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EKJINSOOK
백진숙展 / BAEKJINSOOK / 白珍淑 / painting.installation
2008_1022 ▶ 2008_1028

백진숙_한지에 채색_48×63cm_2008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이미지 속닥속닥 Vol.040428a | 백진숙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8_1022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목인갤러리_MOKIN GALLERY
서울 종로구 견지동 82번지
Tel. +82.2.722.5066
www.mokinmuseum.com
내가 그림 그리는 법, 한가지 ● 두 번째 지리산을 찾아갔을 때 지독한 안개를 만났었다. 바로 앞에 있던 사람과 나무와 길이 손에 닿을 거리에서 쓸려 다니며 지워졌다 나타났다 하는 광경에 나조차 지워질까 어찌할 줄 몰랐다. 그러나 안개 속에서 장님처럼 사물을 더듬는 그 오랜 시간 동안 나는 단 한 순간도 나를 분실하지 않았다. 주변이 지워질수록 나만이 또렷해져 내 숨소리, 땅을 더듬는 발의 촉감, 밖으로 열려진 피부의 구멍까지 점점 더 또렷해졌다. 그러므로, 나는 안심하고 길을 잃어도 좋았던 것이다.

백진숙_한지에 채색_48×63cm_2008

백진숙_한지에 채색_48×63cm_2008

백진숙_한지에 채색_poison_2008
나는 ‘그림 그리는 사람’ 중 하나이다. 바라보는 동시에 생성되어가는 존재인 화가에겐 선행된 외부와의 만남과 감각을 통한 사유, 그것을 표현하고 유지시켜줄 재료와의 부단한 싸움으로 생의 좌표가 드러난다. 그렇다면. 도래할 사물들의 표정, 그 사건을 탐색하는 것, 그 속에서 부단히 무용한 지도를 그리는 것(점치지 않고)이 내가 그림 그리는 법 한 가지라고 말해볼 수 있겠다.

백진숙_한지에 먹_48×63cm_2008

백진숙_한지에 먹_48×63cm_2008

백진숙_한지에 먹_48×63cm_2008
장자는 순수직관으로 대상을 바라보고 物자체가 되라는 말로 작가의 상상력과 정신의 문제를 다룬다. 한편 주자는 격물치지格物致知로 외부 대상과 긴장된 만남을 가지는 의지와 태도에 대해 말해준다. 物에 나아가 앎을 지극히 한다는 것은 ‘음식을 먹으면 배가 부른 것과 같아’서 앎에 이르기 위한
목적으로 格物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다. 창작자에게 수양론과 같은 이 말은 관계의 유기성으로
짜여진 세계 안에서 조응하는 폭력적이지 않은 시선을 불러들인다. 타자에게 물들어가고 사물들 속에서 길을 잃는 것으로 흐릿한 내 걸음을 되짚어 보는 방식을 이제 막 배워나가고 있다. 아마 지웠다 그었다하는 모든 순간들이 새로운 종이 없이 하나의 지면 위로 부끄럽게 쌓여갈 것이다. ■ 백진숙
사진의 힘, 21명의 프랑스 현대 사진가들
Power of Photography, 21 French Contemporary Photographers
2008_1030
▶ 2009_0111
발레리 블랭_무제-보디 빌더 시리즈 중_흑백사진_133.8×208.8cm_1999
초대일시_2008_1029_수요일_05:00pm주최_성곡미술관 주관_성곡미술관_프랑스
엑스프레스
강연회_큐레이터와 참여작들이 함께하는 사진
이야기 일시_2008_1028_화요일_02:00pm 장소_홍익대학교 홍문관 가람홀 참여큐레이터_아녜스 구비엥
셍시르 참여작가_에릭 보들레르_스테판 쿠튀리에_베로닉 엘레나
관람료 / 대인_7,000원 /
소인_5,000원
관람시간_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성곡미술관_SUNGKOK ART MUSEUM 서울 종로구 신문로 2가 1-101번지 Tel.
+82.2.737.7650 www.sungkokmuseum.com
최근 세계
여러 사진 미술관, 관련 잡지와 협회들, 아트페어, 사진 페스티발이 생겨나고 있고, 유수 미술관들에서 사진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 이러한 사진의
경향은 과거의 사진 개념을 뛰어넘는 것으로서 사진이 현실의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독특한 예술적 영역을 구축하였다는 말과 같다. 사실 우리는 이미
사진이 독자적인 예술로 인정받기 이전부터 광고나 매체를 통해 사진 이미지와는 뗄 수 없는 관계 속에 살고 있었다. 모든 예술장르가 탄생 초기에는
예술적인 목적보다는 실용적인 목적에서 출발했듯이, 사진도 이제는 초기에 각광받았던 기록이나 스토리 보조의 실용적 단계에서 마침내 유용성을 배격한
독특한 예술 장르로 이전하는 것이 당연하다. 새로운 취향의 대명사인 포스트모던 시대로 들어오니 날아갈 듯 가벼우면서도 누구나 쉽게 조작할 수
있고, 원하면 무한 증식마저 가능한 사진을 향해 새로운 취향이 만들어진 것이다. 사진은 현대 미술의 탄생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사진은 단지
회화가 버린 재현의 기능함을 담당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화가의 숨결이 배제된 ‘아우라’가 없는 ‘추잡한
다수성’이라 하여 천대 받던 사진은 이제 회화가 부러워하는 성대한 축제를 연다.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_영국산 순수 혈통의 종자암말과 망아지 _플라스틱 가공한 컬러프린트_120×180cm_2003

스테판 쿠튀리에_도시 고고학 시리즈 중,
르노_시바크롬 프린트, 디아섹_111.5×137.5cm_1994

브뤼노 세라롱그_해외로 보내지는 컨테이너들_컬러
프린트_79×98.7cm_2000
1990년 베니스비엔날레 조각부문 대상이 독일의 사진가
베혀Bernard&Hilla Becher부부에게 수여되었다는 사실은 특히 주목할 만한 변화이다. 그들은 버려진 공장의 굴뚝, 물탱크,
광산의 건물 등 산업 건축물들을 기록하는 프로젝트를 세웠다. 이 프로젝트는 건축물들을 완벽하게 기록하는 것이었으며, 객관적 기록을 위해 항상 똑
같은 중성적 빛 아래에서, 똑 같은 각도와 레이아웃으로 구성된 일련의 사진 시리즈를 제작하였다. 여기에서 우리는 전대미문의 미적 특성을 발견하게
되는데, 흑백의 기하학적이거나 구불구불한, 단순한 형태의 시리즈로 계속 반복되는 이미지들은 산업 구조물로서 건축물의 이미지를 넘어, 사회적
조직체로서 어떤 힘들의 관계에 놓여 진 현실을 설득력 있게 드러내준다. 그래서 사진은 평면적 이미지의 추상적 제작 도구가 아니라 물질과 힘의
관계를 실질적으로 구축하는 조형 언어로 발 돋음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1970년대부터 베혀 부부, 죠르주 루스Georges Rousse, 얀
디베츠Jan Dibbets 등은 사진의 조각적 또는 건축적 개념을 제시하는데, 그들과 함께 조각은 더 이상 고정된 오브제를 생산하는, 명확한
재료와 형태를 가진 작품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 창작의 개념과 과정을 연관시키는 행위가 된다. 아울러 거대한 크기로 확대하거나, 기념비적
요소를 도입하고 벽에 걸기 등의 특수한 효과를 통해 사진 이미지의 공간적 지위를 확인해준다.

베로닉
엘레나_파도_컬러 프린트_90×110cm_2005

앙트완느 프티프레즈_침엽수_컬러
프린트_88×47cm, 88×45cm, 88×47cm_2002

필립 라메트_무제_컬러
프린트_150×120cm_2000
「그들은 스스로를 화가라 하기도 하고, 사진가라고도 한다」라는 제목의 전시회
소개 글 속에서 미셀 누리자니Michel Nuridsany는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Christian Boltanski 가 자신은 그림을 그릴 줄
모르기 때문에 사진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화가이다”라고 선언한 것을 의미 깊게 받아들인다. 이와 같이 오늘날 사진은 조각으로서, 설치
작품으로서, 또는 회화로서 그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이제 우리 시대의 가장 적합한 ‘사유의 도구’로서 다양한 표현이 가능해진 사진은, 새로운
상황을 적극적으로 구상하고, 만들어내고, 조절하며, 실현시킨다. 그래서 눈에 잡히지 않는 어떤 인간적인 감정들을 하나하나 잡아내며 우리의 꿈과
욕망에 형태를 입힌다. 한국 최초 외국문화원인 프랑스문화원 개원 4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이기도 한 『사진의 힘, 21명의 프랑스 현대
사진가들』전은 프랑스 국립 현대 미술 재단 FNAC소장품 중에서 21명의 프랑스 작가들의 100여점 이상을 소개할 것인데, 최근의 프랑스 미술
무대의 대표적인 목록을 제시할 것이다. ■ 성곡미술관
----------------------
의식의 신세계
서고운展 / SEOGOUN / 徐고운 / painting
2008_1104 ▶ 2008_1110

서고운_푸르키녜_캔버스에 유채_162×260.6cm_2008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서고운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8_1104_화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국민아트갤러리
KOOKMIN ART GALLERY
서울 성북구 정릉동 861-1번지 국민대학교 예술관 2층
Tel. +82.2.910.4465
꿈은 망상의 끝에 존재하는 암흑 같다. 혼자서는 어찌할 수 없는 파괴적인 무의식의 블랙홀 속에는 의식의 흐름이 점유하지 못하는, 죽음충동에 이르는 기괴한 세계가 존재한다. 의식의 긴 여운은 먼지처럼 사라지고 잔향만 남아있는 그 블랙홀 속에는 3분할된 영혼만 존재할 뿐이다.

서고운_쇠약한 곡예사 남녀의 하루_캔버스에 유채_116×91cm_2008

서고운_교살당한 자들의 발라드_캔버스에 유채_112×145.5cm_2008
기이하고 엉뚱한 꿈. 그리고 광기의 발작이 오는 곳. 그것을 나는 <9천 8백 72개의 몽환의 영역>이라고 부른다. 의식의 영역에는 25개의 상상력 층이 있다면, 그 너머에는 무의식도, 의식도 아닌 여러 가지 욕망이 충돌하는 수천 개의 층이 존재한다. 그것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몽환의 세계 안에 무의식적으로 던져진다. ● 나는 시간 속에, 혹은 의식 속에 던져진 존재들을 동물이나 인간, 살아있는 것과 죽어있는 것, 사고하는 것과 사고하지 못하는 것으로 구분하지 않는 영역 안에 포함시킨다. 마치 스핑크스가 인간이길 갈망하는 동물의 진화욕구인지, 아니면 인간이 진보하고자 하는 욕구로 발현된 퇴보의 모습인지 알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위험 속에 둘러 쌓여있는 세계안의 나, 혹은 죽음을 기다리는 삶 속의 나는 몽환적인 세계를 통해 관념적인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사고의 조력자’가 된다.

서고운_한 여자의 눈 속에서 재현된 어떤 풍경_캔버스에 유채_130.3×193.9cm_2008

서고운_파란사자인간(sphinx)_캔버스에 유채_116×91cm_2008
삶이 시작이고 죽음이 끝이 아니라 죽음으로서 시작하고 삶으로 끝나는 세계가 존재한다고 생각해본다. 불안이라는 것이 언제부터 시작되었고, 어디서부터 현실과 일상을 점유하고 있었는지도. 그들의 고통, 슬픔, 불안의 영역이 해소될 수 있는 위반의 세계는 삶의 공허함을 점유하는 욕망에 빠져버린 나약한 세계를 해체하고 어지럽힌다. 쇠약한 곡예사 남녀가 사람의 형태만 조금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그들을 분해하고 한발로 위태롭게 서 있는 세계, 우주창조에서 발생한 쓰레기가 인간이 되어버린 세계, 마술사의 소매 같은 성기가 소녀로 변해버린 세계는 일상과 일상이 아닌 세계의 경계뿐만 아니라 죽음과 삶의 경계마저도 흐트러트린다. ● 구분되면서도 연결되어있는 모호한 지점이 상상력의 층을 와해시키고, 죽음충동을 위반의 쾌락으로 승화시키는 충돌의 영역은 낯설고 기괴하지만 응축된 감정들은 해소한다. 몽환의 영역은 비로소 그 응축된 감정들을 무의식을 통해 흩뿌리고 새로운 세계로 인도한다. ■ 서고운
---------------------------
Blind Narcissism
박종호展 / PARKJONGHO / 朴鐘皓 / painting
2008_1029 ▶ 2008_1104

박종호_Blind Narcissism_리넨에 유채_130×162_2007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이미지 속닥속닥 Vol.080411f | 박종호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8_1029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갤러리 토포하우스_TOPOHAUS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4번지
Tel. +82.2.734.7555
www.topohaus.com
슬픔에 관한 철학 ● 지난 몇 년, 박종호의 회화작업들은 줄곧 슬픔에 관해 철학하는 과정이었다. 지친 모습의 돼지들이 우리 안에서 서로의 몸을 겹치고 엉긴 채 스러져 자고 있는 모습을 묘사한 화면에는 진한 멜랑콜리의 감성이 배어있다. 철창 밖 세상을 또렷하게 바라보고 있는 돼지의 핏기어린 눈동자 속에는 강렬한 열망과 외로움, 그리고 서글픔이 어려 있다. 드라마틱한 무대조명을 받으며 세트 위에 올라간 돼지들 역시 힘없이 서로의 몸을 기대고 포갠 채 애처로이 잠들어 있다. 그가 묘사하고 있는 대상은 바로 돼지의 탈을 쓰고 애써 위장하고 있는 슬픈 인간의 모습이며, 작가 자신을 그린 자화상이다. ● 인간존재는 누구나 욕망과 꿈을 가지고 있다. 그런 것들이 충족되지 못할 때, 인간은 슬퍼진다. 억눌려 있다고 느낀다. 삶이, 영혼이, 육체가 답답함을 느끼는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영혼을 지배하는 ‘슬픔’을 사유하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 애쓰기보다 전면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세상과 가까워지려 했다. 곧, 갈등의 표출로서 드러나는 슬픔을 사유함으로써 무한이 자기 스스로를 인식해가며, 이 세상 안에 이상을 되살리고자 한 것이다. 유년기 시절 형성된 성격적 특성으로 허무주의 세계관을 갖게 되었다고 고백하는 작가는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요구하는 기준에 맞추기 위해 성실히 자신을 상품화하는 데 익숙지 못했음을 인정한다. 아니, 그러한 시스템의 효율적인 작동과 처리를 위해 개개인의 존엄성을 박탈당하며 체제 속으로 길들여지기를 거부했다. 그러나 또 한편, 자본 숭배와 물신주의가 팽배한 이 시대의 현실이 거부할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라는 사실 역시 인식하고 있는 작가는 그것과 어쩔 수 없이 타협해가는 자신의 모습에 깊은 자괴감을 느낀다. 이러한 자괴감은 자아에게 일격을 가하는 순수한 나르시시즘의 여파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박종호_Apple Juice_리넨에 유채_112×227_2008

박종호_Wrapped_캔버스에 유채_96×157_2006

박종호_Children_캔버스에 유채_130×162_2008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따르면, 나르시시즘은 과대망상증과 외부세계(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외면이라는 특성을 갖는다. 현실적 대상들과 관련해서 그가 애초부터 지니고 있던 어떤 목적을 그냥 포기해 버리는 것이다. 외부 세계에 등을 돌린 리비도는 자아에게로 방향을 돌려 나르시시즘이라 불릴 수 있는 태도를 발생하게 한다. 그가 그린 돼지들의 무리 중 유독 색이 다른 검은 돼지는 극적인 조명아래 고단한 얼굴을 드러내고 있으며, 돼지의 눈동자는 모든 세상사에 대해 체념한 듯 초점을 잃었다. 그렇게 그는 철저한 아웃사이더가 되어갔지만, ‘자신은 남들과 다르다’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유일한 희망이자 최후의 도피처인 나르시시즘에 도달한 것이다. 살바도르 달리가 돼지를 지식인에 비유했듯, 시대의 오물 앞에서도 항상 깨끗하게 자신의 몸을 유지하는 돼지의 모습에 자신을 투영한 박종호의 나르시시즘은 일견 아름답고도 슬프다. ● 또한 그는 맹자의 측은지심처럼 우리 속에 갇혀 사육되어지는 돼지를 바라보며 인간에 의해 사육의 대상으로 몰락해버린 서글픈 존재로서의 현대인을 동정하여 기꺼이 눈물을 흘린다. 이렇게 그의 작업은 우리를 구속하는 현실과 그곳에서 빠져 나올 수 없게 되어버린 슬픔을 이야기하고 있다. 프랑스 철학자 베르트랑 베르줄리는 ‘삶 앞에서 슬픔을 느끼는 자는 이상으로부터 자신을 유리시키는 모든 것을 느끼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그것은 결코 슬픈 일이 아니다. 곧, 의미가 없는 것은 슬픔이 아니라 슬픔의 부재라는 것을 일깨운다. 결국 박종호의 슬픈 돼지는 자신의 값어치를 의식하고 다시 태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으로 소리 없이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 이제 그는 더 이상 개인의 무력감에 빠져있거나 자신의 내면세계에 집착하지 않는다. 와 같은 작품에서 보여 지듯, 본인에게 집중되어 있던 나르시시즘의 리비도를 자기 내부에서 점차 자신의 분신인 아들에게, 그리고 다시 사회로 쏟기 시작했다. 자신을 따라 위태롭게 경계선에 선 아들의 모습을 보며 그는 망설이게 된다. 이 작품은 박종호의 돼지 그림을 또 다른 맥락으로 전환시키는 데 기폭제가 되었다. 최근 제작된 그의 회화 작품에 등장하는 돼지들은 우리 사회가 양산하고 있는 몰개성적 획일화된 교육제도 속에 희생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상징하는 것이다. 자신만의 개성이나 차별성을 존중받지 못한 채 기계적 시스템 속에 마치 대량 복제되듯 비슷한 모습으로 차곡차곡 포개어 잠든 아기 돼지들의 표정에는 연민의 감정이 담겨있다.

박종호_Love_캔버스에 유채_100×100_2008

박종호_Father_C 프린트_120×100_2008

박종호_Apple Juice_C 프린트_46×142_2008
박종호의 최근 작품들은 또한 이전의 작업들에서 볼 수 없었던 위트와 여유로움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에서 돼지의 눈앞에 놓여있는 사과 주스 병은 현대적 의미의 선악과이다. 달콤한 물질문명의 유혹에서 자신의 잣대가 흔들리지 않기 위해 돼지는 애써 주스 병을 외면하고 태연한 척 함으로써 심리적 거리두기를 고전 분투한다. 작가는 인간이 자본주의 경제 속에서 소비의 주체가 아니라 소비 그 자체이며, 소비의 대상이 되는 것으로부터 경계하고 있다. 외부의 타격으로 인해 찌그러진 채 꼿꼿이 서있는 깡통은 현대 문명이 찍어내는 인격에 대해 저항하는 개인의 모습을 위트 있게 표현한 것이다. 번드르르한 외관의 알루미늄 캔 옆에 아무렇지 않은 척 서있는 찌그러진 캔은 저절로 보는 이의 마음을 아리게 하며 쓴웃음을 감출 수 없게 만든다. ● 주지하다시피, 박종호는 슬픈 자화상을 그려오며 내면의 성찰과 내적 성장을 이루었다. 그는 분명 지독한 고통과 방황의 긴 터널을 지나 주변으로 시선을 옮길 수 있는 여유를 얻었으며, 극단적인 나르시시즘 대신 객관적으로 현상을 바라보고 분석하는 관찰자적 예술가로서 자신의 또 다른 역할을 발견한 것이다. 새로운 변화를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대처하는 감각은 동시대미술가로서 그의 행보에 큰 전환점이 될 것이다. 그래서 박종호가 오랫동안 철학해 온 슬픔은 침체가 아니라 역동적인 것이며, 기적 같은 연금술의 결과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초월을 경험할 수 있게 한 것이기에 그 무엇보다 값진 저항이 아니었을까. ■ 조주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