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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잘 기억하는 축은 절대 아니지만.ㅜㅜ
노성두씨의 글은 근저의 다른 평론가들과 비교해도 재미는 확실히 있는 편인 것같다.
확실히 눈물과 억지는 근친관계일 수 있다는 것이, 사진쪽 평론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 . . +++++++++++++++++++++++++++++++++++++++++++++++++++++++++++++++++++++++++++++++++++++
월간미술 2003.12 classic odyssey ⑨

아기예수의 탄생에 관한 그림은 서양미술사에서 큰 테마였다. 그러나 화가들은 이런 주제의 그림을 그리는 것이 난감했다. 예수 출생에 관한 관련 기록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크리스마스를 맞아 아기예수의 탄생에 관한 일화, 서양미술사에서 아기예수 탄생에 관련된 도상의 변화, 12월 25일을 예수 탄생일로 정한 배경 등을 재미있게 풀어낸다. |
 | | <예수 탄생> 255×175cm 1424∼1435
베드포드 공작의 《기도서》에 실린 세밀화의 부분그림. 파리 프랑스 국립도서관. 성녀 비르기타가 목격했던 기도 출산의 유형이다. 북유럽에도 15세기 초반에 발빠르게 전파되었다. | | |
하늘 높은 곳에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평화.”
아기예수가 태어났을 때 천사들이 입맞추어 불렀다는 노래다. 신성한 영광과 평화로운 사랑의 세례를 듬뿍 받고 태어났다니까 사주를 따로 볼 필요가 없을 만큼 귀한 팔자였던 모양인데, 성서의 앞뒤 정황을 살펴보면 실제로는 꼭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무엇보다 하느님은 아담을 지으실 때도 그랬고 또 두 번째 아담으로 일컫는 아기예수도 마찬가지지만, 조금 독특한 취향을 가지고 계신 것 같다. 하늘나라에는 이렇다 할 산부인과가 없어서 그러셨는지 매번 이 세상에까지 원정출산을 오신다는 점이다. 하긴 국적 시비를 걸 사람도 없고 아기예수의 병역면제를 염두에 둔 것도 아니었을 테니 이 문제는 덮어두기로 하자.
어쨌든 화가들은 아기예수의 탄생 장면을 그리면서 난감한 일이 많았다. 도대체 출생에 관한 관련 기록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그건 순전히 부모가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일 텐데, 만약 카이사르나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아들로 태어났더라면 수에토니우스를 비롯해서 로마 시대의 무수한 역사가들이 침을 튀기면서 CNN 못지않은 중계방송을 해댔을 것이다.
그러나 탄생 기록이 아주 없지는 않고 마태오와 루가가 대강 구색을 갖추고 있다. 마태오는 딱 한 줄인데, “마리아가 아기를 낳자 그 아기를 예수라고 불렀다.” 그리고는 그만이다. 산모와 아기 이름만 써놓고는 입을 꾹 다물다니, 전생에 꽤 과묵한 산후조리원 간호사 출신이었나 보다. 루가는 한 줄 더 보태서 두 줄이다. “그들이 베들레헴에 머물러 있는 동안 마리아는 달이 차서 드디어 첫아들을 낳았다. 여관에는 방이 없었기 때문에 아기는 포대기에 싸서 말구유에 뉘었다.”
여기서 한 가지. ‘말구유’라고 옮긴 프레세피움(praesaepium)은 꼭 마구간에서만 쓰는 것이 아니고 소, 나귀, 양, 염소도 사용하는 일반적인 개념이니까 ‘말’을 빼고 그냥 ‘구유’라고 쓰는 것이 낫다. 아무리 여관방을 못 찾았다지만 외양간 구유를 아기 침대로 대용하다니, 이건 너무했다. 나중에 마리아의 신세한탄을 어찌 감당하려 했는지, 아버지 요셉도 어지간히 간 큰 남자였나 보다.
기독교 성자전 〈황금전설〉을 보면, 요셉 일가는 베들레헴에 마침 방이 없기도 했지만 주머니에 한푼 여유도 없는 빈털터리라서 어쩔 수 없이 골목길을 기웃거리다가 ‘집과 집의 처마가 맞붙은 빈터에’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오가는 시선도 번다하고 또 사람들이 가축을 부려놓는 곳이라서 무척 불결하고 지저분한 장소였다는데, 요셉은 바로 이런 곳에서 만삭의 산모를 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아기예수가 태어난다. 노숙자나 꽃제비가 몸을 풀었어도 이보다 사정이 더 딱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기예수가 귀빠진 날은 언제일까? 생일이라도 알아야 미역국을 챙겨줄 텐데, 마태오와 루가가 모두 입을 다물고 있으니, 이것도 오리무중이다. 예수의 전기를 복음서에 기록할 만큼 가장 가까운 제자들조차 예수의 생일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납득이 잘 안 간다. 모르긴 몰라도 살아생전에 스승의 생일상을 한번도 차려드린 적이 없었던 게 틀림없다. 생일 선물이나 생일 케이크도 언감생심이었을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예수탄생 기념일을 두고도 논란이 일어났다. 또 교회에서도 언제부터 기념일을 챙겼는지 우리는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동방교회에서는 3세기 말부터 1월 6일을 예수의 생일로 정하고 탄생을 기념하기 시작했고, 로마에서는 4세기부터 12월 25일로 바꾸어서 기렸다는데, 지금은 X-Mas 기념일을 후자로 삼고 있다. 여기서 X가 그리스도의 첫 머리글자인 Ch의 그리스식 표기라는 것쯤은 《월간미술》 독자들도 다 알고 있을 것이다.
12월 25일이 뒤늦게 예수 탄생일로 자리잡게 된 데도 사연이 있다고 한다. 그 당시 로마에서는 잡다한 이방 종교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었는데, ‘승리의 태양’을 뜻하는 솔 인빅투스(sol invictus)의 기념일이 바로 같은 날이었다. 그래서 이교적인 제사를 덮어버린다는 의미에서, 그리고 예수를 《구약성서》에 곧잘 나오는 표현대로 ‘떠오르는 태양’, 또는 ‘공의의 태양’이라는 새로운 상징으로 부각시키려는 속셈에서 생일 바꿔치기 맞불 작전을 펴게 되었다는 것이다. 로마 군인들 사이에서 널리 유행했던 미트라교에서도 창조신의 탄생일이 12월 25일로 똑같았다니까 그야말로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린 셈이다.
그렇다면 예수 탄생 장면을 예술가들은 어떻게 상상했을까? 미술작품으로 처음 재현되기 시작한 4세기 말에는 구유 하나가 고작이었다. 거기에다 밀짚을 살살 얹고 아기를 뉘어둔 것이 전부였다. 그러다가 차츰 소와 나귀가 조역으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루가의 복음서(2:1∼20)와 마태오의 복음서(1:25)를 아무리 훑어보아도 소와 나귀는 안 나온다. 이 가축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일찍이 이사야가 예언서(1:2∼3)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소나 나귀만도 못하다며 호되게 나무란 적이 있었는데, 그 덕분에 아기예수의 탄생 장면에도 우정 출연할 자격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소도 제 임자를 알고, 나귀도 주인이 만들어준 구유를 아는데, 이스라엘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내 백성은 철없이 구는구나.”
갓난아기 하나와 가축 두 마리만 휑뎅그렁하던 탄생 장면(nativita)이 조금씩 활기를 띠게 된 것은 마리아가 끼어들면서부터였다. 원래 마리아는 예수 탄생에서는 출연금지였고 동방박사의 경배 장면에서만 명함을 내밀었는데, 431년 에페소 공의회에서 마리아에게 신을 잉태한 자라는 뜻의 테오토코스(Theotokos)라는 명칭과 지위가 공식적으로 확정된 다음부터 탄생의 구유 옆자리를 확실하게 꿰찬다. 한편, 아버지 요셉은 좀 더 늦게 등장한다. 마리아와 예수만 베들레헴에 남겨놓고 기러기 아빠 신세를 면치 못하다가 5세기에 들어서 처음으로 가족의 품에 합류한다. 그나마 볼품없는 배역이라서 구유를 가운데 두고 마리아의 맞은편에 조용히 쪼그리고 앉아 있거나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게 마련이었다.
몸을 풀 무렵 마리아는 몇 살쯤 되었을까? 그 당시 팔레스티나에서는 평범한 집안의 예비신부들이 대개 열셋쯤에 시집을 갔다고 한다. 열다섯이면 벌써 노처녀 소리를 들었고, 방년 열여섯부터는 결혼정보회사에서도 꺼려서 접수를 거부당했다고 한다. 또 결혼에 앞서 약혼은 한두 해 미리 당겨서 하는 것이 상례였다는데, 마리아는 성서에도 나와 있듯이 요셉과 약혼을 했던 상태에서 성령으로 잉태하게 되었다니까 첫아기를 낳은 것은 열두셋 정도로 잡는 것이 적당할 것이다.
요즘에야 아이들 성장이 빠르다지만, 2000년 전 영양과 발육상태를 고려할 때 열두셋에 아기를 낳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20여 년 동안 서양미술사를 공부하면서 예수 탄생에 대한 의혹들이 풀리지 않아서 여러 사람에게 물어보았더니 “그 나이에는 아직 자궁이 여물지 않아서 출산은커녕 임신도 어렵지 않을까…” 하는 대답이 대부분이었다. 설령 임신이 되더라도 건강한 아기가 나올 확률은 그리 높지 않을 것이라는 중론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예언자 이사야는 메시아의 모습을 이렇게 그린다.(이사야 53:2)
“그는 메마른 땅에 뿌리를 박고 가까스로 태어난 햇순이라고나 할까. 늠름한 풍채도 멋진 모습도 그에게는 없었다. 눈길을 끌 만한 볼품도 없었다.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고 퇴박을 맞았다.”
어린 신부가 배까지 부른 것을 보고 약혼자 요셉은 심각하게 파혼을 고려했다고 한다. 성서에 따르면 요셉은 무척 반듯한 성품이었던 것 같다. (마태오 1:19)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법대로 사는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낼 생각도 없었으므로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마음먹었다.”
여기서 ‘법대로’는 율법을 공경하고 지키면서 경건한 삶을 사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가장 눈여겨볼 대목은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했다는 부분이다. 약혼녀가 엉뚱한 씨를 받아서 배가 불렀으면 파혼은 당연한 결정이었다. 그리고 요셉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가능한 한 소문을 크게 내는 것이 새장가 가기에 유리했을 것이다. 그러나 요셉은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마음을 굳힌다. 시끄럽지 않게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어린 마리아와 그의 집안을 배려하는 마음씀씀이도 쉽지 않지만, 파혼의 책임을 제가 다 뒤집어쓰겠다는 것은 무척 감동적이다. 틀림없이 심지가 엄청 깊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 후 요셉이 천사의 전갈을 받고 마리아를 정식 아내로 맞아들인 것은 우리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래서였을까? 너무 가난해서 여관방 잡을 돈이 없어도 마리아와 요셉은 단란한 부부였다. 한뎃잠을 자면서 구유에다 아기를 낳고도 마리아가 나중에 불평 한마디 했다는 기록이 없는 것을 보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크리스마스, 4세기 로마에서 결정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탄생 장면은 외양간이나 곳간을 뒷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동방교회에서는 6세기부터 동굴에서 몸을 푸는 마리아를 새로운 유형으로 삼는다. 소나 나귀 같은 가축을 동굴에다 가두고 키웠는지는 알 수 없지만, 미술에서는 동굴과 외양간의 두 가지 유형이 도상적으로 나뉜 것이다. 이탈리아에서도 르네상스가 발현하기 전까지는 비잔틴 미술의 동굴 유형을 무리 없이 수용하고 있다.
동굴 유형의 그림에서는 소와 나귀가 빠끔히 숨어서 내다보는 동굴 근처에 마리아가 비스듬히 누워 있는 장면으로 재현되었다. 요셉이 가까이에서 망을 보고 산파 둘이서 아기를 씻기는데, 그림 여백에는 천사들이 목자를 이끌고 오거나 동방박사들이 별을 보고 신성한 동굴을 찾아오는 장면이 덧붙게 마련이다. 여기서 동굴은 유목민족의 신이 태어나기 적당한 장소이기도 하지만 탄생의 미스터리를 드러내는 무대장치로서도 역할을 한다. 한편 외양간 유형에서는 외양간 안이나 바깥에서 마리아가 자리를 잡고 아기예수가 따로 맨 바닥에 누워 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때에도 목자와 동방박사 경배 장면이 여전히 고명처럼 따라다닌다.
그런데 외양간 유형은 15세기 초부터 새로운 특징이 하나 나타난다. 아기를 방금 낳은 마리아가 무릎을 꿇고 앉아서 기도하는 모습을 취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누워서 아기를 낳는 전통적인 재현관례에서 벗어난 기도 출산의 유형이다.
기도 출산, 곧 마리아가 무릎을 꿇고 앉아서 기도를 하다가 갑자기 아기를 출산하게 되었다는 전설은 원래 스웨덴의 성녀 비르기타(Birgitta, 1302∼1373)의 환시에서 비롯하는데, 나중에 과부가 된 다음에 고해신부에게 받아 적게 해서 남긴 《계시(Revelationes)》에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베들레헴의 구유가 있는 곳으로 가까이 가자 성처녀가 보였다. 성처녀는 아기를 가졌지만, 눈부시게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 몸이 잔뜩 불어서 두툼한 자태를 보니 출산이 가까운 것 같았다. 인자해 보이는 노인 한 분이 성처녀를 지키고 있었는데, 그 곁에 소와 나귀도 보였다. … 성처녀는 윗옷과 머리두건을 벗어두고 요람을 준비했다. 그러고 나서 무릎을 꿇은 자세로 깊은 신심에 사로잡혀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등을 구유 쪽으로 돌리고 얼굴은 동쪽 하늘을 향해서 올려다보는 자세였다. 말없는 황홀감에 사로잡혀서 달콤한 신성을 받아 마시는 것처럼 두 팔을 올리고 눈빛은 하늘을 향한 채 얼마나 지났을까. 성처녀가 기도를 하고 있는데 성처녀의 뱃속이 갑자기 꿈틀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아기가 밖에 나와 있었다. 아기로부터 태양조차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형언할 수 없이 눈부신 빛과 광휘가 쏟아져 나왔다. … 나는 거룩한 아기가 벌거숭이 몸으로 환한 빛을 뿌리면서 땅바닥에 누워 있는 것을 보았다. 아기의 몸은 때와 불결이 묻지 않은 정결 그 자체였다. 나는 아기 가까이에서 그의 태가 뭉쳐서 밝게 빛나는 것도 보았다. 어디선가 나타난 천사들이 곱디고운 음성으로 사랑스러운 노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출산 전에 남산만큼 불렀던 성처녀의 배가 다시 홀쭉하게 가라앉는 것이었다.”
비르기타는 1391년 바티칸으로부터 성녀로 선포된다. 그리고 ‘기도 출산’에 관한 비르기타의 증언도 신빙성을 얻으면서 화가들은 〈예수 탄생〉에서 앞다투어 무릎을 꿇고 앉아서 기도하는 마리아의 모습을 그리기 시작한다. 아기예수가 구유를 버리고 알몸으로 맨 바닥에 눕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의 일이다.
그런데 남산만한 배가 순식간에 꺼졌다는 이야기가 정말일까? 그때 천사들이 불렀다는 노래를 살짝 녹음해두었더라면, 요즘 산모들의 고민 영순위인 산후 다이어트 아이템으로 짭짤한 돈벌이를 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무리 아름다운 미술사학을 오래 공부해도 타고난 속물근성은 잘 없어지지 않는 모양이다.
한겨울 낯선 고장의 외양간을 빌려서 태어난 아기예수의 탄생은 조금도 성스럽지 않다. 이사야의 말처럼 ‘사람들이 얼굴을 가리고 피해갈 만큼 고통과 멸시를 당할’ 운명이었고, ‘야훼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지우셨기’ 때문이었다. 아기예수는 가혹한 절망을 기쁜 운명으로 받고 타고났다. 그러나 그의 삶은 남루하지 않았다. 그는 ‘우리가 앓을 병을 대신 앓아주었고, 우리가 받을 고통을 대신 겪어주었을’ 뿐이었다.(이사야 53:3과 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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