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타이틀매치라는 타이틀이 꼭 있어야 할까란 생각도 들었지만, 전시자체는 괜찮은 편이었다.
과거의 아방가르드한 사람과 현재 아방가르한 것같은 둘을 붙여놓았다는 것이외의 어떤 의미가 있을까가...매우 의문스러웠지만,
차라리 전시기간을 둘로 쪼개서 둘을 따로이 개인전시키는게 더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참. 그날 쌈지에서....거드름 피우는 아타킴을 보았다. 내 생각뿐일지도 모르지만, 난 그가 볼 수록 불쌍해 보인다.
++++++++++++++++++++++++++++++++++++++++++++++++++++++++++++++++++++++++++++++++++++++++++++++
글 : 이준희

지난해 이맘때 쌈지스페이스에서는 연례기획 첫 전시로 〈타이틀매치〉라는 제목의 전시가 열렸다. ‘바람풍과 바람끼’란 부제로 원로작가 이승택과 젊은 작가 이윰이 참여했던 그때 전시에 이어 두 번째 타이틀매치가 열렸다. 이번 게임에 참가한 선수는 이강소와 조습.
지난해 이승택의 바통을 이어받아 출전한 이강소는 상대선수인 조습이 태어나기도 전인 1970년대 초에 화랑을 ‘선술집’으로 바꿔버리거나, 산 닭의 발을 묶어 전시장에 매어놓는 등 해프닝적 요소가 강한 설치작품을 선보여 세간의 화제를 모았던 장본인이다. 그에 비해 20대 후반의 조습은 2001년, 스스로 ‘명랑교 교주’임을 내세우며 자신을 주인공으로 코믹한 상황을 연출한 독특한 형식의 사진작업으로 미술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인물이다. 세대와 작품 성향이 확연히 다른 이 두
작가의 만남은 ‘같이 전시하지 않았다면 만나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전시 홍보문구처럼 일단 그 만남 자체가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막상 전시장에 들어서서 관람한 타이틀매치는 기대와는 달리 힘 빠지는 게임이었다. “20세기 아방가르드의 원로와 21세기 차세대를 대결시킴으로써 생성적인 대화를 도출하는 전시로, 노대가의 미술사적, 창조적 업적에 대한 경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의 현재 진행형 작업을 화단의 미래를 짊어질 신진 청년작가와 한 선상에 놓음으로써 서로 다른 두 세대 작가간의 실험적 작품세계를 비교하고 시대정신의 변화를 고찰하고자 한다”고 친절하게 안내된 기획의도에 비해 전시 디스플레이 방식이 관객의 흥미를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3층 메인갤러리에 이강소의 비디오 영상작품이 설치되고 1층 차고 갤러리에는 조습의 작품이, 그리고 2층 프로젝트 갤러리에 이강소와 조습 두 선수의 작품이 함께 전시되는 방식이었는데 특히 2층 갤러리의 상식적이고 단편적인 디스플레이 방식이 관중의 눈길을 끌기에는 미흡했다는 말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1층과 3층에 각각 출품된 두 작가의 최신작은 마치 김빠진 타이틀매치전에 앞서 열리는 프로에 데뷔하는 복서의 화끈한 오프닝 게임처럼 흥미로웠다.
특히 경주에 있는 고택 ‘심수정(心水亭)’의 ‘삼관헌(三觀軒)’ 대청마루에서 촬영했다는 이강소의 비디오 영상작품 〈From a Dream : through Three Windows〉는 작가의 연륜과 사유의 깊이, 그리고 그것을 풀어내는 원숙함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한 곳에서 세 방향을 바라본다’는 뜻을 품고 있는 ‘삼관헌’ 마루에 앉아 창 밖 풍경을 바라보던 선인(先人)의 시각 경험을 오늘날 전시장에 새롭게 재현한 작가의 노련함을 엿볼 수 있었다.
즉 그는 평범한 풍경을 바라보는 인간의 시각경험은 창문이나 심지어 카메라 렌즈를 통해 바라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라는 자각과 그 현상의 증거를 흥미롭게 보여준 것이다. 같은 의미에서 촬영자의 시선을 완전히 배제하고 철저히 카메라의 눈(렌즈)으로만 촬영한 수면과 물 속 풍경 영상을 전시장 바닥에 비춘 작품 〈From a Dream : Swimming Camera〉도 ‘카메라의 시선’이라는 문제를 우회적으로 드러낸 작품이었다. 이렇듯 육순을 넘긴 청년작가 이강소의 비디오 작품은 현란한 테크닉에 의존한 감각적인 동시대 젊은 작가의 그것과 비교해 오히려 신선함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한편 1층 차고 갤러리에 전시된 조습의 신작 〈무제Ⅳ〉와 〈무제Ⅲ〉 시리즈는 삼류 코미디처럼 과장된 상황을 연출해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은 사진작품이다. 특히 이 작품들은 그 동안 조습이 보여준 파편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스토리를 지님으로써 영화적 성격을 강하게 드러냈다.
결과적으로 기자는 이강소가 실존적 태도로 모더니즘의 조형언어를 모색하는 아방가르드 작가라면, 조습은 자신의 몸을 내던져 기존 미술언어와 형식에 대한 파괴적 제스처를 보여주는 동시대 아방가르드 작가라는 사실, 그리고 이 두 세대의 아방가르드 작가를 한 공간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기획자의 의도에는 굳이 딴지를 걸고 싶지 않다. 다만 이번 전시 역시 앞에서 언급했던 지난해 〈타이틀매치〉의 리뷰(《월간미술》 2003년 1월호 p.140)에서 유재길이 밝힌 것처럼 “어느 누구의 손을 들어줄 수 없는 자기만의 세계를 보여주는 독특한 분위기의 기획전이다. 이는 승자도 패자도 없는 전시”였다는 점에 실망했을 뿐이다. 사족, 앞으로 전시 제목을 〈논-타이틀매치(non-titlematch)〉로 한다면 어떨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