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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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bel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2002-12-14 12:24:36, Hit : 375)
[펌]없었을텐데 그러므로 나는
한대수 vs 어어부 - 인터뷰를 가장한, ‘진실 혹은 대담’

‘한대수와 마부’. 세대를 뛰어 넘은 ‘두 문제적 뮤지션’ 사이의 인터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아래 동영상으로 나왔다. 빙빙 돌리지 않은, 즉 ‘은유와 비유’를 생략한 유쾌한 인터뷰를 구경하는 일만 남은 것이다


정 민 m_jung@cultizen.co.kr

이번 인터뷰는 '한. 대. 수' 였다. 8집 음반, [영원한 고독] 발매 차 한국에 잠시 머물고 있던 그를 수소문 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나, 그에게 질문을 던진다는 것 자체는 참으로 난감하기 그지 없는 일이었다. 모든 일간지의 문화면에 그의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나온 지 오래 였고, 이미 알 만한 사람들은 대부분 한대수를 충분히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번 앨범이 내 음악작업의 마지막이 될 것' 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달고 한국에 들른 한대수와의 만남을 조금은 고심하며 준비하던 중에, '구세주'가 나타났다. [어어부밴드]에서 노래를 부르는 마부가 인터뷰어를 자청한 것이었다.

한대수와 어어부라. '아무런 장치 없이도 재미있는 인터뷰가 되겠구나' 하는 '감'이 순간적으로 가슴에 꽂혔다. 그리곤 곧장 한대수를 만나러 갔다. 음반사에서 마련해 준 역삼동 인근의 오피스텔에서 만난 한대수는 안면이 있던(몇 년 前, 일본 후쿠오카에서 열린 락 페스티발에서 둘은 함께 공연을 했었다) 마부(어어부밴드 보컬, 본명 백현진)를 보자 마자 특유의 쾌활한 음성으로 "우리도 댄싱팀 만들어서 나가야 하는 것 아냐? 댄스곡 좀 만들어서 '화폐' 구경 좀 했으면 좋겠다" 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한대수와 마부'. 세대를 뛰어 넘은 '두 문제적 뮤지션' 사이의 인터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아래 동영상으로 나왔다. 빙빙 돌리지 않은, 즉 '은유와 비유'를 생략한 유쾌한 인터뷰를 구경하는 일만 남은 것이다.(열 댓 개가 넘는 질문과 답변 중 지면 관계상, 상세한 텍스트를 소개할 수 없음을 양해 바랍니다. 상세한 내용은 동영상에 들어 있습니다. 훌륭한 인터뷰와, 역시 훌륭한 일러스트를 그려 주신 어어부밴드의 마부씨에게 다시 한 번 감사 드립니다.)


마부 : 74년 발표한 [멀고 먼 길] 이후, 2000년 [영원한 고독] 까지 지금까지 총 8장의 음반이 나왔다. 보통 30대의 나이에서 가장 힘센 작품들이 나오지 않는가? 그런데, 당신의 경우는 30대 때 나온 작품이 없다.


한대수 : 사실상 활동은 많이 했다. 레코드를 못 내서 그렇지. 뉴욕에서 [징키스칸]이라는 밴드도 하고, 사진작업도 하고. 문제는 국내에 없었기 때문에, 오라는 데도 없었고, 또 [고무신] 판금 당하고, 방송금지 당하고 나서, 그렇게 얻어 맞으니까, 다시 음악 하러 올 기분도 안 났다. 그래서 공백기가 있는데. 사실, 당신도 알겠지만 30대가 제일 에너지도 왕성하고 무서울 것도 없을 땐데, 나로서도 좀 아쉽다.


마부 : '미국의 히피문화'를 직접 체험하고, 우리 나라에 들어 온 몇 안 되는 사람으로서, 당신이 기억하는 당시의 상황, 또 그러한 시대가 '당신에게 준 영향'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


한대수 : '히피문화'라 불리는 60년대 중반부터 70년대 초반까지의 시대는, 미국사회가 음악적, 문화적, 정치적 변화까지 모든 것들이 변화하는 절정의 상태였다. 그 전에는 편안한 상태에 있었고, 부유했고, 굉장히 안일하고 안정적인 생활이었다. 그런데 젊은 세대가 보니까, '내가 그럼 우리 아버지처럼 똑같은 행동을 할거냐. 자동차나 몰고 다니고, 시골에 집 하나 짓고, 사는 것이 이것이 전부냐' 그런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고..


비틀즈 나오고, 도어즈도 나오고, 지미 핸드릭스도 나오고 결국, 음악이 큰 역할을 했지. 사람들이 처음으로 '이건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부모처럼 살수는 없다.'는 생각을 했으니까. 또 큰 역할을 한 것이 '마약'이야. 마약이 없었으면 지미 핸드릭스니 레드 제플린이니 핑크 플로이드니 하는 이런 음악이 나올 수가 없었다.

간단하게 말해서, 히피문화가 던져 준 것은, '인간에게 다른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안 살아도 저렇게 다른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당시 나는 가난뱅이 히피들이 주로 사는 뉴욕의 이스트 빌리지에서 사진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한국에서 자란데다가, 또 완벽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난 놈이라 정신적 혼돈도 컸다.

개인적으로 영향 받은 것은 '산다는 방법이 여러 가지 있을 수 있구나'라는 것이고, 음악적인 측면에서도 영향 많이 받았다. 지미 핸드릭스의 퍼플 헤드 처음 들었는데.. 와, 완전히 갔지. 그래서 음악이란 게 이렇게 무서운 거구나 음악이란 게 사람을 이렇게 움직일 수 있구나라고 느꼈다. 당시에도 아마추어로서 음악을 했지만, 음악의 길을 가는데 크게 영향을 받았다.

마부 : 당시 히피문화가 꽃필 때, 음악의 텍스트는 어땠는가?


한대수 : '락 음악'에서 '글'은 생명이었다. 왜냐하면 그 이전의 프랭크 시나트라, 앨비스 프레슬리 그 사람들이 대가였는데, 사랑타령 뿐이었어. 근데 지미 핸드릭스, 짐,모리슨, 밥,딜런 그 이후에 비틀즈 같은 경우는 이성관계의 복잡한 문제에서부터 정치적인 이슈까지 물음표를 무진장 던졌던 거야.


그래서 음악이 재미있게 흔드는 것 뿐만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지. 그런데 음악은 흔들지 않으면 힘이 없어. 어떠한 소설을 읽으면 한 주일 잡아서 읽고 감명을 받지만, 음악은 3분 사이에, 그 소설 읽은 이상을 감명 받을 수 있어야 그게 진짜 음악이지.

마부 : 숙명 혹은 운명 같은 개념으로서 음악을 시작했다고 하는데, 그런 느낌이 언제 딱 왔나?


한대수 : 할아버지는 클래식 음악광, 어머니는 피아니스트 였으니까 어릴 때부터 음악은 생활의 한 부분이었다. 그리고 내가 10대에 여러 가지로 헤맬 때, 음악이 내게는 하나의 다리라는 생각이 들더라구. 다른 건 재미가 없었다. 단순히 돈을 번다, 자동차를 산다, 집을 산다, 그런 것에는 전혀 흥미가 없었던 거지. 음악을 할 때는, 음악을 통해서 내 자신의 갈망과 갈등과 문제점을 달래고, 또 내가 자작곡을 하니까 좋아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데이트도 할 수 있고, 돈도 조금은 벌고…


마부 : 한참 예민한 나이에 히피시대를 돌파하고, 68년에 한국에 들어왔는데 당시 상황을 듣고 싶다.


한대수 : 한국에는 그냥 왔지. 아무 직장도 없이. 막연하게 사진, 음악하려고 왔는데 알고 보니까 음악 할 데가 없었다. 그런데 명동의 한 다방에 가 보니까 대학생들이 비틀즈의 [Here comes the sun]을 듣고 있더라고. '와~여기도 그걸 듣고 있구나'하는 희망에 부풀어서 당시 음악평론가인 이백천씨를 우연히 만났는데, 당장 TV에 출연시켜 준대요. 그래서 TV 나가서 게임도 하고 노래도 했는데, 사람들이 놀란 거야. 남진, 나훈아 행동이 아니니까. '굉장히 좋다'와 '저 미친 새끼' 하는 극단적 반응이 나왔다.


마부 : 당시에 "누구랑도 소통될 수 없고, 더 숨게 되었다"라는 말을 했는데…


한대수 : 한 신문사와 인터뷰를 했는데 나를 '히피문화의 섹스와 마약을 퍼뜨리는 선교자'로 묘사했다. 그리고 나서 나머지도 다 그런 식으로 쓰는 거야. 그리고 보니까 나처럼 머리가 긴 사람이 하나도 없거든. 그때부터 타격을 받았지. 방송출연도 못하고, 음반도 [멀고 먼 길], [고무신] 이런 음반도 금지가 되고.


마부 : 내가 볼 때, 당신의 노래는 지극히 개인적인 노래들인데 어쨌든 당신은 '반정부적인 가수'로 취급을 받았다. [물 좀 주소]는 물고문을 표현한다고 해서 문제가 되었고… 그 얘기를 잠깐 해달라.


한대수 : 나의 음악은 매일 일상적으로 느끼는 것을 표현하는 개인의 일기일 뿐이다. 어느 누구나 자기 자신을 위해서 자유로워지고 싶은 것 아닌가. 나는 개인의 자유에 대해 이야기를 한 것인데, 대중들이 그 당시에 자유롭지 못하니까, 그게 연결이 된 것이다. 내 노래의 분위기가 새마을과 유신, 새 나라를 건설하는 데 듣기 싫은 말들이었던 것이다.


마부 : 히피시대가 끝나 갈 무렵에 미국으로 돌아 갔는데, 당시 어땠는가?


한대수 : 완전히 변했지. 머리 길고 그렇게 다니는 사람은 촌놈 취급 받고. 뉴욕에서 사진과 관련된 직장생활을 시작했는데, 순전히 먹고 사는 것 때문에 고생 많이 했다.


마부 : "내가 더 젊고 열정이 가득 했던 시절에는 왜 내 음악을 알아주지 않았는지?" 라는 말을 책을 통해 했는데, 더 자세한 말을 듣고 싶다.


한대수 : 음악이란 것은 흐름이다. 음악이 흐름이 막히지 않으면 눈사태처럼 계속 커지게 된다. 그 당시에 그 흐름을 계속 탔으면 그때 더 정력을 쏟을 수 있었겠지. 근데 좌절된 거다. 지금은 초청도 많이 받고, 한국에서 공연도 있고. 앨범도 또 이번에 나왔지만 당신도 잘 알겠지만 락 작업이라는 것이 쉽지 않다. 녹음, 공연 등 에너지가 보통 소비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은 지친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런 말이 나논 것이다.


마부 : '작가적 진실성'에 대해서 뜬금 없이 잠깐 한 번 묻고 싶다. 진정한 예술이라는 것이 아직도 존재한다고 생각하는가?


한대수 : 당연히, 진정한 예술은 있다.


마부 : 어떤 방송 인터뷰에서 '일상의 모든 것-새 소리, 바람소리 등-이 음악이다'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나는데, 지금도 그러한가?


한대수 : 같은 형식으로 이름만 바꿔서 돈 벌어 먹는 음악 산업의 행태에 환멸이 나서 그런 말을 한 것이다. 또 보니까 음악이 안 나오는 구멍이 없더라고. 음식점, 박물관, 어디에 가도 음악이 나와 시끄러우니까, '침묵이 음악이다'라는 생각을 한 것이지. 지금도 길거리 가면 음악 나오고, 참 시끄럽다. 소리공해다. 우동 한 그릇 먹으려 해도 음악 나오고, 옷 한 벌 사러 가도 꿍짝 꿍짝 시끄럽다.


마부 : 관찰자의 입장에서 본 '한국의 풍경'에 대해서는 어떻게 느끼는지 궁금하다.


한대수 : 일단, 비판하기 전에 우리가 스페이스가 없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와 상황이 비슷한 도쿄와 비교하면 좀 심한 것은 사실이다. 혼돈된 도시에 살수록 시각적으로 편한 것이 중요한데, 그거는 좀 아쉽다. 그런데 앞으로 문화부 장관, 방송국 사장 등 특히 문화 부문에서 젊은 사람들이 우두머리가 된다면 희망이 있지 않겠나?


마부 : 인터넷상에 당신의 사이트도 있고 또 그곳을 통해 팬들과 이야기도 나누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인터넷'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대수 : 요즘 우리 젊은이들의 문제가 투 머치 인포메이션과 투 머치 셀렉트이다. 선택이 너무 많다. 또 과거에는 24시간 뉴스가 없었는데 지금은 있다. 볼 필요 없어도 보게 되요, 마치 마약과 같다. 그리고 그 모든 원인은 결국 '화폐'이다. 다들 돈을 벌어야 되니까, 뉴스도 24시간 필요하고 또 돈 때문에 10대 댄스그룹을 24시간 봐야 하고. 결국 문제가 돈이다. 돈 자체를 없애야 될 것 같다. 돈을 없애면 우리가 필요한 만큼만 쓰고 살게 될 것이다.


마부 : 본인의 이름, 한대수라는 이름 석자가 가지는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대수 : 내가 지금 하는 일이 음악이고, 제일 만족스러운 것도 음악이다. 사진, 시 작업도 하지만 그 중 음악이 가장 중요하다.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마부 : 이번 8집 앨범을 두고, 스스로 "50살이 넘으니까, 캔버스가 시커매졌다"고 말을 했는데, 개인적으로 이번 손무현씨와의 작업은 언발란스였다고 본다. 나는 당신이 시커먼 캔버스를 하얀색 분필로 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굉장히 아쉬웠다.


한대수 : 좋은 말이기는 한데, 이번 작품을 통해서 내 자신의 한계를 보았다. 나는 어디까지나 내가 보고 느낀 것을 말하는 '싱어 송 라이터'이다. 그런데 이제는 곡이 나오지 않는다. 감명을 못 받는 것이다. 면도날이 둔해 진 것이다. 사진, 시 작업은 그럭저럭 할 수 있지만 음악은 이제 아니다.


마부 & 한대수 : 이번 앨범 홍보발언 좀 해야 되겠다. 이번 한대수의 앨범에 실린 [여치의 죽음]을 와인 몇 잔과 함께 들어보길 바란다(진로소주로는 약하다). 완전히 간다. 말 그대로 '약'이다. 단 돈 만원에 우리 현실에서 '약' 할 수 있겠는가? 꼭 해보시길 바랍니다.





zabel

톡백 추가 인터뷰

1. 한대수가 일생 동안 미치게 좋아한 것들과 끔찍하게 싫어하는 것들은?

내가 미치게 좋아하는 것들 : 1. 난 모든 아름다운 여자들을 좋아한다. 특히 몸매가 좋은 여자를 사랑한다 2. 음악 듣기가 아닌, 음악 만들기3. 비행기, 또는 비행기 모습을 한 모든 것. 사실 내 아파트는 공항 근처에 있다. 난 창가에 서서 비행기가 이착륙하는 걸 보는 것을 즐긴다4. 걸어다니면서 음악에 대해, 인간 관계에 대해, 몇몇 문제들에 대해서 생각하기. 카메라를 들고 오랫동안 산보하기 5.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한국 음식이지만, 술을 마실 때는 생선회 같은 일본 음식을 매우 즐긴다 6. 어디로든 여행하는 걸 좋아한다.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이탈리아, 독일, 노르웨이다(난 노르웨이 금발 미녀들을 아주 좋아한다) 7. 그리고 나는 모든 종류의 평화를 사랑한다.


내가 끔찍하게 싫어하는 것들 : 1. 다른 사람의 가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 언제나 자기 말만 하고 남의 말은 듣지 않는 사람들 2. 전쟁과 싸움. 우린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걸 배워야 하며 싸우거나 죽여서는 안 된다. '살아라. 그리고 다른 사람도 살게 하라', 이것이 내 좌우명이다 3. 과잉 생산, 과잉 소비를 혐오한다. '가진 것이 많을수록 걱정거리가 많다', 이것도 내 좌우명이다 4. 서울의 교통.

2. 어떤 시에서 '예술은 방귀와 비슷하다' 했는데 그 이유는?

예술과 방귀의 운(rhyme, 韻), 그게 이유다. 스스로를 아주 심각하게 여기는 유명한 화가와 뮤지션을 몇 알고 있다. 그들은 자기가 만들어낸 것이 매우 완벽하고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몇몇은 자기가 '살아있는 신(living god)'이라고 여기며 자기 머리보다 에고가 더 크다고 생각한다. 예술가들에게 말하고 싶다. '자신을 지나치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3. 'I am patient Of living this life. I need some drugs to fill my roid'라고 했는데, 당신은 어떤 '약(drug)'을 사용했나?

알고 있겠지만, 미국에서 '히피 문화'가 정점에 이르렀을 때 난 열일곱 살이었는데, 당시 십대들이 약을 해보는 건 일반적이었다. 그땐 빌 클린턴이나 앨 고어, 조지 부시까지도 약을 했다. 난 마리화나, LSD, 코카인, 하시시 등 당시에 사용된 약은 다 해봤다. 하지만 바늘이 필요한 마약은 절대 하지 않았다. 약은 내게 삶의 새로운 컨셉트를 부여했고 작곡에 도움이 됐다. 사실, 60년대에 약이 없었다면 비틀즈, 롤링 스톤즈, 지미 헨드릭스, 짐 모리슨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게다. 그들은 모두 약의 영향권 안에서 음악을 만들었다. 그러기에 그들의 음악이 그토록 신비하고 절묘하며 완벽할 수 있었던 거다. 하지만 난 약은 장기적으로는 몸과 마음에 파괴적이며 결국은 '자기만의 작은' 세상에서 길을 잃어버리게 만든다는 걸 알았다. 약에서 내가 싫어했던 건 자기 삶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난 사랑하고, 여행하고 , 음악을 만들기 위해서 내 삶을 컨트롤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난 약은 해답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고 약을 끊었다. 난 약은 스무 살에 졸업했다. 지금은 저녁을 먹기 전에 맥주를 좀 한다.

4. 뉴욕에서 사진가로 살아남는 방법을 알고 있나?

뉴욕은 살기엔 매우 거친 도시다. 마치 아름다운 여자와도 같다. 멋지게 보이지만 접근하기 힘든 그런 여자 말이다. 아파트 렌트비는 세계에서 가장 비싸다. 살아남으려면 아주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의미다. 성공적인 사진가가 되려고 노력하는 건 록 스타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과 똑같다. 백만 명 중 한 명밖에 성공할 수 없다. 어빙 펜, 히로, 아베돈, 마이젤처럼 톱의 위치에 오르려면 뛰어난 사진가가 되어야 할 뿐 아니라, 인사이드 커넥션을 확보해야 한다. 내 경우 그걸 뚫기 위해서 노력하지는 않았다. 사진은 어디까지나 와이프가 아니라, 애인이었으니까.

5. 사진 예술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특히 <바자> 같은 패션지의 사진에 대해서.

물론 난 패션지의 사진을 좋아하고 특히 1960년대 <바자>의 사진을 좋아한다. 정말 최고였다. 하지만 사진은 카메라, 렌즈, 필름 등의 기계 장비를 사용하기 때문에, 모델을 캔버스 앞에 벌거벗겨 놓고 붓으로 작업하는 화가와는 다르다. 그래서 난 사진은 'Fine Art'가 아니라 'Art' 형태라고 생각한다. 카메라를 통해서는 우연적인 사진들이 많이 나올 수 있다. 아무 할머니한테나 필름 10통과 카메라를 드려보라. 나는 그 분이 멋진 작품 하나쯤은 들고 나타나리라고 장담할 수 있다. 난 앞으로 카메라와 디지털 장비들이 사용하기 쉽게 발전한다면 누구나 사진가가 될 수 있다고 본다. 'f-stop'과 'bus stop'의 차이점을 알 필요도 없다. 지금은 사진가가 너무 많다.

6. 최근 다시 유행하고 있는 히피 트렌드에 대해서?

현재 히피 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건 분명하다. 난 패션과 음악은 30년마다 사이클을 반복한다고 믿고 있다. 현재의 젊은이들이 60년대에 관심을 기울이는 건 자유와 삶에 있어서의 정직성, 돈과 물질적인 것들에 대한 자유로움 때문이다. 히피 문화는 지나친 상업주의와 돈이 지배하는 세상에 대한 해독제다. 그렇다, 난 아직도 히피다. 아마도 세계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히피'? 난 사람들이 영적이고 예술적인 탐색에 더욱 몰두하고 'Peace and Love'의 씨앗이 더욱더 퍼져나가는 걸 정말이지 보고 싶다. 우린 종교나 정치, 윤리적인 차이들은 한쪽으로 치워놓고 같은 인간으로서 서로를 껴안아야 한다. 파란 하늘 아래서 우린 모두 형제요, 자매다. 이건 히피 문화가 60년대에 보낸 메시지인데 2002년에도 다시 이 메시지가 울려퍼지길 희망한다.

7. 음악으로 채워지지 않는 것들은 사진과 글로 채우는 건가? 아님 술로 채우나?

내가 가장 만족감을 느끼는 건 음악이나 사진, 시를 만들(create) 때다. 그 순간 외로움에서 벗어나 일시적으로 안도감을 느끼는 거다. 내 가슴 속에는 늘 소외감이 도사리고 있다. 고통이 날 떠난 적은 없다. 난 술을 많이 마시고, 계속 몸을 혹사했는 데도 이렇게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8. 지금까지 살면서 얻은 인생에 대한 가장 큰 깨달음이 있다면?

우리 인간들은 악의를 지닌 채 태어났으며 평화 속에서 함께 사는 법을 익히고 그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인간 관계라는 것. 돈도 아니고, 명예도 아니다. 우리 인생에서 유일하게 필요한 건 한두 명의 좋은 친구다. 완벽한 신뢰 속에서 기쁨과 슬픔을 나눌 수 있는 사람. 또한 부자는 가진 돈만큼이나 문제가 많고 가난한 사람은 별로 없다는 것. 우린 서로에게 친절해야 하며, 가지지 못한 자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넓혀야 한다는 것. 그렇지 않다면 삶은 무의미한 것이다. 조직화된 종교는 좋은 비즈니스라는 것. 인간은 자기 마음 속에 있는 신하고 직접 얘기해야 한다는 것. 목사나 신부, 수도자들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인생은 기적이라는 것. 그러기에 오늘이 내 최고의 날이다!!!

9. 한대수의 인생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했다. 그걸 통해 얻은 것이 있다면?

내가 배운 건, 삶이란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란 거다. 우린 인생의 곳곳에서 끝없이 문제와 마주친다. 중요한 것은 문제를 풀어가는 자세다. 또한 더 씁쓸해 하지도, 화내지도 말고 문제를 인생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차분하게 풀어가는 것, 가능한 사람들한테 상처를 덜 주면서. 난 삶 이후의 천국과 지옥은 믿지 않는다. 하지만 이 생(生)에서의 천국과 지옥은 믿는다. 대부분의 시간을 우린 지옥에서 산다. 그런고로, 우리 모두는 이 땅에서 천국을 만들기 위해 늘 노력해야 한다.

10. 한대수가 사랑하는, 그리고 혐오하는 뉴욕의 모습.

난 뉴욕의 문화적 다양성 때문에 뉴욕을 좋아한다. 다양하고 독창적인 음식과 옷, 예술, 라이프 스타일 등등. 뉴요커들은 패션을 따르지 않고 패션을 창조한다. 뉴요커들은 자신의 고통에 대해서 매우 솔직하다. 이혼이나 재정적인 문제에 대해 솔직하며 'I am broke!' 하고 개방적으로 얘기한다. 또한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 아주 빠르다. 그들은 하루에 열 개의 대형 프로젝트를 결정할 수도 있다. 아마도 서울 사람들이 결정을 내리려면 3개월 정도는 걸릴 프로젝트도 말이다. 다른 말로 하면, 뉴요커들은 프로페셔널하고, 아마추어리즘을 혐오한다! 이것이 뉴요커들이 최고의 패션과 예술, 음악, 문학으로 세계를 선도할 수 있는 이유이다. 맨해튼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다. 역사상 도시 계획이 가장 잘 된 도시이기도 하다. 내가 뉴욕에서 싫어하는 것은 높은 렌트비다. 이는 부동산이 극소수의 탐욕스러운 갑부들에 의해서 통제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체로 유태인이다. 뉴욕은 유태인의 입김을 너무 많이 받는다. TV에서부터 신문, 부동산, 주식시장, 다이아몬드 산업, 음악 산업에 이르기까지. 내가 이 도시를 'jew york'이라고 부를 정도로 유태인은 엄청난 파워를 갖고 있다. 렌트비를 포함해서 높은 생활비 때문에 많은 젊은이들이 과도하게 시달리고 있으며 지출에 맞추려고 격무를 한다. 뉴욕의 모든 근로자들은 그야말로 '소진'된다. 스트레스로 인해. 이것이 내가 뉴욕에 가지고 있는 유일한 불만이다.

11. 화폐와 예술의 관계에 대하여.

'화폐'와 예술은 영원히 사랑해야 하는 연인 사이다. 어떤 예술도 돈 없이는 태어나지 못한다. 바흐는 교회로부터, 베토벤은 러시아와 오스트리아의 귀족들로부터, 비틀즈는 브라이언 업스테인으로부터, 밥 딜런은 유태인 매니저 앨버트 그로스맨으로부터 지원을 받았다. 물론 그 두 매니저는 후에 억만장자가 되었다. 이 위대한 예술가들이 재정적인 후원을 받지 못했다면, 우리는 'Humanity'를 담고 있는 그 멋진 노래들을 영원히 들을 수 없었을 것이다. 예술가들을 후원했던 사람들도 예술가들만큼 중요하다. 미국에는 장래성이 있는 젊은 예술가들을 위한 아트 프로젝트들을 재정적으로 후원하는 예술 재단이 많이 있다. 이것이 바로 미국이 세계적인 예술가들을 보유할 수 있는 이유이다. 한국에는 전혀 없다. 이것이 문제다! 2001년 10월에 열린 내 솔로 콘서트는 스폰서를 모으지 못해서 열지 못할 수도 있는 상황까지 갔었다. 결국 우린 인터넷을 통해 내 팬들로부터 투자받은 돈으로 콘서트를 열었다. 한국의 사업가들은 젊은 문화의 수준을 높이는 것이 세계 속에서의 미래 한국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높은 수준의 문화가 높은 수준의 수입을 창조한다!

  2002/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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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8   생존 보고. #01 [1] tinkle 2002/12/11 235
1287   [전시]최병관 사진전 zabel 2002/12/12 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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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5   2003 박건희문화재단 사진문화 행사 지원 프로그램 zabel 2002/12/12 295
1284   Music zabel 2002/12/13 309
  [펌]없었을텐데 그러므로 나는 [1] zabel 2002/12/14 375
1282   장투리 zabel 2002/12/15 294
1281   프라블럼.혹은 퀘스천 zabel 2002/12/15 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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