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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zabel(2004-12-01 03:19:39, Hit : 959, Vote : 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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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선 이야기

(
'.
머... 전시를 못본 입장에서 뭐라 할 순 없겠지만.   솔직히 위의 전시 소식을 여기저기서 접하고는 그닥 발랄한 기분이 들진 못했음이다.   석연치 않았다는 것보다는 생각할 꺼리가 많지 않아서, 물론 이것은 아주 개인적인 의견이다.
그래도 아래에 쓰여있는 에피소드는 충분히 곱씹을 만하다.   정말로 우리는 자신 행동의 의미를 반의 반이라도 파악하고 있는 것인가.   또한 분명히.
삶은 작업이어야 한다.
.'
)
   + + +



ICAS Forum에서 퍼 왔습니다.

버릇없는 녀석



벌써 6년 전인가? 미술대학 실기실에서 처음 만난 최선이라는 작가는 정말 버릇없는 녀석이었다.
선배를 머리로 받아버리는가 하면, 담당교수들을 마치 요리 재료 다루듯 하는 것이 아닌가. 더구나 우락부락한 생김새나 행동과 다르게 여성스러운 말투를 쓰는 것도 참으로 아이러니했다.
언젠가 나는 아무도 없는 캄캄한 실기실 구석에 쪼그려 앉아 하는 일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 그가 실기실 문을 열고 슬그머니 나타나 자신의 자리로 가 앉더니 히쭉히쭉 웃고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점점 웃음소리가 커졌고, 작은 노트에 무언가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괴기스러웠다.
'미친것인가?'
조용히 실기실 밖으로 빠져 나왔더니, 주위 동료들이 모여 그에 대해서 숙덕거리며 헐뜯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자초지정을 알고 나면서 나는 그에게서 묘한 동지의식과 매력을 느꼈다. 몰래 훔쳐본 그의 노트에 이렇게 써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다들 나를 욕하고 있겠지만, 어쨌든 싸움은 내가 이겼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이러한 일들은 그 이후에도 알게 모르게 종종 벌어졌고, 사람들은 그저 최선이라는 사람의 알 수 없는 성격 정도로 생각하고 스쳐버렸다.


그의 말들은 거칠고 무디다. 때로는 자신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기도 한다. 게다가 그의 작업은 충동적이고 비논리적이다. 저명한 사상가나 미술 비평가를 우러러 오늘도 열심히 실기실에서, 도서관에서 미술을 찾으려는 사람이 바로 당신이라면, 당신이 생각하는 최선의 작업은 미술이 아니다. 그러나 이론이 미술의 방향을 결정지은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두자. 현대미술가들이 이론가들에 비해 머리가 나쁘고 공부는 못했어도 어마어마한 이론적 체계들을 헌 짚신 짝 바라보듯 내팽개치고 부정할 수 있었던 이유는 현대미술의 정체를 꿰뚫어보는 동물적 감각을 지녔기 때문이다. 공부도 못하는 예술가들이 전문화된 현대사회에서 여전히 존재할만한 가치가 있다면, 바로 그런 특수한 능력을 통해 생산해내는 독특한 발상의 전환 때문이며, 이를 통해 기존의 가치를 무력화함으로서 보다 인간다운 삶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학생들은 너무 똑똑하다. 교수들이 무엇을 잘못해왔으며, 지금 무엇을 잘못 가르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미 그림을 어떻게 그려야하는지 잘 알고, 적당히 반항아적인 모습을 잃지 않으면서 교수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현실의 모든 조건과 과거 우리 미술의 역사로부터 그들은 아무런 자극도, 반항심도, 동기도 제공받지 못한다. 그렇다면 오늘날 한국이라는 지역, 문화, 역사적 환경에서 도대체 미술이란 무슨 가치가 있는 것일까... 미술 작품이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술자리는 온통 비합리적이고 비전문적인 교육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하고, 서구미술의 문맥과 최신 이론의 칼을 들고 비뚤어진 한국미술사를 난도질해보겠다고 날뛴다.(나 역시 그런 자리의 단골손님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토론들이 종결된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이제 그의 아내마저 질투를 느낄 정도로 가까워져 버린 나는 그가 밖에서 겪었던 시시콜콜한 사건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미술에 대하여 이리저리 고민하기 이전에 이미 실천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될 때가 있다. 그래서 나는 버릇없는 그가 마음에 든다.

오늘 우리가 그를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으며, 앞으로 우리 미술계를 이끌어갈 많은 젊은 작가들, 척박한 환경에서 힘들게 화단을 일궈온 많은 선배들과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공유하고자 함에 있다. 그가 탁월한 작가라서, 그가 대단한 일을 해내서가 아니다. 여성스러운 섬세함과 순수한 마음을 가진 최선이라는 사람이 학교라는 배움의 장소에서 우락부락한 얼굴값을 해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다른 학생들이 이미 아는 미술을 즐기고 학습하고 소비하고 있을 때, 애써 그린 그림을 끌과 나이프 같은 각종 도구로 박박 긁어 동료들과 담당교수들의 신경을 자극해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그 일에 담긴 메시지 말이다.



"앞으로 작업은 수업시간에만 한다!"

모든 일에 성실하고 적극적인 그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주위 사람들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동안, 그는 그가 생각하는 미술을 시나브로 방법론화 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이 모든 일은 아주 사소한 사건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새 학기를 맞아 깨끗이 칠을 한 간이벽에 실수로 물감을 묻혔던 것이 그것인데, 이 일로 인해 담당 교수로부터 인성이 더럽다는 수모까지 당해야했고, 기어코 그는 많은 학생들 앞에서 교수로부터 사과를 받아내었다.
문제는 그런 에피소드가 실기실 내에서 이루어지는 미술교육의 방식과 너무나 닮았다는 것이다. 네모난 캔버스의 영역. 즉 그들이 생각하는 미술을 벗어나면, 한 개인의 멘탈리티 마저 의심받게 되는 것이다. 줄곧 한국현대미술에 대하여 문제의식을 가져왔던 그가 많은 학생들 앞에서 담당교수의 사과를 받아낸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그는 가장 비미술적인 방법을 선택하여 수업을 방해하고 트러블을 일으켰다. 그리고 계속해서 교수들과 동료들을 캔버스 바깥으로 끌어내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를 요구하였다.
나는 그림을 긁어내는 행위가 예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기존의 가치를 거부하는 것이 예술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장 비미술적인 방법을 미술이라고 생각하는 방법과 맞세웠을 때, 긁어내기가 미술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면, 최소한 기존의 가치는 유보되어야 한다. 긁어내기는 대화가 부딪히는 장을 유도해내기 위하여 선택한 방법일 뿐이었다는 것이다.
다만, 묘한 것은 그저 물감덩어리가 벗겨져 나간 캔버스 천 쪼가리일 뿐이지만, 드문드문 보이는 얼룩과 물감자국 사이로 한 젊은 작가의 고민과 땀, 일상에서 겪었던 갈등이 고스란히 묻어난다는 것이다.
아름다움이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미술이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최선이 생각하는 예술이란 바로 이 지점에 와 있는 듯 하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

'벗겨진 그림'을 만들어내기 위해 계속해서 그림을 긁어내기만 했다면, 그가 생각하는 그림 그리기의 방식과 모든 사건-행위들에 대한 의미들은 스스로 모순을 드러내지 않을 수 없다.
상기했듯이 그때 그 장소에서 수업을 중지하고, 대화의 틈을 벌리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또한 작품이라는 물질적 증거를 만들어 '전시'를 하기 위함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중간평가를 위해 진열에 가까운 전시를 했지만, 다 그려진 그림을 뒤집어 걸어둔 모양과 다르지 않았다.)
사실 그는 작업을 할 때 구상하고 계획하여 제작하지 않는다. 물론 항상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그가 생각하는 '자신의 작품'이라는 것은 어떤 상황에 대한 묘사와 그것에 대한 상상일 때가 많다. 즉,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서 벌어진 사건을 스스로 체험하면서, 그것의 예술적 가능성을 판단하고 포착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쥐에게 먹이를 주는 행위(각주1)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연히 벌어진 작은 사건에 대한 해석을 담은 것이다. 그가 남긴(재현된 사진이다) 사진은 벗겨진 그림과 마찬가지로 어떤 사건에 대한 정보일 뿐이다. 그에게 있어서 작품이란 어디에 존재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에게 있어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그림으로 재현해내는 일이 최소한 그에게 있어서는 무의미했기 때문에, 새로운 방식의 그림 그리기가 요구된다.
그의 실제 의도와 무관하게, 신문 베끼기(각주2)에 그러한 고민이 묻어나고 있다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그림을 벗겨내는 작업을 함으로써, 자신이 할 수 있는 영역을 최소화한 만큼, 작품 제작에 있어서 최소한의 개입만이 허용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과거 세잔과 브라크=피카소처럼 심각한 고민 끝에 얻어낸 체계적인 방법은 아니었더라도, 자신의 방법을 찾아 암중모색하는 과정으로 비춰진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이 예술가에게 있어서 가장 힘든 문제이자, 고된 작업이다.
그림이 예술은 아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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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1) 밥을 했는데 쉬어 버린 밥이 있었어요. 그 밥을 비닐에 담아서 실기실에 가져다 놓고 그걸 가지고 뭘 한번 해볼까 하며 꼼지락거리다가 쌀이 양식이니까 양식이라는 글자를 도톰하게 입체감 있게 만들었죠. 그러고는 실기실 한쪽 구석에 세워두고 딱딱하게 마를 때까지 기다렸죠. 다음날 실기실에 들어갔더니 없어진 거예요. 보니까 쥐가 와서 가지고 간 거예요. 그때 묘한 기분이 들었어요. 제가 글씨를 만들었는데 쥐가 어떻게 그 글씨를 알고 먹은 것인지, 사실은 그건 제 혼자만의 착각이잖아요? 내가 글씨를 작품으로 만들었는데 쥐가 내 작품을 이해했다는 식으로 생각했는데, 작품이 없어졌는데도 불구하고 작품은 저의 생각 속에 자꾸 떠오르는 거예요. 오히려 양식이라는 거북스러운 물질, 작품이라고 불리우는 물질이 없어지고 난 후에 더욱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어요. (2004년 10월 31일, 최선 vs 오상길 대담 中)

각주2) 그 작은 드로잉은... 저는 작업할 때 그리거나 색을 쓰거나 하는 것을 꺼려했는데, 누군가에게 선물하려고 했던 것이었어요. 병원에 입원해 있는 사람이었는데, 하나라도 도움이 되고 싶은데, 돈을 들여서 선물한다는 것이 저에게는 의미가 없는 것 같아서. 그래서 봤던 게 신문이에요. 그 사람이 신문을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몸이 쇠약해 있었는데, 신문의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는 게 뭐 없을까 했더니 신문에 있는 삽화들이나 거기 장면 장면 사진들 있잖아요? 사진들만 가지고도 내용을 알 수가 있겠더라구요, 동화처럼. 어렸을 때 먹지 뒤에 대고 많이 그리잖아요? 그렇게 먹지 대고 그리고...(2004년 10월 31일, 최선 vs 오상길 대담 中)

2004년 11월, 이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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