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경(萬華鏡)
애매한 한국적 공간에 눈길주기
책임기획_권순평_염중호
2003_1126 ▶ 2003_1217

김현민_The other side_컬러인화_100 100cm_2002∼2003
초대일시_2003_1126_수요일_05:00pm
김기태_김윤호_김지범_김현민_김혜원_양재광
이주형_염중호_정은정_최원석_최재경
후원_한국문예진흥원_Darling Art Foundation
프로젝트 스페이스 집
서울 강남구 신사동 534-14번지(가로수길)
Tel. 02_3446_1828
도시 공간을 소요하다 ● "모-던생활이란 대체 어디 있는 것이냐?..그것은 도시의 산출이다. 도시라 하더라도 도시의 거리거리 귀퉁이마다 이 모든 생활이 깔려있는 것도 아니다. 서울로 말하면 종로 네거리라든지 진고개라든지의 포도위에 또는 카페, 레스토랑, 영화관, 음악회 등의 의자 위에서 영위되는 생활이다...전기의 각 장소에서 살며 일하는 사람들의 생활이 아니오 그 지점에 모여드는 딴판의 사람들이 그 지역과 장소를 빌어서 영위하는 생활이란 말이다. 모던 생활은 가두생활란 말이다...따라서 모던생활은 가두에서는 천량역자 노릇을 하는 모보와 모걸이 그 가정에서 돌아와서는 마치 꼬리 빠진 새와 발톱 잃은 매와 같이 되는 것이다. 모던 생활은 가두의 생활이다. 말하자면 이런 '거리'를 만들어내어서 그것을 길러가는 근대적 대도시라는 괴물의 소산이다."_적라산인, '모던 수제', 신님_1930년 7월호_김진송_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현대성의 형성_현실문화연구_1999_331쪽에서 재인용 ● 근대성이 구현되는 '삶의 양식'으로서 공간(도시)은 다양한 기억과 습속들을 실어 나른다. 공간은 물질적인 측면만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지니고 있는 정체성과 인식을 형성하는 사회적 의미 또한 지니는 것이다. 공간이란 하나의 공동체 안에서 삶이 조직되는 구체적 형식이고 경험과 사유가 여타 다른 사회적 요소들과 직조되도록 하는 물리적, 인식적 지반이다. 그런가하면 우리들 육체는 오감을 통해 외부 세계를 인식하는가 하면 정체성을 발견할 수 있는 물리적인 토대가 되기도 한다. 공간 안에서 실재하는 물리적 육체는 공간과의 연관성 속에서 인지된다. 따라서 공간의 변화는 인간의 의식적 변화를 초래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된다.

최재경_브라보 시티_디지털 프린트_60×160cm_2002∼2003

김기태_절실한 아름다움_디지털 프린트_24×60inch_2002∼2003
현재 우리가 지각하고 행동의 내적 원리로 상정하는 시. 공간 개념은 근대적 발명의 소산이다. 즉 시간과 공간은 절대 형식의 도그마로서 인간의 삶을 지배해왔던 것이다. 서로 상이한 사회, 역사적 조건에 따라 발명되는 것이고, 그것은 역으로 문화를 생성, 진행시키는 기제로서 작용한다. "공간적 배치는 이미 그 자체가 사회적으로 형성되는 사회적 현상이며, 사회적 변화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통로며, 나아가 공간에 대한 추상적 관념 역시 사회적 차원에서의 이러한 공간적 배치와 무관할 수 없다"_이진경_근대적 시.공간의 탄생_p.26 근대성은 전통과 대비되는 시간과 공간의 형식들 안에서 구체적인 역사성을 획득하며 개인과 사회에 자신의 기억을 채워놓는다. 이렇게 '공간'이란 문제설정을 통해 한국의 근대성을 바라볼 때 우리는 그 경험에 내재하는 보다 역동적이고 가변적인 형식들을 발견하게 된다. ● 식민화된 공간을 점유하고 있던 서구 근대성의 산물인 시각적, 물질적 구현물들은 근대적 운영체계에서 배제된 식민지 조선인들에게 상당히 매혹적 위력을 발휘하고 또한 그러한 물적 구현물을 생산해내는 그 배후에 자리잡고 있는 거대한 힘에 대한 욕망도 이끌어낸다. 즉 식민종주국의 근대성과 식민지 조선의 근대성을 매개해주는 것이 근대성의 겉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물질성'이고 이는 식민지 조선인의 주체성을 형성하는 중요 요인이었다. 이후 새로운 지배자로 전후 한국에 도래하여 신식민지적 질서의 수립을 주도했던 미국이 가져다 준 근대성의 문화에도 적용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근대성의 물적 구현물은 무엇보다도 '도시공간'에서 구체화된다. ● 서양식 집을 짓고 서양식으로 살고자 하는 것이 당시 진보한 문명인들이 사고였으며 일본을 통해 들어온 서구문화에 매혹되었다. 공간 역시 그렇게 급변해나갔다. 당시 젊은 지식인들, 신여성들에게 동경(東京)은 상징적인 장소였고 '동경의 대상'이었으며 유토피아이자 동시에 식민지 조선에서의 탈출구이기도 했다.

최원석_형상이 있는 풍경_젤라틴 실버 프린트_24×20inch_2002∼2003

정은정_동물 Episode II_컬러인화_160×120cm_2002∼2003
1898년 서울에서 전차가 다니기 시작하면서 서울의 공간은 급속히 변화한다. 전기가 들어오고 1900년에는 종로 네거리에 가로등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당시 가장 번화한 거리는 남대문과 동대문 사이에 있는 종로였는데 이후 일본인이 만들어가던 명동, 충무로 거리가 서서히 서울의 중심이 되어가고 있었다. 백화점과 카페와 다방 등이 생겨나면서 소비와 향락의 세계가 뒤따랐고 그 도시의 생리에 적응해갔다. ● 20년대부터 제사, 방적, 고무공장을 중심으로 해서 많은 공장과 산업건물들이 세워지고 또한 30년대에는 카페, 바, 다방 등을 비롯하여 도시에 새로 생겨나기 시작한 공간들이 새로운 문화를 형성해나갔다. 일본에 의해 급격히 도시화된 곳은 서울을 비롯하여 부산, 대구, 평양, 군산, 목포 등으로 이곳은 일본식 가옥과 외교공관, 상인들을 위한 주택과 상업시설, 종교건축과 그 부속시설, 그리고 관공서시설 등이 신속하게 들어섰으며 이울러 일제의 침탈 속에 그 공간이 무방비로 재편되어갔다. 당시 조선인들은 그 경성의 거리를 거닐며 도시를 체험하고 근대성의 편린 또한 습득해갔다. ● 보들레르가 '현대성'이라고 정의한 것은 바로 19세가 이후 전면화된, 일상생활에서의 현대성의 경험이며 이것은 전통에 대한 결별과 새것에 대한 감수성뿐만 아니라 스쳐 지나가는 순간들에 대한 현기증 같은 시간 불연속성에 대한 의식을 특징으로 한다. 부르주아적 가치들과 계몽주의적 합리성에 반발하는 모더니즘은 바로 이러한 현대성의 조건에 대한 미학적 반응이다. 그것은 이성과 진보에의 믿음, 주체의 자명함, 현실의 객관성과 재현의 투명성 등 기존 현대성이 전제하던 제반 가치들을 의문시하는 동시에 이 모든 것들과 자기 자신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라는 현대적 태도를 극대화하며, 그런 가운데 불연속성과 파편성으로 다가오는 현실에 대한 감수성을 재현 자체에 대한 반성 속에 담는다. 따라서 모더니즘은 본질적으로 도시적인 것이다. 그것은 도시의 경험들과 불안정하면서도 미묘한 관계를 맺는다. 따라서 유동화된 응시가 산책자(한가로운 소요자, 유쾌한 방랑자란 뜻의 flaneur)의 시각이며, 세계의 중심에 위치하는 것이 아니라 주의가 흩어지는 현기증 나는 상황 속에 도시의 공간을 어슬렁거리는 산책자는 현대성의 경험이 전면화 된 새로운 상황에 처한 주체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소요자는 관찰하기는 하지만 결코 끼여들지는 않고, 바라보기는 하지만 진실된 시선을 주지 않으며, 팔기 위해 내놓은 상품을 바라보듯이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도시의 공공 장소들을 돌아다니는 특권과 자유를 상징한다. 그는 탐욕적이면서 에로틱한 시선을 구체화한다. 식민지 시대에 그런 시선을 소유한 고독한 산책자의 한 예가 다름아닌 이상과 박태원(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일 것이다. ● 식민지 시기를 거쳐 전쟁의 상흔과 경제적 궁핍, 분단의 급속한 정착과 반공이데올로기, 민족국가 수립과 탈식민성의 과제 등으로 정의될 수 있는 50년대 와서는 새로운 도시문화를 맞게 된다. 8.15 이후 미군정기에서부터 진행된 폭발적인 계급투쟁이 한국전쟁으로 종식되어 한반도에 두 개의 체제가 대치하게 되고 분단이 고정화되어 남한에 신식민지 분단국가가 정착되며 전후 미군의 지속적인 주둔과 미국의 대대적인 원조를 배경으로 해서 1960년대 이후 진행되는 종속적인 경제성장의 기초가 놓여진 시기이다.

김윤호_사진가의 풍경_컬러인화_80×80cm_2002∼2003

김혜원_Commercial Landscapes_컬러인화_24×20inch_2002∼2003
50년대 후반의 한국사회는 서구적 제도와 가치의 무분별한 유입과 폭력적이고 비인간적인 산업회의 경험을 통해서 근대화와 서구화를 한편으로는 거부할 수 없는 매혹이자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정체성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인식하던 시대였다. 자본주의화 과정, 도시문화, 소비주의를 매개로 해서 형성되어갔던 것이 당시의 한국적 근대성이었다. 전쟁의 상흔과 경제적 궁핍, 분단의 급속한 정착과 반공이데올로기, 민족국가 수립과 탈식민성의 과제 등으로 정의될 수 있는 50년대에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와 근대성의 경험 그리고 자본주의의 원리가 맞물린 지배적인 담론이 당대의 사회 구성체와 그를 지탱시키는 이데올로기의 차원에서 기능하였다. 50년대를 살아간 사람들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것은 거의 모든 생산기반과 생활기반을 파괴한 한국전쟁이었고 이후의 전후 복구과정이 안고 있는 구조적 모순이었다. 단순한 국지전이 아니라 국제적 대리전의 양상을 띠고 삼 년이 넘게 동족간에 치열하게 진행된 전쟁은 엄청난 물리적 피해만이 아니라 오랜 기간 동안 한국 사회 구성체의 성격과 대중의 심리에 깊이 각인되는 비가시적 상흔 역시 남기게 된다. ● 종전 이후 거리는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상이군인, 사십 만 명이 넘는 전쟁 과부, 십 여만 명의 전쟁 고아, 수많은 부랑자와 전쟁 피난민 그리고 전 인구의 10%가 넘던 실업자 등은 50년대 한국사회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풍경이 됨으로써 50년대는 '무기력, 무관심, 불감증의 시대'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사회적 분위기를 보여준다. 이때 가장 모순되는 지점은 바로 전후에 한국사회를 지배했던 '물질주의'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외래문화에 대한 동경'에 의해 빚어진다. ● 전쟁 과정에서 겪게 된 한계상황들과 전후의 절대적 빈곤은 한국인들로 하여금 명분과 예의를 중시하던 종전의 가치관을 버리고 생존을 위해 실용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을 중시하는 '물질주의'에 의해 지배받도록 만든다. 더구나 전후의 원조경제가 범람시킨 소비물자들과 미군을 통해 유입된 서구적 라이프스타일은 미국이 상징하는 부와 물질문명에 대한 동경과 문화적 모방심리를 대중들 사이에 유행시키면서 또 다른 욕망의 무늬를 50년대에 새겨 넣었다. 서울을 중심으로 들어서기 시작한 댄스홀을 비롯한 대중문화 공간들은 새로운 종류의 육체적 감각과 결합한 서구식 자유연애 사상을 문화적 이상으로 유행시키면서 대중을 근대적 주체로 빠르게 변모시켜나갔다. 서울의 도시화와 산업화에 따라 60년대 공간들은 새롭게 재편되었고 그 속에는 질서와 혼란이 동시에 솟아나기 시작했다. 60,70년대는 그런 시기였다. 사람들은 농촌을 떠나서 도시로 이동하였고 빠르게 움직이는 도시의 리듬에 맞춰 가정과 일터 사이를 순화하였다. 그리고 그 속에서 도시의 사람들은 노동을 위한 장소와 여가를 위한 장소를 따로 구분해야 할 필요를 느꼈고 그에 따라 공사 영역의 분리는 더욱 가시화되었다. 점차 수직으로 뻗어 가는 서울 도시의 한복판에서, 모든 것이 공업화와 산업화의 목표를 향해 진행되는 일 방향의 가치 편성 속에서, 시골에서 서울로 달리는 기차에 몸을 싣고 빠르게 압축되는 시간과 공간을 경험하였다. 당시 한국사회가 경험한 빠른 사회이동과 공간이동은 점차 사회갈등의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었다. 시공간의 경험양식이 급속히 변함에 따라 더 빠른 속도감과 유동성 그리고 불확실성의 인과관계들이 맞물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 의사소통의 어려움과 타인의 고통에 대한 무관심을 낳게 되었다. 이것은 근대성의 또 다른 얼굴이다.

이주형_시간의 끝, 261-2003 달성 시리즈_디지털 프린트_40×50cm_2002∼2003

김지범_City Tour_디지털 프린트_20×20inch_2002∼2003
90년대 이후 도시는 결정적인 삶의 공간, 환경이 되었다. 도시란 기본적으로 인간이 자연의 적대성과 거기서 오는 물리적 위협과 불편함, 심리적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것이다. 도시는 사실 삶의 기계나 이데올로기에 의해 바쳐진 위대한 공간이기 이전에 사람들이 자연적 필요에 의해 모여 사는 곳이다. 도시의 이런 원천적 정의를 통해 지금 도시 현실을 새롭게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인지 최근 젊은 예술가들에 의해 서울이란 도시공간을 흥미롭게 체험하고 읽어나가며 섬세하게 탐색하는 시선들을 만난다. 특히 사진자가들에 의해 이런 시도가 촉발되고 있음을 본다. ● 도시의 생명은 움직임이다. 도시는 비정착성, 불안정함, 순간성, 우연성을 특징으로 한다. 도시라는 인공적인 환경에서 낯선 개인들이 제도들에 의탁하여 끊임없이 변경되는 시공간 속에서 사람들은, 도시인들은 살고 있다. 바로 그곳인 서울은 이른바 부유하는, 정처없는 도시다. ● 서울은 또한 수많은 이미지로 뒤덮여있다. 그 이미지들은 일종의 유토피아를 시각적으로 확인시켜준다. 메가 메트로폴리스 서울에 살고 있는 서울 시민이 스펙타클한 시각이미지에 경도되는 것은, 현실에서 얻을 수 없는 것을 환상을 통해 대리 만족하고자 하는 것이다. 환영을 불러일으키고, 그것을 통해 현실 저편 환상의 세계로 날아갈 수 있도록 하는 이미지, 그래서 현실을 대체하는 이미지다. 그것이 지금의 유토피아이다. 그러나 그 유토피아는 동시에 어디에도 없는 아토피아에 다름아니다. ● 생각해보면 서울이란 당위적으로 존재하는 관념의 장소가 아니라, 유한한 우리 삶의 임시 거처이며, 그 삶들이 중층화되고 끊임없이 변경되는 현실의 장소이다. 서울은 남한의 중심도시다. 서울에만 1,200만여 명이 살고 있다고 한다. 수도권 인구는 남한 인구의 절반에 육박한다. 대한민국이 서울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서울은 너무 비대하고 복잡하고 끔찍하고 흉물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면 서울에는 중심이미지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많은 이미지들과 볼거리들은 흘러 넘친다. 아울러 무수한 활동들이 전개되고 지칠 줄 모르는 욕망과 소비와 증식이 자가 발전적으로 생성되어 간다. 규범도 질서도 취향도 없는 이 '정체성 불명'의 정체가 서울의 초상 같다. 그래서인지 서울이란 이 공간의 모습을 제대로 보고 싶다는 욕망이 인다. ● 사람들이 도시에서 무엇에 반응하고 어떤 행위를 어떤 공간에서 하는가를 관찰함으로써 지금 도시에 잠재된 기억들, 새로운 도시에 대한 상상력들을 합법칙적으로 도출해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들을 하고 있다. 이른바 심리지리 psychogeography라는 것을 만들고자 한다. 그것은 서울이란 공간의 분위기와 정서에 대한 일종의 유물론적 지형도일 것이다. 젊은 사진작가들에 의해 재현된 이 서울의 이미지들은 가짜낙원, 아토피아를 보여준다. 그것이 어쩌면 서울의 실재하는 초상일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그것이 지금 서울의 진경은 아닐까?

염중호_일상, 일회용품_디지털 프린트_50×100cm_2002∼2003

양재광_역사박물관 만들기-추측과 가설로 왜곡된 역사 만들기_디지털 프린트100×64cm×2_2002∼2003
이들의 사진은 우리가 생각하는 서울과 실제 몸으로 겪고 있는 서울 사이의 간극을 알고자 하는 욕구의 산물이다. 그들은 도시생활자, 모나드적 관찰자의 눈으로 서울을 본다. 그들이 본 서울(나아가 한국의 모든 공간), 발견하고 체득하고 응시해서 재현한 이 사진에 들어와 박힌 공간은 우리로 하여금 익숙하고 낯익은 공간을 새삼 낯설게 한다. 그 거리 사이로 이상한 의문과 기이한 생경함이 서식한다. 다시 내 삶을 되돌아보고 그 삶을 추동시키고 흡입해내는 공간을, 공간을 구성하는 모든 것들을 그리고 그 공간의 이면까지도 '다시 보게' 한다. ● 사진의 힘은 그 자리에서 소리 없이 부풀어오른다. ■ 박영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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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윤명숙 사진展
2003_1126 ▶ 2003_1202

윤명숙_바다_컬러인화_2003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윤명숙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3_1126_수요일_06:00pm
갤러리 룩스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5 인덕빌딩 3층
Tel. 02_720_8488
1993년 불교잡지인 『불광』의 일을 시작한 뒤로, 윤명숙은 오래 동안 연꽃을 모티프로 해서 사진을 찍어오고 있다. 연꽃을 그냥 사진의 피사체라 하지 않고 모티프라고 말하는 것은 그녀가 연꽃의 모습을 빌어 다른 무엇인가를 구하려 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다. ● 연꽃의 일생은 꽃이 피어서 질 때까지 겨우 나흘이다. 그 사이에 꽃잎이 열리고 닫히는 것을 하루에 한 차례씩 반복하고 나흘째에는 져버리고 만다고 한다. 그 화사한 아름다움에 끌려 연꽃을 찍는 사람이 많지만, 나는 연꽃의 짧은 일생과 그 더러운 시궁창에서 떠오르는 청초한 모습이 마치 번뇌로 가득 찬 인생의 고해에서 깨끗하게 살아가는 사람의 삶을 상징하는 것 같아서 좋다. 비록 탁하고 악으로 가득 찬 현세에 육신이 매여 있을지라도, 마음은 고통에 찌들지 않고 순수함을 지켜나가는 삶과 청정한 정신, 시든 다음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연꽃의 일생을 통해서 내면적인 구원을 얻으려는 그녀의 바람을 읽는다.

윤명숙_바다_컬러인화_2003

윤명숙_바다_컬러인화_2003

윤명숙_바다_컬러인화_2003
윤명숙은 구름이나 바람 같은 덧없는 자연 현상도 찍고, 바다 풍경도 찍는다. 하지만 그것은 여름 태양이 내려 쪼이는 대낮이 아니라, 어둠이 깃들기 직전의 일몰 무렵이나 어둠이 걷히기 시작하는 새벽, 눈비 오거나 태풍이 휘몰아칠 때 찍은 바다 사진들이다. 그녀는 오랜 체험을 통해서 특정한 계절과 시간대의 대기나 광선이 만들어내는 효과를 생리적으로 체득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바다는 한없이 단순하면서도 터무니없이 커다란 영원을 내포하고 있다. 암울하게까지 보이는 바다사진들을 보면서 나는 운명적인 무엇인가가 그녀의 삶을 짓눌러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 윤명숙의 사진이 어딘지 모르게 어둡고 쓸쓸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녀의 사진이 갖고 있는 그런 시각적이고 심리적인 효과에서 오는 것도 있겠지만, 그보다도 그녀가 지금까지 걸어온 순탄하지 않은 삶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막연히 상상해본다. 광선이 거의 자지러지는 시간대를 골라서 찾는 바다에서 위안과 아늑한 휴식을 느낀다는 그녀의 말을 들었다. 그것은 바다나 자연현상에서 자신이 한없이 작은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리고 삶이 덧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도록 만들어주기 때문이리라.

윤명숙_바다_컬러인화_2003

윤명숙_바다_컬러인화_2003

윤명숙_바다_컬러인화_2003
나는 그녀의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문득 치유나 명상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그녀의 사진에서는 그녀가 마주했을 풍경과 그녀의 심정이 부딪혀서 내는 낮고 무거운 소리들이 들려나오는 것 같다. 그것은 사진을 보는 사람의 가슴을 앓게 만들고 그런 다음 현세에는 존재하지 않는 평온함을 느끼게 한다. 그녀도 분명 그것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 김승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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