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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티즌에 오른 허니푸님의 글입니다. 님의 재가를 아직 받지 못한고로, 삭제의 위험도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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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전 [그들의 시선으로 본 근대], “그 전쟁이 우리의 꿈까지 옭아매었고, 우리 꿈을 다시 꾸게 하였다”
허니푸 honeypooh04@yahoo.co.kr
사진 평론가 빅터 버긴(Victor Burgin)은 사진의 의미가 사진 자체에 의해 결정되지도, 사진 자체로 국한되지도 않는다고 말한다. 의미는 사진이 존재하는 맥락에 의해 생산된다는 것이다. 그‘맥락’은 사진을 둘러싼‘담론’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어떤 사진을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드는 의미작용은 담론 내에서 이뤄진다는 것이다. 서울대학교 박물관 소장 유리건판 사진전Ⅱ [그들의 시선으로 본 근대](2004년 4월 9일~6월 12일)는 사진을 둘러싼 담론들 간의 경합과 갈등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전시다.
서울대학교 박물관은 1,300여 점의 유리원판을 소장하고 있는데 주로 1910년대와 1930년대 조선과 만주 및 몽고 지역의 민속을 촬영한 것이다. 그 중에서 민속학에 관련된 사진은 지난 2001년에 [유리원판 사진 특별전- 삶, 자취, 사진](2001년 12월 20일~2002년 5월 26일) 전시에 공개된 바 있다.
제목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듯 전시의 초점은 ‘그들의 시선’이다. 서울대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유리 건판의 대부분은 1930년부터 1940년까지 일본인 사회학자이자 민속학자인 아키바 다카시(1888-1954)와 아카마쓰 지조(1886-?)가 한국과 중국의 민속을 조사하며 촬영한 학술조사 사진으로 ‘추정된다’. 일본인 민속학자들의 조선 민속학 연구는 조선 총독부의 촉탁으로 이뤄졌고 이는 1919년 3.1 운동 이후 일제의 문화동화 정책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일본 학자들이 주도한 민속학은 ‘일선동조론’과 같은 식민 지배 이데올로기를 조직적으로 실행하는데 목적을 두었으며 피식민지 조선의 문화적 열등성과 식민지 민족으로서 역사적 운명을 논증하기 위한 자료로 이용됐다.
전시 주최측은 일본학자들이 촬영한 사진을 통해 이들이 어떻게 식민 주체를 대상화하여 식민 지배를 정당화했는지, 식민 담론의 타자화 전략을 비판하고자 한다. 말하자면 ‘그들의 시선’은 1930년대 경성처럼 발달된 도시의 면모는 도외시한 채 다 쓰러져 가는 초가집이나 남루한 옷을 입은 조선인들만을 주목하며 조선의 후진성을 강조했고 산업화 과정에 나타나는 다양한 노동 형태를 보여주기보다 농업 중심 전근대적인 노동에만 초점을 맞췄다는 것이다. 또한 지배층이었던 일본인은 카메라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들의 모습을 드러내지만 피지배층이었던 조선인은 조사의 대상으로서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힘없는 피사체가 되어 ‘그들의 시선’에 노출됐다는 것이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무엇이 달라졌는가? 전시 기획자가 사진을 바라보는 시선은 비판하고자 했던‘그들의 시선’을 용인하고, 해석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말하자면 여전히 ‘그들의’ 시선으로 1930년대 조선과 조선인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농촌의 남루한 옷을 입은 촌부가 아니라 1930년대 경성의 자유연애를 주장하는 ‘신여성’을 촬영했다면 ‘근대적인’것이고, 그러므로‘올바르고’‘균형 잡힌’시선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들의 시선’이 작동하는 프레임은 달라지지 않았다. 일본/조선, 그들/우리, 근대/전근대라는 이분법적인 구도에 의해 작동하는 시선의 권력은 해체되지 않았다.
문제는 ‘그들’의 시선은 이미 ‘우리’안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아키바 다카시는 ‘우리’안에 존재하는‘그들’의 존재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존재다. 아키바는 서울대학교의 전신인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종교학과 사회학 연구실에 소속되어 무속 연구에 주력했는데 1941년 동경대학에 제출한 박사학위 논문 [조선 무속의 현지 연구]는 한국 인류학사에서 현지 조사를 바탕으로 한 최초의 사회인류학적 연구로 평가된다. 아키바가 제시한 무속 연구의 방법론과 분석의 틀은 해방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 민속학과 인류학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2001년 [유리 건판 사진 특별전]이 열렸을 때 전시된 사진 중 일부가 조선 민속학의 선구자 송석하의 책에 나오는 사진과 동일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는 것이다(이에 대해서는 이경민의 “아키바의 사진 아카이브와 재현의 정치학”([황해문화], 20002년 봄)을 참고할 것). 또한 서울대박물관에 소장된 유리 건판이 담겨진 종이 상자에는 아키바와 송석하라는 이름이 함께 명기돼있었다는 것이다. 송석하와 아끼바는 1932년 조선 민속학회를 결성하는데 협력했고 공저로 책을 출간하려 했다. 아키바와 함께 조선 민속학자 송석하의 존재는 그들/우리의 구분을 다시 한번 무너뜨린다.
이번 전시에는 ‘만주, 또다른 타자’라는 주제로 일본이 조선과 함께 지배대상으로 삼았던 만주 지역의 무속을 촬영한 사진도 전시됐다. 만주와 조선이 1930년대 일본이 서구 열강의 식민 정책을 모방, 대동아 공영권을 꿈꾸며 발견한 타자라면 일본의 식민 담론을‘조국 근대화론’으로 계승해‘고도성장’을 거듭한 한국 자본주의가 90년대 발견한 베트남과 몽고, 중국은‘전근대적이고 낙후된’ 또다른 타자였다.
전시를 보는 동안 줄곧 소설의 한 대목을 생각했다. 아룬드하리 로이(Arundhary Roy)의 [작은 것들의 신]에 나오는 대목이었다. 소설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주인공들의 삼촌인데 그는 옥스퍼드를 졸업한, 영국인보다 더 품격 있는 영어를 구사하는 인도 최고의 엘리트였다. 그러나 그는 어느 순간 폐인이 되어버렸다. 삼촌은 주인공에게 말한다.“역사란 한밤 중에 서있는 오래된 집 같은 거다. 등불을 모두 밝히면 그 안에 있는 조상들은 웅얼거릴 거야. 하지만 우리는 그 소리를 이제 이해할 수 없단다. 우리 마음이 전쟁으로 침범 당했기 때문이지. 우리가 이겼지만 가장 나쁜 전쟁, 그 전쟁이 우리의 꿈까지 옭아매었고 우리 꿈을 다시 꾸게 하였다.”
‘우리’ 또한 그 전쟁에서 살아남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제‘그들의 시선’을 문제 삼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전쟁에서 ‘살아남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의 꿈이 옭아 매어져있고 아직 그 꿈 안에 머물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구 경성제국대학 정문 가까운 곳에 내 걸린 플랭카드에 적힌 [글로벌 스탠더드...]는 아마도 그 꿈의 최신 버전일 것이다. 일본 식민주의자들의 시선에 저항하는 그곳에서는 아직도 선배 교수의 친일 경력을 문제 삼았다는 이유로 교수 임용에서 탈락한 한 교수가 천막농성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그들’은 누구이고, 그들이 본 ‘우리’ 는 또 누구인가? 아직도 ‘우린’ 꿈속을 헤매고 있음이 분명하다. 게다가 서로 다른 꿈을. 그 꿈에서 벗어날 때까지 우린 흐릿한 유리 건판 사진에 출현한, 반세기도 전 조선의 어딘가에 살았을 촌부의 얼굴을 결코 마주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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