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실 가장 찍기 어려운 사진이 인물이다. 폭력적 관계/이미지
강탈- 같은 구태연한 이야기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상대가 말이 통하는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도 감내해야 하는 어려움은 도처에 산재한다. (ex_왜 이렇게 찍어?) 헌데
거기에다 함께 생활을 영위하는 메이트를 찍어나간다니, 옵. 내가 주로 풍경을
만드는 사람이라 그런지 몰라도 나에겐, 풍경이외의 휴식이 될 수 있는 비줠/미디어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음악이 잡식인 것도 있고. 대체
옆자리에 있는 인간을 찍은 긴 시간이 지난 후 그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아,
물론 힌트는 있다. 중간즈음에 형편없는 공동생활인이라는 대목. .' )
+ + +
| 일본 /
가장 가까운 타인(他人) = 아내(妻) |
 | |
|
일본의 사진월간지 「아사히카메라」2003년 2월호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찍는다(My Dearest!)>를 특집으로 기획, 우에다 쇼오지, 후지시로 메이사, 나가시마 유리에, 아라키 노부요시, 우에다 요시히코,
나라하라 잇코, 세토 마사토, 미야모토 류우지, 나가노 요우이치 등 사진가들이 자신의 아내와 남편, 보이 프랜드, 걸 프랜드 등을 찍은 작품을
게재했다. 다른 사람은 결코 엿볼 수 없는 생생한 모습을 찍은 사진에서는 그들의 관계가 짙게 드러나 있다. 포테이토에서는 이 특집에 실린 관련
기사 가운데 이이자와 코오타로의 글을 싣는다.
 아라키 노부요시(荒木經惟)「아라키 노부요시 전집 3,
요오쿄(陽子)」에서 |
사진을 통한 재생의 시도 「가장 가까운 타인 =
아내」 | 아내의 사진을 줄곧 찍어온 사진가로 후카세 마사히사(深懶昌久)와
후루야 세이이치(古屋誠一)가 있다. 또 스티글리츠나 카라한 등 구미에도 아내의 사진을 작품으로 남긴 사진가들이 많다. 「가장 가까운 타인 =
아내」를 찍는다고 하는 행위에 관해서 생각해 본다.
사진가가 자신과 가장 가까운 파트너(아내, 남편 또는 연인)를 찍는 것은 별로
신기한 일은 아니다. 사진사의 초기에서부터 무수한 사진이 찍혀져 왔다. 자신의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영상으로 남겨두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촬영된 파트너의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그들이 한마디로 간단하게
설명할 수 없는 강렬한 존재감 같은 것을 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시대도 스타일도 촬영방법도 제각각 전혀 다르지만 다른
피사체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어떤 감촉을 갖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어떤 종류의 절박한 긴장감이나
고양감(高揚感),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사이에 자신도 모르게 흥분되어 가는 듯한, 거역할 수 없는 감정이 이들 사진에는 공통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 파트너라고 하는 서로의 관계가, 다른 사진가나 모델과의 관계와는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촬영이 끝나면 안녕하고 손을 흔들고 난 다음 헤어져버리는 것과는 다르다. 생활을 함께 하고 있는 이상, 보통의 모델에는 보여주지 않는 면,
때로는 얼굴을 돌려버리고 싶은 추악한 부분까지도 적나라하게 드러내버린다. 그것은 어쩌면 서로 상처를 입힐지도 모르는 위험한 게임인 것이다.
강함도 연약함도, 자랑도 콤플렉스도 모두 포함해서, 상대의 눈길에 자신이 알몸이 되어 가는 듯한 감각을 사진가도 모델로서의 아내나 남편이나
연인들도 함께 맞보게 되는 것이 아닐까.
후카세 마사히사 - 요오코(洋子)의 정념(情念)의 충돌
그렇게 찍는 자와 찍히는 자의 위험한 관계를 생각할 때 언제나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후카세 마사히사 - 요오코
커플이다. 이 두 사람은 1963년에 처음 만나 다음해인 64년에 결혼해서 사이타마(崎玉)현 소가(草加)시의 아파트단지에서 생활을 시작했다.
후카세는 만난 직후부터 요오코을 찍기 시작해서 그 매력적인 표정이나 제스처를 필름에 담았다.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픽션인지 구별이 안
될 정도의 생생한 작품들은 야마기시 쇼오지(山岸章二)가 편집한 「영상의 현대」 제4권으로 간행된 사진집 「유희」(중앙공론사, 1971)에
실려있다.
그런데 이 커플의 관계는 점점 삐걱대기 시작한다. 몇 차례인가 후카세가 가출을 하기도 했는데, 73년에 그는 하나의
결심을 하기에 이른다. 설령 결과가 재미없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1년 동안 요오코를 찍어보겠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촬영된 요오코의 사진은
남자와 여자의 에고(ego)와 정념이 충돌하는 처절한 영상이 되었다. 그런 후카세의 사진 행위를 요오코는 다음과 같이 냉정하게
평가한다. |
|
 후카세 마사히사(深懶昌久) 「소노라마 사진선서 8, 요오코(洋子)」(1978, 아사히 소노라마)
표지 | "10년 동안이나 나와 함께 살아오면서
그는 나를 렌즈로만 바라보고, 그가 찍은 나는 바로 그 자신 이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공동 생활자로서의 후카세는
도저히 구원할 수 없는 에고이스트입니다.." (<구제할 수 없는 에고이스트>, 「사진가 100명, 얼굴과 작품」,
마이니치(每日)신문사, 1973). 이 커플은 결국 76년에 이혼하고 만다. 그 2년 후에 간행된 사진집 「요오코」(아사히 소노라마,
1978)의 표지에는 상복을 입은 요오코의 포트레이트가 실려 있는데, 2장 가운데 한 장은 사진이 들어있는 액자의 유리가 커다랗게 금이 나 있는
사진이었다.
 |
Athur Ollman 「The Model
Wife」(1999, Bulfinch/ Museum of Photographic Arts) 아돌프 드 메이어, 알프렛 스티글릿츠, 에드워드
웨스턴, 하리 캘러한, 에멧트 고우윈, 리 프리드랜더, 후카세 마사히사, 후루야 세이이치, 니콜라스 닉슨 등 9명의 사진가들의 아내를 찍은
사진집. 표지는 웨스턴의 작품. 이 테마를 다룬 대표적인 사진집이다. |
 1. 알프렛 스티글리츠 「The Model Wife」에서, Georgia
O'Keeffe: A Portrait, 1932 2. 에메트 고우윈 「The Model Wife」에서, Edith, Newtown,
Pennsylvania, 1980 3. 하리 캘러한 「The Model Wife」에서, Harry Callahan, Eleanor,
Chicago, 1949 4.자끄 앙리 라르티그 「Lartigue's Winter Picture」(2002, Flammarion)에서.
Bibi, onhoneymoon, Chamonix, France, January
1920 |
작품의 모체가 된
아내들의 사진
 후루야 세이이치(古屋誠一) 「Last Trip to Venice」(2002, 오시리스)에서 |
|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처럼 종이의 앞뒤 면처럼 애증이 얽힌 긴장관계는 파트너를 촬영한 거의 모든 사진들에서
나타난다. 알프레드 스티글리츠가 죠지아 오키프를 찍은 일련의 포트레이트나 누드사진에도, 하리 캘러한의 엘리노어에도, 에멧트 고우윈의 이디스에도,
그리고 아라키 노부요시의 요오코의 사진에도 찍는 자와 찍히는 자 사이에 격렬하게 스파크 하는 감정의 교환이 생생하게 찍혀있다. 물론 후카세와
요오코처럼 결과적으로 네거티브한 상황을 만들어 내는 경우도 있지만, 그들의 관계는 커다란 폭을 지닌 작품을 만들어 내는 모체가 되기도 한다.
스티글리츠도, 캘러한이나 고윈이나 아라키도 아내를 촬영한 사진들은, 그들의 다른 작업과는 성격이 다른 높은 경지를 이루고 있는 것을 보아도
그렇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파트너를 찍은 사진에 행복감이 드러난 작품은 지극히 적고 (자크 앙리 까르티에가 신혼여행 중에 자신의 신부인
비비를 촬영한 사진과 같은 예외를 제외한다면) 모두 비극적인 분위기를 강하게 띄고 있는 것은 어쩐 일일까.
마침 제27회 이나
노부오(伊奈信男)상을 수상한 후루야 세이이치(古屋誠一)가 자살한 아내 크리스틴의 '기억'을 집요하게 추구한 시리즈를 보고 있노라면, 사진가와
모델이라고 하는 숙명(業報)과도 같은 무엇인가를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사진을 촬영한다고 하는 행위는 결국은 사랑하는 사람의 묘비명을 새겨
넣는 일일까. | 아니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가령 얼핏 보기에는 죽음의 그림자를 짙게
드러내는 사진이라 할지라도 사진을 바라보는 사이에 괴로움과 슬픔은 정화되고 어느 사이엔가 불가사의하게 행복한 기억에 젖어들게 되는 것을 느낀다.
가장 가까운 타인인 파트너를 촬영한다는 것은 사진을 통한 재생(再生)의 시도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많은 사진가들이 자신들의
내면의 강한 충동에 따라 아내의 사진을 찍을 것임에 틀림없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