도 하고 박스 형태 그대로 둔 채 뚜껑만 열어 그 내부의 공간 안에 이미지를 집이나 길을 그려 넣기도 했다. 이전의 ‘집’ 시리즈, ‘길’ 시리즈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피상적으로는 이미지의 바탕이 보다 더 다양해졌다는 것 외에도 먹의 사용이 아예 없거나 조절되면서 생동력 있는 아크릴 물감이 화면 위에 올라가 색감이 훨씬 밝아졌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좀 더 본질적인 변화나 그 가능태는 무엇일까? 작가 신창수의 작업에 있어, ‘집’이 사람이고 ‘길’이 사람의 흔적이었다면 이 ‘Box'는 과연 무엇이 되어야만 할까? 이러한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 우리는 비어있음의 공간을 생각해야 할 듯싶다. ‘길’ 시리즈에서 붓으로 거칠게 물감을 찍어서 만들어낸 넓게 점유하는 어두움의 공간 혹은 먹의 공간 은 풀, 나무, 논두렁, 바위 등 자연의 개별적 주체들을 인식케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속에 흡수시켜 그들을 모호하게 만든다. 충만하면서도 비어 있는 공간인 셈이다. ‘Box' 시리즈에서 자연의 개별적 주체들은 이전보다 더 생생하게 살아서 움직인다. 박스의 내부와 외부를 가로지르며 이미지의 충만한 향연을 벌인다. 그런데 이미지가 가득 찬 박스는 모두 비어있다. ‘길’ 시리즈와는 다른 차원의 충만하면서도 비어 있는 공간이 되는 셈이다. 비어 있음은 열려있음으로 확인 가능한 존재에의 인식이다. 무엇인가 가득 차 있어야 할 기능적 도구인 박스는 그 안이 열려져 있음으로써 비어 있음의 공간을 실현한다. 작품을 바라보는 관객들이 목도하게 되는 ‘부재에 관한 인식’은 열려있음으로 소통에의 갈망을 부추긴다. 그가 여러 개의 담뱃갑에 밑 작업을 해서 텅 비어 있는 여백들을 바라보면서 써 내려간 그의 아래와 같은 생각처럼...




신창수_박스작업



신창수_집들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 이순간이 / 제일 흥분된다. / 불확실한 미래를 / 결정하는 / 이 시간이... / 난 내 작업에서는 / 신의 입장이 되고 / 부담스럽고도 / 흥분되는 / 순간이다.” 이제 소통에의 열망을 잠시 가라앉혀야만 하는 자리에 왔다. 물고기, 나무, 집, 지도, 길로부터 고인과 함께 떠난 우리의 긴 여행을 마치고자 한다. 고인의 ‘Box’에게로 돌아가자. 그 충만하고도 비어있는 공간에 잠시나마 쉬기를 청한다. - 신창수 작품집〈그가 그리다. 그를 그리다〉(다빈치기프트출판) 中 -고 신창수전 서문-에서 발췌 ■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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