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대

1360  2/68   회원가입 회원로그인
  View Articles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2009-01-31 13:07:31, Hit : 825)
전시 1.31



Speeding Light

금혜원展 / KEUMHYEWON / 琴惠元 / photography

2009_0203 ▶ 2009_0218 / 주말, 공휴일 휴관



금혜원_Speeding Light 5_가변설치_2008_부분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금혜원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9_0203_화요일_06:00pm

관람시간 / 09:00am~06:30pm / 주말, 공휴일 휴관




송은갤러리_SONGEUN GALLERY
서울 강남구 대치동 947-7번지 삼탄빌딩 1층
Tel. +82.2.527.6282
www.songeun.or.kr






금혜원의 「질주하는 빛 Speeding Light」 시리즈는 우리가 익숙하게 환기할 수 있으면서도 실상은 응시한 적이 거의 없는 지하철 내부에 대한 르포르타주를 넘어선다. 작가가 터널 속으로 실제로 들어가 "검은 먼지에 섞은 특유의 냄새"와 "찢어질듯 한 소음"을 각오하고 포착한 이 정지 이미지들은 사진의 매체적인 본성에 대한 고전적인 질문과 현대사진이 제기하는 특유의 문제적인 대상들을 함께 노출한다.




금혜원_Speeding Light 2_가변설치_2008


지하철의 찰나적 질주가 스펙트럼으로 환원되는 이 일련의 사진들은 스냅쇼트의 전통을 충실히 따른다. 스냅쇼트는 두 개의 속도들이 마주칠 때 정지 이미지로서 인화된다. 움직이는 물체의 속도와 이를 포착하는 셔터의 속도가 그것들이다. 셔터의 속도는 운동의 궤적을 잠시나마 붙잡아 빛의 흔적으로 인화할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움직이는 물체의 생명감을 상실한다. 스냅사진은 삶의 연속적인 흐름에 개입하여 순간의 단편을 추출할 수 있지만 그 결과는 언제나 삶의 안티테제이자 생명의 구성적인 이면인 정지, 심연, 죽음으로 이어진다. 그 삶의 실체가 인간의 통제력과 지각의 한계를 넘어선 기계의 시공간적 역동성이라면 운동과 정지, 삶과 죽음의 역설은 심화된다. 금혜원이 작업노트에서 "빠르게 스쳐가는 지하철의 속도"와 "엄청난 소음으로 잠시 잠깐 정지된 터널의 공기" 사이의 균열을 보았다고 말할 때 그는 스냅쇼트의 이 본원적 역설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금혜원_Metro-Meteor 1_디지털 프린트_135×90cm_2008


그 역설이 프레임 내 소실점으로 빨려 들어갈 때 관객은 사진적인 체험의 한 극한과 조우한다. 관객은 여기서 지하철이 터널 내 일정한 지점을 관통하던 당시의 현재를 체험하기를 기대한다. 그 기대에 부응하듯 사진사는 전철이 통과하는 순간이라는 사건을 마주하기 위해 "너무나 일찍(too early)" 터널 내의 한 지점에 당도하여 심호흡을 하고 숨을 죽였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셔터는 객차의 윤곽과 주파를 담아내기에는 항상 "너무나 늦기(too late)" 마련이다. 금혜원의 사진들은 스냅쇼트의 본원적 존재조건인 "움직이는 실재"의 포착이 "너무 일찍"과 "너무 늦게"라는 이중적 불가능성에 사로잡혀 있음을 입증한다. 이 이중적 불가능성이 티에리 드 듀브(Thierry de Duve)가 말했던 사진적인 체험의 한 극한인 것이다. 빛의 스펙트럼들이 이루는 매혹적이면서도 비인간적인 날카로움은 운동의 수행을 완벽히 담아내는데 항상 실패하는 스냅쇼트의 운명을 환기시킨다. 추상적 색들의 선은 사실상 지하철이 통과한 그 순간의 갑작스러운 소멸이 남긴 외상의 흔적인 셈이다.




금혜원_Metro-Meteor 5_디지털 프린트_90×135cm_2008



금혜원_Metro-Meteor 7_디지털 프린트_60×100cm_2008


외상의 여파 뒤에 렌즈가 목격하는 것은 "숭고한 어둠의 아케이드"와 그 속에 도사린 "비현실적 고요함"이다. 충분히 형상적으로 포착되지 못한 지하철의 사라짐을 보상하듯 터널의 디테일들이 신비롭고도 육중하게 프레임 내부를 채운다. 스냅쇼트가 고집스럽게 고수하고자 했던 순간성의 시제가 이 시점에서 과거 시제로 이행한다. 스펙트럼이 전달했던 상실의 충격은 이러한 시제의 이행과 더불어 그 충격에 대한 애도로 이어진다. 프로이트의 고전적 정의에 따르면 애도는 대상의 상실을 인정하고 그 대상에 대한 애정을 다른 대상으로 되돌리는 작업이다. 충격의 순간을 극복하고 애도의 제스처를 받아들이면서 사진은 현실적 시간에 대한 직접적인 참조를 넘어 일종의 영원성("시간이 정지된 듯"한 느낌)을 지향한다. 금혜원의 사진들이 스냅쇼트이면서도 노출사진(time exposure) 특유의 심도를 유지하는 까닭은 이 때문이다. 이제 관객은 스냅쇼트의 이중적 불가능성이 남기는 한 극한에서 사진적인 체험의 또 다른 극한으로 이동한다. 스냅쇼트와 노출사진, 사진의 본원적인 매체 특정성을 지탱하는 이 두 극단적 체험들의 공존이 금혜원의 작품들을 참된 사진적 대상으로 인증한다. ● 이러한 설명은 금혜원이 한편으로는 전통적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현대적인 사진 예술가임을 입증한다. 먼저 전통적인 측면. 이 터널 시리즈를 보면서 한편으로 내가 떠올린 작업은 토마스 데만트(Thomas Demand)의 1999년 필름 작업인 「터널」이었다. 데만트의 영화는 겉으로는 다이애나 공주의 자동차 사고가 일어난 그 터널의 트래킹 쇼트들을 보여주지만 실상 이 터널은 인공적으로 건축된 것이다. 이 작품을 통해 데만트는 우리가 현실이라고 믿는 재현물이 사실상은 관찰자의 의도와 매체 이미지를 포괄하는 복잡한 의미망에 의해 구축되어 있음을 환기시킨다.




금혜원_Metro-Meteor 10_디지털 프린트_90×135cm_2008


이 작품은 현실의 재생산보다는 그러한 재생산을 지배하는 인지적, 기호적인 과정들에 대한 질문이 현대사진의 문제적인 대상임을 일깨운다. 데만트의 작품들이 발산하는 인공적인 모호성 대신 금혜원은 피사체와의 직접적인 대면을 통한 실재적 모호성을 지향한다. 달리는 지하철과 그것의 사라짐 뒤에 항상 잔존하는 터널의 정지된 심연이 공존하면서 일으키는 정지와 운동, 균형과 불균형 사이의 진동, 그것이 실재적 모호성의 중핵이다. 오늘날 사진은 바로 그 진동의 영역으로 관객의 지각을 인도하여 우리가 살고 있는 비가시적인 세계의 측면을 드러내주고, 현대적인 경험을 증폭시킴으로써 예술적 매체의 유효성을 입증한다. 그런 의미에서 금혜원의 사진은 다시 한 번 현대적이다. ■ 김지훈

-----------------


symbolism

이유선展 / LEEYOUSUN / 李有仙 / painting

2009_0204 ▶ 2009_0209



이유선_symbolism-청탑위 전투기_장지에 혼합재료_130×162cm_2008




초대일시_2009_0204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2:00pm~08:00pm




벨벳 인큐베이터
VELVET INCUBATOR
서울 종로구 팔판동 123-3번지
Tel. +82.2.736.7023
www.velvet.or.kr






symbolism ● 화려한 듯 끝없이 높은 건축물로 이루어진 도시에 모습은 고도로 성장된 사회를 보여준다. 하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끝없이 이어지는 이념과 이해관계에 대립이 존재하고 이런 대립들은 마치 전쟁과도 같다. 일반적으로 건축물이란 일정 기간 동안 그 형상이 필요하기 때문에, 혹은 그것이 제공하는.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인간이 지은 지면에 고정되는 구조물을 뜻한다. 허나 나에게 보여 지는 건축물들은 이미 인간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이미 그곳은 사람이 사는 공간에 역할이 없어지고 사람들에 이해관계에 대립이 전쟁처럼 치열히 일어나는 곳이다. 이런 치열한 대립은 눈으로 보이지 않지만 텅 빈 것 같은 허무감을 만들어 낸다. 직선의 교차로만 만들어진 건축물에 모습은 인간에 모습이 상실된 텅 빈 공간일 뿐이다.




이유선_symbolism-도시위 전투기_장지에 혼합재료_130×194cm_2008



이유선_symbolism-교회위 전투기_장지에 혼합재료_70×50cm_2008


이런 인간관계의 대립 속에서는 아이러니한 일들이 일어난다. 도시 안에서 하나의 상징물로 자리 잡고 있는 수많은 십자가들에서 이런 이념적 대립들이 보여 진다. 십자가는 종교를 상징하는 대표물이고 종교들은 대부분 평화와 사랑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런 이념들은 사람들에 이해관계 속에서 갈등을 일으키고 이념적 갈등과 대립의 극단적 상황이 바로 전쟁인 것이다. 결국 정 반대인 듯 보이는 두 단어가 하나로 이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만들어진다.




이유선_symbolism-건축물_전투기_장지에 혼합재료_130×97cm_2008



이유선_symbolism-건축물 전투기_장지에 혼합재료_162×130cm_2008


결국 십자가에 대체된 전투기는 사람들의 이해관계와 사상적 대립을 통해 수없이 일어나는 파괴와 허무감을 나타내는 새로운 하나의 상징물로서 보여 진다. 결국 본래에 상징성이 상실된 허무에 공간만이 남는다. ■ 이유선




이유선_symbolism-탑 전투기_장지에 혼합재료_194×130cm_2008



이유선_symbolism-건축물 전투기_장지에 혼합재료_194×130cm_2008


--------------------


Compelling Images 또는 사로잡는 환영(幻影)

2009_0113 ▶ 2009_0131 / 일요일 휴관



오우암_초저녁 바람따라_캔버스에 유채_60.6×91.9cm_2007




초대일시_2009_0114_수요일_05:00pm

참여작가
오우암_조순호_정석희_공성훈

관람시간 / 월~목_11:00am~06:30pm / 금_11:00am~07:00pm
/ 토_11:00am~05:00pm / 일요일 휴관 / 공휴일 휴관(전화예약관람가능)





아트포럼 뉴게이트
ARTFORUM NEWGATE
서울 강남구 신사동 643-20번지 프라임빌딩 1층
Tel. +82.2.517.9013
www.forumnewgate.co.kr






오우암 선생님은 6.25 전후의 암울한 시절의 우리네 사는 모습과 시대상을 반복해서 화폭에 담아내십니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오우암 작가의 절실한 영상은 작가에게는 상처에 대한 치유의 과정이기도 하지만, 관람객들에게는 몇십 년 전의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짙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사람들로 붐비는 철도역 풍경, 유랑극단이나 악대가 손짓하는 저녁의 극장 주변, 철길에서 새벽에 통학열차를 기다리는 학생들,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억센 몸짓이 보이는 인물들이 빽빽한 화면을 나이브 아트의 순수하고 단순한, 그러나 깊이 있는 유화의 붓질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오우암_구름다리_캔버스에 유채_72.7×91.9cm_2007



조순호_파랑새_한지에 수묵담채_57×45cm_2007



조순호_나무와 새_한지에 수묵_60.0×72.2cm_2007


조순호 선생님은 강한 에너지로 빠른 속도로 긋는 짙고 굵은 붓이 이루어내는 꽃, 새의 이미지를 보여줍니다. 수많은 파지를 낸 끝에 한두 점 건지는 수묵작업의 에너지로 그가 주는 새 또는 꽃의 이미지는 강한 힘을 전하며 뇌리에 오래 남는 이미지, 간결하지만 대상과 여백과의 힘겨루기를 보여줍니다.




정석희_9W의 비내리는 숲_린넨에 유채_53×65cm_2008



정석희_오렌지카운티의 겨울숲_린넨에 혼합재료_91×91cm_2008


정석희 선생님은 그가 오랫동안 생활한 뉴욕시 주변의 숲, 뉴욕의 건물들, 그 안에 사는 왜소하고 힘든 삶의 인물을 밀도 있는 묘사력으로 섬세하면서도 강한 기억으로 남는 작품을 보여줍니다. 그에게서 방안에 놓여 있는 소파와 그 소파에 앉아있는 길게 늘어진 인체, 창밖의 도시풍경은 인간의 원천적일 수도 잇는 깊은 고독과 인간 간의 소통의 단절을 전해주는 작품들입니다.




공성훈_호수공원_캔버스에 유채_60×120cm_2007



공성훈_호수공원_캔버스에 유채_130.3×193.9cm_2007


공성훈 선생님은 서울이라는 대도시 근교의 여러 생활상에 주목해왔습니다. 대도시의 보조역할을 하는 주변도시의 역할과, 인공으로 조성된 만들어진 자연의 형태의 기이함에 우리들의 주의를 환기시킵니다. 가끔 그가 그려주는 이상적인 장면은 온 가족이 석양을 함께 맞는 호수공원, 야간 조명을 받아 명징하면서도 고요한 눈 온 풍경, 물 위에 심어진 조경석(造景石)과 멀리 보이는 다리 등, 현대 도시생활에서 보이는 인공물과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주목합니다. 강한 색채의 대비, 빛과 대상과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파고들고 있습니다. ■ 염혜정

------------------



Dissolve: In-form/De-form/Per-form

MICHELLE LEE展 / photography

2009_0122 ▶ 2009_0204 / 일요일 휴관



MICHELLE LEE_Smoke Rising in Val Verde_디지털 프린트_30×40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MICHELLE LEE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9_0122_목요일_06:00pm

Boda Young Artist 지원 프로그램
후원_서울문화재단_월간 사진예술

관람시간 / 평일_09:00am~09:00pm / 토_09:00am~05:00pm / 주말,공휴일 휴관





갤러리 보다 컨템포러리
서울 강남구 역삼동 739-17번지
Tel. +82.2.3474.0013~4
www.bodaphoto.com






“We tell ourselves stories in order to live”_Joan Didion ● The photographs in this exhibition comprise an on-going body of work made in Los Angeles and Seoul. They were created in an effort to negotiate the dissonance that occurs when existing between two disparate cultures. Frequently transplanted, destabilized, and disoriented, my identity as a Korean-American has in the past, meant never accepting one definition of myself to be true. As a result, I have developed into the role of an insider outsider, a kind of ethnographer of her given culture, an auto-ethnographer. My practice gives form to instincts that have shape my way of interpreting and interacting with the world around me. At once it is an examination and performance on the notions circulating around identity, subjectivity and place. They are a work of translation existing at the intersections between what is traditional and contemporary, documentary and fiction, Korean and not Korean, American and not American.




MICHELLE LEE_How the Earth is Covered (Jeju Do)_디지털 프린트_30×40


The photographs are not so much extracted tokens from an on-going moment but are documents of an on-going performance, a fabricated reality for the camera. Staged actions are stilled to render visible the invisible psychological process of creating subjectivity. Playful associations are enacted in intentional locations to demonstrate the affect Place has on subjectivity. Daily objects are examined for indexical vestiges (traces) the body leaves behind after interacting with Place. The gallery space, in turn, is adopted as the unifying plane for photographs made independently of one another. Much like the illusion of movement provided by still images running at 24 frames per second through a projector, it is my intention to project onto this gallery an illusory fragmented filmic space, with each photograph standing in as freeze-frames derived from a fragmented personal narrative.




MICHELLE LEE_In Order to White Out_디지털 프린트_24×20


The producers of meaning not only include the photographer, but the subject and the viewer as well. Each agent creates a mutable and shifting relationship to meaning by engaging in the process from his or her own singularity. It is my intention to instigate within each participant the awareness of looking and how the act of looking creates the stories we live by. ■ MICHELLE LEE




MICHELLE LEE_If it Weren't for the Snow_디지털 프린트_20×24



MICHELLE LEE_The Daily Triumph of Objects_디지털 프린트_30×40


“We tell ourselves stories in order to live”_Joan Didion ● 전시에 올린 사진들은 로스엔젤레스 와 서울 사이에서 연계되어 만들어진 작품들로 구성되었다. 비교 될 수 없는 두 문화권 사이에서 존재하는 부조화성의 타협을 시도 해보기 위해 만들어진 작품들이다. 한국계 미국인으로써 과거 나의 정체성은 빈번히 이식되어지고 불안정감과 혼돈 속에 나 자신을 하나의 명료한 정의로 수긍 할 수 없었다. 그 결과로 나는 내부인 인 동시에 이방인 이었고 각각의 주어진 문화와 동시에 내 자신에 대한 관찰자적 시점을 가진 기록자로서의 역할을 가지게 되었다. 나의 이런 관습은 직감을 형태화 하였고 내 주의에 펼쳐진 세상을 해석하고 반응 하는 나만의 방식을 구체화 하였다. 곧 이것은 정체성, 주관성과 그 공백 주위를 맴도는 개념의 성찰과 실행 이였다. 그 작품들은 전통과 현대, 실록과 허구, 한국인 이면서 한국인 일수 없는, 미국인 이면서 미국인 일수 없는 교차점 사이에 존재함에 대한 해석이다.




MICHELLE LEE_Busan: Low_디지털 프린트_20×20


사진들은 진행되는(on-going) 순간에서 추출된 유물이 아니라 계속 진행되는(on-going) 행위의 기록이며 카메라를 위해 제작된 현실인 것이다.연출된 행위들을 정지시켜 주관성 제조의 감추어진 심리적 과정을 표출 시켜보았다. 일상적 사물들이 장소와의 상호 작용 후 그 물체가 남긴 표시된 흔적들을 관찰한다.각각 개별적으로 만들어진 사진들이 합성되는 공간으로 전시공간을 번갈아 재현해본다.일 초에 24장의 정지된 이미지들이 프로젝터를 통해 움직이는 환상으로 보이듯 각각의 사진들이 정지된 화면들처럼 조각난 개개인의 이야기를 부서진 파편 같은 영상의 영역으로 전시공간에 투영해 보려는 의도이다.




MICHELLE LEE_The Other Side of Eveningside Drive_디지털 프린트_30×40


사진작가 뿐 아니라 주제와 관찰자 또한 의미의 제작자 이다. 각 에이전트는 이 과정에 참여하여 각자 자신들의 특이한 점으로 인하여 개별적이고 이견 적 의미를 만들어낸다. 각 참여자간 보는 행위에서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의 의식된 시선을 유발시키는 것이 나의 의도이다. ■ MICHELLE LEE

-----------------


Neutral Space

이은실展 / LEEEUNSIL / 李銀實 / painting

2009_0130 ▶ 2009_0210 / 월요일 휴관



이은실_Into the hole_장지에 수묵채색_130×194cm_2008




초대일시_2009_0130_금요일_06:00pm

후원_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_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대안공간 풀_ALTERNATIVE SPACE POOL
서울 종로구 구기동 56-13번지
Tel. +82.2.396.4805
www.altpool.org






쉬... ● 이십 일세기가 시작된 지 이미 8년이 지났건만 우리 사회가 터부를 주제로 다루는 작가에게, 특히 그 사람이 여성이라면 그 여성에게 보내는 눈길은 더더욱 껄끄럽기만 하다. 과거 이은실 작가 작업의 소재들 또한 자극적이어서 그의 그림을 보고 야하다며 눈살을 찌푸리고 눈을 돌릴지 아니면 예술이니 해석을 해보리라 마음을 굳힐지 고민 하게한다. 갓을 쓴 조선시대 양반이 홀딱 벗은 아랫도리를 보이며 노상방뇨를 하거나 사정이 끝나고 성기를 늘어뜨린 모습, 머리가 풀어헤쳐진 알몸으로 물위를 떠다니는 여(자시)체, 썩은 듯 보이는 징그러운 내장, 페티시적으로 한 올, 한 올 자세히 그려진 털, 피를 흘리거나 발기되어 핏발이 선 붉은 동물의 성기 등이 주를 이룬다. 그녀의 2005년 작 「정말! 다들 화끈하게 일어나고 있잖아!」의 화면 여기저기에서는 부둥켜안고 있는 여러 쌍의 남녀들이 그려져 있으며 2006년 작 「대치」에서는 발기된 남성의 성기를 가진 여자와 남자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친절하게도 작가는 성행위가 일어났고 성욕이 분출되는 장면을 대면해야 한다는 불편한 상황에 대하여 우리에게 탈출구를 주고 있다. 화면의 맨 앞쪽에 전통가옥의 열린 문과 문지방을 그려주어 관객이 그림 안에 참여한다기 보다는 그 장면을 훔쳐보는 관음적인 위치에 놓아두고 그림에서 벌어지는 상황으로부터 어느 정도의 거리감을 유지하도록 허락한다. 이 거리 두기의 배려는 작가에게도 해당되는 듯하다. 「대치」에 등장하는 두 사람은 모두 남성의 성기를 가지고 있어 무슨 행위가 일어나기는 쉽지 않아 보이며 더구나 이들의 얼굴 모습 또한 그려져 있지 않아 벌거벗은 두 남녀의 상황이 어떻다는 작가의 주장보다는 부각시키려는 부분이란 맞아 떨어지지 않는 상황에 대한 불편함이라는 의도가 보인다. 그리고 거리 두기가 있기에 우리는 그의 그림을 춘화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성욕너머의 이야깃거리를 주는 즉, 남녀간의 성 역할을 논하는 페미니즘 예술로 분류하고, 동물과 인간들의 속성을 가르는 구조화된 전통건축공간의 역할을 논하며 이를 위해 채택된 동양화 기법들이 동시대적 전략이라는 담론을 시작할 수 있다.




이은실_Into the hole_장지에 수묵채색_130×194cm_2008_부분



이은실_Neutral space_장지에 수묵채색_50×90cm_2008


몇 년이 지난 지금 『젊은 모색』전과 이번 전시에서 보여지는 신작들은 작가가 이제 성, 욕구의 분출과 이를 터부시하는 사회구조에 대한 반항적인 입장의 직접적 표현에서 떠나 자신의 정체성으로 관심을 돌리고 있음을 시사한다. 자신의 위치를 찾아가는 그녀의 여정에는 예의 거리 두기를 위해 위치했던 문지방과 전통가옥 등 건축적인 요소들이 발견된다. 그 건축물들은 터부로부터 우리를 가르는 장치며 동물이 아닌 인간이 이상향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온 사고의 결과물인 사회규범을 은유 한다. 그리고 규범은 구조적으로 맞물려진 관습의 현현일 수밖에 없으므로 전통가옥의 형태를 가지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은실_Stuck_장지에 수묵채색_180×245cm_2008



이은실_Take off_장지에 수묵채색_160×190cm_2008


그러나 보는 이들의 심정을 불편 하게하는 미학은 한동안 이은실의 작업세계와 함께할 듯하다. 이번 연작에서도 전통가옥 안에서 고통받고 있는 동물의 형상이 등장한다. 무슨 동물인지 알 길이 없는 이 동물은 항문을 하늘높이 뻗쳐 들고 있으며 항문과 그 안쪽으로는 내장이 들여다 보인다. 그리고 또 하나의 전통가옥이 동물의 뱃속에 연결되어 들어앉아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전 작업과는 달리 이러한 동물이나 내장의 형태가 선명하게 보이는 것은 아니다. 안료를 종이에 흡수시키는 붓 터치를 여러 번 겹쳐 표현하였기 때문에 내장의 디테일한 표현이라는 것이 감이 잡히지만 그 정확한 모양새가 쉽게 드러나지는 않고 음습한 분위기가 강조된다. 그리고 이번 전시의 연작에는 여성으로 보이는 인물도 엉덩이를 치켜들고 반쯤 투명해진 자신의 뱃속을 들여다보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우리가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상황을 그로테스크하게 표현하는 방법은 진실을 들춰내기 위한 효과적인 전략으로 사용돼왔다. 어느 정도 관객공격적인 이 전략은 폴 매카시와 마이크 켈리 등 미술사에서 대를 이어 채용되어온 접근방법이다. 폴 매카시의 충격적인 이미지 중 하나인 「Cultural Gothic」(1992)을 예로 들면 이 작업은 아버지가 밥투정을 하는 아들에게 억지로 음식을 깔때기로 먹이는 행위를 담은 비디오로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가학적인 관계를 폭로하고 있다. 「Heidi」(1992) 작업에서는 우리의 천진난만 소녀 하이디가 할아버지와 함께 변태적 배설행위의 일원이 된다. 폴 매카시는 하이디라는 너무나도 친숙한 동화 속 여주인공을 우리에게 알려진 이미지와는 정반대되는 더럽고 천박하며 잔인한 행동을 할 수 있는 인물로 설정하였고 따라서 『알프스소녀 하이디』를 통해 서술되어온 권선징악과 같은 사회규범이 재 각인되는 cultural conditioning과정에 역류하고자 한다. 이은실에게 이 역류는 자신이 꾹꾹 눌러오다가 한 순간에 게워낼 수밖에 없다는 우리 안에 존재하는 동물적 행각의 표현이며 그리고 부분적으로나마 이대범이 말하는 '소문'으로 밖에 존재할 수 없는 터부이고 이번 작업에서도 우리를 또다시 공격하는 불편함이다.




이은실_害, 虐-自(해,학-자)_장지에 수묵채색_128×192cm_2007



이은실_害, 虐-自(해,학-자)_장지에 수묵채색_128×192cm_2007


건축물이 전통과 사회규범을 상징한다면 건축공간, 특히 사회에 자리매김을 하는 정체성 찾기 중인 작가에게 건축 공간은 작업의 주요 동기가 된다. 건축물이 화면상에서 다루어지는 방법은 작가 자신의 입장이 될 것이고 화면 위에서 건축물이 존재하는 공간은 자기 포지셔닝의 현장이 된다. 그러므로 작가의 이전과 최근 작업의 공간처리를 비교했을 때 발견되는 차이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하다. 이전 2005년을 전후로 하는 기간의 작업을 살펴보면 건축물은 화면이 전달하는 터부와 관객 사이에 위치하는 경계 이상의 의미를 찾기 어려웠었다. 그러다가 「Stuck」과 「Take Off」에 소개된 공간은 전통 건축물은 좀더 입체적인 구조로 변하지만 희미해져 사라져가는 존재로 진화하였다. 반면에 이번 「Neutral Space」연작을 구성하는 각각의 화면에는 조각난 한옥의 부분들이 다시 견고한 형태와 윤곽을 유지하고 있으며 구조를 보면 닫히지도 혹은 열리지도 않은 초현실적인 조합으로 이루어져있다. 전체적 화면에서도 초현실적인 경향으로의 전환이 발견되는데 이전의 화면이 이미 완료된 사건의 현장을 스냅샷으로 기록한 듯한 찰나적 성격을 가졌다면 최근의 작업에서는 초현실적 시간성이 더해지고 있다. 동물로 보이는 형상이 포함된 방안 공간과 복부의 이미지로 표면 처리된 마루공간, 자물쇠가 굳게 잠긴 대문 등 여러 개의 공간이 한 화면을 나누어 차지하고 있다. 더욱이 이번 전시에서는 이러한 공간끼리의 관계가 두 번째 세 번째의 화면으로 확장된다. 예를 들어 「In to the…」작업에서는 털이 무성한 풍경이미지의 한 부분을 줌 인으로 확대하여 바라보는 두 번째 화면으로 연결된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변화들이 야기하는 바는 관객들은 화면의 전경과 근경, 원경을 넘나들며 감상 하는 구조를 가진다는 것이다. 화면 안에 등장하는 인물 또한 가만히 서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몸 속을 바라보거나 허물을 벗어가는 등 화면을 바라보는 이나 화면 속에 위치하는 형상이나 이 모두 시간의 경과를 포함한다. 이것을 영화적으로 해석하고 동시대성과 연결할 수도 있겠지만 더욱 중요한 지점은 작가가 시간성을 부여함으로써 화면에 초현실적인, 내러티브를 확립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내러티브는 액션을 포함하는 진행형임에 틀림없다. ■ 신현진

-------------------


모리스 드와展 / Maurice Douard / painting

2009_0204 ▶ 2009_0210



모리스 드와_Nouvelles fraiches(새소식)_60×60cm_2008




초대일시_2009_0204_수요일_05:30pm

주최_micropop69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가나아트 스페이스_GANAART SPACE
서울 종로구 관훈동 119번지
Tel. +82.2.734.1333
www.ganaart.com






프랑스의 동부 도시 낭시 (Nancy)의 마지노 (Maginot) 광장, 14살의 모리스는 처음으로 데생을 5프랑에 팔았다. 빅토 위고 (Victor Hugo)가 인쇄된 푸른색의 지폐였다. “곧바로 물감을 사러 갔지요” 브르죠아지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아주 일찍 쫓겨났다. ‘미운 오리 새끼’가 그랬던 것처럼...




◁ 모리스 드와_Le dormeur(잠자는 사람)_150×50cm_2007
▷ 모리스 드와_Lecture du quottidien(신문일기)_150×50cm_2005


1971년에 뚤르즈 (Toulouse) 보자르 (Beaux-Arts)에 입학했지만 별로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다. ‘훈장 중의 훈장’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혼자서 독학을 한다. 바르샤바(Warszawa)학파의 색채학(chromatology)과 정신색채학(psycho-chromatology)연구에 이끌린다. 그는 광학 효과, 색채의 리듬과 역동성 등 빛에 관하여 작업하여 심리학자와 정신분석가들의 호응을 받았다. 이러한 이론들을 단순하게 적용하기로 한다. 마치 화제(畵題)가 기계를 통한 자동적이고 획일화 된 방법이 아니라, 인간에 의하여 파쇄(破碎)되어 버린 것과 같은 ‘형태의 무작위적 분해’를 추구한다.




모리스 드와_Au bord de la piscine(풀장 옆에서)_162×130cm_2008


1973-1974에는 전산적 방법을 활용하여 파쇄된 화제의 합성능력을 제고하지만, 컴퓨터에 의한 방법보다는 인간의 섬세한 방법을 더 애호한다. 그의 정밀한 연구는 자신을 수양하고 앞으로의 발전을 향한 바탕을 마련한다. 그 결과, 그는 안정을 찾고, 미적 추구보다는 생동감을 더 추구하게 된다. 1973년에는 라 호쉘 (La Rochelle)에서 처음으로 그 동안의 연구를 바탕으로 한 추상작품을 선보였다. 그의 작품들은 아직 크뤼즈 디에즈 (Cruz Diez), 소또 (Soto), 바자렐리 (Vasarely)의 영향을 받은 것처럼 아직 자신만의 스타일이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추상이라는 분야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분야로 자리잡은 것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활동을 연구실에서 연구 활동하는 것과 비교한다. 끊임없이 자신이 파쇄시킬 인물에 대한 그림보다도 정확한 이미지를 찾으려고 노력하였다. 화제 [人物]는 캔버스 전체에 파열되어 나간다. 파열은 관객으로 하여금 공감대를 이룰 때까지 여러 단계의 순서를 거쳐서 펼쳐져 나간다. 그는 자기가 방황하지 않도록 자기의 작업에 집착하고 있다고 한다. 독일, 오스트리아, 스페인 등지를 여행하며 지성인들로부터 물질적 또는 정신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으나, 발병으로 인하여 작품활동과 연구를 그만 두지 않으면 안 되었다.




모리스 드와_Elle dort(잠자는 여인)_162×130cm_2008


1980년대에는 병으로부터 회복하여 영화, 발레, 오페라 분야에 기여하고, 음악 조명에 관심을 가졌다. 1990년에 병의 재발로 인한 치료를 위하여 약 10년간 은둔생활을 하였지만, 그는 이 기간 동안 자기 주위와 자기의 화실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수 있었다. 이 고통스러운 경험으로부터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상상력과 통찰력의 표현이 탄생하였다. 정화된 화면과 감성적 표현이 강화된 인물의 역동성... 등 작가의 한층 더 성숙한 면을 보여준다. 여러 나라로부터 전시 초대를 받는다는 것은 ‘드와(Douard)의 언어’는 문화에 관계없이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35년간 그는 작업과 전시에 몰두하고 있으며, 그림 외에도 장식, 음악 조명 및 대형 벽화를 실현하고 있다.




◁ 모리스 드와_En allant(나들이)_120×40cm_2005
▷ 모리스 드와_Elise(엘리즈)_180×60cm_2005


“오랜 세월 동안 빛에 대한 열정을 가진 두와는 광학효과에 관하여 작업을 해왔으며, 이를 통하여 ‘시각예술적 분해’를 이룩하였다. 입체감은 해체되고 재구성되어 주제로부터 역동성과 감성적 반응을 느끼게 한다. 이를 통해 그는 그림의 주제들의 육체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영혼, 그들의 광채, 그들의 공간이동을 표출하는 것이다. 물질의 실체적 형상의 장막을 지난 저편, 즉 형이상학적 시공을 표현하는 것이다.” ■ 안-마리 베르저레(Anne Marie Bergeret)


번호별로 보기
여러개의 게시물 정리 제목별로 보기 이름별로 보기 날짜별로 보기 조회별로 보기
1340   전시 2.18 2009/02/18 858
1339   전시 2.13 2009/02/13 905
  전시 1.31 2009/01/31 825
1337   전시 1.15 2009/01/15 875
1336   [전시] 1.1 2009/01/01 799
1335   전시 12.18 2008/12/18 947
1334   전시 12.10 2008/12/10 1009
1333   전시 12.1 2008/12/01 924
1332   전시 11.24 2008/11/24 5425
1331   전시 11.20 2008/11/20 958
1330   전시 11.14 2008/11/14 929
1329   전시 11.6 2008/11/07 847
1328   전시 11.5 2008/11/05 898
1327   전시 11.2 2008/11/02 857
1326   전시 10.23 2008/10/23 1154
1325   전시 10.19 2008/10/19 884
1324   전시 10.11 2008/10/11 734
1323   전시 10.9 2008/10/09 820
1322   전시 10.1 2008/10/01 906
1321   전시 9.25 2008/09/25 1245
  [1] 2 [3][4][5][6][7][8][9][10]..[68] ▶ 
Copyright 1999-2026 Zeroboard / skin by uZ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