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ode
2008_1203 ▶ 2008_1209 
손민아_The moment of cognition
happens in a regulated reflexive space 디지털 프린트, 거울_125×170×20cm_2007
초대일시_2008_1203_수요일_05:00pm 참여작가 고산금_박윤영_손민아_오재우_윤동천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갤러리 이즈_GALLERY IS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0-5번지 Tel. +82.2.736.6669 www.galleryis.com
Decode ● 우리는 수많은 기호와 그것으로 짜여진
약호(code) 체계 속에 살고 있다. 미술 작품도 하나의 기호인 동시에 작가가 자신만의 체계를 갖고 만든 약호(code)로 이루어진다.
‘Decode’展은 동시대 작가들의 코드화된 작품에 주목하여 이를 제시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작품과 소통 할 수 있는 계기로서 작가의 코드
‘해독(decode)’에 주목한 전시이다. 현대 미술은 관람객과의 소통에 목말라 하는 여러 양상들을 보여주고 있다. 관람객의 직접 참여를
끌어내고, 관람객으로 하여금 작품에 더 다가서게 만들고, 작품이해에 도움을 주고자 여러 장치들과 프로그램을 내놓고 있다. 궁극적으로 작품이
관람객에게 어떤 말을 건네는지 알 수 없다면 그것은 한낱 미지의 암호에 불과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인지되지 못한 작품은 관람객에게 아무 의미
없이 스쳐지나갈 뿐이라는 한계를 인식해서 일 것이다. 예술은 사실 그 안에 정보 소통의 과정을 포함한다. 이 소통의 과정은 기호를 통한 의미
교환으로 이루어진다. 예술가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저마다의 조형적 체계로 구성하는데, 이것은 일종의 약호화(encode)이다. 반면
이를 받아들이는 관람자는 이 약호를 풀어냄으로써 작가가 작품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를 해독(decode)하게 된다. 거슬러 올라가보면
르네상스시대 뿐만 아니라 바로크, 로코코 등 최근의 100년을 제외한 서양미술은 대개 작품에 나타나는 사물의 의미나 특징들을 조합하여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 수 있는 해석의 틀을 갖추고 있었다. 단, 사과를 들고 있는 여인이 미의 여신 비너스로 해석되는 것과 같이 서양의
도상들은 배경지식이 풍부해야 해석이 용이한 비유적인 표현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작품 감상 체계는 점점 자취를 감추게 되었고 근대에 들어서면서
부터는 감각적이고 직관적인 감상체계가 더욱 중요하게 부상했다. 작품을 볼 때 구도, 색채, 붓의 터치, 질감과 양감 등의 형식 요소 자체가 가진
미적 정보를 파악하는 감상이 부각되자, 그 같은 현대미술의 논리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눈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작품이 무엇을 나타내는지에
대한 소통의 단절을 경험하고 그것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지게 되었다. 본 전시는 이처럼 예술의 기호, 기호의 예술에 중점을 두어 작품의 코드 체계를
통해 담긴 의미 정보를 관람자가 해독하게 함으로써 능동적인 작품 감상의 계기를 마련하고자 하였다. 작가만의 고유한 조형 언어는 우리의 습관적인
기호체계를 낯설게 만들기도 하고, 한편으론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기호의 재배치를 통해 감각적인 이야기를 구성한다. 또한 작가 내면의 이야기가
함축된 기호의 배열을 통해 관람객이 새로운 내러티브를 구축할 수도 있다. 이 예술언어들은 감각으로만 보아서는 아무 말도 건네지 못할 것이다. 또
하나의 암호처럼 부딪힐 수밖에 없는 이들 작품이 그러나 그들의 약호체계를 이해하고 해독의 과정을 거쳤을 때는 새로운 눈으로 대할 수 있을
것이다. 자, 이제 작가의 encode를 거쳐 탄생한 다양한 작품이 우리에게 다가와 어떤 말을 건네고 있는지 그들의 독립된 코드를
decode함으로써 그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자. ■ 경기대학교 미술경영학과

박윤영_A
Person of Importance and Two People of Unimportance_종이에 먹_113×48cm_2003
박윤영 ● 누구나 알아보기 쉽게 통용되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서의
픽토그램을 지극히 개인적인 소통수단으로 사용함으로써 화면 안에 스토리를 구성하는 것이 박윤영의 작업이다. 작가는 픽토그램을 통해 미스터리한
사건이나 자신이 접한 소설, 음악 등을 독창적으로 재구성하여 기호로 엮어낸다. 화선지에 옅게 퍼지는 먹의 여운은 여러 상징과 은유를 담고 있는
박윤영의 기호에 대한 몽환적인 느낌을 환기 시킨다. 마치 추리소설을 읽어 내려가듯 자유롭고, 예측 불가능한 이야기를 추적해나가는 과정은 다양한
해독의 가능성을 열어놓는 동시에 일탈적인 해독을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손민아 ● 손민아의 작품은 언뜻 보기에 현대 소비사회를
대변하는 바코드의 표상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것의 약호를 해독하기 위해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바라본 어느 지점에서 우리는 그것이 영문으로 표기된
해독 가능한 문자임을 눈치 챌 수 있다. 즉, 가독성이 전제되어 있지 않아서 이미지로 퇴조한 텍스트 혹은 이미지로 감각화 되어버리고 만 텍스트가
전면에 나서 고 있는 것이다. 상품의 정보를 빠르고 읽기 쉽게 만든 바코드라는 기호가 단편적으로 읽힐 수 없는 문자로 변환되는 과정은
이율배반적인 두 개의 기호가 충돌하는 혼란을 겪게 한다. 그만의 독특한 타이포그래피는 이처럼 행위를 동반한 인식의 전환을 요청함과 동시에 한눈에
파악되지 않는 해독의 여러 층위들을 제시하고 있다.

윤동천_수수께끼-내게 필요한
것들(Riddle-Things I Need)_C프린트_각30×30cm_2007
윤동천 ● 윤동천의 작품은 인터넷에서 추출한 두 개의 사진이미지가 하나의 단어를 유추하게 하는 수수께끼
같은 작업이다. 사진에서 지칭하는 사물은 ‘내게 필요한 것들’로 약호화되면서 하나의 기표로써만 기능하게 된다. 각각의 단어들은 이렇게 ‘작가에게
필요한 단어들’의 일부를 이루고 있지만, 그만의 사진언어를 해독(decode)했을 때 우리는 그것을 구성하는 각각의 이미지와 그 이미지로 하여금
새롭게 연상된 단어 사이에 어떠한 유기적 고리도 찾을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이러한 점은 작가의 약호체계를 해독하는 과정을 통하여 일상에서
이미지와 텍스트로 이루어지는 소통의 필연적 과정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수수께끼 같은 물음으로 이어진다.

오재우_남자는 기억한다_디지털
프린트_90×60cm_2008
오재우 ● 그는 담배갑을 차곡차곡
쌓아 거기서 드러난 담배 상표명을 작가의 조형언어로 끌어들여 한 편의 시로 풀어낸다. 프랑스어나 이탈리어 등 쉽게 알 수 없는 단어들의 의미와
상업적 목적으로 인해 무심결에 지나쳤던 담배 이름들은 작가에 의해 감각적이고 감성적인 의미의 기호로 재조명됐다. 담배이름은 그가 한 작품 안에서
일정하게 부여한 질서에 따라 형용사, 명사 등으로 품사가 결정된다. 이렇게 그만의 독특한 문법을 통해 탄생한 ‘담배시’는 그의 입장에서 바라본
정치, 사랑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어떤 이에게는 담배가 그 자체로서 위안이 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담배와 시가 결부되었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만남일지도 모른다.

고산금_가갸날에 대하여(동아일보 1926년 12월
7일 한용운 글)_코바늘뜨개_각7cm, 203×70cm_2008
고산금 ● 고산금은 신문기사, 소설, 노래가사 등 우리가 쉽게 접하고 읽을 수 있는 텍스트를 자신만의
개인적인 약호체계로 번안함으로써 그것을 읽을 수 없게 만든다. 문자가 아닌 물질성으로 대체된 작품은 그것이 원래 함의하고 있던 기의는 탈각시키고
기표만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헤드폰을 쓰고 흘러나오는 음악을 통해, 또는 제목으로 주어진 단서들을 통해 작가의
‘encode’가 ‘decode’되는 과정을 경험할 수 있다. 그것이 단번에 읽히기를 거부하고, 모조 진주알 하나가, 손뜨개 하나가 하나의
음절로 대체되어가는 해독(decode) 과정은 미지의 심연에서 우리의 지각과 인식이 동시에 확장 되어감을 느낄 수 있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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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나를 발견하다
구모경展 / KOOMOKYEONG / 具慕慶 / painting
2008_1129 ▶ 2008_1205

구모경_그 때엔_장지에 채색_132×162cm_2008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이미지 속닥속닥 Vol.070226a | 구모경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8_1129_토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갤러리 아카 서울_GALLERY AKA SEOUL
서울 종로구 낙원동 283-38번지
Tel. +82.2.739.4311
숲에서 나를 발견하다 ● 구모경은 자작나무에 눈이 가득한 설경을 작업해온 작가이다. 겨울날 잎이 다 떨어진 자작나무의 나무껍질은 건조한 기후의 분위기를 잘 드러내고 있다. 자작나무의 거친 표면은 아무것도 없는 배경과 대조적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남으로써 나무의 존재를 확고하게 느끼게끔 한다. 이번 근작에서는 특히 자작나무로 인한 화면분할이 뚜렷해져서 화면 속에 자연스러운 공간감이 형성되고 있으며 풍경이라는 주제를 확실하게 하고 있다. ● 자작나무는 숲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로서 채택된 소재이긴 하지만 오늘날 우리를 둘러싼 도시 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빌딩, 혹은 전신주를 상징하기도 한다. 자작나무에 대한 이러한 의미부여는 사실 작가가 도시 안의 삭막한 수직 공간이 자작나무로 변하면 살만한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도 담고 있다. 예전 작업에서 사생으로부터 비롯된 자연풍경이 많았다면 근작에서는 도심 속에서 발견되는 숲이 등장한다. 작가는 이제 멀리 위치한 자연이 아니라 작더라도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 안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자연이 우리와 함께 숨쉬는 공간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구모경_그 또한 그럴것이다_장지에 채색_130×194cm_2008
도시에서만 살았던 작가가 눈 내리는 숲 속 풍경에 도취되어 시작하게 된 설경은 이제 어느덧 작가의 작품세계를 대표하는 중심 화제로 자리매김하였다. 설경은 흰색과 먹색의 구분이 분명하여 여백의 미를 살리기 쉽고, 고난과 시련의 상징으로서 겨울이라는 계절 감각이 더해져서 예로부터 많이 그려지던 화제였다. 또한 그림을 그리는데 있어서 미리 흰색의 여백을 남긴 채 색을 칠하는 방식은 분명 작가들에게 있어 또 다른 조형방식을 추구하게끔 하였고 이로 인해 다른 계절을 그린 그림과는 달리 추상적인 화풍을 도입하게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 한편 쇼핑백에다가 그리거나 콜라쥬로 나타내던 이전작업을 통해 작가는 우리가 정말 가지고 싶었던 것은 그림의 대상이 아니라 대상을 통해 확인되는 우리의 마음상태임을 깨달았다. 이제 작가에게 자연은 보다 직접적으로 느끼고 싶은 대상임과 동시에 자연을 표현하면서 스스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서 자신을 발견하고자 한다.

구모경_어느 날, 눈물이_장지에 채색_100×80cm_2008
그러므로 작가는 지금까지 보여준 콜라쥬와 붓으로 그리던 방식을 버림으로써 자유롭게 그리는 자신만의 방식을 발견하게 된다. 21세기 한국을 살아가는 작가에게 전통은 과연 어떤 것일까? 단지 전통적인 제작방식에 현대적인 소재, 화제를 다룬다고 해서 전통을 잇는다거나 혹은 반대로 도시를 그리고 자동차를 그린다고 하여 전통을 탈피하여 완전히 현대미술을 추구한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 작가는 재료로서 종이와 먹을 이용할 따름이지 어느덧 전통적인 준법과 농담의 형식적인 운용에서 탈피하기 위하여 붓을 버린다. 그리고 현대를 살아가는 화가로서 전통적인 표현방식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는 행위 자체, 거기에서 느끼는 작가로서의 기쁨, 충만감에 주목하는 것이다. 그러한 변화를 가능하게 한 실질적인 방식은 첫 번째로 나무젓가락으로 그림을 그리게 되었고 두 번째는 색채를 가미했다는 점이다. 우선 매체로서 나무젓가락을 사용했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는 지두화가 엄격한 양식을 따르게 되는 붓과는 달리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화가의 자율성에 힘입어 파격과 강한 표현력을 보여주듯이 나무젓가락으로 그린 그의 그림에서 더 이상 전통적인 붓의 흐름을 찾아보기 힘들다.

구모경_어느날엔가_장지에 수묵담채_80×100cm_2008
나무젓가락이라는 특성상 굵고 가는 선은 泳竄側, 붓 자체로만으로도 가능했던 먹의 농담 역시 사라졌다. 새로운 매체를 이용함으로써 작가는 한지라는 종이라는 매체, 물의 조절, 힘의 강약 조절 등에 대하여 새로운 시각과 방법으로 접근하게 되었다. 이러한 시도는 전통적인 형식과 관념을 무조건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화가로서 먹과 한지는 그대로 유지한 채 다른 방식으로 그려보려는 노력인 것이다. ● 색의 가미는 그림이 생동감 있어 보이게끔 하는 일종의 장치이다. 이전작업에서 색채가 사용되긴 하였으나 근작에서는 단색으로 제한되어 사용된다. 화면 일부분에 처리되긴 하지만 화면상에서 관객의 시선을 이동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러나 작가는 오랫동안 흑백의 세계에 머물렀던 만큼 아직 색채를 자유자재로 다루지는 않는다.

구모경_우두커니_장지에 채색_135×67cm_2008
색채는 화면 속 장면이 작가가 살고 있는 현실세계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강조하기 위한 요소이므로 작가가 좋아하는 색이 칠해졌다. 작은 부분이지만 강렬한 시각적 요소를 통해 작가는 화면 속에서 현실감각을 찾고자 한다. ●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자작나무와 함께 소나무를 그린 그림도 등장하는데 단면적이고 직선적인 자작나무의 느낌과는 정반대로 선적이며 다소 곡선적인 소나무의 표현은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나무젓가락을 이용하여 전통적인 준법에 개의치 않고 자신만의 독자적인 표현을 완성한 것이다. 새로운 주제를 그림으로써 작가는 강박적인 틀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화가임을 자각하고 자신만의 다채로운 표현방식을 찾고자 한다. 작가는 이러한 노력이 여전히 시작이며 앞으로 더 나가야 할 길이 많음을 잘 알고 있다. 이렇듯 구모경의 작업이 왕성한 실험과 부단한 모색의 결과라는 점에서 우리는 젊은 작가로서 참신함에 새롭게 주목하게 된다. ■ 류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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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EIGHT OF MY WORDS_말(言)의 무게
홍경님展 / HONGKYEONGNIM / 洪景壬 / sculpture
2008_1203 ▶ 2008_1209

홍경님_The Fish In My Eye_내 눈 속의 그대_목조각, 잣나무_높이 30cm_2008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홍경님 홈페이지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4층
Tel. +82.2.736.1020
www.ganaart.com
나무조각으로 내미는 언어의 무게 ● 어딘가를 무겁게 강조하지 않지만 홍경님의 나무 조각에서는 동시에 두 가지의 이미지가 불쑥 들어온다. 하나는 조각된 사람의 얼굴이며 또 하나는 말없는 나무의 얼굴이다. 나무로 조각된 얼굴은 내면의 상태를 번역하여 읊는 듯하며 조심스러운 표정들을 언어로 묶어 보여준다. 이 적절한 일치는 나무의 본성 안에서 굳이 ‘어려운 선택’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조각가의 선택은 깊은 시간이며 그 긴 시간을 파 들어가는 시름이다. 그리고 실음(失音)이다. 현대 예술에 사용되는 많은 재료들 가운데 작가가 선택한 것은 나무이다. 문학을 전공한 작가는 수백 년 전부터 예술의 관례가 되어온 인간의 도상에 언어의 이미지를 얹어 깊이를 표현한다. 잘려진 나무가 터지고 붙기를 거듭하면서 여전히 그 생을 엮고 있는 것처럼 나무 조각 또한 그 언어를 흘리고 주워 담기를 계속하기 때문이다. 나무 조각은 사람이 살아온 기간만큼이나 오래된 표현방식이다. 사람의 역사를 담은 토템이나 액막이로서의 장식들, 신들의 모습까지 오래 전부터 나무를 조각하던 사람들의 마음이 이미 피 속에 기록되어, 나무 조각은 순간적 직관으로 예리하게 받아들여지기보다는 천천히 인지되는 특성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홍경님_복화술사의 방_목조각, 피나무_높이 61cm_2008

홍경님_시름-실음(失音)_목조각, 잣나무, 춘양목, 파덕, 호두나무_높이 37cm_2008

홍경님_통각(痛覺)이 없는 겨울_목조각, 버드나무_높이 43cm_2008

홍경님_말(言)의 무게_목조각, 은행나무, 홍송_높이 27cm_2007

홍경님_자기 물을 모두 마셔버린 강_목조각, 피나무_높이 50cm_2008
나무가 만들어내는 자연스러운 균열은 인간을 닮았다. 나무로 조각된 소년들은 상처투성이의 흔적들을 안고 있다. 세상을 채우는 가벼운 소통 속에서, 차마 내지 못하고 속으로만 삼켜버린 애틋하고 진지한 말(言)들은 몸을 가르고 터져나와 가슴과 머리에 무겁게 얹힌다. 그리곤 어느 순간 조용히 스스로 아물고 단단해진다. ‘왼쪽 가슴의 깊은 균열’을 안고 사는 사람들에게 나무만큼 친숙한 질료는 없을 것이다. 작가의 작업 이미지들은 ‘내 눈(目) 속으로 뛰어든 물고기’에서처럼 그 기운은 펄떡이지만 드러나는 형상은 한결같이 고요하다. 두 눈이 지워진 사람이나 무거운 가면을 쓴 광대와 같이 가면 속 눈(가려지거나 사라진 눈)과 가면 밖의 눈빛을 담담하게, 아직도 숨을 쉬고 있는 나무옹이들과 함께 초점 없이 입김을 전하고 있다. 상처받은 사람에게 조용히 말을 걸어오는 것과 같은 홍경님의 나무 조각은 수만 번 쳐내고 밀어낸 칼끝의 힘을 지긋하게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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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릉도원
박영길展 / PARKYOUNGGIL / 朴永吉 / painting
2008_1125 ▶ 2008_1217

박영길_무릉도원_한지에 수간채색_92.5×210cm_2008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Vol.080331a | 박영길展 으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8_1125_화요일_05:00pm
금호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展
주관_금호미술관
기획_푸르지오 갤러리
관람시간 / 09:00am~07:00pm
푸르지오갤러리_PRUGIO GALLERY
서울 강남구 역삼동 831-21번지
Tel. +82.2.556.5218
valley.prugio.com
풍경을 바라보는 시각은 개인적 경험이나 시각의 차이에 의해 각각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같은 풍경을 바라보더라도 어떤 이는 새로움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또 다른 이는 너무 익숙하여 평범하게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만약 자신이 머물러 있는 익숙한 풍경에서 벗어나 다른 곳의 풍경을 바라본다면 새로움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러한 새로움은 일시적으로 나타나고 없어지는 현상이다. 하지만 그 곳에서 변화의 움직임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마음에 달려있다.

◁박영길_Wind-road_한지에 수간채색_122×182cm_2008
▷박영길_Wind-road_한지에 수간채색_122×182cm_2008_부분

박영길_무릉도원_한지에 수간채색_92.5×210cm_2008_부분
자연은 항상 우리 옆에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 우리는 자연을 바라 볼 때 여러 가지 사고를 하게 된다. 자연이라는 대상은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거나 계절의 변화에 자신을 돌아보게 하거나 어떤 결과물을 기대하는 기다림을 가지게 하거나 혹은 무섭거나 포근하거나 하는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이러한 느낌을 표현하는 주체로서의 작가 본인은 자연이라는 대상과 끊임없는 호흡의 시간을 갖는다. 직접 거닐거나 운전 중에 바라보거나 때론 여행을 통해 새롭게 얻을 수 있는 느낌들을 스케치와 사진을 통해 그곳이 지니고 있는 풍경을 담으려 한다. 관찰되어지고 기억과 상상 그리고 경험 속에서 자연스럽게 풍경은 체득되어진다.

박영길_Wind-road_한지에 수간채색_92.5×210cm_2008

박영길_Wind-road_한지에 수간채색_69×95cm_2008
이러한 사생의 과정에서 ‘바람’과 ‘길’이라는 두 개의 단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특히 바람이 주는 기대효과는 무척 크다고 할 수 있다. 흔히 우리는 ‘바람 쐬러간다.’는 말을 자주 쓰게 되는데 여기서의 바람은 익숙한 어떤 상황에서 잠시 벗어나서 새로운 기대 심리를 자극하는 말로 표현되어진다. 그런 기대감 때문인지 실제의 바람을 느끼며 여행하는 것을 즐긴다. 그리고 길이 주는 것은 인간의 발자취에 의해 생성되고 소멸되기 때문에 어제와 오늘의 흔적을 같이 담고 있다는 점이다. 같은 길 위에서 과거와 현재의 상황이 교차됨을 볼 때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낯선 길 위에서 접하게 되는 불안한 기대심리는 바람이주는 기대효과와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박영길_무제_한지에 수간채색_60.6×72.8cm_2008

박영길_Wind-road_한지에 수간채색_80.3×116.7cm_2008
나의 작업은 바람과 마주치는 길 위에 구체적이고 다양한 인물과 형상들을 자유롭게 배치하여 또 다른 상황적 관계를 만들어 새로운 기대감을 유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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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ricade
김시연展 / KIMSIYEON / 金始衍 / photography
2008_1127 ▶ 2008_1227 / 월요일 휴관

김시연_Barricade_디지털 프린트_150×200cm_2008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이미지속닥속닥 Vol.070221b | 김시연 사진설치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8_1127_목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30pm / 토요일, 공휴일_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엠_GALLERY EM
서울 강남구 청담동 101-5, 2층
Tel. + 82.2.544.8145
www.galleryem.co.kr
집이라는 성 ● 작업 초기부터 김시연은 일관되게 집과 가정이라는 일상에 관한 이야기를 되풀이해 왔다. 개인의 일상은 역사와 신화같은 거대 서사에 대비되는 현대미술의 화두로, 평범한 삶을 사는 범인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매일의 생활 속에서 삶의 무게를 읽을 수 있는 새로운 잣대로 등장한 바 있다. 김시연의 작품도 이러한 맥락에서 가정을 소재로 그 속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심리 드라마를 그려 왔다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집을 무대로 여러 작품 시리즈를 진행하여 왔는데, 여기서 집과 가정은 인간의 집단인 사회를 유지하는 최소 단위이자 개인을 지탱하는 기본틀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현대의 사회에서 가정은 사회경제적 단위일 뿐 아니라 개개인의 자기정체성을 만들어 삶을 이루어가는 근본 구조이자 성역이기 때문이다. ● 작가가 그리는 집은 개인을 보호하고 양육하는 안식처인 동시에 자기 바깥에 있는 거대한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해 방벽을 쌓아 스스로를 지키려는 성이기도 하다. 여기서 개인의 공간인 집은 그 속에서만 맘을 놓을 수 있는 안전하고 편안한 곳이라기보다, 외부의 간섭을 받지 않는 사생활의 그늘에서 고립과 단절의 장이 될 수 있는 위기의 장소이다. "집은 그 사람의 성이다"라는 말은 자기 집에서는 누구나 왕처럼 자유롭게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으며, 타인은 방해할 수 없다는 의미의 경구로 사용된다. 하지만 이때 외부의 간섭을 받지 않는 사생활은 남들은 결코 알 수 없는 은밀한 영역 속에서 고독과 소외로 고통받는 감옥이 될 수 있다.

김시연_Barricade_디지털 프린트_150x200cm_2008

김시연_Barricade展_2008
우울증에 걸린 집 ● 대학 졸업이후 해외 유학을 거쳐 자신의 세계를 확고히 한 김시연은 2002년 귀국 개인전에서부터 자기 내면의 이야기를 작품으로 정제시켜 왔다. "Greeting"이라는 제목의 전시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길을 떠났다가 결국 거울 속에서 마주한 자신에게 인사를 건네는 여자아이의 이야기는 학업을 이유로 이국타지로 떠났다가 자신을 찾아 돌아온 작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작가는 결혼과 출산, 육아라는 일상적이면서도 획기적인 변화를 겪으면서 이 새로운 경험을 작품에 투영시킨다. 자기자신을 찾은 소녀는 스스로 선택해서 만든 가정으로 뚜렷한 전기를 맞지만, 이렇게 찾은 집은 영원한 행복과 평온의 공간만은 아니다. 여기서 집은 내부와 외부를 갈라서 주인공을 감싸는 방벽이자 외부와 접촉을 막는 장애물로 등장한다. 길 떠난 소녀들이 자아를 찾는 환상적인 동화의 세계가 주부와 가정생활이라는 산문적인 현실 세계로 들어오면서 이야기는 자기방어적인 과민성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김시연_Barricade_디지털 프린트_100x167cm_2008
얇고 투명한 종이와 섬세한 드로잉으로 만든 부서질 것 같은 집-성은, 다양한 일상의 도구를 이용해 일종의 심리적 방벽을 치는 바리케이트 시리즈로 이어진다. 작가의 개인전 제목이기도 한 「우울증에 걸린 집」(2004)과 「방벽」(2007)은 소금과 갖가지 가재도구를 사용하여 자신을 방어하는 장벽를 세우는 집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두 전시에서는 특히 소금이라는 재료의 사용이 두드러지는데, 소금은 매일 먹는 음식의 맛을 더해주는 양념이지만 물건이 썩는 것을 막는다는 의미에서 인간의 도덕적인 사명을 일컫는가 하면, 액을 막아 주는 주술적 의미까지 지닌 물질이다. 고깔모양의 소금더미나 바닥에 소금가루를 뿌려 만든 문양들은 정교하고 치밀하게 쌓은 경계로 외부의 침입을 막는 벽사적 기능을 가진다. 한편 작가는 소금뿐 아니라 세제나 비누같은 다른 생활용품 재료를 시험하는가 하면, 주방이나 서재의 물건으로 무너질 듯 위태한 바리케이트를 쌓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집안을 보호하여 왔다. ● 작가가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부어 만드는 방어벽 제작작업은 집안 곳곳을 쓸고 닦고, 빨래와 다림질, 요리와 설거지로 이어지는 주부의 일과 유사점이 있다. 계란껍질과 유리컵으로 된 연약한 방벽은 가정을 유지하고 지키려는 노력의 위대함과 허무함을 동시에 보여 준다. 이는 여성의 가사와 육아가 무엇보다 높은 가치로 칭송되다가 어느 순간에 갑자기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자 해도 전혀 티나지 않는 일이 되는 것과 비슷하다. 이런 맥락에서 가장 안전하고 근원적인 공간인 집이 나를 감싸주는 것이 아니라 고립시키고 억압하는 이중성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소금으로 방어벽을 쌓고 비누로 철조망을 깎는 작가의 작업은 집안에 숨어서 변화에 저항하면서도 그 담장에 갇혀서 대화와 교류를 원하는 인간의 모순된 욕망의 발현이기도 하다.

김시연_Barricade_디지털 프린트_80x80cm_2008
비누로 만든 성 ●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소금에 이어서 비누라는 또 다른 일상적 재료에 초점을 맞춘다. 역사적으로는 최초로 언급되는 비누는 고대 인도와 이집트에서 목욕에 사용한 물질로 이때는 종교적인 의미에서 불순물을 씻어 내어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는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비누의 발견에 대한 대중적인 신화는 그런 의미에서 자기희생에 따른 정화 의식과 일맥상통한다. 동물희생이나 인신제사 때 태운 시체의 기름과 재가 섞여서 강으로 흘러들었고 그 강물에서 빨래를 하던 여인들이 유난히 옷이 깨끗해지는 것을 깨닫고 동물성 지방과 잿물을 가지고 세제를 만들었다는 전설이다. 고대제사에는 고기가 아니라 뼈를 태웠기 때문에 근거가 없는 낭설이긴 하지만 희생물의 기름과 재가 섞여서 인간의 때를 씻어 내는 설화는 사실여부와 상관없이 강한 인상을 남긴다. ● 이렇게 원시적인 방식으로 만든 천연비누와 달리 공업생산된 현대의 비누는 근대에 이르러서 개인위생과 청결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특히 병원균의 발견으로 눈에 보이는 말끔함뿐 아니라 세균 소독에 대한 의식이 대두되고 대량생산된 비누가 보급되면서 비누와 세제는 가정용품의 대표주자가 되었다. 「바리케이트-가시」에서 작가가 사용하는 비누는 미국제조회사가 제작한 상품으로 깨끗하고 순수한 이미지로 오랜 기간 동안 많은 사랑을 받아 왔다. 작가가 수많은 공산품 비누 중에서 이를 선택한 이유도 개인적인 추억과 함께 다른 제품과 차별화되는 고유의 질감과 색채에 따른 것이다. 일일이 손으로 깎아 낸 비누 조각들은 희고 부드러운 느낌으로 대리석과 상아로 만든 고전조각의 정제된 느낌까지 준다. 원래 의도와 달리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세운 가시나 칼날이기보다는 물결이 씻어 낸 해변의 조약돌처럼 매끈하고 완만한 일면을 볼 수 있을 정도이다. ● 비누조각의 정갈하고 날카로운 외양은 작가가 연출한 설치사진에서 가장 극적인 면모를 과시한다. 여기서 장벽은 소금으로 쌓은 벽이나 가재도구로 쌓은 바리케이트가 아니라 집안 곳곳에 숨어있는 칼날이자 가시이다. 집안의 구석과 틈새에 배치된 비누조각들은 방심한 침입자를 잡는 부비 트랩이자 집안 내부의 가족구성원들이 움직이지 못하게 얽매는 철책의 역할을 한다. 이는 그림같이 솟아 있는 우아한 유럽의 고성이 공성전의 포위공격에 대비하여 설계한 요새인 것과 다르지 않다. 석재 방벽의 기하학적인 조화와 정교한 세공을 자랑하는 세부들은 미학적인 선택같지만 사실은 화총과 대포를 쏘고, 쇳물과 자갈을 붓는 방어용 목적으로 설치한 것이다. 작가가 만든 비누 조각도 단아하고 아름다운 외양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외부의 침입에 대한 과잉방어와 고립된 긴장감의 신경증을 통합시킨 또 다른 방벽이라 할 수 있다.

김시연_Barricade展_2008

김시연_Barricade展_2008
작가는 평범한 가정집에서의 다양한 설치작업을 사진으로 기록하여 비누 조각이 실제 사람이 사는 공간을 침투한 연출사진을 보여 준다. 완벽하게 통제가능한 공간이자 생활의 질서 속에 억압된 공간인 집을 배경으로 한 사진들은 생활용품이 일상을 점령하는 초현실성을 보여주며, 섬세한 비누 조각 특유의 덧없는 아름다움을 극대화하였다. 집안 곳곳에 늘어선 비누 조각들은 고립과 불안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곳에 잔해처럼 남아있는 모습이다. 사진으로 제시된 연약하고 미묘한 비누의 모습에서 사람들은 김시연의 이전작품에 이어 소통에의 욕망, 자기방어와 위장술, 언어와 작품의 관계같은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찾을 수 있다. ●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일일이 손으로 깎아서 만드는 작업의 시간은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작가에게 큰 의미를 지닌다. 수공작업과 설치과정의 노력들은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연출된 장면으로 관객들이 집 안의 이야기를 엿볼 수 있는 길을 열어 준다. 하지만 정갈한 흑백조로 연출된 집안 내부의 사진들은 전체의 이야기의 일부로서 힌트만을 제공하며, 관객들은 그 속에 담긴 사정들을 직접 찾아내어야 한다. 연출된 장면들은 보호와 통제라는 방식을 통해 내부의 개인을 압박하는 요새로서 집안의 일면을 비추어 보인다. 이렇게 평범한 일상의 세계 속에서 일어나는 장면들은 위태로운 불안을 자아내는 감옥으로의 집이라는 성을 보여 준다. ■ 구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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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痕迹_Traces
김승영展 / KIMSEUNGYOUNG / 金承永 / installation
2008_1203 ▶ 2009_0118

김승영_기억_단채널비디오_2008
초대일시_2008_1203_수요일_05:00pm
공간화랑 재개관 프로젝트-담론의 구축 02
관람시간 / 10:00am~07:00pm
공간화랑_gallery SPACE
서울 종로구 원서 219 공간사옥 지하
Tel. +82.2.3670.3500
www.space-culture.com
나타남과 사라짐 - 병리와 자기 치유의 흔적 ● "본다는 것은 당신이 바라보고 있는 것의 이름을 잊는다는 것이다." - 폴 발레리(Paul Valery) 존재한다는 것은, 내 눈 앞의 것들과 끊임 없이 소통하고 있다는 말과 같다. 무언가를 바라보는 순간, 그 이전에 가지고 있던 인식과 선입견, 지식 등은 구체적인 경험의 기억으로 변화하게 된다. 프랑스의 상징주의 시인이었던 폴 발레리가 말한 ‘이름을 잊는다는 것’은 내가 본다는 행동을 하기 이전에 이성의 영역에 있던 관념들을 ‘보다’라는 소통의 과정을 거쳐 상처나 추억과 같은 내재화된 감성의 영역으로 옮겨 놓는 행위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바라봄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소멸과 생성, 그리고 감정의 개입 등은 김승영의 작품에 개입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 김승영의 작품들은 대부분 명상적인 분위기와 세련된 형식미를 특징으로 하고 있다. 그러한 분위기는 그가 일관되게 유지하는 몇 가지 요소에서 기인하는 바 크다. 김승영의 작품이 가진 가장 주요한 형식적 특징으로 세 가지 정도를 거론할 수 있겠다. 공간에 놓여진 작품과 그로 인해 형성되는 빈 공간의 환기된 분위기가 적절히 혼재되어 생명력을 부여 받은 환경을 구축해왔다는 것은 김승영의 작품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그는 작품이 놓여진 공간의 에너지를 관객으로 하여금 충분히 호흡할 수 있게 하는 작품을 높이 평가한다고 말하는데, 그러한 형식적 지향점과 공간 해석의 스케일은 관객으로 하여금 어떤 깊은 생각을 유도하게 만들곤 했다. 작품 속의 일정한 공간에는 내부로 관객이 들어가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러한 작품들은 관객이 (적극적인 참여든, 어색한 머뭇거림이든) 함께 존재할 때 온전히 성립하게 되는 것들이다. 김승영 작품에 등장하는 또 하나의 형식적인 특징은 반복의 미학이다. 낙엽이나 빈 책장, 자신의 얼굴,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름 등 각 작품에 존재하는 개체들은 지루할 정도로 반복되어 어떠한 집적(集積)의 형태를 이루며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특징은 인간의 삶이라는 것이 결국 지리멸렬한 반복의 연속이라는 감상적 체험의 결과를 보여줌과 동시에 시간이나 사물을 관조하고 해석하는 작가적 사고가 상당히 다차원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의 작품에서 감지되는 형식미는 대개 목재나 낙엽, 물 등의 자연물을 이용한 재료로부터 시작하는데, 그 중에서도 물은 상당수의 김승영의 작품에 등장하는 중요한 재료이다. 그는 1980년대 후반에 처음으로 물을 작품의 재료로 쓰기 시작했는데, ‘작업을 하면 할 수록 예술가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닫게 되었다’고 생각했던 젊은 김승영에게 최소한의 환경만을 조성해주면 미세한 감각까지 구현해 내는 물이라는 재료의 발견은 매우 반가운 일이었다. 자생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언제 어디서건 스스로의 내용을 담고 있는 유기체로서, 물은 그의 여러 작품에서 매우 긴요하게 사용되었다. 고여있는 물이 반영하는 공간, 낙수(落水)가 표면에 만들어내는 물결, 그로 인해 발생하는 소리와 흔들리는 영상 등은 그의 작품에서 종종 등장하는 요소이다.

김승영_흔적_혼합재료_가변크기_2008

김승영_기억_단채널비디오_2008
김승영이 작업을 통해 주로 이야기하는 것은 ‘소통’과 ‘기억’에 관한 것이다. 김승영은 어린 시절부터 가지고 있던 신앙에서 비롯된 도덕적인 결벽증으로 인하여 자기 비판적인 성격을 갖고 있었다고 고백한다. 스스로 받은 상처와 열등감은 타인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시도하기보다 누군가에게 자신이 이해되기를 바라는 수동적인 자세를 취하게 만들었고, 이는 성장기의 김승영에게 트라우마였다. 원활하지 않은 소통에 대한 절망과 받아들이기 힘든 상처의 기억들은 김승영의 감수성에 강한 영향을 미쳤다. 한동안 그의 작업은 어두운 심상에 대한 투쟁과 내적 트라우마의 치유의 방편으로서 기능하게 되었다. 1999년 원서갤러리에서의 개인전을 준비할 당시, 가까운 두 명의 지인으로부터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된 김승영은 사람의 얼굴을 그리고 그 위를 흰색으로 덮어 버리는 작업을 시도했다. 칠하면 드러나고, 그 위를 다시 칠하면 또 드러나는 얼굴은 결국 희미한 흔적으로 남게 되었고, 그는 그 결과물을 전시했다. 완전히 지우고 싶은 기억들도 지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덮어 버리는 것일 뿐이며, 결국 흔적이 되어 남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김승영_흔적_혼합재료_가변크기_2008

김승영_흔적_혼합재료_가변크기_2008
2000년경 뉴욕의 P.S.1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1년간 참여한 김승영은 언어와 관습의 장벽으로부터 느껴지는 고립감과 지극히 제한적인 소통의 상황을 체험하게 된다. 외부와의 단절로 인한 여파는 자신의 내적 정체성이 무너지는 듯한 경험을 하게 만들었다. 적극적인 소통에의 의지와는 관계 없이 겪어야 했던 심리적인 위축은, 후에 자신의 얼굴 이미지를 안경 쓴 눈만 동그랗게 남긴 채 잔뜩 위축되어 돌돌 말려있는 형상으로 재현한 작품으로 표현되었다. 이 때의 기억은 2007년 겨울에 발표한 ‘세상의 꽃’이라는 작품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최근 작가교류프로그램으로 몽골에서 체류를 했던 김승영은 말이 통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진정으로 편안한 소통을 즐겼고, 후각이 결합된, 잊을 수 없는 기억을 안고 돌아왔다고 말했는데, 이는 십 수 년간의 작품활동을 통해 그가 구축해 놓은 소통의 방법론이 가져온 결과일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번 개인전에서 김승영은 오브제와 물, 그리고 벽돌 위에 붙인 수많은 이름들로 이루어진 설치 작품 ‘흔적’(2008)과 영상과 조명으로 구성된 작품 ‘엘리베이터’(2008)를 출품하였다. ‘흔적’은 공간화랑 전체 면적에 걸쳐 배치된 장소특정적 설치작품이다. 전시장의 천정에 매달린 오브제는 마이미스트들이 언어를 배제하고 종이로 행위로 소통을 시도하며 연출을 구상하던 자리에 김승영이 우연히 참여하면서 아이디어를 얻은 작품이다. 그는 몇 명의 사람을 모아 넓은 종이를 매개로 한 자유로운 행위로 서로에게 원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개미’에서 자신과 상대방의 더듬이를 맞대고 비비는 행위로 서로의 기억을 교환하는 개미들의 소통을 연상하게 하는 이 행위의 결과로 김승영은 소통의 흔적이 남은 종이들을 얻게 된다. 그것들을 이어 붙여 커다란 오브제 형태로 만들어서 전시장에 매달아 놓음으로써, 그는 우연성에 기초한 소통의 흔적을 시각적으로 재현해 놓았다.

흔적_혼합재료_가변크기_2008

흔적_혼합재료_가변크기_2008
오브제 아래에 언뜻 심연(深淵)처럼 자리 잡은 물은 오브제와 그 배경을 은은하게 반영하고 있다. 위쪽에 있는 유리창을 통하여 들어오는 햇빛의 각도가 변하면서 매 시간 다른 분위기의 공간을 반영하는 물은 명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냄과 동시에 공간의 차원을 확장시킨다. 동시에 관객으로 하여금 작품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소통을 하게 함으로써 진지한 사고의 모멘텀을 가질 수 있게 한다. 그 위로 떨어지는 물방울은 생각보다 큰 소리를 내며 물 위에 비친 영상에 잔잔한 파문(波紋)을 만들어낸다. 전시장의 입구부터 내부 깊은 곳까지, 수많은 이름들이 박혀 있다. 작가가 그 동안 살아오면서 기억 속에 들어온 사람들의 이름을 공간화랑의 내부에 있는 각각의 벽돌 위에 투명한 글씨로 붙여 놓은 것들이다. 긴 시간의 흔적이 드러나는 벽돌 위의 이름들은 어떤 것은 선명하게, 어떤 것은 오랜 시간 벽돌과 함께 닳고 지워진 듯 존재하는데, 마치 여러 차원들의 시간이 남긴 흔적들이 중첩되어 있는 것 같다. 차원의 통로를 부유하는 기억의 편린들을 은은하게 재현해 놓은 이 이름들을 김승영의 기억을 통해 만들어진 하나의 소우주(小宇宙)로 읽을 수 있다면, 이 소우주의 흔적 속에 존재하게 된 관객은 그 흔적들로부터 궤도가 다른 자신만의 소우주를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각자의 소우주들이 서로 얽히고 겹쳐져 서로 연결되어 있는 모습은 ‘나’라는 존재의 한 순간이 우주의 삼라만상과 맞닿아 있다는 일념삼천(一念三千)의 가르침을 상기하게 한다. 소극장 공간사랑에는 싱글채널 비디오작품 ‘기억’(2008)이 상영되고 있다. 영상은 깔끔한 스크린이 아니라 투박한 벽돌 면 위에 투사된다. 자신의 윤곽이 그림자처럼 드리운 벽면 위에 그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이름들이 장식적인 요소 없이 그저 지나간다. 마치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감도는 적막한 분위기도 있지만, 작곡가 오윤석이 작업한 서정적인 음악은 전체적인 분위기를 차분하면서도 몽환적인 느낌으로 이끈다.
19세기 독일 낭만주의 철학자 니체의 ‘자기 변혁을 통한 초인화의 과정’을 미술의 치유적인 과정과 연결시키며 아방가르드 미술의 정신적 기원을 분석한 사람으로 미국의 미술비평가 도널드 쿠스핏(Donald Kuspit)이 있다. 그는 예술을 통해 삶의 고통에서 해방되고자 했던 아방가르드 작가들의 초월성에 의한 의지가 예술작품의 치유적 속성을 긍정하고, 자발성과 종합성, 변화에의 의지, 현실과 예술적 감수성의 조화 같은 미학적 균형을 추구했다고 주장했다. 서정성과 명상적 분위기를 추구하는 형식미, 기억과 소통과 같은 정신적 요소를 일관되게 지향하는 김승영의 작가적 정체성에서 동시대 대중이 열광하는 자극적, 물신적 트렌드를 찾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그에게서는 ‘예술을 수단으로 사회적인 명성과 부를 추구하는 천박성’ 대신에 예술의 치유적인 실천을 통해 자신을 변화시키고 타인에게 위안을 줄 수 있다는 예술론으로 무장한 아방가르드 작가들의 충만한 의지와 함께, 동시대의 병리적 현상에 대한 깊은 감정이입과 실천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 고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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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심
오동展 / ODONG / painting
2008_1205 ▶ 2008_1231

오동_그래도 당신이 잘 지내길 바랍니다_캔버스에 유채_91×73cm_2008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9:00pm
쌈지 일러팝_SSAMSIE ILLUPOP
서울 중구 명동2가 54-37번지 명동안나수이 3층
Tel. +82.2.773.2775
www.ssamzie.com
일러스트와 팝아트를 접목하여 신선하고 크리에이티브한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공간 쌈지 일러팝에서 오는 12월5일부터 12월31일까지 일러스트레이터 오동의 [변심]展을 전시한다.
나는 당신이 했던 말이나 얘기엔 관심이 없었다. 얘기는 얘기에 불과하고 남은 것은 몸이다. 사랑에 대한 환상들이 너무 많아 때론 그것들이 짜증나기도 한다. 영화나 대중가요, 광고, 드라마 등을 통해 재생산 되는 사랑이란 것이 실제의 삶에선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사랑의 감정이 어떤 건지 모르지 않지만 그것은 과장된 것이 아닐까? 왜 그렇게 부풀려 졌을까? 이런 의문에서 이 작업은 시작됐다. 희미해진 기억 속에만 있는 옛 연인의 모습을 떠올리고 그들은 지금 뭘 할까 생각할 때가 있다. 한때 뜨거웠던 것들은 단지 생리적 욕구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닐지. 생리적 욕구에 감상적 낭만이 겹쳐져 사랑에 대한 지나친 환상이 만들어 진 것은 아닐지. ■ 오동

오동_사랑했지만_캔버스에 유채_53×41cm_2008

오동_사랑밖엔 난 몰라_캔버스에 유채_53×41cm_2008
일러스트레이터 오동은 상업적인 일러스트를 그리면서도, 한편으로는 늘 개인 작업을 꿈꾸고 있는 작가다. 지난 여름 쌈지스페이스 옥정호작가 작업실 흰 벽에 마이너리티를 컨셉으로 한 드로잉 작업을 진행했던 작가는, 주문을 받아 그리는 일러스트가 아닌 진짜 자신의 작업을 하고 싶다는 욕망을 섬세한 선들을 통해 흰 벽 가득 쏟아내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매일매일 꿋꿋이 자신의 작업을 하는 작가 자신, 또는 자신과 같이 현실에 의해 욕망을 억누르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을 누군가를 생각하며 그림을 그렸던 오동 작가가 이번 일러팝 전시에서는 너무도 익숙한 소재, 사랑에 주목한다.

오동_이 죽일 놈의 사랑_캔버스에 유채_53×41cm_2008

오동_사랑이 그렇게 쉬워_캔버스에 유채_53×41cm_2008
사랑은 설레는 그 순간이 참 특별하고 아름답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흔하디 흔한 존재다. 너무도 익숙하게 이야기되고, 또 너무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소재이기에 가끔은 사랑이라는 것 자체가 짜증스럽고 피곤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작가는 사랑의 그런 이중적인 면에 주목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이라는 것이 진짜일까, 사실은 불필요할 정도로 과장되어 전달되는 것이 사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된 이번 작업들은 섬세하면서도 어딘가 쓸쓸한 묘한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오동_소주_종이에 수채_41×53cm_2008

오동_맥주_종이에 수채_41×53cm_2008
규모가 거대한 대형 작업보다는 작은 사이즈의 작업을 즐겨 하는 오동은 이번 전시에서도 자그마한 사이즈의 작품들을 다수 선보인다. 모든 면이 인간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오히려 작은 것들에서 더욱 큰 것들을 볼 수 있는 것 같다고 믿는 일러스트레이터 오동. 그가 전달하는 사랑에 대한 감정을 지금 일러팝에서 만나보자. ■ 쌈지 일러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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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명수展 / HAMMYUNGSU / 咸明洙 / painting
2008_1129 ▶ 2008_1218 / 월요일 휴관

함명수_Book_캔버스에 유채_89.4×130.3cm_2006~2008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이미지 속닥속닥 Vol.080619g | 함명수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8_1211_목요일_05:00pm
스페이스향리 기획초대展
관람시간 / 11:00am~7:00pm / 월요일 휴관
가회동60 스페이스 향리
GAHOEDONG60 space HYANGLI
서울 종로구 가회동 60번지
Tel. +82.2.3673.0585
www.hyangli.com
회화의 방법적인 문제가 캔버스 밖으로 확장되고, 붓을 떠난 회화들이 등장하는 현대 미술계에서 함명수의 회화는 독자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현대 회화가 캔버스를 하나의 경계 혹은 ‘진부’한 것, ‘억압’의 틀로 간주하고, 예를 들어 사진이 가진 극 사실적 효과를 끌어들이는 등 타 장르와의 교류를 통해 끊임없이 캔버스라는 틀 밖으로 나가기 위해 시도를 하고 있는 것에 작가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방법론적인 관점에서 함명수의 회화는 오히려 붓의 터치와 색상의 탐구에 ‘집착’하는, 회화의 근본에 충실한 경향을 보인다. 형식적인 면에 있어 붓의 터치를 이용하여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작가는 ‘인상파적’ 접근 방식과 유사한 면모를 보이나, 드러나는 기표적 특성만으로 작품을 판단한다면 작가의 의도를 오해할 수도 있다.

함명수_Bomb_캔버스에 유채_91×116.8cm_2008

함명수_Pistol_캔버스에 유채_112.1×162.2cm_2008
작가는 창조자로서 작가 자신과 대상으로 간주되는 창조물로서의 회화에 객관적인 거리를 두는 듯 하다. 작가는 그린다는 행위에 있어 소재에 집착하여 소재의 물성, 주관성에 초점을 두기 보다 소재를 시각화 하는 방법론에 더욱더 관심을 기울인다. 함명수에게 그림의 소재는 그야말로 하나의 대상이며 작가가 회화의 본질적 요소를 탐구하는 데에 필요한 하나의 물질인 것이다. 그는 작가 노트에서 ‘세상과 호흡하며 어떤 대상을 충분히 기록, 재현할 수 있으리라 믿지만 작업을 실행할수록 그림의 존재, 회화의 현실을 직시하고 자각하게 되는 것 같다. 이것이 사물을 그리기보다는 터치들을 그리게 된 이유이다. 회화에 있어서 터치와 색채는 그림의 존재이며 본질적인 요소로 생각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함명수_Skeleton_캔버스에 유채_162.2×130.3cm_2008
세필로 캔버스를 매워가며 이루어지는 작가가 회화의 본질로 간주하는 터치와 색채에 대한 끈질기고 집요한 연구는 자화상, 초 등 전통적인 소재로부터 건축물, 채석장, 민들레, 달, 해골, 자동차, 권총 등에 이르기까지 현대적 소재를 넘나든다. 그림에 형상화되는 카테고리화 될 수 없는 폭넓은 오브제 선택에 대한 해석은 유동적인 관점에서 관람자의 자유의지에 맡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회화의 표면에서 드러나는 뜨개실의 보푸라기 같은 마띠에르는 고요하고 엄숙한 슬로우 무브먼트의 흔적이며 붓 터치들은 고스란히 시간의 흔적이 된다. 작가는 회화의 진행을 이야기 할 때 ‘그린다’라는 단어 대신 ‘올린다’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이것은 캔버스 위에 물감을 여러 번을 겹쳐 그리는 것을 빗대어 하는 말로 마치 여러 장의 레이어를 한 겹 한 겹 포개어 올리는 듯한 과정을 의미한다. 마치 실험실에서 여러 표본을 탐구하듯 작가는 서로 다른 소재가 담긴 여러 개의 캔버스를 열거하고, 이 작품들의 병렬적 진행을 군무적 형태로 서서히 완성시킨다. 이 과정에서 함명수는 ‘대상의 의미보다는 그림 그 자체의 변주와 증식(작가 노트 중)’에 흥미를 느끼며, 반복적인 듯 보이나 결코 기계적 균일한 반복이 아닌 이 붓 터치들은 평면의 캔버스에 입체감, 공간감을 부여하면서 회화의 본질에 대한 작가의 심층적 연구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 김윤경

함명수_Volkswagen_캔버스에 유채_112.1×162.2cm_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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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_landscape
김대옥展 / KIMDAEOCK / 金大玉 / painting
2008_1205 ▶ 2008_1220 / 일요일 휴관

김대옥_air show_캔버스에 유채_50×70cm_2008
초대일시_2008_1205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 무이_GALLERY MUI
서울 서초구 서초동 1658-14번지 무이빌딩 1층
Tel. +82.2.587.6123
cafe.naver.com/gallarymui
김대옥 작가의 말을 빌면, 이번에 전시할 작품은 풍경화시리즈입니다. 작가는 우울하고 고단한 현대인의 향수를 풍경화에서 찾으려 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면 그가 말하는 풍경은 어떠한 풍경일까요? 퐁텐블로 숲을 찾아 들어갔던 바르비죵 화가들의 그것과 같은 것일까요? 아니면 모더니즘 시대를 통해 본질을 찾으려고 처절하게 몸부림쳤던 아방가르드 화가들의 화면일까요? 그런데 김대옥의 작품은 전원풍경에서 받은 빛의 인상을 포착하는데 집중하고 있지는 않고, 히스테리컬한 날카로운 붓질 속에서 드러나는 도시인들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그러면 21세기를 사는 이 작가는 무슨 광경을 묘사하고 있을까요? 작품을 살펴 보겠습니다.

김대옥_yacht race_캔버스에 유채_72×90cm_2008
「에어쇼」라는 작품 제목을 볼 때, 하늘색 바탕은 하늘이겠고 흰색 창자모양은 구름이겠으며, 검은 두 개의 선은 비행기겠습니다. 두 비행기가 하늘을 가르며 뭉게뭉게 구름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은 사실 그다지 실제적으로 표현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또한 비행기, 하늘, 구름의 관계가 어떠한 이야기를 말하고 있다거나, 하얀 창자 같은 구름 모양이 흡사 하트형태와 닮아 있다는 그런 알레고리 문제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정지! 그가 붙잡고 있는 찰나를 살펴보면, 활발한 움직임과 요란한 굉음이 있을 법한 상황의 한 순간, 즉 연속적인 움직임의 진동이나 소음은 사라지고 정지의 순간만이 표현적인 붓질로 남아있습니다. 남아 있는 붓질에 의해 꽤 미묘한, 정적이자 동적인 화면만이 남는 것입니다. 다른 작품을 보겠습니다.

김대옥_파도_캔버스에 유채_65×90cm_2008
초록 바탕에 배가 비스듬히 놓여있습니다. 배를 보면 초록 바탕은 바다여야 합니다. 동시에 초록색 배경에 집중하여 푸른 초원으로 본다면 배는 실제가 아닌 모형을 그린 것이어야 합니다. 한편, 배의 실제적 표현과는 반대로 바탕은 평평합니다. 이 배경은 배가 묘사하는 실제성에 적합하게 묘사되어 있지 않아 보입니다. 배는 반복적으로 화면을 구성하지만 배경은 그러한 배를 담담하게 드러냅니다. 작가는 이러한 상호작용에 대해 집중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작품을 보겠습니다.

김대옥_river_캔버스에 유채_73×116cm_2008
회색배경에 배 형상도 있고 파도도 있습니다. 그림을 구성하는 요소들의 관계상 이것은 어느 흐린 날 증기선이 연기를 내뿜으며 거친 파도의 한 가운데에 떠 있는 바다풍경입니다. 그런데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하늘과 증기선은 평평한 붓질로 그려져 있고, 파도만 거친 불질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배가 폭풍 속에서 흔들리는, 마치 위험천만한 순간에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한 묘사이기에는 배의 위치가 덜 극적입니다. 우울한 회색톤 화면, 그리고 조용히 증기를 내뿜지만 부동의 수동적 형태를 보여주는 정지 상태의 배, 마지막으로 대조적으로 분출하는 붓질은 어쩔 수 없는 현대인의 우울함을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또는 무엇을 재현하기 이전, 또는 형상이 만들어지기 전의 붓의 스트록strokes만이 남아 배의 수동성과 파도의 분출 가운데서 미묘한 진동을 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결국 작가는 한 화면안에 서로 다른 요소들을 녹여내고, 그 화면은 진동의 흔적과 지나간 붓 자국으로 표출됩니다.

김대옥_파도타기_캔버스에 유채_50×70cm_2008
처음 김대옥의 최근 작품을 보았을 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어 작품 스타일이 좀 바뀌었네…" 그런데 좀 더 살펴보니 "글쎄… 그런데 여전하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김대옥 작가는 끊임없이 그립니다. 그는 여전히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림에 대해 얘기합니다. 그가 얘기하는 감성은 습관적이고 기계적인 그림 행위로 표출되지는 않습니다. 뭔가 자극적이고 새로워 보이는 제스춰는 없지만 꾸준히 그리고 조금씩 진화합니다. 그것이 그의 강점이겠고, 그래서 그의 화면은 살아있습니다. 살아있는 상품은 만나기 쉬워도 살아있는 그림은 사실 만나기 쉽지 않습니다. 그의 그림이 살아있는 것은 그 꼼지락거리는 감성 때문입니다. 의도적으로 무엇인가를 말하려 하지도 않고 전략적이지도 않지만 은근과 꾸준함이 있습니다.

김대옥_뚝섬_캔버스에 유채_50×70cm_2008

김대옥_springboard diving_캔버스에 유채_50×70cm_2008
이번 풍경 시리즈도 3년 전 그의 개인전서 보여준 자화상 시리즈와 동물원 시리즈에서 보여주었던 페인팅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그가 말하는 풍경은 그가 꼼지락거리는 시각으로 본 세계이겠습니다. 그의 시간은 그가 그린 풍경 속 은근한 긴장감만큼이나 꾸준하며 질긴 생명력으로 항상 동일한 속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갑자기 빨리 뛰려 하거나 또는 비행기 같은 운송수단을 이용하여 날려 하지도 않습니다. 그의 속도는 그의 그림이 포착하고 있는 만큼 정지되어 있는 듯하며 과도한 움직임의 노력 또한 하지 않습니다. 그가 주시하는 모티브도 그러합니다. 하루하루 변화무쌍하고 스피디하여 무엇인가에 쫓기는 긴장된 생활 속에서는 보기 어려운 시각에 의한 풍경입니다. 바로 이러한 풍경이 그가 현대인들에게 제시하는 향수의 메시지입니다. ■ 오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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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혹되다_infatuated
이성아展 / LEESUNGA / 李聖雅 / painting
2008_1210 ▶ 2008_1215

이성아_미혹Ⅳ_장지에 수간채색_123×200cm_부분_2008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이성아 홈페이지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월~금_10:00am~06:30pm / 주말, 공휴일_10:00am~06:00pm
공화랑_GONG 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 23-2번지
Tel. +82.2.735.9938
gonggallery.com
미혹되다 / [동사] 1 『…에/에게』 ⇒미혹. / 어리석은 생각에 미혹되다 / 2 ⇒미혹. 迷惑 / [명사] 1 무엇에 홀려 정신을 차리지 못함. / 미혹을 끊다 / 미혹에서 벗어나다 / 2 정신이 헷갈리어 갈팡질팡 헤맴. / 너희에게는 더욱 길고 괴로운 방황과 미혹의 세월이 기다린다는…. 『이문열, 사람의 아들』 ■ 제공_국립국어원

이성아_미혹Ⅳ_장지에 수간채색_123×200cm_2008
정보의 홍수 속에 살아간다는 것은 무수히 많은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내포하고 있는데, 삶이 풍요로워지는 반면 중요한 것을 분별해낼 수 있는 판단능력의 상실이 그 중 가장 크다 할 수 있다. 자신의 삶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지 정확히 인지하고 조절할 이가 얼마나 될까.

이성아_미혹Ⅱ-atropos_장지에 수간채색_71×130cm_2008
나의 그림은 이런 다양한 정보 중에서 누구나 어린 시절부터 접해온 동화, 설화, 신화나 전설과 같은 [이야기]들에서 시작한다. 이 이야기들을 살펴보면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재를 막론하고 일맥상통하는 부분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운명에 관한 직접적인 이야기로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운명의 세 여신 (Cloto, Lachesis. Atropos)과, 우리나라의 ‘감은장 아기 설화’ 등이 그렇고, 운명을 모티브로 한 물건에 관한 이야기로는 ‘신데렐라’, ‘빨간 구두’ 등의 동화와, 우리나라의 ‘야광귀(신발 훔쳐가는 귀신)’전설 등을 찾을 수 있다. 신발이란 소재는 과거 뿐 아니라 현재에도 ‘운명’의 메타포로서 작용하는데, 대표적인 예가 드라마와 영화로 제작되었던 ‘Sex and The City' 이다.

이성아_거짓말쟁이Ⅰ_장지에 수간채색_160×100cm_2008
또 다른 예로 ‘욕망’에 관한 것으로는 ‘삼손과 델릴라’에서 삼손이 욕망에 눈이 멀어 자신의 힘을 잃어버리게 한 도구로서의 매체가 머리카락 이었으며, 이 외에도 여러 이야기에서 속세와의 연을 자른다는 의미로서 머리카락을 가리거나 자르고 수행에 들어간 수녀과 스님의 이야기들이 많다.

이성아_거짓말쟁이Ⅱ_장지에 수간채색_100×50cm_2008
이런 식으로 얻어진 스스로 할 이야기를 많이 가지고 있는 각각의 기호(신발, 머리카락, 빨간 실, 가위, 열쇠, 사과, 레몬 등)들은 그림 속 인물들에게 녹아 비로소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이성아_죄_너무 길다Ⅰ_장지에 수간채색_160×100cm_2008
자신이 가진 운명의 빨간 실은 보지 못하고 다른 것에 눈이 멀거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열쇠는 보지도 못한 채 서성이고, 달콤한 거짓말로 상대방을 미혹시키는 등, 자신들의 공간에서조차 번민하고, 현실에 밀착되지 못한 채 거짓과 진실의 경계속에 부유하는 화자들은 거울을 통해 그림 밖 세상과의 접점을 가지게 된다. 거울은 하나의 주체로서의 자기를 처음으로 깨닫게 하는 대상이라 했던 라캉의 말처럼 관람자가 거울을 통해 그림속의 인물을 관람자 자신의 자화상이라 인식함으로 자신을 되돌아보고 성찰과, 공감을 이끌어 내기위한 장치이다.

이성아_죄_너무 길다Ⅱ_장지에 수간채색_160×100cm_2008
하루하루 일기를 쓰듯 그려진 그림들. 자유로와 갑갑하고, 젊어서 아득한 내 스물의 자화상이다. ■ 이성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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