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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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2008-10-09 13:57:09, Hit : 819)
전시 10.9



5th Artist Mapping

이정아展 / LEEJOUNGA / 李姃娥 / painting

2008_1001 ▶ 2008_1027



이정아_situation_캔버스에 유채_120×120cm_2008




초대일시_2008_1001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가나아트센터 미루_MIRU
서울 종로구 평창동 97번지 가나아트센터
Tel. +82.2.720.1020
www.ganaart.com






젊은 작가의 역량을 확인하는 Artist Mapping, 그 다섯 번째 전시 ● 올해 개관 25주년을 맞이한 가나아트갤러리는 『Artist Mapping』전을 통해 미술계라는 지도 위에 젊은 작가들의 좌표를 설정하는 한편, 가나아트갤러리의 좌표를 확인하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 고자 한다. 최근 몇 년간 미술애호가들의 젊은 작가에 대한 관심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새로운 경향과 실험성을 보여주는 젊은 작가와 함께 미술애호가 또한 다양한 취향, 강한 개성의 작품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미술에 대한 포용력과 안목이 성장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맞추어 동시대 미술의 다양한 형태를 소개하고자 기획된 『Artist Mapping』전은 젊은 시각으로 미술을 바라보고, 자신의 시각을 확장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 가나아트갤러리




이정아_situation_캔버스에 유채_120×120cm_2008



이정아_situation_캔버스에 유채_100×100cm_2007



이정아_situation_캔버스에 유채_150×150cm_2008


작업의 주된 테마는 우리들이 접할 수 있는 ‘상황, 순간의 채집’ 이라 말할 수 있다. 작가가 ‘상황’이라고 명하는 이것은, 살아가는 시간들 중의 한 ‘순간’이라는 의미이다. 현대인들이 어떤 생각을 하며, 표면적인 모습 뒤에 자리잡고 무의식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는 것은 무엇인지, 그들의 단편적인 모습을 통해 그들의 내면의 세계를 엿보고 싶은 작가의 관음증이 이 모든 것들의 시발점이다. 어떠한 상황(순간: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포착한 상황의 멈춤)에서 인간은 그들의 ‘신체 언어’를 통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고유의 인성을 드러낸다. Body Language는 내재된 사고의 또 다른 표현이다. 이러한 ‘순간’에 반응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하나의 테마 아래 다뤄지는 다양한 생각들의 공통점과 차이점들을 작업의 모티브로 이용하고 있다. 하지만 작가의 목적은 그들을 분석하고자 함은 물론 아니고, 이러한 다양한 모습들을 어떤 ‘보기형태’로 수집하고 제시하는 역할을 행하고자 한다. 사람들은 주어진 상황에 반응하고, 작가는 상황에서 보여지는 그들의 모습을 시각화시킨다.




이정아_situation_캔버스에 유채_100×200cm_2007



이정아_situation_캔버스에 유채_100×100cm_2007



이정아_situation_캔버스에 유채_100×100cm_2006


작가가 이러한 ‘보기’를 수집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진다. 하나는 작가가 어떠한 특정상황을 새롭게 제시하여 참여하는 이들로부터 결과물을 취하는 것과, 또 다른 하나는 이미 존재하는 것, 즉 이미 주어진 상황에서 작가가 새로운 순간적 상황을 찾아내는 것이다. 심리학에는 자연적 관찰법과 실험적 관찰법 두 가지가 있다. 자연적 관찰법의 사전적 정의는 '특별한 계획 없이 자연상태에서 대화나 함께 어울려 행동하며 얻는 방법' 이고, 실험적 관찰법은 '일상에서 일어나지 않는 행동을 인위적으로 유발하여 조직적, 의도적으로 관찰하는 것'이다. 이것은 작가가 이용하는 방법과 내용적으로 유사성을 갖고 있다. ● 상황을 제시하는 방법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는 진행 과정의 단순함과 즉흥성, 빠른 시간 내에 행동을 유발하는 방법 등으로, 참여하는 이들이 하나의 놀이형태로 받아들이거나 부담감을 갖지 않게 하며 능동적인 참여와 동시에 스스로 즐길 수 있는 과정이 되기를 원한다. ‘왜’라는 것에 관심이 많아 시작된 작업이지만, 작업 속의 그들은 단지 움직일 뿐이다. 스쳐가는 짧은 시간을 단순히 제시함으로써, 참여하는 이와 보는 이에게 그들의 묻혀져 있는 인식의 한 단편을 슬쩍 스쳐가는 ‘짧은 회의’ 와 ‘느낌’도 더불어 잠시 건드려보기를 바랄 뿐이다. 아이덴티티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의 한 순간의 몸짓만이 화면을 채운다. ■ 이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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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n a play

임상빈展 / YIMSANGBIN / 任相彬 / painting

2008_1006 ▶ 2008_1019



임상빈_별이 빛나는 밤에-The Starry Nigh_밀랍, 종이에 유채_10.5×29.5cm_2008




초대일시_2008_1006_월요일_06:00pm

‘태안기름유출사고’에 관한 주관적 보고서

관람시간 / 11:00am~11:00pm





호기심에 대한 책임감
서울 종로구 부암동 254-5번지
Tel. +82.2.542.7050
www.curiosity.co.kr






드로잉 연작들은 스타일과 행동양식에 관한 시각적 사례들이며, 현대인의 친숙한 모습들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획일화의 이데올로기와 도덕적 위선 그리고 이기주의 등을 노출함으로써 그들의 연극적인 동작들을 유머러스하게 폭로하기 위함이다. ● 1. 찌꺼기와 얼룩은 야만주의를 낳는다. 잘 보이지 않는 공적영역에서 아주 조용히 무례하고 파렴치한 사건이 발생한다. 파동이 작아 사소한 사건으로 묵인될 수밖에 없는 일들, 그래서 가해자(딱히 범죄라고 부르기에는 수위가 너무나 낮은)는 항상 상황을 악용한다. 이들이 저지르는 일들은 타인에 대한 작은 착취와 작은 억압이며 소진되지 않는 것이기에 부조리라는 ‘찌꺼기’가 생겨난다. 법의 효력이 닿지 않는 곳에 도덕성, 예의범절, 매너가 있다. 법과 이들 사이를 오가는 이율배반적 태도는 통제불능의 상태에 놓여있으며 잘 지워지지 않는 ‘얼룩’과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이익의 추구와 자기보존의 삶에만 연연하는 이기적인 태도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하나의 관점을 추론하자면, 사람들은 경제적 가치에 따라 행동할 뿐이지 옳고 그름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탈도덕화 경향이다. 내가 보는 것은 바로 이런 종류의 제스처들이다. 나는 점잖은 행위들 속에서 발견되는 계산적인 이기주의와 도덕적 무책임이 지금의 자유주의와 공동체의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자기 자신에게 한없이 관대한 그러나 타인에게는 엄격한 실리주의야말로 공적영역을 침범하는 야만주의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 2. 응고된 사건은 구역질처럼 넘어온다.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은 은밀한 포착이다. 그러나 사건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진 거리두기의 냉소주의이기 때문에 ‘무능한 째려봄’이다. 스캐닝은 사건의 표면을 훑기만 할 뿐 침묵으로 마비된다. 사건은 바로 앞에서 일어나지만 끼어들지 못함으로 나는 사건 밖을 배회한다. 나는 사건 현장의 바깥에 존재한다. 단지 일말의 양심만이 사건에 합류되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사건이 멀어지면 멀어 질수록 일련의 사태에 더욱 더 집중하게 된다. 회피하려는 의식 너머에서 돈키호테 같은 영웅의식이 구역질처럼 넘어온다. 이내 망상에 사로잡혀보지만 순식간에 헛일로 막을 내린다. 오로지 사태를 주시하는 비겁한 눈만 떠돌고 있을 뿐 어느 것 하나 움직이지 않는다. 마치 정지된 시간에서처럼 나는 무관심한 화석이 된다. 이런 경험은 상처이고 없어지지 않는 상흔으로 남는다. 그래서 사건은 응고된다. 스캐닝 된 이미지가 쌓이면 쌓일수록 심장 깊숙한 곳에서는 ‘응고된 사건’들이 종양처럼 커져가면서 심장 박동수를 줄여간다. 도덕적 요구를 담고 있는 평이한 안전지대가 소실점화 되어 간다. ● 3. ‘자유의 여신상’의 발견은 고무적인 일이 아니다. 사람들의 행동패턴은 장막으로 가려져 있다. 이것은 노출되지 않으며 잠재태로 숨겨져 있다. 그런데 과시욕의 심리를 엿보이는 무리가 있다. 교묘한 듯싶지만 눈에 보이는 뻔뻔한 도발이다. 무엇을 표방해야 되는지 알고 있는 ‘프로파간다(propaganda)’이다. 점잖떠는 교양은 그래서 거짓말로 속내를 드러낸다. 문제는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 속아주고 속인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유행’이다. 아니 ‘포퓰리즘(populism)’이다. 사람들에게 설명하고 동의를 얻어내는 일은 매스미디어가 한다. 허울 좋은 명분을 내세워 이미지를 표상하게 하며 다급한 모습으로 등장해 헌금을 강요하는 것 또한 매스미디어가 하는 일이다. 한편에서는 노동착취가 또 다른 한편에서는 이중 세금부과 현상이 당연한 듯 고개 들고 행해진다. 반대하는 목소리는 어디에 있을까. 없다. 이것은 ‘원죄’이기 때문이다. 강요된 의무, 그러나 자발적인 의무는 선험적으로 심어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민은 다시 농노로 되돌아간다. 열심히 뛰었지만 제자리걸음이었다. 이 환상의 시나리오를 발견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 아니다. 이것은 영화 「화성침공」에서 주인공이 ‘자유의 여신상’을 발견하는 것과 동일한 감상에 젖게 한다. 내가 발견한 일, 이것은 ‘태안기름유출사고’이다. ■ 임상빈




임상빈_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No One Waited for Her_밀랍, 종이에 유채_10.5×29.5cm_2008



임상빈_욕하는 사람들-Scandalmongers_밀랍, 안료, 종이에 유채_10.5×29.5cm_2008


검은 파도…, 가 밀려든다. 거침없는 기세로 넘실대는 파도. 그 격랑의 끝부분은 마치 무수히 많은 악귀의 발톱들이 아우성치는 듯 한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아니다. 완성될 이미지를 상상하면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 무언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 마음 속 한 구석에 꽈리를 튼다. 구체적 사물들과 그것의 상호교차에 의한 상징적 차원의 기호들. 그렇다. 서로 긴밀하게 조우하는 대조와 비유적 암시의 통로로 연결되는 구체성이 사라져 버렸다. 그런데 과연 그것뿐일까? 역시 그렇지 않다. 그것은 변형과 왜곡의 코드로도 작동한다. 굳이 비교한다면 그것은 긴장에서 이완의 관계로 설정이 변경되었다. 그렇다. 그 두 개의 이미지 -선례로 채택된 이미지와 그것을 차용했으나 작가의 임의적 조작이 개입된 이미지- 사이에는 분명 느슨할 뿐 아니라 당면한 위협에 대한 부드럽고 완곡한 서술이 삽입되어 있다. 물론 이 같은 진술은 주어진 자료만으로 가늠해 본 아직 구현되지 않은 이미지에 대한 섣부른 예견일 뿐이다. ● 제시된 이미지는 의심할 수 없이 명백한 전례와 상관관계를 이룬다. 가츠시카 호쿠사이. 그리고 그의 저 유명한 『가나가와 앞바다의 파도神奈川沖浪裏』. 그러나 의심할 수 없는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재차 탐색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일종의 확인절차인 셈이다. 그리고 그 확인절차를 통해서 마침내 변형된 코드에 대한 사례들이 그 구체성을 보다 더 확연히 드러낸다. 그 구체성을 나열하기에 앞서 전례로 드러난 『가나가와 앞바다의 파도』를 잠시 들여다보기로 하자.




임상빈_합주-A duet_밀랍, 안료, 종이에 유채_10.5×29.5cm_2008


『가나가와 앞바다의 파도』는 극명한 대비에 의해 구현된 도상이다. 화면 좌측에 시선을 압도하듯 솟아오른 거대한 파도는 말 그대로 시각적 압권을 형성한다. 그리고 무서운 기세로 솟구친 바로 그 거대한 파도의 포말이 막 떨어져 내리려는 연장선상에 만년설에 뒤덮인 후지산의 모습이 배치되어 있다. 이 대비적 관계, 곧 화면의 상단 가장 높은 곳까지 솟구쳐 올라간 파도와 그것의 수직적 상승감에 의해 가중된 역동적인 힘, 그리고 그 위압적인 동세 바로 밑에 작은 크기로 묘사된 후지산-그러나 사실은 우리의 시선이 사라지는 지점에 위치한-은 그것을 바라보는 이로 하여금 이중적 심리상태로 인도한다. 수직적 관계에서 느껴지는 불안감과 공간의 깊이에 의해 느껴지는 막연한 안도감이 그것이다. 그런데 초연한 듯, 멀리 떨어진 지점에 서 있는 후지산의 풍경은 그저 평온하기만 한 느낌을 전달하지만은 않는다는 점에서 다시 미묘한 불안의 심리상태와 유착된다. 그리고 바로 그 앞, 넘실대는 파도의 격랑이 만들어 낸 비가시적 주름 사이로 세 척의 배가 파도 위에 노출되어 있으며 배에 탄 이들은 격한 파고에 자신의 운명을 내맡긴 채 일제히 납작 엎드려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아마도 사정없이 흔들리는 배 위에서 밖으로 튕겨나가지 않기 위해 서로를 의지하며 무엇이든 손에 잡히는 대로 갑판 위에 고정된 기물을 혼신의 힘을 다해 붙잡고 있는 것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맨 앞에 위치한 배의 선수는 이미 막 떠오르는 파도의 포말이 삼켜버린 상태이며 바로 그 뒤쪽에 위치한 배는 예의 거대한 파도에 의해 곧 집어 삼켜질 듯 위태롭기만 하다. 좌우의 동선으로 연결되는 이 긴박감과 속도감은 수직으로 솟구친 파도의 역동적 힘과 함께 그림 전체를 요동치는 거대한 운동감으로 회전시킨다.




임상빈_기념촬영-A Commemorative photograph_밀랍, 안료, 종이에 유채_10.5×29.5cm_2008


다시 제시된 이미지로 되돌아가자. 거듭 확인하는 바이지만 이는 분명 임상빈이 호쿠사이의 『가나가와 앞바다의 파도』로부터 탈취한 이미지이다. 그런데 임상빈의 이미지엔 원작과 달리 후지산과 세척의 배가 생략되어 있다. 뿐만이 아니라 그는 원래의 화면을 엿가락처럼 길게 가로로 늘여놓았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이 그림들이 우리가 통상 ‘걸레받이’라고 일컫는 형태로 제작되고 설치될 것이라는 점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그림들이 회화라는 시각예술작품의 지위에 상응하는 위치에 그것이 배치 또는 설치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 기능, 그것도 청소 등의 행위로 인해 벽이 훼손되거나 오염될 것을 방지하기 위한 ‘걸레받이’의 형태로 설치될 것에 대한 이야기는 일단 뒤로 미루기로 하자.) 그런데 반드시 그런 의미와 결합시키기 위한 의도로 이미지의 고의적 변형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리라는 점 또한 분명해 보인다. 그것은 당연히 작가가 이번 전시를 통해 전달하려 하는 전체적 기획의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 임상빈은 이 ‘검은 파도’ 그림을 지난겨울 발생한 ‘태안기름유출사고’와 연결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했다. 그리고 그것에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라는 이름표를 부착했다. 하지만 가츠시카 호쿠사이의 『가나가와 앞바다의 파도』와 임상빈의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의 사이에는 단순히 비교할 수 없는, 또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서로 긴밀히 연결된 관계라고 볼 수도 없는 여러 가지 층위의 간극들이 가로놓여 있다. 당연히 가츠시카 호쿠사이와 임상빈이 그렇고, 일본의 태평양 연안에 위치한 가나가와(神奈川)와 우리나라 서해에 위치한 태안이 그렇고, 19세기 초 일본의 시대적 상황과 21세기 초에 당면한 우리의 시대적 상황이 또한 그렇다. 물론 『가나가와 앞바다의 파도』가 임의의 변형과정을 거쳐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가 된 것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간극일 것이다. 그런데 이 그림의 표제어인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는 엉뚱하게도 일리야 레핀이 그린 동명의 작품으로부터 차용한 것이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그저 이 표제어가 일차적으로 지시하는 의미대로 단순히 ‘태안기름유출사고’가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던, 즉 아무도 예기치 못한 파국이란 뜻인지, 아님 레핀이 그의 작품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를 통해 말하고자 했던 바를 이 작업에 연결시키고자 함인지 도무지 작가의 의도를 종잡을 수 없으니 말이다.




임상빈_죽은 오리의 질문-The question from a dead mallard_밀랍, 종이에 유채_10.5×29.5cm_2008


어쨌거나 임상빈은 이번 전시를 위해 하나의 단일한 주제를 선택했고 그것은 지난겨울 태안 앞바다에서 발생한 환경재앙에 대한 것이다. 따라서 그가 그린 ‘검은 파도’는 당시 태안 앞바다를 뒤덮었던 기름띠에 대한 매우 직접적인 비유인 셈이다. 우리 모두는 거의 예외 없이 어느 날 느닷없이 들이닥친 이 파국의 소용돌이에 직간접적으로 빨려들었고 그 결과는 연인원 120만 명 이상이 투입된 자원봉사자들의 숫자에 의해 증명되고 있다. 생태계의 파괴뿐만 아니라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는 대재앙에 직면해서 그것을 극복하려는 현지주민들과 자원봉사자들의 노력은 분명 당시 언론에서 다루었던 바대로 세계가 깜짝 놀랄, 민족적 자긍심의 차원으로 승화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정작 이 사태를 바라보는 임상빈의 태도는 이런 일반적인 관점에서 사뭇 비켜 서 있는 듯 하다. 아니 그냥 비켜서 있는 정도가 아니라 그것에 대해 비아냥거리거나 냉소적 시선을 던지기도 한다. 단적으로 그는 ‘태안기름유출사고’에 전 국민이 보여준 열광적인 ‘관심’의 틈새에서 그 관심이 저마다의 이기심의 발로에서 기인한다는 점을 짐짓 진지하고 심각한 태도로 분석하고 있다. 그것은 개인이든 집단이든 자신들의 이해관계라는 접속망을 통해 이 사태와 관계 맺기를 하고 있다는 점을 폭로하는 것이기도 한데 그들의 모습은 임상빈의 그림 속에서 피해자로 나타나기도 하고, 관망자로 나타나기도 하며, 해결사나 조사관으로, 또는 죽은 자연의 상징적 대체물로 나타기도 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모든 장면들이 서로 엇갈리며 미묘한 불일치를 자아낸다는 점이다. 그것은 한결같이 뜻밖의 충돌을 야기하는데 그 뜻밖의 충돌은 도상 자체뿐만 아니라 도상과 그것을 지시하는 표제어와의 관계를 통해서 드러나기도 한다. ● 물론 임상빈이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라는 표제어를 사용함으로써 굳이 비유하지 않아도 그 누구도 ‘태안기름유출사고’와 같은 대재앙을 기다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가 앞서 말한 바 있는 이기심에 대한 역설적 표현으로 읽히는 것은 어쩐 일일까? 문명화된 사회에서 누리는 물질적 풍요와 만족은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만큼의 자원과 에너지의 소비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또한 이런 정황이 전 지구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서는 그에 비례하는 잠재적 파탄 또한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문명사회는 ‘태안기름유출사고’와 유사하거나 그와 관련된 사고들이 언제 어디서든 반복해서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늘 떠안고 있다. 그리고 이 문제를 보다 확대해서 해석하면 이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가 그 밑바닥에 상존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전시를 통해서 임상빈이 제시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는 이번 전시를 위해 스스로 작성한 텍스트를 통해서 ‘태안기름유출사고’를 한 편의 드라마로 인식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그 텍스트의 표제어는 "run a play"이다.) 그 한 편의 드라마 속에서 ‘부조리’에 대한 분노와 그것에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자신의 관조적 태도에 대해 그는 ‘무능한 째려봄’이라고, ‘단지 일말의 양심만’이 ‘합류’된 채 사건의 ‘바깥에 존재’하면서 ‘회피하려는 의식’과 ‘돈키호테 같은 영웅의식’ 사이에서 배회할 뿐이라고 중얼거린다. 자신의 무기력함에 대한 통렬한 자기고백. 이 같은 그의 진술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그것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정서는 단연 알레고리적 우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흡입과 소멸, 상호침투에 뒤따르는 명백한 모순이 최근에 보다 더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너무도 투명해서 오히려 비가시적인, 오로지 하나의 진리만을 관통하는 이 시대의 유일하며 유의미한 기의. 그것을 바라보는 임상빈의 시선에 대해 굳이 비유적으로 접근한다면 이렇다. 『가나가와 앞바다의 파도』에는 시선이 부재한다. 바라보는 자의 위치가 생략되어 있는 것이다.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에서의 익숙한, 그러나 너무도 낯선 방문객은 자신의 형형한 눈빛을 단지 역광 속에서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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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을 새기다

송미정展 / SONGMIJUNG / 宋美貞 / painting

2008_1008 ▶ 2008_1014



송미정_풍경_패널에 플라스틱 컬러 시트_85×104.5cm_2002






초대일시_2008_1008_수요일_06:00pm

Layering & Carving展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주말_11:00am~06:00pm





미술공간 현_ARTSPACE HYUN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6번지 창조빌딩 B1
Tel. +82.2.732.5556
www.artspace-hyun.co.kr






나의 작품이 담고 있는 내용적 측면의 맥락을 살피는 과정은 현재 내가 처한 문화적 배경을 살피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현재 디지털문명의 이기는 이제 나의 삶과 떨어져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디지털의 방식이 나의 삶의 방식과 갈등을 빚고 있는 지점이 있어 여기에 주목하게 되었다. 디지털 문화 속의 일루젼으로 가득한 이미지의 범람 속에서 실존감을 인지하고자 하는 본성과 디지털 기술의 급속한 발전 속도에서 기인한 소외와 불안감은 나로 하여금 아날로그적인 실존의 흔적을 찾고자 하는 동기를 불러일으킨다.




송미정_풍경_패널에 플라스틱 컬러 시트_85×185cm_2002



송미정_풍경_패널에 플라스틱 컬러 시트, 알루미늄 스틸 프레임_29×29cm_2007


작품의 방법적인 공통점을 주목해보자면 ‘쌓기’와 ‘새기기’를 들 수 있다. ‘쌓기(layering)'는 인공적 색깔의 합성수지 수십 겹을 신체를 이용해 일정한 압력을 가해서 접착시키는 과정이다. 이렇게 견고하게 쌓으며 접착한 평탄면을 조각도를 이용해서 새기게 된다. 쌓고(layering) 새기는(carving) 과정은 마치 누적되어 쌓인 연속적 시간의 틈으로 들어가서 발굴하듯 파헤치고 그 속에 가려진 층위를 드러낸다. 여기서 새긴다는 행위는 표면에 가려진 이면의 것, 즉 껍데기 안에 잠재된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재조명을 하는 과정이 되어준다.




송미정_풍경_패널에 플라스틱 컬러 시트, 옻칠나무 프레임_51×60cm_2007



송미정_풍경_패널에 플라스틱 컬러 시트, 옻칠나무 프레임_51×60cm_2007



송미정_풍경_패널에 플라스틱 컬러 시트, 옻칠나무 프레임_57×90cm_2007


디지털 문화는 나에게 있어서 물처럼 스며들지 못하고, 물과 기름사이의 섞이지 않는 경계면을 대면하는 상황을 만든다. 이러한 나의 상황을 발전적 방향으로 끌어가기 위해 디지털 문화와 아날로그 감성이 혼재된 현실을 ‘저항’의 눈으로 ‘거슬러’ 관찰한다. 또한 경계면이 갖는 속성상 어느 한쪽에만 소속되지 않는 정체성을 지닌 채 긍정하면서도 부정하며, 추구하면서도 외면하는 갈망과 환멸의 역설적 태도를 갖게 된다. 그래서 작품의 내용적인 측면은 디지털문화 속에서 범람하는 이미지의 백태를 다루면서도 방법적인 측면은 신체적 몰입과 반복. 쌓기와 새기기와 같은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방식을 추구하게 된다. 이러한 아날로그적인 방식을 통해 내재된 감성을 표출해 보려는 작품에는 디지털 환경 속에서 익숙히 접하던 형상과 색이 등장한다. 이러한 이미지는 무한의 경쟁사회에서 거대한 권력으로 군림하는 디지털로 인한 막연한 경외와 좌절 속에서 발생한 강박관념과 만나면서 온전치 못한 이미지로 변화한다.




송미정_풍경_패널에 플라스틱 컬러 시트, 옻칠나무 프레임_92×38cm×2_2007


나는 ‘디지털’의 ‘풍요로움’과 ‘빈곤함’속에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실존감을 획득하고 내적갈등을 해소하면서 행복한 삶을 돕는 방법으로써 아날로그적인 작업 방식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러나 진정한 행복이란 ‘디지털 방식’에서 오는 것도 아니며, 또 ‘아날로그 방식’에서 오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나의 삶과 조우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어려움 앞에서 스스로를 조율하는 ‘마음의 방식’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 나의 작업과정을 일축해 말해주는 있는『흔적을 새기다』라는 대전제는 내 ‘마음의 방식’을 찾아가는 데 유효한 계기를 만들어 준다. ■ 송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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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_Sixteen

정현자展 / JUNGHYUNJA / 鄭現子 / photography

2008_1008 ▶ 2008_1014



정현자_#022_젤라틴 실버프린트_24×24cm_2008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Vol.051012b | 정현자 사진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8_1008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전시 마감일_10:00am~02:00pm


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6층
Tel. +82.2.736.1020
www.ganaartgallery.com






경계인의 내면 풍경-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 16세.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갑자기, 몸살이 난 것처럼 영혼의 삭신이 뻐근해져 온다. 정현자의 사진을 보면서…, 나는 나를 생각했다. 모든 희망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던, 빛이 들지 않는 골방 같은 시절을 떠올렸다. 어느 것 하나 손에 잡히는 게 없었다. 어른들은 성장통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문학적인 용어는 나를 포함하여 내 또래 아이들에게는 아무 위안도 주지 못하는, 한갓 어른들의 자기방어적인 수사적 표현일 뿐이었다. 그때 나는 때로는 초월하고 때로는 비웃거나 저항하며 어둡고 긴 터널을 겨우 통과하고 있었다.




정현자_#007_젤라틴 실버프린트_24×24cm_2008


청소년. 소년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른도 아닌 세대를 우리는 이렇게 부른다. 이 산뜻한 낱말은 그러나, 16세의 정체성을 털끝만큼도 설명해줄 수 없다. 그들의 우울과 불안, 소외를 설득력 있게 표현해줄 수 없다. 오히려 주변인이나 경계인 같은 사회학 용어가 한결 솔직한 낱말이다. 16세. 그들은 경계인이고 주변인이다. ● 인간의 삶이란 아주 긴 싸움일지도 모른다. 물질과 공간을 소유하기 위한 싸움이고, 말할 자유와 행동할 권리를 얻기 위한 싸움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청소년에게는 지루하지만 아름다운 싸움의 기회와 공간조차 애초부터 허락되지 않는다. 세상은 그들을 어디에도 소속시켜 주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경계하고 또 한편으로는 계도하려 든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제한적이다. 순응하거나 아니면 저항하거나.




정현자_#017_젤라틴 실버프린트_24×24cm_2008


10대를 대상으로 작업한 사진은 제법 있는 편이다. 하지만 대개는 소재주의에 머물거나 로리타 이미지를 차용한 경우에 머물러 있었다. 정현자의 작업처럼 경계인으로서의 청소년이 운명적으로 안고 있는 불안과 소외를 이만큼 전면적으로, 그리고 감수성 짙게 드러낸 경우는 드물었다. 정현자의 작업은 이 지점에서 힘을 얻고 있다.




정현자_#020_젤라틴 실버프린트_24×24cm_2008


대개 사진은 피사체를 이상화한다. 노출, 시간, 앵글의 변화를 통해 대상을 과장하거나 낯설게 하여 이미지 효과를 극대화시키려고 애쓴다. 그러나 정현자는 이런 현상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인다. 수잔 손탁의 표현처럼 피사체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 자체가, 그러니까 사진을 찍는 행위 자체가 대상에 대한 공격적인 개입을 내포하고 있지만, 정현자는 꼭 그렇지 않다. 그는 매우 조심스럽게, 가능하면 감정이입을 절제하여 대상을 포착해낸다. 정현자는 일부러 다가가지도 그렇다고 지나치게 뒤로 물러서지도 않는, 다르게 표현하면 전지적 시점과 관찰자 시점 사이에 서 있다. 이 심리적 거리감이 미적 긴장감을 낳았다.




정현자_#024_젤라틴 실버프린트_24×24cm_2008


정현자는 대상을 자기화 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일정하게 심리적인 거리감을 유지한 채 16세의 행동과 표정과 상황을 보여준다. 의자에 불안정한 모습으로 앉아 있거나, 뒤돌아 앉아 세상을 외면하거나, 탈로 얼굴을 가려 익명의 세계로 망명하거나, 불안한 눈빛으로 세상을 노려보거나, 마치 영화 레옹의 마틸다처럼 화분과 대화를 하거나, 그도 아니면 꽃으로 얼굴을 가리는, 그리하여 마침내는 세상과 불화하는 16세의 초상을 예리하게 포착해낸다. 정현자는 16세의 텅 빈 마음을 보여주고, 그들의 불안한 심리를 보여주고, 절망하는 영혼을 보여준다. 이것은 그가 세상에 던지는 질문이고, 세상과 대화를 하는 방식이다. 정현자의 16세 연작은 그러므로, 그가 일관되게 추구하는 소통의 또 다른 형식이다.




정현자_#013_젤라틴 실버프린트_24×24cm_2007


정현자가 획득한 긴장미는 그의 공간에 대한 탐구와도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청소년들의 공간에 대한 집착은 불안감에서 오는 것이다. 불안은 비밀을 낳고 비밀은 그들에게 골방을 찾게 만든다. 그리고 그들은 세상과 격리된 골방에서 불안한 자유와 해방을 즐긴다. 정현자는 공간을 통해 청소년들의 골방의식을 정확히 포착해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벽-특히 금이 간 벽과 금이 간 방바닥을 보라. 그리고 벽과 바닥처럼 금이 간 16세의 등을 보라-과 꽃과 탈, 의자, 화분 같은 소품을 적절히 활용하여 청소년들의 심리를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사진은 입체를 평면화하는 작업이다. 이 말은 그러나 정현자의 작품 앞에서 곧 힘을 잃어버리고 만다. 그는 공간에 대한 면밀한 연출과 소품의 상징화-정현자의 작품에서 탈, 꽃, 화분 등은 해방과 탈질서를 의미하는 상징 언어이다-를 통하여 16세의 내면 풍경을 그 어떤 연설과 웅변보다도 입체적으로, 그리고 핍진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정현자_#026_젤라틴 실버프린트_24×24cm_2008


파스빈더의 영화 이야기로 이 글을 맺고자 한다. 뉴저먼 시네마의 기수인 독일의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감독은 70년대 독일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를 영화로 그려냈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는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이다. 그로부터 40년 후, 지구 반대편에 있는 한국의 한 사진가가 또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다. “불안은 여전히 영혼을 잠식한다.” ■ 유명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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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회화를 입다

KT아트홀 - 시소A 공동기획전

2008_1008 ▶ 2008_1028



사진, 회화를 입다展_2008




초대일시_2008_1011_토요일_06:30pm

부대행사_재즈공연

참여작가_최중원_박지만_이원철_채경

관람시간 / 평일_09:00am~06:30pm / 휴일_11:00am~04:30pm





KT아트홀
서울 종로구 세종로 100번지1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2번출구
Tel. 1577_5599
www.ktarthall.com






『사진, 회화를 입다』사진은, 손과 물감을 통해 작가의 감정이 직접적으로 투사되는 회화와는 다르게, 중간에 여러 간섭들을 거쳐 만들어진다. 찍혀지는 순간의 빛의 양과 셔터의 속도, 필름의 감광도만이 아니라, 어떤 방법으로 현상하고 인화하느냐에 따라, 또 포토샵과 같은 컴퓨터작업에 의해 동일한 대상은 다양한 모습들로 변화된다. 어떻게 보면 사진은, 이번 전시를 통해 선보이는 다양한 작업들에서 나타나듯, 작가의 의도에 따라 회화보다도 더 자유롭게 형상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예술가의 도구이기도 하다.




최중원_스치던풍경-정릉-스카이아파트_플렉시 유리에 잉크젯 프린트_80×240cm_2008



최중원_스치던풍경-상도동-가위바위보_플렉시 유리에 잉크젯 프린트_97×80cm_2008


최중원 : 스치던 풍경 - 노스탤지어(nostalgia) ● '찰나(刹那)'라고 했던가? 눈이 깜박이는, 채 1초도 안 되는 그 짧은 순간 속에서 사람의 눈은 무엇을 기억하고 또 놓치는 것일까. 우리는 앞의 한 곳을 바라보는 순간, 그 옆 담벼락의 전단들, 바닥의 그림자,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이들을 망각한다. 아니 어쩌면 기억하려 하지 않는 것일까? 그러나 최중원의사진속에서, 그 소소한 모든 것들은 현실보다도 더 생생하게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우리가 놓쳐버렸던 것들에 대한 아련한 향수(鄕愁)를 불러일으킨다.




이원철_Olympic park, Seoul, Korea_플렉시 유리에 C 프린트_120×120cm_2005


이원철 : 빛이 그려내는 공간 - 스타라이트(The Starlight) ● 그는 한 장소에서 필름카메라로 긴 시간의 노출을 통해 일몰 후부터 일출 전까지의 모습들을 사진 속에 담는다. 1분 혹은 한 시간 이상 동안, 인위적인 조명장치 없이 한 장의 필름 속에 찍혀지는 그 장면은, 인간의 시각이나 디지털카메라로는 잡아내기 어려운, 그 장소에만 존재하는 자연광과 인공조명들이 만들어내는 공간이다. 「The Starlight-경주」로 잘 알려진 이원철은 이번전시를 통해 「The Starlight」 시리즈 중 공원을 소재로 한 작품들과, 「Epiphanie Landscape」 연작들을 보여준다.




채경_전기장판_한지에 디지털 프린트_100×40cm_2008


채경 : 내부를 향한 시선 - 엑스레이(X-ray) ● 기존의 사진들이 눈으로 보여지는 외부의 것들을 대상으로 찍었다면, 채경 작가는 시선을 안으로 돌려 사물의 내부를 들여다본다. 필름이 아닌 디지털 엑스레이를 가지고 주변의 사물들 혹은 이제 사라져 가는 것들을 찍은 후, 색을 입히거나 글, 그림을 더해 넣는다. 더군다나 일반적인 다른 사진작품들과는 다르게, 회화처럼 한 작품만을 제작한다는 것은 그녀의 작품을 더욱 독특하게 만드는 점이다.




박지만_draw 11_인디고 프린트_18×12cm_2006


박지만 : 작가의 도구 - 사진(photo-graphy) ● 이번 전시를 통해 그의 「Draw」와 「Flow in Times」, 그리고 「Someone」 연작들을 보여주는 박지만. 그가 시선을 둔 자연과 인공물들은 일상 속에서 흔히 마주치는 존재들이다. 그러나 그의 손에 들린 카메라에 의해서 찍혀지는 순간, 이들은 낯설어지고 또 새로워진다. 본인의 말처럼, 그는 카메라를 들고 그림을 그린다. "나에게 카메라는 붓이며, 내가 촬영한 사진들은 그림이다." ● 시.소A가 KT아트홀에서 기획한 첫 전시, 『사진, 회화를 입다』는 회화를 닮고자 하는 사진을 보여주려 함이 아니다. 그보다는 작가의 감성을 드러내는 예술매체로서 자리 잡은 그 존재를 알리는 것이 이번 전시의 기획의도이다. 전시를 가능하게 해준 KT아트홀과, 전시에 참여한 네 명의 작가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사진, 회화를 입다』전시가 다소나마 사진과 그 예술적 매개성에 대해 전달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 김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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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es Turrell

제임스 터렐展 / James Turrell / installation

2008_1009 ▶ 2008_1218



ⓒ제임스 터렐 James Turrell_Projection-Jadito_Photo by Florian Holzherr




초대일시_2008_1009_목요일_04:00pm_토탈미술관

관람시간
오룸갤러리 / 10:00am~06:00pm / 일요일 휴관
토탈미술관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쉼박물관 / 11:00am~05:00pm / Night Program_05:00pm~08:00pm 예약제 진행 / 월요일 휴관

주최_오룸갤러리





오룸갤러리_OROOM GALLERY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5-25 휴먼스타빌 3층
Tel. +82.2.518.6861~2
www.oroomgallery.com


토탈미술관_TOTAL MUSEUM
서울 종로구 평창동 465-16번지
Tel. +82.2.379.3994
www.totalmuseum.org


쉼박물관_MUSEE SHUIM
서울시 종로구 홍지동 36-20번지
Tel. +82.2.396.9277
www.shuim.org






“My work is about space and the light that inhabits it. It is about how you can confront that space and plumb it. It is about your seeing, like the wordless thought that comes from looking in a fire.” - James Turrell




ⓒ제임스 터렐 James Turrell_Shallow Space-Rondo_Photo by Florian Holzherr


생존하는 최고의 거장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 최초의 한국전 ● 오룸갤러리에서는 2008년 가을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의 전시를 개최합니다. 오룸갤러리와 토탈미술관, 쉼박물관 세 곳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이번 전시는 작가의 전생애 작업을 살펴볼 수 있는 회고전 규모의 전시로서 명실상부 한국 최초의, 최고의 터렐 전이 될 것입니다. 이번 전시에는 초기 작업인 Projection과 Shallow Space, Wedgework을 비롯해, 최근 작업인 Tall Glass와 Magnetron, 대자연을 배경으로 한 Skyspace와 Roden Crater 설치모형까지 총 30여점의 작품이 전시됩니다. 작가가 “나의 작품을 만나려면 한국으로 가라”고 공언한 만큼, 작가는 이번 한국에서의 전시에 모든 스태프를 동원, 특별한 애정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개인전을 갖는 제임스 터렐은 2003년 호암미술관에서 열린 그룹전『마인드스페이스』를 통해 국내에 소개된 바 있으며, 가까이는 일본의 나오시마 섬에 건축가 안도타다오(Ando Tadao)의 작품과 함께 그의 작품이 전시되어있습니다.




ⓒ제임스 터렐 James Turrell_Tiny Town_Photo by Florian Holzherr


빛의 작가, 제임스 터렐은 1943년 캘리포니아의 로스엔젤레스에서 태어나, 포모나칼리지(Pomona college)에서 심리학을 전공했습니다. 그는 심리학을 비롯하여 화학, 물리학, 천문학, 지리학, 미술사학 등 다양한 분야를 탐구하였고, 졸업 후에 얼바인 소재의 캘리포니아대학교(University of California, Irvine)와 클레어몬트 대학원(Claremont Graduate School)에서 미술사를 공부했습니다. 1969년 「파사데나 미술관(Pasadena Art Museum)」에서의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지난 40여 년간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Guggenheim Museum)」과 「휘트니 미술관(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an Francisco Museum of Modern Art)」, 이탈리아의 「판자 디 비우모 컬렉션(and the Panza di Biumo Collection, Varese, Italy)」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서 160회 이상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전세계 곳곳의 미술관에 그의 작품이 소장되어있습니다.




ⓒ제임스 터렐 James Turrell_Skyspace_Photo by Florian Holzherr


터렐은 빛을 단지 사물을 조명하기 위한 소극적 장치가 아닌, 공간을 표현하기 위한 창조적인 매체로서 제시합니다. 대학 시절, 미술사 수업 중에 슬라이드 필름에 담겨 화면에 투사된 이미지을 본 후 슬라이드 프로젝터에서 나오는 빛에 주목하게 되었고, 그 이후로 40여 년간 빛을 소재로 삼아 작업을 해왔습니다. 터렐은 비물질적 존재인 빛을 물질화하고 관객의 지각을 매개로 하여, 빛에 의한 착시현상을 이끌어냅니다. 착시현상을 통해 관객의 초점은, 역설적이게도, 작품으로부터 관객 자신으로 이동하게 되며 마침내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게 됩니다. 이러한 초월적인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 작가는 관객에게 짧게는 5분, 길게는 30분에서 1시간 이상 작품 안에 머물러 줄 것을 요청하는데, 시간의 지속과 함께 관객은 내적 성찰에 이르게 됩니다.




ⓒ제임스 터렐 James Turrell_Tall Glass_Photo by Florian Holzherr


개인의 내면적 체험을 중시하는 작가의 성향은 그의 종교적인 배경과 연관이 깊습니다. 정신적 수련과 명상을 중시하는 퀘이커교 집안에서 자란 터렐은 자신이 받은 퀘이커식 교육을 "숭고함을 정확하고 엄격하게 표현하는 것”이라고 묘사했는데, 이러한 영향으로 그의 작품은 응시와 인내, 명상을 통해 자기 성찰을 이끌어내는데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제임스 터렐 James Turrell_Magnetron_Photo by Florian Holzherr


또한 비행기 조종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비행술에 능했던 터렐은 비행을 통해 대기변화와 그에 따른 하늘의 색채 변화 및 대자연의 장엄함을 체험했으며, 이는 전 작품을 통해 드러나는 빛과 공간에 대한 인식의 바탕이 됩니다. 「스카이스페이스(Skyspace)」 시리즈와 현재 로덴분화구(Roden Crater)에서 진행 중인 작업은 대자연의 공간과 빛을 작품에 끌어들임으로써 무한의 공간감을 느낄 수 있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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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not there

조용준展 / CHOYONGJOON / 趙容浚 / photography

2008_1010 ▶ 2008_1023



조용준_symtoms#3_잉크젯 프린트_50×75cm_2008




초대일시_2008_1010_금요일_05:00pm

관람시간_01:00pm ~ 06:00pm




대안공간 건희
ALTERNATIVE SPACE GEONHI
서울 종로구 종로 6가 43-3번지
Tel. +82.2.554.7332
www.geonhi.com






이미지는 각자의 경험과 삶의 방식에 따라 보는 관점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심지어 사물의 표면에 드러나는 기술적 요소에 대해서도 엇갈린 분석을 가질 때가 있다. 무엇도 정확히 규정지어 말하기에는 세상은 너무 단순하지 않다. 그리고 규정하는 것에 대한 자신감도 없다. 대상은 말을 하고 있지만 무관심하게 그냥 흘려듣거나 우리 주위를 마냥 떠다니고만 있다.




조용준_symtoms#10_잉크젯 프린트_50×75cm_2008


여기 이미지들을 주워 모으고 만들고 세웠다. 순간적인 찰라에서 지속적인 관찰까지, 나를 붙잡는 이미지에서부터 내가 만드는 이미지까지, 흘러 다니는 많은 이미지들을 엮어 프레임에 가두었다. 무엇을 정확히 말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냥 부유하는 여러 의미들 중의 하나를 선택하면 된다. 자기가 원하든 원하지 않던 사진은 이미 말하고 있으니까.




조용준_symtoms#11_잉크젯 프린트_50×75cm_2008


이 사진들은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눈에 보이는 모든 존재들은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만으로 해석할 수 없는 초월적 분위기를 드러낸다. 특히 사진으로 존재가 구체적으로 재현될 경우 더욱 그러하다. 같은 사물도 나의 상태에 따라 달라 보이고 나의 경험에 따라 달라 보인다. 반대로 내가 그대로 있어도 사물에 반사되는 빛에 따라, 계절에 따라, 시간에 따라 또 달라 보인다. 그래서 지속적으로 의미를 붙잡으려고 흉내만 낼 뿐이다.




조용준_red ball#3_잉크젯 프린트_80×120cm_2008



조용준_red ball#2_잉크젯 프린트_75×50cm_2008


얼마 전 인터넷에서 본 뉴스는 학습된 상황이 이미지를 어떻게 다르게 인식할 수 있는지를 깨닫게 해 주었다. 주차장에 세워둔 어떤 한 사람의 차가 지속적으로 파손이 일어나는 일이 발생했다. 참다못한 차주인은 몰래 카메라를 설치하였는데 며칠 후 마침내 차를 파손한 사람을 붙잡을 수 있었다. 그 사람을 붙잡아 차를 파손한 이유를 물었더니 어이없게도 차번호가 6666이었다는 이유였다. 특정 종교에 빠져 그 숫자에 대한 광적인 싫음이 그 사건을 일으켰던 것이었다. 그 뉴스를 접하고 난 후 한참 지나고 나서 운전을 하려는데 계기판에 6666이라는 숫자가 보였다. 갑자기 많은 생각이 떠오르며 단순하게 와 닿지 않는 그 숫자에 한참동안 앉아있었다. 내가 그 뉴스를 몰랐다면, 내가 그 숫자의 의미를 몰랐다면, 아마 그 순간의 이미지는 아마 아무런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조용준_shadow boxing_잉크젯 프린트_75×50cm_2008


이미지는 세상을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나를 들여다보는 것이 오히려 더 정확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비슷한 해석을 한다면 비슷하게 삶을 산 것이다. 그래서 전시된 사진은 두 가지 면에서 나에게 의미를 가진다. 내가 느꼈던 대상의 이미지를 관객이 같이 공유할 수 있는지, 내가 만드는 이미지가 제목처럼 전달될 수 있는지. 롤랑 바르트가 말한 것처럼 저자보다 관객의 해석에 따라 텍스트의 의미는 얼마든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고 했다. 만약 그 의미를 나처럼 느꼈다면 당신은 나와 비슷한 삶의 경험을 한 것이리라... ■ 조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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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allowing the Shadow_그림자를 삼키다

천성명展 / CHUNSUNGMYUNG / 千成明 / sculpture

2008_1010 ▶ 2008_1116 / 월요일 휴관



천성명_그림자를 삼키다_혼합재료_102×32×25cm_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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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8_1010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_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터치아트_GALLERY TOUCHART
경기 파주 탄현면 법흥리 1652-235번지
예술마을 헤이리 ㈜터치아트
Tel. +82.31.949.9435~7
www.gallerytouchart.com






지난해 여섯 번째 개인전에서 시작된 『그림자를 삼키다』를 마감하는 이야기로, 정오 무렵 숲을 헤매다가 지독하게 ‘상처’받은 자아와 대면하게 되는 소년이 저녁을 지나 새벽까지 겪게 되는 이야기이다. 작가 천성명이 계획하고 있는 총 3부의 거대한 이야기 중 1부가 완성되는 셈이다. ● ‘정체성찾기’라는 다소 진부해 보이는 주제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되는 것은 관람자들로 하여금 잊혀졌던 ‘나’의 기억들을 끄집어내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끔 하는 동화작용에 불씨를 만든다는 것이다. 관람자들은 전시장으로 들어선 순간 전혀 색다른 공간과 시간으로의 이동을 경험하게 된다.




천성명_그림자를 삼키다_혼합재료_가변크기_2008


이번 전시는 우선 네 개의 공간으로 나누어진다. 1층 주전시장과 지하전시장으로 이어지는 공간은 최소한의 스토리라인을 형성한다. 1층 전시장에는 벽을 향해 서서 거울 속 자신을 들여다보는 소년, 숲 속에서 심장이 파헤쳐진 채 버려져 있는 소년이 들개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숲을 질주하며 탐욕스럽게 먹이를 찾아 헤맸을 들개들의 표정엔 그저 냉혹함만이 있을 뿐이다.




천성명_그림자를 삼키다_혼합재료_98×38×20cm_2008


이야기는 지하로 이어져 자신을 방관하기만 하던 새들을 죽여 삼킨 소년이 넋 나간 표정으로 서있다. 불끈 쥔 주먹, 한손에는 칼이, 한손에는 죽은 새를 들고 있다. 한바탕 전쟁이 벌어졌을 터이며, 자신을 방관하는 새를 죽여 삼켰으므로 이제 승리의 기쁨을 느낄 만도 한데 표정은 여전히 어둡고, 눈은 초점을 잃고 있다. 숲은 조용하고 새들의 피비린내가 느껴진다.




천성명_그림자를 삼키다_혼합재료_86×37×36cm_2008


1층, 바깥공간과 소통하는 전시장에는 이야기의 에필로그처럼 상징적인 자소상들이 자리 잡고 있다.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인 모양을 한 샴쌍둥이, 나를 찾고자 하는 욕망을 끌어안고 있으면서도, 나와의 싸움에서 수없이 얻어터지고 심장마저 찢기는 아픔을 간직한 소년들이 있다.




천성명_그림자를 삼키다_혼합재료_가변크기_2008


그리고 지하 대나무 정원에는 다음 이야기를 암시라도 하듯 물고기 머리를 안고 있는 소년과 등불을 들고 있는 여자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길도 좌표도 없는 숲 속을 무작정 헤매다가 만나게 되는 희망의 단서이다. 이번 전시의 특징은 피투성이가 되었던 작가의 분신들에서 실낱같은 치유의 흔적과 다소 얼굴표정이 밝아진 여자아이들을 통해 희망의 기미를 읽을 수 있다는 점이지만 그래도 아직 새벽은 오지 않을 것 같다. ● 연극을 보듯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작가는 일정한 이야기 구조 속에 관람자들을 가두어 놓기를 원치 않는다. 자신의 이야기를 강요하지도, 해답을 갖고 있지도 않다. 관람자들은 작가가 만들어낸 다양한 인물들과 대화하면서 얼마든지 자의적인 해석이 가능하며, 또한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얼마든지 새로 쓸 수 있다. 비유와 상징이 많은 이야기 속에는 그만큼 사유의 여백이 넉넉하다. ● 두 번의 전시로 연출된 이야기와 전시에서 미처 다 표현해 내지 못한 행간의 내용을 담아 책으로도 함께 출간될 예정이다. ■ 갤러리 터치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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