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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놈의 전시전시... 작가가 전시를 한다는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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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영 (독일의 현대미술여행 발행인, 영상설치작가)
1990년대 후반 미술계에 들어온 대안공간(alternative Space)은 젊은 작가들의 등용문으로 불리울 만큼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공립미술관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상업갤러리가 대중의 취향에 영합하고 있을 때, 젊은 작가들은 새로운 미술실험을 위하여 대관화랑을 전전하거나 그나마 상업화랑의 기획전에 목을 맬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안공간은 대관료를 지불하지 않고 전시를 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많은 젊은 작가들을 불러 모았다. 젊은 작가들의 실험의식을 대안공간들이 포용해주고 기존제도가 해주지 못했던 하나의 출구를 마련해 주었다는 데에서 대안공간의 역할은 매우 컸다. 앞으로도 이 역할의 중요성은 더욱더 커지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대안공간들이 구체적인 대안예술의 주체로서 제 기능을 감당하지 못하고, 우리나라와 같이 미술시장이 열악한 상황에서 대안공간 출신 작가들이 실질적인 미술제도 안에서 자리를 잡도록 전시 후, 관리가 철저히 되어지지 못하는 것은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았다. 필자는 이글을 통해서 대안공간을 이야기 하는 과정에서 대안예술에 관한 논의가 생략된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제기와 함께 서구 대안공간의 대안예술운동들이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지난 2002년 국제 대안공간 심포지엄에서 거기에 참여한 여러 나라의 대안공간들에 대한 대안공간 규정은 매우 애매모호했다. 어떤 공간은 상업갤러리에 가까웠고, 어떤 공간은 미술가 협회에 가까웠다. 복합문화공간으로서 대중친화적인 공간도 있었고, 순수예술가 중심의 실험을 중시하는 공간도 있었다. 따라서 대안공간논의를 공간상의 분류로 접근하는 일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대안공간을 말하기 이전에 대안적 예술운동이 머물렀던 공간에 대한 해석을 하는 편이 훨씬 본질에 접근하기 용이할 것이다. 또한 대안예술운동은 각 나라마다 지역마다 제 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대안공간의 대안예술 활동을 어떤 일정한 패턴으로 획일화 시키려는 시도는 대안공간의 본질을 왜곡시키는 일이 될 수 있다.
아무래도 대안공간을 이야기 하려면 1960년대 말 미국의 상황을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겠다. 미국에서 대안공간이 처음 생겨날 때, 예술가들은 예술의 상업화나 제도화된 미술관의 틀을 거부하고 자신들이 생각하는 예술의 새로운 틀을 갈구 했었다. 남성중심의 미술사나 미술관운영에 반대하는 여성미술인들이 그러했고, 동성애자, 소수민족, 유색인, 제3세계, 비주류 예술가에 속한 작가들에 의해서 이러한 대안공간 이 대대적으로 확장되었다.1) 이들의 대안공간 운동은 실질적으로 미술사적 수정주의 운동과 포스트모던적 소수자의 권력찾기와 그 맥을 같이하여 발전해 갔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대안미술운동은 장소특정성(Sitespecifity)의 맥락에서 공간과의 밀접한 연관관계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주류미술공간이 잘 정돈되고 깨끗한 화이트큐브(White Cube)에서 권력의 상징으로 군림하고 있었다면, 대안공간의 미술들은 허름한 창고공간이나 폐공장등지에서 공간의 특수성을 드러내는 미술이 많았다.
미국에서 대안공간이란 이름으로 불리우는 미술공간의 공공영역에로의 확산이나 소수자들의 자율활동공간으로서의 미술공간 등의 확산은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 내에서도 비슷한 변모 양상을 보여준다. 프랑스에서는 제도적 미술에 대한 대안 활동으로 좌파적 정치성향의 지성인들을 중심으로 한 자율, 자치 운동이 거대담론에 눌려 희생되었던 미시적인 가치들의 회복을 위해 투쟁하게 했고, 독일 내에서도 프랑스 좌파의 영향이 미술판의 판도를 극단적으로 바꾸게 된다. 대표적인 사건이 1964년 카쎌 도큐멘타에서 있었던 학생 시위와 카쎌도큐멘타(Kassel Documenta)의 창시자 아놀드 보데(Anold Bode)에 반대하고 새로운 도큐멘타에 대한 요구가 극대화 되었다. 당시 학생들은 카쎌 도큐멘타에 반대하는 전시회를 조직해서 일종의 파티를 기획한다. 모더니즘의 권위주의적인 미술과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보편주의와 국제주의를 표방하는 도큐멘타가 즉흥적이고 자율적인 예술을 갈망하는 학생들과 부딪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갈등은 프랑스에서 68학생운동이 극을 이루었던 해, 제 5회 카쎌 도큐멘타에서 헤럴드 제만(Harald Szeeman)을 예술감독으로 위촉하면서 절제된 감수성 보다는 저항적 태도가 중시되는 예술현상으로의 대대적인 전환을 맞이하게 된다. 예술작품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예술 환경(Enviroment)”이 창작의 대상이 되는 변화의 계기를 마련하게 된 것이다. 이와 때를 같이해서 이탈리아의 베니스에서도 학생들이 권위적인 베니스 비엔날레에 반기를 들게 되는데, 이탈리아 당국은 사복 경찰을 베니스 비엔날레 행사장에 대거 배치하고 비엔날레를 치르는 웃지 못 할 상황이 벌였다. 당시 출품했던 상당수의 작가들은 작품을 철거하거나 전시를 보이코트하는 불상사도 벌어졌다.
이처럼 유럽에서는 대안공간으로 주목받을 만한 공간이 생겨났다기 보다는 예술가의 자율과 자치를 외치는 "예술자치 운동(Die Autonomie Webegung)"이 더 눈에 두드러진다. 프랑스의 경우, 스쾃티스트로 불리우는 극좌파 예술운동가들이 불법점유를 통해 자신들의 아뜰리에 공간을 확보하고 거기에 전시공간을 만들어내는 등의 활동이 있었다. 그들은 그동안 경직된 미술제도가 만들어낸 모순들을 폭로하고 비주류미술운동의 물꼬를 텄다. 이들이 점유한 공간들 안에서 기존의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볼 수 없었던 그들은 나름의 미학을 들어내는 예술작품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파리에 만도 28개의 스쾃 아뜰리에가 존재한다고 하니 30여년이 넘게 지속해 온 그들의 예술자율운동의 성과는 가히 주목할 만하다. 이렇듯 프랑스에 존재하는 대안공간들이 스쾃운동을 쉽게 비껴나갈 수 없는 것처럼, 독일의 대안공간들도 역시 이러한 "예술자치 운동(Die Autonomie Webegung)"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진다.
18세기 이후에 공예학교나 수공예 업자들의 길드조직에 소속되었던 독일의 미술기구들은 미국이나 프랑스와는 달리 철저하게 지방분권적인 조직이다. 왕립이거나 제후의 관할 영역안에 있었던 미술학교도 지금까지도 철저하게 지방분권의 틀 안에 있고, 지역 나름의 역사를 자랑한다. 지방의 문화예술기구들은 철저히 지방의 유지들의 보호아래 존재하고, 예술가나 수공업자 협회들은 조직화된 지역 후원가들이나 애호가 층과 연관체제 아래서 존재해 왔다. 이러한 전통이 독일의 거미줄처럼 조직화된 쿤스트 페어라인(Kunstverein)조직을 가능하게 했다. 흥미롭게도 프랑스 좌파사상이 독일 철학계를 강타 했을 때, 예술가들은 이 조직망 아래 둥지를 틀었다. 따라서 독일의 상당수 "예술자치 운동(Die Autonomie Webegung)"가들은 “사단법인 ○ ○ ○미술가 협회(e.V ○ ○ ○Kunstverein)"등과 같은 이름으로 불리운다. 설립 취지에 따라서는 동성애자들을 위한 공동체, 실직자공동체, 여성 및 소수민족 예술가 공동체등이 있는데, 프랑스나 미국에 비해서 활발하지는 않다. 어떨 때는 일반적인 쿤스트페어라인 조직들과 구분조차 어려울 때가 많다. 이들 조직은 대다수가 공간중심의 조직이다. 이름이 미술가 협회로 불리기 때문에 우리나라 식으로 예술가들의 이권을 위해 모인 직능단체 조직으로 이해하면 곤란하다. 프랑스의 작가들이 불법점거를 통해 쓸모없어진 공공건물이나 법적문제에 얽힌 사적재산으로서의 건물들을 예술가의 소유로 탈바꿈 시킨다면, 독일의 예술가들은 상당수 적법적인 절차를 따라 사단법인의 형태로 조직된다. 따라서 독일 내에는 스쾃 류의 불법점거 아뜰리에 보다는 제각기 목적을 달리하는 예술가 공동체(Kuenstler Gemeinschaft)나 아뜰리에 공동체(Atellie Gemeinschaft) 같은 것들이 많이 존재한다. 이들은 대부분 사단법인체다. 이들은 디스코텍을 운영해 협회의 기금을 조달하거나 문화부에 기금지원신청을 내서 운영비의 일부를 조달받는다. 이러한 예술가 자율집단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서 이들이 영리행위를 할 때, 이 행위에 대한 세금을 문화예술활동에 사용하게 하는 독특한 형태의 사단법인체 규정도 있다. 정부보조금등 지원금에 목을 매는 부자유한 상황에 반발하는 이들에게 간접적으로 기금을 지원해 주는 것이다. 독일의 지방분권적인 정치구조의 특징 때문인지, 지역주의를 강조하는 지역 나름의 특색을 갖춘 공간들이 많이 있다. 어떤 공간은 미국식 신자유주의에 맞서 싸우는 지역주의 문화운동의 중요한 요체로서 기능하기도 한다. 탄광촌 지역에서 탄광촌의 역사와 맞물린 예술운동이 뿌리를 내린다든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공장지역의 문화적 보존과 가치를 재확인 시키는 작업은 이들 예술가들의 몫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상당수 이러한 운동에 간여되어 있는 작가들은 아카데미즘의 세례를 받지 않았거나, 주먹구구식의 운영을 하는 아마츄어들인 경우가 많다. 이들은 어떻게 보면 영원한 비주류 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자신의 지역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에 충실한 문화활동을 해나가는 지역자치와 자율문화의 파수꾼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안공간 작가들은 주류에 진입하기 위한 중요한 거점에 위치한다. 그만큼 대안공간의 위상과 역할이 강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예술가 공동체 혹은 아뜰리에 공동체의 작가들은 우리나라의 대안공간과는 달리 주류이기를 거부하고 주류가 가지는 한계에 대해 비판한다. 비주류가 주류를 대체하는 성향이 전 세계적이라 하더라도, 이들 활동의 근본 목적은 예술활동의 자율성과 그 어떤 시스템의 제약에도 구속받지 않는 자유를 쟁취하는 일이다. 상업주의가 예술을 집어 삼킨 지, 이미오래고 작가로 대성하고자 하는 작가의 욕망을 미술제도가 집어 삼킨 지 이미 오래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안예술 활동가들은 이러한 시스템에서부터 해방된 보다 자유로운 제도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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