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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zabel(2005-05-06 20:28:06, Hit : 1310, Vote : 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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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rett Wes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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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렛 웨스톤에 대한 진동선씨의 글입니다.   유료컨덴츠에서 무단으로 가져온 것이라(죄송합니다-_-;;) 삭제압박이 있을 수 있으며, 가능하면 이 자료를 타지로 옮기는 일은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브렛에 관한 아티클이 별 없는고로, 자료 연구 측면에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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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ett Weston(1911-1993, American)
글 : 진동선


앤셀 애덤스 이후 최고의 프린트 대가, 에드워드 웨스톤과 앤셀 애덤스의 정신과 기술을 이어받은 우리시대 예술사진의 거장 브렛 웨스톤은 1911년 LA에서 에드워드 웨스톤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에드워드 웨스톤의 피를 이어받은 4명의 아들 중에서 가장 유명했으며, 가장 뛰어난 아버지의 예술혼을 이어받은 아들로 성장했다. 그는 일찍부터 아버지의 학생 중의 하나였으며, 1925년 그의 나이 열네 살 때 아버지를 따라 멕시코로 가서 학교를 다니면서 아버지의 조수노릇을 했다. 다른 아들들(첫째 챈들러, 셋째 닐, 넷째 콜)이 아버지의 사랑과 애정을 받고 자랐다면 브렛 웨스톤은 아버지의 쵤영, 암실 조수로서 일찍부터 예술가로서의 정신과 태도를 비롯 촬영에서 인화까지, 기술에서 완성까지 모든 것을 배우고 자랐으며, 심지어는 아버지의 못 말리는 애정행각과 가장으로서의 무책임성마저도 보고 자란 아들이 되었다.

멕시코에서의 청년기를 보낸 브렛 웨스톤에게 그 시절 자신이 어떤 예술사진가여야 하는가를 결정지었다. 우선 멕시코 혁명기에서 그는 아버지와 친분 관계에 있었던 디에고 리베라, 프리다 칼로로부터 예술의 정신성을 자극받았다. 그래서 열정으로부터 감화 받아 아버지의 카메라 그라플렉스 3 1/4 x 4 1/4 카메라로 촬영을 시작했다. 그가 찍은 사진을 본 디에고 리베라, 클레멘테 오르즈코는 나이 어린 그에게 근대미술의 정신성과 표현성을 말해주었고, 티나 모토티는 그의 예민한 감수성과 특이한 형태와 구성에 대해서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브렛의 초기 사진들은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구성적이고 디자인적이었다. 그러나 아버지 웨드워드 웨스톤이 자연적인 소재에 관심이 많았던 데 반해 브렛 웨스톤은 인공적인 소재에 흥미가 끌렸다. 1927년에 마침내 처음으로 UCLA에서 바바라 모간이 기획한 전시에 참가하는 행운을 잡기도 했고 그해 또 LA의 한 서점에서 처음으로 개인전을 갖기고 했다.  

브렛 웨스톤이 예술사진가로서 자질을 보이고 먼저 아버지로부터 인정을 받았던 때는 1926년 다시 캘리포니아로 돌아와서부터이다. 그는 흑백 프린트에서 뛰어난 재질을 보였고, 아버지의 클로즈업 기술을 그대로 전수받아 자신만의 풍경인식과 대상의 미적 재현 능력을 확장해 나갔다. 대형 카메라를 다루는 기술과 흑백 프린트에 눈을 뜨자 그는 맨 먼저 흑백추상에 관심을 쏟았다. 그리고 이때의 눈뜸은 이후 60년간 자신의 예술 세계과 사진미학의 기준이 되었다. 그리고는 아버지 에드워드 웨스톤이 새롭게 오픈한 인물 스튜디오에서 어시스탄트로서 일하면서 자신이 찍은 사진들을 팔기 시작했다.

브렛 웨스톤이 국제적으로 알려지게 된 때는 놀랍게도 열여덟 살이 되는 1929년 독일 스튜트라르트에서 개최된 <필름과 영화Film und Foto>에 초대를 받으면서다. 만 레이, 베레니스 에보트 등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사이에 가장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그룹전에 최연소 작가로서 참가한 그는 비로소 프로작가로서 세계사진의 감각과 국제적 마인드를 자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후 그를 초대하려는 국제전시가 줄을 잇게 되었다. 물론 그도 자신의 예술성보다 상당부분 아버지의 후광과 아버지의 명망 때문에 자신이 평가받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그랬기에 아버지와 다른 예술성을 가진 작가로서 노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를 극복하는 방법은 아버지를 다른 세계 그리고 아버지의 사진을 넘어선 새로운 작업을 부단히 펼쳐 보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강박관념은 그가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브렛 웨스톤은 1929년에 아버지 에드워드 웨스톤의 영원한 보금자리 캘리포니아 카멜(Camel)로 다른 형제들과 함께 이사 온다. 이때부터 그는 조금씩 조금씩 아버지로부터 독립을 시도했다. 그의 나이 열아홉 살에 그는 혼자 LA로 이사를 해 자신만의 사진 스튜디오를 열었으며, 그리고 군복무를 위해서 뉴욕으로 가 그곳에서 사진가들과 친분을 쌓으면서 틈틈이 도시외곽 지역의 풍경들을 찍기도 했고, 또 1943년과 45년에는 뉴욕에서 개인전을 조촐하게 개최하기도 했다. 그리고는 1946년에 복무를 마치고 다시 LA로 돌아와서는 본격적으로 독자적인 예술 활동, 스스로의 힘으로 사진작가의 길에 들어선다. 20대 중반부터 30대 초반까지 유럽, 일본, 알레스카, 하와이 등지를 광범위하게 여행한다. 그리고 마침내 1947년 아버지 에드워드 웨스톤이 1937년 최초로 수여받은 구겐하임 지원금을 수혜 받아 미국의 동부해안에서 서부 해안까지 훌륭한 흑백사진을 제작한다.

브렛 웨스톤이 다시 캘리포니아 카멜로 이사를 한 것은 아버지 에드워드 웨스톤의 건강이 날로 안 좋아져 가고 있을 때였다. 그는 아버지가 끔찍이 사랑했던 막내 동생 콜(Cole) 웨스톤과 함께 아버지의 사진과 네거티브를 추스르고 또 동생과 함께 아버지의 프린트를 인화하기 시작했다. <에드워드 웨스톤의 사진 50년 포트폴리오>(1952)가 그것이다. 오늘날 에드워드 웨스톤의 50년대 프린트가 브렛 웨스톤의 프린트와 콜 웨스톤의 프린트로 구분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브렛 웨스톤은 그때 아버지의 프린트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전에 보지 못한 새로운 정신과 영혼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와 다름을 보여주려 했던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는가를 깨닫게 되었다.

1950년대와 70년대 브렛 웨스톤의 사진은 크게 달라진다. 강력한 하이콘트라스트, 강력한 추상과 다시 만난다. 그가 초기에 시도했던 사진들과 크게 다르지 않는 소재들이다. 그러나 이제는 아버지를 전혀 생각하지 않은 자신만의 사진이었다. 식물잎사귀, 썩고 얼룩진 뿌리를 비롯 해변가에 스스로 자생하면서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그려내는 생명들을 추상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파인 프린트에 대해서 새로운 생각들을 갖기 시작했다. 앤셀 애덤스의 존 시스템과 다르고, 그리고 아버지의 감각에 의존한 프린트가 아닌 자신만의 흑백 파인 프린트 제작에 심혈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는 파인 프린트를 위해 그 옛날 아버지가 시도했던 클로즈업을 시도했으며, 그 클로즈업에서 새롭게 인식하는 추상성에 주목했다. 특히 하이 콘트라스트 파인 프린트를 어떻게 완벽하게 해낼 수 있을 것인가에 온 힘을 기울였다.

브렛 웨스톤은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말까지 하와이로 건너가 말년의 생을 보냈다. 이제 그에게는 자연적인 환경 속에서 그 모든 것을 사진으로 해석하는 일로 일생을 마감하고 싶었다. 하와이는 최적의 장소였다. 그리고 하와이에 마침내 두 채의 집을 갖게 된 1993년 1월 그곳 코나(Kona)에서 행복했던 세상을 떠났다.        


브렛 웨스톤의 사진미학

1. 파인아트로서 포트폴리오

브렛 웨스톤의 포트폴리오는 가장 뛰어난 파인아트 포트폴리오로 명성이 높고 그리고 방대한 양으로도 명성이 높다. 60년 동안 제작한 주요 포트폴리오는 다음과 같다.

Abstractions Portfolio #1
Abstractions Portfolio #2
Alaska Portfolio
Baja California Portfolio
Dunes
Edward Weston
Europe
Hawaii Portfolio
Japan
Landscapes
Natural Details
New York
Ten Photographs Portfolio
White Sands Portfolio


2. 침묵과 고독의 흑백 추상

브렛 웨스톤의 사진은 침묵과 고독을 주된 정조로 삼고 있다. 캘리포니아 풍경 사진가들의 공통적인 정조는 장엄과 외경, 그리고 정제와 균형인데 반해서 브렛 웨스톤은 풍경의 스펙터클과 장엄미에서 물러나고, 또 형식을 앞세운 순운 정제미와 균형미에서도 물러나 비교적 자연적 추상을 중요시하고 그에 따른 침묵과 고독을 주요 정조로 삼았다. 훗날 그의 사진을 가장 잘 이해했던 작가가 존 섹스턴이었고, 그리고 오늘날 마이클 캐나라고 할 수 있다. 브렛이 강조한 조형성은 무엇보다 흑백 추상이었다. 그는 자연을 사진으로 번역하고 해석한다는 해석자로서의 태도를 가졌다. 그래서 디테일보다 변형을, 질감이나 구도보다는 대상의 자연적 형태와 추상성을 사진적 추상으로 해석하고자 했다. 그는 인간의 지식, 사진가들의 지식을 아주 위험스러운 것으로 생각했다. 그것들이 너무 쉽게 자연과 풍경을 스타일화하고 타락시킨다고 생각했다.

3. 도시와 도시 외곽에 대한 파인아트로서 풍경

브렛 웨스톤이 다른 캘리포니아 작가들과 다른 점은 다큐멘터리 사진에 대한 적절한 수용에 있다. 그는 유일하게 풍경사진가로서 다큐멘터리 사진을 소화한 사람이다. 군복무를 뉴욕에서 했던 것과 그곳 도시풍경과 교외의 풍경을 다큐멘터리 적으로 바라보았던 경험이 있고, 또 1941년 마지막 FSA와 조인하여 아서 로스타인과 작업했던 것이 그것들을 가능하게 했다. 그는 비록 8" x 10" , 11" x 14" 대형 카메라를 사용했지만 대도시 풍경에 대한 인식은 다른 캘리포니아 풍경작가들과 달리 도시적이고 기록적이고 문화적인 사고를 자신의 풍경에 적절히 도입했다.









43   Candida Hoefer - 김선정 글  zabel 2004/01/20 1396 290
42   Candida Hoefer  zabel 2005/08/31 1256 305
41   c2k 사진  장명훈 2002/11/12 1987 571
40   Bruce Davidson  zabel 2005/04/13 1402 253
39   Bruce Davidson [10]  zabel 2004/06/05 1324 251
  Brett Weston  zabel 2005/05/06 1310 262
37   Boris Mikhailov   2006/05/07 1991 526
36   BORIS IGNATOVICH  zabel 2005/10/02 1112 264
35   Bogomir Ecker  zabel 2004/09/30 970 240
34   Beyond the Darkness _ 송경숙 [3]   2005/12/08 1122 264
33   Bettina Rheims  zabel 2005/10/23 1363 442
32   BERTIEN VAN MANEN   2006/01/31 9690 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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