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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미국적인. 그래서 나의 미국취향을 견인/해체 가능한 물성으로 변환 가능한. 사진들. 미국의 발생근거중 하나가 자본이라면. 나의 태생 근본중 하나도 자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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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출처 : 줌인
조웰 스텐펠드
Joel Sternfeld(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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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fter an Eruption of Mount St. Helens Vancouver,washington, june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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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태어난 조웰 스텐펠드(미국
Joel Sternfeld 1944~ )는 미국의 전형적인 모습을 선명한
칼라사진으로 담아 미국의 변화된 풍경을 시각적으로
풍자하면서 한편으로는 변해버린 풍경과 인간의
관계를 표현하고 있다. 흔히 우리는 풍경사진 하면
아름다운 자연의 경치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자연 환경이 인간에 의해서 파괴되고 생존의
위협까지 느끼게 된다면, 단순히 감상적인 차원에서
자연을 볼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때 떠오르는 문제는
풍경은 우리 인식의 틀에서 다양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풍경사진에서 중요한 것은 작가가
자연에 대해 어떠한 인식태도를 갖고 있으며 그것이
어떤 식으로 반영되느냐 하는 것이다. 자연에 대한
인식 태도에 따라 풍경사진은 다양한 의미를 가지게
되며 다른 재현방식을 통해 풍경의 이데올로기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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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fter aFlashFlood, Rancho Mirage, California, July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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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전통적인 다큐멘터리
사진가인 워커 에반스(Walker Evans)와 50녀대 미국의
단조로운 일상의 현실생활을 표현한 로버트 프랭크에
영향을 받은 스텐펠드는 다트머스(Dartmouth)대학을
졸업하고 1978년부터 줄곤 지금까지 폭스바겐의
캠핑차로 전미국을 돌며 8x10inch 뷰 카메라로 왜곡된
아이러니의 서정성과 자연의 절박한 재난의 암시를
결합한 대형 칼라사진 속에 풍경이미지를 만들어 왔다.
70년대 이전 까지 풍경사진은 대부분 흑백사진이
주류였다. 그러므로 컬러사진으로 풍경을 촬영하는
것은 아마추어들의 공모전에나 등장하는 것으로
사진의 예술표현 영역에서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소외되어 있었다. 즉, 사진 ‘작품’을 제작하는
수단으로서 크게 인정을 못 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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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는 색채의 재현성이
불충분하고 퇴색의 위험성 이외에도 화상을 작가가
직접 자유로이 조절 할 수 없다는 점 등의 기술적인
결함이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큰 요인은 ‘예술사진
= 흑백 인화’라는 고정 관념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이 되면 기술적인 문제도 거의
해소되고 컬러사진을 표현의 수단으로서 이용하고자
하는 흐름이 정착된다. 그 계기가 된 것은 1976년 뉴욕
근대미술관에서 개최된 윌리암 이글리스톤(William
Eggleston)의 개인전과 1981년 샐리 오클레어(Sally Eauclaire)가
기획한 ‘뉴 컬러 The New Color ’사진전 이었다. 이들
사진전은 이후 미국의 새로운 컬러풍경사진의 지류를
형성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된다. 컬러풍경사진은
흑백 풍경사진에 없는 색온도 변화에 따른 공기감
이라든가 빛의 효과에 따른 미묘한 변화를 담아낸다.
이는 흑백인화에서 주로 강조하고 있던 형태의
질감이나 톤의 변화와는 다른 것이었다. 여기에
사실적인 다큐멘터리 수법으로 접근 하려했던
스텐펠드는 컬러사진을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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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hausted Renegade Elephant, Woodland,Washington ,june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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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ke Powell, Arizona,Agst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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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미국을 여행하면서 일상의
질서로부터 미묘하게 벗어난 듯한 사건이나 상황을
마치 스넵사진형식과 관조적인 풍경사진 수법으로
포착해 낸다. 이는 기존에 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전통적인 흑백 풍경사진에 흔히 담아내는 사람이 없는
장엄한 자연의 광경과는 사뭇 다른 것 이었다. 그의
사진에는 인간이 등장 하지 않아도 항상 인간의
문화적이고 인공적인 흔적이 자리 잡고 있다.
말하자면 인간에 의해서 변모한 자연의 모습이
포착되어 있는 것이다.
한편 풍경사진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70년대 이후
‘새로운 지형학적사진 New Topographics Photography’의
스타일을 영향을 받고 있는 스텐펠드는 ‘왜곡을
최소화하는’ ‘중립적 외관’을 선호한다. 이는
작가의 주관을 강하게 들어내지 않는 익명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최근의 독일의 새로운 다큐멘터리
사진과도 그 흐름을 공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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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그의 대표작은 아무래도 1987년에 출판된 <미국인
전망 American Prospects>연작으로 약 8년 동안 촬영된
것이다. 그의 작품집이 나왔을 때 사회적인 논평은
미국사회가 왜곡되고, 선택된 주제들의 평범함,
그리고 무표정한 표현의 특색을 지니고 있어 그의
작품을 로버트 프랭크의 1950년대 작품집<미국인
Americans>을 새롭게 갱신한 것으로 보고 있다. 로버트
프랭크나, 워커 에반스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이미지들은 미국인이 이미 역사 속으로 편입되어
나타나고, 사라져가는 소중한 가치들을 기록하는
다큐멘터리의 기능을 수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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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텐펠드는 도시와 농촌이
만나는 풍경과 테크놀러지와 자연이 만난 풍경,
변화한 자연 환경과 인간의 일상을 통해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담담한 표현과 더불어 급격하게
변화하는 미국의 자연풍경을 뚜렷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그러면서 스텐펠드는 미국은 세속적이고
아름다운 것으로, 그곳의 우울한 거주자들은 여전히
동정 받을 만하다고 주장한다. 스턴펠드는 그의 사진
안에서 일상적인 것에서 비 일상적인 것을 계속해서
찾는다. 일면 그의 사진은 일상 현실에서 보았다면
그저 평범한 일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일상이
사진에 포착되고 정지 됨으로써 우리는 세세하게 그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저 스쳐 지나칠 수 있었던 광경이
이상하게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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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S.S.Alabama, Mobile,Alabama,september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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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사진에는 많은 부분. 도시가
시골을 만나는 곳, 기술이 자연을 만나는 곳,
자연환경이 인간의 정신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의 평범한 장면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70년대에
들어와 스텐펠드를 위시한 새로운 풍경 사진가들은
서구문화의 발전과정에서 연유하는 환경오염, 멸종,
생태계 파괴, 핵확산의 위협 등 환경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서로 그 인식을 공유하고 있엇다.
이들의 생각은 이전까지 자연을 감상적인 차원에서
바라보게 하는 아름다운 풍경사진으로 만들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이미 자연은 파괴될 때로 되어 있어
자연은 이제 우리에게 하나의 그림에 불과한 박제된
자연 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스텐펠드에게 자연을
대상화하는 낭만적인 자연관을 극복하고 인간과
자연에 대한 새로운 인식론적 틀을 가지고 풍경사진에
접근하게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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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adside,rest area,white sands,new mexico,september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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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텐펠드 인간을 둘러싼 환경의
문제를 인간의 자연에 대한 지배관계에서 파악하고,
그 의미를 문화적 환경으로 넓히게 된다.
스텐펠드에게 있어 땅은 인간에 의해서 길들여지고,
정복되고, 파괴되는 것으로 묘사된다. 사실에 대한
객관적 기록으로써 접근하려는 스텐펠드는 우선
대상의 외형에 미치는 사진가의 영향을 최소화하고
사진가의 판단의 흔적이 작품에 개입되지 않도록
하는데 신경을 썼다. 그 결과 그의 시각은
비판적이기보다는 인류학적이고, 지리적, 생태적,
문화적 환경으로 확장 시키게 된다. 그러므로 그의
사진은 결코 감상적인 차원의 로맨틱한 풍경은 아닌
것이다.
그의 첫번째 <미국인의 관점(American Prospects)>에서,
스턴펠드는 인간과 자연사이의 미묘한 관계를
탐구하면서 위트와 절망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예를 들면 그의 풍경은 놀라움과
무표정한 위트로 가득 차 있다: 낙오한 코끼리가
길바닥에 탈진하여 누어있다; 해변가로 올라온
흰고래는 아름다운 바닷가 풍경을 단절하고 있다;
소방관의 뒤에서는 집이 불타고 있지만, 소방관은
호박을 고르고 있다. 이러한 장면들이 매우 역설적인
장면을 만들어내면서 동시에 깊은 상실감을 준다.
그의 또 다른 작품 <동시대 초상들 Contemporary
Portraits>는 모델의 영혼 안으로 혹독하게 깊숙이
들여다보고 있다. 무표정한 채 직시하고 있는
스턴펠드는 장소, 계급, 사회적 문제와 동시에 희망의
의미를 말하면서 사진을 뛰어넘어 현실을 찍으려 한다.
<여기서(On this Site)>에서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폭력이 미국환경에 남아있는 장소들을 바라보는
풍경을 차분히 모아놓고 있다. 마치 자연 재해사건
현장에서 뉴스 기자들이 떠난 후에, 남아서 촬영을
하듯이 스턴펠드는 뒤에 남겨진 풍경-비극이 지난간
후에 일상적으로 남아있는 풍경을 우리에게 담담하게
보여준다. 그의 이러한 접근법은 관객들로 하여금
선정적인 뉴스기사에 등장하는 장면이 아닌 그곳에
무엇이 발생했었고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차분하게
심사숙고 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작업은
단순한 자연의 경관을 보여주는 풍경 사진에서 벗어나
전통적인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하게 된다. 자연은 곧
스턴펠드의 작업에 있어 중요한 주인공이었던 것이다.
자연의 파괴에 대한 증거로서, 땅에 남겨진 흉터들은
우리의 인식이 이러한 사실들에 익숙해짐으로써 더
이상 충격적이지 않고, 우리 일상의 한 부분이
되어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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