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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2-15 20:47:52, Hit : 1577, Vote : 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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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손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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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제 완전히 한국의 문화라고 칭해지는 것들이 왜래의 것으서 배태되는 시점이 온 것이 아닐까란.   서태지가 하여가 인터뷰하면서 그랬다잖아, 태평소 소리나 국악은 자신에겐 제 삼세계 음악일 뿐이라고.   나도 마찬가지고 당신도.
무책임하고 역사를 무시한다 하지는 마시길.   정말로 역사를 생각하는 나라에서 수업시간에 제대로 국악하나 가르치지 않겠는가.   시스템이 이러할 진대 어케 뿌리를 생각하며 살겠는가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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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컬러텔레비전 키드’와의 대화
--- 이대범과 손동현의 대화
Vol. 50   2007. 2. 15~2. 21


한국적 팝으로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새긴 손동현과 미술평론가 이대범의 대화를 싣는다. 다소 길다. 하지만 미국, 나아가 동시대 문화를 퓨전 동양화로 담아내는 전도유망한 작가의 고백은 한 번쯤 들을 만하다.



<영웅배투만선생상-2>. '한국적 팝'으로 불리는 그의 작업은 자신만의 초상화 작업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슈퍼맨, 배트맨 등 미국문화의 상징적인 아이콘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대범 _ 작년 아트스페이스 휴에서 열린 첫 번째 개인전 <파압아익혼 波狎芽益混 POP ICON>전은 전시제목 만큼이나 누리꾼들에게 화제가 되었다. “3D 캐릭터들이 이렇게 변신하다니 신기하다.”, “슈렉이 옛날부터 없었으니 최근에 그려진 그림이다.”, “빌어먹을 미국놈들 한국을 어떻게 알고 이런 짓을 하다니.” “슈렉이 동양화에 나오나요?” 등. 4월에 열릴 두아트에서의 두 번째 개인전에는 어떤 반응이 있을지 궁금하다. 두 번째 개인전에서 변화가 있다면?

손동현 _ 형식적인 큰 변화는 없다. 생각하는 내용은 계속 가는 것인지만, 지금까지 보여주지 않았던 형식을 보여줄려고 한다. 똑같은 초상화라도 지금까지는 유년 시절을 통해서 보아왔던 캐릭터들이 대부분이었다면, 지금 준비하고 있는 것은 시대의 상징성을 가진 인물들을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래서 슈퍼맨과 마이클 잭슨의 초상화를 준비하고 있다. 두아트가 2층으로 공간이 분리되어 있어서 한 층에서는 초상화를, 그리고 다른 한 층에서는 최근 작업 중인 문자도 작업을 선보이려고 한다.

이 _ 초상화의 경우 형식상은 변화가 없다면, 거대한 형상의 캐릭터와 음차 등은 그대로 유지가 될 것 같다. 그런데 예전에는 사람의 얼굴이 아니거나, 얼굴이 가려져 있는 초상화들이 많았는데, 이번에는 얼굴이 전면에서 부각된다는 건가?

손 _ 그리는 방법에 있어서 조금씩 변화를 주고 있다. 그 변화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곳이 얼굴이다. 얼굴 피부를 표현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작업을 진행하면서부터 약간의 자심감이 붙게 되더라. 예전에는 사람 얼굴을 그리는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초기 작업을 보면 대부분 얼굴을 가리고 있다. <노날두맥날두선생상> <괴물골음선생상> <막강이인조술액동기도> 등. 그런데 최근에는 얼굴을 드러내놓고 있는 인물을 그리고 있다. 특히 마이클 잭슨은 아직 드로잉만 한 상태인데, 나 역시 얼굴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다. 

이 _ 그분이 워낙 얼굴가지고 장난을 많이 친 분이라 나도 궁금하다. 현재 대학원(서울대 동양학과) 휴학 중인데, 학부 때도 초상화 작업을 했었나?

손 _ 학부 때 작업은 초상화 작업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풍속화도 그렸다. 초상화는 지금과 비슷한 형식이었다. 그런데 인물의 선택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었다. 당시에는 그저 만화 캐릭터에서 가져오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고, 인물 선택에 있어서도 규칙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냥 손에 잡혔던 것을 그렸다고 할까. 그런데 최근 들어 엄청난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것들을 그리고 싶어졌다. 예를 들어 미국을 상징하는 옷을 입고 있는 슈퍼맨, 그리고 한국 공연시 “제주도를 달라”고 했던 마이클 잭슨에 관한 기억을 그리고 싶다. 그런 말을 당당하게 할 수 있는 파괴력을 가진 인물을 그리고 있다.

▶▶ 당대 문화를 초상화에 담다



<괴물골룸선생상>. 손동현의 작업을 정의하는 또 다른 요소는 바로 '음차 형식'을 빌린 독특한 제목에 있다. 초상화 속 미국 문화(우리에게 익숙한)와 한자문화권의 흔적인 ‘음차’가 어우러져 이질적 아이콘들이 범람하고 있는 우리 대중문화의 한 단면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 _ 초상화에 매력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다면?

손 _ 2003년에 학교 강사분이 신립 장군 영정 작업을 했는데, 어시스턴트를 했었다. 그때 작업하면서 초상화 형식이라든지 기법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됐다. 피부를 표현하는 방법이라든지, 시점이라든지 신기한 것이 많았었다. 한번은 작업을 하면서 시점이 틀린 것이 아니냐고 했더니, 그것은 사진에 익숙한 시각을 가지고 바라봐서 그런 거라고 해서 무릎을 친 적이 있다.

이 _ 흥미롭다. 얼굴은 정면인데, 허리 벨트는 내려다보는 시점에서 그린 것이 그러한 예가 아닐까 싶다. 그럼 당신의 작업을 이루는 또 다른 요소인 ‘음차’는 어떤 규칙에서 나오는 건가?
 
손 _ 일단 그 사람의 직함에서 출발한다. 영웅을 예로 들어보자. 그것을 앞에 달고 다음에 이름이 나오게 하는 것이다. 뜻을 맞추기는 하는데, 형식을 맞추려다 보니 뜻이 많이 상실되고, 그렇다고 형식이 정확히 매치되는 것도 아니고….

이 _ 일차적으로 보이는 시각적 이미지는 당대 문화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기에 그곳에 시선이 멈추게 된다. 그러나 그 이미지는 사진의 시점에 익숙한 우리의 시각 체계를 벗어나 초상화 시점으로 그려져 있다. 음차도 비슷한 게 아닐까 싶다. 한자 문화권, 그리고 전통적 초상화 형식의 틀에서 보면 친숙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는…. 당대 문화에서는 한자가 낯선 것이 되었고, 음차된 텅 빈 기표가 지시하는 시각적 이미지만 관객에게 전달되니까 말이다.

손 _ 관객들은 음차를 단순히 장식적 요소로 보고 있더라. 전시장에는 작품 제목이 있으니 나중에 확인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기는 하지만.

이 _ 초상화 작업에서 음차는 장식적 요소 이상의 것이 있다고 본다. 분명 초상화라는 장르에 필요한 형식이지만 그것은 단순히 거기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 예전의 초상화에서는 시각화된 이미지를 나타낼 수 있는 또 다른 중요한 요소였다. 그런데 당신의 작업에서 시각이미지를 설명하는 ‘글’은 음차 된 것, 즉 지시는 하고 있지만 텅 빈 기표로 보인다. 어쩌면 친숙하게 보이는 시각적 이미지가 텅 빈 기표라고 말하는 것 같다.

손 _ 어느 분이 작업에 레이어가 단순한 것 아니냐는 말을 했고, 다른 이는 일러스트 같다는 소리도 한다. 분명 그런 부분이 있다. 하지만 인물의 자세, 시점, 인물 표현 등에서 그리고 방금 말한 것처럼 이미지와 음차된 글 사이에서 긴장관계를 이끌어내고자 노력한다.


▶▶ 친숙한 이질적 아이콘들



<막강이인조술액동기도>. 그가 즐겨 그리는 미국문화 속 아이콘들은 실제로는 우리가 아무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동시대 문화에 다름 아니다.


이 _ 대상 선정은 어떻게 하나. 초상화니 누가 대상이 되는가도 중요할 것 같은데.

손 _ 예전 초상화를 보면 인물이 제한적이었다. 당시는 초상화를 가지고 있는 것 자체가 부나 권력의 상징이었으니까. 지금 내 작업 속 인물들은 그간 살아오면서 존경했던 것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들이 부나 권력을 가진 현실계의 인물은 아니지만 내게는 예전 초상화 대상들과 맘먹는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을 분석해보면 주로 ‘미국’과 관련되어 있다. 혹여 미국이 아닌 것들이 있을 수도 있는데, 미국이라고 생각해도 상관없는 것들이다. 돌아보면, 내가 처음으로 극장에서 본 영화가 팀 버튼의 <배트맨>이었고, 아침에 눈을 뜨면 기다리고 있는 건 화려한 컬러텔레비전에서 놀고 있는 디즈니 동물들이었다. 물론 그것은 비디오로 무한 반복해서 봤었고. 그곳에서 뛰어 놀던 게 ‘벅스 버니’였고, 그곳에서 쫓고 쫓기던 것은 ‘실베스타’와 ‘트위티’였다. 내 어린 시절의 기억 어느 한편에는 그렇게 ‘에크미’ 동산의 동물친구들과 뛰어 놀았던 셈이다. 우러러 보았던 영웅은 ‘배트맨’. 스승으로 삼았던 이는 ‘제다이 마스터 요다’였다. 처음으로 한국에서 생산된 문화를 내가 즐겼던 건 아마 서태지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이 _ 그러나 그마저도 서태지가 미국 힙합 음악의 길을 열어준 정도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가져본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첫 개인전 당시 인터넷에서 수많은 말들이 있었는데, 그들 대부분이 손동현 씨와 비슷한 세대를 살고 있거나 더 미국적인 것에 노출된 세대들이었다. 사실 당신이나 인터넷에서 수많은 말들을 쏟아낸 그들 모두 굳이 미국이라고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우리 삶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동시대 문화가 아닌가 싶다. 작업의 캐릭터들이 미국 문화에서 왔다기보다, 이것이 우리의 동시대 문화라는 느낌이 강하다는 얘기다. 예전에 만화 캐릭터 장난감을 많이 소장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손 _ 미국에 친척들이 있어서 장난감을 많이 보내왔다. 내 친구들인 셈이니 버리기 싫더라. 그러다보니 양이 장난이 아니더라. 예전에는 정말 많았는데, 부모님이 하도 뭐라고 하셔서 지금은 한 박스만 남아 있다. 군대 시절, 집이 이사를 갔는데 그때 부모님이 모두 버려 한 박스만 남게 되었다.

이 _ 군대를 카추사로 갔죠. 이래저래 미국과 관련이 많은 셈이다.

손 _ 뗄 수 없는 존재인가보다. “군대 가서 많은 생각을 했다”라는 말은 다소 식상하지만, 나 역시 그랬다. 동두천에서 카추사로 복무했는데, 나는 그들의 문화권에 속해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나는 그들의 문화에서 ‘타자’였었다. 이 당연한 사실을 그곳에서 처음으로 깨달은 거다. 그 이후 곳곳에 익숙하면서도 타자로 살고 있는 내 자신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_ 그것이 음차 형식을 통해서 드러난 듯하다. 팝 아이콘이 ‘坡狎芽益混’으로 골룸이 ‘滑凜’으로, 맥도날드가 ‘老捏斗麥捺兜’로, 슈렉과 동키가 ‘述厄童奇’로 변환되면서 이미 일상이 되어버린 문화적 제국주의의 아이콘을 고통스러운 현실의 단면으로 인식하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초상화에 있는 친숙한 아이콘, 한자문화권에서도 낯선 ‘음차’, 〈~선생상〉이라는 동양적 초상화의 형식. 이러한 것들이 만들어 낸 이질적인 동양화는 단지, 이질적인 동양화 작품 하나를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문화제국주의에서 이질적 아이콘들로 범람하고 있는 우리 대중문화의 한 단면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인다.

▶▶ 미술, 시작에서 지금까지

이 _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이야기하자. 미술은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

손 _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다. 내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가장 하고 싶은 것이 미술이었다. 어머니가 미술학원을 운영하셨는데, 그 영향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시기가 너무 늦었지 않나, 고 2때부터라면. 그렇다고 내가 예고를 다닌 것도 아니고…. 그래서 어머니와 상의를 했는데, 바로 국내 대학에 가는 것은 힘들다고 하더라.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처음에는 유학 포트폴리오를 만들기 위해 학원에 갔었다. 그런데 그쪽에서 나중에 대학원을 가라고 하더라. 그 무렵에 IMF가 터졌고. 그래서 석고 소묘는 실력이 되지 않으니 정물 데생을 하는 곳으로 학교를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경원대하고 서울대 밖에 없었다. 물론 가고 싶던 이대는 갈 수가 없었고.(웃음)

이 _ 일반적인 대답을 원했는데……. (웃음) 뭔가 더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동양화는 어떻게 선택하게 된 건가?
 
손 _ 이런 이야기까지 나가도 되나? 동양화는 당시 학원 선생님이 유학(대학원)을 갈 거면 여기서는 동양화가 낫다는 말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그 말이 설득력이 있더라. 결국 유학도 가지 못했고, 대학원에서도 동양화를 계속 하고 있지만. 재미있는 건 미대에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내가 왜 동양화를 선택했는지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저 미대생이었을 뿐이었다. 그 후 군대를 마치고 복학해서 보니 내가 동양화과를 다니고 있더라. 코미디였다. 동양화가 뭔지도 모르는데, 그곳에 있는 내 모습이라니. 그래도 그곳에서 예전 동양화 작가들의 정신보다는 기법에 관심을 두었다. 지금도 그것을 유지하고 나만의 감수성으로 소재를 찾아가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고.

이 _ 학교 선생님들이나 학생들의 반응은 어땠나? 열렬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손 _ 선생님들은 정말 노코멘트였다. 참, 한 분 있다. “인물 하나를 그려도 스터디를 하라”는 내용이었다. 물론 그마저도 호의적 관심에서 나온 말은 아니었고.

이 _ 학교에서 아웃사이더였나 보다.

손 _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내 그림에 대해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었던 것 같다.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복학할 당시 무엇 때문인지 모르지만 상당히 날카로워져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과도 친하게 지내지 못했고. 대부분의 복학생들이 후배들을 귀여워하는 편인데, 나는 후배들에게 화를 내는 선배였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이 많이 불편해 했다. 나 역시 사람들이랑 학교 작업실에서 작업을 하니 신경이 쓰였고. 그래서 복도에서 작업하기도 했었다. 심지어 작업을 덮어놓고 다닌 적도 있었다.

이 _ 홀대 받았었군. (웃음) 지금 그들이 당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상당히 궁금하다. 전시도 많이 하고, 미술시장에서도 주목하고 있으니. 맞다. 《월간미술》에서 선정한 ‘post-next generation’에도 선정되지 않았는가. 물론 앞으로가 문제겠지만, 일단 미술계의 주목을 받고 있으니 부러움을 받을 만하다고 본다. 학부 졸업 후 첫 전시가 2005년 〈미(美)+끼(氣)〉전(갤러리 꽃)으로 알고 있는데.

손 _ 그렇다. 동양화과 졸업생 중 몇 명을 선정해 가진 전시였다. 전시를 마치고 다른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이곳저곳 가능한 모든 곳을 찔러봤다. 공모전에도 응모했고, 대안공간에 포트폴리오를 들고 찾아가기도 했다. 결과는? 뻔하지, 뭐. 모두 떨어졌다. 그러다 갤러리 세줄의 <funny funny Ⅳ>전에 참여하게 됐다. 당시 주변에 있던 키미 아트와 가나아트 갤러리에서 ‘팝 Pop’을 주제로 한 전시가 동시에 열려 미술전문지 등에 소개가 되었다. 그때문인지 그 후 ‘팝’ 관련 전시가 많이 들어왔다. 결국 그것이 공식적인 첫 전시라고 할 수 있겠다. 첫 개인전은 아주 우연하게 잡힌 셈이다. 대안공간 루프 공모에 지원했는데, 그것을 우연한 기회에 아트스페이스 휴의 김노암 디렉터가 본 것이다. 개인전을 할 생각이 없냐고 연락이 왔다. 첫 개인전치곤 우연의 일치인 셈이다.

이 _ 그러한 일련의 전시를 거치면서 ‘퓨전 동양화’ 또는 ‘팝’으로 묶이는 경향이 있는데.
 
손 _ 지금까지 작업을 많이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에 나를 묶는 그런 경향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보여줘야지. 학부 때 풍속화 작업을 했는데 그런 맥락에서 동두천도 그려보고 이태원도 그렸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완성하지는 못했다. 그 작업들을 통해 뭔가를 보여주고 싶다.

이 _ 정작 완성하지 못했으니 하고 싶은 또 다른 이야기는 한 번도 하지 못한 셈이다. 동두천도 그렇고, 이태원도 그렇고 타문화가 혼종된 공간을 다루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초상화 작업과도 관련이 있어 보이고. 꼭 완성하길 바란다.
 
손 _ 사실, 부끄럽다. 학부 때는 뉴욕 코리아 타운을 그리기도 했었다.

이 _ 지금까지 초상화 작업을 주로 선보였는데, 두 번째 개인전에서 선보일 문자도 작업은 어떤 작업인가?

손 _ 문자도 작업은 인물 보다는 문화적 세태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인물이 아니라, 로고에 관한 것이다. 예전에 충, 효, 인 등 당대 가치를 대변하는, 그래서 온 국민의 머릿속에 뿌리 깊게 각인된 문자가 있었다. 지금은 그런 문자를 대신하는 것들이 무얼까 생각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나이키, 아디다스, 스타벅스 등이다. 그 로고 안에 우리 주변에서 발견 할 수 아이콘들을 삽입한 거다.

이 _ 이제 1년간 머물던 쌈지 스페이스도 떠날 시간이 되었다. 이제 어디로 가나?

손 _ 작업실 구하는 것이 만만치 않더라. 눈만 높아졌다. 당분간 여행을 떠나고 싶다. 카셀 도큐멘타, 베니스비엔날레 등 올 유럽이 화끈하지 않는가. 거기에 한 번 가보려고 한다.

이 _ 거기서 다시 만나면 좋겠다. 나도 기대하고 있다. 


| 이대범 _ 미술평론가 ceitickim74@hanmail.net



* 이 인터뷰는 2007년 2월 12일 오후 5시, 쌈지 스페이스 502호 손동현의 작업실에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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