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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10-24 07:43:55, Hit : 1058, Vote : 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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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평] 아라키와 최봉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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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키에 대한 글이 여럿 있지만, 미술관 시스템에 관련한 그의 방법론에서 지적을 가한 글은 없기에 덧깁는다.   좀 더 농도가 있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되지만, 아라키에 관한 조금은 색다른 견해라 필사해 놓는다.   체제를 고급스레 이용하는 것에 있어 작가를 따라올 개체들이 많지 않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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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www.fotoful.net

아라키와 문화대중주의


wiritten by 최봉림


한 사진 전시기획자의 글로 이야기를 시작하기로 하자. “2000년 7월 7일에서 8월 27일까지 열린 ‘연정’의 (...) 5평 크기의 전시장에는 사면과 천장까지 폴라로이드로 찍은 1만 여장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으며 이중 5천장은 2개월만에 완성하였다고 한다. (...) 전시장과 서점이 같이 있었는데 서점의 한 쪽에 아라키 코너가 따로 만들어져 수십 권의 아라키 사진집이 나열되어 있었다. 사인을 받으려는 학생과 일반인들은 사진집을 3, 4권씩 사들고 줄을 서서 기다렸다. 줄은 서점을 가득 채우고 밖에까지 늘어섰다.” 거의 유명연예인의 사인회를 연상시키는 이 묘사는 ‘문화대중주의’를 지향하는 아라키의 성공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오늘은 바로 아라키의 이 대중화 전략들의 요체들을 검토하고 분석해보는 자리가 되고자 한다.
우선 고려해야 할 것은 다량의 출판과 전시회를 통한 아라키의 대중과의 접촉이다. 작품집과 전시회는 중요한 두 가지 기능을 행사한다. 첫째는 작가의 작품을 대중에게 전파하는 제1 전달수단이다. 약 250권에 달하는 아라키의 작품집과 작품집 수에 결코 뒤지지 않는 듯한 그의 전시횟수는 대중의 기억 속에 아라키를 인지시키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1970년에 70장의 사진을 각 25부 씩 제록스 복사기로 복사한 다음 책으로 만들어, 친구들, 미술비평가들 그리고 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다면, 전화번호부에서 임의적으로 고른 사람들에게 그의 이 첫 사진집을 보낸 것은 책을 통한 자신의 홍보전략을 이미 계획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실이다.

게다가 작품집과 전시회의 역할은 작가의 이름과 작품을 대중사회 속에 인지시키는 역할만을 하는 것이 아니다. 사진집의 ‘저자 author`를, 전시회의 ‘주체’를 ‘예술가 artist`로 인정하게 만드는 사회적 역할을 행한다. 작품집의 출간과 전시회의 개최는 일반적으로 ‘타자들 the others의 요구에 의한 작업에 의거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직 자신의 예술의욕을 자율적으로, 자발적으로 과시하기 위한 사회적 실천으로 여겨진다. 경제적 필요성, 특정목적을 위해 의뢰받은 작업을 작품집이나 전시회로 보여주는 예는 지극히 예외적이다. 아라키가 1970년대부터 1972년 거의 십 년을 근무한 광고회사, ‘덴추’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작품집 출판과 사진 전시에 몰두한 것은 사회가 그를 예술가로 인정하게 하려는 의식적 전략, 무의식적 욕망과 관련을 맺는다.

그러나 전시와 출판을 통한  그의 사진활동이 예술로 인정받는데 문제가 없었던 것은 물론 아니었다. 그의 사진은 여성의 성기를 확대한 외설적인 사진이던가, 아니면 1971년에 결혼한 아내, 요코와의 신혼여행을 기념하는 아주 사적인 사진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는 1979년부터 「S & M Sniper」와 같은 포르노잡지에 끈으로 묶은 여체들의 사진을 연재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기념사진과 포르노사진으로 일반적으로 분류되는 이러한 사진은 전통적인 순수예술의 개념으로 볼 때, 외설사진 혹은 개인앨범용 사진이지, 전시와 출판에 합당한 예술사진이 아니었다.


아라키의 문화대중주의 모순 혹은 양면성은 여기에 있다. 전통적인 예술의 관점에서 보면, 결코 예술일 수 없는 소재, 주제의 사진을 예술의 유통경로를 통해 대중과 미술계와 소통했다는 점이다. 사실 전시를 하지 않은 채 출판만 했다면, 그의 작업은 결코 예술로 인정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포르노 사진집을 만드는 작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도시의 일상을 찍는 아마추어 작가로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그의 일상적 사진을, 그리고 그의 성적인 사진을 예술로 승인하고, 예술로서 보여주는 전시장의 사회적 기능을 활용했다. 예술의 가장 중요한 유통경로인 미술관, 갤러리를 거치면서, 그의 사진은 풍기를 문란케 하는 사진, 예술적 가치가 없는 사진이라는 비난을 위험스럽게 비켜나갔다. 사회가 공인하는 미술관과 갤러리의 벽에 그의 사진이 걸린다는 것은, 일부일지라도 미술계 혹은 사진계는 아라키를 ‘예술가’로 인정한다는 징표였기 때문이다. 비난이 뒤따를지라도 일부 큐레이터, 비평가들은 그의 사진을 ‘작품’으로 인정한다는 표시였기 때문이다.   
사실, 사회적 비난과 공적인 스캔들이 항상 예술에 적대적인 역풍으로 작용하는 것만은 아니다. 19세기 이후, 문학이나 미술의 영역에서 미래를 여는 작품은 거의 대부분 공공의 비난을 세차게 받았기 때문이다. 창녀의 알몸을 보여주는 에두아르 마네 Edouard Manet (1832-1883)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 (1863),  <올랭피아> (1863)는 사회적 물의에도 불구하고, 미술의 역사는 그것들을 새로운 회화의 지평을 연 작품으로 판정했고, 현대문학의 기원으로 인정받는 보들레르 Ch. Baudelaire (1821-1867)의 시집,「악의 꽃」 (1857)이나 플로베르 G. Flaubert (1821-1880)의 소설 「보바리 부인」(1857)은 풍기 문란죄로 기소되었기 때문이다. 예술과 성윤리의 대립양상은 20세기에도 계속되었는바, 일반적으로 역사는 예술의 손을 들어주는 편이었다. 따라서 1988년 아라키의 ‘음란한’ 사진을 실은 한 잡지의 판금 조처와 1992년 <사진광의 일기>라는 전시회와 관련된 풍기문란 벌금형, 그리고 1993년 <에로토스> 전시회 도록의 수입과 판매와 관련하여 이 전시큐레이터가 체포된 사건은 ‘위대한’ 예술가의 ‘고난과 시련’, 보수적인 사회가 ‘진보적인’ 예술가에 행한 ‘박해’로 해석될 수도 있다. 게다가 아라키는 이러한 사회적 물의, 여론의 집중을 이용하여, ‘성의 환희’ ‘지복의 땅, 육체’를 계속 발간하고 전시하며, 경제적 혜택도 누렸음에 틀림없다. 다시 말해 그의 대중문화주의를 활용했음에 틀림없다.

아라키의 대중문화주의는 그의 사진 작업방식과 전시, 출판 경향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이른바 고급예술이 모색하는 장인적 기예, 철학적 사유와 같은 이른바 ‘훌륭한 취향 good taste`이라 불리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의 사진은 이미지의 대중적 소비주의를 부추기며, 감각과 감각적 사고를 집요하게 건드린다. 그가 사진집이나 전시회 제목으로 가장 자주 애용하는 것처럼, 대중의 ‘센티멘탈 sentimental` 욕구, 감상성을 자극한다. 보수적인 미학의 관점에서 보면, 그는 전적으로 ’키치문화 kitsch`를 대변하고 선도한다. 그의 감각을 건드리는 모든 것은 그의 사진들이 되고, 그것들은 수많은 출판과 전시 속에서 대중적으로 혹은 예술적으로 소비된다.

아라키의 예술이 대중과 접촉하는 출판 혹은 전시 형식은 무엇보다도 격자배열 grid 이다. 볼탕스키 Ch. Boltanski (1944- ), 베허 Becher 부부 (1931, 1934 - ) 등이 이미 70년대에 애호한 이 전시, 출판 형식은 아라키에게는 이미지의 대립과 충돌, 시간의 전이, 상징효과를 배가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러니까 아라키가 애호하는 이 격자형식은 개념주의 미술, 유형학적 사진에서 차용한 셈이고, 그 효과는 초현실주의의 이미지 효과를 추구하는 셈이다. 그리고 서로 다른 사물간의 형태적 유사성을 탐구하는 아라키의 꽃과 음식의 클로즈업 사진 역시, 1920년대의 에드워드 웨스톤 Ed. Weston (1886-1958)에서 메이플소프 R. Mapplethorpe (1946-1989)에 이르기까지 많은 작가들이 장인적 섬세함으로 탐구한 것을 디지털 프린트로 보다 거칠고 조야한 형태로 개작한 것이다. 사실, 이러한 독창성의 포기, 장인적 기예의 거부는 필연적으로 ‘걸작’의 개념을 거부하는 바, 이것이 모더니즘 미학, 이상주의 미학을 거부하는 현대미술의 경향에의 동참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기존예술을 간편하게 소비하려는 대중문화의 한 양상인지는 현재로서는 판단하기가 어렵다. 언제나 대중문화와의 연대를 모색하는 듯한 그의 사진들이 얼마 전에는 13kg의 무게에 걸맞은 15만 엔의 ‘걸작집’으로 독일의 한 출판사에서 출간됐기 때문이다. 전시회의 사진보다 훨씬 질이 좋은 프린트, 그리고 섬세한 사진선정과 배열은 그가 대중문화주의를 포기하고, 전통적인 ‘사진예술’로 귀의하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카아 (2006-10-26 20:49:50)  
재밌네요, 사진. 네이버 안부게시판에 글 남겼는데 봐 주세요. 확인을 안 하시는 듯.
(2006-10-26 22:52:19)  
새글 알림이 안되더란(__) 답글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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