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편협할 수 있는 이야기다만. 이것이 가장 노순택님 스러운
사진과 글이 아닐까 싶다. 아름답지 않은가. 본인은 물론
그것만이 아니라 하겠지만. .' ) + + +
대추리의 검은 십자가[노순택의 사진 한 장, 생각 잠깐 01]
대추리·도두리의 늙은 예수님들
 ⓒ 노순택
그에게는 늘 별명이 따라붙었다.
별명들은, 한
사람에게 붙인 것치고는 사뭇 달랐다. 크게는 두 패로 나뉘었다. 그를 공격하려는 수식어와 그에게 존경을 보내는 수식어.
'불순세력을
조종하는 수괴' 따위의 시대착오적 전문용어를 언론 지면에서 발견했다면, 이는 그에 관한 기사일 가능성이 짙다. 그는 자신에게 새겨진
'주홍글씨'를 30년이 넘도록 떼지 않고 있다. 아니, 주홍글씨는 그것을 새긴 자들이 떼어내야 할 것인데, 그들은 붉은 딱지를 붙일 줄이나 알지
떼어낼 줄은 모르는 자들이다. 힘 있는 자들에게 그는 늘 요시찰 대상이었다. 위험한 인물이었다. 다소곳함이라고는 없는 '불순'한
자였다.
그를 따라다니는 대한민국 정부 공식기록.
전두환 사령관을 대통령으로 배출한 바 있는, 초헌법적 정부기관
'보안사'에서 작성한 블랙리스트다. (이 기록은 1990년 보안사에서 군복무 중이던 윤석양씨의 양심선언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기록의 요점은
이렇다.
"카드번호 169번. 전북지역 대표적 문제인물. 외고집에 타협할 줄 모르는 성격. 반항적이지만 신도들로부터 존경받음.
저돌적 성격으로 '깡패신부'라 불리움. 1976. 12. 29 ∼ 1977. 12. 31 대통령 긴급조치위반. 불순구호
제창…."
문정현
검고 거친 얼굴에서, 그에게 휴식이 필요함을 단박에 알아챌 수 있다. 올해 칠순을 맞는
늙은 육신. 과거의 인물이어야 할 그가, 당대의 한복판에서 처절하게 뛰고 있다. 그는 왜 쉬지 않는가.
1975년, 사형판결이 난
지 하루도 못돼 형장의 이슬이 되었던 '인혁당 재건위' 사건 희생자들의 시신을 지키기 위해 유신정권에 맞서면서 그의 싸움은 시작됐다. 불의한
권력은 뒤탈을 없애기 위해 방금 죽인 이들을 가족에게 인계하지 않고 곧바로 화장하려 했다. 그때 운구차를 가로막고 나선 이가
문정현이었다.
"한 번 죽인 이들을, 두 번 죽여서는 안된다"며 운구차 위로 올라간 이가 그였다. 운구차에서 떨어져 남은 평생
지팡이를 쥐고 다녀야 했다.
2006년, 대한민국 법정은 인혁당 재건위 관계자들이 불의한 법집행으로 죽음에 내몰렸음을 인정했다.
감춰두었던 '과거사'의 진상이 낱낱이 드러났다. 31년만의 명예회복이었다.
번뜩이는 유신의 총칼 앞에서 새들마저 숨죽이고 있을
때, 사제의 양심을 저버릴 수 없어 운구차를 가로막았던 젊은 신부, 이제는 백발이 되어버린 노 신부의 작은 소원 하나가
이루어졌다.
2006년 5월 28일,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오후였다
한 시골마을에서 늙은 사제가,
그처럼 늙은 신도들 앞에서 주님의 말씀을 건네고 있다. 번듯한 교회당은 아니었다. 이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가운데 하나인 소박한 공소였다.
미군기지가 확장되면 무너져야만 하는 운명의 장소, 평택 팽성읍 대추리였다.
예수께서 부활해 7주
만에 승천하신 까닭은 무엇일까요. 왜 예수님은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업신여기지 않고 보듬어 안았을까요. 모두들 죽음이 무섭다고
합니다. 할머니, 죽음이 무서운가요. 세상에, 죽지 않는 사람이 있던가요. 어쩌면 우리는 죽기 위해 태어나는지도
모릅니다.
어차피 죽을 목숨이기에 더 깨끗하게 살아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엊그제 국방부에서 용역깡패와 포크레인을 앞세워
대추분교를 부수고, 논밭을 파헤치는 걸 보면서 우리 모두 울었습니다. 하… 이걸 어찌해야 하나, 이 시련을 어찌해야 하나….
요즘은
익산에 있는 성당에도 통 내려가 보질 못했네요. 그곳 일도 봐야 하는데, 이 늙은이를 지명수배한다 어쩐다 말이 많고, 또 언제 저놈들이 다시
쳐들어오나 싶어 옴짝달싹할 수가 있어야지요. 저는 그냥 대추리를 교회로 삼으려고 합니다. 생명의 땅을 지키려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예수님으로
삼으렵니다.
두런두런 늙은이들끼리 주님의 말씀을 나눈다. 주님의 몸을 나누어 먹고, 서로의 평화를 빈다. 그는 2년째
대추리에서 살고 있다. 대추리, 도두리의 늙은 예수님들이 그를 불렀다. 주름지고 까맣게 그을린 예수님들을 따라, 그의 얼굴도 새까맣게 탔다.
그들 모두는 대추리의 검은 십자가였다.
미사가 끝나고, 늙은 사제는 훌러덩 미사복을 벗었다. 그와 동시에 늙은 사제는, 대추리
주민으로 돌아왔다. 이웃들이 반갑게 그를 맞았다.
이런 그를, 어떤 자들은 '불순세력을 배후조종하는 수괴'라고 부르고
있다.
삼십일년 만에,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진실은 밝혀졌다. 참기 힘든 시간이었다. '대추리의 진실'마저 그처럼 오래
감춰둘 수 있을까. 대추리 공소의 시계는 멈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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