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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이소 - 정직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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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상관없을지도 모르는 리플 하나. ++++++++++++++++++++++++++++++++++++++++++++++++++++++++++++++++++++ 레닌은 초인적인 의지의 소유자였다. 그는 볼세비키 당을 만들고 11월 혁명의 수뇌부 역할을 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그는 소비에트 연방의 건립자이다. 그의 의지력은 전설적이다. 그가 죽고 나서 검시를 했을 때 이를 참관했던 독일의 한 전문가는 레닌의 뇌 구성 물질이 보통 뇌보다 4분의 1가량 감소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직접 검시를 했던 로자노프 교수는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그의 뇌를 복개했을 때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뇌경화를 발견했다. 경화증이 생긴 뇌로 생각할 힘이 남아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그런 뇌를 갖고도 그렇게 오래 살 수 있었다는 게 더 놀라웠다." 레닌은 죽기 전까지 세번이나 뇌졸증으로 쓰러졌다. 그러나 놀랍게도 처음 두번은 기적적으로 이겨내었다. 그의 건강은 1921년 말부터 나빠져서 1922년 초부터는 심한 두통과 현기증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과로로 인한 가벼운 만성병이라고 진단이 났을 때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 이건 최초의 징조일 뿐이오." 레닌을 진찰한 러시아와 독일의 전문가들은 처음에 금속성 독소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1918년의 암살 기도로 인해 그의 몸에는 총알이 박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수술로 총알을 제거했지만 큰 도움이 된 것 같지는 않았다. 19122년 5월 초, 레닌은 첫번째 뇌졸증을 쓰러져 말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그는 누이 마리아와 부인 크룹스카야의 간호를 받았다. 그의 부인은 그에게 왼손으로 글씨 쓰는 법과 큰 소리로 한 마디씩 끊어서 또렷하게 발음하는 법을 가르쳤다. 그는 차츰 회복되어서 5월 28일에는 측근 인사들과 만남을 가질 정도였다. 7월에는 걸을 수 있을 만큼 회복되었다. 회복속도는 급격히 빨라서 1922년 10월 2일에는 고르키에 있는 집에서 모스크바로 돌아 갈 수 있었다. 의사가 오랜 시간 일하는 것을 금했지만,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제 4회 코민테른 회의장에 나타났다. 그는 말을 더듬기는 했으나 무사히 연설을 마쳤다. 레닌은 같은 해 11월 후반기에 다시 두통과 불면증을 호소했다. 그리고 11월 25일에는 '절대 휴식'을 선고받았다. 방문자들의 면회 요청은 거절당했다. 레닌은 휴식 기간 동안 엄청난 양의 독서를 했으며, 볼세비키 혁명이 승리한 직후 입안했던 몇몇 정책을 정책하려 하기도 했다. 1922년 12월 레닌은 두번째 발작을 일으켰다. 첫번째 발작보다 훨씬 심한 것이었다. 이번에도 그는 절대 안정을 취할 것을 선고 받았지만 레닌의 성격상 그것은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레닌은 그 동안에도 소비에트의 경제 구조에서 협동 조합이 지니는 역할에 관한 글을 썼다. "우리가 부르조아 문화와 더불어 문화 발전을 이룰 수 있는지"를 공박하는 글이었다. 12월 12일 그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책상 앞에 앉아 편지를 받아쓰게 했다. 스탈린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이제 나는 모든 빚을 청산하고 홀가분하게 떠난다. 다만 나를 몹시 괴롭히는 상황이 하나 남았다면 그것은 소비에트 회의에 참석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치통까지 앓았는데, 공산당 정치국에 보내는 편지에 보면, 소비에트 연방의 소수 집단에 대해 걱정하면서 치통에 대한 이야기도 간략히 썼다. "나는 러시아의 쇼비니즘에 대해 죽음에 이르는 전쟁을 선포하는 바이다. 이 치통에서 벗어나는 대로 온 힘을 다해 그것을 부숴버릴 것이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그루지야 등에 이어 연합 중앙 행정 위원회가 의장을 맡아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해야만 한다. 강력히!" 그러나 레닌은 죽음이 가까웠음을 알고 있었다. 그는 12월 25일과 26일, 유서를 받아쓰게 하고, 1923년 1월 4일에는 유서에 추가사항을 덧붙혔다. 그는 볼세비키 당의 여러 지도자들에 대해 평가했는데, 스탈린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너무 거칠다. 이것은 우리 공산당원에게 있어서는 충분히 용납할 수 있는 결점이지만, 서기장으로서는 치명적인 결점이다." 그래서 레닌은 자신의 동지에게 다음과 같이 제안했다. "스탈린을 숙청할 방법을 찾고, 다른 존경 받을만한 인물을 물색하라. 스탈린보다 우수하고 인내심있는 자로, 더 성실하고 예절바른 사람으로, 그보다 더 동지를 보살피고 변덕이 심하지 않은 사람으로......" 레닌은 자신의 부인 크룹스카야에게 보인 스탈린의 무례한 태도에 격노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레닌은 3월 5일 스탈린에게 편지를 보냈다. 자신과의 관계를 끊고 싶지않으면 사과하라는 편지였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이었는지 바로 그 날, 레닌의 상태가 나빠졌다. 그리고 3월 9일 그는 세번째 뇌졸증을 일으켰다. 그는 거의 말을 할 수 없게 되어 어눌한 말과 몸짓으로 생각을 전해야했다. '혁명'이라는 말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고 각 모음을 두 세번 정도 반복할 뿐이었다. 그러나 종전처럼 레닌은 강인한 의지를 발휘했다. 그런 의지력에 힘입어 그는 10월에는 다시 걸을 수 있게 되었다. 10월 10일에 다시 고르키에서 모스크바로 떠나 크레믈린의 사무실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병은 서서히 그를 잠식해 나갔다. 손상된 뇌가 문제를 일으켰다. 그는 활력을 되찾기 위해 날씨가 좋을 때면 썰매나 차를 타고 교외로 나갔다. 12월 24일, 그의 부인은 크리스미스 트리까지 준비하고 농부들을 초대했는데, 이때만 해도 레닌은 생기있어 보였다. 1924년 1월 20일, 레닌은 몸 상태가 좋지 않음을 느꼈다. 기운이 없고 식욕이 떨어졌다. 두통도 심했다. 다음 날 아침에도 그런 증상은 가시지 않았다. 그는 식사하기를 거절했으나 주위에서는 조금이라도 먹기를 강요했다. 저녁 식사 시간에 그는 매우 적은 양의 음식만을 먹었다. 저녁 식사 후 그는 누워서 쉬었다. 그런데 레닌의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갑자기 그의 호흡이 무겁고 불규칙해지는 것을 발견했다. 1924년 1월 21일 오후 6시 경, 레닌에게 심한 경련이 일어났다. 레닌은 의식을 잃었다. 얼굴이 창백해지고 호흡도 점점 힘들어졌다. 또 체온이 급격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뇌출혈이 일어나 호흡이 마비되어 갔다. 경련이 일어난지 약 50분 후 레닌은 숨을 거두었다. 그의 나이 54세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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