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대

1360  4/68   회원가입 회원로그인
  View Articles
zabel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2002-12-02 23:54:24, Hit : 255)
이수빈칼럼

지난 여름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관객이 찾았던 전시라면 테이트 모던(Tate Modern)에서 열렸던 “마티스 피카소 전(Matisse Picasso)”과 로스엔젤레스 현대미술관(Museum of Contemporary Art, Los Angeles)의 “앤디 와홀 회고전(Andy Warhol Retrospective)”이라 하겠다. 대형 미술관에서 열렸던 블록버스터 전시였던 이들 전시들은 미술관에 큰 경제적 이익과 함께 여러 가지 수혜를 가져온 반면, 미술계에서는 이러한 블록버스터 전시들이 궁극적으로 가져올 부정적인 결과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러한 우려는 단지 이 두 개의 전시에 대한 것이 아니라, 점차로 그 스케일이 거대해지는 블록버스터와 미술관의 대형화 추세를 겨냥한 비판의 목소리라 할 수 있다.



대형 미술관들이 블록버스터 전시에 집착하는 이유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입장수입, 기부금과 지원의 증가, 그리고 전시 후원업체의 지원이 즉각적으로 달성되기 때문이다. 그 예로, 로스엔젤레스 현대미술관의 “앤디 와홀 회고전”의 성과를 들어보겠다.



지난 5월 25일부터 8월 18일까지 열렸던 이 전시에는 총 19만5천명의 관객이 들었다고 한다. 이러한 관객수는 같은 기간 지난 해의 관객수에 비해 275%나 증가한 것으로, 미국 각지에서 온 관광객이 그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2천7백만 달러가 소요된 이 전시는 5천4백만 달러를 입장권 판매와 기부로 벌어들였으며, 6천6백명의 관객들이 미술관 멤버쉽에 등록했고, 순 이익 2천7백만 달러 이 외에 뮤지엄샵에서 와홀 아이템을 팔아 남긴 이익도 1백만6천5백달러나 된다. 이뿐인가, 관객의 72%가 캘리포니아 이외의 지역에서 온 관광객이었으므로, 그들이 로스엔젤레스에 머물면서 쓴 돈으로 로스엔젤레스 시에 5천5백만8천달러의 경제적 이익을 가져왔다고 한다. 관광객 가운데 30%는 로스엔젤레스를 와홀 전시를 보기 위한 목적으로 방문했다고 하니, 전시가 로스엔젤레스 시에 기여한 바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숫자상의 결과가 이렇다 보니, 미술관의 디렉터 제레미 스트릭(Jeremy Strick)의 말처럼 이 전시는 “엄청난 성공”이라고 부를 만하다.



또 하나 런던의 여름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마티스 피카소”전도 테이트 미술관의 입장관객 숫자에 신기록을 세우는 ‘엄청나게 성공적’인 전시였다. 5월에 시작하여 8월 중순이 막을 내린 이 전시를 50만 명 이상의 관객이 보았다. 전시 마지막 주에는 밤 10시까지 미술관을 오픈했고, 마지막 주말에는 밤새 관객들을 받았다고 한다. 36시간을 연속으로 오픈한 마지막 주말에만 미술관에 입장한 관객 수가 1만6천7백7십 명이었다고 한다.



입장을 기다리는 관객들로 끊임없이 긴 줄을 만들었던 이들 전시들은 와홀, 피카소, 마티스라는 잘 알려진 아티스트 이름을 내세운 관객동원을 위한 전시로 기획된 것이다. 특히, “앤디 와홀 회고전”은 미술관과 로스엔젤레스 시에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기획된 것이라 해도 틀리지 않는다. 비영리기관인 미술관들이 금전적 이익을 남긴다는 사실은 상관할 바는 아니다. 또한, 이러한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블록버스터 전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20여 년 전부터 시작된 블록버스터 전시는 주로 이집트유물 같은 고대문화 관련 전시였다. 이러한 전시들은 확실하게 관광산업의 진흥과 해외문화 교류 증진이라는 원대한 목적을 가지고 기획된 것이었으므로, 블록버스터에 합당한 스케일로 기획되었고, 관객동원 목적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이제는 미술작품을 전시하는 전문미술관에도 블록버스터가 전시기획의 중심에 위치하게 되었다. 실재로, 파리, 플로렌스, 뉴욕 등의 대표적 관광도시에 위치한 미술관들의 운영은 관광객들의 입장료에 크게 의지하고 있다. 이를 증명하는 것이 바로 지난해 9월 11일 뉴욕과 워싱턴에 있었던 테러리스트 공격으로 관광산업이 위축되자 뉴욕의 미술관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해외관광객이 없이 8백만의 뉴요커들만을 대상으로는 미술관 운영이 불가능하게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관광객 이외의 미술관을 찾는 관객들은 누구인가? 이들은 정기적으로 미술관을 찾아 전시를 즐기는 소위 ‘아트 퍼블릭(art public)’이라 할 수 있다. ‘아트 퍼블릭’에는 물론 미술계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이 포함되지만, 이들의 대부분은 아마츄어로써 미술에 진지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기가 거주하는 지역의 미술관의 멤버이며, 정기적으로 상업갤러리의 전시도 관람하고, 타 지역을 여행하는 중에도 반드시 미술관과 갤러리의 전시를 즐기는 이들이다.



그러나,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블록버스터 전시들은 전문가, 비전문가들로 구성된 ‘아트 퍼블릭’이 이루어놓은 미술관의 성격을 완전히 깨뜨린다. 일반 관객들이 몰려드는 가운데, 미술관의 중심을 이루는 ‘아트 퍼블릭’을 저버리게 되는 것이다. 라스베가스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있었던 블록버스터 전시 “자동차와 문화(The Automobile and Culture)”전은 자동차를 한번이라도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전시였고, “앤디 와홀 회고전”은 영화나 잡지에서 한번이라도 앤디 와홀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 대중을 위한 전시였다.



이러한 관광객을 위한 전시들이 해가 될게 무엇이냐고 물을 수도 있다. 아마도 짧은 기간 내에는 그 폐해가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미술관으로써는 현금이 들어오는 기회이겠지만, 결과적으로 관광객을 위한 전시들은 느린 속도로 스스로를 파괴하고 있는 마약이다. 아트 퍼블릭의 관심을 잃는 것은 미술관의 중심을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회용 관객을 위한 전시는 버블경제에 빗대어 묘사되기도 한다. 일시적으로 입장수입, 기부금, 기념품판매의 액수가 팽창할 수는 있겠지만, 그 거품은 오래가지 못한다. 또한, 실재로 미술관을 움직이는 진정한 돈은 일시적으로 주어지는 일반관객, 개인기업, 재단의 돈의 아니라, ‘아트 퍼블릭’ 안에 흩어져 있는 열성적인 개인 후원자들이라는 것도 중요한 사실이다.



금전적인 문제뿐 아니라, 이러한 블록버스터의 또 다른 문제는 전시의 질적인 측면이다. 월드컵 같은 스포츠 이벤트에 비교될만한 블록버스터 전시들은 대부분은 모네, 렘브란트, 피카소, 와홀 같은 널리 이름이 알려진 아티스트들의 전시들이다 (“자동차와 문화”같은 전시의 질은 물론 따질 필요가 없음은 당연하다). 이들 유명 아티스트들의 방대한 양의 작품들을 볼 수 있는 기회라 하지만, 대부분 전시되는 작품들은 실재로 아티스트의 주요 작품이라 할 수 없는, 부실한 내용의 전시들이다. 왜냐하면, 유명 작가의 주요 작품의 소장 미술관이나 기관에서 작품을 대여해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실재로, 1998년 런던의 로얄 아카데미(Royal Academy)에서 있었던 마네의 대형 전시는 마네의 후기 대표작인 “수련(Waterlily)” 작품 몇 점이 전시된다 하여 큰 화제가 되었던 전시였다. 그러나, 모네 후기의 가장 대표적인 수련작품은 파리의 오랑제리 미술관(Musée de l'Orangerie)에 영구소장되어 있다. 이런 상황은 다른 아티스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렘브란트의 대형 전시를 연다고 치자. 그렇다면 대부분 미술관이 소장한 여러 점의 렘브란트 자화상과 대여가 가능한 몇 점의 작품들을 모아 마치 렘브란트의 모든 것을 소개하는 냥 전시를 홍보하게 되는 것이다.



위와 같은 블록버스터 전시는 21세기를 맞아 세계적 미술관들의 대형화와 기업화의 한 측면이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미술관들이 가치 있는 미술작품을 소장하고 소개하여 미술관의 성격을 유지, 만들어나가기를 포기한 채, 기업화와 대형화를 추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세계 각지에 대규모 미술관 건물을 짓고 러시아의 에르미타쥬 미술관과 대규모 합병을 이루는 진정한 미국식 기업정신을 보여주고 있으며, 뉴욕의 MOMA도 뉴욕 내에만 세 군데 미술관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 건물의 대규모 확장공사 중에 있으며,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를 비롯한 많은 미술관들도 대규모 건물 확장공사를 진행 중이거나 계획하고 있다.



이 가운데 구겐하임 미술관이 대형화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얼마 전 회계부정으로 문제가 되었던 대형 미국기업인 엔론(Enron) 사와 비교되어 “구겐론(GuggEnron)” 혹은 이 모든 대형화를 주도하고 있는 디렉터 토마스 크렌스(Thomas Krens)를 이름을 따 “크렌스 & Co.”라고 불리기도 한다. 유럽의 미술관들과 달리 정부의 지원이 별로 없는 미국에서 대형 미술관들의 이러한 움직임은 당연하다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라스베가스 구겐하임 미술관의 “자동차와 문화”전에 전시 제목만큼 크게 적혀있는 BMW 로고나, 1천5백만 달러를 구겐하임 미술관에 기부한 패션 디자이너 자신을 위한 “조지오 알마니(Giorgio Armani)”전은 비난을 피할 수 없는 일들이다. 전세계에 어디든 진출한 맥도날드처럼 구겐하임 미술관도 프랜차이즈 사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베니스, 빌바오, 라스베가스, 찰스부르그, 베를린에 이어 리오데자네이로에도 구겐하임이 들어설 계획이다. 하지만, 이러한 프랜차이즈 과정에서 디렉터 크렌스는 미술을 빼놓고 진행하고 있다. 새로 짓는 구겐하임 미술관에 어떤 예술적 정체성도 부여한 바 없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한 예에 불과하지만, 대부분의 미술관의 대형화와 기업화는 예술과 아무 관련이 없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미술분야에 투자하고 또 그 활동을 확장하려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미술기관에서 금전적 이익을 바라고 기관을 운영하려 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이다. 미술에 투자했다면, 그저 자신의 취향을 자랑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 외의 다른 결과를 기대했다가는 투자실패라는 결과만 남게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영화, 음악, 무대예술에 비해 단기적인 안목에서 성과를 확인하기 어려운 것이 미술이다. 미술관의 거대화와 블록버스터 전시들이 미술의 대중화의 지표가 되는 것이라면 정말 안될 일이다. 더 나아가, 미술의 대중화라는 것은 불가능한 전제다. 미술작품에 대한 애정은 전적으로 개인적인 것이며, 그 애정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지도 않다. 늘어선 사람들의 틈에서 몇 시간을 기다려 들어간 전시장에서 수십 개의 머리를 헤치고 와홀의 작품을 몇 초 들여다 보는 것은 세일 기간 중에 백화점에 있는 것보다 더 고역이다. 그나마 백화점에서는 싸게 물건이라도 살 수 있으나, 내용 없는 블록버스터 전시에서는 아무 것도 얻을 것이 없다.







이미지 위로부터:

Picasso (top) and Matisse self-portraits, painted in 1906

“Andy Warhol Retrospective”, LA Museum of Contemporary Art 앞에 늘어선 사람들

“Andy Warhol Retrospective”, 전시장 내

"The Art of the Motorcycle" Guggenheim Las Vegas 전시

해질녘 The Guggenheim Museum

번호별로 보기
여러개의 게시물 정리 제목별로 보기 이름별로 보기 날짜별로 보기 조회별로 보기
  이수빈칼럼 zabel 2002/12/02 255
1299   현태준의 아름다운 세상 zabel 2002/12/03 315
1298   [피바다펌]애플 zabel 2002/12/03 315
1297     [re] 아라키와, 장갑차 zabel 2002/12/04 246
1296   나다르 & 보들레르 [1] ensoul 2002/12/04 229
1295   사진 지웠습니다. [2] 렌즈인 2002/12/04 264
1294   [펌]아라키 노부요시 인터뷰 [2] zabel 2002/12/07 326
1293   [펌]신중현 인터뷰 zabel 2002/12/08 270
1292   체크인 [3] 이제은 2002/12/08 316
1291   [펌]튜닝과 짝퉁 zabel 2002/12/08 260
1290   [펌]There is no freedom here zabel 2002/12/10 296
1289   기사 zabel 2002/12/11 255
1288   생존 보고. #01 [1] tinkle 2002/12/11 234
1287   [전시]최병관 사진전 zabel 2002/12/12 266
1286   [전시] 팝! zabel 2002/12/12 268
1285   2003 박건희문화재단 사진문화 행사 지원 프로그램 zabel 2002/12/12 294
1284   Music zabel 2002/12/13 309
1283   [펌]없었을텐데 그러므로 나는 [1] zabel 2002/12/14 375
1282   장투리 zabel 2002/12/15 294
1281   프라블럼.혹은 퀘스천 zabel 2002/12/15 316
  [1][2][3] 4 [5][6][7][8][9][10]..[68]  
Copyright 1999-2022 Zeroboard / skin by uZ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