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시미론

zabel

(2005-07-05 15:58:51, Hit : 1219, Vote : 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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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고승욱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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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는 나름대로 감명깊게 본 작품이라.-_-a
작업의 가치 혹은 직설 어법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방법의 작업들이 넘 많아지는 것도 그렇고 프로세스의 한계성도 이젠 분명히 드러났다고 보는 바. 그닥 관심이 가진 않지만, 작가의 진성을 드러낸다는 면에선 매우 주목할 만하단. 며칠전에 미친년 프로젝트를 보고서 네거티브적인 의미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되었다. 광기 자체는 거칠음에 근거한 환상의 공간이기 떄문에 일반적으론, 고급스럽게 포장하는 편이 효과적일 때가 많다는. 아래의 작가도 한 예가 될터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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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포럼에이

미치고 싶은 그러나 미쳐지지 않는
- 고 승 욱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세상에서
정치적으로 올바르고 싶었던 자가 펼치는
코믹하고 우울한 금치산자의 미학”

이정우(임근준) / 미술·디자인 평론가

_참석하시어 자리를 빛내주십시오

작가 고승욱(1968년생)의 첫 개인전 <참석하시어 자리를 빛내주십시오>(관훈미술관, 1997년)는, 평론가 겸 작가 박찬경이 평가했듯이, ‘1960년대 이후 미국의 ‘제도 비판적’ 개념미술을 연상‘시켰다. 그는 미술관과 맺은 대관계약 서류를 작품으로 제시하는 한편, “작품에 손대지 마시오”라는 경고문구를 인쇄한 관제엽서를 발송하고 되돌려 받음으로써 제도와 과정을 작품으로 끌어들였고, 또한 전시장 바닥에 “전시장을 깨끗이 사용합시다” 따위의 계도문구를 투명 접착제로 적어놓음으로써 관객들에 의해 서서히 글자나 나타나도록 장치해놓았다. 이러한 제도 비판의 제스츄어들이 과연 얼마나 성공적이었느냐를 묻는다면 대답은 다소 부정적인 쪽으로 기운다. 이후에도 그는, 어떠한 면으로 보나, 특별히 눈에 띄거나 재능이 있어 보이는 작가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작업에는 독특한 힘이 있고, 그것이 그에게 차별화된 가치와 지위를 부여한다. 고승욱의 힘은 전적으로 ‘정치적 순진성’에서 나온다. 마치 1979년의 ‘현실과 발언(민중미술을 태동시킨 미술그룹)’에서처럼 말이다.

_ ‘민간적인 팝’의 게임

박찬경이 ‘민간적인 팝’이라 평가하는 고승욱의 작업은 이런 식이다. <미술주변>전(덕원 갤러리, 1998)에 출품된 <X>(1997-1998)는 본디 미완성 상태로 제시되어 소문자 ‘y’로 읽히도록 고안되었더랬다. 이에 작가는 어느 영민한 관객이 이 작품이 본디 소문자 ‘y’가 아니라 ‘X’임을 알아차려 ‘Y의 음모’라고 불리게 되었다는 거짓 증언을 붙여놓았다. <미술주변>전에 초대받은 작가는 이 텅빈 기호 ‘X’를 다시 입체로 제작했고, 이 오브제 ‘X’는 운송 과정에서 주차공간 점유물 노릇을 하던 동네 아저씨의 자전거와 교환되었다. 결국 갤러리에 작품으로 전시된 것은 자전거였다. 이 작업에 첨부된 작가의 해설은 이렇다.

“나는 작품 X를 “미술주변전”에 가지고 가던 도중 동네 아저씨를 만났다. / 그는 X에 관심을 가졌고, 일정기간 그것을 소유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 나는 그 부탁을 들어주는 조건으로 X를 대신해서 전시할만한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 나는 주차금지 표지물로 사용하고 있던 자신의 자전거가 어떠냐고 했고, / 나는 그 자전거를 “미술주변전”에 전시하기로 했다.”

이 증언은 필경 지어낸 이야기일 터이다. 하지만 이 증언된 거짓 서사 속에서 아무 기능과 의미를 갖지 못했던 미술 오브제 는 주차구역을 지키는 실용적인 사물로 변화되었고, 본연의 운송수단으로서의 기능 대신 주차구역을 지키는 전도된 기능을 획득하고 있던 자전거는 작가와 동네 아저씨의 구두 계약을 통해 한시적인 예술품으로서의 새로운 기능을 획득하게 되었다. 상관이 없는 두 오브제를 약간의 거짓말 ― 도시 빈민 풍의 ‘어번 레전드’라 할만한 ― 을 통해 병치시키고, 그렇게 병치된 오브제들을 다시금 각각의 사회적 맥락 속에서 간단히 재배치시킴으로써, 작가는 예술품과 일상의 공업제품이 지니는 기능과 기생-기능, 상징과 알레고리 등을 아주 힘 있게 문제화시켰다.

_ 두 번째 개인전을 통해 얻은 죄책감

고승욱이 본격적으로 미술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2000년부터였다. 그는 2000년 한 해 동안 대안공간 풀에서 가진 개인전 <레드후라이드치킨>외에 <또 다른 공간-인사미술공간 개관기념전>(인사미술공간), <인사동 텍스트 타워>(보다갤러리), <서울의 화두는 평양전>(광화문 갤러리) 등의 크고 작은 그룹전에 연이어 참여했고, 그를 통해 ‘아주 분명한 정치적 계보를 지닌 작가,’ 즉 포럼 에이/대안공간 풀을 대표하는 작가로 미술계에 각인되었다.

당시에 그가 선보인 작업 가운데 대표작은 ‘비닐봉지연작’이다. 재활용된 비닐로 만든 싸구려 검정 비닐 봉지를 이어 붙여 거대한 스크린을 만들어 늘어뜨리는 데, 이를 얼핏 보면 마치 미니멀리즘 이후의 형식 실험을 시도한 작품 같기도 하다. 하지만 작가는 표면을 가득 메운 비닐 봉지들의 결을 이용해 간단한 단어 ― Hi(하이), 선지, 오라, 앗싸 등 ― 를 만드는데, 이 잠정적인 글자 만들기의 과정을 통해 작업은 다시금 황당한 차원으로 도망치게 된다. (작품 제목도 , <선지>, <오라>, <앗싸>다. 모두 2000년도 작업.)

<돼지 잡기>(2000)에서는 플라스틱 돼지 저금통을 칼로 저며 실뜨기 놀이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레드후라이드치킨>(2000)에서는 수건과 때수건으로 만든 프라이드치킨을 보여주었으며, <강냉이맨>(2000)에서는 강냉이로 가득 찬 부대자루 인형을 보여주었다. 허나 이들 텅 빈 기호들은 1차적인 표상 이상이 되는 데에 실패함으로써 ‘예술’과 ‘헛짓’의 경계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지루하게 반복했다. 한편, 노란 파라솔과 노란 플라스틱 의자를 다양한 상황에 배치시켜놓은 <옐로우 픽션>(2000)은, 다소 ‘진도구’스러운 면은 있지만, 모호한 상황 속에서 창출되는 ‘헛의미’를 가지고 놀았다는 점에서 기존의 작업들(예를 들어 )과의 연속성을 가졌다. 이렇게 당시의 작업들은 이질적인 요소들이 섞인 과도기적인 양상을 띠었다.

보통의 작가들 같으면 해를 거듭할수록 작업 내에서 구사하는 시각기호나 어법을 보다 정교하게 다듬고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애쓴다. 작업에 자신만의 스타일을 부여하고 자기 자신을 브랜드화한다. 하지만, 고승욱은 두 번째 개인전을 전후로 한 활발한 창작과 전시 활동을 거쳐 다시 원초적이고 직설적인 차원으로 회귀해버렸다. 자신의 마음속에서 울려 퍼진 ‘작가로서의 세속적 성공의 열망에 대한 죄책감’에 극단적인 ‘광기의 실천’으로 화답한 것일 터이다.
_ 미친 도시를 헤매는 미친 사람의 미친 짓

2001년에 고승욱은 <노는 땅에서 놀기>라는 이상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노는 땅에서 놀기 1>(2001)의 기록 사진들은 어느 대학 교정의 가로수가 뽑혀 나간 자리를 골라 곡괭이와 삽으로 파고는, 그 구덩이에 홀딱 벗고 들어가 노천 온천에서처럼 ‘놀고 있는’ 작가의 모습을 보여준다. <노는 땅에서 놀기 2>(2001)와 <노는 땅에서 놀기 3>(2001)으로 이어진, ‘노는’ 땅에서 ‘놀고 있는’ 고승욱의 모습은 영락없는 정신병자다. 이 황망한 말장난의 실천은 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노는 땅에서 놀기>의 개정판인 <철인 3종 경기>(2004-작업중)는 이제 스포츠의 단계로 발전된 자학의 놀이, 즉 자학의 스포츠를 보여준다. 작가는 트럭을 빌려 짐칸에 화물고정용 안전띠로 버려진 문짝 등 폐자재를 묶어 흙을 담을 수 있는 칸을 만들고 흙을 가득 쏟아 넣었다. 그 위에 올라 누운 그는, 트럭의 출발과 함께 수영을 시작한다. 트럭은 아현동을 지나 인사동 거리를 지나고, 터널을 지나더니만 동호대교를 건넌다. 이제 스포츠로 진화해서인지, ‘미친 짓’을 실천하는 작가의 얼굴은 자못 진지하다 못해 비장하다. 이제 남은 것은 싸이클과 마라톤이다. 과연 그는 완주에 성공할 것인가?

도시의 욕망이 빈틈을 드러내는 ‘노는 땅’에서 고승욱이 펼쳐 보이는 자학의 실천은 자신이 가졌던 세속적 욕망(작가로서의 성공에 대한)에 대한 징벌 혹은 그를 통한 속죄 의식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달리 보면 작가들의 헛된 출세의 욕망에 대한 속죄 혹은 구원 의식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럴 경우, 고승욱은 타락한 현대예술의 예수가 되는 셈이다. 과연 진보적인 척하는 예술의 죗값은 얼마나 클까? 이 예술의 예수가 홀로 삼종 경기를 마친다고 그 죄가 사해질 것인가? 물론, 그럴 리 없다.

_ ‘오래된 현재’ 속에서 얻은 정신적 안도

쌈지스페이스가 마련한 <이건용VS고승욱 - 타이틀 매치전>(2005)은 고승욱의 자학적 광기에 다소나마 휴식의 시간을 부여했다. 한국현대미술에서 개념미술의 서막을 장식한 시공그룹(ST(Space & Time): 1970년 결성)의 리더 이건용(1942-) 선생과 공동작업을 펼치는 고승욱의 표정에서는 광기대신 일시적인 안도와 평화를 느낄 수 있다. 고승욱이 이건용 선생과 몸으로 데칼코마니를 찍어 보이는 과정을 기록한 <포옹1>(2005)과 <포옹2>(2005) 또한 ‘미친 짓’에 가까운 어이없는 실천이기는 했지만, <노는 땅에서 놀기> 연작에서 느껴지는 처절함이나 <철인 3종 경기> 연작에서 느껴지는 비장함은 보이지 않았다.

이건용-고승욱의 공개 퍼포먼스 <된장과 케찹>(2005) 또한, 서로를 엉망진창으로 망가뜨리는 가운데, 기묘한 애정의 교감을 보여주었다. 이건용 선생이 고승욱에게 된장을 바르는 것으로 시작한 퍼포먼스는 고승욱의 케찹 반격으로 이어지고, 점차 더욱 대결이 난잡해지는 가운데 이 늙고 젊은 두 작가는 된장과 케찹에 대한 개인적 기억들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이 어이없는 예술의 타이틀매치는 된장과 케첩이 뒤섞이고, 그것을 국화꽃에 묻혀 관객들에게 먹이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하지만 역시 놀라운 것은 그 행위가 아니라 행위를 100% 즐기는 두 작가의 모습이었다. 늙고 젊은 남자 둘이 천진난만하게 비성애적인 방식으로 몸을 부비는 모습은 소위 ‘엽기’ 이상의 괴이한 차원을 보여주었다. 일종의 ‘생색내지 않고 한계를 넘나들기’를 보여주었다고나 할까.

한편, <노는 땅에서 놀기 1>(2001)의 재연에 우정 출연한 이건용은 치유의 몸짓을 보여주었다. 이건용은 구덩이에서 놀고 있는 고승욱의 손을 잡아 끌어내고는 그 자리에 어린 묘목을 심었다. 나무를 심는 노작가의 모습은 마치 후배 작가의 정신적 상처를 쓰다듬는 것만 같아 보기 좋았다. 하지만 역시 고승욱의 정신적 외상이 묘목 하나로 치유될 리는 없었고, 작가의 광기어린 자학은 계속되었다.

_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

<엘리제를 위하여>(2005)는 비디오로 기록된 작업으로, 커다란 바퀴달린 대 위에 놓인 가정용 피아노와 피아노 앞에 앉아 <엘리제를 위하여>를 연주하는 여성 동료 작가를 밧줄로, 그것도 귀에 걸어서 끌어당기는 우스꽝스러운 작가의 모습을 보여준다. 혹시 이 작품이 어린이들의 피아노 교습으로 상징되는 허위적인 예술애호의식과 그로 인한 예술의 고통에 대한 것이라면, 이는 아주 천박한 ‘계도 미술’이 된다. 만약 계몽의 의지가 없었다면, 그의 모든 난리법석은 다 무엇이었을까?

해석을 거부하는 미학적 금치산자의 전략은 <찌찌와 UFO>(2005)에서 극에 달한다. 작가는 자신이 좋아하는 재료인 싸구려 비닐봉지를 이용해 할머니의 젖가슴 형상을 만들고는 그 두 꼭지를 공중 화장실용 두루마리 휴지로 만든 두 대의 UFO와 연결해 놓았다. UFO의 배경에는 베니어판을 놓고 구멍을 뚫어 엉터리 밤하늘을 연출해 놓았다. 빛을 조절하느라 사용한 검정 절연 테이프는 전시 내내 조명 트레이 위에 놓여있었지만, 어떤 큐레이터도 그것을 치우지 않았다. 작가는 “그건 나의 고도의 전시 연출”이라고 우겼지만, 그 말은 “UFO처럼 신화화, 신비화되면서 만들어지지만, 쓰고 나면 쓰레기 비닐봉지 신세가 되는 상품 생산과 소비의 메커니즘을 꼬집은 풍자적인 작업”이라는 쌈지 스페이스 측의 작품 설명만큼이나 진실성을 결여한 농담에 불과했다. 내가 보기에, 이 작업은 멍하니 바라보면 나름대로 어이없게 재미있는, 금치산자의 미학을 담은 작업이다. 대중에게 아양을 떨기 위해 끊임없이 무언가를 표상해야 하는 미술 작품의 비애를 담은 블랙 코미디라고 보면 이해가 쉽겠다. 하지만, 과연 작가 고승욱은 얼마나 오래 ‘미치고자 노력하는 자신’을 용인할 수 있을 것인가?

고승욱의 근작들은 광기의 탐구라는 면에서 이인성(1953-)의 소설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1995)을 연상케 한다. 이인성은 문단의 여러 시인들의 시구들을 발판 삼아 상처 받고 분열된 주체들 사이의 화해를 재결합을 꾀하고, 그를 통해 이데올로기를 넘어선 ‘타자의 회복’을 시도했다. 그래서 이인성은 소설의 말미에서, 새로운 주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 그래서 그저 기존의 주체를 반성하고 이데올로기에 길든 주체를 벗어나려는 주체가 있을 뿐이라는 듯, 그래서 새로운 언어(예술)란 몸부림에 다름 아니라는 듯 이렇게 썼다.

“머릿속에 또아리 틀고 있는, 희망에 중독되어 있는 광기가 웅얼웅얼 무엇인가를 희망한다. 별아, 쏟아져라, 핏줄 번진 눈알로 거꾸로 바라보는 하늘에, 어질어질 흰 빛점들이 찍힌다. 그게 별인지 또 환각인지. 그 빛점들을 향해 곤두세워진 채 하늘의 어둠에 뿌리내리지 못하는 발끝은, 아무튼 여전히 슬프다.”

고승욱의 ‘웃기는 작업’은 ‘하늘의 어둠에 뿌리내리지’ 못해 그토록 마냥 슬픈 것일까? 몸부림 외엔 정말 아무것도 없는 것일까? 이데올로기를 넘어선 ‘타자의 회복’은 이상에 불과한 것일까? ■

* 이 글은 축약본입니다. 지면 관계상 원고지 매수 66매 분량의 원고를 원고지 매수 35매 가량으로 축약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