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완(愛玩)
함진 개인展
2004_0828 ▶ 2004_0921
함진_애완(愛玩)_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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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4_0828_토요일_06:00pmNoise Performance_DJ Doskoi Panda 2004_0828_토요일_06:30pm
pkm 갤러리 서울 종로구 화동 137-1번지 Tel. 02_734_9467
1978년도 생의 젊은 작가 함진은 박제된 작은 곤충이나, 음식 쓰레기, 손톱, 각질 등 신체의 작은 파편들을 캐릭터화한 자신의 독창적인 미니어처 작업으로 일찍이 미술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이미 광주 비엔날레를 비롯한 유수의 국내외 전시를 통해 자신의 독특한 작업 세계를 구축한 함진은 이번 피케이엠 갤러리에서의 개인전을 위해 처음으로 미니어처 조각 작품만이 아닌 드로잉과 사진을 포함한 다양한 매체의 작업 시리즈를 보여주게 된다.

함진_애완(愛玩)_2004
피케이엠 갤러리에서 처음 선보이게 될 함진의 최신 작업 시리즈 "애완"은 현대 사회에서 그 존재가 점점 폐소공포적이며 편집증적으로 변해 가는 인간형태에 대한 함진의 그로테스크한 풍자를 넘어, 애완(愛玩)이라는 단어가 함축하고 있는 '사랑하며 놀다'라는 개념을 이율배반적으로 사용함으로써 현대인들의 고립이 자신도 모르는 새에 마치 우리 안에 갇힌 애완동물과 같이 변해버린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함진_애완(愛玩)_2004
함진의 작업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놀이'라는 주제는 그에게 있어 작품을 만든다는 행위란 즉 치유적인 의미의 놀이이기 때문이기도 한데, 이는 현대에 이르러 과부하 되어 버린 예술의 아우라를 그 원초적 의미인 놀이, 유희, 주술적 행위로 되돌리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다. 현대미술의 궤도가 더욱 큰 사이즈의 작품 형태를 향해가고 있는 시점에서 이와는 정반대의 방식으로 작업을 행하는 함진의 '마이크로-코스믹'한 작품 세계는, 과연 현대인은 어떤 놀이를 통해 자신과 고독하게 '사랑하며 놀고' 있는 지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 믿는다. ■ pkm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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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들.....
민병헌 사진展
2004_0904 ▶ 2004_1016

민병헌_숲_흑백인화__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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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4_0904_토요일_05:00pm
한미사진미술관
서울 송파구 방이동 45 한미타워 20층
Tel. 02_418_1315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지난 겨울을 지내면서 작업한 「풍경」사진들을 선보인다. 기존에 「잡초」, 「Flow」, 「누드」 등 한 주제를 가지고 전시했던 경우와는 달리, 이 번 전시에서는 다양한 풍경의 모습들을 한데 모았다. ● 전시작품 중, 비닐 하우스 옆에 자라나는 잡초들의 모습은 전작인 「잡초」 시리즈에 비해 자유로운 선의 느낌이 더욱 강조되어 추상 회화와 같은 느낌을 강하게 풍긴다. 또한 3점의 연작으로 전시될 나무를 찍은 사진 작품은 겨울에 눈이 얹혀져 있는 나무 가지의 모습에서 봄에 화사하게 만개한 벚꽃의 풍경까지 계절이 지나면서 변화한 모습을 담고 있다. 이러한 풍경 사진들은 인화지의 특성으로 인해 느껴지는 미묘한 질감과 풍부한 톤으로 처리된 디테일한 부분까지 작가의 철저한 계산 속에서 나온 결과물임에도 불구하고, 순수한 자연스러움으로 인해 오랜 시간 보는 이의 눈길을 붙잡아 둔다.

민병헌_나무_흑백인화_2004
이번 전시에서도 작가는 자신 특유의 서정적인 감수성과 더불어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는 관조적인 태도를 작품을 통해 보이고 있다. 작가의 풍경은 바라보고 있는 사람 외에 다른 사람의 개입이 불가한 개인적인 공간으로 유지되고 있는 듯 하나, 곧 실경이 아닌 그림 같은 풍경으로 인해 그 개인적인 공간은 누구라도 몰입할 수 있는 공유되는 사적 공간으로 전환된다. 나무, 산, 잡초 등에서부터 한적하면서도 평화로운 시골 풍경과 남산에서 내려다보이는 도시 모습까지! 풍경이라 이름지을 수 있는 주위의 것들을 작가 특유의 감성으로 풀어낼 예정인 이번 전시에서 풍경에 대한 관조적인 작가의 사유를 고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 한미사진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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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바라보다
구본창_민병헌_배병우展
2004_0910 ▶ 2004_1003 / 월요일 휴관

구본창_Snow No.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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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이트월 갤러리 가을 사진 강좌
제1강_ 2004_0911_토요일_02:00~05:00pm_예술로서의 사진의 역사_신수진
제2강_ 2004_0918_토요일_02:00~05:00pm_사진을 살리는 글_강운구
제3강_ 2004_1002_토요일_02:00~05:00pm_예술품으로서 사진의 형식적 요소_강용석
제4강_ 2004_1009_토요일_02:00~05:00pm_현대 사진의 이해_신수진
제5강_ 2004_1016_토요일_02:00~05:00pm_해외 미술품 시장과 한국 사진가_구본창
제6강_ 2004_1023_토요일_02:00~05:00pm_사진가로서의 나의 삶과 작품세계_김중만
강좌 일정_ 2004_0911~1023_매주 토요일_02:00~05:00pm
접수 및 문의_ 와이트월 갤러리 / Tel. 02_548_7520~1
수강료_ 6강좌 30만원 / 1강좌 5만원
관람시간_11:00am∼06:00pm / 관람료_2,000원
와이트월 갤러리
서울 강남구 청담동 101-5번지
Tel. 02_548_7520
한국을 대표하는 중견 사진가 3인의 근작전 ● 이 전시에 참여하는 세 사람의 사진가, 구본창, 민병헌, 배병우는 모두 1980년대에 활동을 시작한 후 약 20년 간 꾸준한 작업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왔으며, 지금도 활발한 활동을 지속하고 있어 명실 공히 한국을 대표하는 중견작가이다. 이들은 예술로서의 사진이 지금과 같은 외형으로 자리 잡도록 하는 데에 견인차 역할을 담당해왔고, 앞으로도 예술계 전반에서 사진의 위상을 변화시키는 일에 있어 결정적인 지표를 제공하는 활동을 지속할 것으로 기대된다. ● 구본창은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관심으로 일상의 대상들에게 주목해 왔다. 손안에 쥔 듯해도 시간이 지나면 손가락 사이로 스르륵 빠져나가듯 사라져 버릴 것, 누구도 주인공 삼아 주목하지 않는 하찮은 것들에 대한 애정이 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중요한 화두이다. 눈이 내리고 쌓였다가 녹아 내릴 때까지 시시각각 변화하는 장면들 가운데에서 찾아낸 흑과 백의 조화를 보여주는 「눈」시리즈와 비닐 위에 맺힌 물방울이 흘러내리면서 만들어내는 선과 점들을 특유의 아스라한 컬러 톤으로 표현한 「무제」시리즈는 모두 그의 주된 관심사가 반영된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다.

민병헌_BF001 BHM_2003
민병헌은 각별한 감수성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나타내는 사진을 만들어낸다. 그의 작품에서 보여 지는 극단적인 톤의 재현은 흑백 사진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매체 특정적인 것이며, 동시에 그만이 느끼는 자연에 대한 찬사이다. 철저하게 사진 고유의 프로세스에 충실한 방법을 이용하여 감성의 미묘한 변주를 표현해 냄으로써 누구도 흉내내기 어려운 독창적인 풍경의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숲」의 연작들에서 작가가 자의적으로 선택한 톤은 섬세한 아름다움으로 보는 이의 마음마저 흔들어 놓는다. 하늘을 배경으로 반짝이듯 하얗게 부서지는 찬란한 나뭇잎 그리고 부드럽게 번지듯 스며드는 짙은 어둠의 숲 앞에 서면, 눈길을 줄수록 다가드는 사진 속 자연이 사랑스럽다.

배병우_소나무_2002
배병우는 소나무, 오름, 산등을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프레임으로 재탄생시켜 왔다. 사진에 등장하는 대상들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그가 이해하는 한국의 자연에 대한 일종의 메타포이다. 독특한 비례의 프레임과 시점의 변화 그리고 곡선이 강조되는 구성을 통해서 자연이 지닌 다양한 상징성을 드러내온 것이다. 이 전시에서는 컬러가 더해져서 보다 극적인 역동성이 강조되고 유연한 힘이 느껴지는 「소나무」 시리즈를 만날 수 있다. 또한 새롭게 소개되는 「능선」 시리즈에서, 마치 솜털이 비죽이 올라선 듯 친근하고 다감하게 늘어선 나무들은 가로 프레임을 충분히 살려 이어나가는 완만한 곡선의 여유로움을 유감 없이 보여준다. ● 이번 전시는 세 사진가의 근작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임과 동시에 그들이 바라보는 자연에 대한 차별화된 시각을 경험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것은 단지 자연을 피사체로 선택하였다는 우연한 공통점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그들이 추구해온 사진적 관심사의 차이가 각자의 작품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엇에 주목할 것인가',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그들만의 해법을 탐색해 나가는 것이 하나의 감상 포인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가을, 튼실한 가지에 달린 열매를 대하는 마음으로 다른 듯 같고 같은 듯 다른 사진의 매력에 흠뻑 취해볼 일이다. ■ 신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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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ything in its Right Place. -박주연 개인전 -
2004/ 09/ 02 ~ 2004/ 10/ 09/
박주연의 이번 갤러리조선 전시는 작가의 탐구적이며 기록적인 작품 방향에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사소하면서도 아름다운 풍경을 더해주는 작업입니다 .
예를 들어 - 한강 주변에 사람들이 머물다 잠시 자리를 비운 돗자리와 그 주변, 공원의 벤치와 그 주위에 남겨진 물건들, 거리의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임시 구조물들(신문 판매대, 경비 초소, 주차 관리 초소 등), 잡다하게 버려진 물건 들이 모이는 거리의 각종 기둥들 - 이러한 것 들에 기록적인 목적과 심미적 제안으로 접근하는 작가의 시도입니다.
사진과 비디오 설치 등 다양한 미디엄으로 흥미롭게 접근하고 있는 작가의 이번 작업에서 작가는 다시 한번 확실하게 그가 지속적으로 탐구하는 일상에서의 물음들로 관객에게 아름답고 흥미롭게 다가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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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fotato.co.kr/webzine/news/gallery/plan/earth_travel.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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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전] The Plant Nation - 박경택 개인전 -
- 기간은 2004년 9월 15일부터 9월 25일 오후 5시 30분까지 -
박경택 개인전
2004. 9. 15 ~ 2004. 9. 25 오후 5시 30분
장소 : 덕원갤러리 4층(서울 종로구 인사동 15번지 Tel : 02-723-7771)
주관 : 정인(Communication Management)
후원 : 현대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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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춘 전
http://www.daljin.com/2004/_main/exhibition/monthly/monthly.detail.php?code=E03188&n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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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현대미술 71인전!!!
http://www.daljin.com/2004/_main/exhibition/monthly/monthly.detail.php?code=E03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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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단절
제6회 신체와 의식展
2004_0915 ▶ 2004_0921

임안나_"밤 11시 49분이다"_컬러인화_40×40cm_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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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4_0915_수요일_05:00pm
책임기획_김남진
고명근_김관대_김현숙_박찬성_방명주_안명숙_이미라_이은정
이용훈_이지연_이혁_이혜진_임안나_정소영_정영혁_조정화
후원_한국문화예술진흥원
협찬_그린아트_한국후지필름_BAT KOREA
갤러리 라메르 3층
서울 종로구 인사동 194 홍익빌딩
Tel. 02_730_5454
오늘 우리는 몸을 새롭게 바라보아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몸은 껍질이고 정신은 본성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적인 믿음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는 것 같다. 몸에 대한 억압과 지배로부터 벗어나 이제는 몸과 자아가 동일시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몸은 해방과 욕망의 상징을 넘어서 하나의 기호이자 문화적 텍스트로서 자리 잡고 있다. 단순히 생물학적 존재인 살덩어리로서의 몸(corpus)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는 근원지이자 중요한 매개체이기도 하다.

방명주_숨(breath)_디지털 프린트_60×50cm_2004

정소영_[she...]_반다잌 브라운 프린트_145×73cm_2002

고명근_body1

박찬성_women1_디지털 프린트_60×50cm_1999

조정화_은밀한 드로잉_비디오 설치_2004

이미라_34-24-36_디지털 프린트_70×80cm_2004

이은정_프랑켄슈타인_사진설치_1999~2004

이혜진_Anather Self Series_디지털 프린트_100×120cm_2004

이지연_도시의 한 가운데서_디지털 프린트_60×50cm_2004

김현숙_타락천사_디지털 프린트_60×50cm_2004

안명숙_관계(關係)_컬러인화_50×60cm

이용훈_순애보_디지털 프린트_50×75cm_2001~2004

이혁_Real Life_컬러인화_50×60cm

김관대_One night_컬러인화_50×40cm
본 전시는 몸과 몸 그리고 다른 사물들 사이의 상호 교호적인 접촉에서 비롯되는 균형성과 명료성을 소통으로 규정하고 이의 단절로 야기되는 사람들 사이의 불확실성과 모호성을 대립항으로 설정해 전시를 기획하였다. ■ 김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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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lant Nation
박경택 사진展
2004_0915 ▶ 2004_0925

박경택_The Plant Nation_컬러인화_67×200cm_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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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4_0915_수요일_05:30pm
주관_정인(communication management & publication / Tel. 02_598_5657)
기획_박혜정 / 후원_(주)현대자동차
덕원갤러리
서울 종로구 인사동 15번지
Tel. 02_723_7771
The Plant Nation―공장으로부터의 초대 ● 직설화법으로 말하자면, “이번 전시의 주인공은 바로 공장(工場)입니다.” 공장도 그냥 공장이 아니라 우리나라 산업화의 정점에 있는 바로 그 공장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공장은 낯익은 대상이면서 또한 낯선 대상이다. 우리가 아는 공장의 모습은 잠시 텔레비전에서 스쳐지나가며 본 거대한 건물, 혹은 기계들이 늘어선 획일적인 모습일 것이다. 이러한 공장의 모습은 실체라기보다는 하나의 관념에 가깝다. 이제는 우리가 관념의 틀을 벗고 실재(實在)하는 공장과 마주쳐야 할 시간이다. 여기서 ‘공장을 보여준다’와 ‘공장을 본다’는 의미를 가진다. ● 박경택 작가는「Deja-vu」에서부터 도심 한가운데서 우주인과의 조우를 보여준 「혹성탐험기(The Planet Exploration)」시리즈에 이르기까지 일관적으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의 모습을 탐구해왔다. 작가가 그간의 사진들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은 ‘우리가 사는 이곳은 과연 어떤 곳인가’하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작업을 진행 해온 작가답게 그의 시선은 현대사회를 지탱하게 해주는 공장의 내부, 그 생산의 중심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과연 ‘공장’의 내부로 어떻게 들어갈 수 있을 가를 함께 고민했을 때, 우리의 머리 속에 들어온 생각은 촬영 대상이 될 공장 역시 우리 사회에서 상징적 의미를 가진 곳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 그러한 상징성을 가지는 기업중의 하나가 바로 현대자동차였다. 현대자동차 공장을 촬영한다는 것은 단순히 공장의 산업현장을 기록한다는 의미를 넘어서 더 큰 의미―한국 산업사회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를 볼 수 있는 가능성―가 있는 것이다. 이런 미흡한 전시 기획에도 불구하고 현대자동차는 흔쾌히 공장 내부 촬영 협조와 전시에 수반되는 모든 사항을 지원해주었다. 기업의 문화지원의 새로운 모델을 보여준 결정에 감사드린다. ● 촬영은 지난 2004년 4월부터 6월에 걸쳐 현대 아산공장과 울산공장을 중심으로 이루어 졌다. 기존의 산업사진들의 방식을 벗어나 공장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는 이가 마치 자연의 풍경을 바라보듯 공장의 모습을 관조하며 천천히 음미할 수 있도록 촬영과 전시 작품의 선택에 신중을 기했다. 사실 공장은 어떤 의미로 기계들을 잉태시키는 거대한 인공의 자연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인공의 자연이 하나의 도시를 이루고 그 도시들이 거대한 나라, The Plant
Nation을 이루어 지금 우리 앞에 있다. 이번 전시가 작은 부분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처음 마주치는 공장의 실재 모습이라고 감히 말씀드린다. ● 이제 공장의 의미는 사진을 보는 당신에게로 넘어간다. ■ 박혜정

박경택_The Plant Nation_컬러인화_67×200cm_2004
생산을 엿보기: 박경택 ● Discreetly peeping into the production line ● 아직은 한국에는 산업사진은 없다. 최소한 작가적 수준에서 실행되는 사진으로서는 말이다. 그리고 산업사진을 원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 사람들은 그저 주관적 감수성으로 가득 찬 작가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사진(사실 그런 사진은 지구상에 없다. 내면성을 얘기하는 평론가들은 언젠가는 혼이 날 것이다)에서 뭔가 잡힐 듯 말 듯한 아우라(한국 사진계에서 말하는 아우라의 개념은 몽땅 틀렸다. 따라서 무책임하게 자신의 무식을 의식하지 못하고 아우라니 풍크툼이니 떠드는 자들도 언젠가는 혼날 것이다)를 찾는데 만족하고 있기 때문이다. ● 그렇다고 산업적인 소재를 찍은 사진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공장에서, 사업장에서, 공사장에서 많은 사진들이 찍혔으나 그것은 그저 현장 관리자가 똑딱이 카메라로 어설프게 찍은 사진일 뿐, 제대로 된 기록을 남겨서 후세에 전하겠다거나, 자신이 이루어낸 훌륭한 업적에 대한 자부심을 제대로 표현해 보겠다는 의지의 산물도 아니다. 그냥 되는 데로 사진일 뿐이다. 그리고 기업들은 그런 사진자료를 공개하는 것을 무척이나 꺼리고 있다. 자신들의 치부가 드러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사진 좀 잘 찍어둘 것이지. ● 또 다른 면에서 산업사진이 있기는 하다. 기업이 제대로 된 작가에게 맡겨서 찍는 경우이다. 그러나 이때의 산업사진이라는 것이 고등학교 때 우등생이 어떤 과목이건 무조건 잘 해서 전과목 백점을 맞듯이, 인물도 찍고 풍경도 찍고 내면도 찍고 패션도 찍고 예술도 찍고 다큐멘타리도 찍는 사진가가 그저 기본내공을 발휘해서 찍은 적당한 사진일 뿐이다. 기업의 선전용 브로슈어에 실리는 그런 사진들은 흠 잡을 데 없는 완성도를 가지고 있으나 그렇다고 숨을 멎게 할 만큼의 그 ‘무엇’도 들어 있지 않다. 그냥 적당할 뿐이다. 적당하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작품으로서의 사진에 요구되는 절실한 애정이 없다는 것이다. 하긴 삭막한 철판이나 콘크리트더미에 애정을 가진 사진가가 얼마나 되겠는가.

박경택_The Plant Nation_컬러인화_67×200cm_2004
그런데 요즘 들어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어떤 수주나 부탁도 받지 않았는데 산업시설을 찾아서 철과 콘크리트와 소음과 속도에 매료되어 사진을 찍는 작가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고 있으니 박경택도 그 중에 하나이다. 사실 그런 사진가들이 나올 때가 훨씬 지났고, 서구에서는 1920년대에 기계시대의 미학이 나온 이래 이제는 그런 미학은 잊혀져 버린 미학이 되고 말았는데, 한국에서는 2004년도에 와서야 그런 미학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런 미학이 나오게 된 이유를 나름대로 짐작해 보자면, 아마 다음의 이유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 우선, 기계의 아름다움에 눈뜨게 되었다. 기계는 아름답다. 잘 만든 기계는 특히 아름답다. 고전음악을 모르는 사람에게 말러의 5번 교향곡은 58분 동안의 고문일 뿐인 것처럼, 기계의 미학에 대한 취향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에게 기계의 아름다움은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다. 따라서 이 글을 읽는 독자께서 기계의 미학이 뭔지 모르겠다면 그것이 스스로에게 찾아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이 사진들을 다시 보거나 이 글을 다시 읽기를 권하고 싶다. 왜냐면 필자에게 기계의 미학은 유행처럼 갑자기 다가온 것이 아니라 모형비행기를 만들던 국민학교 때부터 찾아온 것이고, 따라서 30년 이상 된 취미(미학에서 말하는 취미(taste)를 일컬음. 우표수집 같은 여가로서의 취미(hobby)를 말 하는 것이 아님)이기 때문이다. 잘 만든 기계를 보고 싶으면 포뮬라1 경주용 차의 엔진을 들여다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 기계는 오로지 빨리 달려야 한다는 무식한 목적을 위해, 대량생산되지 않는 특수한 기계이고, 오랜 세월 동안 스피드에 미친 광인들의 광기가 집약되어 공학과 경제를 초월하여 다듬어진 것이므로, 대단히 독특한 외양을 띠고 있다. 열처리의 결과로 표면이 심난한 무지개색을 띠며 뱀처럼 또아리를 틀고 있는 포뮬러1 차의 배기관을 보면 기계가 아니라 살아 있는 괴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 가지 아쉬움이라면 우리나라에서 포뮬라1 차를 볼 기회가 없다는 것이다. 유럽에 갈 기회가 있는 분이라면 자동차 박물관 같은데 가서 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런 기계의 미학이 사진가를 붙잡은 것이다. ● 둘째로, 사진가들이 기존 예술사진의 수사와 어법에 지쳤다. 아직도 한국에서 예술사진 하면 내면성, 주관성, 표현성하는 말들을 들고 나오는데, 이 용어들은 사진 이외의 시각예술의 영역에서는 이미 수십년 전에 자살한 용어들인데, 사진에서는
이런 말들이 아직 살아서 걸어 다니는 좀비의 왕국이다. 그런데 이들 용어들에는 아무 잘못이 없다. 멍키 스패너로 사람을 때려 죽였다고 멍키 스패너를 처벌하지 않듯이, 이들 용어들에는 아무 잘못이 없는 것이다. 문제는 멍키 스패너를 휘둘러서 다른 사람을 헤치는 바로 그 사람이다. 그러나 그런 이들은 용어가 자살하면 따라서 자살 할 것이므로 성급한 퇴진을 권하고 싶지는 않다. ● 정말 문제는 한국의 예술사진이 진짜로 내면성이나 주관성에 대한 성찰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면성이나 주관성 “같이” 보이는 분위기를 모방할 뿐이며, 그를 위하여 클리셰라는 전략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즉, 예술이 아니라 상투성에 매달리고 있는 가짜라는 것이다. 클리셰는 예술의 적이다. 어둠컴컴하면 내면성, 흔들리면 주관성, 뒤섞어 놓으면 표현성하는 식으로 말이다. 젊은 사진가들이 한심한 취미의 국도변의 러브호텔이나 모텔방의 저속하고 비열한 칼라에 초점을 맞추고, 삭막한 콘크리트 공사판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이유가 기존 예술사진에서 나는 썩은 냄새에 염증을 느껴서라는 점은 자명하다. 흔들리고 어둡고 시간과 기억의 편린을 뒤쫓아 유년기를 헤매다 아우라를 만나고 풍크툼에 몸이 시린 사진을 젊은 사진가들은 참을 수가 없는 것이다. 오늘날 동양화나 서예를 한다고 하면 패러디가 아니고서는 하기가 힘들 듯이, 이런 류의 예술사진을 하려고 하면 패러디라는 골목대장에게 어느 정도의 헌금은 바치고 지나가야 할 것 같다. 그게 싫으면 곧바로 사물을 마주 대하여 그들의 생경함과 뻔뻔함을 즐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 또 하나의 이유는, 한국이 탈산업 시대에 접어들면서 소위 굴뚝 없는 산업, 즉 정보산업이나 문화산업 등 공장을 돌리지 않아도 되는 산업들이 나타남에 따라 예전에 알던 산업의 이미지들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산업시설들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예전에는 수도권 전철을 타고 가다 보면 구로역 쯤에 공장이 많았으나, 지금은 그 자리에 아파트들이 들어섰고, 공장들은 안산이나 시화, 남동공단 등으로 옮겨갔기 때문에 우리들의 시각장에서는 사라진 것이다. 어떤 물건이 사라지면 그때부터 허둥지둥 그것을 찾아 나서듯이, 산업의 모습이 사라지자 사진가들이 그것을 찾아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식의 사진 찍는 습관이 70년대 말부터 시작된 장승사진 찍는 습관과 같은 궤에 있는 것은 아니다. 장승사진과는 달리, 산업적?
?
것을 사진 찍는 것은 향수나 복고취향이 아니라, 우리 눈앞에서 사라져 버린 산업의 층위를 보여주는 것이다. 온통 첨단이다 IT다 해서 사람들의 관심이 특정한 산업의 층위에만 몰려 있는 사이에, 사진가들은 쇠를 깎고 열을 다루고 구조물을 만드는 전통적인 산업의 층위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박경택_The Plant Nation_컬러인화_67×200cm_2004
박경택의 사진을 설명하기 위해 이렇게 많은 전주(prelude)가 필요한 이유는, 어떻게 산업적인 것이 사진의 소재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해 납득을 못 하는 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일반인은 물론이고, 외국의 좋은 학교에서 좋은 공부 많이 했다는 유명 작가분들도 그런 것을 납득을 못 하기 때문에 이런 말들이 필요한 것이다. ● 박경택이 찍은 것은 현대자동차 공장의 생산라인이다. 이는 두가지 이유로 우리의 시각장에서 빠져 있는 부분이다. 첫째는 기업에서 이런 장면의 공개를 꺼린다. 국가간, 그리고 국가내부에서 경쟁이 치열한 요즘 산업에서 보안은 매우 중요한 사안이므로 어떤 기업도 생산라인을 공개하려 하지 않는다. 산업스파이는 국가정보기관에서도 다루는 중대한 사안이므로, 생산라인에 접근하는 것은 국외자로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소재가 얼마나 접근하기 힘든가를 강조하는 것은 유명 여배우의 옷을 벗겨 누드를 찍기가 얼마나 힘들었나를 강조하는 것만큼이나 유치한 짓이므로 이 점을 강조하지는 않겠다. 소재의 독특성에 의존하는 예술은 수명이 5분도 안 되기 때문이다. 다만, 사진가로서 자신이 선택한 소재에 접근하는 박경택의 치열한 태도만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 공장의 생산라인이 우리의 시각장에서 빠지는 더 중요한 이유는 일반인을 위한 소비의 대상으로 주어지는 사물은 결과물이 중요하지 생산과정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동시대의 모든 소비품의 공통된 특징이다. 어지간히 자신 있는 식당이 아니고서는 주방의 모습은 손님이 볼 수 없게 되어 있다. 설사 정당한 절차라 할지라도 손님에게는 뭔가 의구심을 줄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음식맛이 안 나기 때문이다. 저걸 맨손으로 저렇게 만져도 될까, 저런 물로 재료를 씻어도 될까 일일이 걱정을 하다 보면 입맛이 달아날 것이다. 생산물은, 과정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가 마술 같이 뚝딱 손님의 눈앞에 나타나야 한다. 그러므로 현대의 생산물은 철저히 과정과 결과의 이분법에 의존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생산과정은 최종적으로 나타나는 결과물에 비하면 지저분하고 불안하며 복잡하다. 그런데 소비자가 원하는 것은 깔끔하고 확실하며 단순한 것이다. 그러므로 생산과정은 생산물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또한 완결되고 닫힌 구조를 가진 결과물에 비하면, 생산과정은 열려 있고 정돈되어 있지 않다. 완성된 제품에서는 생산자가 허용하지 않는 범위에서
소비자가 제품에 손을 대어 분해하거나 구조를 바꿀 수 없도록 되어 있듯이, 우리 삶의 모든 결과물에서는 사용자의 개입이 허용되지 않는다. 소비자가 마음대로 기계에 손 댈 경우 보증 수리가 되지 않는 이유는 소비자가 권한을 넘어선 행위를 한 것에 대한 처벌이다. 사무원이 자신의 회사가 입주할 공사 중인 회사 건물에 개입할 수 없고, 손님이 주방에 개입할 수 없고, 박물관의 관객이 수장고나 학예실에 개입할 수 없듯이 말이다. 즉 생산과정의 끝에 있는 소비자는 그 과정에 개입할 수 없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소비자에게는 완결된 닫힌 구조만이 허용된다. ● 따라서, 박경택 같이, 굳이 그런 과정에 개입하려는 새로운 종류의 시각적 습관을 가진 사진가가 나타난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그가 찍은 생산라인은 마치 수술 도중의 장면 같이 모든 절개된 면과 용액들과 환부와 치부들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ER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서 굳이 끔찍한 수술장면을 즐겨 보는 관객층과 습관(spectatorship)이 생겨나듯이, 공업생산의 과정을 보려는 관객층과 습관이 생겨나고, 오늘날 박경택 같은 작가가 나오게 된 것이다. 이것이 그의 작업의 배경이다. 하지만 이렇게 서설을 길게 쓰고 보니 작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 이것이 그의 작업의 배경이 될지는 몰라도 핵심은 아니기 때문이다.

박경택_The Plant Nation_컬러인화_67×200cm_2004
핵심은 당연히, 사진 속에 들어있다. 그의 작업의 핵심은 자동차 생산라인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형태들, 질감들, 구조들과 같은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면에서부터, 그것들을 제어하는 공장 특유의 눈에 보이지 않는 질서들, 규율들, 원칙과 이론들과 같은 비가시적인 면들의 복합체이다. 더군다나 이런 생산라인이 오늘날 있기까지 테크놀로지와 엔지니어링의 피 나는 실패와 시행착오로 이루어진 역사의 과정은 사진에 직접 드러나는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부분이다. ● 자동차 생산의 전문적인 부분을 알지 못하는 관객의 눈에 띄는 것은 다양하고 특이한 형태의 금속구조물들이다. 어떤 것은 엔진블록이고 어떤 것은 완성된 엔진, 용접용 로봇, 조인트, 부품들을 쌓아두는 거치대,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캣워크 등 생산라인은 우리의 일상에 있는 것들 이상으로 변화무쌍한 사물의 세계들로 되어 있다. 박경택이 이런 것들에 카메라를 들이대게 된 것은 자동차 생산라인을 다큐멘타리적으로 기록하자는 숭고한 사명감도 아니고, 그렇다고 후세에 남을 산업의 역사를 만들자는 것도 아니고, 순전히 눈에 보이는 신기한 사물을 기록하고자 하는 가장 기본적인 사진가의 태도였을 것이다. 그리고 공장이라는 매우 독특한 공간은 사진가의 눈에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세계를 열어주고 있다. ● 사진가의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본 공장인테리어의 특징은 빈 부분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거기에는 장식적인 부분이 거의 없다. 오로지 기능만이 있을 뿐이다. 바닥은 폴리우레탄 계열의 붉은 색 페인트로 칠이 되어 있지만 그것은 그 색이 예뻐서가 아니라 오염물질이 눈에 띄기 쉽고 작업자에게 경각심을 주는 등 실질적인 이유 때문에 칠해진 것이다. 기계부품 같은 하드한 물건 뿐 아니라, 색과 빛 같은 감각적인 요소마저 철저히 기능적인 고려에 맞게 존재하는 곳이 공장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그런 기능적인 부분들이 사진으로 찍히면서 감각적이고 의미적인 층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바닥의 붉은색은 우리 기억 속의 붉은 색에 대한 복잡한 연상들과 뒤섞여 간단치 않은 화학반응을 일으키고, 기계부속의 다양한 형태들은 이제껏 보지 못한 새로운 형태로 다가와, 우리들의 조형감각을 혼란시킨다. 그게 바로 실제로 사물을 보는 것과 사진으로 보는 것과의 차이이다. 또한 대강 찍은 사진으로 보는 것과 작가가 찍은 사진으로 보는 것과의 차이이기도 하다. ● 그런 눈으로 보면 공장은
우리가 알고 있는 다른 구조들과의 공통점과 차이를 통해 보여진다. 자동차 생산라인은 하나의 완결된 도시이고 소우주이며 기계이고 신체이며 군대이며 세포이다. 박경택의 사진에 이 모든 면들이 들어 있다. 도시가 무수한 소통과 교통의 라인들로 이루어져 있듯이, 공장에서는 많은 물량의 교통이 있고, 그에 따르는 많은 지식과 정보의 소통이 있다. 보안상의 이유로 핵심적인 지식과 정보는 사진에 나타날 수 없는 아쉬움이 있지만, 일상에서와는 다른 스케일로 지식과 정보의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엿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묘한 쾌감을 맛보게 된다. 도시가 지하에서부터 고가도로에 이르는 다층적인 구조로 된 소통의 체계이듯이, 공장도 여러 층으로 된 소통의 체계이다. 최근 서울시내 버스체계 개편에서 드러나듯이, 오늘날 도시를 운용하는 것은 노력이나 열정 같은 인간적인 면이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이다. 공장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도시의 모델은 프리츠 랑의 1927년 영화 『메트로폴리스』를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그것은 동시대 한국에는 없는 도시의 모델이다. 그것은 지금 보다 더 기능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을 미래 도시의 예견적 모습일지도 모른다.

박경택_The Plant Nation_컬러인화_67×200cm_2004
20세기초 포디즘(Fordism)에 의한 콘베이어 시스템이 나타난 이래 공장은 인간의 손길을 배제한 시스템의 문제가 되었으며, 박경택의 사진에서 인간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그러한 시스템화의 결과이다. 포디즘은 또한 노동과정의 기계화와 체계화를 뜻하는 것이기도 한데, 이는 생산의 표준화와 대량화, 작업자의 비숙련공화, 작업조건의 관료적인 대량화를 수반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루에 5달러의 임금을 주겠다는 헨리 포드 자신의 장밋빛 약속에 따라, 노동자들도 스스로 자동차를 소유할 수 있을 정도의 임금수준을 누르게 되었고, 그 결과로 여가시간에 대한 수사는 게으름으로부터 즐거움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러므로 포디즘은 단순히 공장생산체제 만을 이르는 말이 아니라, 성장과 축적, 복지를 지향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특성을 대변하는 말이기도 하다. 푸코가 얘기한 파놉티콘이 단순히 실제의 감옥구조에 대한 분석이 아니라 근대사회에서 주체가 생산되는 구조에 대한 은유로 쓰였듯이, 포디즘도 근대자본주의에 대한 은유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박경택의 사진에서 보고 있는 것은 포디즘에 의해 돌아가고 있는 사회의 시각적 은유이기도 하다. ● 포디즘의 중요한 원리 중의 하나는, 생산라인의 모든 요소들이 시스템의 일부로 작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다른 부속에 맞지 않는 뛰어난 부속보다는 다른 부속과 맞는 적당한 부속이 더 필요한 것이다. 그것이 또한 대량생산의 논리이기도 하다. 따라서 박경택의 사진에 등장하는 모든 시각적 요소는 그런 선택의 결과이다. 그런데 사진에서 눈에 띄는 것은 요소들만이 아니라 그 요소들이 만들어내는 총집합이다. 관객으로서는 요소들을 따로 떼어 분석해서 볼 수 있는 능력도 없고 그런 교육도 받지 않았기 때문에, 모습은 하나의 게슈탈트로 다가온다. 즉 전체상만 다가온다는 뜻이다. 관찰력이 있는 관객이라면 전체상을 지배하고 있는 원리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 생산라인은 금속과 콘크리트라는 무기질적이고 딱딱한 것들로 되어 있지만 그것을 움직이는 원리는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고 막히지 않아야 한다. 실제로 오늘날의 공장시스템은 적당한 속도로 생산라인의 콘베이어 벨트가 움직여서, 사람이 그 페이스에 맞춰서 노동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생산라인은 신체와도 같다. 거기에는 뼈대와 근육(철과 콘크리트), 신경(각종 센서와 관찰의 체계들), 혈액(에너지를 옮겨 주는
전력선, 동력선, 각종 절삭유, 윤활유) 등이 있고, 그것들은 하나의 유기체처럼 상호 호환과 조화의 체계 속에서 움직여야 한다. 그 복잡성은 단순히 도시적 스케일이 아니라 소우주라 해도 좋을 정도이다. 또한 공장에는 일상생활에서와는 다른 안전규칙, 노동의 분위기 등이 있어서 흡사 군대를 방불케 하기도 한다. ● 그런데 우리가 풍경사진에 나오는 모든 나무들, 풀들의 탄생과 성장을 지배하고 있는 원리를 모르듯이, 생산라인에 존재하는 수많은 요인들을 관통하는 원리들을 알 수는 없다. 우리 앞에는 그런 원리들에 의해 관통당한 채 작동하고 있는 무수한 요소들의 모습만이 주어져 있을 뿐이다. 아마 그 공장에서 오래 일하여 그 원리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노련한 작업자가 그의 사진을 본다면 그것은 단지 그의 직장에 대한 묘사일 뿐이며 아무런 감동도 없을 것이다. 그에게는 모든 것이 가시적이기 때문이다. 즉 그에게는 자신이 일하는 공장에서 비밀이나 불투명한 부분이 없는 것이다. ● 그러나 공장 바깥의 구경꾼에게 공장은 흡사 알 수 없는 나무와 풀로 가득 찬 밀림과도 같이 보인다. 그 수많은 철골과 볼트들, 조인트들이 무슨 역할을 하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오로지 구경꾼의 호기심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남의 직장을 시각적 즐거움의 대상으로 볼 수 있다는 특권을 가지고 있다. 오히려 그 원리를 모르기 때문에 더 즐겁지 않을까. 만일 생산라인의 각 요소를 이루는 구성부분의 비용은 얼마고 그것을 유지하는데 어느 정도의 노동이 필요하며, 전체적인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는지, 기계를 잘못 다루었을 경우 시말서를 써야 하고 관리직과 얼마나 신경전을 벌여야 하는 등등의 일들을 모두 알고 있다면 도저히 즐거움의 대상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박경택_The Plant Nation_컬러인화_67×200cm_2004
생산라인 현장의 전문가에게는 박경택의 사진은 쓸모 없는 것(redundant)일 것이다. 그가 팔요한 정보들을 담고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박경택의 산업사진은 미국 항공우주국이 사진가들을 고용하여 자신들이 하는 실험과정을 매우 특수한 기법으로 촬영하는 것과는 다른 층위에 있다. 항공우주국의 경우 사진은 그들이 원하는 지식을 정확히 담고 있으며, 거기서는 그런 점이 묘한 미학을 이루게 된다. 예를 들어 풍동에서의 유체의 특성을 실험하는 사진의 경우 사진의 핵심은 오로지 비행체의 주변을 흘러가는 유체의 형태와 특성에만 맞춰져 있다. 바로 그 점이 그 사진을 독특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에 비하면 박경택의 사진은 사실 마치 장님이 본 것처럼 생산라인의 인식론적 내면에 들어가지 못하고 겉만 훑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신기한 구경꾼의 눈으로 그런 것들을 보았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라고 생각된다. ■ 이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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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포스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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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종류 : 인터랙티브 멀티미디어 설치 + 포토그래피 ▣ 전시일정 : 2004년 9월 10일 18:00 ~ 2004년 9월 18일 22:00 ▣ 전시장소 : 갤러리 편도나무 (02-3210-001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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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서문 |
슬픈 자유, IN PARADISE
어릴 적, 해거름에 노을이 있는 먼 하늘을 바라보며 참 자유롭다고 생각했다. 자연을 누비고 다니던 새들과 바람이 그러했고, 나도 그 자연의 하나인 양, 그렇게 자유로웠다. 장벽이 없었다.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낙원에서 더없이 포근한 잠을 자고 있었다.
마흔이라는 시간의 정점이 곧 내 눈 앞에 다가온다. 혁명만 두려워하는 나이가 아니라, 어릴 적 나의 조그만 바람조차 기억하기 힘든 시절이다 .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잃어버린 것이 아냐, 그냥 잠시 잊고 지내는 것일 뿐…"을 수없이 되뇌며 그렇게 시간의 꽁무니를 좇아 살아왔다.
옛날 자주 찾던 동물원을 다시 찾았다. 삶에 지쳐있지만, 주중에 그곳을 찾은 나는 너무나 한가했고, 우리 속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동물들도 온갖 보호를 받으며 잘 살고 있다. 날갯짓만 하지 않았더라도 그들은 전혀 갇혀있는 것이 아니었다.
날갯짓을 할 때, 비로소 갇혀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날갯짓을 하면 할수록 더 슬퍼서 아프다. 고개를 숙여보지만 땅바닥에도 창살이 박혀있다.
자유를 잊는 그 순간부터 정말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일까? 망각의 안식은 부도덕한가? 귀를 닫고, 눈을 닫고, 한여름 뙤약볕에 돌아 드러누운 저 하마의 모습은 누구의 초상인가?
● 명국녕 (전시작가)
| 작품설명 |
1. I AM F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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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랙티브 멀티미디어 설치, 인터넷, 컴퓨터, 빔프로젝터, 프린터 | 웹에 연결된 컴퓨터를 통해 사진을 곁들인 편지를 보낸다. 그 사진을 위해 마우스로 클릭 하여 사진 촬영을 하자. 촬영된 동물들의 모습은 나의 초상이기도 하지만 편지를 받는 그 누군가의 모습이기도 하다. 사진을 배경으로 은밀한 사연을 네트워크를 통해 보내지만 보내지는 즉시, 프린터를 통해 그 내용은 노출되고, 또 전시된다.
2. NOSTALG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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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랙티브 멀티미디어 설치, 컴퓨터, 빔프로젝터 | 물리적인 시간은 차가워서 인위적으로 선택하거나 따뜻하게 조합할 수 없다. 그래서 물리적이다. 다만 우리는 옛 시간을 그리워한다. 화면 모니터에 차가운 도시의 시간은 한없이 반복해서 흐르지만 그 풍경 속의 전광판에는 그리움이 녹아든다. 바로 내가 선택한 시간이 그 속에 있기 때문이다.
3. EG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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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랙티브 멀티미디어 설치, 컴퓨터, 모니터 | 보호막 둘러쳐진 곳에서 엎드려 잠만 잔다고 해서 희로애락의 흐름을 피해갈 수는 없다. 기쁨과 환희만을 기억 속에 붙잡아 두려 해도 곧 현실의 아픔은 그 기억을 깨뜨리고 만다. 순환하는 그 흐름 속에 나는 어떤 장면을 꿈꾸고 있는가? 어느 장면을 선택하든 다시 다음 장면은 이어진다. 머무르지 않는다.
4. PA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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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그래피, 디지털인화 | 수많은 회상을 불러일으키는 영상이 박제화 되어 있다. 시간을 동반한 사진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움직이지도 않으면서 자꾸자꾸 읊조리고 있다. 내가 마음속에서 그리고 있는 그림의 고통처럼.
* 멀티미디어
| 작가소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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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국녕 (Myoung, Kouk-Nyoung)
1966년 경남 창원 출생. 성균관대학교 불문학과와 중앙대학교 사진학과를 졸업했다. 1997년 프랑스 국립 파리 8대학교 예술대학에서 멀티미디어를 전공하여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웹 콘텐츠 기획 및 디자인에 전념하였는데, 대표적인 프로젝트로는 SK텔레콤과 협력한 프랑스 문화예술 웹진 <알로>와 등이 있다. 이번 전시가 첫 개인전이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에서 멀티미디어 영역의 강의를 하고 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