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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진 (1961~ )
1961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는 공예를 전공하였으며, 대학 동아리에서 사진을
배웠다. 대학 4학년 때인 1983년에는 학교 앞 카페에서 습작으로 개인전을 가졌고, 1985년에는 에어프랑스가 주선해 파리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파리국제사진전에 출품하기도 하였다. 1984년 홍익대학교 공예과를 졸업한 뒤 월간지 《뿌리깊은 나무》의 사진기자로 일하면서 사진가 강운구를 만나
그로부터 다큐멘터리 사진을 배웠는데 그 결과 1988년 사진집 《먼 섬 외딴 집》을 출간하였다.
1988년 미국으로 유학하여 1991년 뉴욕대학교 대학원 사진학과를 졸업하였다. 유학
시절 현대사진의 대가인 로버트 프랭크와 랠프 깁슨의 조수로 일하기도 하였다. 10년 가까이 뉴욕에서 작품활동을 하다 1997년 귀국하여 미국의
사진전문화랑인 '페이스 맥길 갤러리' 전속작가이자 서울예술대학 사진과 겸임교수로 국내외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유학 직후 미국을 여행하면서 포착한 사막의 표정을 담은 《사막》 시리즈를 착수하여
꾸준히 작품활동을 하였다. 기술적으로는 한지에 감광유제를 입힌 뒤 그 위에 인화하는 방법을 사용하여 독특한 사진작업을 하고
있다.
1995년 뉴욕 페이스 맥길 갤러리에서 〈Self-Portrait〉전, 1997년
아트스페이스 서울에서 〈Wasteland〉전, 2000년 금호미술관에서 〈Beyond Photography〉전 등 전시회를 열었다. 주요
작품으로는 《사막》 《파고다》 《바다(Ocean)》 《온 로드(On Road)》 등이 있다. 뉴욕현대미술관,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로스앤젤레스
카운티미술관, 선재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국내외 사진계의 동향을 어지간히 감지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여성작가 이정진(37)을
민병헌 박홍천 등과 함께 ‘국제사진계의 중심부에 가장 근접해있는 사람’으로 꼽는다. 국제화 근접 여부를 재는 잣대란 간단하다. 해당 작가가
외국의 메이저화랑과 특급미술관에서 전시회를 갖는등 ‘노는 물’의 번지수와 크기의 여부, 그래서 세계시장에서 과연 통하느냐 하는 것이다.
60년대産(산)이라는 나이와 여성작가라는 외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이정진은 전세대 작가들과 선명하게 구분되는 행동반경을 갖고
있다.
그는 95년부터 미국 뉴욕과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페이스 윌덴스타인 맥길 화랑’
전속작가로 활약하고 있다. 메이저중의 메이저인 맥길화랑은 국제적으로 중요한 특급작가 25명이 전속관계를 맺고있는 곳인데, 국내작가의 미국
메이저화랑 전속은 국내 사진사 처음의 일이다. 88년 뉴욕대 유학시절이후 현대사진의 거물급인 로버트 프랭크와 랠프 깁슨의 조수로 일했다는
이력등 작가적 출발도 여타 작가들에게 선망의 대상이고 범상치 않은 것이다.
이런 행동반경은 실은 부수적 요소다. 핵심은 작품 내용이다. ‘사막 시리즈’작업으로
유명한 이정진은 사진을 감싸는 사각형의 프레임에 관한 철학·미학적 사고를 포함한 현대사진의 미학실험 측면에서 많은 것을 함축하는 좋은 텍스트로
읽히고 있다.
미국 프랑스등에서 15회 이상의 개인전과 단체전에 출품한 그에 대한 평가는 국내외
작품소장처에서도 확인된다. 메트로폴리턴미술관, 로스앤젤레스 카운티미술관, 휴스턴미술관등 미국의 1급미술관이 작품을 사들였다. 뉴욕
현대미술관에서도 지난 5월 그의 신작 10점을 확보한뒤 이중 몇점을 구입하겠다고 밝혔다. 국내에서는 사진 이해가 높은 선재미술관이 유일하게
그의 작품을 갖고있다.
이런 화려한 이력에 주눅들지 않은 맨눈으로 그의 작품을 바라보자. 보통 인화지 대신
한지위에 感光(감광) 유제를 발라 손작업으로 공들인 제작공정 때문일까. 소재가 미국의 사막이건 아니건간에 주제와 기법이 잘 녹아든 그의
작품들에서는 보기드문 진정성을 간취할 수 있다. 작품의 주제, 소재와 기법등에서 ‘여성작가’라는 말에 붙어다니는 모든 종류의 부정적인
선입관에서 훌쩍 떠나있다는 점도 눈에 들어온다. 그렇다고 화면이 무미건조하거나 손끝의 감각에 매달리느냐 하면 오히려 그 반대다. 남다른 깊이가
특징이다.
눈이 유별나게 큰 대신 호리호리한 체격의 전형적인 동양여성 분위기인 이정진은
대구태생. 홍익대에서는 공예를 전공했다. 사진과의 만남은 대학 서클에서 이뤄졌다. 이 인연으로 대학 4학년때인 83년 학교앞 카페에서
습작으로 개인전을 가졌고, 이듬해에는 에어프랑스가 주선해 파리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파리국제사진전에 출품했다. 대학졸업뒤 월간지 ‘뿌리깊은
나무’의 사진기자로 일했지만, 자기 작업에 대한 욕심을 버릴수가 없었다. 이때 만난 사람이 선배 강운구. 그로부터 다큐멘터리 사진을
배웠는데 그 결과물이 88년 유학 직전에 나온 사진집 ‘먼섬 외딴 섬’(열화당)이다.
이정진은 유학 직후에 ‘사막시리즈’를 착수했다. ‘나의 정체성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한 대가로 곧바로 한지작업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등 비교적 빨리 자신의 사진언어 지평을 확보할 수 있었다.
당시 랠프 깁슨을 만나 조수생활의 인연을 맺은 계기는 뉴욕대 여름워크숍이고, 로버트
프랭크는 이정진이 용감하게도 직접 전화를 걸어 만남을 청해 교류를 할 수 있었다. 이중 로버트 프랭크를 통해 “작가생활이 유행에 한눈 파는
것이 아니라, 마라톤”이라는 것을 배웠다고 이정진은 밝힌다.
이제 이정진식 語法(어법)의 사막사진을 본격적으로 대면해 보자. 그의 사진에서 압도하는 장엄함이나 엄청난
스케일의 사막풍경을 찾으려 했다가는 실망하기 십상이다. 안셀 아담스나 에드워드 웨스턴등이 찍은 유명한 사막 사진들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도 그런
종류의 사막을 떠올리려 했다가는 당혹감을 느끼게 된다. 사막 비슷하지도 않거니와 재래식의 문법으로 보아 아름답다거나 장엄하다고 해야될
요소는 전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 그가 보여주는 것은 이리저리 토막나서 파편이 된 사막의 일부분들이다. 때론
바위덩어리들이나 나무둥치들이 커다랗게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더 자주는 전혀 상관관계가 없어 보이는 자신의 신체일부가 사막사진에 함께 들어가
있어 낯섦을 더한다. 이런 사진들 3개가 한 세트를 이루기도 한다. 황금비율로 분할된 지평선, 자연스럽게 주름진 사막의 조형미와 색조 등
그동안 많이 보아온 사막풍경 대신 이정진이 잡은 사막은 지평선이 45도 가까이 기울어져있기도 하다. 상당부분이 구도잡기를 포기한 상태에서
즉흥적으로 잡았음이 분명하다. 희한한 점은 이런 사막이지만, 아름다움이 분명 존재하고 이것이 보는 이를 사로잡는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우선 편안하다. 근대사진이나 소설에서 보아온 자기완결적인 서술구조를 포기한 화면이 주는 자유로움과 통하는 편안함이다. 틀에 꽉 짜이지 않아
숨쉬기 적당하고 여기에서 쾌적함을 얻을 수 있다. 이 쾌적미는 철학동네 용어로 바꾸면 ‘데리다적인 미의식’이다. 서양철학사 2천여년의
의미과잉(플러스적 사유)을 벗어나려한 해체철학자 데리다가 ‘마이너스적 사유(해체)’를 주장했음을 염두에 두자. 쾌적함은 상당대목 독자적인
화면의 질감에 힘입고 있다. 번들거리지 않고 스며든듯한 느낌은 대단한 매력으로 다가선다. 인화지가 아니라 한지를 썼기 때문이다. 감광유제를 발라
정교한 손작업만으로 프린트를 했기 때문에 이정진의 사막은 수묵화처럼 ‘스며든 효과’가 기막히다. 따라서 안목있는 서양사람들이 그의 사진에
예외없이 매료되는 이유는, 그의 사진의 주제와 표현 질감등에서 俗氣(속기)를 찾아볼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전통동양화에서 최고로 치는
덕목이 속기가 없어야 한다는 점이 아니던가.
이런 생각을 구체화한 것이 이정진 사막사진의 프레임의 문제이다. 사실 현대사진의 가장
큰 특징은 ‘프레임으로부터의 해방’이라고 말해진다. ‘프레임=현실을 담아내는 틀’이라는 공식 자체가 해체됐기 때문이다. 이 경우 사진은 ‘틀에
갇혀있는 이미지’가 아니라 ‘고정관념에서 풀려난 자유로운 영상’이 더 리얼하다고 믿고 있다. 이정진 사진도 마찬가지다. 한가지 특이한 점은
그이 사막사진은 칼로 깨끗하게 잘라낸 인화지와 달리 끝이 너덜너덜해 안과 밖의 경계가 없는 한지의 특성에 힘입어 보다 자유로운 영상으로 살아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정진의 생각과 의도는 무엇일까.“사막은 대단히 추상적인 공간이다. 이
사막이라는 엄청난 대상을 ‘거짓말 잘하는 트릭의 매체’인 사진을 통해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실로 어려웠다. 그 어려움을 교묘하게
보여주기보다는 한계를 솔직하게 인정한뒤 대상 자체의 자연스러움과 있는 그대로를 좀더 가까이 표현하려고 했다.”
여기에서 이정진의 세계로 들어가는 열쇠로 비디오예술가 백남준의 언급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새로운 한자 造語(조어)까지 구사한 알쏭달쏭한 말이지만, 현대사진의 핵심에 육박하는 명제이기도 하다. “寫眞(사진)이라는 것은
(한자 풀이를 할 경우) ‘진짜 베끼는 것’이므로 필연적으로 가짜가 된다. 만약 寫僞(사위)라는 術(술)이 있다고 가정하면, 이것은 ‘가짜를
베끼는 것’이므로 반드시 진짜가 되는 것일까. (현대)사진이란 (진짜를 베낀다는) 허상에서 벗어나 허위에 접근하려는 정신의
意圖(의도)이다.” 백남준식의 표현을 빌리자면, 근대사진이란 ‘고정관념의 틀에 맞춰 현실을 절단한 비현실’, 즉 가짜에 불과한 것이고 따라서
허위의 세계라는 것이다. ‘절단된 현실’을 아름답다 서정적이다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실은 ‘거짓말 잘하고 틀에 맞춘 이미지’만을 양산해
내는 카메라 뷰파인더의 거짓말에 맞장구치는 행위이니, 이 허상에서 벗어나는 작업이 현대사진의 새로운 ‘정신의 의도’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정진의 사막은 새로운 정신이 만들어낸 意圖(의도·마음의
그림)이다. ‘마라톤으로서의 사진작업’을 위해 이정진은 지난 4월 뉴욕의 스튜디오를 서울로 옮겼다. 어차피 작품의 분위기 때문에 ‘한국의
작가’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는 한 한국땅에서 호흡을 해야겠다는 판단이 겹쳐져 3년전에 감행한 늦결혼으로 태어난 세살난 딸도 서울에서 키우고
있다. 사실 서울은 작가생활을 하기에 가장 불리한 환경으로 악명이 높은 곳이다. 이곳에서 작가로서의 전력투구와 일상생활, 이 어려운 양립은
이정진에게 작가생활의 고비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趙祐奭기자>(1998.6.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