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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bel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2002-12-29 06:00:57, Hit : 262)
[펌]사진드러내기


정주하(작가)

                                                                    
  사진 드러내기를 시작하면서

  사진은 그 동안 우리에게 일반적인 관점에서는 잘 알려져 있는 편이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가정에 사진기를 소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진이라는 용어와 그 사용이 매우 흔한 일이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사진에서 어떤 ‘지적 긴장’이나 권력과 관계되는 ‘욕망’을 찾아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보통 사람들은 사진을 그저 편리한 도구 중의 하나로만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사진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적확한 의미의 사진이, 그리고 사진 안에 들어있는 많은 사진적인 요소들이 왜곡되어 전달되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언제나 ‘손쉬운 것’이란, 모두가 조금은 과장되거나 왜곡되기 마련이다. 손쉽게 받아들이고, 손쉽게 사용하는 것들의 손쉬운 오류 말이다. 이러한 판단과 의심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나름대로의 생각을 전달해보려 애쓰는 이유는 당연히 그러한 의심과 편견을 바로잡아 보고자 하는 의도가 우선이고, 더불어 나의 편견과 의심에 중심을 잡아보고자 하는 것에도 의의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사진작가다. 즉 사진으로 나의 생각을 전하려고 애쓰고 있다. 따라서 단지 나의 내적인 ‘사진 사고(思考)’를 표현하는 데에는 사진이라는 표현매체가 가장 손쉬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사진에 관련한 나의 환경과, 내가 흡수하고 있는 사진에 관련된 학습의 노정에서 자연스럽게 많은 말을 하게된다. 그러니까 사진으로 무엇인가 나의 생각을 표현한다는 것이 단순히 사진이라는 표현 수단에 국한된 행위만이 아니라, 그러한 생각의 표현을 위해서는 내 삶 안에서의 ‘기름진 혼돈’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현재의 나는 나를 명료하게 하기 위하여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아직 내가 명료하지 않다는 전제를 이 글을 읽을 분들이 받아주기 바란다.
  특히나 이번의 글은 토론을 위한 밑글이다. 그리고 여기에 제시되는 나의 생각이란 대부분 주관적인 판단에 의지해서 다소 격하게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가능한 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참고문헌 식으로 나열하는 복잡함을 피하려 애썼고, 그리고 유난히 내 생각의 강조를 위해 ‘강조 따옴표’를 많이 사용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생각이 단지 갇힌 의미의 경도된 판단만은 아닐 것이라는 것과, 나아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토론을 통해 교정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서슴없이 이야기를 주고받고자 한다.


1. 우리 나라의 사진 도입과 수입

  사실, 우리 나라의 사진은 그다지 크지도 길지도 못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물론 시간적인 관계로만 따지자면 120여년이라는 세월이 결코 짧다고는 할 수 없지만1 잘 알려진 바처럼 이 시기의 절반을  우리는 외침(外侵)과 식민통치 속에서 살아왔고, 다른 장르의 어떤 경우보다도 사진은 이 식민지배의 영향을 많이 받으면서 진행되어왔다.  우선 그 도입기가 그러하고, 그 도입된 사진의 발전 전(全)단계가 또 그러하다. 처음으로 우리 나라에 사진을 들여 왔다는 인물에 대한 논의가 분분한 적도 있기는 하지만, 결국 그가 누구이건, 이 땅의 사진 도입에 대한 입장이 크게 변하는 것은 아니다.

  19세기말부터 우리 나라에 조심스럽게 선보이기 시작한 사진은, 그저 몇몇 유산자들이나 혹은 이방인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쓰여진 것에 불과하고, 도입기를 지나 조금씩 서울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사진관 역시도 아주 원시적인 인물의 기록 이상을 담보하고 있지 못하다. 오히려 이시기의 사진을 통한 기록은 프랑스, 혹은 독일 등의 이방인들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이 (원화든 원판이든, 출판을 통해서든) 지금에까지 잘 보존되어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초기 사진 도입기의 역사는 그러므로 역사적 자료 이상의 의미를 지니기는 어렵고, 우리 민족이 이 사진이라는 도구를 통해서 무엇이든 나름대로의 의미 부여를 하기 시작한 것이 지금 우리에게는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이 때로부터 우리의 사진예술에 대한 논의가 시작될 수 있겠다.
  하지만 어려운 점은 우리가 이 사진이라는 도구를 참되게 예술의 한 장르로써 혹은 어떤 의미 있는 매체로서 적극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시점이 불분명하고, 설사 이 구분을 지금의 현재로 환치시켜 생각해본다 하더라도 사진의 내외적 힘은 올곧게 사진만의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사진이라는 분명한 힘을 논하고자 함에 있어서 여러 타장르와의 상호관계가 고려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어떤 다른 장르라 하더라도 이러한 ‘상호교호작용’이 전혀 배제될 수는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지만, 사진은 그 영향이 너무도 크기에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여하튼 사진은 그 동안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특히나 오랫동안 사진의 기록적 측면만을 다루며 작업해 오던 사진가들이, 70년대 중후반 서양에 가서 사진 교육을 받은 젊은 유학생들이 들여온 사진에서 받은 충격과 그 반향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까 8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우리 나라의 사진계는 소위 ‘신선한 충격’이 될 사진들이 선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인데, 이는 워낙 오랫동안 유사한 사진 작업 태도를 유지해오던 기존의 사진가들에게는 신선함과 거부감 모두를 안겨주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들 젊은, 그리고 눈치 빠른 사진가들이 들여온 사진은 안타깝게도 이 땅에 주사(注射)되기에 시기적으로 너무 빠르거나 늦었으며, 개념적으로는 그들이 너무도 비주체적이었다. 그들은 자신이 저지르고 있는 사진작업의 ‘개념적 폐해’에 대해서 반성할 탄력성을 지니고 있지 못했으며, 또 그러한 반성을 하기에는 그들 작업의 반향이 너무도 일방적이어서 혼돈스러웠다. 따라서 그들 유학한 사진가들을 일컬어 ‘밀수꾼’ 혹은 ‘오퍼상’이라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고 보며, 또 그러한 비판이 설득력을 갖는 것도 당연하다 하겠다.
  이유는 이렇다. 어떤 새로움이라는 것은 무엇보다도 시간적인 개념만으로는 불충분하고 공간적인 의미가 함께 해야 비로소 그 온당한 의미를 획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서양에서는 물 건너간 낡은 방식을 이 땅에 이식(移植)하면서 그것이 마치 새로운 양식인 양 의미 지으려고 한다면 무리라는 말이다. 적어도 어느 곳에 가서 자신이 지금까지 알고 있던 범주를 넘어서는 새로운 형식을 학습하게 될 경우, 그 새로운 형식의 본류와 시대적 의의를 정확하게 이해한 후, 그것을 극복할 의지를 함께 고려해야한다고 믿는다. 그러한 고려는 그래서 자신의 작업이 비록 아직은 모방의 단계에 있다손 치더라도, 앞으로의 작업이 그러한 모방으로부터 극복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잉태할 수 있게 해 준다고 생각한다. 내가 지금 80년대 중, 후반으로부터 우리 나라에 수입된 작업들에게서 가장 아쉽게 여기는 지점이 바로 이곳이다.
  위에서 그러한 작업들이 이 땅에 너무 빠르거나 늦었다고 단언한 이유도 이러한 각기 유학한 작가들의 각성이 다소 미흡하지 않았나 하는 판단과, 오히려 이 땅에 필요한 것이 있었다면, 그러한 새로운 형식의 사진을 비판 없이 주입하기보다는 좀더 주체적 입장을 가지고 사진의 본질에 대한 논의와 그 가능성을 탐구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점이다. 물론, 당시 그들의 그러한 작업 소개가 비록 무리이기는 했지만, 그러한 소개 덕분으로 지금 이러한 반성이 가능하지 않느냐 하는 평가를 누군가가 한다면, 나는 전적으로 동의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미래 완료적인 긍정적 평가보다는, 비판이 앞으로의 우리에게 보다 유익할 것이라는 생각이 내게는 우선하기에 비판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큰 문제는 몇몇 개인에게 책임 지우기는 너무도 무리일 수 있다는 생각도 함께 해본다.


2. 우리 나라에 있어서 사진의 이용과 평가

  사진은 사실 우리 나라 대중들에게 제대로 된 인식도 비평도 받아본 일이 없다. 다른 예술 장르 역시도 부분적으로는 마찬가지이나, 유독 사진은 그 학습의 시작이 용이한 탓에, 그리고 그 사회적 쓰임새가 워낙 돈과 가깝다보니 사진을 생각하는 작가나 사진을 소비하는 대중이 다같이 사진을 가볍게 여기는 풍토가 만연한 듯 싶다.
좀 더 적나라하게 말한다면, 누구나 손가락과 돈만 있으면 하는 것이 사진이고, 그 작업의 프로세스가 어차피 내 손을 꼭 거치지 않아도 관계없는(?) 것이니 만큼 적당한 눈치와 배짱만 있으면 손쉽게 해낼 수 있는 매체가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마도 사진을 대하는 많은 사람들의 속셈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타 장르에서(예컨대 시각매체에서) 사진을 자신의 표현수단으로 이용하는 작가들의 태도에서도 이러한 점을 느낄 수 있는데, 열에 아홉, 시각 매체를 가지고 작업하면서 사진을 도구화하는 그들은 여지없이 위에서 제기한 것처럼, 사진이란 그저 가져다 쓰면 되는 간단한 도구 이상의 의미를 학습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혹, 너무 안이하게 타장르의 작가들을 평가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거나, 자신의 무지를 그런 식으로 다른 작가들에게 전가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비판이 있을 수 있기는 하지 정말로 나는 그렇게 느낀다.
  또 그런 작가들의 작업을 여러 차례 보기도 했는데, 하나하나 열거하여 증명할 수는 없지만, ‘사진조각’ 혹은 그와 유사한 개념으로 작업한 전시를 가서보면 여지없이 그들이 사용하고 있는 사진의 프로세스는 깊은 맛을 느끼게 하기보다는, 그러한 특이성, 그러니까 회화 혹은 설치와 사진이 물리적으로 만났다는 점 이외에는 별반 다른 감흥을 느낄 수 없었다. 물론 작가가 의도했던 것이 거기까지라면 나는 더 이상 할말은 없다. 그러나 적어도 자신과 시대의 단면을 순결하게 읽고 있다는 작가가 사용하는 것이라면, 관람자로서 이러한 요구를 하는 것이 무리하지만은 않을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답답한 것은, 이러한 그들의 무지와 용감성이, 한편으로는  더 무지한 대중들에 의해서,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대중들의 무지를 무기 삼아 예술을 평한다고 하는 비평가들에 의해서 용납되거나 더욱 심하게 조장된다는 사실이다. 특히 예술계 내에서 다소 진보적인 생각을 가지고 사회현상이나 문화현상을 논하는 비평가들일수록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지는데, 이들의 이러한 태도는 당대를 떠도는 유행에 의해 그 정당성을 주유받는 듯 싶다.
  이들은 이제 자신들이 이미 읽으려고 하는 사회, 문화 현상 속에 ‘잠수’ 되어 있다는 의식 하에, 가볍게 떠도는 작가들의 작업태도를 그대로 용인하거나, 더 깊게 그 매체의 속성을 이해하려는 태도를 쉽게 무시해버리고 만다. 때문에 그들은 대중과 작품과의 ‘다리 놓기’를 하는 과정에서 작가들의 내적 구조를 파악하는 일을 소홀히 하거나, 대중들이 지닌 대중적 이해 속성을 조금도 진전시키지 못하고 그저 그 작업 안에 퍼져있는 구조만을 파악하는 데 정열을 소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그들이 사진 혹은 사진을 매체로 작업한 것들에 대해 비평하는 글을 읽어보면 애처로울 때가 많다. 그들은 오직 그 사진 안에 들어있는 대상성에 묶여 조금도 ‘사진적인 소통’을 전하거나 확대시키지 못하고 있거나, 혹은 얼마나 그 작가가 무지한 방법으로 작업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고 보인다. 또 때로는 자신이 가장 자신 있다고 생각하는 장르의 소통방법으로 사진을 읽는 오류를 너무도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하고 있으며, 그것이 마치 국제적인 양식인 양 착각을 하고 있기도 하다.
  그들은 전혀 사진의 역사를 주체적으로 학습해 본적도 없고, 그럴 의식조차 가져보지 못한 듯이 여겨진다. 이 얼마나 고통스러우면서도 유쾌한 일인가? 내가 지금 이러한 판단 앞에서 고통과 유쾌를 함께 느끼는 이유는, 바로 그러하기에 적어도 내가 뭔가 할 수 있는 여지를 느끼기 때문이다. 학습이 진공된 사회 속에서는 상대적 고통과 그 진공 안에서 작은 힘을 가지고도 뭔가를 외칠 수 있다는 희열을 함께 느끼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는 내가 서있는 땅의 ‘진공’을 느낀다.


3. 사진이란 무엇이어야 하는가?

  그러면 사진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나에게 역시 무척 곤혹스러운 질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질문이 타당한가, 혹은 그 답의 추출이 가능한가 하는 회의를 하기에 앞서, 이러한 본질에 대한 질문을 통해 적어도 우리가 가고자하는 목적을 향해 돌아 앉을 수는 있다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채근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사진은 한마디로 ‘계술(械術)’이다. 즉 기술과 예술의 복합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사진은 진정한 의미의 예술이라고 믿는다. 그러니까 예술 안에 들어있는 인간적인 요소에 대한 찬양이라고 할 수 있다.
  기술은 인간의 사회가 산업화되기 시작한 후부터 전혀 새로운 틀로서 인식되기 시작했다. 단지 기술이 인간의 의식과 개념을 표현해주는 수동적인 도구에서 어느덧 그 기술에 인간의 의식이 부합하려는 분위기로 바뀐 것이다. 이제 인간은 기술이 전제된 상태에서 사고하고 새롭게 꿈꾼다.
  좀더 부연해보자. 사진은 잘 알려진 대로 어느 날 인간의 손에 의해 불현듯 만들어진 발명품이다. 그것도 다른 시기가 아닌 ‘근대(역사적 모더니티로서)’라는, 인간이 자신의 ‘주체’와 ‘자유’를 가장 쟁점화 하여 일구어가던 시기의 정점에 태어난 사생아적 도구인 것이다.2 사생아적 도구!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지금 내가 내리고 있는 이 사진에 대한 판단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길게 부연해야 마땅할 이야기인데, 우선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진은 사진이라는 매체가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이용되다가 어느 날 예술로서 정착된 것이 아니라, 발명한 사람들에 의해 어느 시점으로부터 이용되기 시작하였기에 사생아적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 것이다.
  잘 생각해보면, 현재 우리가 예술이라고 칭하는 다른 모든 장르는 자연발생적이다. 그림이 그러하고, 음악이 그러하고, 또 춤과 건축과 연극이 그러하다. 예컨대 원시시대로부터 인간은 생존의 한 일환으로 이러한 행위를 자연스럽게 구가하기 시작하였고, 시간이 흐르면서 그것이 전체 인간 사회 안에 하나의 기능(technic: human making in general)으로서 자리 잡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능은 예술art이라는 개념으로 발전(?)하게 되고, 18세기의 주관화된 예술관이, 소위 ‘취미개념’이 형성되기 전까지 여러 시대의 장인들을 거치면서 발전 되어온 것이다. 그리고 그 예술들은 오늘에 이르러 현재 우리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의미의 예술관을 정착시킨 것이라고 나는 학습 하였다.
  그러나 사진은, 혹은 사진적 영상은, 그러한 행위와 매체가 생성된 위에서 누군가가 다루기 시작한 것이 아니다. 19세기 초엽을 중심으로 그 전에 있었던 과학과 인간의 근원적인 ‘경제욕구’가 만들어낸 발명품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생아적이라는 것이며3, 그러므로 이러한 사생아적 도구인 사진은 내적으로 예술이 가져야하는 현재적인 조건을 태생적으로 ‘필요충분’하게 지니고 있고, 그러하기에 사진을 통한 세상 해석의 가능성은 그만큼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사진이라는 매체 안에는 여타의 예술매체가 가지고 있는 요소들을 그대로 가지고 있고, 더불어 그 안에 이 ‘인간-기계’적인 요소가 부과되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진이 가지고 있는 기계적인 요소와 힘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와 관련하여 몇 가지 지적해 보자면, 우선 우리 인간은 뭔가를 보면서도 쉽게 숙지하기 어려운 시-지각적인 능력을 갖고 있다. 즉 인간적인 시각과 기계적인 시각의 차이인데, 인간은 보고 싶은 것만을 볼 수 있는 반면, 사진기는 보이는 모든 것을 시각화한다. 따라서 이러한 기계적인 속성을 이해하고 있는 사진가는 사진기의 파인더를 통해서 화면을 정하게 되는데, 이 화면 정리 안에는 다시 거리감과 각도, 높낮이 등이 공유되어 있다. 이렇게 사진가가 화면을 정리해야하는 이유는 이러한 화면정리를 통해 사진기는 사진기의 창을 통해서 바라보는 뭇 사물들의 ‘중층적인 의미화 충동’을 자기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사진가가 파인더로 세상을 보고 셔터를 누르는 일이 매우 중요하기는 하나 그것으로는 절반만을 의미한다. 그 이후 작가가 직접 현상과 인화를 하던 하지 않던, 화학적이고 기계적인 프로세스에서 너무도 많은 변수가 존재하고, 그에 대한 통제를 통해 사진가는 비로소 자신이 원하는 작업을 마칠 수가 있다. 따라서 비록 그 스스로가 직접 과정에 개입하지 않는다손 치더라도, 그는 그 프로세스에 대한 이해를 적어도 자신의 작업에 적합하게는 가지고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 그가 해야하는 학습이란, 아포리아(aporia)처럼 느낄지는 모르지만, 매우 기초적인 사진 바탕으로부터 시작되어야하다고 나는 믿는다. 만일 누군가가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지 않고 작업을 한다면, 그는 아마도 피아노를 전혀 다를 줄 모르면서 피아노 곡을 작곡하는 것과 같은 모순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이제부터는 이 기능-기계적인 부분의 건너편을 이야기해보자. 내가 사진을 ‘계술’로 파악하고, 그 중에서 기능적인(인공적인) 부분에 대해 강조하기는 하였지만, 그 역시 전부는 아니다. 이러한 기능적인 부분의 간과가 가지고 오는 폐해에 대한 반대급부로서 이 기능을 강조한 것일 뿐, 그와 평행으로 중시되어야하는 것이 또 있다. 사진의 ‘사고의 집적’이라는 부분이 그것이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 중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다. 특히나 현실을, 아니 눈에 보이는 대상을 중요한 기착점으로 만들어지는 사진에 있어서 이 말은 너무도 중요한 뜻을 가진다. 여하튼, 그러니까 어떻게 작업을 하든 사진은 종이 위에 현실을 가두는 것으로부터 출발하게 된다. 그래서 마치 위에서 인용한 인공성이 지칭하는 것처럼, 사진 안에 갇힌 현실은 예술로, 그리고 그 밖의 세계는 일상으로 구분되는 것이다. 이것이 사진가의 힘이자 의무가 아닐까? 사진가는 그 대상이, 그리고 현실이 어떠한 의미의 기호를 내포하고 있는가를 끝없이 학습하고 사고해야 한다. 내가 구획하려고 하는 세계의 경계가, 그리고 그 안의 대상들이 하나일 때의 의미와, 또 다른 대상들과 부딪히면서 만들어내는 의미들을 사진가는 학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언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사진과 언어의 공통점은 ‘그것으로서’가 아니라 ‘그것으로부터’이다. 사진가가 제시하는 세계는 세계를 대행하는 기호다. 마치 언어의 의미와 언어가 가지는 차이점과 같다. 내가 의미하려고 쓴 ‘어머니’의 뜻과 ‘ㅇ,ㅓ,ㅁ,ㅓ,ㄴ,ㅣ’의 집합이 무슨 유관성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내가 표현한 ‘어머니’의 의미와 종이 위에 표시된 흑과 백으로 뭉쳐진 ‘은염의 집합’과 무슨 관련이 있겠는가?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란 그러한 의미 집합을 재현할 수 있는 사고의 폭이다. 의식의 눈이다. 누군가가 한 작업이 엉터리가 아니라면, 그의 작업을 통해 내가 읽는 것은, 감동하는 것은, 그의 생각이지 은염 덩어리는 아니지 않은가? 그것이 비록 입자의 고움과 거칠음을 가지고 내게 다가온다고 할지라도, 그리고 그것이 비록 표피의 번뜩임을 강조한 것이라도 말이다!
  이제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사진이 무엇이어야 하는가는 분명해진다. 먼저 제시한 기능-기계적인 요소와 사고의 집적 이 두 요소가 하나의 축을 중심으로 마치 꽈배기처럼 꼬이면서 이루어내는 것이 사진이 아닐까? 어느 한 요소의 우선함도 없이.


4. 한국 예술사진의 모순

  다만 여기에서부터 다시금 위에서 이야기한 사진 이해의 어려움이 싹트는데, 이러한 인공적인 요소로부터 우리가 사진이 가질 수 있는 현재적 예술성을 긍정하면 긍정할 수록, 사진은 다루기 쉬운 매체라는 것과 누구나 손쉽게 작가인 체 할 수 있는 도구라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증명하게 된다. 앞에서도 잠시 이야기한 것처럼, ‘인공적’이기에 ‘너무도 인공적인 판단과 처리’가 간편하고 중요하기에 사진은 오히려 대중과 그리고 사진을 자신의 작업으로 받다들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진작가들에게, 그 인공적인 표피성만을 가지고도 자신을 내세울 수 있는 매체로서 이해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앞에서 이야기한 타장르의 작가들과는 반대로, 이들 대부분은 사진 속에서 개념과 정신을 오히려 부담스럽고 피해 가야할 요소로 생각한다. 이들은 현재 자신이 처해있는 공간에서 사진이 가진 역사성을 이해하고 있지 못하거나, 이해하기를 거부한다. 그리고 그 사진의 표피에 묻어있는 형상만을 통해 소위 ‘개인화된 감성’ 읽기와 전달하기를 꿈꾼다.
  무엇보다도 오랫동안 사진계 내에서는 이러한 모순이 지배적이었다. 때문에 아직도 사진계 내에서는 아마추어와 취미생활과의 구별이 모호한 유아적 판단이 가능한 것이다.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취미생활인지, 아니면 자신과 함께 사는 사람들의 삶의 해석을 확장시켜 보려는 아마추어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 전혀 제기되어 본 적이 없이, 꽃과 노을과 역광(逆光)이라는 소재의 틀 안에서 그리고 먼 오지의 특별한 대상을 찾아내어 그것을 ‘복제확성’(複製擴聲)하는 일이 사진가의 몫인 양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들을 ‘사진가’라 부르기보다는 ‘탐험가’라 부른다. 그들이 해내는 사진은 백과사전의 도감과 일치한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저 정보뿐인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시간에도 양산되고 있는 이러한 탐험의 사진들이 그냥 도감 사진으로 치부되지 않고 이렇게 비판받을 수 있는 이유는 이러한 그들의 사진이 사진의 기능을 이해 못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참사진’으로 오해되거나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다소 치사한 이야기라고 지탄을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들이 탐험사진을 하든, 그들의 사진이 대중들에게 잘 이해되고, 경제적인 소비까지도 잘 되고 있다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지 않느냐 하는 반문 말이다. 그것이 과연 그럴까? 나는 바로 이 시점에서 사진계의 내적 모순을 느낀다. 지금 우리 나라에는 약 30여개의 사진학과가 대학에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천명이 훨씬 넘는 학생들이 매년 배출되고 있고, 그리고 그들 너머로 그들을 책임(?)지고 있는 사진과 교수들이 어른거린다.
  나를 포함한 바로 이 교수들이 교습하고 있는 사진에 대한 ‘뭔가’가 문제라고 생각되는데, 위에서 지적한 도감사진과 참사진의 경계가 의심스럽고, 치사한 오해가 생기는 시점이 바로 여기인 것이다.
  간극이 옅어지고 경계가 사라지는 시대라 일컬어지기는 하지만 간극과 경계가 옅어지고 사라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그 간극과 경계의 자체 영역이 뚜렷하게 구분되는 전(前)단계를 거쳐야 함이 당연하다. 지금 우리에게는 이것이 부족하거나 없다는 말이다.
  바로 이러한 자아 의식적인 경계구분이 상실된 채, ‘지금’을 맞이한 사진은 그래서 타장르와의 연계도 비주체적이요, 타 장르의 작가들이 바라보는 시각도 그처럼 마치 사진을 일회용 창녀를 바라보듯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시대의 표피적 정신과 앞서간 작가들의 궁둥이를 좇아 다닌다.


5. 우리 나라 사진이 예술성을 획득하기 위하여

  먼저 우리는 사진계 속에서의 예술을 논하기 이전에, 지금까지 예술계 속에서 논의되고 있는 예술에 대한 정의를 정확하게 구해야 하겠다. 이유는 그 동안 대중들 속에서 회자되고 있는 이 예술이라는 단어는 그 근본적인 뜻이 애매한 채로 사용되어 왔고, 또 때로는 너무도 작위적인 의미로 쓰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사진계 안에서도 작가든 관람자든 이 예술에 대한 의미를 옳게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된다. 때문에 사진 자체가 예술이냐 아니냐 하는 전 근대적인 물음이 아직도 회자되고 있는 지경이다.
  예술이라고 지금 우리가 번안해서 사용하고 있는 이 단어 속에는 크게 두 가지의 역사적인 미적 태도(‘미를 대하는 태도’,  즉 스톨리쯔가 말하는 미적 태도가 아니라)가 들어있다고 본다. 이는 18세기 이전의 미에 대한 관점인데, 이는 객관적인 미적 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기원전 4-5세기경부터 18세기까지 약 2300여 년을 유지해 내려온 미에 대한 관념으로서, 대상 속에서 보여지는 비례와 하모니 등을 근거로 아름다움의 판단을 삼는 태도라고 할 수 있겠다. 이는 인간이 아름다움을 느끼는 이유를 이미 대상이 아름다움의 조건을 충족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으며, 따라서 이러한 태도를 갖는 사람들은 대상이 얼마나 자신이 알고있는 혹은 생각하고 있는   아름다움에 가까운가를 생각하고, 이에 흡족하면 비로소 그 대상을 예술이라고 부르거나, 예술적이라고 생각하게된다. 그러나 이러한 객관적인 미적 태도는 17세기말과 18세기에 로크와 라이프니쯔를 정점으로하는 경험주의와 합리주의의 영향을 받으면서 변화를 겪게된다. 경험주의와 합리주의는 모두 인간의 상태를 이미 주어진 어떤 완결체로 보지 않고 경험이나 사고를 통해 다듬어지고 발전할 수 있는 미완의 상태로 파악했으며, 우리가 지니고 있는 예술에 대한 생각도 경험과 그에 대한 인식, 그리고 합리적인 비판을 통해 새롭게 정의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들은 한쪽으로는 취미론을 발전시키면서, 그리고 다른 한쪽으로는 예술에서 늘 소외 되어왔던 감성의 문제를 철학과 유사한 관계로 파악하면서 감성을 의사(疑似)이성이라고 규정하고, 이를 다시 학문의 한 장르로서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이 이후 인간은 대상으로부터 추정할 수 있는 미에 대한 관점을 대상 그 자체에 두기보다는 바라보는 주체의 마음 안에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환기된 마음이 그 대상을 아름답게 느낀다고 판단하기 작한 것이다.4
  적어도 우리는 이러한 미학을 통해서 한가지 분명한 사실을 읽어낼 수 있다. 그것은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예술에 대한 막연한 생각은 18세기 이전의 미학적 태도이거나, 아니면 그 이후에 형성된 다소 근대화된 태도이기 쉽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대상 그 자체에 의미를 두어 대상 모방적인 작업을 근거로 예술을 판단하든지, 아니면 그 접근된 태도를 통해 부연된 형식의 발달로 판단하든지 한다는 것이다.

  이제 예술을 보다 밀도 있게 말하기 위해 앞에서 인용한 조지 디키를 다시 한번 인용해야 하겠다. 그에 의하면, 어떤 것이 예술로서 평가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술계art world가 존재해야한다. 그리고 그 예술계 안에서, 정치 사회적으로 여러 관계자들이 나름대로의 예술판단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러한 의미부여가 단지 예술가들의 예술가적  당위를 획득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아서 단토의 1964년 논문인 ‘예술계’에서 취한 이 개념은 우리가 무엇을 보고 그 대상을 예술로 볼 것인가, 아닌가 하는 물음 앞에서 예술이란 우리의 눈이 볼 수 없는 무엇, 즉 예술로서의 분위기 혹은 예술의 역사에 대한 지식 등을 규정할 수 있는 ‘예술계’를 필요로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분화된  현대의 사회에서 그리고 예술 자체가 이미 ‘예술의 범람’을 경험하고 있는 실정에서 일정한 설득력을 가진다고 생각된다.
  이제 사진이 예술로서의 의미를 획득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진계라는 것을 잘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강조의 의미로, 혹은 일방적인 필요를 채우기 위해  사진에 예술성을 작위적으로 부여할 일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 손으로 사진계를 형성해야하고, 그리고 그 안에 어떤 행동가들이 함께 해야하는가를 고민해야 하리라 본다. 언제나 예술의 이데올로기는 전시대의 이념과 찬동이든 반대이든 여하한 관계를 맺어오지 않았는가? 언제나 새로운 방식의 예술관은 일정한 시간이 흐른 후 전통이 되어오지 않았는가 말이다. 적어도 아방가르드가 모더니즘의 시기와 공간 안에서 바로 모더니즘을 부정하려했던 동일한 방법으로, 반세기가 채 지나기도 전에 부정되고 고전화되고 있는 상황을 직시한다면, 이제 우리는 예술에 대해 ‘정답’을 가지려는 근대적 시각은 버려야할 것이다. 때문에 예술이 무엇인가? 라는 혹은 예술은 이러해야 하는가? 하는 물음을 이제는 그 결론을 가지려는 욕구와 함께 펴나갈 것이 아니라, 그러한 욕구를 상호가 함께 담론화하고 있다는 과정에서 의미화해야할 것이 아닌가 한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아니 적어도 작가들은 비평가를 요구할 정당성이 있다. 나아가 비평가의 비평을 요구할 의무와 권리가 동시에 있다. 즉 말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작가가 말을 해야하고, 그 작가를 죽이는 말을 필요로 해야한다. 비평에 의해 작가가 좌절과 죽임을 당해보지 않은 ‘불행한 사진사회’에서 우리는 살고 있지 않은가?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한국사진의 예술성획득의 가능성이다. 풍요로운 담론과 넉넉한 비평, 단지 사진을 인상적으로 에세이화하는 그런 닫힌 비평이 아니라, 스스로를 내재적으로 부정하는 비평, 그리고 서로의 다름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가능한 그런 현상이 바로 진정한(?)의미의 예술현상이 아닐까? 그리고 그 안에 사진이 턱하고 있는 것이다.5


6. 맺음말

많은 말을 했다. 이 글을 여기까지 읽어줄 독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 나의 이 중언부언하는 글이 얼마나 독자들에게 이해될 수 있을까 궁금하다.
나는 작가다. 그것도 말이 많은 작가다. 특히나 사진판 안에서 가능하면 많은 말을 하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그런 작가인 것이다. 이러한 입장이 얼마나 작가로서 많은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지는 경험해 본 사람이 아니라면 알기 어려울 것이다. 특히나 어떠한 부분에서는 설득력 있는 작업을 가지고 작가로서 막 인정받기 시작한 사람들일수록 더욱 더 침묵을 강요받는 우리 사회에서는 작가가 발언한다는 사실에 너무도 부정적이지 않은가? 거기다가 나는 한발 더 나아가 비판적 시각을 가진 말을 통해 우리 모두의 예술 정당성을 획득해야한다고 믿고 있으니, 더욱 지탄받아 마땅한 지도 모르겠다.
그럼 나는 왜 작가라 하면서도 이처럼 비판적 말로 나를 주장하는가? 고백하자면 나도 무엇이 무엇인지 다 모르기 때문이다. 예술이, 사진이, 미술이, 사는 것이 무엇인지? 학습을 하고많은 생각을 주고받고, 주장하고, 치고 받고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보았으나, 모든 물음이 하나로 모인다는 사실 외에는, 그 어떤 명제에도 명쾌한 답을 스스로에게도, 남에게도 제시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아직은 나를 포기할 수 없고, 그래서 아직은 말을 해야한다고 믿고있다.
지금의 이 말들은 그러한 입장에서의 말 걸기에 불과하다. 말하기 위한 쏘시개라는 뜻이다. 더 깊은 것들은 내가 이렇게 규정해 놓은 나의 공간 안에서 나의 단언적인 글로서가 아니라, 상호간에 가지고 있는 그 불명료함이 상기시키는 저 너머의 나를 찾는 계기로서의 말이어야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말의 방식 역시 문체라기 보다는 역시 ‘말투’이다.
이제 여기에 털어놓은 내 생각의 파편들을 통해서 함께 ‘충돌의 힘’을 느껴보기 바란다.


1 지금까지 한국사진의 도입기에 대한 논의는, 그 당시의 자료가 충분치 않은 관계로 명쾌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그러나 한국사진사 연구소에 따르면 최초로 한국에 사진을 도입한 사진가를 판단하기위해서는 두 가지의 근거를 설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하나는 반드시 한국 사람의 손으로 제작된 사진을 기준으로 해야한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그 촬영된 대상이 한국인 또는 국내에서 이루어진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준에 의해 나 역시도 우리 나라 사진의 도입을 1884년에 지운영이 미국인 로웰과 함께 고종을 쵤영한 시기로부터 보는 견해에 동의한다.
2 그러나 이러한 사생아적 도구가 탄생한 후 시각예술과 예술 전반에 미친 영향은 잘 알려진 것처럼 막대하다. 오랫동안 플라톤으로부터 이어 내려져온 모방론에 입각한 회화관의 중심에, 그 한계를 일깨워 준 것과, 그러한 일깨움이 예술에서 일종의 콤플렉스로서 작용하였고, 예술이 보다 자의적인 세계영역으로 변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데 사진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뿐만 아니라 많은 문예가나 예술가들에게는 대놓고 전시할 수 있는 기회를, 한껏 자신들이 적으로 삼고 있던 부르조아지들을 싸잡아 공격할 수 있도록 사진은 그 바탕을 마련해 주었다고 생각한다. 보들레르가 그러하고 세잔과 고호와 고갱이 그러하다. 그들은 사진을 통해서 위기에 처해져있던 자신들의 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을 얻은 것이다. 상대적 반작용으로서의 분노가 그런 조건을 마련 해준 것이다.
3 이렇게 탄생한 사진은 하지만 그 발전의 속도와 전개가 사진 내적으로는 너무도 제1세계 중심의 제국적 성격으로 진행 되어갔고, 외적으로는 여타의 다른 장르와 ‘연계와 분열’을 거듭하면서 현재에 이르렀다고 본다. 우선 내적인 진행에 대한 증거로는 지금까지 제3세계를 중심으로 하는 사진가가 전무하다는 사실과, 20세기를 시작하면서 모든 사진적인 활동을 미국 중심적으로 파악하는 데에서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버몬트 뉴홀의 시각이 그러하다. 그는 사진의 역사를 미국에 이식하는 과정에서 아주 적나라하게 유럽과 제3세계를 배제하였으며, 20세기 초 미국의 사진발전을 마치 미국 안의 자가 발전적 양상으로 파악함으로써 몇 가지 무리한 사관을 만들어냈다. 버몬트 뉴홀의 ‘사진의 역사’(정진국 역, 열화당)와 장 끌로드 르마니와 앙드레 루이에의 ‘세계 사진사’(정진국 역, 까치)를 비교해보라.
4 너무도 길고 깊은 그리고 중요한 문제를 이렇게 간단하게 정리함으로서 오히려 혼란이 가중될 수도 있겠지만, 지금 내가 하고자하는 이야기는 미학 그 자체가 아니라 이러한 미학적 경계를 제시함으로써,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예술과 미에 대한 관점이 자신의 단순한 경험적인 사고만으로는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을 제시하고자하는 것이니만큼 독자의 이해를 구한다.
5 예술이 비평과 만날 때 유념해야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이영준이 쓴 ‘사진비평의 역할과 방법’이라는 소논문에 잘 설명되어 있다. 일독을 권한다. ‘사진비평워크숍 자료집’, 1998년 7~8월, 이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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