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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현대(02-734-6111) .. 2005-07-06 ~ 2005-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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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현대는 2005년 여름, 현대미술에서 중요한 장르로 부각되고 있는 현대 사진계의
9작가의 전시, “PICTURES”를 선보입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토마스 디멘드(Thomas Demand)를 비롯하여 클라우스 고디케(Claus
Goedicke), 제임스 카세베르(James Caebere), 비크 뮤니즈(Vik Muniz), 제인 앤 루위스 윌슨(Jane &
Louise Wilson) 등 세계적으로 관심 받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들과 로우 에트리지(Roe Ethridge), 샤론 코어(Sharon
Core), 더크 브레이크만(Dirk Braeckman) 등 국내보다 국제적으로 더욱 주목 받고 있는 작가들은 물론, 국내작가 이윤진의 신작들도
선보입니다.
이번 전시 “Pictures”는 우리의 시각을 통해 보이는 것들과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받아들이는 “현실” 이나
“객관성”에 대해서 쟁점화하고 있습니다. 제인 앤 루이스 윌슨(Jane & Louise Willson)과 이윤진, 그리고 더크
브래크만(Dirk Breackman)의 작품과 같이 진실을 포착하는 문서적 사진기술법을 이용한 반면, 토마스 디멘드(Thomas Demand)와
제임스 카세베르(Jam Casebere), 비크 뮤니즈(Vik Muniz) 그리고 샤론 코어(Sharon Core)와 같은 작가의 작품들은 보는
것과 믿는 것이 대등하지 않다는 것, 따라서 우리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객관적” 이라든지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밝혀 줍니다.
토마스 디멘드(Thomas Demand b.1965)는 뒤셀도르프 아카데미에서 안드레아스 걸스키
(Andreas Gursky) 나 토마스 스트루스 (Thomas Struth)와는 달리 조각을 전공한 작가로 건축의 구조에 대하여 연구하고
공간, 구조물을 만들어 사진으로 표현하는 작가입니다.

Thomas Demand, Drafting Room, 1996 C-print diasec 183.5 x 285
cm
제임스 카세베르(James Casebere b.1953)는 미국 출생으로 실제의 장소처럼
건축물 모델을 제작하여 빈 공간의 고요함을 촬영하여 우리가 실제로 보는 사진의 정체성을 담아낸 작가입니다.

James Casebere, Yellow Hallway 2, 2001 Digital chromogenic print mounted
on plexiglass 175 x 217.5 cm
제인 루이스 윌슨(Jane Louise
Willson b.1967)은 자매 작가로써 영국 런던에서 거주하며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들로 큰 공장의 공간이나 파이프들을 찍음으로써
모던하고 미니멀한 추상화 같은 사진을 연출합니다.

Jane & Louise Wilson, Safe Light, Divided Ballroom, 2003 C-type
print on aluminum in Perspex, 180 x 180 x 2 cm
비크
뮤니즈(Vik Muniz b.1961)는 브라질에서 태어나 1980년부터 미국에서 활동하는 작가입니다.그는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을 잡지
속 광고나 신문을 이용한 아주 작은 조각을 모자이크식으로 작업합니다.

Vik Muniz, Bouquet, After Matisse (from Pictures of Magazines), 2004
Chromogenic print 255.3 x 182.9 cm
샤론 코어(Sharon Core
b.1965)는 미국의 팝문화를 대표하는 케잌이나 사탕을 유화로 표현하는 작가 웨인 티보(Wayne Thiebaud)의 작품을 새로이 재현하는
작가로 화려한 색상의 케잌들과 사탕을 제작하여 사진으로 작업합니다.

Sharon Core, Bakery Counter, 2004 C-print 139.7 x 182.9
cm
더크 브래크맨(Dirk Braeckman b.1958)은 빈 공간과 사물들을 흑백
사진으로 표현하여 사진의 ‘진실의 포착’에 대해 문제화 하는 작가입니다.

Dirk Braeckman, A.D.F.-S.B.4-03, 2003, Gelatin silver print on aluminum,
180 x 120 cm
로우 에트리지(Roe Ethridge b.1969)는 미국출생으로 패션잡지나
광고 속의 이미지를 차용하여 콜라쥬하는 작업을 하는 작가로 이번 전시에는 자연풍경을 빛과 테크닉을 이용하여 상업적인 사진과 예술적인 사진의
결합을 보여줍니다.

Roe Ethridge, New York Water(White Pine Camp), 2000 C-print 81.3 x 127
cm
클라우스 고디케(Claus Goedicke b.1966)는 독일에서 태어나 이윤진과
마찬가지로 뒤셀도르프 아카데미에서 공부한 후 대중적으로 익숙한 정물이나 사물들을 화려하고 회화적으로 찍는
작가입니다.
이윤진(Yoon-jean Lee b.1972)은 사진역사에서 가장 활발했던 1990년대의
뒤셀도르프 아카데미에서 베른트 베허 (Bernd Becher) 와 토마스 러프(Thomas Ruff))에게 사사 받고 일상 공간을 담은
Still-Life 시리즈로 독일과 한국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Yoon-Jean Lee, Still Life Nr. 33, 2004, C-print diasec, 200 x 164
cm
PICTURES
리나 자나 (Reena
Jana)
1859년 파리 살롱의 전시를 위해 비평론을 제출하게된 찰스 보들레어(Charles Baudelaire)는 그
당시 발생기에 있었던 사진술(photography)에 대해 매우 자극적인 글을 쓴 바 있다. 그에 의하면 회화의 주관적인 관점에 비해 사진술은
객관적으로 사물을 포착함으로 그때까지만 해도 작가의 붓 끝의 창조적인 관점에 걸러보던 세상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또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보아야
하게 될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는 경고하듯 “진실을 인식하는 우리의 구미는-제대로 쓰여질 때의 뛰어남을 제외하고-아름다움에 대한 구미를
묵살한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서 회화는 우리에게 시를 주는 반면, 사진은 산문을 준다는 뜻이었다. 한때 진실을 포착하는 도구로, 또는 시학의
적으로 생각이 되던 카메라가 현대의 작가들에 의해 예술적 상상을 표출하는 도구로 쓰여지게 된 것을 풍부하게 보여주는 이번 전시는 보들레어가 이
글을 쓴지 한 세기 반이 지난 이 시점에서, 만약 그가 이번 전시 “Pictures”를 보게 되었다면 자신의 글을 취소시킬까라는 생각까지 하게
한다. 보들레어의 말을 그대로 인용한다면 21세기의 작가들은 사진술을 마침내 “제대로” 쓰게 된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의 사진술은
현대 미술에서 가장 융통성있는 도구로 사진술의 역사뿐만 아니라 회화의 역사, 또 조각, 그리고 그보다 더욱 새로운 개념예술이나 미니멀리즘에
이르기까지에 관련된다.
이번 전시의 제목인 “Pictures”는 미술에서 가장 많이 쓰여지는 용어로 어느 매체나 이미지에도
해당되고 흔히 쓰여지는 광범위한 단어이다. 이번에 전시된 모든 작품들이 카메라를 사용하여 만들어지기는 했으나 우리가 흔히 아는 그림이나 사진은
아니다. 이 작품들은 하나 하나로 보나 전시회 전체적으로 보나 사진술 뿐 아니라 우리가 아는 ‘미술’이라는 개념에 도전장을 냈다. 한걸음 더
나아가, 보들레어의 글에서처럼 사진을 그저 문서적인 도구로 보는 관점에 반해 “Pictures” 전시에 포함된 작품들은 우리가 알고 받아들이는
“현실”이나 “객관성”을 문제화 하고 있다—카메라의 렌즈를 통해, 또는 우리의 눈 자체를 통해 보이는 것들에 대해서 말이다. 이 작가들은 보는
것과 믿는 것이 대등하지 않다는 것과, 따라서 우리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객관적” 이라든지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밝혀 준다. 그리고
우리는 이 작품들의 주관성과 추상성을 볼수 있게 된다. 이번 전시의 작품들이 현대 사진에 불어오는 새로운 시학적인 바람과 그에 대한
미술역사 그리고 사진역사에 끼치는 영향을 이해하려면 일단 이번 전시의 작가들 중 가장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작품들부터 살피는 것이 흥미로울 듯
싶다. 이들 중 나이가 가장 어린 작가 중 한명인 이윤진은 서울에서 출생하여 미술역사속의 사진역사에서 가장 활발했던 1990년대의 쿤스트
아카데미 뒤셀도르프(Kunst akademie Dusseldorf) 에서 유명한 베른트 베허 (Bernd Becher) (그리고 베른트 베허와
힐라 베허의 제자인 또 하나의 유명한 작가 토마스 러프(Thomas Ruff))에게 사사 받았다. 라지 포맷(4 x 5 인치의 렌즈 사이즈)의
카메라로 찍은 그녀의 작품들은 보통 사람이 사는 공간을 포착한다. 그러나 그녀의 사진 속의 공간은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은 배제된 정물적인
사진으로 회화역사의 관점 안의 정물전통안에서도 그렇지만 사진의 정지 화면의 테크닉으로 포착한 그들의 초상화인 듯 싶다. 이윤진의 작품들은 보이지
않는 인물들의 소유물을 대상으로 하여 그들의 초상화를 그린 것이다. 또, 이윤진 자신이 말하듯 작품에 나타난 공간과 물건들은 있는 그대로 찍힌
것이지 가상적으로 꾸민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 공간들을 아무렇게나 뽑아 찍은 것이 아니다. 아주 오랫동안 여러 공간을 보고 생각한 후에
조심스레 골라 촬영한 공간들이다.
예로, ‘Still-Life Nr.33’(2004)에서 그녀는 붉은 테이블 위에 반쯤 마신
커피잔이 벨벳으로 된 소파 의자 앞에 놓여진 모습을 묘한 뜻밖의 각도로 촬영하였다. 커피잔은 또한 조그마한 거울 앞에 기이하게 놓여져 있는데,
하얀 자기의 형체가 보는 이에게 거울 속에서 중복되게 한다. 사진의 구성에서 가장 앞이 되는 왼쪽 아래의 코너에는 은빛이 나는 단 한 개의
머리핀이 놓여 있다. 머리핀의 은빛색은 금속제로 만들어진 책상 위의 램프와 커피 카라페를 모방하는 듯 하다. 작가가 예술적으로 어느 인물의
소유물들을 마치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포착한 듯 예술적으로 촬영을 하긴 했으나 그녀가 포착한 사진은 잠깐 사이에 찍은 사진과는 관계가 멀다.
작가와 그녀의 대상의 인물이 꾸며낸 공간은 아닐지라도 작가는 예술적인 구성으로 조심스럽게 프레임하여 소유물들이 소유자를 대신하는 대체물이 되도록
하였다. 머리핀과 거울 그리고 커피잔까지 사진에 포함된 모든 물건들이 시간적인 공간을 벗어난 서술 속의 순간인 듯 이 사진은 결국 두개의 장면
사이의 순간인 것이다. 이 사진을 보는 관객은 어쩔 수 없이 이 사진의 바로 전과 바로 후의 일을 상상하며, 사진 대상의 인물이 돌아온 후 어떤
일이 생길까? 그 사람이 다시 돌아 올까? 등의 질문을 하게 된다.
토마스 디멘드(Thomas Demand) 역시 이윤진씨 처럼
쿤스트 아카데미 뒤셀도르프(Kunst akademie Dusseldorf) 에서공부하였다. 그러나 이윤진이나 그의 독일인 선배들 (베허의 학생들
등)인 안드레아스 걸스키 (Andreas Gursky) 나 토마스 스트루스 (Thomas Struth)와는 달리 사진 대신 조각을 전공하였다.
이윤진과 같이, 그리고 베허의 전통에 이어 디멘드 또한 사진에 보이지 않는 인간이 사는 공간을 사진으로 문서화하고 해석하며 건축의 구조에 대한
관심을 가진다. 그에 반면 이윤진이나 베허와는 달리 디멘드는 사진 속의 공간을 실제 사이즈로 판지와 종이를 이용하여 재현한 다음 조명을 하여
촬영을 한다. 이 끝에 현상되는 사진은 처음에 모델로 한 사진과 거의 비슷하게 나오는데, 이에 보통 쓰이는 사진들은 신문이나 잡지, 또는
인터넷에서 프린트하여 낸 사진들이다. 그가 만들어 사진 촬영하는 입체 모델들 중에는 수영장, 집안의 인테리어, 또는 텔레비젼 방송국까지 있다.
첫 접촉에 명백히 알아보지는 못하나, 그가 모델로 만든 공간들은 거의 역사적인 중요성을 갖는 장소들이다. 예로, 그가 모델화한 장소 중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죠지 부시(George W. Bush)의 대다수 선거의 입증을 문제화 했던 플로리다주(Florida)의 선거
장소가 있고, 또는 사담 후세인 (Saddam Hussein) 이 미국의 군인들에게서 생포되었던 이라크의 지하 은신처인 부엌도 있다. 디멘드가
만들어낸 사진이 그가 먼저 신문등에서 오려낸 사진과 거의 흡사한 것을 보아 우리는 흔히 대중매체로 보는 사진들의 신빙성을 묻게 되고 역사 자체의
변화적임과 박약함, 그리고 언제까지나 변덕스러운 역사의 성질을 볼 수 있게 된다—어떤 화재가 선전운동과 홍보활동에 따라 변화하는 모습, 또
얼마나 정부의 기관들이 도덕적 부패에 약하며 ,그리고 전쟁시에 정치제도라는 것이 종잇장처럼 쉽게 파괴되는것 등 말이다.
제임스
카세베르 (James Casebere) 또한 디멘드와 같이 실제의 장소들을 찍은 듯 모형을 만들어 그 모델들을 사진 찍었다. 그중 미국 전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 (Thomas Jefferson) 이 살던 버지니아의 몬티첼로 대농장이 있는가 하면, 독일의 베를린시의 하수도가 있고,
또는 교회의 사진들도 있다—그러나, 카세베르의 사진들의 모델들은 완전 가상의 장소들이다. 카세베르의 최근 작품들은 텅 빈 공간에 유리와 같은
물에 잠긴 우아한 모형들로 Apse (1996) 와 Yellow Hallway 2(2001) 등이 있다. 카세베르의 인척이 없는 텅빈 공간들의
마치 버림받은 듯한, 생명이 없는 모습은 유명한 사진 작가 유진 아트제(Eugene Atget) 의 사진들 중 음울하게 텅빈 파리의 빌딩들과
거리, 그리고 문간을 포착한 모습을 연상케 한다. 카세베르의 작품이 전시될 때 그는 전략적으로 사진들을 전시하는데, 그는 무게있는 작품들을 이
작품들의 아름다우면서도 종말적인 공간으로 초대하는 입구로 이용한다. 카세베르의 인테리어 씬은 사실 소형의 건축 모형이고 물에 잠긴 효과를
구사하기에 쓰인 물은 easy water 라는 유동성 플라스틱으로 주로 기차 모형을 만드는 팬들이 모형 호수를 만들 때 쓰는 것이다. 카세베르
역시 잡지, 신문 또는 책에 출판된 사진에로서 부터 작품의 출발을 삼는다. 그리고는 하나하나 자그마한 인형 사이즈의 모형을 조심스레 만들어
사진을 찍는다. 디멘드와 같이 카세베르 역시 사진 촬영을 작품 자체라고 하기보다는 작품의 마지막 단계로 본다. 카세베르의 작품들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질문 하게 하며 또한 디멘드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보는사진의 정체성을 문제화 하도록 한다. 또한
그는 사진 작가인 동시에 조각가라고 보아야 한다. 그의 작품들은 공간, 특히 건축적인 공간을, 작은 스케일로나마 취급하기 때문이다. 그가 자신의
작품을 마지막 단계로 사진 촬영한다는 것은 간접적으로나마 로버트 스미슨(Robert Smithson)과 같이 사진을 작품의 기록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이들과 관련맺을 수 있도록 한다. 스미슨의 “토지 공사” 시리즈 중 “나선 부두”(Spiral Jetty)가 작품자체인지 작품을 사진으로
기록한 문서로서 인지 불확실함 속에서 논쟁했던 것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에 반면, 제인 윌슨과 루이즈 윌슨 은 실제 현장을 직접
촬영하는데, 그렇다고 전통적인 문서적 사진술을 쓴다고 만은 할 수 없다. 이들의 작품들은 놀랍게도 추상적이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품들은 그들의 “Safe Light” (2003) 시리즈 중 몇 작품인데, 고도 기술의 하이텍 기구와 기계들을 소재로한 인테리어를 주로 촬영
했다. 다큐멘터리와 같은 성격을 가진 이 작품들은 뜻밖에도 클래식한 미니멀리즘의 차가운 추상화적 느낌을 준다. Safe Light,
Divided Ballroom 과 Safe Light, Ballroom, 둘 다 차례차례 줄 선하얀 전등들, 하얀 천장 패널들, 정 6면체의
테이블들, 그리고 하얀 직사각형의 케비넷등 을 실용적인 동시에 Donald Judd (도날드 저드 ), Sol Le Witt (솔 르 윗),
Carl Andre (칼 안드레), 또는Eva Hesse (에바 헤세)와 같은 이들의 작품 구성을 떠올리게 한다. 또 하나의 시리즈중, “Fab
Unit”(2003)에서 윌슨 자매는 빌딩의 파이프나, 전선들, 튜브, 또는 밸브등을 촬영하였는데 이런 공업적인 공간을 예술적으로 상상한 윌슨
자매는 사진의 프래이밍을 통해 완전히 신비로운 추상화로 또다시 변형 시키는데 우리로 하여금 어쩌면 Gerhard Richter의 공중에서 촬영한
도시풍경을 보는것과 같은 느낌을 가지도록 하면서 지극히 평범하고 시시하기만한 사물들이 바로 우리의 눈 앞에서 의아하고 불가사의한 구성을 이루도록
한다.
윌슨 자매와 더불어 이번 전시에 포함된 모든 작가들과 같이 더크 브래크맨(Dirk Braeckman) 역시 인척이 없는 빈
공간과 뻣뻣하나 우아한 사물들, 그리고 사진의 ‘진실의 포착’에 대해 문제화 하는것에 매료되어 있다. 그는 흑백 으로 사진을 촬영 하는데 벽에
기대어 있는 의자나 모던풍 식탁 세트가 문 사이로 프래이밍이 되어 보이는 모습, 또한 유리 식탁 위에 비친 레이스 커텐의 반사된 모습이 모두
향수적인 노스탈지아를 불러 일으킨다. 이런 그의 테크닉은 사진에 찍힌 사물들과 공간의 과거에 대한 강한 인식을 불어주는데 19세기 사진작가
아트제(Atget)의 감성과 현대의 인도 작가 다야니타 싱 (Dayanita Singh) 의 흑백으로 촬영한 빈 공간이 역사성을 떠오르게
한다.
클라우스 고디케(Claus Goedicke) 역시 소박하면서 우아한 이미지를 추구하는데, 한가지 다른 면이라고 하면, 그는
활기찬 컬러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고디케의 작품들은 모던풍의 정물화인듯 죠지오 모란디(Giorgio Morandi)와 같은 작가를 떠올리게
하며, 모란디와 같이 그도 역시 평범한 병들이나 그릇등을 포착한다. 그리고 모란디와 같이 시판용 병이나 그릇 등을 상표가 보이지 않게 하여
미등록 상품처럼 –싸인이 아닌 형체로서만—사용한다. 그의 선배들 처럼 그 역시 형체의 깨끗함과 낯이 익은 이미지들을 사용하는데에 관심을 가진다.
그는 또한 시판용 잡지의 사진술과 같은 테크닉을 사용하여 사물을 유선형의 직접적인 매너로 양식화한다. 물론 동시에 미술역사에도 인사하면서
고디케는 야수파 화가들이 주로 쓰는 색들, 예로 진한 붉은 색, 오렌지 색, 또는 핑크 색을 주로 사용한다. 우리는 또 한번 그의 작품속에서
가상 체험을 하는데 사진 역사의 먼 옛날을 거슬러 올라가 윌리암 헨리 폭스 탈보 (William Henry Fox Talbot) 씨가 19세기에
나란히 줄서 있는 사물들을 촬영한 것을 떠오르게 한다. 폭스 탈보씨가 했던 그대로 고디케의 사물들을 줄줄이 서 있는 병사들과 흡사한 모습으로
진열하여 촬영하는 것이 특징이다.
사진역사에 또하나의 참조를 하자면 고디케의 작품들은 1920년대의 뉴우 사크리카이트 운동
(Neue Sachlichkeit)에 대해 로잘린 크라우스 (Rosalind Krauss)가 말했던”축적의 반복적인 리듬”
(“repetitive rhythm of accumulation”)을 떠오르게 하는데, 1920년대의 사진작가들이 이때 기록 수용의 모델을
따른것을 가르치고 있다. 이 바탕에서 볼때, 고디케가 유리병을 계속 재활용하여 소재로 쓰는것은 사진이 일찌기 실용적으로나 예술적으로나 사용되던
시기로서 이해할 수 있다.
뉴욕의 부르크린 출생인 작가 로우 에트리지(Roe Ethridge)도 역시 재활용과 재수용에 대한 미학적
철학을 이번 전시에 출품한 모든 작가들과 더불어 나눈다. 디멘드와 카세베르가 책이나 잡지에서 찾은 이미지를 사용하듯, 에트리지 또한 찾은
이미지를 사용하여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 그녀가 이용하는 이 테크닉은 1920년대의 한나 허크 (Hannah Hoch)가 프린트 광고물을
오려내어 작품에 붙여 콜라쥬를 만든 것과 마찬가지이다. 에트리지의 작품들은 자신이 오려내어 쓰는 광고 사진들 만큼 대중잡지풍으로한 스타일로
패션잡지나 여행 잡지에 있는 보름달의 사진이나 나무로 둘러싸인 호수와 같다. 그녀는 사진역사 속의 역사성을 참조할 뿐 아니라 근대의 사진역사
속에서 사진이 계속적으로 예술과 산업을 합류하는데 기인한다.
비크 뮤니즈(Vik Muniz) 또한 재생한 것을 재생하는 작가다.
그가 유명해진 계기는 쵸코렛 시럽으로 그린 그림을 사진 촬영해서 였다. 그의 특징적으로 알려진 작품들은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을 아주 작은
파편으로 모자이크식으로 재현하는 것이다. 예로, Bouquet, After Matisse (from Pictures of
Magaznies)”(2004)는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 마티쓰의 유화를 잡지 조각으로 만든것이다. 그는 잡지 조각을 하나하나 동그란 구멍을
만드는 기구로 잘라내어 무수하게 모자이크를 꾸몄다. 뮤니즈의 작품은 세심한 계획속에서 탄생한 것이다. 그는 마티쓰의 오리지날 유화의 색상 하나
하나를 프린트 광고물들 속에서 일일이 찾아낸 것이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우리는 그의 입체적인 종이 층 속에서 거의 유화적인 효과를 찾을수 있는
것이다. 뮤니즈의 다른 작품 중 “New York City by Night, After Bernice Abbot (from Pictures of
Diamonds)” 역시 다이아몬드 사진을 일일이 오려내어 그것을 잘라낸 동그라미 대신으로 만들었는데, 원 작품이 유화가 아닌 사진이기에 이
작품의 다이아몬드 하나하나는 텔레비젼이나 컴퓨터 스크린의 픽슬 하나하나인 듯 싶다. 그러나 뮤니즈에게 있어서 이 콜라쥬 자체는 작품이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작품인 사진에 있어서 과정일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마티스의 유화를 재현한 그의 콜라쥬가 기록적이지만 하지는 않다. 오히려, 그는
마티스의 이미지를 재사용하여 프래이밍을 한다. 뮤니즈의 테크닉은 디멘드나 카세베르와 같은 것이다.
또한 뮤니즈와 같이 샤론
코어(Sharon Core)는 웨인 티보(Wayne Thiebaud)의 유화를 새로 재현하여 그의 케이크, 파이, 그리고 여러 조제 식품 등을
환상적이고 화려한 핑크색과 파랑색으로(그리고 굉장히 맛있어 보이는 실감나는 컬러의 쵸코렛색으로) 그린 후 사진을 찍었다. 코어의 사진들의 색과
구성이 유화적인 면은 티보의 캔버스에서의 유화가 사진적인 것 만큼 신빙성이 있다. 코어의 작품 중 “Candy Corner” (2005) 는
37년전 티보의 동명의 유화를 기록하기 위해 사진을 찍은 것인지 아니면 자립적인 사진인지, 물론 그렇긴 하지만, 도저히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이다. 그녀가 티보의 당과 조제 식품들을 세심히 공부하였다는 것이 명백히 들어날 정도로 분명한 재현작인데, 그녀의 쵸코렛 코팅은 침을 돌게
할 정도로 빛나 보이고, 사탕들의 표면은 병안에 았는데도 반짝 거릴 정도이다. 코어는 카운터의 선반 하나하나까지 티보가 특징적으로 쓴 핑크와
파랑, 노랑 과 녹색으로 칠했는데 그의 굵은 붓놀림까지 세심하게 재생하였다.
이번 “Pictures”전에서 볼수 있는 바와 같이
사진술은 계속 변천하며 폭스 탈보 (Fox Talbot) 의 “Pencil of nature”이상 밖으로 펼쳐 가고 있다— 이것은 현대의
역사적인 경로로 만약 보들레어가 지금 살아있었다면 틀림없이 크게 충격을 받았을 만한 일이다. 그런 반면 어쩌면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유화적인 효과를 사진에 구상하려고 추구하던 영상주의적 사진작가들에게는 별로 놀라울 만큼 기이한 것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Pictures”전의
작가들은 모더니즘과 현대적 미학으로 (특히 미니멀리즘, 추상성, 그리고 개념 미술 등으로) 조각까지 더불어 작품을 만들기는 했지만 말이다.
여기에 전시된 이미지들은 사진이라고 할 수 있는가? 종류를 구분하는 일이 만약 부적절하게 되었다면, 미술의 여러 매체의 갈래가 불확실해 진
것인가-그것은 카메라 때문인가 아니면 카메라가 있는데도 그렇게 된 것인가? 그에 대한 대답을 찾고자 하는데는 현재 만큼이나 과거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라즐로 모홀리-나기(Lazlo Moholy-Nagy)가 언젠가 말했듯이, “새로움의 창조적 가능성은 … 흔히 천천히 발굴되는데,
오래된 형태, 오래된 악기, 혹은 오래된 구성이 새로 나타나는 것들에게 짖밟히기 전 마지막 도취적으로 피어남
통해서이다.”
저자인 리나 자나 (Reena Jana) 씨는 뉴욕에서 거주 활동하고 있는 미술 비평가/ 편집가입니다. 그녀의
서술은 Bookforum, Artnews, Art in America, Art and Auction, Time Out New York,
Wired 등 미국의 널리 알려진 많은 예술 잡지에 실립니다. 그녀는 또한 2006년에 출판 예정인 New Media Art (새로운 미디어
예술)의 공동 집필자입니다.
참고문헌:
(1) Baudelaire, Charles. “The Modern
Public and Photography,” Trachtenberg, Alan 편집. Classic Essays in Photography.
New Haven, CT: Leete’s Island Books, 1980, p.85 (2) Baker, George.
“Photography between Narrativity and Stasis: August Sander, Degeneration, and
the Decay of the Portrait,” October 76, Spring 1996 (3) Benjamin, Walter. “A
Short History of Photography” in Trachtenberg, Op. Cit., p.2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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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ois" series
수잔앤드류 사진展
2005_0702 ▶ 2005_0806

수잔앤드류_The "Lois" series_컬러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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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702_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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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l. 02_733_8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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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적인 일상과 무심한 것들이 어린 시절의 진정한 모습이라 생각하는 독창적인 시각에서 가족사진에 접근하여 새로운 작업형태를 보여주는 전시회 ● 나는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휴가나 기념일과 같은 특별한 날에 카메라를 향해 미소 짓거나 하는 틀에 박힌 가족사진이 아닌 그 이상의 사진을 찍고자 했다. 왜냐하면 이런 사진들은 온통 행복함과 특별함만으로 가득해 나중에 보면 그때 그 시절의 아늑한 회상에 잠기게 되곤 하는데 이것은 자칫 어린 시절의 생활이 거짓된 사회통념의 하나로 여겨질 수 있는 위험요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오히려 반복적으로 벌어지는 일상과 어린 시절의 지나친 풍요 때문에 겪어야만 했던 사건사고, 반항, 상상 속에서 일어나는 행동들, 깊은 상념에 젖어있는 순간의 조용함 등 이러한 것들이 진정한 어린 시절의 모습 아닐까 하는 생각에 지루할 정도의 반복적 일상에 더욱 흥미를 가졌으며 그러한 것에 초점을 맞춰 작업하였다. 물론 사진작업에 있어 절대 객관적일 수만은 없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이 프로젝트는 엄마이며 동시에 사진의 기록자라는 입장에서 주관적이며 또한 특수한 상황이었다. 엄마, 그리고 기록자라는 두 가지 역할에서 나는 본능적으로 엄마로서의 역할에 우선할 수밖에 없었으며 때론 카메라를 잡고 있어야 했을 손에 아이들을 어루만지거나 아이들이 나를 필요로 할 때, 극적인 순간포착을 놓치고 마는 경우는 허다하였다. 결과적으로 이 프로젝트 진행 중 초기의 많은 작업들은 아이들이 조용할 때 이거나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을 때 또는 정지 상태의 모습들이다.

수잔앤드류_The "Lois" series_컬러인화

수잔앤드류_The "Lois" series_컬러인화
“Lois"가 약 세 네 살(2년 반)이 되었을 때 image making에 호기심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사진을 펼쳐놓고 보고 있는 내 모습을 주시하곤 하더니 스스로 이 프로젝트의 협력자가 되어 의상, 화장, 포즈 등으로 그녀자신의 모습이 될지도 모르는 수많은 자신의 모습을 카메라 렌즈를 통해 탐험하곤 하였다. 차츰 Lois는 이 기록 작업에 매우 몰입하거나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나는 Lois가 8살(7년)이 되었을 때 이 작업이 Lois의 독립적 성장에 방해를 줄 수 있다는 염려 하에 사진 찍는 것을 자주 중지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 프로젝트가 다시 제자리를 잡게 되었고 우리의 공유된 작업은 그녀의 독립적인 사생활을 보장하는 한에서 지속되고 있다. ■ 수잔앤드류

수잔앤드류_The "Lois" series_컬러인화

수잔앤드류_The "Lois" series_컬러인화
Susan Andrews는 1992년 The Royal college of Art 졸업 후 사진작가, 전시기획자로 왕성한 활동 중이다. 현재는 Sir John Cass School of Art, Media and Design 과에서 전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St. Martins, Kingston University, London College of Printing 외 여러 학교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초기 그녀의 작업은 특수기법을 이용한 “still life" 에 열중하여 이 방면에 두각을 나타내어 이미 많은 작품들이 출판되기도 하였으나 최근에는 정체성과 기억, 인식의 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

수잔앤드류_The "Lois" series_컬러인화
이번 전시를 통해 보여주는 The "Lois"series 중의 4개 작품은 Kobal/Schweppes Awards 수상작으로 이미 영국의 National Portrait Gallery에서 전시되고 있으며 또한 Phaidon book의 ‘가족’ 사진작가 부분에 수록되었다. 이 외에도 그녀의 작업과 관련하여 사회적 촛점에 맞춘 대담 프로그램을 통해 그녀의 작가적 입지를 높이고 있으며 Broomsbury 출판사와 Guardian 신문사는 ‘어린 시절’ (Childhood) 책을 만들기 위해 이미 Lois 프로젝트를 결정하였다. 그녀의 작업은 Royal College of Art 대학원생 연구발표에서도 여러 차례 언급되고 있으며 10월엔 일본초청으로 그녀의 작업을 선보일 예정이다.

수잔앤드류_The "Lois" series_컬러인화
Susan은 기획자로서도 주목받고 있다. 최근에 그녀가 기획한 ‘Shifting Perspectives"(2003년 기획)는 다운증후군에 걸린 이들에게 보내지는 그릇된 편견과 태도에 대해 대중과 맞서려는 의도의 도전적인 전시였는데 이 전시는 영국의 매스컴을 뜨겁게 했으며 지금까지 순회 전시 중에 있고 7월에는 런던에서 Oxo Tower Gallery에서 전시 할 예정이다. ● Susan Andrews의 서울전시는 사진 계에 또 하나의 새로운 시각과 과제를 던져주는 뜻 깊은 전시라 할 수 있다. ■ 갤러리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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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의 꿈
Visions of the Body 2005展
2005_0615 ▶ 2005_0731

오다니 모토히코_Rompers_비디오 설치_2003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서울시립미술관 홈페이지로 갑니다.
장 폴 고티에_비비안 웨스트우드_크리스찬 라크루아_헬무트 랭_알렉산더 맥퀸(지방시)
존 갈리아노(크리스찬 디올)_톰포드(구찌/이브생 로랑 · 리브고쉬)_마르탱 마르지엘라_피에르 가르댕
야마모토 요지_미야케 잇세이_돌체&가바나_파코 라반_마우리치오 갈란테_다카하시 준(언더커버)
가와쿠보 레이(콤므 데 가르송)_와타나베 준야_빅터&롤프_다키자와 나오키(잇세이 미야케)_츠키오카 아야
오야 히로아키(아스트로보이 바이 오야)_마키 히로시게(고무)_N 로드리게스_후세인 살라얀
아제딘 알라이아_티에리 뮈글레르_월터 반_베이런동크(W.&L.T.)_히비노 코즈에_마루야마 케이타
아라카와 신이치로_안도 후쿠코_이시구로 노조미_패션 오브제
울프캉 틸만스_신디 셔먼_야나 스터박_야나기 미와_큐피큐피_이네스 반 램스위르드
고마츠바라 미도리_오다니 모토히코_다카미네 타다스_이불_이형구_최규
머스 커닝햄 댄스 컴퍼니(가와쿠보 레이의 무대와 의상디자인에 의한 댄스 스테이지 기록)_미술품
전시기획_후카이 아키코_코모토 신지_박파랑
전시디자인_인나미 히로시(건축가)_최욱(건축가)
주최_서울시립미술관_한국국제교류재단_일본국제교류기금_교토복식문화연구재단
협찬_JAL_신영와코루_와코루
서울시립미술관 본관 1층
서울 중구 서소문동 37번지
Tel. 02_2124_8947
www.seoulmoa.org
Visions of the Body 2005_신체의 꿈展 ● 패션은 과연 예술인가? ○ 오늘날 문화·예술 각 장르간의 경계가 허물어진지 오래이며_또한 각 개별 장르를 규정하는 개념 또한 다양한 문화·사상적 층위를 바탕으로 한 여러 실험적인 시도를 통해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왔다. 패션과 미술은 거의 100년에 이르는 시간 동안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조형상의 공명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거기에 걸맞는 심도 있는 접근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1990년대 중반 이후에서야 본격적으로 전시의 형태를 빌어 미술과 패션의 접목을 매개로 한 시도들이 있어왔는데_그러나 이들 전시 대부분이 조형예술과 패션의 시각적·조형적 유사성에 집중되어 있는 다소 표피적인 접근에 머물렀다는 것이 사실이다. 현대의 ‘신체’를 둘러싼 사고의 지형도(地形圖)로서 이 전시가 지니는 의미는 21세기 현재를 살아가는 당면문제로서 ‘신체’라는 화두를 통해 미술과 패션이라는 개별 장르간의 공유가능성이 있는 심층적인 토론의 진상을 찾으려는 점일 것이다.

이불_Untitled_혼합재료_115×88×71cm_2003

이불_Untitled_혼합재료_115×88×71cm_2003
패션과 현대미술_그리고 신체 ● Visions of the Body 2005_신체의 꿈展은 패션과 현대미술의 공유 가능한 토론의 장으로서 ‘신체’를 둘러싼 여러 담론에 관한 전시이다. 이 전시는 패션과 현대미술을 통해서 90년대 이후 우리가 직면했던 주요한 이슈 중 하나였던 신체의식의 변화나 붕괴, 그리고 그 미래의 전망에 대한 일종의 문화사적 접근으로, 1999년 교토국립근대미술관에서 라는 제목으로 만들어진 전시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이 전시는 20세기의 패션을 ‘신체’라는 관점에서 해석하고, 패션 디자이너의 실험적인 작업과 미술가의 작품을 대치시킴으로써 미래의 패션과 신체와의 관계를 전망했던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제 세기가 바뀌고 우리가 살고 있는 2000년대는 90년대와는 다른 혹은 그 연장선상에서 신체에 대한 새로운 담론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으며, 이번 전시는 바로 그 연장선에 존재하는 발전적 단계의 예시이다. ● 따라서 이 전시는 90년대 이후 급변하는 패션 및 미술 동향을 반영하여 매우 새로운 내용으로 기획, 구성되었다. 국경을 초월한 컴퓨터 네트워크의 성립, 장기이식과 유전자공학의 발전 등 우리의 신체를 둘러싼 환경은 크게 동요하고 있으며, 신체에 관련된 현상이 사회현상으로 부각된 지금의 현실은 현대사회에서 '신체'나 '신체관'에 변화가 일어난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패션과 신체의 관계, 여성이 추구하여 온 이상적인 미에 대하여 또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최규_Dress design for social women 1, 2_72×50cm×2_2004_왼쪽
최규_Dress design for religious women_82×60cm_2004_가운데

최규_전시장 풍경

최규_Pink, purple & green dress for lonely women_92×70cm_2004
Visions of the body 2005_신체의 꿈 ● 이를 위해 展의 기획단계서 부터 한·일 양측의 공동기획 및 조사를 통해 2000년대에 맞게 전시방향이 수정되고 더불어 한국과 일본의 현대미술 작가들이 새롭게 편입되거나 보강되었다. 한국 작가의 선정은 우선, 제도로서의 피복 혹은 신체를 비평적으로 검증하고 있는 작가, 둘째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신체의 위기를 자각하면서 ‘신체개조’ 또는 ‘신체변이(變異)’를 생각하고 있는 작가, 셋째 실존의 문제로서 패션을 외부세계나 타자와의 소통 통로로서 생각하고 있는 작가 등의 측면에서 고려되었고 이불, 이형구, 최규가 선정되었다. ● 오늘날 패션(피복)이 그러하듯이 우리의 몸 또한 더 이상 우리 주체의 마지막 보루가 아니라 한낱 미디어에 의해 조작된 꿈을 가탁하는 대상으로 전락되어간다. 보통 사람의 일상에까지 침투한 성형수술과 다이어트 산업이 인간의 욕망을 기생삼아 국가와 인종을 초월한 거대한 산업이 되 버린 지금, 우리의 신체는 소비사회의 욕망을 환기시키는 허상의 직접적인 제물로 등장하게 되었다. 다만 90년대와 다른 점이 있다면 여성에게 강요되었던 이 허상의 조건이 이제 성역할이나 연령, 계층, 인종을 초월해 보편적인 정서와 시스템으로 자리 잡았다는 점일 것이다. 우리가 착용하는 물건인 패션 이상으로 우리의 신체는 물건화(物件化)되었고, 이러한 현상 너머로 존재하는 심층적 근저에 대한 다양한 접근과 시각을 이들 작가의 작품을 통해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마우리치오 갈란테_Dress / Spring&Summer_1992

가와쿠보 레이_Sweater, Skirt / Autumn&Winter_1995

아라카와 신이치로_Dress / Autumn&Winter 1999

돌체&가바나_Shirt, Skirt / Spring&Summer 2004
전시장 디자인 ● 패션과 현대미술을 관통하는 공유점을 찾으려는 시도인 이번 전시의 성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서 전시장 설계는 건축가 인나미 히로시(Innami Hiroshi)와 최욱에게 맡겨졌다. 전시장 디자인의 기본 컨셉은 패션쇼 장(場)에 대한 "역 발상"에서 비롯되었다. 인간의 신체에 대한 가장 이상적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왜곡된 형식을 목격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한 패션쇼 장. 패션의 지향점을 맞추기 위해 조형(造形)되어진 육체를 지닌 모델들이 중앙에 위치한 무대에 등장하고 이를 관객이 지켜보는 것이 패션쇼장이라면, 이번 전시는 이 두 관계가 뒤바뀐 형식 즉 관객의 위치였던 주변부로 물러난 패션과 현대미술작품을 관객이 메인 통로를 이동하면서 감상하는 방식을 취하게 된다. 즉 관객 스스로가 모델이 되어 전시장 내부를 캣 워킹 하는 셈인데, 뒤바뀐 의복과 신체의 관계를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이기도 하다. 따라서 내부는 이러한 쇼 장의 형태를 응용한 길게 뻗은 통로와 각기 작품들을 위한 건축화 된 방으로 형성되며, 전시장 벽면은 흑색과 백색을 주조색으로 활용하여 각 작품의 볼륨감과 조형적 특징을 강조하고 있다. ● 개인적으로 문화·예술 각 장르의 경계를 뛰어넘어 혼합적인 형태와 양식을 도출해내는 실험적인 시도들이야말로 앞으로의 현대미술의 다양성을 보증하는 지표라고 여기며, 더불어 각 장르의 형식적, 내용적 특성들이 통합적으로 구축되어진 전시형식이야말로 앞으로 미술계가 다양한 시도를 통해 풀어야 할 숙제라고 믿는다.

Corset_1880s

마우리치오 갈란테_Dress / Spring&Summer_1992

가와쿠보 레이_Dress / Spring&Summer_1997

이시구로 노조미_Jacket, Top, Pants and "GOMI-stole" / Spring&Summer_2004
끝으로 이번 전시가 가능했던 것은 일본의 대표적인 패션 연구기관인 교토 복식문화연구재단(KCI)의 수준 높은 양질의 컬렉션과 이를 뒷받침한 인적·지적 자원, 그리고 일본국제교류기금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의상이 단순히 복식사라는 틀을 넘어 신체에 부가된 조형성과 예술성, 이 양자의 관계가 다양한 영역과 관계하는 가능성을 탐구하는 전문 기관의 존재와 그 인프라의 저력이 이 양질의 전시를 가능케 한 진정한 원동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이번 전시에 출품되는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의 수준 높은 컬렉션과 일본과 한국, 그리고 다른 국적의 실험적인 작가들에 의해 제작된 현대미술 작품을 통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신인류의 ‘신체’에 대한 다양한 진단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전시가 문화영역간의 다양한 접점을 찾아내고 더 나아가 한일 양국의 소통의 한 지점으로써 앞으로 지속될 양국 간의 교류의 질을 한층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 박파랑
■ Visions of the Body 2005_신체의 꿈展 전시구성
I. 프롤로그:만들어진 신체 ● 외피인 피복에 예속된 신체, 그로 인해 형태가 만들어지는 신체와 그에 이용된 코르셋, 크리놀린, 버슬 등이 도입부에 전시된다.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은 남성의 사회적 역할을 나타내는 도구로 표상되었고, 따라서 여성들이 착용하는 의상의 기능은 신체와 관련된 것이라기보다는 사회와 관련된 즉 여성의 사회적 역할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이 시대의 미의식을 표현하는 패션을 완벽하게 소화해내기 위해 여성은 코르셋 등의 속옷으로 스스로의 신체를 조형해왔다. 「프롤로그」에서 미술가 야나 스터박(Jana Sterbak)이 크리놀린으로 제작한 작품 「리모트 콘트롤1」(1989)을 전시한 이유는 이 작품들이 패션사에 내포된 성(性)차에 의한 역할분담을 언급하면서, 그 틀 자체는 현대에 와서도 변화하지 않은 게 아니냐는 역설적인 의문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II. 본편:신체와 패션의 새로운 위상 ● 1906년 폴 포와레(Paul Poiret)가「코르셋 포기」를 선언한 이후 전개되었던 20세기 패션의 다채로운 양상이 소개된다. 코르셋으로 교정되지 않은 자연 상태의 신체, 즉 ‘과장되지 않은 신체’를 구가하여 신체 재발견의 시대로 정의되는 20세기의 패션 디자인은 전에 없는 조형적 자유를 획득하게 된다. 이 시대는 새로운 소재의 도입, 재단 및 봉제 기술의 진보, 타 분야로부터의 영감 등을 통해 패션사에 있어 가장 화려하고 다채로운 조형 실험에 도전했던 시대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신체보다 피복(패션)이 우월하다는 상황을 낳게 된다. 마치 인간의 육체가 조형 미술품과 같이 취급되어 아름다운 패션을 착용하기 위해, 이에 상응하는 이상적인 신체를 획득하고자 하는 또 다른 억압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이 갖는 강렬한 소망, 즉 신체 자체의 변이(mutation)에 관한 갈망은 누가 지지한 것인가? 여성인가, 남성인가 아니면 양자의 암묵에 의한 공범 관계인가? ● 이에 따라 패션의 과격해진 신체표현은 피부 자체도 표피로서 패션이 될 수 있다는 인식 아래에, 공들인 혹은 의도적으로 자연스럽게 한 화장, 문신, 피어스, 스킨케어 까지도 패션의 소재로서 인식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러한 동향은 ‘피부’와 관련하여 파생되는 문제, 즉 인종적인 편견과 성(性)차, 타인과의 경계와 같이 「차이를 의식하는 것은 피부와 관련 있다」는 다소 심오한 사회·정치적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1980년대 이후 일부 디자이너들이 신체 및 피부의 차이, 성차 등에 대한 사회적·미학적 문제를 검증하게 되는데, 그 결과 그간 디자이너들이 믿어 의심치 않았던 ‘제도로서의 패션 시스템’에 대한 회의를 낳게 된다. 소수의 디자이너들의 이러한 의식 형성에는 1990년대 현대 미술 동향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즉 패션 시스템 자체를 상대화하고, 비평적인 시선을 쏟는 일련의 활동은 현대 미술에 있어서 ‘포스트 모더니즘’의 실천과 중복되는 면이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패션과 미술이 처음으로 대등하게 소통할 수 있는 장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 패션에 있어 포스트모던의 시초는 콤므 데 갸르송의 「거지풍(Beggar Look, 파리컬렉션 1983년 봄-여름시즌)」에서 비롯되었다고 여겨지며, 1980년대 말에 얼룩진 봉제인형이나 낡은 천 조각을 이어 붙인 오브제를 발표하여 룸펜 아티스트로서 주목받은 마이크 켈리(Mike
Kelley)가 상당히 선행적으로 활동했다는 점 또한 흥미롭다.
III. 에필로그:이미지로서의 패션 ● 물리적인 사물로서의 의복이 소개되는 대신, 옥외에서 자연조건과 곰팡이 침식에 의해 붕괴되어 가는 신체와 패션을 표현한 마르탱 마르지엘라의 설치작업 기록(1999년, 교토)과, 크로마키 블루 기법을 구사하여 피복의 색이나 패턴이 소재 고유의 것이 아닌 자의적인 것임을 알게 해 준 빅터&롤프의 충격적인 패션 쇼 영상(파리컬렉션 2002년 가을-겨울)으로 전시가 매듭지어진다. ● 마르지엘라의 작품은 패션이 물질성을 넘어선 담론의 영역이라는 점을, 빅터&롤프는 의복으로부터 물질성을 박탈하여 다양한 이미지의 관련항이 존재한다는 점을 일깨워 주고 있는데, 두 작품 모두 패션이 인간의 이미지 생성 및 재현의 위상에 있음을 자각한 것이다. 이러한 이미지 및 표상의 위상이야말로, 패션과 미술이 대등하게 대화할 수 있는 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Visions of the Body 2005_신체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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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소리
빛과 소리의 아시아展
2005_0706 ▶ 2005_0719

김수남_인도네시아 발리의 가믈란에 등장하는 쟁쟁 악기 연주_컬러인화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인사아트센터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5_0706_수요일_05:00pm
김수남_최상일
인사아트센터 4, 5층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Tel. 02_736_1020
www.ganaart.com
빛과 소리의 아시아 ● 30년 동안 사라져가는 굿과 문화를 기록해 온 사진가 김수남, 그리고 15년 동안 사라져가는 소리를 기록해 온 최상일 PD, 이 두 사람이 만나 ‘빛과 소리의 아시아’라는 아시아 소리를 주제로 전시회를 연다. 사진가 김수남은 일찍이 1970년대부터 시작, 방대한 한국의 굿 기록 작업을 마친 후 18년째 아시아 일대를 누비면서 현지의 문화를 기록하고 있는 문화 전문 다큐멘터리 사진가이다. 한국의 굿에 관한 김수남의 사진집들은 이미 국내 인류학 분야의 고전으로 되어 있지만, 아시아인들의 삶과 문화에 관해서도 이미 그 경험의 폭과 이해의 깊이를 더해가고 있음을 그의 아시아에관한 많은 책과 사진들을 통해 느낄 수 있다. ● 문화방송 라디오의 현역 PD인 최상일은 15년 전부터 사라져가는 구전민요를 수집하여 100장이 넘는 CD와 9권의 자료집을 만들어낸 바 있으며, 최근에는 북한의 민요자료를 입수하여 음반으로 출간하고 민요에 관한 남북학술회의를 개최하기도 한 민요전문 PD이다. 그는 10여 년 전부터 이 분야의 선배인 김수남과 교류하면서 아시아 전통문화의 가치를 깨닫게 되어 작년 한 해 동안 아시아 4개국을 돌며 민요와 민속음악을 수집했다..

김수남_인도네시아 발리의 여러 모습_컬러인화

김수남_중국 동족의 설날 루셩 악대_컬러인화
아시아는 우리가 속한 대륙으로서 아시아의 모든 나라들은 우리와 어울려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의 이웃이다. 이미 우리 곁에는 적지 않은 아시아 사람들이 들어와 함께 살고 있으며, 시간이 갈수록 아시아 민족간의 교류와 협력은 커져만 갈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의 아시아에 대한 인식의 폭과 깊이는 해외여행이 자유로워진지 여러해가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매우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서양 문화에 대한 관심과 지식에 비추어 보면 아시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이제 막 싹트기 시작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 아시아는 지구촌에서 가장 많은 인구와 가장 많은 민족이 살고 있는 대륙으로서, 국제사회에서의 경제적 또는 외교적 중요성 뿐 아니라, 인류 전통문화의 보물창고로서 중요하게 인식되는 곳이다. 아시아에는 특히 산악지대와 섬이 많아 그 곳에서 수많은 민족들이 외래문화에 영향을 크게 받지 않고 민족의 정체성을 간직하고 살고 있다. 바로 이것이 사진가 김수남과 PD 최상일이 아시아를 유난히 주목하는 이유이다.

김수남_타이 북부 아카족의 설날에는 브어청을 연주한다_컬러인화

김수남_인도네시아 또라자족의 악기 뽐빵_컬러인화
이번 전시회에서 김수남은 중국, 일본, 인도, 미얀마,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8개국 11개 문화권의 전통음악을 중심으로 춤과 의례 환경에 관한 사진을 무려 726 장이나 전시한다. 이번 사진들은 특히 ‘소리’를 주제로 한 것들이다. 전통음악은 굿과 의례에 못지않게 그 민족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소재로서, 관람객들은 사진만으로도 음악을 듣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주제를 더욱 살리기 위해 전시장에서는 최상일 PD가 마련한 아시아의 소리가 지속적으로 흘러나오도록 할 계획이다. ● 최상일 PD는 작년도에 특집 프로그램을 위해서 다녀온 몽골, 중국 서남부, 우즈베키스탄, 라다크의 민요와 민속악기 연주를 소리와 동영상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사진전시관 옆에 별도의 아담한 시청 공간을 마련했다. 최PD는 민요전문가답게 아시아에서도 전문 소리꾼들이 아닌 일반인들이 생활 속에서 부르는 소박한 노래와 악기연주를 주로 담아왔다. 국내에도 아시아의 전통음악을 담은 음반이 꽤 많이 나와 있지만, 토속민요가 담긴 음반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 사진가 김수남과 PD 최상일의 합동 전시회는 ‘아시아의 소리’라는 큰 주제 아래 사진과 음악의 만남, 빛과 소리의 만남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적용한 전시회이다. 상식적으로 보면 사진과 소리의 만남은 동영상(비디오)이 되어야 하지만, 동영상의 지나친 사실성과 일회성은 이질적인 문화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데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김수남_일본의 마츠리나 가구라에서는 큰북, 작은북 등이 주요 악기로 사용된다_컬러인화

김수남_인도 라다크 사원인 꼼빠에서는 일년에 한 번 챰 축제가 벌어진다_컬러인화
우리의 대륙 아시아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이웃 나라 민족들과 공존해야 할 필요성이 날로 커져가는 오늘날, 김수남-최상일의 ‘빛과 소리의 아시아’ 전시회는 전시장을 찾는 관객들에게 아시아에 관한 괜찮은 볼거리와 들을 거리를 함께 제공하며 아시아를 다시 생각하게 하 는 흔치 않은 전시회가 될 것이다. 이번 전시회는 문예진흥원이 주관하고 있는 ‘2005 국악축전’의 일환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 인사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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