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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제프 쿠델카
Film-[세계사진가탐구]요제프 쿠텔카(Josef Koudelkar 1938 ~
등록일자 : 2003-04-28 오후 11:53:13
요제프 쿠텔카(Josef Koudelkar 1938 ~ )
[스페인, 1971]
요제프 쿠텔카(Josef Koudelkar)의 사진은 바라보는 재미가 있다. 화면을 가로지르는 앞뒤 혹은 좌우로 펼쳐진 시각적인 요소는 우리의 눈을 잠시도 가만히 두지 않는다.
보통 시선을 끌기 위해서는 구도적으로 중심화법을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즉, 우리의 시선을 모아주고 주변부로 흩어지는 것을 막아주는 화면 구성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쿠텔카의 사진은 주로 중심화법을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우리의 시선을 잡아두는 기이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즉, 그의 사진은 내용이나 경험계 밖에도 재미나는 볼거리들이 더 많다는 것이다.
거친 입자라던가, 대담한 구도라던가.
[체코슬로바키아, 1968..]
[gypsies, 1966..]
[체코슬로바키아,1968]
우리는 보통 한 장의 사진을 볼 때, 내용적인 측면을 따져 보기에 앞서, 우선 시각적인 형식과 구성들이 먼저 시야에 들어온다. 그러고 나서, 나중에 작가의 의도라든가, 그 사진에 숨어있는 함축적인 의미나, 상징적인 측면을 해석한다.
쿠텔카의 작품에서 우리들은 집시들의 불쌍한 처지도, 체코의 민주화 운동에 관한 읽을거리도 있겠지만 그보다도 앞서, 사진 속에 있는 시각적인 구성요소들을 배열하고 조합하는 과정을 통해, 감각적으로 느끼는 즐거움이 있다.
사진이미지는 분명하게 의미를 전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찍혀진 대상이 현실상황 속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였는지는 전혀 알 아 볼 수 없는 경우가 대분이다
다만 우리는 자신의 경험계에 비추어 추측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사실은 사진으로 정확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반드시 언어적으로 해독 가능한 상징적인 기호 체계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여기 쿠텔카의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찍은 사진 한 장을 보자. 기관총을 들이댄 병사 앞에 한 청년이 옷을 저치고 가슴을 들이댄다.
[체코슬로바키아, 1968.]
이 긴박한 상황에서 이들 사이에 어떤 말들이 오고 갔는지 우리는 그 말을 들을 수 없다. 도대체 어떤 이유로 이 사건이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다. 더욱이 이 사진의 시대적 배경이 되었을 역사적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는 경우에는 더 많은 추측과 해석이 가능하게 된다. 분명한 것은 그들 사이에 어떤 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다는 부인 할 수 없는 증거가 만이 있을 뿐이다.
이 사진의 역사적 배경은 다음과 같다.
1960년대 체코의 공산당 제일 서기이며, 민주화 운동지도자였던 두브체크는 프라하의 바츨라프 광장에서 시민들에게 '프라하의 봄'을 주창한다. '봄'이란 것은 자유를 상징하는 것으로 '프라하에 자유가 올 것인가'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었다.
1968년 이 민주화 운동은 절정에 이르러 매일같이 수만 명이 바츨라프 광장에 모여 집회를 열었으며, 이때 찰스 대학의 학생이던 '빨라치'라는 학생이 정부의 진압에 분노하여 분신자살을 하게 되자 이것을 기화로 전 국민이 들고일어나게 되었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당시 소련의 서기장이던 브레제네프는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군대를 파견해 무려 6천대의 탱크를 앞세우고 프라하로 진군하여 무력으로 운동을 짓밟아 버리게 되었다.
[포르투갈, 1976]
자 이제 이 강력한 사진의 증거는 우리가 역사적으로 알고 있는 하나의 지식과 관련된 문제의식 그리고 학습된 문화적 코드가 사진위에 덧 씌어 진다.
그리고 바로 그 현장에 사진가가 입회 하고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이 사진이 진실이었음을 부인하지 못하게 만든다
사진은 분명히 있었던 사실을 찍는다는, 그래서 우리는 사진을 가장 객관적인 증가로서 받아들인다는 암묵적인 사회적인 합의에 의해서 그러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 사진에서 ‘프라하의 봄’에 관한 이런저런 역사적 사실들을 알고 그것에 대입해서 의미를 찾게 된다.
과연 이러한 의미들은 어디에서 오는가? 사진 안에 있는가? 사진 밖에 있는가!
물론 앞에서 열거한 역사적 사실을 모르고 이 사진을 본다고 해도 우리는 그 사진 그 자체는 의심할 수 없는 증거물이라는 이유 때문에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첨부하기도 한다.
[포르투칼, 1976.]
그러나 사진은 원초적으로 이미지이다. 이미지는 말과 달리 다양한 의미를 확산 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고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가 사진을 받아들이는데 있어서는 ‘대상이 무엇인가’를 파악하는 재현 적인 측면이 있는 반면, 의미로 파악되지 않은 이미지로서 사진을 보게 되는 경우도 있다.
[프랑스 1979]
이 때 우리의 시선은 사진 속에 찍혀진 개별적인 시각 요소 혹은 하나하나의 찍혀진 대상들의 관계적 측면들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어느 순간 사물들의 관계와 배열 속에서 갑자기 들어나는
‘의미’
가 발생한다. 이 때 발생하는 ‘의미’는 한마디로 무엇이다, 라고 말할 수 없다. 바로 이것이 쿠텔카의 사진에 재미를 더해주는 요소이다.
쿠텔카의 사진은 어떤 사건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지만, 그 사건에 대해서 분명한 의미를 전달하겠다는 강박관념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오히려 내용적인 측면 보다는 시각적인 화면 구성에 더 관심을 가지고 그것들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farance 1973]
화면의 구성상 우리의 시선을 이곳저곳으로 움직이게 만든다. 가까운 것에서부터 먼 곳으로 작은 것에서부터 큰 것으로, 혹은 수평, 수직으로 우리의 시선이 옮겨간다.
[아일랜드, 1971.]
[아일랜드, 1976.]
[ireland,1972.]
그 시선은 ‘의미’를 고정시키지 못하고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여러 가지 시각 요소, 혹은 대상들에 잠시 머물렀다. 돌아오는 것을 반복한다. 동시에 여러 가지 상징적인 기호들을 읽게 되는데, 이 때에 가서 의미의 차원의 사진 해독이 가능하게 된다.
요제프 쿠텔카
(Josef Koudelkar)는 1938년 1월 10일 체코슬로바키아 모라비아 지방의 보스코비치에서 태어났다. 그가 베이클라이트로 만들어진 조그마한 사진기를 가지고 자신의 가족과 친구들의 사진을 찍기 시작했을 때의 그의 나이는 열네 살이었다.
56년부터 61년 까지 프라하 공과 대학 항공학과를 다니면서 그는 같은 학교 사진부 학생들의 서클에 자주 드나들었고 구형 롤라이플랙스를 구입해서는 본격적인 사진에 취미를 붙이기 시작 했다.
이 때에 사진작가이며 비평가인 이리 예니 체크(Jiri Jenicek)를 만나게 되었는데, 예니체크는 1961년 프라하의 세마포르 극장에서 그의 첫 번째 전시회가 개최되는 데에 많은 힘이 되어 주었다.
이를 계기로 그는 안나 파로바(Anna Farova)를 알게 되었고, 그의 중개로 사진의 역사에 눈을 뜨게 되었다.
[프로필 사진.]
61년 이탈리아로의 첫 번째 외국 여행을 통해서 그는 집시들의 생활에 관심을 잦기 시작한다. 1970년 조국인 체코슬로바키아를 떠날 때까지 그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그는 61년부터 67년 사이 프라하의 브라티슬라바에서 항공공학 기사로 일하는 한편 연극잡지인 디어터[theater]에서 정기적으로 연극무대사진을 찍어주는 일에 종사했다. 여기에서 그가 발표하는 연극무대 사진들은 대단히 독창적인 접근법으로 평판이 좋았다고 하는데 이를 계기로 체코슬로바키아 예술가동맹의 회원이 된다.
66년에는 디바드로 나 자브라들리(Divadlo Na Zabradli)극단에 의해 상연된 알프레드 자리(Alfred Jarry)의 연극 <위뷔 왕>에 대한 저서를 출간하는 자리에서 그동안 찍어왔던 집시들의 사진들을 처음으로 공개 한다. 67년 연극사진에 있어서의 혁신적인 자질로 체코슬로바키아 예술가 동맹이 수여하는 상을 수상. 이 때부터 아예 공학기사의 직위를 사임하고 이후로는 전적으로 사진에만 몰두 한다.
[chaos1]
쿠텔카가 68년 루마니아에서 집시들의 사진을 찍고 있을 때 50만의 바르샤바 조약 기구군(소련이나 동구 4개국)이 체코슬로바키아의 국경을 넘어 프라하에 밀어닥쳤던 것이 1968년 8월 20일 심야. 이 소식을 접한 그는 바르샤바 조약 기구군의 침략에 항의하기 위해서 시민들과 합류 한다. 이 때 촬영한 사진들은 69년에 로버트 카파(Robert Capa)상을 받게 되어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게 되나, 정작으로 그의 조국에서는 그의 이름조차 거론 되지 않았고, 사진들은 모두 볼 수 없었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원작으로 한 영화 ‘프라하의 봄’(The Unbearable Lightness Of Being)을 보면, 여주인공(줄리엣 비노쉬)이 짝은 사진들이 모두 쿠텔카가 그 당시 찍은 사진들이다. 이 사건이후 그는 망명길에 올라 세계 각국을 떠돌아다니면서 그의 삶과 비슷한 집시들의 일상생활을 기록한다. 그 자신 집시가 된 것이다.
[GREAT-BRITAIN. Wales. 1998..]
그동안 찍어왔던 집시들의 생활로 1975년에는 뉴욕의 근대미술관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열었고, 이후 런던, 파리 등 세계의 주요 도시에서 회고전을 개최했다. 78년에 「집시·여행의 마지막」으로 나다르상을 수상하고, 최근99년에는 파노라마 사진에 의한 「사회적 풍경」을 촬영한 사진집「chaos」를 출판 한다.
필자는 이 사진집을 보고 이제 까지 알고 있었던 쿠텔카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발견하고 놀라워했었다. 이 책은 파노라마 사진으로 구성된 것으로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 어둡고 무거운 흑백 톤으로 되어 있다. 특히 한 것은 세로·가로를 여러 가지로 조합할 수 있어 새로운 이미지를 던져 준다는 점에서 앞서 언급한 쿠텔카의 사진 이미지 구성력이 탁월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갰다.
그는 현재 파리에 주소를 둔 채로 여전히 무국적자로 세계각지를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고 있다. 그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글: 이영욱(중국 연변대학교 예술대학 사진과 교수 bonda@intiz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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