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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영원히 마무리되지 않으리라 생각되지만, 모든 사람들이 생각해야될 문제. 하지만 생각하기들 싫어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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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04.10.0119:02
"붓으로 화폭으로 진충보국하라"

△ 민족문제연구소가 1일 서울 서대문형무소 기념관에서 개최한 ‘식민지 조선과 전쟁미술전’에서 한 어린이가 친일 전시 작품을 가르키며 질문하고 있다. 박종찬 기자
[현장] ‘식민지 조선과 전쟁미술전’…미술계 거목들의 친일대표작 한자리에
일제 강점기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데는 뛰어난 예술가들도 총동원되었다. 이당 김은호, 운보 김기창, 김경호, 심형구 등은 한국 미술계에 큰 발자취를 남긴 이들로, 한국 미술사를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이들 미술계 인사가 화필로 친일을 찬양한 기록이 한 자리에 모여 공개되었다.
민족문제연구소 등은 1일 오후 서울 서대문형무소 기념관에서 ‘식민지조선과 전쟁미술’이라는 주제로 미술계 ‘거목’들의 친일 작품세계를 낱낱이 공개했다. 이번 행사는 민족문제연구소가 일제 식민지배의 실상을 고발하고 일제 잔재를 청산하려는 취지로 매년 열고 있는 기획전시회의 일환이다. 지난 2001년 ‘역사왜곡전’을 시작으로 ‘친일예술인과 그들의 작품전’, ‘친일음악의 진상전’에 이어 4번째 전시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친일 화가들이 전시총동원체제기에 그림과 글씨, 만화, 포스터, 신문기고, 작품전 등을 통해 일제의 침략전쟁을 찬미하고 내선일체 황국신민화 정책에 어떻게 호응했는지를 그들의 대표작들을 통해 보여준다. 또 일제가 침략전쟁에 한국인을 동원하기 위한 선전활동에 어용 미술단체와 작품전을 어떻게 활용했는지를 보여주는 친일미술의 활동 연표도 한눈에 들어온다.
특히 대표적인 친일파인 이완용 등이 일본 관리의 회갑에 바친 서예작품이 공개됐으며 일제의 성전화첩, 청일전쟁·러일전쟁 화보, 한일합병 기념 화첩, 반도지광·소국민·신시대 등 친일잡지도 전시됐다.
이와 함께 전시회에서는 폭압적 전시체제에서 민중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실물자료와 그림들도 다수 공개됐고 중국 해남도에서 강제동원돼 학살된 수천명의 조선인들을 담은 기록 사진도 최초로 공개됐다.
전시회를 주관하고 있는 민족문제연구소 박한용 연구원은 “일제시대 조선의 미술이 각종 침략전쟁과 희생을 강요하는 전쟁 파시즘 선전미술로 타락했음을 보여주고 미술계의 주류인 원로 미술인들의 친일행위를 국민들에게 알림으로서 청산되지 못한 과거를 국민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기획했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전시회는 오는 10일까지 열흘간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열리고 서울전시 뒤 전국 순회전시회도 개최할 예정이다.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서대문형무소는 일제시절 독립투사들을 가두고 고문과 처형을 해온 일제 강점의 치욕과 한이 서린 역사의 현장이다.
다음은 이날 공개된 친일화가들의 작품과 주요내용이다.
이완용의 축시 수강(壽康)

△ 대표적인 친일파로 악명이 높은 이완용과 민병석(일제로부터 작위를 받은 거물 친일파)이 총독부 관리로 추정되는 이치오카라는 일본인의 회갑에 바친 축시다. 박종찬 기자
대표적인 친일파로 악명이 높은 이완용과 민병석(일제로부터 작위를 받은 거물 친일파)이 총독부 관리로 추정되는 이치오카라는 일본인의 회갑에 바친 축시다. 이치오카에게 ‘오래 살고 편안하게 살라’는 내용으로 이완용 등은 회갑에 시를 바칠 정도로 일본인과 교류가 활발했고 노골적 친일행위를 한 증거가 되는 작품이다.
김은호 <금차봉납도>
이당 김은호는 한국 미술사에 후소회라는 유파를 탄생시킨 거물 화가로, <미인도>가 대표작이다. 김은호가 1937년 그린 <금차봉납도>는 전시 총동원체제기에 접어들면서 조선인 화가들이 친일작품을 생산하는 데 물꼬를 튼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김은호는 전시체제 당시 1942년 11월 조선미술가협회가 주최한 ‘반도총후미술전’(전쟁을 독려하는 대표적인 시국 전람회. 조선 후방에서도 미술로 보국하자는 취지로 개최한 것)에 첫 작품을 출품하고 나중에 심사위원을 지냈다. 또 조선미술가협회 평의원을 맡기도 했다. 그의 <금차봉납도>는 친일 여성단체인 ‘애국금차회’가 금비녀(금차) 11개, 금반지와 금귀이개 2개, 은비녀 1개, 현금 889원 등을 모아 일제의 성전승리를 위한 국방헌금으로 납부한 것을 감격스레 그리고 있다.
김기창 <총후병사>
김은호의 수제자 운보 김기창은 대중의 애정을 가장 많이 받은 천재작가로 평가받는다. 그가 그린 총후병사는 완전군장한 채 휴식을 취하는 병사의 얼굴과 손에서 결전의 의지가 느껴진다. 김기창은 반도총후미술전 초대작가였으며 1943년 8월 매일신보사가 참전을 독려하기 위해 기획한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에 작품을 냈다. 또 1944년에는 일본이 전시총동원을 독려하기 위해 개최한 결전미술전에서 조선군보도부장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김기창은 총후병사와 관련해 “정식으로 그린 그림이 아니라 삽화에 불과해 친일한 작품으로 불 수 없다”고 친일작품행위를 부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최근 민족문제연구소가 김기창의 작품으로 발굴한 <적진육박>은 착검한 채 육박전을 치르러 돌진하는 황군을 실감나게 표현한 대표적 친일작품으로 그동안의 친일논란을 잠재울 것으로 평가받는다.
노수현의 <멍텅구리>
노수현은 서울대 미대를 창립한 사람으로 동양화의 대가이다. 노수현은 전시 체제 인기연재만화 작가였다. 대표작은 신시대에 게재한 <멍텅구리>로 일제시대 가장 장수한 연재만화였다. 그는 연재만화를 통해 일제의 정책을 찬양하고 홍보하는 데 앞장섰다. 당대 최고의 만화로써 대중적 영향력을 고려할 때 그의 친일행위를 가볍게 볼 수 없다는 평가다.

△ (사진 왼쪽부터)김종찬 ‘진중의 A병단장’, 김기창 ‘적진육박’, 윤효중 ‘현명(弦鳴)’.
김종찬의 <진중의 A병단장>
김종찬은 일본의 종군작가다. <진중의 A병단장>은 일본 육군미술협회가 발행한 화집 ‘성전미술’에 김종찬의 창씨명인 금원찬 작으로 소개되고 있다. 그는 1393년 일본의 이과전에도 <산서 오지 야전병원> 같은 시국색 짙은 작품을 출품했다. 김종찬은 해방 뒤에도 군도를 차고 다니는 등 정신이상으로 방황하다 일본에서 불행한 말년을 보냈다고 한다. 병약한 체력에 심약한 성격 탓이라 하더라도 일제가 조선미술계에 끼친 영향이 어떤 것이었는지 알려주는 비극적 인물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윤효중의 <현명>
1944년 마지막으로 개최된 제23회 조선미술전람회 창덕궁상 수상작이다. 활시위를 당기고 있는 우리 고유 옷차림의 여성 목각 조각상으로 이 작품은 총독 관저에 있다가 해방 뒤 총독관저가 경무대로 이름이 바뀌면서 그대로 두었다. 그 뒤 이승만이 기거했던 이화장으로 옮겼다가 1972년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되었다.
‘일제에 대한 문화적인 저항정신’, ‘민족고유의 풍속 재확인’이라는 극찬도 있지만, 1940년대 조선미전은 ‘결전 미술의 완상’ 수단으로 군국주의 성향이 노골화되고 있었다. 조선미전에 상을 받았다는 자체가 작품의 정체성을 의심할 수 밖에 없다.
윤효중 또한 당선소감으로 “시국의 진전에 따라 조선 여성들이 각 방면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그 자태와 아울러 조선 의복의 미를 재현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는 제작의도가 식민당국과 전시 체제에 부응하는 것이었음을 암시하는 말이다.
(작품해설 도움: 민족문제연구소 박한용 연구원)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박종찬 기자 pj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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