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진작가 폴 스트랜드(Paul Strand, 1890-1976)의 초기작들을 전시하고 있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가면, 그가 정말로 훌륭한 예술가임을 알 수 있다. 1915-17년에 걸친 그의 사진들은 보기 드문 아름다움과 지성을 갖추고
있다.
전시회는 많은 문제들을 제기하고 있다. 가장 복잡하지만, 여기서는 간단히 언급하고 지나갈 문제는,
미국의 예술과 사상 전반이 1910년대 어느 정도로 지방주의에서 탈피하여 "세계사적" 물음들을 마주했느냐다.
1916년 무렵에 스트랜드가 찍은 엄격하고, 비감상적이며, 현대적인 사진들을 보고서 가장 먼저 깨닫게 되는 것은, 세기 전환
이후 미국의 사회와 정신에 일어났던 놀라운 변화들이다.
슈티글리쯔, 《폴 스트랜드》(19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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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인, 《거리의 아이》(1910년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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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랜드는 맨허턴의 북서부, 유태계의 교양 있는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원래 성(性)은 스트란스키였던
그의 선조들은 1840년대 보헤미아 지방 출신이었다. 그의 부모는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그를, 존 듀이(John Dewey)의
교육관을 답습한 윤리적 교양 학교(Ethical Culture School)에 보냈다. 뉴욕의 유명한 사진작가였던 가난한
루이스 하인(Lewis Hine, 1874-1940)이 그의 선생들 중 한 명이었다.
하인을 통하여 스트랜드는 알프레드 슈티글리쯔(Alfred Stieglitz)가 이끌던
'사진-분리'(Photo-Secession) 그룹과 그들의 유명한 갤러리였던 '291'을 알게 된다.
뛰어난 미술 평론가였던 찰스 카핀(Charles Caffin) 역시 그의 선생이었는데, 그가 격려해준 덕분에
스트랜드는 1911년 유럽의 주요 미술관들을 방문하는 여행길에 오른다. 많은 미국인들에게
피카소, 브라크 및 다른 모더니스트들을 처음으로 알린 1913년의 아모리 전시회(Armory Show)는 청년기의
스트랜드에게도 엄청난 사건이었다. 스트랜드는 슈티글리쯔 뿐만 아니라 1915년 개장한 현대미술관(Modern Gallery)과
연관된 다른 화가들, 일테면 프랑스의 전위주의자인 마스렐 뒤샹(Marcel Duchamp)과 프란시스 피카비아(Francis
Picabia) 등과도 더 가까워졌다.
◀ 《월 스트리트》(1915)
스트랜드는 1915-16년 무렵 뉴욕에서 많은 사진을 찍으면서 도시 생활의 움직임을 포착하려고
시도했다. 이 시리즈 작품들 중 특히 잘 알려진 작품이, 《월 스트리트》이다. 막 완공된 모건 사(J.P. Morgan Company)의
빌딩을 찍은 사진인데, 자그마한 익명의 사람들 몇몇이 출근하는 길인 것 같은데, 이들은 육중한 석조 건물과 직사각의 검은
구멍으로밖에 보이질 않는 거대한 창의 위용에 비해 매우 왜소해 보인다. 스트랜드는 훗날 이 사진을 비롯하여 다른 비슷한 사진들이
명백한 정치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지만, 당대의 사진작가나 화가들은 오늘날의 예술가들이라면 쳐다보지도
않을 많은 것들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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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상》(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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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의 스트랜드는 또한 추상적 형태 또는 외관이 추상적인 형태들을 실험하는 데 골몰했다.
1916년 코네티컷의 트윈레이크스에 있는 여름 별장에서 찍은 건축물과 가정용품에 관한 수많은 사진들이 그러하다. 사발, 배,
물주전자를 탁자나 베란다 위에 올려놓고 햇빛 또는 그늘 안에서 찍은 사진들은 소박함와 우아함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 몇 년
후 스트랜드는, 이러한 초기 이후에는 리얼리즘으로부터 벗어나지 않았는데,
이러한 작업이 예술작품은 그 내용과는 독립적인 그 자체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데 유용했었다고 다소 변명조의
설명을 했다. 아무도 변명을 요구하지 않았었는데 말이다. 그 사진들은, 사물과 공간을
형태·빛·운동의 근본 요소들로 분해할 수 있는 인간의 정신과 수완을 증명한다는 점에서 정말로 아름답다. 그 사진들은 예비적인,
살집이 없는 수학적 공리를 닮았다. 그러나 흠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1916년 무렵에 찍은 그의 사진들은 단연 빛난다. 그는 피사체인 사람이 그 사실을 알아채지
못하도록 프리즘 렌즈를 사용했다. 그렇게 해서 얻어진 표현의 직접성을 이후의 다른 사진 작가들도 분명 달성했겠지만, 아마도
뛰어넘지는 못했을 것이다. 《뉴욕의 맹인 여성》(1916, 「워커 에반스」(상)을 참조할 것. - 옮긴이 주)은
가장 뛰어난 사진들 중의 하나다. 우리는 돌벽을 배경으로 한 중년 여성의 상반신을 보게 된다. 그녀는 검은 옷을 입고 있고,
머리에는 스카프를 두르고 있다. 그녀의 목에는 관공서에서 발행한 작은 금속 배지가 달려있는데, 구걸 허가증으로서 번호 2622가
적혀 있다. 그 아래로는 목을 감은 줄에 매달린 표지판에는 "BLIND"(맹인)라는 글자가 적혀 있다.
그녀는 보는 사람의 오른쪽으로 몸을 약간 돌리고 있는데, 한 쪽 눈은 감겨 있고 다른 쪽 눈은 떠 있지만 볼 수는 없다.
한 평론가가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 "스트랜드의 인물 사진에는 사회학적
객관성이 개성·성격·인간성에 대한 강렬하지만 감정이 섞이지 않은 몰입과 혼합돼 있다. 스트랜드는 자신의 인물
사진들에 대해, '나는 그들을, 삶이 그들을 무너뜨려 특별한 종류의 관심거리, 그리고 어떤 점에서는 고귀한 대상으로 만들어버린
모든 이들이라고 느꼈다.'"
자신의 잡지에 스트랜드의 작품을 내보냈던 슈티글리쯔는 다음처럼 말했다 : "그의 작품은
순수하다. 그것은 직접적이다. 조작의 속임수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가 하는 모든 것에는 지성이 적용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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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사진, 뉴욕》(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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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스트랜드의 사진들에서 엄청난 지성이 발휘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세상에 대한 그의 관심, 세상 모든 종류의 조작과 경향의 신기함이 느껴진다. 요약하자면, 작용하는 자극들과 그것을
받아들여 점검하도록 준비된, 고도로 발전된 정신력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순수"하고 "직접적"인가? 이러한 말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카메라를 가지고 있고 그것을 수많은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그런데
왜 몇몇 사진은 의미 있고 다른 사진들은 단지 그림과 비슷하다고만 하는 것일까? 스트랜드의 사진에는 광범위하고 복잡한 문화적 선사(先史)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찍어야
하는 지 알아야만 한다. 이는 단지 기교와 기술 작동만의 문제가 아니다. 비록 그것들이 없으면 분명 안 되지만 말이다. 축적된
지식과 잘 도출된 현실관에 부합하도록 주관적 선택을 표현해야 하는 것이다. 제작된
작품은, 결국 사진을 찍을 때 생각했던 것과 느꼈던 것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 것이다.
화가는 자신의 상상력으로 세상에 대한 근본적 진실을 제시한다. 사진
작가는 일정한 객관적 요소들을, 아마도 그것들의 의지에 반하여, 그러한 종류의 근본적 진실을 드러낼 수 있도록 배치해야만
한다. 화가와 사진 작가 중 어느 쪽이 더 어려울까?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지만, 스트랜드의 초기 사진들에서
확인되듯이, 진정한 사진 작가라면 모름지기 깨어있는 의식과 미학적 감수성의 흔치
않은 배합을 소유해야만 한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뉴욕의 『빌리지 보이스』(Village Voice)에 쓴 기사에서 슈젤달(Peter Schjeldahl)은
이번 전시회에 대해 감탄을 표하지만, 스트랜드의 모더니즘이 "극단적 증상이 있는 생산적 정신병"이라고 단언한다.
스트랜드의 사진에 관해 그는, "각 사진은 렌즈를 통해 보는 것은 아는 것이다, 그리고 아는 것은 본질적 실재를
파악하는 것이라고 말해준다. 그러한 시각의 명료함으로부터 행동의 명료함으로 넘어가는 것은 매우 쉬운 것처럼 보인다. 즉,
세상을 합리와 계몽으로, 아마도 혁명으로 장악하는 것 말이다. 제기랄."
이 시기의 스트랜드 작품이 지닌 투명성 속에는 순진함이 있다는 말인가? 그것은, 세상을 알고
파악하는 것이 비교적 단순한 일일 것이라고 말해주고 있는가? 가능한 이야기다. 그는 젊었고, 그가 살던 세기 또한 젊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정도의 자신감이 있다는 건 그 자체로 필요하고 건강한 상태다. 지금의
예술계를 지배하고 있는 냉소주의와 회의주의가 더 생산적이라고 입증이라도 되었단 말인가? 그렇진 않았을 것이다.
《루세티 가족, 이탈리아》
(1953) ▶
스트랜드는 1930년대 스탈린주의 운동의 지지자가 되었고, 망명객 비슷한 신세로서 프랑스에서 그의 삶 중 마지막 25년을
보내면서도 평생동안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20세기의 정치적 외상이 그의 후기 작품에 어떤 한계를 드리웠는지 논하는
것은 이 글의 범위를 넘어선다. 그러나 그보다 젊은 작가들의 회고록에 따르면, 회화와 문화에 대한 깊은 식견이 있었던 스트랜드가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반동적인 진부함을 수용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건 분명하다. 사실, 1935년
그에게 소련에서의 작업이 허용되지 못했는데, 왜냐하면 그가 당시 "형식주의"(formalism)자라는 혐의를
받고 있던 영화감독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Sergei Eisenstein)과 교제를 나눴기 때문이다. 1949년
스탈린주의의 영향력 아래 있던 사진 연합(Photo League)이 준비한 심포지엄에서 제기된 "우리는 이 곳으로부터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스트랜드는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으로 가라"고 대답했다.
그의 뛰어난 초기작품들은 예술과 인간에 대한 신념을 지닌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영감을 주고 있다.
▷ 원문 : http://www.wsws.org/arts/1998/apr1998/stra-a17.shtml
▷ 참조 :
1. 루이스 하인(http://www.masters-of-photography.com/H/hine/hine.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