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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론] William Klein Trance Witness Rev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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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윌리엄 클라인의 작업을 좋...아했었지만, 묘하게 질리는 구성이 있어서리.   암튼 저런 이미지가 1950년대에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가치가 있다는.   전복은 뒤집을 것이 있다는 전제하에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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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www.fotoful.net




윌리엄 클라인 (1928- ) 혹은 전복의 사진미학
글: 최봉림

<윌리엄 클라인 : LIfe Is Art Art Is Life>
갤러리 뤼미에르
2007.12.15 - 2008.02.08

사진집 『뉴욕』의 역사적 의의
윌리엄 클라인은 2차 세계대전 중 육군에 입대하여 유럽에서 2년간 군복무를 한 후, 파리에 정착하여 페르낭 레제 Fernand Léger 밑에서 잠시 그림을 그리고, 소르본 대학에서 미술사를 공부한다. 1952년 자신의 가변적인 벽화작업을 사진 찍기 위해 사진에 입문하며, 1954년, 미국에 잠시 귀국하여 뉴욕을 소재로 사진을 찍는다. 이 작업은 1956년, 보그 Vogue지의 아트디렉터인 알렉산더 리버만 Alexander Liberman의 도움을 받아 『뉴욕에 산다면 좋을 거예요- 윌리엄 클라인 환홀 증언 술판 Life is Good for You in New York - William Klein Trance Witness Revels』이라는 제목으로 프랑스 세유 Seuil 출판사에서 출간된다.

이 사진집은 1956년 프랑스에서 ‘나다르 상 Prix Nadar’을 수상하지만, 미국의 사진계는 냉담했다. 대륙에서의 호평과 미국에서의 혹평은 그 역사적 문맥을 갖고 있다. 유럽사진의 모더니즘은 1920년대 후반 모홀리 나기의 ‘뉴 비전 New Vision`, 초현실주의 그리고 1950년대 독일의 오토 슈타이너트 Otto Steinert로 대변되는 ‘주관적 사진’의 문맥 속에서 무정부주의적 사진 실험에 익숙해 있었지만, 미국의 경우 알프레드 스티글리츠 Alfred Stieglitz의 엄격하고 순수한 사진적 전통에 침윤되어 있었다. 해서 스트레이트 사진의 전통에 반하는 느슨하고 과격한 클라인의 카메라 워크와 존 시스템을 무시하는 그의 노출과 인화기법은 미국 사진계의 반발을 부른 반면, 사진에 고유한 품질의 성취 보다는 사진을 통해 전대미문의 이미지를 발굴하고, 평범한 일상에 내재된 욕망과 무의식을 탐구하던 유럽은 뉴욕의 일상을 통해 뉴욕에 대한 기성 이미지를 파괴하는 그의 우상 파괴주의를 반겼던 것이다. 스트레이트 사진이 애호한 약호와 관습들을 완전히 무시하면서, 미국의 심장부에서 일어나는 폭력성과 고립, 커뮤니케이션의 부재, 혼돈과 무질서를 적나라하게 노출시키는 그의 거친 사진은 미국 사진계의 반감을 초래했지만, 무의식의 어두운 심연과 인간행동 속에 은닉된 불합리한 욕망을 사진으로 포착한 초현실주의와 파격적 프레임, 흔들림, 빗나간 초점, 파격적 앵글 등 새로운 시각적 언어를 탐구한 ‘뉴 비전’과 ‘주관주의적 사진’의 실험에 익숙한 유럽은 파리에 거주하는 미국인의 독창적 시각에 찬사를 보냈다. 

 흔히 『뉴욕』이라 불리는 그의 사진집의 편집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미 바우하우스와 러시아 구성주의 Russian Constructivism가 행한 파격적 북 디자인에 익숙한 유럽의 사진계는 여백이 없고, 광고가 애호하는 타이포그래피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지만, 사진집에서 조차 사진 이미지의 완전성과 전시성을 추구했던 미국의 편집 방침은 사진예술의 순수성을 저버린 듯한『뉴욕』의 여백 없는 사진게재, 뒷장마저 사진으로 채우는 잡지 식 편집에 역겨움을 표했다. 더욱이 “뉴욕에 산다면 좋을 거예요- 윌리엄 클라인 환홀 증언 술판”이라는 제목은 거의 광고 카피에 가까운 것이어서, 사진예술을 능멸하는 듯한 인상까지 주었다.  사실 내용 면에서나 형식에 있어서 클라인의 사진집,『뉴욕』의 파격적 새로움은 사진역사가 회자하는 1958년의 로버트 프랭크 Robert Frank의 사진집,『미국인』을 한없이 능가한다. 프랭크의『미국인』은 카메라 워크, 프린트의 품질에 있어서는『뉴욕』만큼이나 파격적이고 독창적이지만, 그것의 편집은 전통적이었다. 사진 게재면 앞면에는 잭 케루악 Jack Kerouac의 텍스트를 실었지만, 사진 게재면은 ‘작품’으로서의 사진을 온전히 보존하기 위해 충분한 여백을 주는 전통적 방식을 따랐기 때문이다.

비트 스타일의 거리사진
클라인의 사진은『뉴욕』의 사진이 됐건, 1958년 출간한 『로마』의 사진이 됐건 혹은 1964년에 출간한 『모스크바』,『도쿄』의 사진이 됐건, 더 나아가 보그 Vogue를 위한 패션사진이 됐건 공통된 개성적 스타일을 보인다. 거의 언제나 질서정연하고 규범적인 프레임을 벗어나며, 정규적이고 정석적인 노출, 셔터속도를 위반한다. 기울어진 수직과 수평, 고감도 필름과 현상과다로 인한 거친 입자, 흔들리거나 흐릿한 영상, 초점이 빗나간 전면의 인물, 우발적이고 비대칭적인 구성으로 뉴욕, 모스크바, 로마, 도쿄 그리고 패션모델들의 이미지를 산출한다. 한 마디로 스트레이트 사진이 구축한 ‘질의 전통’을 파괴한다. 우연과 우발적 사건에 기대면서 ‘존 시스템’이라 명명된 사진적 규율을 위반한다. 게다가 클라인은 사진적 대상과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지 않는다. 그는 피사체를 자극하고, 피사체에 끼어들고, 때로는 강탈하며 피사체를 낚아챈다. 전통적 다큐멘터리, 포토저널리즘이 간직한 신중하고 조심스런 배려가 없다.
이러한 사진적 태도의 결과는 파국적이다. ‘라이프 Life’지가 보여준 객관적이고 공론적인 휴머니즘은 증발하고, 사진가의 의식과 사진적 대상이 현실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극적인 균형과 조화에 이르는 ‘결정적 순간’은 함몰한다. 휴머니즘이 사라지고, ‘결정적 순간’이 붕괴하는 자리에 세계적 대도시의 사람과 거리에 은닉된 소외와 상실, 불안과 절망, 그리고 폭력성이 폭발하기 시작한다. 언술언어의 논리적 체계나 합리적 사고로 해명할 수 없는 어두운 심층의 현실, 의미화가 불가능한 현실의 심연이 그 속을 드러낸다. 스트레이트 사진의 전통과 규범에 기대고 있는 정제된 사진언어로는 드러낼 수 없는 거칠고 조야한 현실과 무의식적 충동이 그 음험한 얼굴을 드러낸다. 거친 현실을 전혀 가다듬지 않은 이러한 클라인의 스타일은 사진촬영의 주도권을 작가 자신에서 카메라로 귀속시키는 대담성에서 기인한다. 작가의 말을 들어보자.


“나는 고의적으로 실제 있었던 것을 반대로 뒤집었다. 피사체의 화면상 위치 조절을 무시하고, 카메라를 우연과 우발적 사건에 내맡기면서, 사진이미지가 해방되리라고 생각했다. 오직 카메라만이 할 수 있는 많은 일들이 있다 (...) 카메라에는 아직 활용되지 않은 숱한 가능성이 있다. 바로 여기에 사진이 존재한다. 카메라는 우리를 놀라게 할 수 있다. 카메라를 도와주어야 한다.”


사진은 클라인과 더불어 현실을 액면 그대로 기록하고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라, ‘우발적’ 현실을 ‘우연’에 따라 포착하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현실을 노출시키는 수단이 된다. 사진은 작가의 의도와 기획에 따라 포착되는 현실이 아니라, ‘카메라만이’ 포착할 수 있는 현실의 이미지다. 클라인은 이렇게 파격적으로 사진창작과 사진기획의 주도권을 작가 자신에게서 카메라로 양도하면서, 파격적으로 새로운 사진이미지를 생산했던 것이다. 그는 “사진에서는 행해져서는 안 될 파멸의 길 crash course"을 택하면서 대도시를 새롭게 인식하는 사진적 관점을 획득했다.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1980년과 1981년에 걸쳐 열렸던 그의 초기작 전시회에서 큐레이터인 존 자코우스키 John Szarkowski는 이렇게 적절히 말했다. “클라인의 20년 전 사진은 그 당시 사진 중 아마도 가장 비타협적이었을 것이다. 가장 대담하고 표면적으로는 가장 조악했으며, 그 당시를 지배한 기존의 형식적 규범에서 가장 일탈적인 작업이었다.”  ‘비트세대 Beat Generation’의 무정부주의적 반항과 허무주의적 혼돈을 육화하고 예고한 비트 스타일의 거리사진이었던 셈이다.   



패션사진의 파격을 위하여
클라인은 1955년부터 1965년까지 알렉산더 리버만의 보그와 여타의 패션잡지를 위해 사진을 찍는다. 그는 1934년 하퍼스 바자 Harper`s Bazaar의 수석 사진가 드 마이어 De Meyer 자리를 이어받은 마틴 문카크시 Martin Munkacsi를 본받아, 표준화된 촬영 규범과 촬영 각본을 준수하는 스튜디오 패션사진 대신 거리와 현장의 즉흥성을 택하는 새로움을 선보인다. 아울러 망원과 광각 렌즈를 애용하는 대담함을 선택한다.

그의 패션사진은 두 방향을 향한다. 하나는 스냅 형식으로 위장된 연출사진이며, 다른 하나는 실상과 허상, 모상 simulacre과 실상을 결합하여 초현실주의적 분위기를 연출하는 사진이다. 전자의 경우, 모델들은 거리에서 일상을 연기하며, 클라인은 그녀들의 연기를『뉴욕』처럼 포착한다. 심할 경우 초점은 빗나가며, 암부 디테일은 노출부족으로 뭉개진다. 그러나 다큐멘터리적인 거리의 스냅사진과 연출사진의 픽션이 결합된 클라인의 패션사진은 프랑스 누벨 바그의 거장, 장 뤽 고다르 Jean Luc Godard 발언을 상기시킨다. “다큐멘터리 필름은 픽션의 맥락 안에서 흥미를 끌며, 픽션은 다큐멘터리 문맥에 의해서 정당성을 획득한다.” 다시 말해 다큐멘터리 스냅사진을 가장한 클라인의 패션사진은 연출이라는 “픽션의 맥락 안에서 흥미를 끌며”, 그 ‘픽션’은 거리의 스냅사진이라는 “다큐멘터리 문맥에 의해서 정당성을 획득한다.”
이 연출된 스냅사진과 더불어 정적이고 귀족적인 패션모델의 이미지는 동적이며 행동하는 여성의 이미지로 변모한다. 여성의 육체는 바야흐로 무위도식하는 여신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살아 움직이는 매력, 활동하는 성적 유혹이 된다. 이것은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패션 직물의 변화에 대응하는 것이었다. 클라인의 시대와 더불어 여성은 이제 고상한 공간에 안주하는 식물적 존재가 아니라, 거리를 활보하며 남성을 유혹하는 존재, 사회적 활동을 하는 존재로 부각되었다. 패션모델들은 예전의 정숙한 여신의 이미지를 떨쳐버리고, 경쾌하게 움직이는 존재로 바뀌었다. 클라인의 스냅 패션사진은 남녀평등, 성적 개방을 주창하는 여성해방 운동의 징후는 아닐지라도 변화된 여성성, 변모한 여성의 욕망과 이를 조정하면서 이에 길들여진 남성의 관음적 시선을 암시한다.

현장 로케이션을 행하는 경우, 클라인은 모상과 허상에 집착하는 양상을 보였다. 그는 유명인사들의 밀랍인형 보관소인 그레뱅 박물관 Musée Grévin에서 패션사진을 찍었고, 파리의 오페라 하우스 앞에 중절모 차림의 마네킹을 세워 놓기도 했다. 그리하여 죽은 자의 영혼이 산 자들을 홀리거나 사로잡기 위해 되돌아온 듯한 밀랍인형을 실제와 착각하는 모델들의 연기를 찍어 그 당시 패션사진에서는 금기시되었을 ‘기이한 불안감’을 야기했다. 혹은 여러 거울들 앞에 모델을 세워 그녀의 실상과 허상들이 중첩된 양상을 찍기도 했다. 그리하여 나르시시즘, 에고이즘, 혹은 남성의 관음적 시선을 사로잡으려는 여성의 욕망을 초현실주의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뜻 깊은 그러나 아쉬운...
윌리엄 클라인의 회고전은 우선 상업 화랑이 주관하기에는 그 역사적 무게가 너무 둔중하다. 사진역사의 흐름에 일획을 그은 작가의 전모를 일별하는 전시를 그리 크지 않은 전시공간에서, 화랑의 단독 기획으로 행한다는 것은 범상하지만 힘겨운 일임에 틀림없다. 1955년에 발표된 작품부터 1990년 작업까지, 작가의 거의 모든 시기에 걸친 사진작업을 일별하는 것은 분명 의미심장하고 뜻 깊은 일이지만, 깊이의 전시를 기대하는 관객에게는 아쉬운 것이다. 윌리엄 클라인의 가치가 돋보기이기 위해서는, 필자의 견해로는, 보다 교육적이고 학술적인 전시 컨셉 하에서 작품선정과 디스플레이가 이뤄져야 했다. 다시 말해 한편으로는 1956년에 출간된『뉴욕』의 역사적 중요성을 강조하는 디스플레이와 다른 한편으로는 클라인의 패션사진 10년을 명료하게 요약하는 컨셉에 초점을 맞추는 전시가 바람직했을 듯싶다.

이제 역사적 희귀본의 가치에 도달한 『뉴욕』의 초판본도 전시에 참여시키고, 그 편집구성도 빔 프로젝션으로 보여주는 공간을 마련했으면 훨씬 더 의미 깊은 회고전이 되었을 것이다. 만약 넓지 않은 전시공간이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면, 1978년 이후 부분적으로 재개된 클라인의 사진작업은 뺐어도 무방했을 듯싶다. 누가 뭐래도 윌리엄 클라인의 정수는 1965년까지에 집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이후의 작품이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작가의 역사적 영향력과 중요성은 이 시기까지로 한정되기 때문이다. 
   
『Photonet』(2008년 2월)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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