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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zabel(2005-07-11 20:58:59, Hit : 1590, Vote : 422) 
 http://gelatinemotel.byus.net
 이정진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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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실망의 도를 더해가고 있는지라 땡긴다할 순 없겠지만 서도.   온 더 로드의 옛 정을 생각하야.
한국 풍경을 흑백으로 작업한다는 것에 대한 명료한 인덱스를 작성해 주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성과라 생각한단.
사진 아래에 이에 관한 평론가들의 글을 실었으나, 머 자료로서.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특히 사진- 비평/평론의 임무를 다하고 있지 못한다고 본다.   이미지의 발언을 먹기 좋게 가다듬어 주고, 사회적 수용의 측면에서 어떤 노선을 창출해나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책장에 맞는 것으로만 작업들을 갈무리하는 것을 읽고 있으면.   참으로 울 식자들은 학생답다는 생각을 한다. ^0^
열심히들 하라구, 평생 빠다나 발라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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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road2000/photo emulsion on rice paper










































pagodas 98/photo emulsion on rice paper
 




































이정진 (1961~ )


1961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는 공예를 전공하였으며, 대학 동아리에서 사진을 배웠다. 대학 4학년 때인 1983년에는 학교 앞 카페에서 습작으로 개인전을 가졌고, 1985년에는 에어프랑스가 주선해 파리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파리국제사진전에 출품하기도 하였다. 1984년 홍익대학교 공예과를 졸업한 뒤 월간지 《뿌리깊은 나무》의 사진기자로 일하면서 사진가 강운구를 만나 그로부터 다큐멘터리 사진을 배웠는데 그 결과 1988년 사진집 《먼 섬 외딴 집》을 출간하였다.

1988년 미국으로 유학하여 1991년 뉴욕대학교 대학원 사진학과를 졸업하였다. 유학 시절 현대사진의 대가인 로버트 프랭크와 랠프 깁슨의 조수로 일하기도 하였다. 10년 가까이 뉴욕에서 작품활동을 하다 1997년 귀국하여 미국의 사진전문화랑인 '페이스 맥길 갤러리' 전속작가이자 서울예술대학 사진과 겸임교수로 국내외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유학 직후 미국을 여행하면서 포착한 사막의 표정을 담은 《사막》 시리즈를 착수하여 꾸준히 작품활동을 하였다. 기술적으로는 한지에 감광유제를 입힌 뒤 그 위에 인화하는 방법을 사용하여 독특한 사진작업을 하고 있다.

1995년 뉴욕 페이스 맥길 갤러리에서 〈Self-Portrait〉전, 1997년 아트스페이스 서울에서 〈Wasteland〉전, 2000년 금호미술관에서 〈Beyond Photography〉전 등 전시회를 열었다. 주요 작품으로는 《사막》 《파고다》 《바다(Ocean)》 《온 로드(On Road)》 등이 있다. 뉴욕현대미술관,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로스앤젤레스 카운티미술관, 선재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국내외 사진계의 동향을 어지간히 감지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여성작가 이정진(37)을 민병헌 박홍천 등과 함께 ‘국제사진계의 중심부에 가장 근접해있는 사람’으로 꼽는다.
국제화 근접 여부를 재는 잣대란 간단하다. 해당 작가가 외국의 메이저화랑과 특급미술관에서 전시회를 갖는등 ‘노는 물’의 번지수와 크기의 여부, 그래서 세계시장에서 과연 통하느냐 하는 것이다. 60년대産(산)이라는 나이와 여성작가라는 외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이정진은 전세대 작가들과 선명하게 구분되는 행동반경을 갖고 있다.

그는 95년부터 미국 뉴욕과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페이스 윌덴스타인 맥길 화랑’ 전속작가로 활약하고 있다. 메이저중의 메이저인 맥길화랑은 국제적으로 중요한 특급작가 25명이 전속관계를 맺고있는 곳인데, 국내작가의 미국 메이저화랑 전속은 국내 사진사 처음의 일이다.
88년 뉴욕대 유학시절이후 현대사진의 거물급인 로버트 프랭크와 랠프 깁슨의 조수로 일했다는 이력등 작가적 출발도 여타 작가들에게 선망의 대상이고 범상치 않은 것이다.

이런 행동반경은 실은 부수적 요소다. 핵심은 작품 내용이다. ‘사막 시리즈’작업으로 유명한 이정진은 사진을 감싸는 사각형의 프레임에 관한 철학·미학적 사고를 포함한 현대사진의 미학실험 측면에서 많은 것을 함축하는 좋은 텍스트로 읽히고 있다.

미국 프랑스등에서 15회 이상의 개인전과 단체전에 출품한 그에 대한 평가는 국내외 작품소장처에서도 확인된다. 메트로폴리턴미술관, 로스앤젤레스 카운티미술관, 휴스턴미술관등 미국의 1급미술관이 작품을 사들였다.
뉴욕 현대미술관에서도 지난 5월 그의 신작 10점을 확보한뒤 이중 몇점을 구입하겠다고 밝혔다.
국내에서는 사진 이해가 높은 선재미술관이 유일하게 그의 작품을 갖고있다.

이런 화려한 이력에 주눅들지 않은 맨눈으로 그의 작품을 바라보자. 보통 인화지 대신 한지위에 感光(감광) 유제를 발라 손작업으로 공들인 제작공정 때문일까. 소재가 미국의 사막이건 아니건간에 주제와 기법이 잘 녹아든 그의 작품들에서는 보기드문 진정성을 간취할 수 있다.
작품의 주제, 소재와 기법등에서 ‘여성작가’라는 말에 붙어다니는 모든 종류의 부정적인 선입관에서 훌쩍 떠나있다는 점도 눈에 들어온다. 그렇다고 화면이 무미건조하거나 손끝의 감각에 매달리느냐 하면 오히려 그 반대다. 남다른 깊이가 특징이다.

눈이 유별나게 큰 대신 호리호리한 체격의 전형적인 동양여성 분위기인 이정진은 대구태생. 홍익대에서는 공예를 전공했다.
사진과의 만남은 대학 서클에서 이뤄졌다. 이 인연으로 대학 4학년때인 83년 학교앞 카페에서 습작으로 개인전을 가졌고, 이듬해에는 에어프랑스가 주선해 파리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파리국제사진전에 출품했다.
대학졸업뒤 월간지 ‘뿌리깊은 나무’의 사진기자로 일했지만, 자기 작업에 대한 욕심을 버릴수가 없었다.
이때 만난 사람이 선배 강운구. 그로부터 다큐멘터리 사진을 배웠는데 그 결과물이 88년 유학 직전에 나온 사진집 ‘먼섬 외딴 섬’(열화당)이다.

이정진은 유학 직후에 ‘사막시리즈’를 착수했다. ‘나의 정체성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한 대가로 곧바로 한지작업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등 비교적 빨리 자신의 사진언어 지평을 확보할 수 있었다.

당시 랠프 깁슨을 만나 조수생활의 인연을 맺은 계기는 뉴욕대 여름워크숍이고, 로버트 프랭크는 이정진이 용감하게도 직접 전화를 걸어 만남을 청해 교류를 할 수 있었다.
이중 로버트 프랭크를 통해 “작가생활이 유행에 한눈 파는 것이 아니라, 마라톤”이라는 것을 배웠다고 이정진은 밝힌다.

이제 이정진식 語法(어법)의 사막사진을 본격적으로 대면해 보자. 그의 사진에서 압도하는 장엄함이나 엄청난 스케일의 사막풍경을 찾으려 했다가는 실망하기 십상이다. 안셀 아담스나 에드워드 웨스턴등이 찍은 유명한 사막 사진들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도 그런 종류의 사막을 떠올리려 했다가는 당혹감을 느끼게 된다.
사막 비슷하지도 않거니와 재래식의 문법으로 보아 아름답다거나 장엄하다고 해야될 요소는 전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 그가 보여주는 것은 이리저리 토막나서 파편이 된 사막의 일부분들이다. 때론 바위덩어리들이나 나무둥치들이 커다랗게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더 자주는 전혀 상관관계가 없어 보이는 자신의 신체일부가 사막사진에 함께 들어가 있어 낯섦을 더한다.
이런 사진들 3개가 한 세트를 이루기도 한다. 황금비율로 분할된 지평선, 자연스럽게 주름진 사막의 조형미와 색조 등 그동안 많이 보아온 사막풍경 대신 이정진이 잡은 사막은 지평선이 45도 가까이 기울어져있기도 하다.
상당부분이 구도잡기를 포기한 상태에서 즉흥적으로 잡았음이 분명하다.
희한한 점은 이런 사막이지만, 아름다움이 분명 존재하고 이것이 보는 이를 사로잡는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우선 편안하다. 근대사진이나 소설에서 보아온 자기완결적인 서술구조를 포기한 화면이 주는 자유로움과 통하는 편안함이다.
틀에 꽉 짜이지 않아 숨쉬기 적당하고 여기에서 쾌적함을 얻을 수 있다. 이 쾌적미는 철학동네 용어로 바꾸면 ‘데리다적인 미의식’이다. 서양철학사 2천여년의 의미과잉(플러스적 사유)을 벗어나려한 해체철학자 데리다가 ‘마이너스적 사유(해체)’를 주장했음을 염두에 두자.
쾌적함은 상당대목 독자적인 화면의 질감에 힘입고 있다. 번들거리지 않고 스며든듯한 느낌은 대단한 매력으로 다가선다. 인화지가 아니라 한지를 썼기 때문이다. 감광유제를 발라 정교한 손작업만으로 프린트를 했기 때문에 이정진의 사막은 수묵화처럼 ‘스며든 효과’가 기막히다. 따라서 안목있는 서양사람들이 그의 사진에 예외없이 매료되는 이유는, 그의 사진의 주제와 표현 질감등에서 俗氣(속기)를 찾아볼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전통동양화에서 최고로 치는 덕목이 속기가 없어야 한다는 점이 아니던가.

이런 생각을 구체화한 것이 이정진 사막사진의 프레임의 문제이다. 사실 현대사진의 가장 큰 특징은 ‘프레임으로부터의 해방’이라고 말해진다. ‘프레임=현실을 담아내는 틀’이라는 공식 자체가 해체됐기 때문이다. 이 경우 사진은 ‘틀에 갇혀있는 이미지’가 아니라 ‘고정관념에서 풀려난 자유로운 영상’이 더 리얼하다고 믿고 있다.
이정진 사진도 마찬가지다. 한가지 특이한 점은 그이 사막사진은 칼로 깨끗하게 잘라낸 인화지와 달리 끝이 너덜너덜해 안과 밖의 경계가 없는 한지의 특성에 힘입어 보다 자유로운 영상으로 살아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정진의 생각과 의도는 무엇일까.“사막은 대단히 추상적인 공간이다. 이 사막이라는 엄청난 대상을 ‘거짓말 잘하는 트릭의 매체’인 사진을 통해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실로 어려웠다. 그 어려움을 교묘하게 보여주기보다는 한계를 솔직하게 인정한뒤 대상 자체의 자연스러움과 있는 그대로를 좀더 가까이 표현하려고 했다.”

여기에서 이정진의 세계로 들어가는 열쇠로 비디오예술가 백남준의 언급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새로운 한자 造語(조어)까지 구사한 알쏭달쏭한 말이지만, 현대사진의 핵심에 육박하는 명제이기도 하다. “寫眞(사진)이라는 것은 (한자 풀이를 할 경우) ‘진짜 베끼는 것’이므로 필연적으로 가짜가 된다. 만약 寫僞(사위)라는 術(술)이 있다고 가정하면, 이것은 ‘가짜를 베끼는 것’이므로 반드시 진짜가 되는 것일까.
(현대)사진이란 (진짜를 베낀다는) 허상에서 벗어나 허위에 접근하려는 정신의 意圖(의도)이다.” 백남준식의 표현을 빌리자면, 근대사진이란 ‘고정관념의 틀에 맞춰 현실을 절단한 비현실’, 즉 가짜에 불과한 것이고 따라서 허위의 세계라는 것이다.
‘절단된 현실’을 아름답다 서정적이다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실은 ‘거짓말 잘하고 틀에 맞춘 이미지’만을 양산해 내는 카메라 뷰파인더의 거짓말에 맞장구치는 행위이니, 이 허상에서 벗어나는 작업이 현대사진의 새로운 ‘정신의 의도’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정진의 사막은 새로운 정신이 만들어낸 意圖(의도·마음의 그림)이다.
‘마라톤으로서의 사진작업’을 위해 이정진은 지난 4월 뉴욕의 스튜디오를 서울로 옮겼다. 어차피 작품의 분위기 때문에 ‘한국의 작가’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는 한 한국땅에서 호흡을 해야겠다는 판단이 겹쳐져 3년전에 감행한 늦결혼으로 태어난 세살난 딸도 서울에서 키우고 있다.
사실 서울은 작가생활을 하기에 가장 불리한 환경으로 악명이 높은 곳이다. 이곳에서 작가로서의 전력투구와 일상생활, 이 어려운 양립은 이정진에게 작가생활의 고비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趙祐奭기자>(1998.6.11)

이정진의 작품

앤 윌케스 터커(휴스턴 미술관 큐레이터)

이정진의 작품 "파고다(Pagoda)시리즈"에는 육중한 탑들이 수공으로 만든 큰 스케일의 한지 위에 미묘하게 떠있다. 중력이 무시된 이 탑들은 땅에 대해 북쪽 혹은 남쪽을 향한 하늘을 가로지르고 있다. 철로 만들어진 장식적이고 뾰족한 꼭대기(상륜부)와 탑의 몸체(탑신)는 단지 자신들의 대칭에 지나지 않는 형상에 붙어 있을 뿐이다. 작가는 대지에, 역사 속에, 그리고 전통 안에서 탑의 몸체를 단단히 붙들어 매고 있어야 할 탑의 기초를 이루는 기단석을 배제하였다. 사람들은 탑신의 근원을 지붕 위에 있는 상륜부의 정점으로 인식하며, 여기에 더하여 탑을 아름답게 만들고 멀리서 그 존재를 알리는 다양한 기능을 하고 있다고 인식한다. 그녀가 찍은 탑의 몸체에 보이는 다양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돌의 속성을 지닌 일반적인 모양조차도 다른 것과 구별되는 특색이 있다. 여기서 각 탑의 몸체는 자유롭게 시적인 공간을 떠도는데 그 모습은 우아하고 웅대하며 고립되어 있으면서도 새로운 의미에 대해 개방적이다. 이정진은 관객 개개인이 각자의 상상력을 이용하여 이 형상들의 의미를 찾길 바란다. 그녀는 새로운 연상작용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탑의 몸체를 자유롭게 한 것이다. 역사적인 관계에서 생각해보면, 나의 마음에는 딱딱하게 갈라진 벌레들이 물결모양으로 주름지게 변형된, 여성을 표현한 고대 조각인 빌렌도르프의 비너스(the Venus of Willendorf)로부터, 여전사 아마존이 사용한 실에 꿴 돌 구슬(Stone Beads)에 이르기까지 생각이 미친다. 그러한 구체적인 연상을 제쳐 두고라도, 나는 불가해한 무엇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 형상 자체들은 논리적이고 질서정연하지만 그들이 재창조 될 때에는 무질서와 수수께끼가 초래된다. 나는 이정진이 찍은 것이 무엇인지 알아 볼 수 있지만 그 피사체들이 갖게 된 새로운 형태는 나를 즐거운 혼란 속에 빠뜨린다.

연작물 "파고다"는 이정진이 거의 10년 가까이 되는 미국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 영감을 받아 제작한 작품이다. 이정진은 뉴욕대학교(New York University)에서 사진전공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사진작가이며 영화제작자이기도 한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 - 1940년대에 스위스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후 자신의 사진 스타일을 급격하게 변화시킨 바 있는 유명한 작가 - 의 작업을 도왔다. 이정진은 뉴욕에서 가장 현대적인 예술을 경험하는 한편, 미국의 사막을 촬영하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연작물 "미국의 사막(American Desert)"에서 촬영된 이미지를 인화하기 위해 한지를 리퀴드 라이트(Liquid Light)라는 감광유제로 코팅하는 방법을 개발하였으며, 이는 그녀가 즐겨 사용하는 기법이 되었다. 이렇게 하여, 이정진은 현대의 화학약품과 동양의 전통적인 종이인 한지, 그리고 미국의 풍경을 결합한 것이다. 작품의 규모가 크기 때문에 화면 속에 있는 사막의 식물들은 거의 실물크기로 묘사되는데, 선인장의 경우 진짜보다 훨씬 더 섬세하며, 덜 위협적으로 보인다. 그녀는 사막에 대한 자신의 주관적 인상을 표현하기 위해 사막이라는 틀 안에서 발견되는 어떤 물리적인 특징과 리듬을 확대하는 한편 다른 부분은 제거해 버리기도 한다.

이정진은 사진기자나 전문적인 인물 사진가 처럼, 적어도 특정한 시간과 장소를 기록하는 사진가로 간주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네가 필름이 빛에 노출되는 순간에 그녀 자신이 갖은 생각과 느낌을 카메라 앞에 광경을 묘사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중요시한다. 이정진은 자신의 사진을 생명력 있게 하기 위해 충분한 사실적 디테일을 유지하지만, 그 인화과정은 회화작업에 가깝다. 기계가 아닌 그녀의 손이 종이에 감수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감광유제는 종이 위를 흐르고 때로 사람들은 그 위에서 유제가 도포 된 흔적들을 볼 수 있다. 그녀는 각각의 작품이 필요로 하는 요소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한 뒤에 결론을 내린다. 게다가 그 영상들은 보통사진 하면 연상되는 딱딱한 직사각형의 가장자리대신 부드러운 종이에다 불규칙한 가장자리를 가지고 있다. 어디에 감광유제를 바르고 어떤 부분은 네가 필름 그대로 빛에 노출시키는가를 조절함으로써,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종이 위의 장소에 물체의 위치를 정한다. 그녀는 자신이 선택해 온 과정을 통해서 이미지와 종이 사이의 관계에 대한 자신의 지배력을 확대 시켜왔다.

연작물 "바다(Ocean) 시리즈"는 우리가 추상미술과 관련지어 생각하는 회화적 이슈에 훨씬 더 가깝게 다가서 있다. 한 장의 종이에 같은 이미지를 세 차례 반복 인화함으로써, 주제의 추상적인 톤과 패턴을 강조한다. 그녀는 대상의 작은 부분을 찍음으로써, "파고다" 연작물에서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이 자신이 사진을 찍었던 특정한 위치를 알아채거나 식별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한다. 사실상, 물이라는 것은-해안선이 없이 촬영된 경우-특별한 대상이라기 보다 대개 일반적인 속성의 주제이다. 이정진이 찍은 썰물과 일렁이는 물결은 모든 물의 움직임에 절대로 필요한 것이다. 형태가 고정되어 있어서 알아 볼 수 있는 산과는 달리, 물의 몸체라는 것은 주변의 육지를 포함시키지 않는 한 시각적으로 구별될 수가 없다. 그녀가 선택한 물은 사실을 기록하는 도큐멘터리로서는 부적합하고, 추상에는 어울리는 주제인 것이다. 보편적인 특징을 가진 '물' 같은 주제에 의해, 이정진은 도큐멘터리 형식으로부터 더 멀어지고 있다.

이정진의 작품들은 한국의 전통적 유산은 물론 오늘날 미술과 사진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그녀의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 그녀는 고대의 건축 형식을 역동적인 현재의 이미지로, 그것도 매우 개인적인 이미지로 변형시키고 있다. 2000년 3월 휴스톤에서 열린 "한국의 현대 사진가 : 새로운 세대(Contemporary Korean Photography : A New Generation) 전시회"의 카탈로그에서 구본창은 "이정진은 자신의 주제를 침묵하는 대상처럼 표현한다. 그러나 그들의 침묵은 끝이 없는 속삭임과 같다." 라고 쓰고 있다. 이 기억할 만한 속삭임은 오래된 것이며 동시에 새로운 것이다.

"사물이 꿈을 꿀 때"

- 이정진의 사진-

이 영 준(이미지비평)

"사물이 꿈을 꿀 때"는 트리스탄 짜라가 만 레이의 사진집을 위해 쓴 짤막한 글의 제목이다. 그 글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만지고 먹고 으깰 사물들, 눈에 살갗에 대어 볼 사물들, 눌러 보고 핥아 보고 부셔 보고 갈아 볼 사물들, 속이고 달아나고 존경할 사물들, 차갑거나 뜨겁거나 여성이거나 남성인 사물들, 땀구멍을 통해 우리 삶의 대부분을 빨아먹어 버릴 밤 혹은 낮의 사물들."

이정진의 사진에 대해 얘기하는데 이 구절만큼 잘 들어맞는 것도 없다. 트리스탄 짜라는 이정진의 사진을 위해 이 글을 썼는지도 모른다. 사물이 꿈을 꾼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어떻게 비 인격체인 사물이 꿈을 꿀 수 있는가? 그것은 우선 우리가 사물에 대해 던지는 일상성의 시선을 거둘 때, 즉 사물을 묶고 있는 상식, 용도, 이런 것들을 포기할 때 가능한 것이다. 이 때 정말로 꿈을 꾸는 것은 사실 사물 자체는 아니다. 사물에 대해 꿈 꿀 능력을 잃어버린 우리들의 의식이 새로운 꿈의 세계로 잠겨 버리는 것이다. 아니면, 우리는 사물을 바라본다고 믿고 있지만, 거꾸로 사물이 그 응시를 통해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그 순간을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모든 사물들에 의해 언제나 바라보여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무기력하고도 전폭적으로 바라보여지는 것이 싫어서 사물을 생명 없는 어떤 것으로 밀어버리는 습관이 있다. 그러니까 사물을 기껏해야 용도나 속성이나 분류체계 정도로만 파악하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이 따분한 것은 바로 사물들이 꿈 꿀 여지를 빼앗아 버렸기 때문이다.

사진가가 하는 일은 바로 그런 사물을 묶고 있는 일상성과 상식성을 벗겨 버리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정진은 사진가의 본분에 충실하고 있다. 그녀는 자기만의 눈으로 사물을 보고는, 그것들을 순식간에 쓸모 없는 물건들로 바꿔 버린다. 그렇게 되고 나면 사물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사진의 프레임에 들어와서 활개치고 노는 것이다. 작가는 사물들에게 말을 건다. 마음껏 놀아보라고 말이다. 이정진의 사진에서 사물들이 이상한 빛을 뿜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것들이 잘 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감각의 플레이를, 현존의 플레이를 거침없이 하고 있다. 하도 열심히 놀다 보니 나무 둥치가 나무 둥치가 아니고 짚단이 짚단이 아닌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탑은 더 이상 탑이 아니다. 뭔가 추상적인 '이미지'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탑은 두 개의 이미지로 복제되어 거꾸로 맞붙어 버림으로써 더 이상 돌의 무게와 전통의 무게가 사라져 버린, 풍선 같은 것이 되어 버렸다. 물론, 그것을 전달하는 사진이라는 언어의 무게도 사라져 버렸다. 같은 이미지를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인화했기 때문이다. 또한, 알프레드 스티글리츠가 1906년 〈삼등선실〉을 찍은 이래 현대사진의 본령처럼 다루어져왔던 스트레이트 사진의 정통성, 즉 톤을 최대한도로 섬세하고 정확하게 살려야 한다는 원로선배 사진가들의 강령에도 그대로 따르지 않는, 칙칙하고 희뿌연 톤은 그녀가 사진 문법의 제약을 뛰어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무게가 빠져 버린 자리에 대신 들어선 것은 '힘'이다. 그것은 이미지의 말하는 힘이다. 그냥 나무 둥치나 바위, 풀이 난 길을 확대하여 조형적인 어떤 것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생기는 힘이 아니라, 사물과 작가의 시선이 만날 때 생겨나는 힘이다. 그 만나는 지점에서 우리는 팽팽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다.

그리하여, 사진의 대상은 구체적인 사물들이지만 그 결과로 나온 이미지들은 추상적이라는 아주 흥미로운 상태가 생겨난다. 보통 추상회화는 구체적인 사물의 모습은 띄고 있지 않은데, 이정진의 사진에서는 사물의 구체적인 모습은 그대로 있으면서도 추상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대단히 흥미롭고도 드문 어떤 상태가 생겨나는 것이다.

혹시 이정진의 사진을 보고서 '만드는 사진'이라는 구식의 촌스러운 딱지를 붙이려는 자가 있다면, 그녀의 사진들이 무엇보다도 카메라의 렌즈가 그 앞에 현존하는 대상을 생생하게 포착한데서 출발하고 있다는 데 주의를 기울이라고 권하고 싶다. 그것은 사진이 회화와 가장 구별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회화와 비교할 때 사진의 장점은 '찍힌' 이미지에 최대한의 추상성, 혹은 초 현실성이 내포되어 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이 세계는 원래가 추상적이고 초현실적인 것인데 우리가 상식과 일상이라는 이름으로 그것을 구체적이고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정진이 한 일은 그녀의 독특한 시선을 동원하여 사물들이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추상성과 초 현실성을 되찾아 준 것밖에 없다. 그렇게 되찾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그녀에게 '작가'라는 칭호를 주는 것이다. 안 그랬으면 우리는 그녀를 '작자'라고 불렀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들 관객들은 이 사진들을 어떻게 봐야 할까? 우선 무엇보다도, 이정진이 애써서 추상적으로 만들고 일상의 굴레를 벗겨버리려고 만든 이 작품들에 다시 일상의 굴레를 씌우는 일만은 하지 말자. 이정진이 한 일은 사물의 원래 맥락에 결부된 진부한 느낌과, 그것을 보고 확인하면서 존재의 안도감을 느끼는 우리들의 그 지각방식을 흔들어 버리고 새로운 태도로 사물을 보도록 한 것인데, 기껏 거기다가 대고 이것은 원래 어떤 것을 찍은 것이고 이런 과정을 거쳐서 이런 이미지로 만들어졌고 하는 식으로 생각한다면 작가의 의도에 가장 거스르는 일이 될 것이다. 이 작품들을 보면서 그 대상에 이름을 붙이는 일은 제발 하지 말자. 사실 일반 관객은 이런 이름짓고 규정하는 일에는 별로 참여하지 않는 편인데, 그들은 그냥 순진하기 때문이다. 이런 신통치 못한 일을 주로 하는 사람은 평론가들이다. 그들은 기껏 놀고 있는 사물들을 평론이라는 담론의 냉기를 씌워 꽁꽁 얼려 놓고는 "내가 작품의 엣센스를 가장 잘 포착했노라" 고 호기롭게 선언한다. 그때, 그의 등뒤에서는 사물들이 "저 사람한테 잘 못 걸리면 재수 없어" 라며 살금살금 또 다른 꿈꿀 자리를 찾아 달아나고 있는 것도 모르면서.

이정진의 사진은 우리가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를 시험하는 리트머스지 같은 것이다. 그녀의 사진을 보는 것은 매우 드문 체험이다. 그 사진을 계속해서 집에 걸어 놓고 있는 소장가 라고 할지라도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은 긴장을 느끼는 순간은 매우 많지 않기 때문이다.






570   [펌] 리 프리들랜더  zabel 2003/02/16 1611 491
569   전시 모음. + 풍경이다 [4]  zabel 2003/11/04 1609 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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