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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zabel(2005-01-17 21:48:58, Hit : 1083, Vote : 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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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징가와 그레이트 마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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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어떤 대상이던 통지표 별점 매기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개..새들을 난 참으로 싫어한다. t(^0^t)   꼭 그런 식으로 사회가 구성되어야 속이 풀리는 사람들일 수록, 머리 속에 똥만 찬 경우가 많고 대부분 그런 분들의 자식들은 많은 고통을 겪는 것을 정말, 부!지!기!수!로 보았기때문.   경쟁은 전쟁의 문지방이란 것이 내 생각.
하물며, 저런 것이 교수신문에 실렸단 것 만으로도 충분히 한국은 절망적이다.  싫지만, 한국에서 산다는 증거로 저 좆같음을 스크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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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신문 2005년 01월 01일
특별기획_예술계의 맞수를 찾아서 ④ 사진
눈의 직관이 포착한 사물...풍경의 내적진화 흥미로워


이성 대 감성: 정주하 vs 민병헌

대다수 사진작가들은 작품의 컨셉 설정단계부터 이미 결과를 예측, 의도하면서 작업을 해나간다. 그 과정 과정에는 작가의 계산과 의도가 철저히 배어 있다. 이를 이른바 ‘이성적인’ 작업이라 지칭한다면, 그 극에 정주하 백제예술대 교수를 위치 지을 수 있다. 반대로 뭔가를 의도하지 않은 채 주어진 상황과 감정에 따라 작업하는 이들도 있다. 그 드문 작가로 민병헌을 들 수 있다. 그는 사유한다기보다는 자신의 몸의 감각을 따라 셔터를 누른다. 정주하와 민병헌, 둘은 1984년 첫 개인전을 가진 이래 20여 년의 비슷한 경력을 지녔지만, 구축해온 사진세계는 ‘이보다 더 다를 수 없다.’



정주하는 ‘혜생원’, ‘사진적 폭력’, ‘탑골공원’ 등의 주제로 사회저변과 주변부를 포착했던 것에서 ‘땅의 소리’로 시선을 옮겨왔다. 많은 평론가들이 이 연작에서 정주하의 독특함을 읽어냈듯이 그의 사진철학과 이론, 방법론을 보여주는 대표작이랄 수 있다. 여기엔 파, 마늘, 생강, 배추, 깨, 옥수수, 당근, 그리고 농민들이 등장한다. 곧고 생생하게 뻗어 오른 파뿌리들은 땅의 에너지와 기운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건 땅을 기다시피 해 바라보는 작가의 독특한 시선 때문이다. 반면 농민들의 얼굴은 모호해 보인다. 주름지고 고달픈 상이 아니라 밑에서 위로 올려다본 모습이며 포커스아웃 돼있는 추상적인 모습이다.

그동안 농촌이나 탄광촌에서 주름지고 찌들은 얼굴을 담은 사진은 많았다. 그러나 정주하의 기법은 특이하다. 평론가 이영준의 말처럼 그의 사진은 “그동안 멜로드라마화 된 땅의 이미지에 대한 반발”로 봐야 한다. 그건 땅과 노역사회를 포착했던 기존 텍스트들과는 다른 위치를 점한다는 의미다. 정주하가 작가노트에서 “사진은 사물이 가지는 존재론적 근거와 의미론적 근거를 보다 깊게 사고해야 한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그의 작업은 사진의 재현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실존적 삶을 드러내는 방법론에 초점이 가 있다. 평론가 진동선 씨는 “정주하의 사진은 사유를 드러내는 방식”이라고 평가한다.

정주하 작업의 독특함이 결국 ‘어떻게’라는 사유를 통한 방법론의 획득에 있다면, 민병헌은 자신의 감각을 중시하면서 작업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민병헌은 “머리카락이 설듯한” 몸의 감각이 느껴질 때 비로소 셔터를 누르는 작가다.

그의 작품들은 ‘희뿌연 불투명 빛깔의 텅빈 화면’, ‘긁힌 듯 맺힌 듯 엉켜있는 자국들’, ‘배경과 피사체가 구별되지 않는 평평한 표면’으로 묘사된다.  1987년 열렸던 ‘별거 아닌 풍경’ 전은 그의 작업의 근간이 되는 대표작이다. 당시 메이킹, 설치 사진이 유행했지만, 민병헌은 사진을 ‘사물의 눈’이라고 말하면서 줄곧 ‘눈의 직관’을 좇아 스트레이트만을 찍어왔다. 그가 카메라에 담았던 건 주변의 보잘 것 없는 돌멩이 하나, 풀 한포기였다.  

그는 결과를 미리 염두에 두지 않는다. 민병헌이 “일년에 사진기를 잡는 날이 보름도 채 안된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작가는 안개 끼고 흐린 날에, 즉 미세한 사물의 움직임이 보다 잘 드러나고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올 때 그것들을 포착한다. 평론가 신수진의 말처럼 “누구보다 자신의 감성을 충실히 따르며 작업하는 작가”다.



민병헌은 한 인터뷰에서 자기 작품에 대해 “관념적으로나 철학적으로 생각해보지 않았다. 이걸 이렇게 저렇게 찍어야 되겠다 미리 정해놓고 한다기보다는 물처럼 자연스럽게 흐른다”라며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는 것 자체를 곤혹스러워 했다. 그 특유의 회색톤이라던가 형식 역시 감정의 흐름 따라 움직이면 생겨나는 것이라고 한다. 그에 반해, 정주하는 자신의 작업에 끊임없이 사진의 존재론적 질문을 던지며, 이론적 작업을 병행해온 작가다.    

정주하는 독일에서 사진학 과정을 밟았지만, 민병헌은 아카데미에서 정식으로 사진을 배우지 않았다. 원래 음악에 심취했다가 뒤늦게 사진에 뛰어든 그는 한때 열등감이 있었으나, 이후 “오히려 학맥과 인맥으로부터 자유로운 작업세계를 구축해올 수 있었다”고 털어놓는다.

노장들의 실험과 창의력: 주명덕 vs 황규태

주명덕과 황규태는 둘다 고희를 바라본다. 불모지였던 1960년대 사진을 시작해 ‘사진이란 무엇인가’에 나름의 실마리를 제공했던 이들이며, ‘신선회’와 살롱 아루스의 리더 이형록이 후학들을 양성하기 위해 설립한 ‘현대사진연구회’ 출신이기도 하다. 주명덕은 중앙일보 사진기자를 거치면서 다큐멘터리 사진에 더욱 혼신을 기울였던 반면, 황규태는 경향신문 사진기자생활을 3년동안 하면서 답답함을 느끼고 결국 미국행을 결정했다.



황규태는 “도저히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작가로 일컬어진다. 마치 ‘젊은 작가처럼’ 새로운 경향에 끝없이 발을 뻗어나가기 때문이다. 사실 애초부터 그는 실험적인 작가였다. 1973년 첫 개인전에서 보여준 몽타주, 이중노출, 콜라주 등 다양한 암실기법을 이용해 내놓은 추상적이고 표현주의적인 작품들은 당시 사진계로부터 ‘사진도 아니’라는 거센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작가 육명심이 “치밀하게 계산된 특수기법을 구사한 주관적인 사진으로, 리얼리즘의 타성에 접은 사람들의 편협성을 일깨워줬다”라고 평했던 것처럼 실제로 그는 한국 현대사진사에 당당히 자리매김했던 것이다. 사진기자생활에 답답함을 느꼈던 황규태는 미국에 건너가서 스트레이트 사진을 부정하고 다양한 이미지들을 충돌, 견제, 보완하는 컬러 ‘메이킹 사진’을 즐겼다. 렌즈의 기록성 위에 자신만의 표현행위를 가미한 그의 사진은 ‘문명 비판적이면서도 동시에 내면세계의 초현실주의적 표출’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주명덕은 사진매체가 지닌 본질적 속성으로서의 기록성에 뿌리를 둔 작가로 1960년대부터 줄곧 한국 사회와 환경을 담아왔다. 주명덕은 흔히 ‘홀트씨 고아원’으로 상징된다. 당시 한국전쟁의 상흔을 그대로 드러냈던 고아원 아이들의 사진은 슬픔을 그득 자아내는 기록이었던 것이다. 그의 현실인식은 다큐멘터리 사진과 가장 잘 맞아 떨어져서, 1968년 ‘월간중앙’에 ‘한국의 이방’ 시리즈를 개제하면서 차이나타운, 기지촌, 무당촌, 고아원 등을 카메라에 담아내기 시작했다. 1970년대 초반에는 ‘한국의 가족사’라는 포토에세이를 실험해 국내 포토에세이의 근간을 마련했다. 이러한 초기경향에 대해 작가는 “사진의 본질은 기록이다. 사회의 아픈 부분을 기록으로 보여주려 했다”라고 털어놓은 바 있다. 하지만 주명덕의 리얼리즘은 당시 넘쳐났던 ‘객관성 위주의 리얼리즘’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표현방식이 내면적인 경향을 띠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공적인 것에서 사적인 것으로의 코페루니쿠스적 전환이다”라는 진동선 씨의 평처럼, 국내에 모던사진의 등장을 알리는 것이었다.

근래 들어 열린 ‘原풍경-도큐먼트’展 역시 사물에 대한 이미지를 증폭시키는 황규태의 실험정신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는 대량으로 생산되는 알약과 곡식같은 미세한 물질을 몇 백배에 달하는 거대 이미지로 확대해서 생명과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을 환기시켰다. TV나 컴퓨터 모니터의 픽셀, 알록달록한 알약 등을 찍어서 확대하는 작업이나 DNA를 조작해 생산된 미래인간의 모습을 보여준 것인데, 이는 얼마전 ‘나이에 걸맞잖게’ 시작한 포토샵 작업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떠도는 것들에 대하여’展에서는 꽃, 물, 구름, 씨, 먼지를 포착했다. 너무 미세해서 현실에선 손에 잡힐 수 없는 것들인데, 작가의 극사실 접사촬영과 과장확대로 카메라에 잡혔다. 이들은 먼지에 불과할지 모를 인간존재들이 아옹다옹 부대끼며 살아가는 이야기에 비유된다.

영상복합행위로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하는 황규태와 달리, 주명덕은 최근 찍은 풍경연작을 검게 인화해 톤의 변화를 가하고 있다. 이것은 이른바 ‘거리를 두고 바라보기’인데, 평론가 신수진의 말처럼 ‘호들갑스럽지 않은 애정으로 관조하기’라 할 수 있다. 올해 열린 ‘도회풍경’展 역시 인공물과 자연조경물, 그리고 하늘을 한 덩어리로 웅숭거리게 하기 위해서 독특한 톤과, 흘려찍기 등을 선보였다. 40여년전 한국 현대사진의 상반되게 개척했던 두 작가는 여전히 서로 다른 길에서 오늘날의 사진세계를 구축해가고 있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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