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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zabel(2004-07-05 02:27:54, Hit : 1099, Vote : 246
 http://gelatinemotel.byus.net
 화장하는 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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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휘연씨의 홈에서 펐습니다.   절대 퍼가면 안된다는 경고를 보고온지라..두렵습니다만, 자료가 필요한 탓에 옮겨 놓습니다.   워낙에 요즘 이쪽에 맴이 쏠려서.
태클을 주시면 물리겠습니다만...쩝.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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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미술



<대지미술> 1960년대 미국의 개념미술이 일대 전환점을 제시한 후 미술계는 젊은 작가들의 새로운 돌파구의 추구가 미술이 바야흐로 전시장을 벗어나는 계기를 마련한다. 개념미술에서 어느 정도 형성되었던 작품 영역의 확대와 전시의 문제, 작품을 구성하는 재료와 전시 방법 등의 포괄적인 문제제기는 근본적으로 기존의 작품을 이루었던 요소들로부터의 완전한 자유를 가져온 듯 한다. 물론 조각에 대한 미니말리즘 이후의 다양한 시각과 재료의 확대도 상당히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데, 초기 대지미술 작품들은 어떤 면에서 반예술적 성향보다는 조각의 연장으로 재료와 크기, 그리고 사이트의 문제를 구체화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여기에 작품을 둘러싼 제도의 문제가 곧 그로부터 권력을 형성하고 특정 자본이나 기구의 운영자가 그로부터 수혜를 받음에 대한 심각한 비판으로 이어지면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대지미술이다. 이것은 그 근본적 존재방식은 개념미술의 연장선상에 있고, 의도는 반제도적 반 상업적 아방가드르 정신이며 내용으로는 자연에의 몰입을 의미하는 상당히 독창적인 미술이었다. 작품의 독자성, 영구 보전성, 판매 대상이 되는 체제적 사슬에서 벗어난 예술 작품은 이제 일회적이고 값없는 야외에 버려진 땅을 소재로 이용하면서 구체적 사이트(site)의 개발로 이어진다. 주로 야외에서 주어온 돌이나 지질학적 자료들을 원래 지역의 지도나 그 곳 사진과 함께 전시하는 방식을 취한 <논사이트 Non-sites 1968> 들은 제도적 거대 구조인 미술관/화랑이라는 전시 공간의 고전적 의미를 벗어날 것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원래 작품이 채집된 그것의 위치를 사이트라고 하고 그것이 그 위치를 상실한 채, 장소 사진과 함께 화랑에 놓여있는 때, 그것은 논-사이트이다. 대지미술의 선구자라 할 수 있는 스미스손의 작업 <논-사이트>는 이렇게 자연을 거대한 작업의 상대로 보고 그곳의 산물과 이탈된 맥락을 강조한다. 그러나 작업의 원래 위치에 대한 개념은 화랑/미술관이라는 제도에 의해 철저하게 원래의 자연스러운, 권위적인 곳으로 의미했던 그것의 과대 개념으로부터 벗어나, 제한된 공간이 갖는 공간이상의 의미로부터 작품을 해방시키고, 둘의 상호관계의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진보한 작업이라 하겠다. 또한 제도로서의 작품과 전시공간과의 관계를 우리에게 질문했던 뒤샹의 개념과도 연결된 점에서 스미스손이 다다적 전통을 이어받았다고도 주장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은 이후 그가 서부의 자연자체로 눈을 돌리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스미스손은 하이저, 드 마리아 등의 소개로 69년부터 풍경, 자연에 직접 작업하는 방식에 관심을 가지는데 Virginia Dwan을 후원자로 맞이하고를 제작한다.





스미스손의 대표적 작품이자 대지미술의 가장 거대한 기념비가 되는 이 <나선형 방파제>는 유타주 그레이트 솔트 레이크(Great Salt Lake)에 약 1500 피트의 길이로 검은색 현무암과 석회암, 흙, 등으로 작가가 빌린 호수 북동쪽해변에 만들었다. '위치, 장소에 대한 감각" 이 가장 주된 요소가 되고, 인간이 만든 구조의 연장이 꺾인 희망을 상징하듯이, 퇴행과 버려진 모습을 단적으로 보인다. 그는 "방파제는 시작도 끝도 없는 상당히 분절적이고 사라져가는 혼돈의 구조를 보여준다" (Earth Works and Beyond, John Beardsley, New York: Abbeville Press, 1998, p.22)라고 토로한다. 마치 지진이나 흔들리는 거대한 소용돌이 같이 보이는 이 흔적이 공업화 인공화의 단면의 지적으로 연결되는 듯 한다.





이 방파제로 인해 물이 분홍색을 띠게 되었는데, 이 작업은 지금은 바다에 가라앉은 채 오직 사진으로만 남아있다. 수천 톤의 흙과 자갈을 실어 나른 결과 만들어진 이 인공의 land mark는 실재 관객이 쉽게 방문할 수 없는 곳에 위치했다. 인위적 흔적이 가해진 땅의 모습은 바다와 맛닿아 있고 스미스손의 주장대로 지층의 분리가 거대한 크기로 등장함으로 이제 대지, 땅은 단순히 문화적 맥락의 화면뿐 아니라 새로운 미술의 재료이자 장으로 전환되기도 한다. 그의 작품은 미니말리즘 조각들이 보였던 거대한 규모의 환경조각의 전통과도 연결되는데, 한때 어느 지점에 존재했던 상황을 다시 재창조해내는 작가의 의도가 돋보인다. 스미스손보다 먼저 지형과 풍경에 작업을 가했던 마이클 하이저(Michael Heizer)는 67년부터 서부의 사막지대에 구멍을 파거나, 자전거로 흔적을 남김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흙을 다른 곳으로 옮겨 뿌리는 등 의 작업을 시작한다. 은 약 2만 4천 톤의 유문암과 사암을 파내어 움푹 들어간 흔적으로 네바다주에 위치한다. 50피트 깊이에 1500 피트의 길이를 갖는 거대한 구덩이가 되었다. 하이저 역시 거대한 크기의 작업에 몰두하는데, 이제 대지미술은 구매자가 아닌 후원자의 체계를 필요로한다. 그에게는 Virginia Dwan 이라는 후원자겸 미술 딜러가 있었기에 이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다. 이 거대한 오목면은 공간이라는 개념의 형태를 완성하는 모습이고 미술에서 있었던 조각의 또 다른 방식으로 볼 수 있다. 하이저는 "나는 결코 전시 체계에 대해 반대하거나 미적 사물의 해체를 원해서 밖으로 나간 것이 아니다…나는 급진적인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도구를 이용, 최고의 작품을 하려는 의도밖에 없다. 난 오히려 과거에 가까이 가려는 나 자신을 발견할 뿐이다" (앞의 책 p. 17) 그의 부친이 선사 미국전문 고고학자 였던 것이 관련이 있는 듯, 작 그가 말하는 과거는 고고학적인 범주이다. 비 상업성을 구조적으로 완성한 대지미술은 작품의 운반, 전시, 소유, 권리 등 어떠한 관습적 규범에서도 벗어난다. 작품은 영원하다는 물리적 정신적 시간에서 완전히 해체되어 곧 소멸되는데, 후원자들은 아무 소유권 없이 이들을 지원 해야 하는 애매한 위치를 점하게 된다. 작품의 전시도 전시장을 필요로 하지 않고 작품과 관객의 만남은 작가가 고용한 사진작가들에 의해 전달되는 방식을 쓴다. 그들의 사진은 미술 잡지에 실리거나 몇 개의 지층과 함께 전시 공간에서 발표 또는 전시되기도 했다. 하이저는 거대한 공간의 자연을 분리, 왜곡, 다시 재위치 시키는 기법으로 작품을 일관되게 보이는데, 예를 들어 에선 시에라에서 가져온 단단한 화강암석을 네바다 사막 구덩이에 집어넣은 방식의 작업을 했다. 68년 개인전(풍경전)을 개최하는데, 서부의 거대한 자연과 땅을 문제 삼았던 작가로 가장 활발한 작품을 보인다. <두 개의 들어간 공간>은 규모면에서 나선형 방파제를 능가하는 엄청난 자원과 노동력을 필 요로 했던 만큼, 대지에 가해진 인위적 반사이트적 노력이 과장되게 나타났고 이 때문에 자연을 훼손한다는 비평가들의 질타도 감수해야하는 대지미술의 문제점이 등장한다.





드 마리아 (Walter De Maria) 의 <라스베가스 피스 Las Vegas Piece, 1969>는 네바다 사막 가운데 6피트 짜리 불도저 삽으로 깎아 낸 일종의 길인데 약 3마일 길이로 이어진다.





리챠드 롱(Richard Long)의 유사한 선 작업 에서 오지나 산간 지대에 인공적 흔적을 남기는 방식으로 이어졌다. 롱은 구체적 사이트/ 풍경에 관심을 갖고 이를 조각의 범주에서 작업한다. (16개 부분이 2401 평방마일에 불규칙적으로 흩어져있다.)그의 작품 앞에서 관객은 오직 일 부분만을 본다. 전체는 너 무나 거대해서 알아보기 힘든 데, 작가는 부분의 이해를 통해 정신적으로 전체를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주변 환경과 풍경에 대한 새로운 창조로는 <번개 치는 들Lightening field 1974-77>가 유명한데 뉴멕시코의 쿠에마도(New Mexico, Quemado)에 20 피트 길이의 스테인레스 소재 피뢰침을 약 400개를 꽂아놓았는데, 약 225 피트 간격으로 25개로 줄 맞추어 16개 단위로 꼽힌 것이 약 1킬로(남북 길이)에 1마일(동서) 만큼의 너비가 되었다. 인적이 거의 왕래 없는 이 지역은 번개가 왕성한 곳인데 작가는 힘과 시각적 충격, 놀라운 장면 연출을 위해 거대한 지형에 작업했다.





드 마리아의 작품은 모두 인간의 유한하고 제한된 크기, 몸에 대해 거대하고 무한한 자연의 거대함을 대조시키려는 의도를 충분히 보여준다고 하겠다. 규칙적으로 배열된 침들은 끊임없이 확장되거나 연속된 모습을 의미하는 것 같기도 한데 인간 사회의 전기, 통신망을 위한 기둥 같은 느낌도 준다. 하이저외에도 홀트(Nancy Holt)의 은 유타주 사막에 세워진 것으로 4개의 콘크리트 파이프를 십자형으로 약 50피트 간격으로 놓은 것인데, 해가 뜨고 지는 선상에 맞추어 놓여졌다.





각 파이프는 18피트 길이에 9피트가 넘는 직경을 가졌고 표면에는 별자리 행성 위치를 구멍으로 세겨 놓았다. 거대한 황무지의 땅에 태양을 주제로 인간의 크기로 어떤 풍경과 자연, 태양이라는 거대한 힘의 원천을 연결시키려는 홀트의 노력이 돋보인다. 의식적이고 주술적인 느낌 마저 풍기는 이 작품은 공업적인 재료의 터널과 인간의 오래된 태양 숭배 사상간에 긴장을 일으킨다. 모리스의 (Robert Morris) <관망대 Observatory 1971>는 네덜란드에 세원진 것으로 두개의 동심원이 약 300피트 직경의 바깥 원 안에 약 7피트 직경에 9피트 높이로 세워진 또 다른 원이 목재 틀로 가장자리를 세운 형상위로 올라가 있다.





"이제 실내에 전시할 수 있는 정적이고 운반 가능한 사물은 너무 장식적으로 보이는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고 더 이상 흥미를 주지 못한다….야외로 나간 이런 작품이 당시엔 마치 승리를 표하는 것이었다." (p.26 같은 책) 삼갹형의 모습으로 나있는 출입구는 그 위로 난 통로로 연결되어 있는데 이 모뉴멘트 안의 통로는 낮 밤의 길이가 같은 평분일 때 태양이 떠오르는 방향과 나란하다. 미니말리즘의 현상학적 관심에 지속적 태도를 보인 모리스는 현상학적 어떤 존재로서 작품의 경험을 높이 산다. "관객이 어떠한 위치, 장소에서 자신의 어떠한 물적 위치나 존재를 측량함으로 자신을 인식하게 되는" 과정을 중시한다. 관객은 이 작품에서 말 그대로 한 눈에 알아볼 수 없는 작품의 형상을 직접 걷고 돌아보며 경험함으로 완성할 수 있다. 크리스토(Christo)는 대상, 사물의 탈사이트 화의 하나로, 인공적 요소를 이용한 구체적 변형/ 또는 아예 형태의 은폐를 시도한다. 특히 그는 천을 사용 장관을 이루는 넓은 범위의 대지에 인위적 모양을 형성한다. 그의 <달리는 울타리 Running Fence 1972-76>는 철 기둥과 나일론 천(18피트 높이, 2 백만 평방피트 길이)으로 장막 쳐져있는 풍경을 담아낸다. 약 24 1/2마일에 걸친 이 작업은 칼리포니아 소노마와 마린 주에(california, Sonoma, Marin )준비되었는데, 이제는 사라진 이 달리는 장막은 크리스토의 역작으로 태평양 바다로 들어가기까지 2050개의 패늘로 이루어진 천과 스틸 기둥이 9월 약 2주간 설치되었다.





3백만불의 전시비용이 소요된 이 작업은 바람을 맞는 천의 장막이 마치 회화의 선이 흐르듯 유동적이자 생명력이 있었고, 울타리 끝이 태평양의 바다 속으로 이어져, 풍경속으로 사라지는 것 같은 멋진 모습을 연출한다. 실제 59개의 목장을 지나기에 주인들로부터 받아내는 허가에 소요되는 준비기간이 거의 42달이나 걸렸다. 18번의 공청회, 3번의 주 최고법원도 이 안건을 토의하는데 바쳐졌다. 환경단체와 주 법위원회의 까다로운 조건들 때문에 곤혹을 치루었지만 그것 자체를 이 작품을 이루는 다양한 삶의 요소로 작가는 중요시하며 전 과정을 책, 비디오,등의 다른 자료로 상세히 다루었다.





마타 크락(Gordon Matta-Clark) 은 뉴 져지주 잉글우드의 가정집을 반으로 쪼개는 작업을 한 것이다. 실제 가정집을 일종의 사이트로 보아 작품과 사이트가 일치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기호로 변하는 과정을 그대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 작품은 재치와 유머가 반드시 자연 자체를 대상으로 하지 않는 대지미술의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당시 사이트와 건축, 고고학적 관심이 미술에서 전개되었던 양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대지미술의 가장 대표적 작가이자 비평가이자 동시에 대변자였던 스미스손(Robert Smithson)은 "A Sedimentation of the Mind: Earth Projects" 에서 예술이 과거 확정적 사고, 견고하게 굳어진 완성품으로서의 예술품만을 다루어온 것은 잘못이며, 시간 안에서 바라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The Writings of Robert Smithson, ed. Nancy Holt (New York: NY UP, 1979) 시간성 속에 위치한 예술은 논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도록 정형화된 것이 아니며, 탈색되고 부서진 하나의 해체라고 보았다. 이때 시간성이란 영원이란 관념적 시간의 개념을 거부한 구체적 시간의 의미이며 동시에 어떠한 관습적 영역의 선점을 거부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인위적인 산물은 예술과 자연을 억압하는 것으로 이것은 수많은 틈을 감춘 채로 작동하고있는 언어를 사용하는 비평가를 가장한 저널리스트에 의해 강조되어온 것이다. 이런 오류를 극복하기위해 시간에 대해 탐색해야 하고 시간은 망각으로 이어지므로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그가 말하는 침전(sedimentation)의 지층을 들추어보며 그것이 이루어진 과정, 그 시간을 탐색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이러한 조건들을 만족시키는 작업으로, 그는 그가 말하는 대지미술, 혹은 추상적 지질학을 예로 들고있다. 토니 스미스가 아직 개통되지 않았던 뉴져지 턴파이크를 돌았던 것처럼, (New Jersey Turn pike's experience) 최초의 과정에서의 정신상태가 중요하다고 보았다. 스미스손의 는 바로 그러한 물리적 심연 속에서 체험 된 단편들을 드러내면서 기술적인 것들이 대지의 일부가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는 특정 지역에서 가져온 돌들을 옮겨와서 그것의 원래 site 를 벗어나면서 지층의 형성을 이질적 맥락에서 가시화한다. 그는 사이트의 개념이 합리적 질서와 사회적 일반 구조를 다 포함한다고 간주하면서 물리적 사이트를 이데오르기적 개념으로 발전시킨다. 따라서 사이트에서 벗어나야 함을 강력히 주장하는데, 이는 탈장소의 개념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스미스손이 주장하는 이러한 논-사이트의 개념에 더해진 제도적 관습적 해체 시각은 작품의 원래 의도된 시기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둘 때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장소는 관념적 지층을 다 포함하는 것이자 사이트는 여기서 제도를 포함한 전통과 맥락을 의미함으로, 이의 물리적 개념적 이탈이 바로 대지미술 작가들이 의도한 바가 된다. 대지에 직접 시도한 작품도 일종의 이탈을 의도한 것인데, 원래의 상태나 지형을 어떠한 방식으로 변형시키느냐 하는 것이 중요해지고, 작가들은 이것을 자연에서 시도한다. 오늘의 많은 작가들은 장소와 위치에 관심을 갖고 인위적 만들기를 비난하나 사물의 단지 한 부분일 뿐이다. 대지미술을 좀 더 개념미술적 맥락에서 살펴볼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구성요소를 발견하게 되는데, 척째, 물질성의 거부; 형태의 표면, 환경, 공간의 새 방향을 제시하면서 작품의 물적 존재성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 것이 돋보인다. 둘째, 수공업의 한계에 도전/ 소규모, 인공성의 전통에서 벗어나게 했다. 셋째, non-site란 독특한 탈 맥락을 의도함으로 이전까지 작품과 그것을 둘러싼 환경, 공간으로서의 미술의 존재성을 새롭게 전이시킬 뿐 아니라 아방가르드 전통의 미술적 관습 해체에의 진보된 의도를 표현해준다. 이제 site 자체로서 존재하고 둘러싼 환경이란 측면에서의 부분이었던 작품의 개념을 벗어나게 된다. 넷째, 상업적 작품의 가치와 존재성의 거부하고 동시에 유통도 거절함으로 상업 화랑 체제의 근본적 거부를 완성한다. 다섯째, 시간에 대한 독특한 이해를 보임으로 일시성과 작업시의 시간의 의미란 bi-standard 를 제시한다. 여섯째, 사물의 차원이 아닌 새로운 형식의 예술; 언어적 분석과 의도; 소외 이탈, 다다, 전복, 감각, 인식, 현상학, 등을 포괄하고 그야말로 텍스트로 읽힐 수 있는 작품을 완성하여 제시한다고 하겠다. 대지미술은 형태의 표면을 없애고 장소를 거대한 환영으로 바뀌게 하는데 일조했는데, 완성품으로서의 물성에 초점이 있었기에, 정신과의 공존의 기회가 상실되었던 작품을 종전과 다르게 보여준다. 결국 어떤 사물이든지 시간성의 의식을 통해 바라보면 무로 변하고, 이제 사물이 물체이기를 그치면 예술이 된다라는 철학적 시간관을 탐구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sia (2004-07-13 14:58:11)
절대 퍼가면 안된다니.. 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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