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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장영혜중공업에 대한 글중에, 가장 엄정한 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집에 와서 생각했던 것이.. 앤디 워홀 마인드로 만들어 내는 텍스트 버젼 내지는, 자본주의의 기독교 타입 패러디 즈음이 아닐까 했는데. 나와는 또 다른 시각으로 이 작업을 바라본 사람이 있어서 기쁘다.
이 정도의 진지성을 가지고 밀도있는 서술을 뽑아내주는 필자가, 장영혜 중공업을 주목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장영혜의 복일 것같다. 부럽다.
첨언하나. 삼성+호암+로뎅 에서 했던 모든 전시를 통털어서 가장 원츄였다. 이 전시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효과는 삼성이라는 거대 기업의 예하 갤러리에서 장영혜가 전시한다는 것이었다. 그것만으로도(사실 몇가지 아쉬움이 없잖았지만) 삼성의 역활은 지대했다.
출처 : 포럼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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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락원칙 너머의 공장 혹은 무대
장영혜중공업 "문을 부숴!"
로댕 갤러리
9. 3 - 10.
31
조선령(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삼성은
나를 죽음으로부터 구해주리라 믿는다” 그리고 “삼성의 뜻은 쾌락을 맛보는 것이다.” 이 텍스트가 말하는 대로라면, 삼성이 주는 쾌락은
죽음으로부터의 구원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빅토리아, 그러니까 밤중에 침대에서 “속옷만 입은 채로 개처럼 끌려나가” 사람들의 비웃음과 가래침
세례를 받으며 포박당한 ‘배신자’는 끝내 죽는다. 그렇지 않은가? 정황으로 봐서 빅토리아가 살아날 확률은 제로다. 그 세 가지 버전으로 변주되는
같은 내용의 작품들은 확인사살의 역할을 한다. 삼성은 왜 빅토리아를 구하지 못했나? 삼성은 왜 장영혜중공업도 구하지 못했고, 관객도 구하지
못했고, 웹아트도 구하지 못했나? 하지만 이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시각이다. 장영혜중공업의 설립이념은 그 이상이다.
열쇠는 이쪽이냐
저쪽이냐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선택의 논리를 지배하는 법칙 그 자체를 상연하는 무대를 갖는 것이다. 이
극화(dramatization)야 말로 장영혜중공업의 작업을 이해하는 핵심이다. 극화는 “너는 어느 편인가, 소속을 분명히 해라”라고 말하는
대신 그 목소리가 만들어지는 무대 자체의 구성원리를 보여준다. 불길한 드럼소리가 지배하는 장영혜중공업의 공격적인 생산라인은 주체성의 비밀을
환상적으로 상연한다. 공장은 하나의 무대이다. 삼성이라는 ‘숭고한 대상’이 비밀리에 제조되는 현장에 들이대는 카메라. 하지만 그것은
르포르타쥬라기보다는 재연극(再演劇)이다. 그러나 여기에 주인공은 없다. 정확히 말하면 주인공은 ‘나’와 ‘너’라는 인칭대명사로만, 언어로만
존재한다. 우리가 스펙터클한 이미지를 기대하는 스크린에서, 우리는 이미지의 부재만을 경험한다. 이미지 대신 존재하는 것은 거의 물리적 폭력의
강도로 관객의 신체를 때리는 언어들이다. 이 언어들은 재현의 안전망을 끊임없이 벗어나며 폭력의 속도로 명멸한다. 주인공 없는 연극, 이미지 없는
스크린, 이것은 장영혜중공업의 중요한 생산법칙이다.
장영혜중공업의 생산라인은 쉴새없이 돌아간다. 전시실을 가득 채운 프로젝터의
위협적인 시공간적 효과는 자본주의 상품의 논리를 정확히 따르고 있다. 빠르게, 많이, 반복적으로, 효율적으로. 10대의 프로젝터에서 동시에
투사되는 빛은 공장의 조명등이자 그 자체가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쉴새없이 생산되는 상품이다. 열 대의 프로젝터가 창조하는 반복적 공간은 마치
건전지의 병렬연결처럼 보인다. 스크린에 투사되는 텍스트들은 개념의 전달수단이라기 보다는 마치 매트릭스에 의해 양육되는 인간이 보여주는 반작용처럼
에너지의 주입에 의해 발작적으로 튀어나오는 것처럼 느껴진다. 직렬연결 시스템도 있다. 빅토리아의 시점으로 본, 스트링버전의 BGM을 깔고있는 또
다른 생산라인이 그것이다. 여기서 무대의 주인공은 총구 앞의 빅토리아처럼 존재와 부재의 경계선에서 구성되자마자 소멸한다. 죽어가는 사람의
호흡처럼 위로 힘겹게 올라가는 흑백의 언어들은, 암흑 속에서 들리는 목소리만큼이나 삶과 죽음의 가장자리에서 생산된다. ‘나’라는 인칭대명사는
전기가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하는 전구의 불빛처럼 명멸한다. 일반적으로 공장의 지배자는 기계이다. 여기서 인간은 무자비한 생산의 논리에 지배되는
수동적인 존재일 뿐이다. 무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된다). 무대는 살아있는 아우라로 충만한, 일회적이고 반복불가능한, 인간적인 공간이다.
하지만 장영혜중공업은 무대가 곧 공장이라고 말한다. 사실이 그렇지 않은가? 삼성의 바깥에는 아무 것도 없다. 오늘도 당신은 삼성 속에서
살아간다. 그렇다면 모든 ‘오염된 지역’에서 벗어난 ‘순수한 외부’, 그것은 어떤 실체적인 공간이 아니다. 그 순수한 외부는 결국 나 자신이다.
세계를 ‘오염된 세계’로 재구성하는 반성의 힘, 그것이 순수한 자아이다. 그렇다면 삼성이 지닌 초월적인 힘은 나 자신의 힘이기도 하다. 이 말은
삼성이 단순한 허구라는 뜻이 아니다. 삼성은 물론 현실이다. 단지, 삼성을 타도할 수 없는 공포의 실체로 설정함으로써 우리는 우리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설정하며, 그 한계 속에서 ‘안전하고, 도덕적으로’ 살아간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삼성이 포악할수록 우리는 살맛이 나는 것이다. 우리가
삼성을 진정으로 극복하는 방법은, 삼성과 대립하고 있는 견고한 ‘나’가 실은 순수한 부정성, 순수한 무(無)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인식하기만
하면 된다. 그렇다면 이 작업을 하기에 로댕 갤러리보다 좋은 곳은 없을 것이다. 삼성이라는 ‘현실의’ 공장이 있는데 무엇하러 허구의 공장을
창조할 것인가? 삼성은 허구가 아니라 현실이다. 그렇다면 현실의 삼성보다 이 극화에 더 적합한 장소는 없을 것이다.
고화질
프로젝터가 일반화된 오늘날, 우리가 거대한 투사화면에서 기대하는 것은 는 스텍터클한 이미지이다. 스텍터클의 유혹은 강렬하다. 하지만
장영혜중공업의 투사공간은 영상이면서 동시에 영상이 아니다. ‘볼 것’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이미지는 전적으로 부재하고 언어만이 존재한다.
“원래 웹아트였던 것을 전시장으로 옮겨놓을 때” 생기는 효과는 단지 장소가 옮겨진 것만이 아니다. 우리의 지각 속에서 스크린이 이미지의 창으로
기능하는 한, 투사된 영상은 이미 웹의 속성들과 결별한다. 매체 자체가 메시지라는 맥루한의 말을 상기하지 않더라도, 어떤 것이 공간 속의
영상으로 존재할 때 그 존재양식은 정확히 공간 속의 영상이라는 그 존재양식을 따른다. 그런 면에서 장영혜중공업의 작업은 결코 ‘전시장에 들어온
웹아트’가 아니다. 그것은 웹을 기대했던 곳에서 웹 아닌 것을 보여주는 역설의 게임이다. 장영혜중공업의 작업이 인터넷 사이트상에 있었을 때 이
역설은 오히려 잘 드러나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우리가 웹적이라고 규정하는 한에서의) 웹적인” 무엇이고, 장영혜중공업의
웹 작업도 역시 (그런 규정을 받는 한에서) “웹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웹은 지난 몇 년간 우리에게 유토피아를 약속했던 장소였다. 단일한
중심이 없는 다원적 공간, 민주적이고 자율적인 참여, 수동적 수용을 넘어서는 상호작용성 등등. 그러나 장영혜중공업의 작업은 과연 그런 의미의
웹아트였던가? 장영혜는 자신의 작업이 상호작용적인 웹아트라는 것을 명확하게 부인한다. “내 작품에는 상호성이 없다...나는 상호성을 특히
싫어한다...총의 방아쇠를 당기면 틱 그리고 탕 그게 끝이다. 인터랙티브 아트를 클릭할 때면 내가 스키너 상자에 들어 있는 쥐같이
느껴진다.”(전시도록에 인용된 인터뷰) 이 말은 단순히 역설적인 발언인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로댕 갤러리에 들어온 장영혜중공업을
보는 순간, 우리는 그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기대했던 곳에서 기대했던 것을 경험하지 못하게 하는 것, 그것은 원래 (웹사이트에서건 어디서건)
장영혜중공업의 설립이념이다. 전시장이라는 폐소공포증적으로 막혀있는, ‘제도화된’ 공간은 오히려 장영혜중공업의 이런 ‘불친절한’ 속성을 논리적으로
극단화시켜주었을 뿐이다. 로댕 갤러리의 전시장은 웹의 상호작용성과 민주적 성격이 거대한 문화산업에 흡수되는 현장이 아니라 웹 자체의 내적 한계가
드러나는 공간이다. 웹아트라는 ‘세계로 난 창’이 가진 상호작용성과 소통성이 허구라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분명 사실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예술이 그 사실의 자명함을 반복할 필요는 없다. 예술은 오히려 그 창은 왜 거기 존재하는가, 왜 “존재해야만 하는가”라고 물어야 하지 않을까?
장영혜중공업은 ‘창’의 내용을 보여주는 대신 그 ‘창’의 자리 자체를 보여준다. 로댕 갤러리의 전시장에서 관객은 소통을 거부당하는 폭력을
경험한다. 이곳에 투사된 영상들은 결코 다른 곳과 소통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갇혀 있다. 관객은 극히 수동적으로 공간에 의해, 언어에 의해
포위당한다. 텍스트와 음악은 관객을 신체적으로 난타한다. 사고의 속도는 이 폭력의 속도를 쫓아가지 못한다. 언어는 물질적 효과로 나타난다. 이
지극히 수동적인 경험 속에서, 우리의 지각은 여전히 언어란 개념을 전달하는 투명한 매개체이며, 스크린은 세계를 보는 창이라는 고집을 되풀이한다.
장영혜중공업은 이 균열, 이 모순의 순간 자체를 드러낸다.
지펠 인터넷 냉장고 작업에 이르면 장영혜중공업의 냉소는
가속화된다. 전시 카탈로그의 논조에 따르면 이 작업은 여성의 24시간을 결국 가사노동에 묶어두려는 문화산업의 논리를 반영한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한 가지 측면일 뿐이다. 가사노동에 매인 여성은 인터넷 냉장고의 모니터 속의 나와 진정한 나의 분열을 경험한다. 하나는
제스처(가사노동에 갇혀 인터넷으로만 세상을 접하는 여성으로서의)이고, 하나는 (가사노동에서 해방된 자유로운 여성으로서의) 본질이다. 하지만 결국
어떤 지점에서 제스처 그 자체는 본질과 구별되지 않는다. 우리는 결코 가사노동의 ’바깥에서‘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부엌에서건, 거리에서건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삼성 지펠 인터넷 냉장고는 진실로 ‘세상을 보는 창’인 것이다! 창이 닫혀 있기 때문에, 그 너머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아직 볼 것이 남아있다고 하는 위안, 그것이 우리가 세상을 ‘초월적인’ 그 무엇으로, 우리 자신을 ‘견고한’ 그 무엇으로 경험하는
논리이다. 하지만 사실 우리는 우리가 놓아둔 것만을 볼 뿐이다. 그런 점에서 “문을 부숴!”라는 전시제목은 의미심장하다. 이 문은 베니어판으로
만든 가설무대의 문이 아닐까? 문은 하나의 미끼일 뿐이다.
삼성은 나를 죽음으로부터 구해주리라고 믿으며, 삼성의 뜻은 쾌락은
맛보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삼성이 주는 쾌락은 죽음으로부터의 구원이 아니라 죽음에 의해서 완수되는 쾌락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충분히 쾌락을
맛보았다. 결국 장영혜중공업의 생산라인이 비밀스럽게 만들어내는 상품이 진실로 무엇인지 우리는 알게 된다. 그것은 ‘죽음’이다. 죽음은 삶 너머에
있지 않다. 그것은 삶의 한가운데에 있다. 그것은 ‘나’, 총구 앞의 목숨, 빅토리아이며 동시에 ‘삼성’이다. 너의 죽음을 인식함으로써 너는
살아나리라. ‘배신자 빅토리아’를 둘러싼 누아르적 드라마가 우리에게 주는 궁극적인 교훈은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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