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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 들어서 파르도와 같은 작업을 보고 있자면
무슨 예술가들이 바이러스 등속이 된 느낌이다. 시스템안에 암약하면서 병적 존재가 되기도 하고 리플루엔자같이 시도때도 없이 출몰하면서 끊임없이 생명을 리플레쉬시키고 자극때리는 균덩어리들.
중세/르네상스 근저의 (물론 옛 한반도의 환쟁이 포함) 아티스트와 가장 틀린점이기도 할것 같다. 구체적으로 어떤 무엇(자신/시스템/장르)에 구체적으로 개기기 시작하고 있다는.
.' ) + + + 출처 : 독일의 현대미술 여행
요르헤 파르도(jorge Pardo)
글_ 백기영<독일의 현대미술 여행 발행인>
1963년 쿠바의 하바나에서 태어나 로스엔 젤레스와 롱 아일랜드에서 작업하며 생활하고 있는 요르헤 파르도는 1997년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이후로, 비인의 MAK 미술관과 2003년 리용 비엔날레, 베를린 국회 의사당, 함부르크, 부라운 슈바익 파코스2004, 등에서 다양한
공간 설치작업을 진행해 왔다.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http://www.museennrw.de/skulptur/97/pardo/index.htm
캘리포니아 산 붉은 나무(redwood)로 제작된 이 다리모양의 구조물은 뮌스터 시의 아 호수(AAsee) 의 한 어귀에서 부터 설치되어
호수 가운데로 길게 걸쳐 있다. 이 나무 구조물을 천천히 걸어 들어가면 한가하게 호수의 물결을 느끼며, 습기가 피오오르는 호수 수면의
충렁임을 만끽 할 수 있다. 햇살이라도 화창하게 비취는 날이면 햇살을 즐기는 연인들의 즐거운 놀이터로 탈바꿈한다. 1997년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를 대표하는 작업중의 하나로 자리 잡았던 요르헤 파르도는 이후 국제 미술계에서 주목받는 작가로 성장하고 있다.


oliver oliver oliver !!!
2004년 부라운 슈바익은 부라운슈바익파코스 2004(braunschweigparcours2004 http://www.braunschweigparcours2004.de)에 요르헤 파르도를 초청한다.
2000년 빛 예술 축제를 기획하면서 도시공간의 미술축제를 빛을 이용한 건축과 예술품으로 방향을 잡고 있는 부라운 슈바익에서 요르헤 파르도는
"oliver oliver oliver !!!"라는 제목의 극장 건축물을 제작한다. 오렌지 색을 강하게 띄며 피라미드 모양으로 기하학적인
형태와 내부가 투명하게 들여다 보이는 이 구조물에서는 남미의 흥취를 느끼게 한다. 이 구조물은 서로 뒷 면을 맞대고 있는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양 측면에는 영화" 올리버 올리버 올리버!" 가 상연되고 있다. 이 영화는 롱 아일랜드에서 출신의 감독이 제작한 영화로 영화의
내용은 작업을 이해하는데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영화를 관람하는 수동적인 관람자의 위치에서 이 작품에 간여 하는 것이
아니라, 관람자는 이 영화에 함께 동참하고 영화를 만들어 가는 움직이는 모티브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영화 감상자는 어두침침한
공간에서 졸음에 취해 앉아 영화의 장면들이 자신을 자극해 주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요르헤 파르도의 작업에서는 극장의 내부에 들어선 관람자들의
움직임을 극장 밖에서 영화와 함께 주목할 수 있고, 극장 안에서 극장밖의 잔디밭을 산책하는 다른 사람들의 움직임을 주시할 수 있다.요르헤
파르도는 이러한 상황이 아주 일상적인 상황안에서 즉, 공원을 산책하다가 우연히 맞닥뜨릴 수 있도록 고안하였다.


untitled
restaurant http://www.bundestag.de/bau_kunst/kunstwerke/pardo
2002년 요르헤 파르도는 베를린의 국회 의사당에 "제목없는 레스토랑 (untitled restaurant)"이란 제목으로 공간 설치를
선보였다. 이 설치에는 여러색깔의 전등이 베를린의 국회 의사당 레스토랑에 설치되어 아름답게 빛나는 공간을 만들었다. 이 공간 설치는 베를린
슈프레강(Spree)을 가로 지르는 크론 프렌젠 다리 (kronprizen)를 넘어 파울 뢰베 하우스(Paul-Lobe-Haus)의 레스토랑
안을 가득채우고 있었다.
이 파울 뢰베 하우스는 지금은 독일의 국회의사당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베를린의 이 동과 서로 분단되기 이전에는 하나의 건물이었는데,
베를린 분단으로 건너편에 위치하고 있는 마리 엘리자베스 뤼더스 하우스(Marie-Elisabeth-Lueders-Haus )와 이웃하고
있는 공간으로 분단이 되면서 서로 이웃한 채로 체제가 다른 공간으로 알려져 왔다. 이러한 건물의 역사적 배경 때문인지, 두 공간은 체제와
환경을 반영하듯 서로 묘한 차이점을 보여주고 있다. 요르헤 파르도는 이 공간에서 두 가지 서로 다른 차이점을 실험하고 있는데, 하나는
스칸디나비아 스타일의 검은 색 원탁과 의자들이 놓여진 공간과 그 위를 대조적으로 현란하게 빛나고 있는 전구의 불빛이다. 바닦에 깔려진 미색의
타일은 이 빛들을 어렴풋 하게 반사하고 있다. 천정으로 부터 늘어진 전구의 빛들이 남미의 오색 찬란한 정서를 표현하든, 카브리해의 화려한
태양빛을 표현하든, 이 공간은 묘한 기능성과 장식성이 서로 대조되는 공간이다. 작가는 여기에서 가구와 역사적 공간이 보여주는 기능성과 현란한
빛들이 표방하는 장식성 혹은 예술적 자율성의 문제를 대비 시킨다.
이와같은 작업이 가능하게 된 것은 아마도 사회주의 체제를 경험한 쿠바출신의 작가로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가로 살아가는 자신의 입장과도
매우 유사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동독의 기능주의와 사회주의는 유미적인 자본주의, 자유주의와 하나로 합쳐져 통독이후의 어정쩡한
베를린안에서 확인 할 수 있다. 아니 어쩌면, 디자인으로 가득차 실용성을 표방하는 오브제들이 가득찬 자본주의 산업사회를 살아가는 예술가들의
고독한 반항과도 연관이 있을 수 있다. 공간을 밝히기 위함을 넘어선 과잉 기능은 이제 유미적인 공간의 장식으로 넘쳐나고 있다.


함부르크 에서의 공간 설치

글_ 백기영<독일의 현대미술 여행 발행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