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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팔자의 감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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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근대 사진교육의 절정! . . . 내 사진의 시작은 최광호 / 사진가 나는 집을 나서면 사진 찍는다. 안녕 하세요? 이 세상에 사진으로 신고 한다. 대문 앞에 서서 사진 찍는다. 우리 조상들이 들에 나가 식사할 때 먼저 준비한 도시락에서 조금 떼어 자연에 신고하며 고수레하듯이.. 그리고 산소에 제사 지낼 때도 산신이랄까 그 먼저 존재한 신에게 제사 지내듯, 내 앞에 보여 지는 사물들에게 내가 집을 나섬을 신고한다. 잘 있었니? 밤사이에 별고 없으신지요? 하고 사진 찍으며 신고한다. 나 자신이 밤사이 무사함에 감사하며 제사지내듯, 고수레하듯 사진 찍는다. 나에게 있어서 사진은 이렇게 되어 지고 있다. 왜? 이렇게? 무엇을 찍을까? 어떻게 찍을까? 잘 찍을까? 멋있게 찍을까? 그런 것은 이제 나에게 있어서는 아무 문제도 안 되며 의식되어 지지가 않는다. 심지어 사진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지, 다시 말하면 돈을 벌어야지, 그런 생각조차도 허울인 것 같아서... 왜냐면 돈과 사진이란 관계에 대하여 전혀 생각하지 않았기에 그것으로 돈을 번다는 것은 그릇된 생각임을 어느 때인가부터 알았기에 감히 사진으로 돈 벌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보다 사진으로 나 자신의 근본 문제를 해결해야겠기에, 아직도 사진으로 진실 되게 사는 방식을 찾고 있다. 사진으로 나의 진실 찾기, 그것이 과연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바라는 사진이란 과연 무엇일까? 내게 사진하면서 변하지 않은 고민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다. 진실 되게 사는 것이 무엇인가? 신구 전문학교 사진과를 다녔던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 생각을 가장 오래 끊임없이 하고 있다. 진실 되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나도 모른다. 아직도 사진을 통해 그 물음을 스스로에게 하면서 이렇게 사는데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항상, 사진으로 진실 되게 사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사진 잘 찍고, 못 찍고가 아닌 잘 사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에 대해 수 없이 고민에 고민을 하고 있다. 사진으로 진실 되는 그 방법을 생각하는 지금 뭉클 가슴이 북 받쳐 오르며 눈물이 난다. 왜 그럴까 무엇이 나를 뭉클하게 하는 것인가, 나도 모른다 하여간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면 나는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진 찍는가? 솔직히 말해서 나는 사진 찍는 순간에는 그저 찍을 뿐이다. 찍는데 감동되어 찍을 뿐이다. 찍고 또 찍고, 찍기만 한다. 필름이 떨어질 때까지 그것뿐이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그렇게 찍을 수 있는 것은 그 피사체와 나와의 공감대가 함께 형성되는 순간이며, 순간순간 나 자신을 촉발하고 반응하는 것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간이 나서 한가하거나, 혹 힘들거나 괴로울 때는 더욱 진실 되게 사는 것이 무엇인가하고 고민한다. 왜 그런 고민을 할까, 나도 정말 모른다. 그런데 여기에 오래 전부터 한 가지 더 생긴 고민이 있다. 바르게 사는 것이 무엇인가 하고, 다시 말하면 진실 되고 바르게 사진하며 사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을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사진하며 사는 것 그것은 고민하는데, 나는 왜 사람이 사는데 꼭 필요한 돈 버는 고민은 안 할까? 돈 없어 힘들어하는 식구들이랑 나에게 있어서도 돈이 꼭 필요한데, 그 돈보다 내가 나답게 사는 것이 더 시급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왜 일까? 하여간 진실이란 단어 앞에 모든 것이 무기력하고, 어떻게 바르게 사는가란 생각에 빠져들면 다시 처음의 원점으로 돌아가 스스로 배에 힘주고..... 그러기에 나는 사진하며 살수 밖에 없다. 하여 내게 있어 이제 사진은 쉽고 자유롭다. 그저 하면 된다. 내가 사는 것도 그와 같다. 다시 말하면 내 목숨도 그렇게 태어났으니, 내 엄마 아버지가 살다 보니 내가 태어났듯이, 그렇듯 자연스럽게.... 생명이란 무엇인가 지금 살아 있음 그것이다. 숨 쉬고 심장이 뛰고 있음에 살아있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숨이 끊어지고 심장박동이 멈추면 죽음이라고 이야기하듯이, 나는 이제 이것만은 알았다. 살아있음 같이 사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 그래서 오랜 전부터 모든 욕심을 다 버리고 지금처럼 이렇게 죽는 그날까지 열심히 하자 그러면 후회는 안 할 자신이 생긴 것이다. 그렇게 꾸준히 사진하려면 사진이 쉬워야 하고 가까이 있어야한다. 그래서 나는 항상 사진기를 가지고 다닌다. 언젠가 어떤 사람이 나에게 질문하기를 ‘장인어른 죽음을 어떻게 찍었느냐’고 하기에 ‘내가 사진기를 항상 가지고 다니니 찍을 수 있었다’고 해도 납득이 제대로 안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대답은 정말 그렇다. 사진 잘 찍기 위해 내가하는 방법은 사진기를 항상 가지고 다닌다는 것이다. 사진기를 가지고 다닌다. 그리고 좀 더 적극적이어야 되겠기에, 디지털 사진기가 내 손에 들어오고부터는 아예 목에 걸고 다니기로 했다. 지금까지 넥타이는 맨 적이 별로 없으나 사진기만큼은 목에 걸어야지 그렇게 생각하니 한결 편했다. 전에는 사진기를 가방에 넣고만 다니던 내가 나 자신에게 좀 더 적극적이어야 할 필요를 느낀 것이다. 그랬더니 더 재미있었다. 마치 나를 위해 디지털사진기가 태어난 것 같았다. 찍고 또 찍어지는 그 디지털 사진기가 있어 가난한 나에게 필름값이 안 드니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분명히 말하지만 사진은 쉬워야하고 재미있어야 한다. 그래야 오래 꾸준히 할 수 있다. 나는 때때로 이렇게 얘기한다. ‘이제 돈 없어 사진 못하는 사람들 디지털사진기를 쓰세요. 이제는 공짜로 사진 찍을 수 있잖아요. 그러면 꾸준히 오래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요. 그러면서 새롭게 다가오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진으로 스스로 거듭날 수 있는 그것이 바로 사진하는 의미일 것입니다.’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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