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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화가 김정욱의 근황이 궁금한 이들에게 ‘2006 서울국제공연예술제’ 포스터는 반가움 그 자체였다. 생뚱한 표정의 둥글납작한
얼굴과의 반가운 재회.
 눈물 같고 고름 같은 얼룩이 온 몸에 배어 있다.
93.5×62.5cm 한지에 먹, 채색 1998
눈물이 말라서 더 이상 아무것도 흘러나오지 않을 때까지 울다가,
따가워진 눈구석을 무심코 비비면, 손등에 멀건 액체가 묻어난다. 눈물도 아니고, 고름도 아닌 것이 노르스름하고 탁하다. 불결하고 불쾌해보이기까지
하는 이 액체가 한때 투명한 눈물이었다는 걸 누가 믿을 수 있을까. 눈물이 흘러 슬픔이 고이면, 고름과 닮아간다. 곪아가는 마음이 눈으로
새어나온 것처럼.
동양화가 김정욱이 초창기에 그려온 인물상도 그런 ‘고름 자국’을 담고 있다. 죽은 사람처럼 확장된 동공을 지닌
눈과, 멀쩡한 다른 쪽 눈이 짝짝이로 배치된 김정욱의 그림들은 보는 이의 마음을 끊임없이 불안하고 불편하게 만든다.
그런 기괴한
눈을 치뜨고 불안한 시선으로 관람자를 뚫어져라 응시하는 얼굴, 빈약해 보이는 몸 위를 불길한 형태의 얼룩들이 덮고 있다. 기실 저 얼룩들은,
마음의 고름 자국이다. 흑백 사진처럼 정제된 화폭 위에 유독 그 자국들만 색깔을 입고 도드라져 보인다.
▶▶ 눈물이 고이면 ‘마음의 고름’이 된다
 커튼처럼 드리운 앞머리 뒤에서는 아무런 표정도 읽을 수
없다. 63×93cm, 한지에 먹 2004
비교적 사실적으로 그려낸 인체 위에, 지극히 비현실적인 형태로 덮인
얼룩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그 기괴한 이미지에 마음이 흔들리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필시 마음 한 구석 어딘가에
김정욱의 그림처럼 노르스름한 고름 자국이 배어 있거나, 또는 푸르뎅뎅한 멍 자국이 새겨져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눈이 인간의
정신세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창이라면, 김정욱이 그려낸 얼굴에 뚫린 삐뚤빼뚤한 창은 불길한 사건을 예고하는 전조등 같다. 2004년 6월
관훈동 갤러리 피쉬에서 열린 두 번째 개인전 <생경. 막막. 팍팍. 허망>전은 김정욱의 그림에서 눈이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지
보여준다.
첫 번째 개인전에서 비록 짝짝이로나마 형형한 빛을 뿜어내던 눈은, 두 번째 개인전에서 깊은 어둠속으로 가라앉는다.
만화 주인공처럼 비현실적으로 확대된 눈망울은, 눈동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촘촘하게 자라난 속눈썹에 가려지거나, 커튼처럼 드리운 앞머리 속에
감춰진다.
김정욱의 얼굴들은 페르난도 보테로의 그림들에 비견할 만큼 육감적인 살덩어리를 지녔지만, 보테로의 캐릭터가 보여주는
약동하는 생명력과는 거리가 멀다. 생명력은커녕 자꾸만 사신(死神)이나 해골의 이미지가 연상되는 건, 얼굴 한가운데를 묵직하게 짓누르는 눈망울의
어둠 때문이다. 숨겨진 눈의 표정은 해골의 텅 빈 눈구멍처럼 공허한 어둠 속에 파묻히고 만다. 그 어둠 속에는 표정이 없고, 생명이 없다.
하지만 죽음의 이미지로 충만한 그 얼굴이 절망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건, 죽음도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듯 흔연스러운 표정 때문이다.
그 표정 안에는 기묘한 낙천주의가 담겨 있다.
 가회동에 새 둥지를 튼 갤러리 스케이프 재개관전에서 작가의
신작을 만날 수 있다. <무제> 한지에 먹, 채색 108×74cm 2006
김정욱은 이
거대하고 통통한 얼굴 그림을 한동안 트레이드마크처럼 반복해서 재생산해 왔다. 새로운 그의 그림을 기다리다가 김정욱이라는 이름이 기억에서 사라져갈
무렵, 거리에 나붙어 있던 ‘2006 서울국제공연예술제’ 포스터에서 그 생뚱한 표정의 둥글납작한 얼굴을 다시 만났다. 그 표정은 여전히
생경하고, 막막하고, 팍팍하고, 허망하고, 이젠 다소 진부하기까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잃어버렸던 내 그림자의 일부와 다시 재회한 것처럼
반가웠다.
가회동 갤러리 스케이프 재개관을 기념해 11월 2일부터 5일까지 4일 동안 열린 <Re-Open>전에서
김정욱의 근작을 볼 수 있었다. 해골처럼 먹먹한 눈망울은 여전하지만, 서클렌즈를 낀 순정만화의 주인공처럼 귀염성이 가미되어 조금은 색다른 느낌을
전해준다. 문의 (02)3143-4675.
| 고경원 _ 자유기고가 aponian@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