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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913 게시판에서 퍼왔음. 글의 완성도라던지, 이야기의 정확성면에선 밀도가 떨어집니다만, 언젠가부터 이야기 되어왔던 '현대미술의 재미없음'에 대한 논의가 가속화되는 느낌이라는.
르네상스 이전, 아니 20C 초엽같은 어떤 '흥분됨'이 다시 재현될 순 없겠지만, 적어도 현 시점에서 작가와 관객의 관계가 "쌍방의 재미로 인한 능동적 참여"로 변해야 함은 부연할 필요가 없을터.
소설은 철학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지금처럼 모든 작업노트/전시소개에 철학자의 이름이 "항상"언급될 필요는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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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환자다
무대뽀
여러분, 여러분의 뇌 건강은 골다공증으로부터 안전하신가요? 흔히 골다공증은 ‘침묵의 병’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소리 없이 다가오는 사유의 죽음 그림자인 골다공증으로부터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여러분은 아시나요?
엄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어요
골다공증? 침묵의 병? 소리 없이 다가오는 사유의 죽음 그림자? 이 무슨 뚱딴지 말인가? 대뽀, 한동안 글쓰기의 공백기간을 가졌더니 골빈(공허한) 말을 씨부리는 건 아닐지 모르겠다. 그러지 않고서 어찌 대뽀가 골다공증을 소리 없이 다가오는 ‘사유의 죽음 그림자’라는 아구도 맞지 않는 살벌한 말을 씨부릴 수 있단 말인가. 골다공증은 흔히 ‘뼈’가 점차적으로 얇아지고 약해져 골절(骨節)이 일어나는 병이라고 말하는데 엉뚱하게 뇌(思惟)를 들먹이다니...
글타! 우리가 알고 있는 골다공증(骨多孔症)은 구조상으로 뼈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으나 뼈를 형성하는 무기질과 기질의 양이 동일한 비율로 과도하게 감소되어 뼈가 약해져서 쉽게 골절을 일으키는 병이다. 근데 대뽀가 말하는 골다공증은 뼈(骨)가 아닌 골(腦), 즉 골이 점차적으로 약해져 골절(腦節)이 일어나는 병(腦多孔症)이다.
그럼 왜 골이 점차적으로 약해지는 것일까? 도대체 골다공증의 원인은 무엇인가? 골다공증(腦多孔症)은 현대미술의 등장과 함께 발생한 새로운(?) 병이다. 흔히 우리는 ‘현대미술을 모른다’고 말하곤 한다. 그 단적인 사례로 현대미술 기피증 혹은 현대미술 무관심증을 들 수 있다. 현대미술 무관심증? 현대미술 기피증?
누가 도대체 무슨 이유로 현대미술에 대해 무관심하고 현대미술을 기피까지 한단 말인가? 혹 대뽀가 요즘 유행하는 ‘예술무용론’처럼 흑색선전을 퍼뜨릴 심산은 아닌지. 예술무용론? 그건 춤(무용)의 이론이 아니라 (한 마디로 말하자면) 현대미술은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인 생활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럼 현대미술의 무관심성이나 기피증은 바로 현대미술을 향유해야할 우리가 무관심하고 기피하는 것이 아닌가?
대뽀는 지나가면서‘현대미술을 모르겠다’고 중얼거렸다. 근데 그 말은, 대부분의 현대미술이 주관적이고 사변(思辨)적이라는 것을 반증해 준다. ‘퍼블릭 커뮤니케이션이라는 파이프’(공공 소통 코드)를 통과하지 못하고 배설(생산)된 현대미술은 일반인으로부터 무관심의 대상으로 간주되고 급기야 현대미술 기피증 현상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다.
결국 현대미술에 대한 일반인의 현대미술 기피증이나 무관심증은 시지각(視知覺)은 물론 사유가 빈곤해져 골이 점차적으로 약해져 골절을 일으킨다. 그럼 골다공증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 즉 치료는 무엇일까? 아니, 치료를 말하기 위해서라도 골다공증의 증상과 진단을 알아봐야 하지 않을까?
뭘 다시 시작해? 넌 지금이 처음이야
현대미술 기피증 혹은 현대미술 무관심증은 ‘침묵의 병’으로 불린다. 왜냐하면 뚜렷한 증상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유가 공허해지기 전까지 모르고 지내기 쉽다. 실제로 적잖은 사람들이 사유(思惟)의 공백(공허함)을 경험한 이후에야 그들의 사유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따라서 혹자는 골다공증을 흔히 노년기에 찾아오는 감성 및 상상력 상실과 더불어 노년을 압박하는 병으로 본다. 허나 골다공증은 단지 노년층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40 안팎의 중년층뿐만 아니라 산업전선에 뛰어드는 20대 중반부터 찾아온다.
물론 골다공증은 일반인(잠재 관객)에게만 그 문제의 원인이 있는 것만은 아니다. 골다공증이 발생하게 만든 장본인은 사실 현대미술 자체이다. 100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 미술은 우리의 생활공간에서 호흡했다. 조선시대 집안만 보더라도 장벽화와 족자화 그리고 병풍 등의 그림들 이외에 각종 도자기 그릇에서부터 그림이 조각된 장과 농의 각종 가구 또한 그림이 이불에서 보자기에 이르는 각종 자수 작품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았던가.
허나 생활세계와 호흡했던 우리 미술은 ‘미술을 위한 미술'이라는 미술세계를 추구함으로써 점차적으로 생활세계와 멀어져 갔다. 그로인해 우리는 미술을 보기위해 집밖을 나서 미술관이나 화랑을 방문해야만 했다. 버뜨(But), 미술관과 화랑에서 우리가 만난 대부분의 미술작품은 퍼블릭 커뮤니케이션의 파이프를 관통하지 않은 주관적이고 사변적인 것이었다.
그렇다고 대뽀가 말한 ‘주관적이고 사변적인 것’이 결코 ‘지 멋대로 한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오늘날의 현대미술작품도 하나의 틀, 즉 일상세계가 아닌 미술세계에서 통용된다고 말이다. 따라서 미술인이 만든 미술세계 구축은 현대미술을 스스로 고립시켰고, 그 고립의 댓가(?)로 현대미술은 일반인으로부터 ‘왕따’ 당하기에 이르게 된 것이다.
문제는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현대미술의 고립은 바로 일반인의 현대미술 무관심증과 기피증을 발생시켰다. 대다수의 일반인은 고딩 졸업과 함께 미술(작품 만들기에서부터 감상하기에 이르기까지)로부터 점차적으로 멀어져 간다.
오늘날 미술관이나 화랑의 전시회는 젊은 여인들의 데이트 코스의 목록에 들어있지도 않은 실정이다. 더군다나 20대 중반 산업전선에 뛰어든 젊은이에게 미술은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으로 간주되기에 이르렀다. 그로인해 현대미술 무관심증 혹은 현대미술 기피증은 뚜렷한 증상도 없이 침묵으로 우리의 뇌에 자리 잡게 된다.
결국 우리는 어느 날 메마른 감성을 발견하게 될 것이고 상상력의 빈곤을 경험하게 될 것이며‘사유의 공백’을 문득 느끼게 된다. 이것이 바로 골다공증의 증상이다. 그럼 골다공증의 치료는 고사하고 진단마저 불가능하단 말인가?
미술이 좋아서 작업할 뿐 이예요
골다공증(骨多孔症)은 골밀도를 측정함으로서 진단 가능하다고 한다. 골밀도 측정방법은 일반적으로 방사선을 조사하여 흡수되는 정도를 알아보는 방법을 많이 사용한다. 하지만 그전에 동반된 질환의 유무와, 영양상태, 간 및 신장의 건강상태 등 전신적인 건강상태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단다.
그럼 골다공증(腦多孔症)의 진단은? 아마 골밀도 검사기로 당신의 골을 검사한다고 하더라도 골이 약해진 상태를 진단내릴 수는 없을 것이다. 와이? 골밀도 검사기로 당신의 골 상태를 비교 측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가 우리의 골 상태를 비교측정하려면 우리의 감성이나 상상력을 스스로 테스트할 수밖에 없잖은가?
대뽀, 지나가면서 골다공증이 20대 중반부터 시작된다고 중얼거렸다. 따라서 골다공증은 무엇보다 발병 후 치료는 물론 사전에 예방이 필요한 병임을 알 수 있다. 골밀도는 청소년기와 20대 초반까지 일정정도 상승하지만 그 이후에는 스스로 노력하지 않는 한 골밀도의 상승을 일으키기가 쉽지 않다. 스스로 노력? 무엇을 스스로 노력해야만 한단 말인가?
골밀도의 상승을 위해서는 건강한 시지각 작용을 통해 사고(思考)의 유연성을 강화해야 한다. 우리의 사고는 감성이 점차 메말라가고 상상력이 빈곤해져가면서 그 유연성을 차츰 상실하게 된다. 따라서 메말라가는 감성을 되찾고 빈곤해져가는 상상력을 풍부하게 하기 위해서 전시회 방문(작품 보기/읽기)을 당부 드린다.
물론 우리들 중 소수는 현대미술을 이해하기 위해 미술관이나 화랑의 전시회를 방문한다든지 서점에서 미술서적을 구입하여 읽어 본다든지 일간지나 TV를 통해 미술소식을 접하지만 여전히 ‘현대미술을 모르겠다’는 막다른 골목길에 당도한다. 도대체 그 이유는 무엇일까?
현대미술은 미술세계 안에서 진행되어 왔다. 한 마디로 현대미술은 미술의 전문화 과정을 겪고 있다. 그런 까닭에 사실 대다수의 미술인조차 현대미술을 이해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참을 수 없는 열정의 소유자인 예술가는 자신의 열정을 폭로(표현)하기보다는 미술세계에서 ‘조작한 형식’(미술사나 미술이론 등)에 급급한 나머지 자신의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 그럼 (아니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예술가 또한 골다공증 환자가 아닌가? 관객(환자)뿐만 아니라 작가(의사) 역시 골다공증 환자가 아닌가? 그쵸?
대다수의 예술가는 미술사나 미술이론 등에 덜미 잡혀 그들의 열정(뜨거운 가슴)보다 이성에 치우쳐 감성과 이성의 균형을 상실하고 있다. (대뽀, 대다수 예술가들이 앓고 있는 병을 일명 ‘예술병’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이 억압해 왔던 열정을 스스로 ‘해방’시켜야만 한다.
우리가 작품을 보고 감동을 받는 것은 바로 우리가 스스로 억압해 왔던 것들에 대한 해방을 작품을 통해 볼 수/읽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감동이 없는 작품이 만연되고 있는 오늘날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감동이다. 아니, 작품을 보고 감동도 받지 못했는데 무슨 작품읽기를 시작할 수 있단 말인가?
작품은 폼으로 하는 것이 아니야
두말할 것도 없이 오늘날 예술가는 여러 사항들 중에 특히 퍼블릭 커뮤니케이션 파이프를 관통할 수 있는 적합한 방법론을 모색해야 한다. 와이? 그동안 그들이 사용했던 ‘무기’는 미술세계 안에서 통용되는 코드로 일반인에게 제대로 작동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허나 그 방법론 이전에 방향성을 먼저 고려해야만 한다.
오늘날 동시대 미술은 흔히 ‘다원주의’로 불리곤 한다. 다원주의, 즉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말은 그 어떤 특정의 방향성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근데 그럴까? 대뽀가 보기에 동시대 미술의 방향은 100년간 단절되었던 생활세계로의 컴백이다. 와이? 미술작품은 생활 속에서 생활을 좀더 풍요롭게 할뿐만 아니라 생활 속의 작품을 통해 차츰 잃어가고 있는 우리의 감성과 상상력을 회복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자, 결론 때려보자. 동시대 미술의 향방은 미술의 고향인 생활세계로의 컴백, 즉 ‘아뜨 인 라이프(art in life)’이다. 그리고 아뜨 인 라이프를 지향하는 작품은 생활세계와 밀접하게 관련된 작품제작일 것이다. ‘생활세계와 밀접하게 관련된 작품’이란 단지 생활세계에서 전시될 수 있는 것으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생활공간에서 사용될 수 있는 ‘작품/상품’이어야 하지 않을까? 두 말할 것도 없이 그 작품/상품은 퍼블릭 커뮤니케이션 파이프를 관통하여 작품을 소비(감상)할 소비자(관객)에게 전시되어야 한다.
지나가면서 중얼거렸듯이 관객(화자)뿐만 아니라 작가(의사) 역시 골다공증 환자이다. 그럼 소리 없이 우리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우리에게 찾아온 혹은 찾아오는 골다공증을 (사전에) 치유하기 위해서는 서로 애정 있는 당근과 채찍이 필요하지 않을까?
두눈 (2004-10-19 11:11:44)
누구신데 이글을 밑의 글만 쏙 빼고 올리셨군요 헉시 무대뽀님 인가? ㅋ
이글은 현미발모 아트북 프로젝트에 들어가는 원고 인데 ㅋ
어쩨든 전시도 보시고 가셨는데 이상한 처방전을 주셨지요
"현미발모(현시대미술발전모임) 여러분, 제가 여러분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 아시겠죠? "
sir (2004-10-19 13:06:24)
음! 전시는 아직 보지 않아, 전시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하긴 힘들지만, 이 글만 보고선, 뭔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을 굉장히 억압한 것 같은 필이 오는 군요.
글의 결론전까지는 마치, 톰울프의 현대미술의 상실에 대한 댓글과 같고...
결론은 류선상이 그간 제안해온 ‘아뜨 인 라이프(art in life)’ 의 요약본이오.
류선상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뭐요. 류선상 답지 않은 냄새가 나는구려.
근데2 (2004-10-19 13:16:56)
잘 읽고 나가려다, 두눈의 리플보고 팍 돌아보게 되네.
전시를 보고 쓴것인데 전시에 대한 말이 없다.
이걸 어떻게 받아드려야 하나?
sir 2 (2004-10-19 20:22:38)
이 글을 보니깐 가장 명료해서 좋구만...sir님 뭘 그러세요...이제 부터 본격적인 직격탄이다...무대뽀!!!!!!!!!홧팅!!!!!!!!
두눈~아 (2004-10-19 23:58:02)
선거하냐?
웬...여러어부운~
너한테 기대하고 싶지가 않네잉^^
미류 (2004-10-20 00:00:50)
^^
sir3 (2004-10-20 00:16:38)
현미발모 화이팅.^^
sir 2 (2004-10-20 00:28:27)
현미발모가 화이팅을 하긴 해야겠지...아마도 이 글이 그 단체가 준비하는 전시 원고라면...그 전시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일차 표적이리라...몇명이나 생존 할지 궁금하군...
sir4 (2004-10-20 01:45:46)
이 말은 현미발모에게 하는 말은 아니다. 엉성한 전시를 과대포장하여 홍보한 이들에게 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이런 저런 젊은 그룹들의 기획전을 자주 봤다면 봤다.
그런데 갈때마다 가장 실망스러운 공통점이 있다.
전시 홍보는 뭔가 꽉찬 다양성이 풍부 할 것 같은 TV 쑈프로 CF 처럼 빵빵한데, 막상 가보면 뭔가 완성도 낮은 엉성함만이 있다. 뭔가 대단한 새로운 충격인냥 홍보를 한 것에 대한 대답을 난 그곳에서 볼 수가 없었다.
원색가득한 홍보내용 그대로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혼란스러움 뿐이었다.
완성도 있는 노력을 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전시 기획성만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기획이냐? 작가냐? 기획을 하더라도 작업부터 제대로 하고 기획을 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중년작가들에게 맨날 똑같은 재탕으로 먹고 산다 말하고 싶음, 그들만큼의 완성도는 기본적으로 보여줘라. 외진 곳까지 찾아가서 힘들게 보고, 실망에 실망을 거듭한 내가 참 화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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