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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모든 이미지 미디어와 모든 예술체계들은, 사회감시/시스템 구축을 위한 도구로서 활용되리란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물론 인터넷 감시체체를 향한 사용자들의 저항도 대단할 것으로 생각되며 어느 정도의 성과를 올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처음 인터넷이 만들어진 것부터 공공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군사시스템을 위한 것이었다는 것이 시사해주는 바가 무엇일까를 생각하면, "매체를 사용하고 있는 우리"의 좌표를 좀 더 명징하게 정의할 필요도 절실할터.
영국의 모 디스코클럽에선 단골들을 위한 아이디칩을 이미 신체에 삽입했다고 한다. 또한, 지금 한국에 있는 모든 컬러핸디폰은 위치추적이 가능하다. 대체 당신은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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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zoomin.co.kr
경찰사법부가 범죄자의 신원확인을 위해 사진의 활용에 주목한 것은 무엇보다도 1832년 범죄자의 몸에 낙인을 찍는 야만적인 법령이 폐지되었기 때문이다. 이미 1840년대에 사진의 사법상 잠재력은 널리 인정되고 있었지만, 1860년대가 되어야 죄수들의 사진 기록이 보편화 된다.
이보다 앞서 1839년 영국에서는 신원 불명의 노숙자나, 부랑자들을 구금하기위한 법을 제정하기 위해 사진으로 기록하고 파일을 만들었다. 이것은 장기실직의 최하층 프롤레타리아와 불어나는 대도시 우범자들을 감시하는 종합대책의 일환으로 이 과정에서 ‘범죄적 신체(criminal body)'라는 새로운 정의가 내려졌고, 그 결과 보다 광범위한 ‘사회적 신체(social body)’가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오늘날 자신의 신분을 증명하는 증명사진은 곧 너나 할 것 없이 범죄가능성을 상정하는 ‘사회적 신체화’가 된 것이다. 말하자면 사진은 19세기부터 보이지 않는 낙인으로 그 힘을 발휘하기 시작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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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ertil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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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티옹의 범죄사진 체계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그것은 사람을 체포하기위해 고안한 범죄인식사진이다. 그는 1882년 파리 경시청 ‘범죄자 신원 확인부’를 창설하고 우선 범죄인의 초상사진, 신체측정기록, 통계학적인 분류기록을 하나의 축약된 카드에 통합하였다. 그리고는 이 카드를 포괄적이고 통계적으로 짜여진 파일 시스템으로 조직하였다. 이 방법은 오늘날에도 범죄자 신상기록에 코드화 된 증명사진으로 그대로 적용 되고 있다.
사진을 이용해서 범인을 감식하는 이전의 시도는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분류의 문제가 바로 그것인데, 사진이 공포된 이후부터 너무나 많은 양의 범죄인 사진을 찍어 놓았기 때문에, 체포된 용의자가 만약 가짜 이름을 달고 있을 경우에 그 많은 사진들과 일일이 대조해서 찾아낸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식별하기 쉬운 범인의 정보를 가지고 있다 해도 보통 일 주일 이상이 걸리는 피곤한 노동의 연속이었다. 이렇게 했을 때 당연히 따라 다니는 오류와 간과는 말할 것도 없다. 매일 발생 하는 수많은 범죄자의 신원 파악을 위해서 몇 십 만장의 사진과 일일이 대조한다는 것이 실용적인 일이라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베르티옹은 식물학과 동물학에서 사용하는 분류의 방법체계를 범죄사진에 적용하게 된다.
그것은 범죄자의 개별성의 특징적인 요소에 기초한 방법이었다. 즉, 범인의 개인적인 신체특성을 수치화해서 사진으로 기록하고 이를 일반 성인들의 평균 인체 측정치와 비교 분류하는 방식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베르티옹은 처음에 범죄유형을 분류학적으로 범주화 하기위해서 범죄 장르별로 분류했다가 실패하고 만다. 그것은 범죄인이라는 커다란 ‘전문적인 유형’은 가능하나, 그 유형 속에 범죄인 모두다 반드시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즉, 우발적인 범죄, 비전문적인 형태의 범죄를 일정한 유형 틀 속에 모두 다 적용하기 곤란했던 것이다. 특히나 범죄자들이 자신들이 범죄인이라는 표식을 하지 않은 이상, 인상학적 유형들로 범인을 체포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았다. 무엇보다도 베르티옹은 범죄자의 변장술이나, 신분위조, 복수신원기록, 알리바이위조를 알아내는 일이 급선무였다. 그래서 그는 ‘인체 측정법(anthropometry)’을 이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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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퐁스 베르티옹, 분류 캐비넷, 파리 경시청,18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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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열한가지 신체적 특성을 수치로 측정한 것을 기록한 다음 이를 촬영하고 기술한 인증서에 정면과 측면을 찍은 얼굴 두 장의 사진을 첨부하여 신원조회 자료를 만들었다. 이는 관상학적이고 골상학적인 방법론을 사진촬영에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즉, 사진의 신뢰성을 바탕으로 카메라 광학의 정밀성, 관상학과 통계학이론을 통합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일명 ‘베르티옹 카드’로 불리는 이 범죄 사진은 귀나 팔, 발, 지문, 손가락의 길이, 코의 형태적 특성, 눈과 머리카락의 색깔, 등 여러 신체의 세부를 정밀 촬영하고 측정하여 사진파일을 작성하고 분류하며, 각 개인의 식별이 용이하도록 정면, 측면 사진을 동시에 배치하는 등의 기법을 일컫는다. 물론 이 때에 찍혀지는 범죄인의 체형은 어떤 개성적인 특성도 그리 중요하지 않다. 즉, 인체에 난 상처나 특정부분의 표피나 골격은 인상착의로서 지표에 불과 했고, 인체측정표로 분류된 수치항목이 더 중요했다.
그렇기 때문에 범죄인을 촬영할 때에는 항상 카메라와 피사체간의 동일한 촬영거리를 유지했고, 균일한 조명, 고정된 초점거리의 렌즈를 사용한다는 법칙을 적용했다. 측면상은 표정의 불규칙한 우연성을 제거하는데 도움이 되었고, 머리칼의 윤곽선은 노광시간에 따른 흔들림을 방지하기 위해서 고속으로 촬영 하였으며, 정면 사진은 거리에서 형사들이 범인을 체포할 때 사람들을 인식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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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퐁스 베르티옹, 인체측정사진, 18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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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퐁스 베르티옹, 베르티옹 카드, 190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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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티옹은 이렇게 인체측정 기록 범죄사진을 평균, 평균미달, 평균이상의 삼분법에 의해 세분화하고 10만개가 넘는 작은 서랍에 나누어 보관했다. 실제로 1883년부터 1893년까지 약 10년간 10만 명의 남자와 2만 명의 여자를 이렇게 분류한 후 베르티옹은 4,564명의 상습범을 검거하는 놀라운 성과를 올린다. 그러면서 그는 이 체계가 오류가 없다고 공언한다. 사진의 객관적인 기록에 무한한 신뢰를 보네고 있는 것이다. 그는 말하자면, 아카이브의 근본 문제, 즉, 방대한 부피와 검색의 효율성을 그리고 자료의 실증적가치의 신뢰성을 해결하기위해서 사진기록을 사용한 최초의 사람이었다. 그는 사진이야말로 신원확인의 최종 확증단계라고 생각했다. 비록 여러 단계의 확인 절차를 거친 다음의 일이지만, 혐의자를 찍은 사진과 파일시스템의 서랍 속에서 꺼낸 이전의 사진을 비교하는 일 만큼 정확한 것은 없다고 보았다.
19세기에 범죄사진의 출현은 우선 사진이 과학적 증명으로서 확실한 매체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것은 재현하는 주체의 상상력이나 주관성을 배제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19세기의 거의 모든 과학 분야는 논지의 과학적 증명을 위해 현실에 존재하는 사물·현상을 사진으로 재현했다. 병원에서는 정신병 환자를 관찰하기위해, 정신병리학에서는 인간 표정을 작성하기 위해, 인종학은 유럽과 주변인종의 관상적 특성을 연구하기 위해, 경찰은 재범자의 신원을 밝히기 위해서 초상사진을 ‘유형학 (typology)’에 대입해 사용해 왔다. 풍경의 경우도 고고학 자료로서의 유적사진, 문화재 보전을 위한 건축사진, 지형과 지질학 탐사와 관련된 사진들이 이미 상당량 생산, 소비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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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유형학적 촬영의 대표적인 예는 ‘필립 포토 (Phlippe Potteau)의 인종학 연구사진’이다. 그는 파리 자연사 박물관의 의뢰를 받아 1850년 후반부에서 1860년대에 걸쳐 파리에 거주하는 외국 원주민과 1862년 알제리 토착인 들에 대한 인종학적 특성을 분류하는 초상작업을 했다. 그는 정면 인물사진과 측면 인물사진을 병치하는 촬영을 체계화함으로써 베르티옹의 앞서 인체 측정술을 완성하는데 기여했다. 인물의 정면과 측면을 병치하는 인종학의 인체측정 사진술은 초상 연출에 소용되는 모든 소도구를 제거했고, 모델의 얼굴은 무표정을 지향한다. 비교와 분류의 정확성과 검색의 편리함을 보장하기 위해 모델은 어떠한 변화를 용인하지 않는 촬영의 규격화·표준화에 복종해야 했다. 오늘날 증명사진에 요구되는 무표정한 얼굴로 정면을 바라보는 포즈는 바로 이 때부터 체계화된 것이다.
당시 19세기 유럽의 학문체계를 지배했던 유형학사고는 18세기 식물과 동물의 학문적 분류에 적용되었던 박물학에서 사용되었던 분류학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으로, 개별적인 특징을 형태별로 분석하고, 분류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유형학적 사고는 인간과 자연을 도식과 도표로 간단명료하게 분류하고 통제, 지배하는 시스템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유형학은 무엇보다 연구표본을 간편하게 채집할 수 있고, 비교와 검토를 원활하게 할 수 있었다. 말하자면 이러한 형식적 규범은 여러 분야에서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동시다발적으로 드러났으며, 베르티옹은 이를 가장 체계적으로 범죄사진 모록으로 적용한 인물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유형은 분류하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정한 틀을 기준으로 설정하고 지나치게 이 틀에 구속된다.
베르티옹은 사진의 과학적인 힘과 극단적인 유형학과 통계학적인 추정에 의존 하고 있는 나머지 서로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인상학적 차이점이 너무나 많고 복잡하다는 사실을 애써 무시하고 있다. 더군다나 범인을 식별하는 경찰의 판단 자체가 오류일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서는 그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즉, ‘베르티옹 카드’는 범죄인을 식별하는데 편리하고 쉽게 하는 하나의 수단에 불과 했다. 그의 유형학적인 사고와 사진에 대한 과학적인 신뢰도가 범죄를 근본적으로 예방하는 차원의 문제 해결책은 되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은 감시와 처벌이라는 질서 유지 차원의 유용한 수단으로써 사진에 막강한 권력의 힘을 준 것이나 진배없는 일이다. 그 옛날 몸에 낙인을 찍던 야만적인 행위는 이제 사진 찍는 것으로 바뀌었을 뿐 통제와 감시체계는 보이지 않는 것으로 더 교묘하고 세련되게 우리의 삶으로 침투하기 시작한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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