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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1-24 20:47:22, Hit : 1111, Vote : 320
 http://neolook.net/mm05/051105a.htm
 모호이너지의 새로운 시각하기_review 홍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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맴에 드는 텍스트는 아니지만, 개요 차원에서는 그럭 유용한.
현실 작업들이 가지는 여러 풍광들을 모홀리에 비춰 말하는 방식이 적확해 보이지는 않지만, 테크놀러지에 휘말리는 방법에 대한 자세는 반드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새로움이 우리의 몸성을 어떻게 바꾸고 변화시키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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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앨리스온



  이른바 미디어 아티스트(혹은 미디어 아트의 선구자)로 분류되는 많은 작가들은 반짝이는 것, 투명한 것, 흘러가는 것에 열광한다. 평면 회화 작품이나 고전적인 조각 작품에서보다 미디어 아트 앞에서 우리가 좀 더 오랜 시간을 머물게 되는 것도 사실은 그것이 반짝이고, 투명하고, 흘러가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렇다. 한 블로그에서 가져온 아래 구절은 이러한 나의 추측이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새로운 표현 방법이나 뛰어난 예술적 표현 등에 의한 창조성 넘치는 미디어 예술 작품을 표창하며, 첨단 미디어 예술의 창작 활동을 널리 소개하는 미디어 예술의 제전인 “*** 미디어 예술제” 에서 작품을 모집합니다. 올해 전시장 공간 컨셉은 “마인드 필라 mind pillar”로 LED 라이트를 써서 만든 작품 캡션이 공간에 떠오르는 듯 보이고, 중앙에 있는 투명한 기둥 안에 입상 작품을 전시함으로써 혼돈된 미디어 아트의 세계관, 가능성과 앞으로 더욱 넓어질 미디어 아트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도록 기획하고 있다고 합니다.”  

   왜 그들은 반짝이고, 투명하고 흘러가는 것들에 매혹될까? 그것이 심오한 내적 정신성을 드러내니까? 아니면 보이지 않는 영원성을 보여주니까? 혹은 깊이 없음을 감추어주니까? 나는 그 대답 가운데 하나가 우리한테는 구한말에 해당하는 1885년에 태어나서 1946년에 숨진 라즐로 모호이너지(LUszlf Moholy Nagy)의 회고전 유사한 전시에 붙은 ‘새로운 시각’이라는 명칭에 있다고 생각한다. 20세기 전반에 활동했던 옛 작가의 전시에 ‘새로운 시각’이라는 놀라운 이름을 붙인 그 도발성에 말이다.     국내에서는 통상 ‘모홀리-나기’로 불리는 모호이너지는 ‘반짝이고 투명하며 움직이는’것으로서 ‘빛’에 열광했던 20세기 초반의 아방가르드 작가들의 성향과 이념을 대표하는 작가다. <새로운 시각>전에 제시된 이른바 포토그램(photogram)작품들은 그의 이러한 성향을 잘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작가 자신의 표현을 빌자면 포토그램은 감광지 위에 다양한 사물이나 물체를 올려놓아 만들어지는 카메라 없는 사진이다. 이 종이는 빛(들)에 노출되고 변모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물체가 올려진 부분은 흰색으로 남고, 빛에 노출된 부분은 밝은 회색에서 검정에 이르는 다양한 색조 영역으로 변형된다. 이로써 흰색의 대상들이나 형태들이 어두운 배경을 부유한다.

   그러니까 모호이너지는 붓과 물감 없이 빛으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이렇게 빛이 만들어낸 부유하는 형태들은 점차 인식 가능한 대상의 모습을 버리고 추상적인 형태로 변모해 나간다. 빛이란 본래 탈물질을 속성으로 하며, 그래서 빛으로 그린 사진은 비물질성을 갖는다는 인식이 뒤따른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공간 안에서 움직이는 부유하는 이미지들이 등장한다. <새로운 시각>에 제시된 <빛-공간 변조기 Light-space modual- tor>(1922~1930)가 그것이다. 이 장치는 금속, 유리, 나무 등 다양한 재료에 다양한 형태들이 연결되어 모터와 기어를 동력으로 회전축을 중심으로 돌아가면서 다양한 빛의 효과를 산출하는 작품이다. 이로써 끊임없이 변화하는 빛의 그림이 완성된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빛의 그림은 바로 영화다. <빛-공간 변조기>가 만들어내는 빛의 이미지는 1930년에 <빛 작용, 검정-회색-흰색 Lichtspiel Schwarz-weiss-grau>라는 영화로 발전했다. 앞의 책, p.95.  

“이 장치는 빛과 움직임의 현상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조작이 가능한 인공 전기 빛은 오늘날 우리로 하여금 힘들이지 않고 빛의 효과를 경험하게 한다. …빛과 움직임은 오늘날 상관 관계에 알맞게 다시 조형의 요소가 되었다.”    이러한 작업과 작업의 기본 원리는 카메라를 사용한 카메라 포토그래프(photograph)와 포토몽타주에도 여전히 중요하다. 그러나 카메라를 사용할 경우, 일상과 관련된 식별 가능한 구체적인 대상이 지나치게 부각될 수 있다. 그래서 모호이너지는 카메라의 광학으로 추상적 이미지를 창출하는 방법을 모색했다. 대상, 곧 피사체에 대한 주목을 최소화하면서 카메라 시각(베르토프가 말했던)이 갖는 특성을 부각시키는 방법 말이다. 이처럼 새로운 방식으로 대상을 응시하는 방법으로 그가 택한 형식적 기법으로는 시점의 탈정향, 이미지의 급격한 절단, 강한 형상-배경 관계, 사선에 기초한 구성 등이 있다. <새로운 시각>에 제시된 작품 가운데 대상(피사체)을 새의 시점(bird’s eye)에서 수평적으로, 낯설게 제시함으로써 대상보다는 빛과 빛이 만들어낸 형태에 주의를 끌게 하는 <보트>(1927)나 <베를린 라디오 탑>(1925)이 그러한 예이다.

   앞에서 열거한 포토그램, 빛-공간 변조기, 포토그래프 모두는 그러니까 반짝이고, 투명하며, 흐르는 비물질적인 것으로서의 빛에 대한 열광을 이러저러하게 표현한 것들이다. 이러한 열광은 물론 동시대, 새로운 매체의 가능성을 실험했던 러시아 구성주의, 무대상의 세계를 구현하고자 했던 말레비치(K.Malevich), 그리고 미래의 정신적 건축의 메타포로서 유리 성당에 대한 그로피우스(W. Gropius)와 파이닝거(Feininger)의 꿈과 연결되는 것이지만,   좀 더 거시적인 차원에서는 볼츠(Norbert Bolz)가 말하는 오늘날의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상황에 연결되어 있다. 볼츠는 모호이너지의 빛 작업에서 오늘날 지배적이 된 (컴퓨터 화면의 화소배열 속에서 실현되는) ‘비물질적인 것의 미학’의 전조를 본다. 그에 의하면 “색소를 대신해서 순수한 빛을 형상화를 위한 매체로 승화시키는 것은 이미 모호이너지에게서 미메시스나 창조 정신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오히려 색채 화학과 편광 작용, 그리고 파동의 간섭 등과 관계를”갖는다. 회화에 드리워질 하나의 기술적 운명으로서 “색채에서 빛으로, 색소에서 주사선으로, 캔버스에서 투영막으로”의 진행이 이미 모호이너지에게서, 그리고 ‘빛’에 열광했던 말레비치를 위시한 동시대의 아방가르드들에게서 간취된다는 것이다.

  다시 전시 제목으로 돌아오자면 <새로운 시각>이라는 도발적인 제목에 대하여 전시 기획자인 김상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물론 지금 모호이너지를 들먹이는 이유가 있다.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 걸맞는 담론을 모색하는 지금, 이와 비슷한 테크놀로지 광풍을 겪으면서 고민했던 과정을 살펴보면서 기술과 창작 의 주체에 대한 인식을 가다듬을 수 있다. 아마도 속도로 과장된 허구에서 자신을 보호할 전략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새로운 시각’은 역사의 실체를 파악함으로써 얻게 되는 ‘새로운 시각’이다. 이러한 새로운 시각으로 기술과 창작 주체에 대한 인식을 가다듬고, 속도로 과장된 허구에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로서는 현재 모호이너지의 새로운 시각이 너무나 지배적인 것으로 보인다. 즉 모호이너지의 새로운 시각을 내면화하고, 그것으로 자신을 보호하는 작가와 논자들이 지금 우리 사회에 넘쳐나고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것을 너무 확장시킨 나머지 자신을 비판적 안티테제와는 무관한 사회의 경보 체제 내지는 현실 연구의 탐사 장치로 격상(?)시킨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

반짝이고 투명하며 흘러가는 것들은 여전히 새롭게 보인다. 하지만 나는 그 새로운 것들이 너무나 두렵다.          

Eleanor M. Hight, “picturing modernism: moholy-nagy and photography in weimar germany” (MIT Press, 1995), p.59.
끊임없이 변화하는 빛의 그림은 바로 영화다. <빛-공간 변조기>가 만들어내는 빛의 이미지는 1930년에 <빛 작용, 검정-회색-흰색 Lichtspiel Schwarz-weiss-grau>라는 영화로 발전했다. 앞의 책, p.95.
라즐로 모호이너지』(<모호이너지, 새로운 시각> 전시도록), p.118.
Eleanor M. Hight, 위의 책, p.97.
1) Norbert Bolz, 윤종석 역, 『구텐베르크 은하계의 끝에서』(문학과 지성사, 2000), p.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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