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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또 다시 재밋는 일이..^^
반이정의 글도 분명 적절한 타이밍이 아니고 사진에대한 시각이 어느 정도는 결여된 것임엔 틀림없지만, 김영태의 반론도 허약하기가 좀 심하다. 물론 반이정의 글도 작업자에게 플러스가 되는 것이 아니긴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마무리가 쌈질로 끝나지 않은 것은 그야말로.
고무적인 일이다. b-_-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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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생존전략, '마냥 바라보기'만 해서야
글|반이정|미술평론가|인사미술공간 큐레이터 dogstylist.com
2년 전 일본 사진작가 아라키 노부요시가 개인전 규모로 국내에 상륙한 것을 기억들 할 것이다. 당시 출품된 몇몇 시리즈 중 〈A's Diary〉라는 연작이 있었다. 수백여 장의 사진을 벽 전면에 촬영일 순으로 나열한 패키지 작품이다. 시리즈의 제목이 말해주듯 아라키 개인의 사생활을 자신의 창작 도구를 통해, '예술'이란 옷을 뒤집어 씌워 노출시키는 전략이었다. 더군다나 빨간색 에로티즘으로 명성을 굳힌 그답게 일기 중간 중간에는 예외 없이 잘 빠진 여자 나체가 끼워져 있어, 관객들의 진지한 환심까지 샀다. 하지만 돌이켜 보건데 이 컨셉트는 별 대단할 게 없는 시도가 아닐 수 없다. 그는 고작 자신을 둘러싼 생활을 카메라로 담아낸 것이고 거기에 일기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붙였고, 적절한 수위를 넘나드는 선정성까지 덧씌운 게 전부일 뿐이다. 하지만 이 '별 대단할 거 없는 컨셉트'는 사진전의 단골 방법론이기도 하다. 그만치 사진의 매체적 기능이란 것이 응시자와 피사체간의 기계적 바라봄의 관계 속에 일정 정도 한정되어 있다는 얘기일지도 모른다. 과연 사진은 세상을 향해 마냥 '바라보기'만을 충실히 수행하려고 탄생한 걸까?
바라봄의 직설화법에 우려를
김영섭사진화랑이 지난달 기획 초대한 두 개의 연이은 개인전들은 바로 그 문제, 즉 작금의 사진이 현실을 인식하고 다시 현실 공간에 내주는 방식, 그 출현(出現)의 묘에 관한 논의점을 던져준다. 따라서 이 두 전시 역시 예의 '별 대단할 게 없는 컨셉트'를 인화지에 옮겨 세상에 내보내는 방식을 따른다. 하지만 비슷한 토대 위에서 출발한 두 전시의 출력물은 전혀 상이한 결과물에 이르렀다. 두 전시 모두 대개의 리얼리즘 사진이 표방하듯 현실에 대한 작가의 입장, 작가의 시선을 담고 있다. 이른바 작가가 바라본 현실이란 이른바 요사이 미술계의 진부한 화두가 되어버린 '일상' 그 이상이 아니다.

이 같이 동일점에서 출발하고는 있지만 작가 김영태와 노순택이 명백하게 갈라져 나가는 지점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 우선 김영태는 자신의 전시 제목부터 '세상 바라보기'라 규정하고 들어간다. 쉽고 의문의 여지가 없는 '세상 바라보기'라는 직선적 제목은 관객한테도, 작가 자신한테도 분명한 노선을 제시하긴 하나, 벗어나기 힘든 최면이 될 소지 역시 크다. 작가가 대구 동성로와, 서울 인사동, 대학로 일대를 돌아다니며 찾아낸 피사체들을 일단 보자. 그것들은 죄다 전시 제목 마냥, 세상을 바라본 결과물(인화물) 그 자체다. 타이틀을 너무도 충실히 이행해주는 이 과도한 직설화법은 보는 이에게 명백한 사실 반영 이상의 어떠한 긴장감도 유발하지 못한다. 너무도 평온하기만 한 이 바라봄들은 바로 인화지 이면에 감춰졌어야 할 모종의 플러스 알파의 누락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하는 의문과 마주친다.
그런 면에서 김영태의 작품은 역설적이게도 작금의 사진 작가들이 직면한 곤혹감을 반영하는 성과를 거뒀다. 호기심은 충만하되 차별성이 결여된 그의 '세상 바라보기'는 아마추어 집단이 비슷한 어법을 동원하여 취미삼아 무차별 만들어내는 사진들과 무엇이 크게 다른지 알 수 없다. 채택된 주제가 별로라는 게 아니다. 흔해 빠진 주제를 긴장감 없이 취급했다는 말이다. 따라서 '전시를 고려한' 작금의 사진 작업은 마냥 '바라보기'에 앞서서, 뭔가 단단한 다짐을 했어야 옳다.

사진‘작품’이 갖춰야할 요건에 관하여
그런 점에서 노순택은 자신이 바라볼 세상을 현실에 두되 '특별한' 현실에 시야를 모으는 전략을 택했고, 그래서 차별화가 가능했다. 물론 여기에는 작가의 불가피한 정치색도 개입한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정치적인 피사체들 위로 어찌 보면 어울리지 않을 자신의 미학적 태도를 덮어씌웠다. 선동적 리얼리즘이 취해온 종전 방식과는 선을 그은 노순택의 방법론은 그를 진부한 늪에 빠질 개연성에서 건져 올렸다(하늘은 누구를 돕는다고 했더라?). 노순택이 제공하는 2000년대 버전 정치 리얼리즘 포토그래피는 내용물의 정치적 입장조차 형식미의 배려에 따라 미묘한 프레임 안에 갇혀있다. 미학이 탑재된 정치성이라 하면 될까?
요약하면 노순택은 언제나 '중간'의 어떤 정서와 미학을 깔고 선동 구호를 외친다. 정적인 구도가 만들어내는 역설적인 운동감. 자연스러움과 연출의 중간 어딘가. 이미지의 선동성을 감싸는 어떤 조형성. 우익인지 좌익인지 분간할 수 없는 사진가의 은폐된 정치성. 그게 세상을 바라볼 때 그가 차별화하는 전략이다. 세상을 '마냥 바라만 본다고' 사진 작업에 명분이 생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니 우리는 지금 다종다양한 이미지가 넘치는 세상에서 어떻게든 명분(차별성)을 확보해야 체면이 서는 세상에 살고 있다. 만능일줄 알았던 사진이지만, 이렇듯 그 속에서도 승자가 되려면 까다로운 조건이 기다리는 법이다. 세상을 바라다 본, 두개의 동일한 사진전이 극적으로 갈라지는 지점에 관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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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생존전략, '마냥 바라보기'만 해서야 (아트 9월)를 읽고서
1990년대 초반이후 대형미술관과 여러상업화랑에서 사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여러미술관련잡지에서도 국내사진가들의 사진전과 사진의 흐름에 대한 기사가 많이 게재 되고 있다.그러나 아직도 사진을 전공하지 않은 미술평론가들이 쓴 사진에 관한 글들은 용어상의 오류와 더불어 객관적인 이론과 정보에 바탕을 두지 않은 주관적인 글들이 많이 있다.
그것의 대표적인 예가 월간 아트 9월호에 기고한 미술평론가 반이정의 사진에 관한 글"사진의 생존전략,'마냥바라보기'만 해서야 이다. 그는 그 글에서 지난달 김영섭 사진화랑에서 열린 필자의 전시회'세상 바라보기'와 반이정 본인이 전시회 서문을 쓴 노순택 사진전'분단의 향기'에 대한 전시회 평에서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과 견해로 두 전시회를 단순 비교하고 있다.
두 전시회 모두 다큐멘터리적인 표현방법으로 각자의 주관적인 시각으로 세상에 대한 느낌을 표현 하고 있지만,필자의 작품은 일상적인 문화현상을 통하여 달라진 세상에 대한 나의 느낌을 표현 한것이고,노순택의 작품은 분단 국가인 한국의 정치,사회적인 상황을 표현 한것이다.
필자의 작품은 다큐멘터리적인 방법을 택했지만 순수 사진에 가까은것이고 노순택의 작품은 다분히 정치적이고 포토저널리즘 적이다.그러므로 두 작품을 단순히 비교해서 평가 하는것은 무리이다.그리고 본인이 서문을 쓴 작품과 다른 작품을 비교하는것 자체가 중립성과 공정성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세상바라보기'는 관점에 따라서는 단순히 직설적으로 세상을 보여 준것이라고 생각할수 도 있지만 사진 한장 한장에 읽혀지는 텍스트가 있다.그리고 단순히 전시회를 위해서 준비 된 작품이 아니라 오랜시간 정확히 이야기하면 1991년도부터 일상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필자가 오래동안 흑백필름으로 거리에서의 일상문화에 대해서 기록해오다가 올해초 우리나라 거리풍경도 컬러가 있다는것을 느끼고서는 매체를 컬러필름으로 바꾸어서 작업 해오던 중에 우연히 김영섭 사진화랑의 전시제의로 열린 전시회이다.
필자로서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미술평론가가 사진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미술전문지에 사진전 평론을 기고 한것은 환영하고 기뻐 할일이다.그러나 전시평은 객관적인 시각에서 객관적인 사진전정보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단순히 두번 전시장을 둘러 보고 본인이 전시회서문을 쓴 전시작품과 일방적으로 비교해서 평을 쓰는것은 객관적인 신뢰도에 의문이 가는 일이다.
용어의 선택에 있어서도 세계사진사 어디에서도 리얼리즘 사진이라는 용어는 없다.그리고 사진을 표현매체로 사용하는 사람은 소설가,화가,음악가 처럼 사진가이지 사진작가 가 아니다.반이정은 앞으로 사진에 관한 글을 쓰기전에 약간은 전문적인 사진공부를 하기 바란다.그것이 본인을 위해서도 문화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다.
이제 한국사진계는 국제화 현대화와 더불어 전문화시대에 접어 들었다.미술관과 화랑에서 전시회가 열리고 미술계가 사진에 관심을 가지는것도 이제는 하나의 붐이 아니고 보편화 된 현상이다.그러므로 사진에 대한 평론도 다른 장르의 평론에 못지 않게 전문적인 글쓰기 작업이라는것을 간과해서는 않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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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잘 읽었습니다. 네이버 쪽지로도 비슷한 질책을 남기시더니, 제 홈피에 글까지 남기셨군요. 여하튼 비평 당사자가 댓글을 다는 것은 건강한 일입니다. 그리고 제 글이 김영태님께 호의적이지 않았던 지라, 당사자께서 속이 상했을 거란 생각은 이미 했습니다. 아래 김영태님 글에 대해 부족하나마 간단히 댓글을 달아봤습니다.
* 김영태 Wrote:
* 사진의 생존전략, '마냥 바라보기'만 해서야 (아트 9월)를 읽고서
*
* 1990년대 초반이후 대형미술관과 여러상업화랑에서 사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여러미술관련잡지에서도 국내사진가들의 사진전과 사진의 흐름에 대한 기사가 많이 게재 되고 있다.그러나 아직도 사진을 전공하지 않은 미술평론가들이 쓴 사진에 관한 글들은 용어상의 오류와 더불어 객관적인 이론과 정보에 바탕을 두지 않은 주관적인 글들이 많이 있다. 그것의 대표적인 예가 월간 아트 9월호에 기고한 미술평론가 반이정의 사진에 관한 글"사진의 생존전략,'마냥바라보기'만 해서야 이다.
☞ "사진을 전공하지 않은 미술평론가들이 쓴 사진 관련글"이란 단서에서부터 김영태님의 현 미술계의 흐름에 대한 고정관념이 엿보이는군요. 미술계는 유화물감과 목조 조각이 판치는 곳이라고 생각하시나보군요? 그리고, 김영태님께서 생각해온 잘못 쓰여진 글의 사례로 자신의 작업을 비판한 글(저의 글)을 지목한 것 역시 '님의 표현을 그대로 빌자면' 공정성이 의심되는 비판 작업이 아닐까 싶군요. 여하튼...
요새 미술판에서 미디어와 사진이 차지하는 비중은 대단합니다. 과연 사진평론가와 미술평론가라는 이분법이 타당하기나 한지, 그런 생각마저 드는 요즘입니다. 좋습니다. 여하튼 저는 사진이론을 전공한 사람이 아닌 이상, 김영태님 말씀대로 제가 얼마나 '용어상 오류'와 '객관적 이론과 정보'에 바탕없이 '주관적으로만 글을 썼는지' 아래에서 보도록 하지요.
* 그는 그 글에서 지난달 김영섭 사진화랑에서 열린 필자의 전시회'세상 바라보기'와 반이정 본인이 전시회 서문을 쓴 노순택 사진전'분단의 향기'에 대한 전시회 평에서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과 견해로 두 전시회를 단순 비교하고 있다.
*
* 두 전시회 모두 다큐멘터리적인 표현방법으로 각자의 주관적인 시각으로 세상에 대한 느낌을 표현 하고 있지만,필자의 작품은 일상적인 문화현상을 통하여 달라진 세상에 대한 나의 느낌을 표현 한것이고,노순택의 작품은 분단 국가인 한국의 정치,사회적인 상황을 표현 한것이다. 필자의 작품은 다큐멘터리적인 방법을 택했지만 순수 사진에 가까은 것이고 노순택의 작품은 다분히 정치적이고 포토저널리즘 적이다.그러므로 두 작품을 단순히 비교해서 평가 하는것은 무리이다.그리고 본인이 서문을 쓴 작품과 다른 작품을 비교하는것 자체가 중립성과 공정성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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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단 김영태님의 그와 같은 이분법부터 동의하기 힘들군요. 김영태는 '순수 사진'에 가깝고, 노순택은 '정치적 포토저널리즘'에 가깝다는 님의 분류법의 '근거'가 무엇인지요? 근거를 좀 대십시오. 이 구분은 노순택씨도 동의한 것인지요? 아울러 님께서 구분한 '순수 사진적'인 것과 '정치적 포토저널리즘'의 구획은 어떻게 지어지는 지 역시 알고 싶군요. 용어 선택과 객관성에 비중을 두셨으니 이 점은 제대로 답을 주시리라 기대해봅니다. 저는 일단 두 작가 모두 다큐적 접근이었다는 데에 포커스를 맞췄서 썼습니다. 그 점은 김영태님 또한 동의하시는것 같군요.
2. 서문을 쓴 작품을 리뷰의 대상으로 삼는 건 여러모로보나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데에 동의 합니다. 대개의 서문이 '축사'로 이뤄지기 마련이기 때문이지요. 헌데 제가 이미 말씀드린 바 있듯이, art in culture 9월에 수록된 글은 '리뷰'란 아니랍니다. 잡지사에 직접 문의해보십시오. 그 두 코너의 차이점을. 진짜로 물어보세요. 그건 '포커스'라는 코너이고, 그 코너는 단순 리뷰가 아니라, 전시들 속에서 '쟁점이 될 수 있는 어떤 사안'을 필자가 임의로 정해서 집필하는 겁니다. 아울러 구차하지만 부연하자면 9월호 포커스의 제 글은 두 개의 다큐 사진이 오늘날 같은 이미지 과잉시대에 세상을 바라보면서 어떻게 왜 다른 양상으로 갈라지게 되었는가에 촛점(포커스)을 맞춘 겁니다. 그리고 그 한 예로 하필 '동일한 전시장'에서 연이어 개최된 두 개의 전시를 잡아본 거지요. 충분히 가능한 포커스 기사 입니다.
* '세상바라보기'는 관점에 따라서는 단순히 직설적으로 세상을 보여 준것이라고 생각할수 도 있지만 사진 한장 한장에 읽혀지는 텍스트가 있다. 그리고 단순히 전시회를 위해서 준비 된 작품이 아니라 오랜시간 정확히 이야기하면 1991년도부터 일상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필자가 오래동안 흑백필름으로 거리에서의 일상문화에 대해서 기록해오다가 올해초 우리나라 거리풍경도 컬러가 있다는것을 느끼고서는 매체를 컬러필름으로 바꾸어서 작업 해오던 중에 우연히 김영섭 사진화랑의 전시제의로 열린 전시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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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영태님의 '세상바라보기'가 단순히 직설적 세상보여주기가 아니라, 한장 한장 읽혀지는 텍스트라고 풀이하는 건 당사자의 '의도'이고 당사자의 '주장' 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외부에 비쳐지는 모습은 사뭇 다를수 있지요. 아니 대부분 다르게 받아들여지게 마련이지요. 따라서 반이정은 김영태가 주장하는 바의 텍스트가 설령 존재한다손쳐도, 직설적 관조 이상의 무엇으로 이해하기엔 미흡하다고 본거지요. 저는 그리고 그러 말할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설령 저의 분석이 작가 본인의 속을 뒤집어 놨다 해도 말입니다. 이걸 두고 또 주관적인 평가라고 주장하실 참이신지요? 김영태님의 사진이 한장한장 텍스트를 갖고있다는 주장은 그럼 객관적인 건가요? 객관적이라는 근거를 보여주셨으면 합니다.
2. 전시회를 위해 준비된 게 아니라는 주장이야 말로 뜬금없는 선문답입니다. 김영태님은 김영섭화랑에서 제의를 했건 안했건 '전시 공간'으로 결국 입성하셨습니다. 전시가 개최된 마당에 애시당초의 의도가 뭐가 중요합니까? 제 글의 요지는 그런 작업이 굳이 전시장에서 개최될 필요는 없다 아니었습니까?
* 필자로서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미술평론가가 사진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미술전문지에 사진전 평론을 기고 한것은 환영하고 기뻐 할일이다.그러나 전시평은 객관적인 시각에서 객관적인 사진전정보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단순히 두번 전시장을 둘러 보고 본인이 전시회서문을 쓴 전시작품과 일방적으로 비교해서 평을 쓰는것은 객관적인 신뢰도에 의문이 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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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영태님. 저야 님보다 연배는 많이 어린 사람이지만, 30 대중반의 성인입니다. 저의 장래를 걱정하는 듯한 어투를 빌어, 빈정거리고 싶은 모양인데 그 정도를 눈치 못챌 나이가 아니란 말이지요. 이러실 바에 차라리 직설적으로 말하세요. 괜히 떳떳치 못해 보입니다.
2. 아울러, 전시장을 2번 둘러보고, 간단한 전시 보도자료를 살펴 본 후에도, 전시 비평을 못 쓴다면 그게 과연 평론가일까요? 김영태님은 전시 비평을 위해 전시를 몇 회 이상 관람해야 한다고 믿으시는지요?
* 용어의 선택에 있어서도 세계사진사 어디에서도 리얼리즘 사진이라는 용어는 없다.그리고 사진을 표현매체로 사용하는 사람은 소설가,화가,음악가 처럼 사진가이지 사진작가 가 아니다.반이정은 앞으로 사진에 관한 글을 쓰기전에 약간은 전문적인 사진공부를 하기 바란다.그것이 본인을 위해서도 문화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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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계 사진사에 '리얼리즘 사진'이란 용어가 등재되어 있지 않으면 저는 그 같은 용어를 만들지도 사용하지도 못합니까? 아울러 '리얼리즘 사진'이라는 용어를 통해 제가 지시하고자 하는 바를 과연 일반 독자들이 이해못할까요?
2. 또 '사진작가'라는 용어를 제 글에서 '처음' 봤단 말씀이신게죠? 엄격한 용어 사용 집착은 본받을만 합니다만, 사진작가란 말로 의미가 역시 안 통할까요?
3. 저와 일국의 문화 발전까지 걱정하시다니...참...
# 아울러 요 아래 님이 올린'한국사진의 흐름'은 bbs로 옮겨주십시오. 여긴 제 기고글만을 위한 공간입니다. 양해 바랍니다. 아니면 제가 옮겨드릴까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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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글에 답글을 주셔서 감사 합니다.
미술계의 흐름에 대해서 둔감해서 제가 비전공 평론가 운운 한것이 아닙니다.1990년대초반이후 우리미술계가 영상과 사진에 관심을 가지고 표현매체로 활용하고 있다는거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그러나 아직도 학교의교육제도(미술대커리큐럼)나 국립현대미술관 같은 대형미술관에서는 전문사진학예연구관제도가 없습니다.그것은 아직도 전반적으로 아직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것 입니다.
그리고 평론가의 용어선택은 중요합니다.왜내하면 그것을 읽는 독자들에게 사진예술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심을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반이정님의 표현데로라도 독자들이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을 지는 몰라도 왜 사진작가는 용어와 리얼리즘사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지 분명한 이유가 있는데 그러한 용어를 선택했다는것은 사진에 대해서 논하는 본인조차도 아직까지 사진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부족하다는것을 뜻하는 것 입니다.저는 학부에서 사회학을 공부한탓인지는 몰라도 전문적인 용어의 선택은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어떠한 용어를 선택했는지에 따라 그 사람에 대한 신뢰도가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제 작품이 전시하기에는 부적합하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말씀은 김영섭 사진화랑의 큐레이팅 능력을 의심하는 일이기도 하므로 또다른 문제를 유발시키는 이야기 이군요!!!
제 작품은 제가 별도 작업시간을 내서 작업한게 아닙니다.대구에서 서울에 전시회 관람 다니면서 그때 그때 느낌을 다큐먼트 한것입니다.그러나 전통적인 다큐멘터리 사진이라기 보다는 내용과 형식면에서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방법을 택하였습니다.이 부분은 조금이라도 사진의 역사흐름에 대해서 공부 한적이 있는 분이라면 공감 할것 입니다.
제 전시회는 전공한 사람들보다는 비전공자들이 많이 관람 하였습니다.그것은 제가 전시기간내내 전시장을 지키면서 대부분의 관람자들에게 작품설명을 했기 때문에 파악한 사항 입니다.제 표현방법이 직설적이라서 의도한게 금방 드러나는방법이었다면 일반 관람객들에게 설명이 필요 하지 않았을 겁니다.
저의 사진이 순수사진에 가깝다는것은 최근의 다큐멘터리 사진의 흐름과 마틴 파의 사진에 대해서 공부 한적이 있다면 이해 할수 있을겁니다.
반이정님이 제 전시장에 왔을 때 제가 지켜 보았는데 2번을 합쳐도 전시장에 머무런 시간은 10분이 채 않되었을 겁니다.
저도 인터넷사진웹진에 전시감상문을 부정기적으로 올리고 있지만 저는 다른사람의 작품에 대한 느낌을쓸때는 최소한 20분이상은 경우에 따라서는 1시간가까이도 투자 합니다.물론 그것도 능력의 차이라면 아무 할말이 없습니다.
다음작가상이나 사진비평상 심사를 할때도 한작품을 리뷰하는 시간은 그보다는 길것입니다.그정도의시간으로 작품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글을 쓸수 있는지 의문이 갑니다.
노수택씨의 작품은 저도 공감이가고 평소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이야기라서 재미있게 보았습니다.그러나 누가 보아도 노순택씨가 어떠한 이념을 갖고 있는지 금방 파악할수 있는 내용 이었습니다.그것은 제 개인적인 의견이 아니라 노순택씨 전시회 기간중 저와 동행하여 혹은 , 별도로 관람한 사람들이 그 작품을 관람하였는데 초보자들도 쉽게 파악하고 느낀점을 이야기하였습니다.그렇기 때문에 이미 객관화되고 공론화된 (그것이 비록한쪽의 의견일지라도)내용이므로 포토저널리즘적이라고 이야기 한겁니다.
현대사진에서는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시각에의한 다큐먼트와 객관적이고 공론적인 시각에 의한 포토저널리즘적인 사진을 구분해서 이야기 합니다.그만큼 세상이 복잡해지고 다양해졌다는 이야기 입니다.저는 노순택씨의 표현방법이 주관적이기는 하지만 그의 의도가 반이정씨가 주장한것처럼 쉽게 파악할수 없는 내용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작품의 완성도와는 다른 문제라고 생각 합니다.
월간 아트에 기고한 글이 어떠한 성격의 글인지 관계없이 본인이 서문을 쓴 글과 다른작품을 비교해서 글을 쓴것은 논란의 요지가 있는것은 분명하고 자기가 서문을 쓴 글에 대해서 또다시 평가하는 글을 쓰는 경우는 사진계에서는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이미 그부분에서 신뢰도에 문제가 생깁니다.
그리고 저는 잘못 스여진 사레를 저에 대한 평가에서 찾은것이 아니라 요어선택의 오류에 대해서 이야기 한것이고 그것은 앞에서 언급한것처럼 전문성에 문제가 있다는것을 의미 합니다.
아무튼 저의 전시회와 노순택씨의 작품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 주시고 글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그러나 좀더 사진에 대한 전문적인 공부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그냥 일반적인 지식과 느낌으로 글쓰는것과 그 분야에 대한 전문적인 공부를하고 글을 쓰는것은 결과가 다릅니다.
이 토론이 우리문화예술과 사진문화발전에 긍정적으로 기여하기를 바랍니다.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건필 하세요!!!
김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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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긴 답글이 이어질 수 있는 사안이고, 이러다간 그 끝이 보이질 않아 보이네요. 하여 제 입장을 간명하게 다시 정리합니다.
1. 우선 제가 동의 하는 부분은, 김영태님께서 지적한 것-즉 저의 기고글-과는 무관하게 저 자신이 사진 이론을 잘 모른다는 점입니다. 노순택씨 글에서 이미 밝힌 고백이기도 하고, 따라서 저의 용어 선택이 교정받을 필요가 있다는 점에 깊이 동의하며 그 점 감사합니다. 현재 제가 시간이 너무 없는 탓에 당장은 힘들겠지만, 사진 공부를 차후 차근히 할 생각 입니다. 그것과는 별도로 이런 '불리한 전제'조건에도 불구하고 사진에 관한 글을 제가 쓰지 않을 수 없는 노릇입니다. 사진이론을 괜시리 아는 체 할 목적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제가 글 속에서 이론을 들먹이지 않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여하튼 사진 '이론' 공부를 좀 더 보강할 것을 약속드리겠어요.
2. 저는 기본적으로 '호평'에 인색한 사람입니다. 심지어 서문을 부탁하는 사람에게조차 "마냥 좋게만 써주진 않을 건데, 괜찮겠냐?"고 물을 정도지요. art in culture 9월호에서 기술된 김영태님 작품의 '어떤 면모'에 대한 저의 혹평이 작가분의 마음을 상하게 했을 거라 믿으며 그 점은 인간적으로 솔직히 유감스럽습니다. 비판은 그만큼의 반동과 책임을 동반하니깐요. 하지만 그게 제 일입니다.
3. 이 논쟁에서 김영섭화랑의 큐레이팅 능력까지 들먹일 필요가 있을까요?
4. 저는 해당 작품을 오래 감상해야만, 리뷰(평문)가 가능하다고는 여전히 생각지 않습니다. 제가 노순택 작품을 오래 보고 썼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그 서문을 작품이 벽에 걸리기 전에 이미지 파일만 보고 썼습니다. 작품을 '총론'적으로 볼 것인가, '각론'적으로 볼 것인가의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5. 노순택의 작업에 관한 '분류'는 이 보드에서 해결날 부분이 아닐 듯 합니다. 하물며 당사자도 없는 자리에서.
6. 서문과 잡지 기고가 동일 필자에 의해 병행될 수 없다라는 지적에 '많은 부분'공감합니다만, 이미 이 부분에 관한 해명 역시 위에서 답을 드린 바 있습니다.
작가 분께서 직접 실명을 걸고 댓글(항의성)을 남겨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며 이런 일이 고무적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남의 비판에 인색한 사람이 아닙니다.) 저의 포커스 글 내용이 문제 삼은 어떤 '지점'과 무관하게, 김영태님의 작업 자체가 무가치하다고 단 한번도 느낀 적이 없다는 점 만큼은 받아들여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럼 이만.
ban E jung
http://dogstylis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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