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입을 원하시는 분은 메일을 주시기 바랍니다. zabellocq@empal.com
     자물쇠
     nZ
     eZ


  zabel(2004-07-01 14:02:09, Hit : 1051, Vote : 225
 http://gelatinemotel.byus.net
 화가의 손 또는 머리의 혹

.
.
.
나 스스로도 테크닉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맹신이 있기는 하지만, 테크닉이 단지 손재주로만 기능하지 않을 수 있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사실, 무척이나 매우 대단히.   자명한 일이다.
.
.
.
++++++++++++++++++++++++++++++++++++++++++++++++++++++++++++++++++++++++++++++++++++++






자연을 관조하고 노래하는 서정시인


김재학 회화展

2004_0701 ▶ 2004_0720






김재학_호박_캔버스에 유채_53×72.7cm_2002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선 아트센터·선화랑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4_0701_수요일_05:00pm






선 아트센터ㆍ선화랑

서울 종로구 인사동 184번지

Tel. 02_734_5839








주지하듯이 김재학은 대상의 재현에 충실한 전형적인 구상미술 작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은 상당히 폭넓은 애호가 층을 확보하고 있다. 전통적 구상미술 애호가들은 물론이고 현대미술 애호가들에게도 널리 사랑을 받고 있다는 의미이다. 두루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무슨 특별한 이야깃거리나 되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구상미술 작가의 작업이 현대미술 애호가들에게도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우리 미술제도는 크게 보아 이념적으로 양분되어 있는 것말고도 또 다른 질서들의 어색한 동거가 역사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 현대미술과 전통적 아카데미즘 미술 양자는 예술계에서 서로 공존하고 있지만, 이질적인 조건들이 너무 많다. 서로 다른 공간과 미의식, 질서, 시장 등을 갖추고서 따로 움직이는 모양새가 오늘의 현실인 것이다. 전혀 다른 예술계를 각각 따로 형성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우리 화단은 분리되어 있다. 이 지면에서 그 문제를 깊이 파고들어 따져보고자 하는 의도는 없다. 다만 보기 드물게 김재학이 그 양분된 화단 현실 속에서도 폭넓은 애호가 층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은 본인에게나 또 구상미술계에도 무언가 의미가 있는 일이기에 이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는 것이다. ● 구상미술에는 하나의 아이러니가 있다. 구상미술이야말로 재현에 충실하고, 그로써 대중들의 정서에 밀착해 있는 양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상미술이 대중적 애호가 층을 널리 확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오늘날은 그렇다. 이러한 사실이야말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대중적이라 자부하는 미술이지만 대중은 멀리 있다는 것이다. 피카소나 백남준 그들의 예술세계가 대중들에게 잘 전달되고 있지는 않아도, 그들은 대중들의 의심할 수 없는 우상이다. 대중적 정서에 부합하고 있으며, 또한 적지 않은 기여를 해온 구상미술이 정작 대중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바로 구상미술이 대중 매체의 생리에 잘 적응하고 있지 못한데 가장 큰 원인이 있을 것이다. 대중음악에는 대중적 스타가 있기 마련이고, 또한 그 스타 뒤에는 미디어가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대중매체 가까이 있지 못한 구상미술에는 이렇다 할 만한 스타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대중적 스타가 반드시 위대한 예술가란
법은 없지만, 대중적 스타가 없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대중들의 생활공간과 시간 속으로 파고들지 못하고 있다는 예술사회학적 빈곤의 단면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김재학_봄_캔버스에 유채_112.1×193cm_2004





김재학_봄_캔버스에 유채_45×90cm_2004



그런데 김재학의 경우는 그 나름대로의 대중성을 가지고 있다. 이 작가를 소개할 때 작가 이름은 잘 모르다가도 이 작가의 작품 이미지가 실린 인쇄물, 즉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한 모 그룹의 캘린더, 가계부 등을 장식하고 있는 작품 이야기를 하면 알아보는 사람들이 대단히 많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해가 지나면 버리기 마련인 그 가계부와 같은 인쇄물들을 버리지 않고 보관하고 있다고도 한다. 그밖에도 우표, 연하엽서 등에 실린 작품 이미지까지 감안하면 그는 어느 사이 대중적 스타의 위상에 근접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작가가 대중적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의 예술적 성취가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예술적 성취 이전에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작가가 대중적인 매체를 탈 수 있었던 것도, 또한 현대미술 애호가들에게도 어필 수 있었던 것도 또한 어떤 이유가 있을 터이다.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 작가의 그림들이 보통의 구상미술 작가들과 크게 다른 내용은 없었다. 다른 작가들처럼 풍경, 인물, 정물 등을 느낌과 욕구에 따라 그린 데서는 큰 차이가 없었다. 성향적으로 코로풍과 마네풍에 가까운 견고한 재현회화를 일구어 왔던 보통의 작가였다. 그러다 지난 90년대 말부터 조그만 변화가 일어났다. 그것은 다름 아닌 화풍의 변화이다. 대상은 주로 식물 이미지로서 일러스트레이션에 가까운 가벼운 터치의 화풍을 선보이게 된 것이다. 산뜻하고 담백 경쾌하며, 감각적인 붓터치가 살아 있는 화면은 식물 이미지의 생기를 더해주게 된다. 우리의 산과 들에서 접할 수 있는 들꽃들을 대상으로 한 그림들은 소재 자체의 신선감을 발산할 수 있었다. 숨겨진 자연이라는 구체적인 이슈를 가지고 접근한 작가의 의도는 시의 적절하게 대중적 미의식과 정서에 아주 효과적으로 어필하게 된다. 이러한 소재의 그림들은 대체로 소품의 크기들이지만 작품들의 밀도와 짜임새가 절묘하여 소품이라는 편견을 극복할 수 있게 된다. ● 게다가 작가의 노련한 필치는 사진적 이미지의 한계를 극복한 그리기를 통해 사진 이상의 시각적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보통은 심산유곡에서 발견한 대상을 대부분 사진으로 담아 그것을 화폭에 옮기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작가의 소화 능력이 뒷받침될 때 사진 의존에서 오는 어색함을 극복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그의 필치는 감각적인 리듬에 따라 움직이면서 자연적 대상 자체를 충실히 묘사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전달하게 된다. 특히 여백을 처리함에 있어 그것이 적절한 관조와 사유의 공간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데서 대상의 사소함과 왜소함을 또한 극복하게 된다. 자연 앞에서의 관조를 충분하게 체험한 작가 입장에서 관조의 순환을 자연스럽게 부여하는 것이다. 수채화의 경우는 여백에 별도의 처리를 하지 않은 것 역시 주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산뜻하면서도 담백하고 감칠맛이 나는 작가의 재현적 화면은 인쇄매체를 통해 다양하게 편집되어 보는 기쁨과 재미를 더하게 된다.






김재학_장미_캔버스에 유채_40×80cm_2004





김재학_장미_캔버스에 유채_40×80cm_2004



작가는 최근 특정의 소재에 집중했던 데서 벗어나 다양한 소재로 전환하게 된다. 정물, 풍경 등의 장르만이 아니라 그 소재도 다양하게 그려지고 있다. 작품의 크기도 초대형의 그림에서부터 작은 크기의 그림들이 곁들여져 공간의 연출을 보다 변화 있게 하고 있음이 엿보인다. 붓의 분방하고 감각적인 속도감이 더욱 많이 느껴지고 있다. 작가의 그림은 항상 잘 조율된 짜임새 속에서 분방한 붓의 유희가 돋보인다. 그것은 작가의 붓이 리듬을 타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일탈하지 않도록 하는 적절한 제어장치가 그의 전신에 잘 분포되어 있는 듯하다. 사실 묘사력을 기본으로 하는 그림을 그리면서 자기의 혼을 불어넣지 않을 작가가 없다. 그러나 그것을 관객에게 다 드러낸다는 것은 일류가 아니다. 노련하고 적절하게 조율하고 안배하는 가운데 자연스러움을 드러내는 것 자체가 관건이다. 감각적이면서도 대상의 재현성을 필요 이상으로 훼손하지 않고, 구체적이면서도 작가 자신의 개성적이고 감각적인 요소들을 적절히 반영해 내는 점이 작가의 장점이다. ● 작가의 근작 화면은 모네 등의 인상주의자들의 회화적 규범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서도 자신만의 감정을 이입시키는 데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의지가 많이 엿보인다. 근작들에서는 대상을 보다 시적으로 해석하고자 의지가 돋보이고 있다. 그렇다고 작가가 이 점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지는 않으나, 아주 조심스럽게 화면에서 전개시키고 있음이 드러난다. 사실 작가의 화면은 그렇게 복잡하게 구성된 적이 거의 없다. 또한 강렬한 원색을 즐겨 쓰거나 일필휘지의 호방한 필치를 과시하지도 않는다. 소박하고 가지런해 보이는 화면의 구성 속에서 한 편의 서정시를 담담하게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봄」에서 그러한 점이 잘 엿보인다.






김재학_소나무_캔버스에 유채_89.4×130.3cm_2003





김재학_소나무_캔버스에 유채_89.4×130.3cm_2003



풀밭에 질그릇이 놓여 있고, 그 위에 새 한 마리가 정말로 살아 있는 것 같은 모습으로 그려진 화면에서 보듯, 작가는 자연을 통해 얻은 감흥을 노래하고 있다. 사실 이 작품에서 작가가 보여준 화면의 내용들은 대상의 우연한 발견이나 포착을 가장한 작가의 연출일 가능성이 짙다. 우연적인 모습이라기보다는 다분히 작가의 의도적인 배치와 배열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질그릇 위에서 맑은 공기와 따스한 햇살을 즐기며 유유자적하는 새의 모습은 확실히 작가의 내면을 전하는 의인적 대상으로 보인다. 작가가 이러한 극적인 플롯을 설정하는 일이 그리 흔한 일은 아니지만, 새를 여타의 대상 이미지에 연결시켜 색다른 분위기를 환기하는 경우는 종종 있다. 간혹 구사하는 조합이 약간은 상투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우리 전통 화조화 같은 장르에서 보여주는 조합의 묘미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초현실적 데페이즈망(depaysment)까지는 아니어도 색다른 조합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작가가 설정한 바로 그 조합이기에 또한 그 이상의 것도 없어 보이는 그런 부류의 만족이 있는 것이다. ● 일각에서는 작가의 작품을 극사실주의적인 양식으로 보는 시각들도 있다. 물론 사실적인 재현 방법만 놓고 보면 그렇게 분류된다고 하여 잘못된 것은 없어 보인다. 다만 예의 극사실주의가 대상을 보다 기계적 엄밀성과 차디찬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에 비해, 작가는 대상에 대해 시선으로가 아니라 가슴으로 따뜻하게 품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차이를 느끼게 한다. 또한 전자가 문명 그 자체의 편린을 바라보고 있다면, 작가는 그 반대편의 자연을 바라보고, 아니 바라보기보다는 가슴에 품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하겠다. 작가가 묘사력을 바탕으로 하는 그림을 끝내 버리지 못하고 고집하는 것은 다름 아닌 자연에 대한 애정과 연민을 떨쳐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작가는 그리되 꿈꾸는 것과 노래하는 것을 가미한 그리기를 견지하고 있는 것이다.






김재학_파도_캔버스에 유채_65×130cm_2004



앞서 언급했지만 작가가 미디어와 서로 만나게 된 것은 작가로서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작가의 작품이 또한 그러한 미디어가 필요로 하는 내용들과 잘 일치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아무튼 서로가 잘 조화를 이루어 좋은 성과를 거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통적 의미의 미술은 이제 새로운 방식의 응용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되고, 또한 점차 증대되는 자연에 대한 향수와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도 미디어는 작가와 같은 작품세계를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다. 기존의 일러스트레이션이라는 분야가 있지만 회화에서 접근되는 일러스트레이션의 참신성이 충분히 검토된 후에 일일 것이다. 바로 이러한 사실은 사소해 보이나 거기엔 중요한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구상미술계 전체가 이 사실을 깊이 있게 모색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니 우리 동시대의 미술 전체가 새로운 대안의 모색으로 참고해야 할 내용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이제 구상미술만이 아니라 모든 동시대의 미술 전체는 새로운 장으로 진입해야 하는 과제를 함께 안고 있다. 작가 개인에만 국한되는 성취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미술이 거둔 가능성과 성취로 인정하고 다각적인 모색을 해야 할 때임을 굳게 확신한다. ■ 이재언



-------------------------------------------------------------------
아래 글은 무대뽀 닷컴에 실린 위 멜진에 대한 리플입니다.




금바다 (2004-06-30 10:14:59)  

최근 신문의 미술기사를 보면
유독 눈에 많이 띄는 전시회 기사가 김재학전입니다.
저는 이 기사들이 유쾌하지 않습니다.
예전에, 김재학이라는 작가가 선화랑을 통해서 알려지기 시작했을 때,
의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과연 그럴 만한 작가인가 여부는 차치하고서라도,
거의 언론을 통해 알려지지 않았던 작가가 어느 때부터 큰 화랑의 지원을 받으면서
전시회 때마다 대대적으로 미디어의 조명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더 그랬습니다.
여기에는, 선화랑 같은 연륜이 오래된 화랑이 기량이 뛰어난,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를
발탁하여 불황기를 헤쳐나갈 상품으로 양성하고 있는 것 같다는 인상도 가세했습니다.
이재언의 다음과 같은 진술은, 선화랑이 김재학의 대중성/상품성에 주목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가령 인터넷을 통해 인기를 누린 만화를 출판으로 연결시켜 판매효과의 극대화를 꾀하듯이,
어떤 많이 알려진 물건을 선택하여, 그것을 홍보하면 한결 편하게 수익을 취할 수 있음은
누구나 다 아는 경제논리일 것입니다.

"김재학의 경우는 그 나름대로의 대중성을 가지고 있다.
이 작가를 소개할 때 작가 이름은 잘 모르다가도
이 작가의 작품 이미지가 실린 인쇄물, 즉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한 모 그룹의 캘린더,
가계부 등을 장식하고 있는 작품 이야기를 하면 알아보는 사람들이 대단히 많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해가 지나면 버리기 마련인 그 가계부와 같은 인쇄물들을 버리지 않고
보관하고 있다고도 한다. 그밖에도 우표, 연하엽서 등에 실린 작품 이미지까지 감안하면
그는 어느 사이 대중적 스타의 위상에 근접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선화랑은 상업화랑입니다. 까놓고 말해서, 작품을 판매하여 그것으로 먹고사는 화랑이라고 말입니다.
이런 점에 기대어 보면, 큰 상업화랑이 상품성 있는 작가를 선택하여,
메이크업하는 행위가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만,
그래도 '나잇값을 하라'는 어른들의 말씀처럼 선화랑이 나잇값을 제대로 하는지 하는 점에서
씁쓸함을 지울 수 없습니다. 저는 김작가를 선택한 것이, 선화랑으로서 제 나잇값을 한 행위는 아니라고 봅니다.
김작가가 일반 화랑에서 전시회를 한다고 가정했을 경우,
과연 지금만큼 조명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답은 분명해집니다.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언론이 보여주는 대형화랑/미술관 위주의 전시회 소개 시스템(?)에서,
그 역시 조명 받지 못하는 작가중의 한 명이었을 것입니다.
저는 김작가가 그렇게 의미있는 작가인지 모르겠습니다만,
"대상의 재현에 충실한 전형적인 구상미술 작가"로서
뛰어난 묘사력을 지닌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의 작품은 보는 순간, 눈맛이 서늘해집니다. 그뿐입니다.
이재언의 '주례사'도 읽었습니다만, 제 인상은
그가 참으로 기량있는 '메이크업 라이트'구나 싶기만 했습니다.
아무튼 선화랑의 나잇값 못하는 행태는,
그것을 미디어를 통해서 '유려하게' 포장하는 행태는,
여기에 손뼉쳐주는 언론의 행태는,
제게 좋게 보이지 않습니다.  



사오정 (2004-06-30 16:23:19)  

금바다님 글 잘 읽었습니다

선화랑의 '나잇값(을 하라)'과 이재언의 '주례사'라는 똥침,
그 똥침에 (적어도 저로써는) 별다른 멘트를 할 방도가 없는듯 싶습니다

근데 그 두 사항을 읽으면서 문득 '불온한 상상력'이 발동되었습니다

1) 선화랑의 '나잇값'과 김작가의 관계는
미술세계와 ARTIST란을 떠오르게 합니다

미술세계가 국내 월간미술잡지들 중에서 가장 나이를 많이 먹었다는 점에서
'나잇값을 하라'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미술세계는 2004년도를 접어들면서부터 적극적으로
가지치기를 행하고 있다는 점에서(2004년과 그 이전과 비교한다면)
'나잇값'을 하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것을 볼 수 있지만요

2) 이재언의 '주례사'는 이미 이곳에서 누누히 언급했던
국내 월간미술잡지들에 실리는 대부분의 리뷰에도
해당된다고 말입니다  



펌 (2004-07-01 01:20:17)  

서울신문 2004.06.30
김재학展, 한편의 詩같은 그림들


자연을 그리는 김재학은 전형적인 구상화가다. 누구보다 대상의 재현에 충실하다. 프랑스 화가 코로나 마네풍의 견고한 재현회화로 정평이 나 있는 작가.그러나 90년대 말부터 그의 그림엔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사실주의 화풍을 견지하면서도 일러스트레이션에 가까우리 만큼 붓 터치가 한층 경쾌해진 것이다. 담백하면서도 감각적인 붓놀림은 그가 즐겨 그리는 식물의 이미지에 생기를 더해준다.

7월1일부터 20일까지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열리는 ‘김재학 작품전’에는 40여점의 서정적인 그림들이 선보인다.

김재학의 그림은 소박하고 차분하다. 일필휘지의 호방함이나 원색의 강렬함보다는 가지런히 정돈된 서정의 세계를 추구한다. 이번에 소개되는 신작 ‘장미’가 그 대표적인 작품이다. 흔히 접하는 대상이지만 그의 단아한 장미 그림은 조촐한 아름다움과 함께 관조적인 사색의 공간을 제공한다. 작가는 때로 작품의 소재를 사진에 담아 화폭에 옮긴다. 하지만 그의 장인적인 필치는 단순한 사진적 이미지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구상회화이지만 나름의 작가적 상상력,더 적극적으로는 내면의 시심을 담으려 노력하기 때문이다.

전시에는 ‘장미’ 연작뿐만 아니라 ‘봄’ ‘호박’ ‘소나무’ 등의 풍경화가 나온다. 인상주의 회화 규범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가운데서도 작가의 감정이 최대한 들어가 있는 작품들이다. 작가는 요즘들어 부쩍 대상을 시적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보인다. 설익은 관념만 무성한 설치작품과 생경한 추상화가 판치는 현실이기에 더욱 눈길이 가는 게 김재학의 쉽고 편한 그림들이다. (02)734-0458.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굿데이 2004.06.30
사진을 능가하는 '생생한 터치' 김재학전


사진을 능가하는 회화적 리얼리티를 선보이고 있는 구상화가 김재학씨(52)가 3년 만에 개인전을 갖는다.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20일까지 열리는 <김재학전>에서는 소나무·장미·호박꽃 등을 담은 정물연작과 숲·파도 등 풍경을 그린 최신작 40여점이 선보인다. 특히 수백송이 벚꽃을 화폭에 담은 1,000호 크기의 대작도 출품된다.

이번 전시는 대상의 재현에 충실한 전형적 구상화가라는 김작가에 대한 평가를 확인해 볼 수 있는 자리다. 생동감 넘치는 정물과 풍경은 사진으로 착각할 만큼 정교한 터치의 사실감을 보인다.

김작가는 단순한 사실적 묘사에 안주하지 않고 여기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그리고자 하는 대상에만 초점을 맞추고 최대한 배경을 생략해 회화적 완성도를 높였다. 보는 이의 관조와 사유가 스며들 수 있도록 배경을 최대한 절제한 것. 한국화에서 느껴지는 여백의 미를 고스란히 맛볼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산뜻하면서도 경쾌한 붓 터치가 생기를 더하는 '소나무' 연작도 눈길을 끈다. 나무 아래 부분과 하늘을 과감히 끊어내고 밑에서 바라보는 구도로 소나무 숲을 그린 이 작품들에서도 작가의 유희와 절제가 느껴진다.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고 독학으로 인기작가의 반열에 오른 만큼 그의 작품에서는 화단을 지배하는 어떠한 경향도 찾아볼 수 없다.

미술평론가 이재언씨는 "김작가의 필치는 감각적인 리듬에 따라 움직이면서도 대상 자체를 충실히 묘사해 인공미와 자연미가 팽팽한 긴장을 이루고 있다"고 평가했다.(02-734-0458)

이상민 기자  








672   成斗慶. 1915∼1986  zabel 2005/09/06 1573 383
671   美상  zabel 2004/04/06 1028 251
670   故박이소 장례식 _날짜지났음  zabel 2004/06/09 1148 267
669   희생과 몰아, 마인드 커넥티브  zabel 2005/04/02 1056 315
668   후암동 -해방촌3 바로가기  zabel 2005/03/16 1235 350
667   황상구 개인전 - 개천 [2]   2005/06/13 1111 377
666   화환 - 이원균 개인전 [4]   2005/05/11 1138 385
665   화장하는 지구 [1]  zabel 2004/07/05 1100 246
664   화장실은.. [1]  독꽁독 2003/12/11 929 250
663   화랑계와 미술판과 일요화가  zabel 2004/11/05 773 207
662   화두, 혹은 코드  zabel 2005/07/04 860 247
  화가의 손 또는 머리의 혹  zabel 2004/07/01 1051 225
660   화가 박항률  zabel 2004/04/15 1044 245
659   홍일 사진  zabel 2005/09/04 963 309
658   홍성민 전시평  zabel 2004/07/25 1117 392
657   홍성민 전시평  zabel 2004/09/23 867 306
656   호섭....2  zabel 2004/08/06 1025 288

1 [2][3][4][5][6][7][8][9][10]..[40] [다음 10개]
 

Copyright 1999-2024 Zeroboard / skin by zero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