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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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bel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2002-12-17 00:43:43, Hit : 341)
[키노]박찬욱 인터뷰
이상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중요하게 여겨지는 인터뷰 기사는 그 당시엔 별 느낌이 없다.    제대로 읽혀지지도 않고.     특히 영화에 관한 인터뷰가 그러하다.      처음에 이 것을 읽었을때는 그런가 보다 했는데, 영화를 보고서도 반년은 족히 되었음직한 기억을 끄집어 내어 다시 읽으니, 뭔가 다르다는 생각.
정말로 매체는 시대를 반영하는 것일까.     그것도 앞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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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이라는 이름은 한국 영화 부흥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그 이유는 단순히 그의 전작이 엄청난 흥행 성적을 거두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전작은 흥행작들이 지니고 있는 태생적인 콤플렉스 -떨어지는 완성도- 에 대한 부분을 완벽하게 우회한다. 한국 영화사상 보기드문 웰 메이드 필름. 그런데, 그는 그러한 '선입견'에 의해 평가받길 거부한다. 첫 화두가 부끄러웠다.



첫 화두 : JSA와 박찬욱

아직도 감독님을 'JSA의 박찬욱'으로들 생각하는데요. 'JSA의 박찬욱'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뭐, 그 영화는 그 영화고, 이 영화는 다른 작품이니까... 아무 상관 없다고 생각했죠.


아무런 고려를 스스로 하지 않았다는 말인가요?

그러니까, JSA 흥행이 잘되기 시작할 때 처음 든 생각이, '이 칭찬에 안주해선 안되겠다.' 뭐 그런 생각을 했는데, 이 영화를 만들면서는 '일부러 그 영화에서 너무 벗어나려고 하는 것도 어른스럽지 못한게 아닌가, 그냥 그런 영화 안만들었다고 생각하고, 데뷔작인 것 처럼 작업하자.' 그렇게 생각했죠. 그리고 저는 '어떤 작품을 만든 사람'으로 이해되는게 싫고요. 감독으로서 '주목'받는것도 싫고, 영화 조금만 봐도 '아 이거 누가 만들었구나' 라고 바로 아는 그런 작품 만들고 싶지도 않고, 가급적이면 내 흔적을 영화에서 없애고, 영화마다 다 틀려서 '도저히 한 사람의 영화로 보이지 않는' 그런 작업을 하고싶고 그렇죠. 요즘은 필요하다면 인터뷰도 하고 그러지만, 점점 인터뷰를 줄이고, 내 목소리를 두드러지지 않게 하는게 목표예요.

...일단 'JSA의 박찬욱'은 인터뷰 자리에 출석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복수는 나의 것>이 나온 것과 비교되는 사건이, 마치 팀 버튼이 <화성 침공>을 만들었을 때와 비교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화성침공>이 나왔을 때 평론가 관객 모두 눈이 휘둥그레지는 현상을 불러일으켰죠. 팀 버튼 역시 정말 자기가 하고 싶은 영화를 했고, 관객이 받아들이기엔 사실 코미디 베이스이긴 하지만 무지하게 잔인하고, 유머는 거의 독소에 가까운 그런 것이어서 찬반 양론이 대단했는데, 그것 때문에 이 영화가 잘만들어졌다를 따지기 전에 관객들이 충격부터 받고 들어가는 일이 생겼죠.

네, 그렇죠. 자꾸 JSA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다시 모였다는게 강조되는 바람에 배신감, 충격, 뭐 이런 반응들이 나오는데, (한숨) 아유, 그걸 어떻게 하나... 근데 뭐 또 비슷한 영화 만들었으면 하나 떴으니까 또 비슷한거 만들어서 나왔다고 욕했겠죠. 어차피 트집잡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욕을 하니까. 말하자면, 홍상수씨 같은 경우엔 항상 비슷한 포맷의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고, 저는 항상 다른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니까. 그런 감독도 얼마든지 있잖아요. 저는 그런 부류예요.



두 번째 화두 : 그 영화, 흉폭하다. (참고: 스포일러가 엄청나게 가득합니다.)

제가 처음으로 <복수는 나의 것> 시놉시스를 처음 봤을 때, 정말 애수가 넘치고 슬픈 영화다. 물론 완성품에서도 그 슬픔이 잘 살아있긴 했지만 훨씬 더 슬프게 찍으려면, 눈물바다를 만들려면 만들 수 있었을텐데. 어린 시절의 신하균와 누나의 기억이라던가 송강호와 딸의 단란한 시간이라던지, 신하균 배두나의 애틋한 사랑의 이야기라던지. 이런게 '전혀' 안들어가 있죠. 이렇게 슬픔을 가두어버린 이유가 뭘까요.

저는 일단 충분히 슬프다고 생각을 하고요... 일단 이건 통속적인 상황에서 출발을 한거죠. 누나가 아픈데 돈이 없다. 아이를 잃은 아버지의 슬픔 이런건 어차피 많이들 아는 이야기니까 그 심정을 굳이 자세하게 이야기하지 않아도 잘 알거라고 생각했고, 그런걸 센티멘털하게 가져가면, 그런 영화 만들 필요가 없죠. 너무 흔한 영화가 되니까.


진짜 계급간의 갈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요?

네. '진짜 계급간의 갈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죠. 단순한 '대립'만을 이야기한게 아니고, 두 계급은 적대를 하지만, 거기 속한 개인들은 달라요. 송강호만 해도 자본가의 계급에 속하지만 스스로 생각하기엔 '억울'하잖아요. 이 영화는 모두 억울한 사람들의 이야긴데. 출신도 그게 아니고, 부를 상속받는것도 아니고, 그래서 노동자들이 힘든것도 알고, 지금은 자본가지만 스스로 생각하기에 그렇게 착취했던 자는 아니다. 도덕적으로 올바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거죠. 팽기사 온 식구가 다 죽었을 때, 아이가 유괴되었을 때, 느낄 수 있는게 '자기가 평가하는 자신의 도덕성'과 '전혀 모르는 남이 보기에 느끼는 계급의 정체성'이 큰 차이를 보일 수 있는거죠. 그 갭이 바로 이사람의 비극인거죠.


처음엔 흑백과 컬러를 섞으려고 하셨다죠?

송강호가 아이의 시체를 내려다보는 부분부터 컬러, 그 이전은 흑백이었는데, 일단 그게 너무 형식주의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찍는 과정에서 화면에 담긴 컬러들이 버리기 아까웠어요. 미술팀, 조명팀의 합심으로 아주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는 화면을 만들었는데, 그게 아까웠죠. 그럼 왜 흑백으로 생각했는데 그런 컬러를 만들었느냐? 1부에 나온 장소가 2부에도 등장하는데가 많기 때문에 어차피 컬러에 신경을 썼죠. 그래서 찍고 나니까 아깝더라구요. 리얼리스틱 하면서도 어딘가 초현실주의적인 그런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고, 달동네 같은데 가보면 민중의 미학이랄까? 어디서 잡동사니들을 모아서 괴상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내죠. 신하균 배두나 의상같은, 인테리어 같은것도 시대를 무시한 디자인이예요. 70, 80, 90년대, 21세기까지 시대들이 혼재한 것이었죠. 그런 아름다움이 사라지는게, 아깝기도 했죠.


처음에 생각한 엔딩이 완전히 다른 걸로 알고 있는데요.

첫 엔딩엔 지금의 엔딩에서 '테러리스트'들이 안나오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강가에서 나무에 신하균을 묶어놓고 죽이려다가 죽이지 않고 송강호는 차를 몰고 집으로 가다가 전화를 받죠. '시신 인수하라'는 전화를 받고 차를 돌려서 묶여있는 신하균에게 돌진해서 둘 다 죽는. 세 번째 엔딩은 아예 묶지도 않고 풀어줘요. 그럼 신하균은 터덜터덜 걸어서 가고 있는데, 송강호가 또 전화를 받고, 차를 돌리죠. 뒤에서 달려오는 차소리를 못들으니까 , 라면 먹는 장면처럼, 신하균은 무심하게 걸어가고 뒤에서 송강호의 차는 맹렬히 달려오고, 받치는 순간에 영화가 끝나는 그런 엔딩도 있었죠. 또 아까운 엔딩은, 일단 중간에 지금 영화에서 촬영도 했는데 들어낸 장면이 들어가요. 중간에 몸값을 전달하려는 전철에서 전처의 새 식구들을 다 만나죠. 새 남편과 새로 낳은 아기. 우연히 만나서 전처가 '유선이 잘 있어요?'하고 아무것도 모르고 물어보죠. 송강호는 지금 유선이가 납치되어서 몸값을 주러 나왔는데, 니가 팽개치고 가서 유괴당했는데, 그리고 지금 너의 가족은 너무 행복해 보이니까. 그런 적개심을 담아서 욕을 한마디 하고 가죠. 엔딩에서 신하균을 죽이고 나서, 중산층 행복한 아파트, 과일깎아먹고 즐거운 아파트에서 초인종소리가 나서 나가보면 송강호가 피와 물에 흠뻑 젖어서 칼을 들고 쓱 들어가면서 끝나는. 혹은 들어가는 장면이 없고, 행복한 아파트를 카메라가 비추면 인형도, 과일도 있지만 점점 시체가 하나씩 보이는거죠. 피바다가 되어 있는 거실에 송강호 혼자 칼을 들고 가만히 앉아서 끝나는 그런것도 있었죠.



그럼 지금의 엔딩을 고수한 이유는 뭐죠?

일단 영화에서 처음보는 사람들이 등장한다는게 마음에 들었죠. 그럼으로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는데. 일단 배두나가 '백푸로, 확실히' 그렇게 죽어가는 순간에도 확실하게 이야기를 했단 말이예요. 마지막 진심으로 그렇게 호소했고, 아이를 죽인게 미안해서, 애 아버지에게는 해를 끼치지 않을려구 그렇게까지 이야기했는데. 송강호도 관객도 무시했단 말예요. 배두나가 물론 허풍선이에 철딱서니 없는 인물인건 알지만, 언제까지나 그렇게 살진 않거든요. 거짓말쟁이라도 24시간 거짓말만 하는건 아니거죠. 그렇게 사람 말 함부로 무시했다가는 큰코 다치는 수가 있다. 그런 '강력한' 메시지이기도 하고. 운명적인 기분도 들구요. '유물론자들' 로 하여금 '신의 대리인' 의 역할을 시킨다는 것. '기계장치의 신'같은 분위기도 있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유는말이죠. 사실 그 장면을 빼버릴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 하도 옆에서 엔딩 이상하다고 그러니까. 그런데 일단 찍고 나니, 도저히 뺄 수가 없었다는거죠. 연기나 외모가 너무 기가막히고, 카메라 앵글, 광선의 상태, 내 기대 이상으로 너무 잘 나온거예요. 4명 모두 연극배우들인데 기주봉씨와 함께 다 76극단 출신이예요. 기국서라는 천재밑에서 배운 사람들의 아우라가 나오는거죠. 이사람들의 특징은 감독이 시키는대로 못해요. 자꾸 까먹고, 그냥 원래 자기가 하던대로 하는거예요. 그런데, 여기서 자기가 어떻게 해야 할 지는 알아. 그래서 오광록씨. 처음 등장할 때 맨 앞에서 담배피고 있는 아저씨. 그분한테 '이 사람들은 프로페셔널 살인청부업자도 아니고 갱스터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노동자일 뿐이다. 그래서 죽이러 가서도 주저하고, 겁내고, 망설이고...' 그래서 자기가 송강호를 찌르고 자기도 놀라는 장면이 있는데, 그 표정 자세히 보세요. 정말 압권이예요. 그런 기분을 알고 있으니까. 감독이 시키는 것 이상을 해내는거죠. 송강호씨도 촬영 끝나고 모니터로 보더니 혀를 내두르더라구요. 이건 분석도 안되고, 흉내도 못내는 연기였거든요.


영화가 대단히 과묵한데. 사실 다들 어떻게 보면 '대사의 달인'들인데 그걸 포기하는게 안아까우셨어요?
그중에 가장 아까웠던 사람은 바로 그 오광록씨였어요. 목소리가 엄청나게 저음이고, 와이키키 브러더스에서 브라스 맡았던,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먼저 떠나는 그사람이었죠. 우리 주연배우들 역시 아깝긴 한데, 대사를 줄임으로 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는 관객들이 짐작하는 상황인데, 그 말을 안하는 것으로 오히려 긴장감을 만들어주고, 불안하죠. 저 인간들이, 물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 이 냄비위에 큰 돌이 올려져 있고, 이 돌이 갑자기 치워졌을 때 어떻게 폭발할지 그게 효과적이었죠.

이번에도 농담을 많이 넣었는데, 이번 농담은 다 의도된 농담인데, 관객들은 웃으면서 미안해 하고, 나혼자 웃는게 아닌가, 혹은 의도된 장면이 아닌데 우연하게 웃기게 만들어진게 아닌가 하는 착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건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이죠. 이 영화는 전체가 아이러니로 이루어진 영화기 때문에 아무리 슬프고 아무리 비참한 장면에도 유머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도스토예프스키나 카프카를 읽을 때 느껴지는 유머와도 비슷하죠. 요즘 들어서 도스토예프스키를 유머 작가로 읽는 태도가 나오기 시작했다고들 하는데 분량에 눌려서 그렇지 읽기 시작하면 정말 웃기는 부분이 많아요. 저 시대에 어떻게 저런 유머가 나왔을까. 그런 생각을 하죠. 다들 유머가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을 방해한다고 생각들 하는데, 그렇지 않잖아요. 예를 들어서 어떤 부부가 부부싸움을 하고 있는데, 당사자들은 진지한데 제3자가 옆에서 듣기엔 우스운 경우가 많잖아요. 배운사람들이 어떻게 저런 소리들을 하고 있나 라던가. 엉엉 우는 얼굴도, 오열하는 장면도 소리 없이 찍어서 보고 있으면 마치 웃는 것 처럼 보이는 경우도 많죠. 인생이라는게 조금만 거리를 두고 보면 웃기는게 많다는거죠. 예를 들면 아이가 유령으로 나타나서 '아빠 나 수영좀 일찍 배울걸 그랬나봐' 보통 그런 상황에서 나오지 않는 천진한 이야기죠. 이 아이는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남 탓 안하는 인물이예요. 그냥 내가 수영을 할 줄 몰라서 죽었다. 이게 우습기도 하지만 너무 슬픈 이야기란 말이죠. 죽은 아이의 유령을 만난 송강호인데도 웃잖아요. 그런데 그 웃음이 더 슬프죠.



배우들에 대한 칭찬을 짧게 한마디씩 해주세요.
짧게 하라면 정말 짧게 할 수 있죠. 어디 글을 쓴게 있는데, '송강호는 천재', '신하균은 귀재', '배두나는 영재' (웃음) 송강호의 경우, 감히 말하자면 한국 영화 역사상 어느 배우의 한편에서의 성취만 이야기하라면 단연 최고. 이만큼 연기 잘하는 배우는 나온 적이 없었고, 이 영화가 그걸 원하고 있는데, 연기에서 과정이나 원인을 무시해버려요. 바로 그냥 극단적인 슬픔에서 극단적인 분노로 가버려요. 다른 사람들은 그 중간단계를 거쳐야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냥 가버리죠. 그랬다가 돌아오고. 일관성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게 아주 빠른 속도로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설득력이 생기죠. 어떤 배우는 빨간색의 연기와 파란색의 연기를 하려면 합쳐서 보라색의 연기를 하는데, 송강호는 빠른 속도로 두가지를 왔다갔다 해요. 그러면 점묘파에서 볼 수 있는 그런 보라색처럼 보이죠. 빨간색과 파란색의 본질은 그대로 지니고 있으면서 말이죠. 신하균은, '이 장면에 내가 목숨걸었어' 이런건 없어요. 신하균의 연기를 보면, 송강호와 비교해 볼 때 송강호는 '명장면'이 몇 개 있는데, 신하균은 그런건 없어요. 끝까지 억눌리고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없는 사람이 꾹꾹 눌러참는걸 잘 표현했죠. 그리고 다른 배우들과 다른게, 그런 억눌린 사람이 어느 순간 폭발할 때 보통 걷잡을 수 없이 폭발을 해주는데, 예를 들면 장기밀매업자 도살할 때, 이때도 무표정하게 갈 수 있다는거죠. 그런게 놀라운거죠. 그리고 다른 배우들은 저쪽 배우가 대사하고 있을 때 가만히 있으면 된다. 혹은 자기가 혼자 나오는 샷이더라도 가만히 있으면 된다고 하면 그거 못하는 배우들 많아요. 뭘 하나 만진다거나 어딜 본다던가. 이런 군동작, 질색하거든요. 신하균은 가만히 있으라고 하면 글자 그대로 가만히 있어요. 정말 태산같은 자신감이죠. 배두나는 엉뚱함이 대단하죠. 이번에 저와 처음 작업한거니까 보통 감독의 요구를 잘 못받아들일 법 한 순간이 있을텐데. 조감독 조차 이런건 잘 모르겠다 하는 부분에서도 바로 알아듣고 '어, 재미있네' 그러면서 그냥 실행에 옮겨요. 본인은 떨린다고 하고도 그러는데, 막상 샷 들어가면 척척 해내죠. 상투적인 표현에 대해 인정하지 않고, 엄마에게 많이 배운 것 같은데 정말 자연스럽게 잘해내죠.



<심판>, <공동 경비구역 JSA>, <복수는 나의 것>, 이 최근작 3편에 가족이 부검하는걸 지켜보는 장면이 꼭 나오거든요. 혹시 의식 하셨어요?
그러네. (웃음) 몰랐는데, 스토리가 요구하는대로 가다 보니 그렇게 된거죠. 그런데, 아 그런건 있을 수도 있겠다. 송강호가 아이 부검장면을 볼 때, 두 번이나 그런 장면을 했으니까 콘티짤 때 어떻게 새롭게 찍어볼까하는 연구를 하다 보니 아주 다르고 새로운 장면이 나온 것 같네요.

이번 언론이나 평론가의 반응 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던 칭찬은 뭐였죠?
언론, 평론 다 떠나서 일반 관객까지 전부 "이 영화 정말 웃긴다."라는 말 해줄때가 제일 기분 좋아요.

세 번째 화두 - 과거로 돌아가다.

제가 1997년에 <삼인조> 작업을 끝낸 감독님하고 인터뷰를 했던 자료가 있는데, 거기서 인용을 좀 해볼께요. 당시에 '다음 작업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이라는 질문을 했었는데...
"지금 가장 가능성이 있는 프로젝트는 '아나키스트'입니다. 워낙에 대자본이 들어갈 영화라서 어찌될지... 현재로선 내가 가장 하고싶은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20년대 상하이를 배경으로, 실존했던 독립운동단체인 '의열단'을 소재로 한 작품입니다. 하지만 인물이나 사건은 픽션입니다. 의열단은 모든 독립운동단체중 가장 과격한 테러리스트, 아나키스트 조직이었고, 그래서 이 영화는 독립운동사에서 가장 인정받지 못했던, 극좌파였으며, 희생적이고 순교적인 측면이 강조되는 여타 독립운동단체들과는 달리, 왜경들보다 훨씬 더 잔혹하고 과격했던 단체였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대단히 폭력적인 영화가 될 것이고, 상하이 로케이션이나 의상 재현등으로 제작비가 많이 들 것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정치적인 이야기를 다뤄본 적이 없는데, 이번엔 정치성이 전면에 드러나 있습니다. 아나키스트들의 사고방식은 정치적인 전략의 측면에서는 실효성이 없다고 보지만 그 사상의 기저에 깔려있는 것들은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어느 정도의 공감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를 합니다. '아나키'한 것들이 불러일으키는 낭만과 청춘, 이상, 이런 것들을 그리워하는 뉘앙스를 지니고 있는데, 이것은 살리면서, 너무 유치한 표현은 자제하고 싶고, 아나키즘이 가지고 있는 한계 같은 것도 많이 표현하고 싶습니다. 이 소재를 선택한 이유중의 하나는 우리의 독립이 우리 손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있기 때문에 좀 허무한 결말이어도 거부감을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도 있습니다." (아나키스트)

"지능이 낮고, 평양으로부터 버림받은 불쌍한 간첩, 사상이나 신념 때문에 간첩이 된 것이 아니라 그저 먹고살기 위해서 간첩이 되었던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적으로 풀어보고 싶습니다." (간첩 리철진)



"아직 구체화되지는 않았지만, '유괴범'의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단지 누나의 수술비 얼마를 원해서, 아주 부자집의 아이를 잠시 데리고 있다가, 학대하거나 감금하지 않고, 잘 대해주고 잠시 '캠핑을 데리고 간다'는 식으로 아이를 유괴하는, 사회적 통념과는 다른 유괴범이 있고, 또 부모는 그동안 무관심했던 아이에게 큰 관심을 쏟게 될 것이다. 부자들에게 '껌값'인 몸값을 요구하고, 그리고 그 여파는 크지 않을 것이니 모두가 행복해지는 범죄가 될 것이다." 라는 생각으로 아이를 유괴하고, 정말 즐거운 캠핑과 같은 시간을 보낸 뒤, 몸값을 무사히 받고 아이를 넘겨주는 순간에 사고가 생겨 아이는 죽게 됩니다. 여기까지가 1부. 2부의 시작은 딸아이의 시체를 발견한 아버지의 시점-1부에서 조연이었던- 으로 출발합니다. 2부의 주인공은 아버지가 되는거죠. 아버지는 '시키는 대로 경찰에 알리지도 않고 몸값도 제대로 줬는데 이런 결과가 생겼다.'는 것에 대해 격분하고 복수를 결심합니다. 2부에선 관객들이 이미 동일시 하는 1부의 주인공인 불쌍한 청년의 입장과 아버지의 입장을 동시에 느끼고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를 동정하게 되죠. 이런식의 이야기를 하고 싶네요." (복수는 나의 것)

"의사 학위를 가진 예수회 신부가 뱀파이어에게 피를 빨리고, 의사니까 자신의 신체를 잘 알 뿐만 아니라 신부니까 신앙심도 있는 이 사람이 점점 뱀파이어로 변해나가면서 겪는 고뇌와 갈등, 그리고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가제: '박쥐')

이 구상했던 시나리오 중에, 3편이 영화로 만들어졌죠. 타임 캡슐을 꺼낸 것 같이, 그때의 기분과 지금의 느낌은 어떻게 다른가요?
아... 뱀파이어 이야기는 나중에 나온 것인줄 알았는데, 그때도 생각하고 있었군요. 앞의 두편은 다른 감독이 만들었고, <아나키스트>는 내 각본을 기초로 해서 좀 손본 다음 만들어진 영화고, <간첩 리철진>은 내 각본과 완전히 무관하게 만들어진 영화고. 영화는 둘 다 못봤어요. 둘 다 내가 아주 마음에 들어한 각본이었고. <아나키스트>는 좀 돈도 많이 들고 그런 영화니까 그렇지만, <간첩 리철진>은 언젠가 다시 한번 만들고싶은 그런 각본이었어요. 이 두 각본은 요즘에도 한 두어달에 한번씩 컴퓨터에서 꺼내봐요. 아, '이건데' '이거 했어야 되는데' 그런 생각을 해요. <간첩 리철진>은 세월이 흐른 뒤에 신하균이 유오성 역을 하고, 유오성이 박인환 선생 역을 하는 그런 식으로 다시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죠. <복수는 나의 것>은 내가 생각하던 대로 만들어졌고, 다음 뱀파이어 이야기는 제가 다음 작품으로 할 생각이죠. 역시 내가 생각했던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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