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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zabel(2005-06-29 20:42:20, Hit : 1557, Vote : 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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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 6.29




근대건축을 통해 본 가상적 공간체험

이귀영 개인展

2005_0629 ▶ 2005_0712



이귀영_가상적 공간_혼합재료_빔 프로젝트 2대, 가변설치_2005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이귀영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5_0629_수요일_05:00pm

후원_서울시_서울문화재단




두아트 갤러리 2, 3층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5번지
Tel. 02_737_2505
www.doart.co.kr






자연적 이미지와 건축적 이미지의 충돌, 혹은 그 조화에 있어서 기존의 다양한 건축 형태들 중에서 현존하는 근대건축물에 초점을 맞추어 거기서 형성되어지는 감성을 시각화 하여 작업으로 표현함으로써 근대와 현대의 연속성 상위에 있는 우리의 모습을 미술체험을 통해 바라봄으로써, 근대건축이 항상 공존해 있는 우리의 일상에서 과거에 대한 역사적 재인식과 미래에 대한 발전과 도약의 장이 되고자 이번전시에서 제시해본다. 근대건축이 갖는 건축학적가치, 예를 들어 서구의 것과 우리의 것을 건축학적 의미로 접근하고자 하기보다는 그곳의 장소성. 거기의 시간대에 따른 인간의 감성을 다루어 보고자 한 작업이다. ● 유년기 기억 속에 아로새겨진 아버지의 편지에 보내져 왔던 서구유럽의 근대 건축물-예를 들어 돔 양식, 유리건축, 에펠탑등-의 사진 및 책자등에 담긴 이미지는 묘한 설레임과 알 수 없는 내용의 호기심은 어릴적 기억의 어느곳에서나 일어나는 인간사에 대한 묘한 상상적 추측과 그 의의를 되 짚어보고 그를 통해 현대인의 삶을 투영해보는 가상적 공간체험을 낳게된 것 같다. 따라서 나의 작업에 등장하는 건축적 요소들은 그 시대를 보여주는 자연환경과 다를 게 없고 그 곳에서 자연과 다른 인간이 만든 환경을 통해 누리는 행복내지는 불행의 양분된 감성은 곧바로 작업을 통해 반영된다는 점에서 즉흥적이고도 비 즉흥적인 내용이 교차한다..




이귀영_가상적공간-광화문_혼합재료_163×130.3×15cm_2005



이귀영_가상적공간-서울역_혼합재료_163×130.3×15cm_2005


회화는 리얼리즘 효과와 그 장소에 따른 내 감성적 효과를 믹싱시킬수있는 방법이고 그러한 회화와 시간적 예술인 모니터를 통해 보여지는 동영상 작업은 시대적 감성이 덧 붙여져 그런작업을 통해 교차된 감성과 그것을 뛰어넘는 고결함 (정지된 회화와 동영상이 합쳐져도 자연스럽게 화면에 연결이 되는) 마저 취할 수 있기를 감히 넘 보아 봤다. "근대건축을 통해본 가상적 공간체험" 이라는 개념이지만 한 작업 한 작업마다 난 일상을 버리고 그 곳에서의 여행을 떠난다. 작업은 늘 그렇듯이 그 작품속의 여행을 한바탕식 다녀오는 여정이요, 그 흔적과 느낌을 붓질과 질료의 움직임, 모니터속의 시간성으로 남기고 돌아오는 여정이었다. 그에 따른 노동은 스스로를 순수하게 해준다. 그렇게 새로운 작품으로 나를 맞이하면 나는 가난해도 부자가 된듯 배고파도 배부른듯 ...




이귀영_사유와 실존의 공간_혼합재료_182×228cm_2004



이귀영_사유와 실존의 공간_혼합재료_130×163cm_2003


우리 근대건축의 역사적 의의는 침략속의 아픔이, 억압이 아닌 그것을 딛고 일어서고자하는 재건의 의미에서 지금의 현대인과 그 의미와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아픔과 상처가 많은 사람일수록 빠르게 발전한다고 했듯 우리의 아픔을 담고있는 근대의 재건의 의미는 단지 건축적 의미 이전에 우리 본연의 자리로, 모습으로 가고픈 숨가뿐 도약의 행로였다. ● 그 도약의 시대에 난 아버지의 인천 수문식도크-갑문 항만청을 만드는 걸 보고 자랐다. 경부 고속도로를 설계하고 나라의 사통팔달 도로와 수출입의 문을 만드는 아버지 시대의 노력과 아버지 방에 놓여진 수많은 설계도, 또 대통령과 정부부처의 수많은 사람들에 앞서 프리젠테이션 하기전에 집에서 슬라이드를 통해본 유럽의 근대 이미지를 경험하며 자랐다.




이귀영_Virtual Architecture1_혼합재료_90.9×72.7cm_2005



이귀영_Virtual Architecture1_혼합재료_90.9×72.7cm_2005


60~70년대 외국에 나가실 때마다 아직도 전쟁중 인줄 알고있는 서구인에게 광화문에서부터 우리의 전통문화를 소개하기위해 슬라이드에 담았던 그 장소를 나의 작업으로 끌어내어 표현하고있다. 해태상이 있는 광화문의 사람들이 오고가는 회화에 역사적 상황들이 지금의 상황 속에 삽입된 동영상을 첨가해 장소와 시간적 교차선상의 우리의 모습을 표현해 보았다. 또, 반 투명한 재료속에 그 시대의 현존하는 건축을 새기고 서구의 근대 건축골조를 자연적 이미지와 매치시켜 표현한 회화작업시리즈와, 동영상을 통해 보여주는 가상적 공간 역시 근대와 현대의 연속성상 위에 있는 우리의 모습을 미술체험을 통해 바라보는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_2005_06 ■ 이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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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요시모토
6.17-8.21 로댕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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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스틱 아시아-숨겨진 경계, 새로운 관계

제3회 여성미술제

2005_0616 ▶ 2005_0703



판타스틱 아시아-숨겨진 경계, 새로운 관계 포스터_2005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성곡미술관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5_0616_목요일_05:00pm

한국_김화용_송상희_장지아_정은영_조지은_퀸콩_태이
대만_린 신 에바_수 쑤천 / 싱가포르_탄 카이싱 / 인도네시아_울리아 틴틴
일본_부부 들라마들린_스즈키 료코_시마다 요시코_야나기 미와_쿠사마 야요이
중국_린 톈미아오_왕 샤오후이 / 태국_우아붐루짓 찰리쯜라


부대행사
개막축하 퍼포먼스_2005_0616_목요일_05:30pm
플로어 토크_2005_0616_목요일_06:00pm





성곡미술관 본관 전시실
서울 종로구 신문로 2가 1-101번지
Tel. 02_737_7650
www.sungkokmuseum.com






제3회 여성미술제는 (사)여성문화예술기획(대표 안혜경)이 주최한 국내 초유의 본격 여성미술제인 제1회 여성미술제“팥쥐들의 행진”(1999년 예술의 전당), 제 2회 여성미술제 “동아시아 여성과 역사”(2002년 서울여성플라자)에 이어 세번째 개최되는 전시회이다. ● 본 전시는 2회에 걸쳐 개최된 전시에 대한 평가를 반영하여, 여성주의적인 관점에서 이슈가 되는 문제의식에 더욱 천착함으로써 내실을 다지고 여성주의적 문화실천에 보다 적극적으로 매진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 특히 아시아주의가 급부상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본 여성미술제가 국가, 민족, 성에 대한 기존의 언설들을 분석하고 새로운 담론을 형성하는 작은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또한 본 전시는 아시아 지역에서 처음 열리는 제9차 여성학대회와 때를 맞추어 개최되는 바, 아시아의 여성주의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공감대를 형성하고 연대의식을 다지는 의미도 갖는다.




송상희_東頭川(동두천)_컬러 프린트_152×127cm_2005


전시주제 : “아시아_여성_섹슈얼리티” ● ‘섹슈얼리티’란 성행위에 대한 인간의 성적 욕망과 성적 행위, 그리고 이와 관련된 사회제도와 규범들을 뜻한다. 성에 관한 사회적 관행들, 성적 경향성, 성 정체성, 성적 욕망, 성의 정치(성적 관계)가 섹슈얼리티의 내용을 이룬다.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역사적, 사회적 상황에 따라 다르게 맥락화 된다는 점에서 가장 첨예한 정치성을 띈다. 특히 지구화 시대를 맞아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국가의 경계를 넘어 이동하며 다양한 국면들과 충돌함으로써 현실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모순적 관계들을 드러내고 있다. 무엇보다도 서구 자본주의가 발견하고 명명한 ‘아시아’에 사는 여성들은 보다 복합적인 문제에 봉착해 있다. 서구 자본주의가 그들에게 ‘없는 것’을 ‘동양’이라 이름 붙이고 ‘동양’에게 단일한 문화적 동질성을 부여할 때, ‘동양’여성들의 섹슈얼리티는 가장 대표적이고 극단적인 왜곡을 겪게 된다.




퀸콩_왕콩광녀전_디지털 프린트_가변크기_2005



부부 들라마들린_Whore’s Diary “Pornography made by me and my customer_DVD_20′34″_2000



왕 샤오후이_The Eros of Flowers_컬러 프린트_120×200cm_2003


즉,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그리고 아시아주의의 다중적 압박 속에서 아시아 여성들의 몸과 성은 억압과 왜곡을 겪으며 첨예한 문화투쟁의 장으로 존재하게 된다. ● 그러나 이러한 여성의 섹슈얼리티 문제는 국가나 민족이라는 경계의 이해와 관련되지 않는 이상 공식화되지 못하고 제도나 정책에서 다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비록 다루어진다 하더라도 여성이 주체가 되는 인식과 시각에서는 다루어지지 않는다. 성에 대한 권력의 통제는 여성의 경험을 왜곡시키거나 여성을 침묵하게 만든다. ● 따라서 아시아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해 사유하는 것은 성이 맺고 있는 사회적 권력관계를 드러내는 일이며 그럼으로써 현실을 구체적으로 성찰하고 궁극적으로는 대안의 길을 모색하게 하는 일이다.




태이_dyslexia I (난독증, 難讀症)_영상설치_2005



야나기 미와_MIE_컬러 프린트_120×160cm_2005


참여작가는 총 5개국 총 19명이며, 각자의 본거지에서 본 전시주제를 자기작업의 주제로 삼고 작업해 온 작가들,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거나 지향하는 작가들을 선정하였다. ● 국내에서는 새롭고 대안적인 시각의 참신한 작업으로 인정받고 있는 30대 여성작가 7인이 참여하고, 일본과 중국, 대만에서는 국제적으로 가장 주목받고 있는 대표적인 여성작가들이 참여하며, 동남아시아에서는 최근 주목받기 시작한 신진작가들이 참여한다. ■ 여성미술제 추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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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e you in LOVE or NOT?

사랑과 이별展

2005_0623 ▶ 2005_0701



사랑과 이별展_2005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Studio_unit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5_0623_목요일_06:00pm

박청현_장지희_오수현_박혜란_전인성&윤가현_김은영
윤기원_김민이_함주현_안천호_장현순((c)열애 중-couple 군단)
박빛나_이은미_이진주&최가현_김선화_장인희_이장욱
문재일_최은성_김지영((s)이별 중-solo 군단)





문화일보 갤러리
서울 중구 충정로 1가 68번지
Tel. 02_3701_5755
gallery.munhwa.co.kr






사랑과 이별 : 열애 중(커플군단) VS 이별 중(솔로군단) ●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들, 이별을 준비하는 사람들, 이별 후 아픈 사람들, 사랑을 맹신 하는 사람들, 사랑을 불신하는 사람들이여, 여기 붓 하나로 당신들의 마음에 확실하게 염장을 지르겠다고 소리치는 사람들이 있다!




안천호_(c)사랑을 해도 혼자다?



박빛나_(s)정말 내가 마지막이니?



최은성_(s)사랑은 누군가에게 지독히 중독됨이다.



이은미_(s)사랑을 믿니?



김선화_(s)사랑의 통로는 수많은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 들어오시겠습니까?



문재일_(s)예전의 사랑이 돌아온다면 다시 만나겠습니까?


사랑에 울어 보고 웃어 보지 않은 젊은이들이 어디 있나. 소싯적 애틋한 사랑의 추억하나 없는 사람이 어디 있나. 20, 30대의 그 피 끓고 애간장이 타던 사랑이라는 소재가 현재 그 사랑의 최전방에 서 있는 젊은 작가 군단의 작업에 의해 갤러리로 옮겨진다. 분명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은 사랑을 하고 있거나, 사랑을 하고 있지 않거나 하는 두 가지 중 하나일 것이다. 스튜디오 유닛의 야심 찬 첫 번째 기획 전시인 염장展 은 사랑에 대한 젊은이들의 솔직하고 다채로운 시각을 엿볼 수 있는 자리이다.




이장욱_(s)그(그녀)와의 거리가 느껴지나요?



김지영_(s)아직 인가요?



이진주&최가현_(s)당신의 사랑을 시험케 하는 것이 있습니까?



장인희_(s)WHO DO YOU LOVE?



전인성&윤가현_(c)다가설수록 커지는 사랑을 믿으십니까?



함주현_(c)아무도 모르는 둘 만의 공간이 있습니까?


두 공간으로 나뉜 전시장중, 사랑 팀의 공간에서는 열렬히 사랑을 하고 있는 작가들의 닭 살스러운 염장 질을 볼 수 있다. 사랑을 하면서 늘 기쁠 수만은 없겠지만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질투와 오해, 눈물까지도 사랑을 하지 않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행복에 겨운 아우성일 뿐이다. 한편, 이별 팀의 공간에서는 이별했거나, 사랑을 믿지 못하거나, 사랑을 잊고 싶거나, 사랑을 경험해보지도 못한 여덟 작가들을 만나볼 수 있다. 이 비슷한 나이대의 젊은 작가들은 사랑이라는 기준으로 갈려서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사랑'이라는 영원한 화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한다.




박청현_(c)사랑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나요?



장현순_(c)생활의 발견, 정말 사랑했니?



오수현_(c)사랑은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다?



박혜란_(c)영원한 사랑을 믿나요?



윤기원_(c)기다려 봤니?



김은영_(c)그(그녀)와 마주섰을 때 설레입니까?


젊고 패기 넘치는 스튜디오 유닛의 첫 기획전은 사람들의 가슴에 불을 지르듯 혹은 물을 뿌리듯 염장을 지른다. 그 흥미로운 철학들은 박물관 안에서 추억되는 박재된 연인에 대한 단상이 아니다. 지금 여기에서 함께 숨 쉬고 있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의 일상이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이번 전시는 6월 23일~7월01일 문화일보 갤러리에서 열린다.




김민이_(c)안아드릴까요?



장지희_(c)운명을 믿으세요?



사랑에 관한 보드게임_2005


사랑에 관한 보드게임 Rule ● 전시장 바닥은 보드게임 판처럼 꾸며져 있다. 즉, 전시장은 하나의 커다란 보드게임 판이다. 게임을 통해 미술 작품을 쉽게 감상할 수 있으며 한 번의 방문으로 즐거움과 유익함 일거양득의 효과를 얻고 싶다면 참여 방법은 간단하다. ● 1. 전시장을 방문 한다. / 2.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당신은 보드게임의 ‘말’이 된다. / 3. Start! / 4. 작품 감상 후 작품에 딸려 있는 질문에 따라 이동하며 다른 작품들을 감상한다. ■ Studio_un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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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하제를 위한 모색

책임기획_최익진

2005_0622 ▶ 2005_0628



강석문_목단_한지에 수간채색_97×132cm_2005




초대일시_2005_0622_수요일_05:00pm

일상(日常)의 눈_고찬규_이길우_이도선_노청래_천병민_이창훈
이상(異常)의 눈_이동환_이구용_문희돈_최익진
상상(想像)의 눈_강석문_조성원_임종두_박수인_정경식





공평아트센터
서울 종로구 공평동 5-1번지
Tel. 02_733_9512






나로부터 “이젠 너희들에...” ● 한국화하기에 대한 비판적 시선에는 우리의 삶에서 전통적인 것이 작아지고 있다는데 그 원인이 있을 것이다. 삶과 연계되지 못하는 전통가치는 그만큼 현실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 전통적인 것이 주는 의미는 사라져 가는데, 그 사라져 가는 것에서 근본적인 모티브를 가져와야 하는 한국화 전공자들은 우리 화단의 역설적 조건을 온 몸으로 안고 있다고 보인다. 그러나 우리의 삶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전통적인 것이 근대적인 것에 의해서 점차 대체되어 가기 보다는 전통적인 것이 근대적인 시공간의 조건 속에서 끊임없이 다시 해석되고 다시 새롭게 구성되어 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전통과 근대는 완전히 단절된 두 가지의 세계구성 방식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서 끊임없이 대화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화하기는 어떤 고정된 원형의 전통에 대한 무작정의 집착이기 보다는 어떻게 한국적 삶의 양식(Korean way of life)이 끊임없이 새롭게 구성되어 가는 것에 대한 내적 성찰에 기반 하지 않으면 무의미해 질 수 있다고 본다. ● 이러한 맥락에서 한국화가 있다/없다 식의 논의 보다는 한국화에 대한 보다 더 생산적인 시각에서의 접근을 시도해 보고자 우리 하제전은 이번 전시를 준비하게 되었다. 현재 한국화가 당면한 문제의 제일 원인을 커뮤니케이션의 부재로 보았다. 전통과 근대의 커뮤니케이션의 단절은 자생적 근대화를 이뤄 내지 못함으로 인해서 우리 스스로 전통과 근대의 소통의 방식을 마련하지 못함에 그 연유가 있다. 즉, 언문일치가 되지 못한 상황으로, 전통의 현대화는 먼저 전통을 현재화시키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현재화란 거칠게 표현하면 고문(漢文)으로 되어 있는 지난 생각을 한글로 번역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재화 작업의 결과 새로운 문화적 자산들이 축적되며 이들 새로운 문화적 자산들은 우리의 일상적인 것들과의 끊임없는 만남을 통해서 제2, 제3의 새로운 의미들을 가능하게 해주고 있다. 따라서 그러한 현재화의 노력을 인문학자들만의 작업으로 간주하는 것은 지나치게 안이한 자세라고 생각된다. 우선 이러한 노정에 창작자의 상상력은 활력소가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하제전은 자체 이념으로서 '나로부터'라는 기치를 제삼 강조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러한 이념은 단순히 창작자의 입장에서 구호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부터 우리의 현실을 바라보는데서 출발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각을 우리들뿐만 아니라 시대의 중심에서 언제나 주변에서 있던 '독자들'과 함께 하고자 한다. 적어도 미술계에서 이방인으로 취급받아 온 독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사소통을 통해서만이 끊임없이 구성되어 가는 한국적 삶의 양식에 기반을 둔 한국화하기가 가능하다고 본다.




고찬규_봄비 그치다_한지에 채색_130×97cm_2005


「나로부터"이젠 너희들에게..."」 기획은 우리 사회에서 미술이 소비될 수 있도록 작품의 매개자인 동시에 수용자인 독자를 새롭게 정의하려는 것이다. 전시에서 작품을 '읽는' 사회적 행위를 통하여 의미를 재창출하고, 또 다른 전시주역으로서의 가능성을 주목하고자 하는 것이다. 작품에 대한 다양한 해석 가능성은 열어 둔다. 즉, 여러 층의 참조 물을 제시하여 독자의 해석에 개입하는, 지속적인 '말 걸기'의 전시 형태를 취하고자 함이다. 고전적 의미에서 전시 생산자의 범위는 작가만을 상정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그 범위를 넓혀 실재 작품을 해석하고 소비하는 '독자'를 주목하려는 것이다. 이 기획은 현대 미술이 지나치게 작가주의로 치우쳐 독해되지 않고, 스스로 소외되는 자기소외적 한계를 극복하는 차원에서 마련하였다. 독자의 범위를 전문독자(전공자)와 소외독자(교양인) 그리고 잠재독자(다수 대중)로 보고, 소외 독자를 설득하는데 1차 목표를 두고자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잠재독자까지를 참여케 하여, 그들과 보다 더 직접적인 관계 맺기 차원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그래서 그룹 내 회원을 소그룹으로 다시 분류하였으며, 각 개인 작업과 하제전의 생각이 읽혀 질 수 있도록 다층적인 참조 물을- 작품과 작품 사이의 전후 맥락과 작품과 텍스트 사이에서 자유롭게 상호 비교 할 수 있도록 준비하였다. 20세기 중반 이후 버거운 '물질'의 무게에서 벗어난 작품은 이제 새로운 맥락 속에서 읽히고 있다. 이러한 소통과정을 통해서만 작품은 온전히 사회적 의미를 획득하리하고 본다. 그렇게 하여 동시대의 사회, 문화적 위상에 대한 우리 작업의 좌표를 가늠해 보고자 한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뉴욕이나 런던 스타일을 지향하는 것은 아니며, 그렇다고 국수주의적 시각에 매몰 되어 추상적인 민족담론을 강조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한국성에 대한 섣부른 대안제시보다 우리는 다만 우리가 디디고 있는 현실 속 다양한 삶 자체를 받아 들여 '자기화'하고자 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창작자뿐만 아니라 작품의 수용자인 독자에게도 동일하게 열려 있다고 본다. 우리는 이번 전시에서 소통에 필요한 몇 가지 방법을 시도하고자 한다. 많은 조언과 격려를 부탁하고 싶다. ■ 최익진




이길우_소멸과 생성_장지위에 향, 꼴라쥬, 배접_116.7×90.9cm_2005


'현대 한국화'가 당면한 미래지향적 커뮤니케이션 - 창작그릅 ‘오늘과 하제를 위한 모색전’을 중심으로 ● (부분 발췌) I.들어가는 말 ● 이 글은 중앙대 한국화과 동문들로 구성된 창작 그룹 ‘오늘과 하제를 위한 모색전’이 작년에 가졌던 창립 20주년 기념전 이후, 새로이 그룹의 변화와 발전을 다각도로 모색하는 지점에서 준비하는 세미나의 기조 발제를 위한 용도로 일차적으로 작성되었다. 후에 이 글은 상기한 단체의 21주년 기념 전시에 대한 카탈로그의 서문의 용도로 재수정되었음을 밝힌다. 따라서 이글은 관객, 혹은 대중이라는 타인과의 커뮤니케이션을 도모하는 한국화의 향방에 관한 나름의 분석과 제안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지만 세미나 당시 또 다른 발제자 정준모 선생의 한국화 그룹의 현실에서의 역할과 전망을 다루게 될 글과 주제적 측면이 일정부분 불가피하게 겹치게 되기도 했다. 게다가 상기 주제에 부합하는 글을 만들기 위해 기존 글을 수정하고 IV장은 새로 쓰는 작업을 거쳤던 까닭으로 좀 더 방만해지고 산만해진 감이 없지 않다. 요청과 주문에 의해 시도된 글쓰기가 드러내는 당연한 결과일 터이지만 필자의 입장으로서는 ‘현대한국화가 당면한 미래지향적 커뮤니케이션’이라는 큰 주제가 세미나 때보다 더 이번 글에서 선명히 드러나길 바라는 마음이다. ...




이도선_Solitude_한지에 채색_162×260cm_2005


II.동양화, 한국화, 현대한국화 그리고 현대미술 ●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한, 동양화, 한국화 그리고 현대미술이라는 소제목 구분이 오늘날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중국으로부터 유입된 먹과 종이라는 매체의 특성을 끌어안고 시작한 우리 한국화의 정체성을 지금에서 다시 한번 명징하게 파악하는 것이고 오늘날 미술현장에서 현대미술이라 불리는 것을 기꺼워하면서도 한국화라는 이름을 끝내 버릴 수 없는, 장르의 특성상 가지게 되는 한계를 처절하게 인식하기 위한 출발점이 된다. 매체의 특성상 지니는 장르의 한계는 커뮤니케이션과 관련한 논의와 그 실제에 있어서도 디테일한 한계치의 영역을 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한국화라는 장르의 특성이나 정체성을 저버리지 않는 상태에서 소통을 시도해야 하는 버겁지만 필수불가결한 노력들이 필요한 것이다. ...




노청래_파주-용미리 마애불_장지에 수간채색_182×90.9cm_2002


III.현대한국화의 창작자와 수용자간 커뮤니케이션- 일반 매체 소통론 ● 현대한국화의 매체적 한계는 그 깊이의 골이 깊은 만큼, 기대되는 수용자와의 커뮤니케이션에서 잔인하게 소외당한다. 그 소외란 관객, 전문가, 대중들로 치환되는 수용자라는 커뮤니케이션 대상의 범위가 극히 한정적이 되는 것과 더불어 커뮤니케이션의 방편 역시 매우 제한적이라는 데서 파생된다. 이 장에서 우리는 현대한국화가 감당해야 하는 커뮤니케이션에서의 이러한 소외를 언급하면서 구체적인 현상 분석을 꼼꼼히 따져보기로 하자. 매체적 한계가 유발시키는 커뮤니케이션의 대상과 방편이 제한적이라는 것이 무슨 말인가? 우선 ‘매체적 특징’에서 연유하는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그 ‘방편’의 규모 축소를 먼저 알아본다. 한국화는 극소수의 예외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것이 전통의 것이든, 현대의 것이든지 간에 2차원 평면으로 시작해서 그로 귀결된다. ● ...서구에서도 오랫동안 모색되었던 회화의 끝없는 자기 변신은 2차원 평면을 탈피하여 3차원화 되든가 그것이 아니라면 잠재적, 실제적 운동을 부여하면서 비로소 변모될 수 있었던 것처럼, 한국화도 그 동안 회화가 끌어안았던 문제들을 고스란히 물려받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미술이 그것의 표현 언어로 가지고 있는 여러 특징 중에서 유독 비주얼이라는 ‘시각 이미지’에만 집착한 채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해 왔던 오래된 관습을 (현대)한국화는 매체의 특성상 그대로 물려받고 있는 것이다. 이미지를 파악하는 시각의 방법론으로 소통하기 전에 청각, 후각, 촉각 등의 방법론이 움직일 여타의 공간이 현대한국화의 커뮤니케이션에는 배제되어 있는 까닭이다. 게다가 현대한국화는 매체적 한계로 인해 3차원 공간의 문턱조차 쉽사리 넘어설 자신이 없어 보인다. 두 번째 논의꺼리다. 현대한국화에서는, 커뮤니케이션에서 수용자가 되는 대상의 범위들이 매우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는 소외의 양상에 직면한다는 부분을 생각해보자. ...




천병민_기억속으로의 삶_장지에 수간채색_190×99cm_2005


‘이미지만으로 시도하는 커뮤니케이션’이 한계라면 어찌 해야 될 것인가? 어떠한 당면과제를 현대한국화는 지고 있을까? 그런데 한국화가 아닌 회화 역시 그렇지 않던가? 그럴 수 있지만 그것은 한국화의 경우보다 자유롭다. 한국화는 여타의 2차원 회화처럼 이미지만으로 미술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는 데에 구속되어 있으면서도 또 다른 틀거리를 존속시켜야 한다는 이중의 딜레마를 안고 있다. 최소한의 한국화 (전통)의 틀을 존속시켜야 한다는 의무적 행위가 그것이다. 더욱이 문제는 현대한국화가 아예 현대미술로 불리기를 원하는 상태에서 변모될 창작에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지만 현대한국화가 전통의 현대화라는 업보 같은 화두를 내팽개쳐 버린다면 그것은 끝내 한국화가 아닌 이상야릇한 보이지 않는 경계에서 서성이는 정체불명의 존재가 되어 버린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은 아무리 실험적인 태도라 하더라도 원판에서 찍혀지는 행위를 통해 구현되는 것이 아닐 경우 우리는 그것을 판화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면서 비교해 볼 만하다. ... ● 결론적으로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한, 현대한국화가 당면한 일반 소통론은 이미지의 한계를 벗어나는 것이고 위험할 수 있지만 탈 평면에 대한 실험적 모색에 관심을 가져보는 일이다. 이것은 창작자와 전문가 그룹으로 설정된 커뮤니케이션 구조의 폭을 일반 관객으로 보다 넓히는 일에도 기여할 것이다. 그러나 현대한국화가 최소한으로 존속시켜야 할 매체적 특성은 저버리지 않아야 한다는 의무론도 신경 써야만 할 것이다. 현대미술을 하는 한국화 전공의 작가로 자리매김 받기를 원하는 작가들이라면 나는 차라리 그들에게 현대미술에의 자유를 찾아 떠나시라고 권하고 싶다. 현대미술은 근본적으로 실험과 새로움을 반기고 남들과 다른 독자적 조형어법에 후한 점수를 주는 아방가르드 정신에 아직도 경도되어 있는 장이기 때문에 전통에 한쪽 발을 담그고 찾아 나서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한국화가로 존속하기를 작가들이 원한다면 한국화의 최소한 매체를 존중하고 이를 지키면서 좀 더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모색을 감행해야만 할 것이다. 물론 화면안의 이미지 탐구로 현대한국화는 지속될 수 있지만 ‘그렇고 그런 식의 변화와 모색’을 진행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음을 작가들은 인정을 해야만 할 것이다.




이창훈_야-취마(夜-醉馬)_장지위에 분채_227×181cm_2005


IV. 현대한국화의 소통 확장을 위한 메타매체 소통론, 거시적, 미시적 접근 ● 일반소통체계와 연관해서 살펴본 현대한국화의 매체적 특성의 딜레마 논의는 필자가 거창하게 이름 붙인 ‘메타매체 소통론’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아야 할 것 같다. 이것은 역사, 제도를 둘러보는 예술사회사의 관점이라는 거시적 접근은 물론이고 개별적인 작가의 흐름들을 면밀하게 분석해 보는 미시적 접근을 다 포함하는 광범위한 주제이다. 그런 까닭으로 여기서 필자는 두 관점을 함께 수용하되, 논의의 주 대상인 그룹 ‘오늘과 하제를 위한 모색전’을 중심으로 현대한국화의 소통확장을 위한 모색들을 살펴보는 것으로 글의 내용을 한정하고자 한다. 우선 필자의 작명 ‘메타매체 소통’은 우리들에게 익숙한 ‘메타커뮤니케이션’에서 따온 것으로 meta라는 용어가 상기하는 ‘사이에, 뒤에, 넘어서’라는 뜻과 같이 ‘매체로부터 출발하지만 매체의 한계 너머의 범주를 포함하는 소통’을 의미한다. 현대한국화를 대상으로 하는 우리들의 메타매체 커뮤니케이션은 따라서 ‘거시=구조, 제도적/ 미시=행위, 상호작용’이라는 기존의 절대구분을 지양하고 통합하는 차원에서 논의될 것이다. 다음의 도표는 ‘구조와 행위’를 이분화해 온 기존의 사회학 체제를 부정하고 이를 교차연계(cross-link)하려는 사회학자 무젤리스(Mouzelis)의 도식을 차용하고 현대한국화의 커뮤니케이션을 이해하기 위해 괄호 안의 내용만 필자가 삽입한 것이다. ● 이 도식은 구조와 행위자가 다양한 수준들 사이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 점은 사실 ‘구조/행위’라는 하나의 이분법 속에서는 체계적으로 사고하기 어려운 것이었듯이 현대한국화의 매체적 딜레마를 언급하는 필자의 편협할 수 있는 ‘일반 소통론’ 논의의 전개와 확장을 위해서 매우 유효한 모델이 된다. 따라서 여기서부터의 논의는 매체적 딜레마를 넘어서서 현대한국화 커뮤니케이션 이해를 위한 구조와 행위 나아가 거시적, 미시적 관점들을 통합해 보려는 차원을 상정한다. 특히 창립 21주년을 맞는 미술 창작단체를 연구하는 차원의 이 글은 당연스레 거시적 행위자(그룹 ‘오늘과 하제를 위한 모색전) 분석과 미시적 행위자(그룹의 구성인인 개별창작자들) 분석은 물론이고 역사를 포함하여 사회문화의 상황을 최소한 점검해야 할 거시적인 제도적 구조 차원과 현대 한국화의 상업적 유통과 미학적 소통이라는 미시적 제도적 구조 차원을 두루 살펴야 할 의무를 지닌다. 하지만 할당된 지면과 본 논의 성격의 한계상 구조에 관한 한 그룹의 창립 당시의 사회문화사와 더불어 그룹이 갖는 의미를 매우 축소적인 입장에서 살펴보고 필자가 실제적으로 추가로 요청받은 그룹내 구성인들인 개별창작자들의 작품분석에 치중하고자 한다.




이동환_그가 지나간 자리를 더듬어 본다._장지에 수간채색_130×162cm_2005


IV-1 ‘오늘과 하제를 위한 모색전' 창립 당시의 사회문화적 상황과 그룹의 의미 ● 오늘과 하제를 위한 모색전의 창립전 서문에는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현재 한국화가 당면한 문제는 기존적 전통 문화에 새로운 문화가 유입됨으로써 야기되는 문화적 혼란과 갈등에 있다 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기존적인 것의 고답적인 수용이나 반발의 흑백 논리에서 벗어나 우리 자신들을 원초인으로 보고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 상황들에 대한 주의 깊은 관심을 반영하고자 했다. 그럼으로써 한국화가 빠지기 쉬운 관념에서 벗어나 우리의 현실을 피상적으로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체험을 통해 얻어진 삶의 느낌과 감동을 표현하고자 했다.” 이 그룹의 창립전이 1985년임을 상기할 때 서문에서 언급되는 ‘전통 문화에 유입된 새로운 문화’는 결국 60년대 말-70년대부터 도입되어 80년대 전반기에 팽배해 있던 모더니즘의 논리와 비록 전면에 가시화되지 않았지만 80년대 말부터 봇물을 터뜨린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이종생성 문화의 초기적 형태를 상징한다. ...




이구용_산-공명_장지에 채색_115×210cm_2002


IV-2 현대한국화그룹의 메타매체 소통론 ● 매체적 특징이 유발하는 현대한국화의 기본 혹은 최소한의 필수 조건은 무엇인가? ... 필자의 견해로는 최소한의 매체적 조건과 한계를 준수하면서 벌여야 하는 현대한국화의 미래지향적 커뮤니케이션 모델은 일차적으로 이미지만으로 소비하는 한국화의 관성을 벗는 일이다. 미술을 이미지로만 소통하려는 시도는 여타의 새로운 시도에의 의지를 좌절케 하기 십상이다. 현대한국화가 감당하는(혹은 감당할) 메타매체 소통이란 매체의 최소 한계를 안고 끊임없는 탈주를 벌이는 모색인 것이다. 그런데 한국화 전공자가 일탈하는 매체 사용으로 현대한국화의 장에 논의거리를 제공하고 나아가 변화의 지평을 넓힌다고 한다면 한국화의 공식적 수련기를 전혀 거치지 않은 작가가 도모하는 창작에의 한국화적 지향성을 우리는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까? 관습상 이러한 작가를 현대한국화가로 정초시키는데 있어 우리는 못내 주저한다. ... 소통에 관한 한, 앞서의 두 틀(형식적인 2차원의 틀과 정신성이라는 무형의 틀)을 항상 부여잡고 끝없이 탈주하려는 노력을 시도하는 것이 우리들의 메타매체 소통이 지향하는 바이다. 이것을 현대한국화 그룹으로 정초화 하려는 ‘오늘과 하제를 위한 모색전’에 국한시켜 언급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이 글 말미에 부록의 형식으로 제공하는 그룹 내의 개별 작가들의 끊임없는 자기모색에서 비롯될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들이 형식적, 정신적 틀 밖을 지향하든 그 틀 안을 지향하든 관습화되고 익숙한 형식으로 머물러 있는 자아의 정체적 위상으로부터 끊임없이 탈주하는 한 현대한국화의 미래적 커뮤니케이션은 희망이 있을 것이다.




문희돈_별 다섯개_종이에 혼합재료_140×140cm_2005


V.나오는 말 - 현대 한국화 그룹의 미래지향적 소통, 매개자 역할론 ● 지금까지 ‘오늘과 하제를 위한 모색전’과 관련한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우리들 논의의 모든 시도는 수용자를 설정(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하고 있는 창작의 주체 입장에서 논의되어 왔다. 이제 마지막 논의는 수용자로 돌아온다. 커뮤니케이션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언제나 수용자인 까닭이다. 미술의 일반 소통은 창작자가 일정한 전시공간을 찾아 나선 수용자를 대상으로 벌이는 행위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영화관 의자에 몸을 묻고 연속되는 이미지에 마음을 맡기거나 컴퓨터 앞에서 게임에 열중하는 것이 전시장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것 보다 더 나은 대다수의 불특정 다수를 전시의 공간으로 불러 모아 우리 커뮤니케이션 놀이를 해 보자고 보채기에는 역부족인 것이 사실이다. 미술의 이종형태가 현대인들에게는 더 수용하기 수월할 뿐 아니라 기호에 맞기 때문이기도 하다. 순수를 지향하는 미술작품의 소통이 창작자와 다른 창작자 그리고 기자나 평론가, 미술매개자들 이라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집안 잔치로 끝나는 상태의 악순환을 지양하고 효율화를 도모하기 위한 커뮤니케이션의 실제에는 매개체의 역할론이 강하게 부각된다. 이것이 개인이 아닌 그룹의 활동으로 확장되어 있는 경우에는 더 더욱 이러한 매개체의 역할이 커뮤니케이션의 효율적 가능태를 위해서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최익진_낙원도-48_석회에 채색, 나무에 염료_60×60cm_2005


현대미술의 장에서 개인의 창작자가 운위하는 영역과 비교해서 마음과 생각이 저마다 다른 이들이 서로의 필요성에 직면하여 꾸려낸 그룹 차원의 관객과의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실제는 개인과 그룹, 둘 모두 같은 목적의 성취 점을 지향한다고 하더라도 서로 그 차원을 달리 한다. 그것은 현대한국화 그룹에서도 예외는 아닐 뿐 아니라 오히려 더 증폭되는 차이를 생성시킨다. 늘 전통과 현대의 의미를 되뇌는 현대한국화 단체의 고민은 다른 미술창작단체에 비해 ‘전통의 현대화’라는 화두에 집착해야 하는 이중의 딜레마를 안고 있을 뿐 아니라 개인 창작자들의 전통에의 배반과 탈선을 주체적인 헤게모니로 장악해야만 하는 과제를 늘 부여안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대한국화 그룹은 스스로 미술매개체의 역할을 감당함으로써 늘 코앞에 있는 위기로부터 벗어나야 할 것이다. ● 그룹이 그들의 정기적 전시를 통한 소통의 방식을 고수한다면 개별 회원들의 개인전시를 다른 회원들과 함께 하는 자리에서 조망하고 비평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 지속시키는 것이 단체의 결속은 물론 보다 진전된 관객과의 소통 모색을 위해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는 그룹 안에서 최소한의 소그룹 차원 육성도 고려해 볼만한 대상이다. 그룹 스스로 담당하는 매개체 역할은 보다 능동적인 커뮤니케이션 활동의 수립을 위한 출발점이 된다. 일반 대중을 위한 교육프로그램, 타 단체와의 연대 같은 비교적 구식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매개체 역할이 정기전 같은 형태 속에서 생색내기로 유지된다고 할지라도 여태껏 한 번도 없었다면 지속적인 계획 아래 그 출발에 대한 실천도 모색되어야 할 것 같다.




조성원_하늘_한지에 채색_130.3×346cm_2005


1985년 창립 당시, 오늘과 하제를 위한 모색전‘의 출발은 ’개별 작가들 간의 소통과 협력이 주요문제’였다. 정기전을 준비하면서 작가와 작가간 커뮤니케이션의 양태로 출발한 것이다. 당시에는 창작에의 문제의식을 ‘무모한 실험적 경향이나 현학적, 정신적 경향보다는 한국화의 기본을 견지한 다분히 소재적이고 구상적인 경향’을 통해 개진해 보고자 하는 소박한 취지에서 비롯되었지만 최근 화단의 변모 속에서 요구되는 것은 진취적인 실험그룹으로 거듭나야만 하는 당위성 같은 것이다. 회원 모두 ‘오늘과 하제를 위한 모색전’이 현대한국화 그룹인 것으로 규정하는 것에 부정적인 견해가 없다면 한국화의 전통을 끌어안고 그것의 현대화를 위해 끊임없이 모색해야 하는 당위성 속에서 ‘작가와 작가간 소통’을 넘어서서 ‘작가와 매개체간 소통’, ‘작가와 불특정다수와의 소통’ 모색이라는 과제들을 꾸준히 꾸려나가야만 할 것이다. 그룹 차원에서의 전통의 현대화란 화두가 지속적인 움직임의 차원으로 계승되지 못하고 연간마다 형식적인 정기전으로 그룹의 역사를 키워간다면 독설이지만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그룹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이 나을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원론은 명예회원 전환 장치와 신입회원 영입 같은 조직개편, 발전적 방향을 꾸준히 도모하면서 20년사에 이른 ‘오늘과 하제를 위한 모색전’에게 해당되지는 않을 것이다. ● 현대한국화 그룹의 미래 지향적 소통은 그룹 내의 개별체들을 적극 끌어안고 매개체 역할을 스스로 감당하면서 초 집단주의의 운동의 차원을 창출하는데서 발현될 것이다. 여기에 그룹 내의 개별자들 상호간의 지속적인 간섭이 전제됨은 물론이다. ■ 김성호




임종두_飛天_한지에 분채_143×210cm_2005


지금, 한국화단에서의 그룹전의 의미와 전망 시작하면서 ● 미술사를 들여다보면 많은 미술사조들이 명멸하면서 그간 인류의 미술사와 정신사를 지탱하고 이끌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은 때로는 처음부터 그룹차원의 결속력과 이념을 가지고 출발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그룹은 처음에는 유사한 이념을 가진, 또는 작품의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연대해서 작품 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하고 그들의 활동을 당대의 비평가나 미술사가들이 지켜보면서 어떤 이름을 붙여주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아주 강한 결속력과 이념으로 뭉친 그런 그룹운동들도 찾아볼 수 있다. 우리미술사에서도 그룹차원의 활동은 많은 예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들 모임의 형성배경을 보면 유럽이나 기타 지역의 미술사에서 등장하는 그룹운동과는 좀 다르다는데서 우리미술사의 한계이자 미술운동의 취약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조선시대말 여항문인들의 자유분방한 작화활동을 그룹운동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고 추사와 그를 추종하는 무리들도 이런 예에 속한다 할 것이다. 또한 진경산수를 창안하고 이를 발전시켜나간 겸재와 그의 화맥을 잇는 경우도 그룹운동으로 볼 수 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활동은 특정한 유교적 이념과 미학을 전제로 했을 뿐 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유대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그룹과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 ● 한국미술사에서 그룹운동의 실체 ● 한국화에 국한해서 살펴보면 그간 많은 미술단체와 그룹운동이 명멸해 왔다. 특히 서구미술과 한국의 전통회화가 만나면서 존폐의 기로에 까지 몰렸던 전통회화의 경우 사승관계나 화숙을 중심으로 한 그룹이 주를 이루었다. 이는 도제교육이 성행하고 무릎제자라는 말이 통용되는 전통화단의 습성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전통적으로 시서화를 중시한 유교적 전통과 선비정신을 골간으로 한 전통 한국화의 세계는 스승을 중심으로 모임을 갖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런 개념에서 본다면 추사의 중국문인화 중심의 이념미를 넘어 수예론을 강조하면서 조선의 문인화 전통을 새롭게 일궈나간 1847년 조희룡이 중심이 되었던 벽오시사를 들 수도 있을 것이다. 이후 많은 작가들의 이합진산을 통해 한국화의 전통을 쇄신하고 계승하면서 한국전통화단은 진화를 거듭해 왔다. 이후 근대적인 의미에서 창설된 그룹은 다름 아닌 서화미술협회였다. ...




박수인_공간-生_한지에 먹, 채색_60×200cm_2005


글을 나오며- 소통을 위한 전제들 ● 이상과 같이 개략적으로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화단의 관객과의 소통과 읽히기 위한 시도는 그룹운동의 전개를 통해 나타났다.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한국화의 진흥이나 관객들과의 소통에 중심을 두었 다기 보다는 다분히 화단정치사적인 측면에서 출신학교간의 세 과시 또는 세 불리기의 측면을 아울러 가진다. 아니 후자가 더 중시되었다는 표현이 정확할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이는 유화계의 입장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 ● 게다가 지금까지의 미술운동이나 그룹운동은 소비자로서 관객들을 대상으로 하기보다는 공급자 중심의 일방적인 공급이었다. 소비자들은 소비할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아무리 좋은 것, 귀한 것이라 해도 소비가 이루어 질 리 없다. 물론 예술이라는 것이 관객의 기호와 관점에만 봉사하다보면 정체되거나 후퇴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혼자 앞으로, 앞으로 나가면 관객과의 거리는 더욱 멀러지고 말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그룹운동은 예전처럼 앞만 보고 달리는 기관차 같은 추진력만 가지고는 역부족이기 십상이다. 21세기는 정보화 사회인 동시에 유목의 시대라고 한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은 소통과 이해를 전제로 한다. 일방적인 의사결정 구조는 쇠퇴 하고 쌍 방향의 인터렉티브한 소통의 시대인 것이다. 따라서 그룹운동이나 미술행위도 작가 자신만의 영역이란 이기심으로부터 탈피하여 서로의 것, 공유하는 것이란 인식을 전제로 하여야 할 것이다. 특히 일반적으로 언어영역처럼 공통된 기호와 약속된 부호로서 상호 의사소통이 되는 것과 달리 시각언어는 작가개인에 의해 창안된 기호라는 점에서 소통에 일정 한 한계를 지닌다. 따라서 그룹운동이건 개인의 예술적 행위이건 간에 시각적 의사소통을 위한 문화적 능력의 배양이라는 측면에서의 그룹 활동이 전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각언어의 해독능력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시각문화교육의 중요성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 이를 위해서 개인적 행위의 표현과 그 사회적 확장으로서의 의사소통의 차이에 대한 검토와 시각적 의사소통과 문자적 의사소통과의 비교를 통해 시각적 의사소통의 특성을 규명함으로서 가능 할 것이다. 물론 이런 일은 창작자이자 공급자인 시각문화의 생산자로서의 화가들의 몫이 아니라고 주장 할 수 도 있겠지만 교육적 관점에서 본 시각문화를 통한 의사소통이란 의미의 단순전달이 아니라 의미의 생산과 교환이라는 구성적 특성이 강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적 의사소통은 시각적으로 읽고 쓰는 시각적 문해력(visual literacy)을 포함하는 적극적인 개념으로, 시각문화의 산물을 매개로 이해, 소통할 수 있는 구체적 의미의 실천과정에 가장 필요한 능력이다. 따라서 창조자들은 소통과 관객의 이해부족을 그들의 탓으로만 돌릴 것이 아니라 시각적 의사소통을 중심으로 관객의 문화적 능력을 향상시키려는 노력도 아울러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정경식_想 想_한지에 채색_112×145m_2004


과거의 예술가들은 일방생상과 소수의 애호가나 패트론의 힘으로 자신만의 예술영역을 지켜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예술가들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창조적인 능력과 더불어 표현 가능한 기술력 그리고 자신을 마케팅 할 수 있는 능력과 함께 관객을 이해시키고 설득시킬 줄 아는 능력이 더불어 요구되는 시대인 것이다. 또한 미디어의 발달로 종래의 시각언어인 회화나 조각은 여타의 새로운 시각언어와 기호들에 의해 그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를 누군가는 회화의 위기라고 정의하였지만 위기는 기회라는 점에서 이 기회를 활용할 방법의 모색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유고문화권에서 자라고 아직도 농경사회의 전통이 깊이 남아있는 한국화의 지지계층들에 대한 재교육과 이해를 확대시키려는 노력도 아울러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들은 아직도 전통적인 지필묵에 의한 회화나 사군자에 아련한 추억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 오늘날의 한국화란 격식과 예법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전통적인 한국화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때문이기도 하다. 이는 현재 한국화가들이 갖고 있는 전통적인 기법이나 격을 파괴하는 것이 새로운 것이라는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전통적인 교육과 기법의 연마도 중요할 것이다, 또한 이를 토대로 새로움을 추구하는 자세 즉 법고창신의 자세야 말로 소통과 이해를 얻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의미에서 다중과의 소통을 원한다면 학연이나 지연에 의한 그룹운동보다는 조형적 이념이나 미학적 공통관심사를 토대로 치열하게 토론하고, 소통하는 자신과의 소통, 작가 들 간의 이해와 소통을 골간으로 관객과의 소통을 시도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 될 것이라 감히 생각한다. ■ 정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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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현 사진전 '시차적응'

2005년 6월 24일 ~ 7월 5일 조흥갤러리


영화 촬영을 위한 세트장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축소판이며 확대판이다.
허구를 위해 현실적이며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영화 세트장들은 자연스럽게 현실과 비현실 모두를 가지고 있다.이 작업은 이런 양면성을 가진 인공풍경들의 비현실적인 면을 사진 안으로 분리, 흡수하여, 현실적인 단순공간으로 만들어 가상과 현실 사이에서 흐르는 시간을 잡아보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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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_Conversation

국민대학교 박물관 현대작가 초대展Ⅰ

2005_0530 ▶ 2005_0630



안중식_유물-탁족도_26.2×20.8cm_조선후기
권여현_작품-탁족도_사진 위에 아크릴 채색_69×66cm_2005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국민대학교 박물관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5_0530_월요일_05:00pm

참여작가_권여현_문형민_서은애_서희화_신장식_이동재_최지만_황두진




국민대학교 박물관 (성곡 도서관 5층)
서울 성북구 정릉동 861-1번지
Tel. 02_910_4210~2
museum.kookmin.ac.kr






박물관에서 만나는 유쾌한 도발 ● 귀중한 물건을 수집, 보존하는 박물관의 역사는 죽은 자의 시신과 함께 금은보화를 함께 껴묻었던 고대사회의 군주나 정복자 등의 무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오늘날 통용되는 박물관 또는 미술관을 지칭하는 용어의 어원은 기원전 300년경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학예의 여신들인 뮤즈에게 바치기 위해 건설한 무제이온(Museion)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이처럼 무덤, 성소(聖所), 사원 등은 모두 귀중하고 의미 있는 물건의 보존을 위해 주력했다는 점에서 박물관의 기능과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 시민들이 신전에 바쳤던 헌납품들을 보관, 전시하던 장소인 오피스토도무스(Opistodomus)나 중세시대 수도원의 도서관이나 성물(聖物) 보관소 역시 ‘보물창고’로서 박물관의 성격에 부응하는 공간이었다. 그래서 박물관에 대한 다양한 은유 중에서 ‘예술품이 가는 최후의 안식처’, ‘혈통적 유사성을 지닌 박물(博物)이 묻히는 가족묘지’ 등은 모두 수집, 보존이란 박물관의 전통적 기능에 대한 풍자적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16세기에 바사리(Giorgio Vasari)란 인문주의자가 메디치 가문의 요청에 따라 이 가문이 소장하고 있던 물건들을 계통, 계열별로 분류하여 전시한 우피치 갤러리아(Uffizi Galleria)의 개관은 값비싼 물건을 독점적으로 소유, 보존하기 위해 격리했던 것에서 ‘전시’란 새로운 방식의 도입으로 발전한 것이긴 했으나 여전히 그 물건들은 권력을 지닌 소수의 사유재산에 불과했고 따라서 그것의 접근은 엄격하게 통제되었다.




유물-조보_1879



문형민_작품-Untitled 31_자동차용 페인트_50×50cm_2005


사실 박물관이란 미술품을 수집, 보존, 전시하는 미술관을 비롯하여 동·식물원, 수족관은 물론 역사, 기술, 과학, 군사, 천문학적으로 가치 있는 자료를 다루는 각종 기념관까지 포함하는 넓은 용어이지만 이 글에서는 고고미술사적 자료를 취급하는 박물관으로 그 범위를 제한하여 논의하고자 한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시대와 소장품의 성격을 분류의 근거로 하여 박물관과 미술관으로 나누는데 이 글에서는 그런 구분과 관계없이 고고·역사적, 미술사적 가치가 있는 소장품을 수집, 보존, 전시, 조사·연구하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국한하되 굳이 박물관이나 미술관이란 용어에 얽매이지 않고 포괄적으로 논의할 것이다. ● 어쨌든 근대적인 의미에서 공공적 성격을 띤 박물관의 등장은 1789년 프랑스대혁명으로 고조된 시민정신과 민족주의(nationalism)에 부응하며 설립된 중앙박물관(Musee Centrale des Art)의 개관과 함께 이루어졌다. 당시 혁명정부는 혁명이념의 실천이란 차원에서 왕족과 귀족, 교회 등이 소유하고 있던 귀중한 물건들을 몰수하여 루브르궁에 모아놓고 교훈적이고 계몽적인 방침에 따라 이것들을 시민들에게 개방했다. 이로서 예술품은 개인이 독점적으로 소유하는 사유재산이 아니라 문화유산(patrimoine)이란 개념이 정초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근대적 의미의 박물관은 그 출발부터 이미 당대의 비평가로부터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1832년부터 미술비평을 쓰기 시작한 테오필 토레(Theophile Thore)는 이 새로운 시설에 대해 ‘명작의 공동묘지’, ‘죽은 뒤의 피난처’란 독설을 퍼부었고, 여기서 열리는 전시에 대해서도 ‘생기 없는 바자회’라고 공격했다. 심지어 20세기로 접어들자마자 미래주의자들은 괴질에 걸려 악취를 풍기는 박물관에 대한 저주와 함께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혀 있는 이탈리아를 구원하기 위해 박물관을 불사르자고 선동하기조차 했다. 20세기의 몇몇 지식인들 역시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지나치게 권위적이며 부르주아 냄새가 난다며 그 한계를 극복하려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는데 그 대표적 인물로 프랑스의 초대 문화부장관이었던 앙드레 말로(Andre Malreaux)를 들 수 있다. 말로가 제안한 ‘상상미술관(Le Musee Imaginaire)’은 영어권에서 벽이 없는 미술관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말하자면 사진의 복제기술을 이용하여 문화예술적으로 가치 있는 예술품들을 모은 책이 바로 그가 제시한 상상미술관인 것이다. 말로의 상상미술관은 디드로(Rene Diderot)가 지향했던 계몽주의적 이상인 진보의 연속선에서 예술품을 시공을 초월하여 항구적인 가치를 지닌 것으로 영구화하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복제기술을 통한 대리체험만으로 벤야민(Walter Benjamin)이 말한 원작의 아우라를 얼마나 체험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유물-아미타후불탱화_137×56.5cm_1875



서은애_유일무이 관음보살도(唯一無二觀音菩薩圖)_종이에 채색_140호_2002



유물-십장생6폭병풍_349×232cm_조선후기



서희화_장생-목단_혼합재료_150×14cm_2003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태생적 한계에 대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박물관은 여전히 ‘호기심의 방(le cabinet de curiosites)’이자 ‘기억의 저장고’일 뿐만 아니라 지식과 발견의 즐거움을 제공하는 교육기관으로서 중요한 제도임에 분명하다. 소박하게 말하자면 우리는 박물관에서 죽은 것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시대에 새롭게 태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소중한 물건들과 만난다. 그곳에 ‘모셔진’ 물건들을 박제된 주검으로 볼 때 박물관은 우리의 삶으로부터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다. 박물관에서 전시와 교육의 기능이 강조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벤야민이 「기계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이란 글에서 한때 신전에 봉안되었던 물건이 박물관으로 옮겨지면서 ‘예배가치(kultwerk)’는 ‘전시가치(ausstellungswerk)’로 전이(轉移)되고 그에 따라 그 물건이 애초에 지녔던 의식적(儀式的) 의미는 사라진다고 말했지만, 장소를 떠난 물건은 박물관이란 낯선 공간에서 새로운 삶의 뿌리를 내리며 더 풍부한 해석을 기다린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이 분리가 아니라 교류와 소통, 특히 동시대의 미의식, 취미, 요청과의 만남이다. 이러한 만남은 과거와 현재의 대화를 가능하게 만드는 동인이다. 물론 이러한 시도를 말로의 상상미술관의 물리적 구현으로 볼 수도 있으나 엄숙하고 때로는 신비적인 분위기조차 풍기는 박물관에 현대미술이 틈입해 들어간다는 것을 생경한 방식의 데페이즈망(depaysement)이 아니라 만남의 어색함을 뛰어넘는 대화의 제안, 누가 먼저 말을 걸든 상호이해를 위한 첫걸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유물-울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복제



신장식_반구대 암각화를 생각하며-사랑, 영원, 기쁜 날, 생명력, 복, 기원, 풍요
캔버스에 한지 아크릴 채색_194×144.5cm_2005



유물-백자양각매화문대접_178×9×7.5cm_조선시대



이동재_무제_캔버스에 실, 아크릴릭, 쌀_50×50cm


국민대학교 박물관이 이번에 처음으로 시도하는 소장품과 현대미술의 대화는 박물관에 대한 우리의 선입견, 즉 먼지가 뽀얗게 앉은 골동품이나 진열하고 있는 고리타분한 공간이란 관념의 더께를 벗겨내는 유쾌하면서 의미심장한 ‘도발’로 받아들일 수 있다. 사실 문화재를 전시하는 박물관 전시실에 느닷없이 현대미술을 끼워넣는 발칙한 행위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독일의 뒤셀도르프에서 최근에 주의사당 건물을 재건축하여 개관한 현대미술관(Kunstsammlung K21 Contemporary Art Collection)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21세기 동시대 미술을 신장하기 위해 20세기 미술관인 ‘K20’에 대응하여 만든 것인데 기획전시의 하나로 ‘제단(altar)’을 주제로 한국의 무속적 성향이 물씬 풍기는 굿판을 비롯하여 세계 각국의 제단을 재현한 설치미술전을 개최한 바 있다. ‘K21’이 어차피 현대미술관이니 자의적이든 아니든 간에 과거의 물건을 현대적으로 재해석, 재구성하는 것을 누가 말릴 수 있겠는가. 그러나 최첨단의 현대미술관이 시공을 초월하여 신비적이고 초월적인 제단을 끌어들이는 데는 나름대로의 미학적 원칙과 논리적 정당성을 갖춰야 할 것이고 ‘이상하고 해괴한 물건’들이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것에 대해 불쾌해 할 현대작가를 설득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 전시는 현대미술을 다루는 큐레이터들조차 신선한 시도로 평가할 만큼 비상한 관심을 끈 바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더라도 멀리 갈 것 없이 이미 몇 년 전부터 ‘어떤 조각가 모임’이란 작은 단체가 공주박물관 등지에서 문화재를 재해석한 현대미술을 문화재와 나란히 전시하는 모험을 시도한 바 있다. 만약 박물관이 혈통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권역주의에 몰입할수록 보수화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국민대학교 박물관의 이번 시도는 박물관의 고유기능에만 머무르지 않고 그 활동의 확장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유물-신라목항아리



최지만_21세기 신라 항아리_자기_h.33cm dia.31cm_2004



유물-조각보_74.2×78.2cm_조선후기



황두진_부분과 전체 시리즈_혼합재료_가변크기_2001


이 전시에 참가하는 작가의 선정에 있어서도 박물관의 이러한 기획취지에 따라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국립경주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목이 긴 항아리(長頸壺)」를 연상시키는 최지만의 발랄한 도자기를 비슷한 형태를 지닌 토기와 함께 배치함으로써 우리는 천오백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문형민의 섬세하고 미니멀한 작품은 마치 무녕왕릉에서 출토된 비문(碑文)을 조심스럽게 읽는 것과 같은 즐거움을 제공한다. 수렵, 어로의 삶을 기록해 놓은 반구대 암각화에 나타나는 여러 도상 중 특별히 고래에 주목하여 한국민족의 자연친화적이면서 순리에 순응하는 정신세계와 연결시키고 있는 신장식의 작품은 반구대 암각화룰 실물크기로 캐스팅해 놓은 부조와 함께 놓임으로써 암각화와 현대회화를 비교하는 시간을 갖게 한다. 그밖에도 평범한 일상적 오브제를 조합하여 십장생도를 재현하고 있는 서희화나 화면에 쌀을 붙여 백자의 섬세하고 아름다움을 연상케 만드는 작품을 출품한 이동재의 작품, 조각보에서 발전된 건축적 입체를 제시한 황두진의 작품은 주변의 소장품들과 어울리며 시간여행의 즐거움을 느끼게 만든다. 더욱이 근대기에 활동했던 안중식의 「탁족도」를 차용하여 작가자신이 능청맞게도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노인으로 분장하고 제자에게 시동(侍童)의 역할을 맡긴 권여현이나 「화엄경」 입법계품에서 묘사하고 있는 관음보살의 용맹정진 장면을 그린 불화를 공상과학 만화영화에나 나올법한 장면으로 번안하여 관음보살의 얼굴에 자신의 자화상을 그려 넣은 서은애의 ‘뻔뻔하지만 위험하지 않은’ 도발은 다 같이 현대미술의 중요한 표현방법인 패러디를 활용하여 그림을 보는 재미를 배가시키고 있다. 이러한 것이 문화재의 아우라에 딴지를 걸고 그 권위를 해체하려는 우상파괴주의자의 섣부른 신성모독이 아니라 문화재를 우리의 삶과 더 가까운 곳에 위치시키려는 즐거운 반란으로 받아들일 때 박물관은 저 먼 곳에 있는 ‘거룩한 장소’가 아니라 지금, 여기의 문화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이 전시가 우리 문화를 사랑하고 현대미술에 관심을 가진 국민대학교 구성원은 물론 많은 시민들에게도 널리 소개되어 모두 시간여행의 기쁨을 누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 최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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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lity, Dead or Alive

도기종 회화展

2005_0613 ▶ 2005_0703



도기종_봄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_90.9×116.7cm_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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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613_월요일_06:00pm




아트포럼 리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상동 567-9
Tel. 032_666_5858
www.artforum.co.kr






리얼리티의 낭만성 본 공간에서 올해 기획한 Reality, Dead or Alive展은 다중코드와 다중문화, 계급계층, 현장성, 대중성 등 가치의 해체시기에 창작자의 리얼리티가 과연 존재할 수 있는지, 한다면 어떠한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했다. 대안공간 아트포럼리에서는 5회에 걸친 전시를 통해 각자의 리얼리티를 펼쳐내는 공간에서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공존하는 리얼리티의 지반, 동일성을 짚어보고자 한다.




도기종_잠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_90.9×116.7cm_2005


두 번째로 열리는 도기종전은 리얼리티의 낭만성에 관한 고찰이다. 처음 도기종의 작품을 접했을 때 두드러지는 미감은 80,90년대의 민중미술의 맥락으로 읽혀지는 ‘현장성’었다. 당시 민중미술은 민중적인 정서표현이라는 것을 매우 직접적이며 때론 선정적일 정도로 강하게 표현되어졌다고 할 수 있다. 리얼리티가 갖는 힘이 하나의 형식으로 굳어져버린 평가의 토대에서 변증의 과정으로 변화되는 지점을 이 작가의 작업에서 찾을 수 있다. 형식과 내용에서 '현실의 재현'에 관한 사유를 읽을 수 있는데 일상 속에 숨어있는 리얼리티의 분화된 담론을 찾아내고 동시대의 현실에 관한 구조적 조망의 지점에 미술사적 의미의 낭만성이 존재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도기종_편지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_72.5×60.5cm_2005



도기종_Under The Table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_91.0×65.1cm_2005



도기종은 도시의 일상을 작품의 주요 모티브로 삼고 있는데, 특히 도시라는 공간과 어떤 것도 정지하여 존재하지 아니하는 도시의 급변하는 익명적 흐름을 잘 드러내기 위해 캠코더를 이용한 순간적 이미지를 포착한다. 캠코더를 통해 수집한 이미지는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의 소외된 찰나적 감성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상징물이자, 현시대상을 직설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물인 것이다. 작가의 시선이 대상을 흔들리거나 고립시킴으로써 작품에 드러나는 사람(들)은 개성이나 정체성을 지닌 주체라기보다는 대중으로서의 요소들로 제시하고 있다.




도기종_눈감은 여자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_112.1×145.5cm_2005



도기종_Reality, Dead or Alive 전시 풍경_2005


또한 시선의 내적 갈등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도시일상 어디서든 볼 수 있는 단면을 하나의 대상으로 바라보며 촬영을 하여 그림으로 그려지기까지 심리적인 갈등이 내재되어 있다. 그 갈등은 작가가 참여자라기보다는 관찰자이며 이미지 채집자로서 일정 거리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관객이 작품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대한 작가의 의도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관객이 그 이미지를 흔한 대중이 겪는 일상의 조각으로 구경하는 관찰자가 될 것인지, 그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아낼지에 대한 선택의 문제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제 그가 캠코더의 줌기능을 버리고 스스로 대중의 공간에 들어가 그가 담은 이미지들과의 거리가 없어지는 지점, 일치하는 순간에 관객에게 던질 새로운 질문을 기대해 보고 싶다. ■ 이주연


● 대안공간 아트포럼 리는 부천에 위치하며 젊고 실험적인 현대미술을 지원, 전시하는 공간입니다. 신예작가들을 발굴하기 위한 작가지원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포트폴리오를 접수받고 있습니다. 실력 있는 작가들의 많은 문의를 기다립니다.

● 대상_시각이미지를 생산하는 개인전 3회 이내의 신진작가
● 분야_개인_단체 / 회화_설치_사진
● 접수기간_수시접수 01:00pm 이후_매주 월요일 휴무
● 전시기간_2005년도 하반기 및 2006년 상반기 중 3주간 전시
● 제출자료_포트폴리오-작업개념, 이미지, 작업노트 포함(전시참가 팜플렛 및 기타 서류첨부)_모든 제출서류는 A4 size로 제출
● 접수방법_2005년 수시로 방문접수(Tel. 032_666_5858) 및 우편 접수 / 우편접수는 반드시 등기우편으로 / 01:00pm 이후 접수_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상동 567-9 대안공간 아트포럼리 담당자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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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rreally Real!

이유진_정규현_최승훈_박선민_신건우展

2005_0615 ▶ 2005_0630 / 일요일 휴관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갤러리 팩토리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5_0615_수요일_06:00pm

이유진_정규현_최승훈_박선민_신건우

전시후원_서울문화재단_Earth Projecct
전시문의_갤러리 팩토리_Tel. 02_733_4883





얼스프로젝트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5
Tel. 02_737_8808
www.downtoearth.co.kr






Surreally Real!_미술, 혹은 마술 ● 전시장 이전을 준비 중인 갤러리 팩토리가 6월, 인사동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인 얼쓰프로젝트에서 다섯 명의 젊은 작가들로 구성된 기획전을 준비하였다. 'Surreally Real!'이란 제목의 이번 전시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서 이루어지는 소통을 주제로 하고 있으며, 6월 15일부터 30일까지 약 이주 동안 계속될 예정이다. ● 문득 인생이 따분해지는 순간들이 있다. 매일 같은 시각 눈을 뜨고 같은 잔에다 커피를 마신 후 같은 정류소에서 같은 번호의 버스를 타고 같은 직장으로 출근을 한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이어지는 일상 속에서 새롭고 흥미로운 일 따위는 일어날 것 같지 않다. 지금 이 순간 미술은 우리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나? 밤 늦은 귀가길, 한참을 졸다 깨어보니 챙 넓은 분홍색 모자를 쓴 할머니와 단 둘이 지하철 칸에 남게 된 적이 있다. 그 생경하고 낯선 풍경이라니. 꿈이 아니란 걸 알고 있지만 눈앞에 펼쳐진 공간은 지금껏 내가 존재해온 그런 익숙한 현실이 아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 속으로 불쑥 들어와 버린 듯 묘한 느낌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상들. 이처럼 현실과 맞닿아 있지만 어느 순간 현실을 초월하여 당연하다고 생각해온 일상의 조건들을 뒤집어 보게 만드는 그런 힘이야말로 오늘날 미술이 우리에게 제공할 수 있는 가장 값진 지적 유희가 아닐까 한다. 이번 전시에 참가한 정규현, 이유진, 신건우, 최승훈+박선민의 작업들이 바로 그러한 미술의 힘을 보여주는 훌륭한 예라 할 수 있겠는데, 이들의 작업은 모호한 추상성에 기반한 일방적 의미전달이나 공허한 감상주의를 강요하지 않으며, 재현적 이미지들을 사용하여 현실과의 끈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시공을 뛰어넘는 초현실적 느낌을 불러 일으킨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유진_붉은 문_캔버스에 유채_72×56cm_2000


섬세한 붓질로 완성된 화면은 작가 자신도 작품의 결과에 대해 전혀 예상할 수 없을 만큼 철저하게 작가의 무의식에 의해 창조된 공간들을 보여준다. 이유진의 작품들은 이차원인 캔버스 위에 그려졌다는 자명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화면 위로 드러난 이미지들에 시선을 집중하게 하기보다는 그 뒤에 숨겨진 또 다른 공간들에 대해 강한 의문을 품게 만든다.




정규현_Untitled_디지털 프린트_61×41cm_2002


프랑스에서 보도사진을 전공한 사진가 정규현은 국내외 영화 세트장을 담은 연작들을 선보인다. 극중의 배경으로서만 존재하는 세트장은 정규현의 사진 속에서 배경이 아닌 주인공으로 재조명된다. 현실을 연기해내야 하는 배우들이 모두 빠져나간 세트장의 모습을 통해 작가는 진실과 허구, 현실과 비현실의 애매한 경계를 예리하게 포착해낸다.




최승훈, 박선민_Bigplantssmallpeople_컬러인화_가변크기_2004


어릴 적 넓게만 보였던 동네 골목길을 어른이 되어 다시 찾았을 때의 느낌을 기억하는가. 분명 같은 장소이건만 차 한대 겨우 빠져나갈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 그 곳은 이제 너무도 낯.설.다. 오랫동안 독일에 머물며 공동작업을 선보여온 최승훈과 박선민의 작업들은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길들여진 인식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담고 있다. 이 사진 작품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비례감을 파괴시킴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일상의 사물들 속에 숨겨져 있던 낯선 모습을 대면하게 한다.




신건우_Cold table_우레탄_100×300cm_2005


신건우의 이 작품은 현실 속의 오브제인 가구와 그것이 놓여지는 폐쇄적인 공간 속에서 피어난 작가의 비논리적인 상상력이 결합된 '동시적 공간(Simultaneous Space)' 연작 중 하나이다. "나의 작업은 두 공간 사이의 필연적 상황이 발생한 전후의 흔적을 수집, 변형하여 가시화함으로써, 그 가시화된 오브제를 통해 실제 공간과 허상의 공간 사이의 모호한 연계성을 관람자로 하여금 유추할 수 있게 한다. 여기서 말하는 두 공간이란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 실존하고 있는 실제 공간과 자유로운 상상의 공간인 허상의 공간을 지칭하는데, 이 두 공간의 연계는 사물의 본체와 그림자와 같은 관계가 된다."(작가노트 중에서) ■ 곽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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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최정화 _Choi jeong hwa   2006/01/23 1602 337
110   Michico Kon   2006/07/06 1602 323
109   크리스 마케르  zabel 2002/12/22 1603 498
108   알렉산드르 로드첸코(1891-1956)  zabel 2004/07/03 1605 362
107   Erwin Olaf (1959) [2]   2006/06/23 1605 408
106   요제프 쿠델카  쥔장 2003/05/01 1610 380
105   [펌] 리 프리들랜더  zabel 2003/02/16 1611 491
104   전시 모음. + 풍경이다 [4]  zabel 2003/11/04 1611 412
103   [기사]도토리 혹은 思異월드   2006/03/11 1611 521
102   [기사] 하이브리드  zabel 2004/02/25 1614 407
101   after 20 years _‘전영혁의 음악세계’ [2]   2006/03/30 1616 437
100   [기사]조습論   2007/12/09 1618 489
99   장영혜 중공업 [3]  zabel 2004/09/10 1620 2103
98     최경태 소각 작품 복원에 대한 후원 모금  zabel 2004/12/24 1621 447
97   Yoshitaka Amano   2007/12/17 1621 420
96   원숭이 돈세기  zabel 2004/03/22 1625 648
95   Philip-Lorca diCorcia  zabel 2005/10/23 1630 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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