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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도 언급한바이지만, 기초예술이라는 단어자체가 쩜... 구려보인다는 인상을 지울 순 없는.
"한국의 자본주의"란 특별한 상황을 견제하면서, 예술이 (이전의)예술로서 존재하지 못하고 문화로서 흡수되어 버리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하는가를 예술(한다는 사람들)내부에서 모종의 결단을 내려야 하지 않을까도 싶은. 작금의 지형도는, 아주 나 혼자만의 생각이지만.
art 라는 것이 각 매체별로 아주 산산이 갈려져서, 지구라는 땅떵어리에 눈처럼 내리고 있는 형국이 아닐까 싶다. 그 박살나고 있는 부스러기들을 어쩔줄 몰라하는 꼴이 안스럽기도 하고. 물론 아래 글이 어쩔줄은 아니다. '무엇의 기초로 무엇을'의 개념에 예술을 집어넣는 것이 틀려보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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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예술이 의미하는 것
최 범 (디자인 평론가))
지금 기초예술이라는 유령이 한국 예술계를 떠돌고 있다. 기존의 감각을 ‘깨는’ 느낌을 주는 이 말을 처음 들은 것은 지난해가 저물어갈 무렵이었던 것 같다. 예술에도 기초라는 말이 붙으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일이다. 그런데 이 말은 벌써 ‘기초예술의 위기’니 ‘기초예술 살리기’니 하는 식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빠르게 시민권을 획득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기초예술이라는 말이 지금 현재 우리 사회에서 예술이 처한 어떤 위기적인 국면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요컨대 기초예술이라는 말에는 위기 담론이 내포되어 있다. 물론 예술의 위기 담론은 예술 만큼이나 오래된 것이어서 새삼스러운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헤겔식의 예술의 종말이나 저 익숙한 모더니즘 예술의 위기를 논하는 것은 아니다. 기초예술의 위기라는 주장에는, 그러한 예술의 위기 담론의 단순 반복으로 치부해버릴 수만은 없는, 우리 사회의 특수한 상황이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내가 보기에, 이 말은 우리 사회에서의 예술의 존재방식 또는 정당성에 대한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사실 이 말은 지난해 가을 문예진흥원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김형수 씨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나름대로 예술의 본원적 가치를 강조하면서도 기존의 순수예술이라는 말이 품고 있는 낡고 배타적인 성격을 대신할 새로운 용어로 이 말을 만들어낸 것 같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기초예술이라는 말이 기초과학이나 기초학문이라는 말의 용법을 차용한 것이라는 점 때문에 다소 거부감이 없지 않다. 인문학이나 자연과학 분야라면 몰라도 과연 예술에 기초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기는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말이 환기시키는 힘이라든지 그 화용론적인 의의에 대해서는 200퍼센트 공감하는 바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현재 국면에서 기초예술이라는 말이 가질 수 있는 전략적 가치일 것이다. 그것은 수십개의 예술단체들이 참여하는 기초예술연대가 조직되어 기초예술 살리기 운동에 나서고 있다는 사실로도 이미 증명되고 있다.
아무튼 이제 기초예술이라는 말은 한 시인의 해타(咳唾)를 넘어서 공적인 용어가 되었다. 이는 곧 기초예술이라는 말이 다양한 담론 해석과 투쟁의 장에 발을 디뎠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현재 기초예술이라는 말은 예술이 사회적 가치와 문화의 기초임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여러 화자들이 기초예술이라는 말을 통해 함의하는 것은 단일하지 않아 보인다. 어떤 이들은 예술의 본질적인 가치를 강조하면서, 기초예술을 단순히 시효가 지나 보이는 순수예술의 대체어 정도로 사용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기초예술이라는 것이 예술의 사회적 기초를 확인하면서도 기존의 예술 개념과 실천을 재구조화하기 위한 전략적 가치를 가진 개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자의 경우라면 기초예술은 예술의 내부를 벗어나지 못한 채 새로운 위계를 생산하는 것에 머무를 것이며, 후자의 경우라면 그것은 과감하게 예술의 재구조화와 사회적 정당성을 둘러싼 논쟁에 뛰어드는 모험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기초예술연대에 참여한 단체들 중에도 동상이몽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문예진흥원이 발간하는 <문화예술> 2004년 5월호가 마련한 ‘기초예술 살리기’라는 기획에서 소설가 방현석도, 중요한 것은 구걸과 ‘예술 지원’ 정책이 아니라 ‘예술’ 정책이며 예술이 사회적 정당성을 가지고 당당하게 발언하고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역시 그러기 위해서 전제되어야 할 것은 예술의 가치와 정당성에 대한 확인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 사회에서 예술은 어떤 의미에서 그 사회적 쓸모를 주장하고 인정받으며 또 그 대가를 사회에 대해서 요구할 수 있는가. 사실 이 문제에 대해 우리 예술과 사회는 대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더욱이 우리 사회에서 예술의 가치와 정당성은 점차 경제적인 기준에 의해 평가되면서 그 고유한 가능성이 소멸되어가고 있다.
나는 대학에서 강의할 때마다 초등학교에서부터 빗나간 우리 교육의 모순이 한꺼번에 와닿는 듯한 느낌을 받곤 한다. 기초예술의 위기 담론에도 근대 이후 한국 사회에서 예술이 밟아온 전 과정의 충격이 한꺼번에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거기에는 멀리 근대 초기의 서구 예술의 도입에서부터 식민지 경험과 물질 위주의 근대화, 그리고 최근의 신자유주의적인 전지구화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적 과정과 모순이 중층 결정되어 작용한 것이라고 본다. 한 마디로 말하면 우리의 현대 예술은 정상적인 사회적 제도로 정착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미술 영역만 보더라도 현대적인 미술 교육과 미술 시장, 그리고 미술관과 같은 장치들이 제대로 자리잡고 기능하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이런 상태에서 문화산업적인 관심이 문화의 모든 차원들을 흡수해감으로써 예술의 존재 자체가 근본적으로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그리하여 사회 전체 차원에서 물질적 수준이 높아짐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예술의 가난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이제 예술은 더 이상 현실의 궁핍을 대신해줄 정신의 양식도 아니고 근대사회를 비판하는 장치의 기능도 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지금 예술을 위협하고 있는 것은 단순한 궁핍의 차원이 아니라 존재의 정당성이다. 그런데 이러한 모순이 한국 사회의 발전이 가져온 위기, 즉 물질 중심의 발전이 초래한 예술의 유용성에 대한 위기라는 사실을 역설적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원래 근대예술은 그 적극적인 무용성을 통해 역설적으로 사회문화적인 유용성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발전한 일차원적인 자본주의 사회, 한국은 그러한 역설의 힘을 알지 못한다.
이제 예술은 스스로의 정당성을 증명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는 시대 한가운데에 있다. 한때 예술은 특별히 증명할 필요가 없는, 그 자체로 온전한 일종의 특권적인 존재였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선험적 권리를 주장할 수 없게 된 오늘의 현실은 차라리 민주적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보자면 모든 것은 사회적 과정이며 제도이다. 예술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그리하여 기초예술이라는 말은 우리 사회에서 비로소, 그리고 새삼스럽게 예술의 가치와 정당성을 스스로에게 묻고 사회를 향해서 던지는 화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과연 예술은 사회와 삶의 기초인가. 아니 반대로 우리는 예술에 기초한 삶과 사회를 꿈꾸고 있는가. 문제는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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