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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zabel(2004-11-03 19:13:30, Hit : 1232, Vote : 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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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스트 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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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성때문이 아니라 흐름의 정립을 위해, 카테고리를 나누고 그 개념에 걸맞는 그룹분류는 정말 필요한 것일테지만.
너무 그에만 매달리는 것도 좀 그렇지 싶다.   시리얼 제품명을 꼭 미술사조 앞에 붙여야 하는 필연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어느 정도 작가들끼리의 교류가 있고 데이터 호환이 이뤄진 다음에, 붙이는 타이틀이 가장 알맞지 않을까.   머... 그런 분리작업의 이유가 다른데 있지 않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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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민중’-예측과 전망

최진욱(작가)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얼마 전 개막된 <당신의 나의 태양 1960-2004> 전시서문에서 이영철이 쓴 “상업 자본과 문화 권력의 선봉 역할을 하는 일부 민중계열 작가들을 배제시켰다."는 사뭇 살벌한 문구와 젊은 미술평론가 신지영이 월간아트에 기고한 <우리는 정말 우리를 알고 있을까?/부제 '포스트 민중미술의 민족개념, 그 허구성에 대하여>를 읽고, 이제는 누군가 대답을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이다.

이 능력있는 -노회하기 이를 데 없는-중견 미술평론가와 신진 미술평론가로부터 동시에 공격을 받고 있는 ‘포스트민중’ 에 대해 말하기 위해선 우선 심호흡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 사회는 수구와 진보로 양분되어 80년대 독재와 민주로 양분되었던 시대를 방불케 한다. 80년대에는 오로지 정치가 화두였지만, 지금은 정치-문화-일상을 넘나드는 전선없는 전면전 양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 선명한 한마디를 내뱉기 전에는, 특히 ‘ 문화-일상’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윤기있게 흘러간다. 그러나 위의 이영철의 말처럼 톡쏘는 한마디는 미술판에 의미있는 파장을 몰고 오기에 충분하다. 그 만큼 우리 사회는 민감한 상처 위에 서있다. 이영철이 주는 메시지는 이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미술판에서 ‘공공미술, 미술비평, 미술교육, 미술언론’ 등 산적해있는 문제에 대해, 스스로 진정한 작가라면 관심 갖지 않는 게 신상에 이롭다.

이영철은 아이러니하게도 민중계열의 미술평론가였다.(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는 모더니즘계열의 작가였다.) 정치와 문화는 별개라는 사고는 수구적인 것이다. 그리고 미술제도와 미술문화가 별개라는 사고도 다를 바 없다. 이 것을 이영철이 전시기획의도로서 드러낸다는 것이-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인 것이다.
그리고 젊은 미술평론가 신지영은 ‘포스트민중’이란 무엇인지 개념도 잡지 않은 상태에서 ‘반현대, 반서구’라는 딱지를 붙이길 망설이지 않았다. 이렇게 문화판에 창궐한 ‘포스트민중’에 대한 적대감을 바탕으로 하여 과연 ‘포스트민중’이란 무엇인지 예측해 보기로 하자.

우선 포스트민중이란 민중미술이 여태까지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는 ‘흔적사조’라고 보는 시각이다. 예를 들어 신학철의 지난 번 개인전을 보면 80년대의 소재나 기법에서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그렇게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내용과 형식이지만, 아직 존재하는 것이 포스트민중이라고 보는 시각이다.(이것이 신지영의 시각이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 민미협을 중심으로 한 작가군들도 이에 속한다고 본다. 그 걸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현실주의 미학의 관점을 가진 작가군이라고 본다면, 이 것은 세월이 암만 흘렀다고 해도 ‘민중미술’이지-민중미술의 흔적이지- ‘포스트민중’이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민정기, 강요배, 손장섭 등을 대표로 하는 민중미술 출신의 풍경화가들을 포스트민중이라고 보는 시각이다. 미술언론은 이 들의 풍경화에 민중미술 프리미엄을 얹어주며 민중미술 작가들의 달라진 모습이라고 추어 올리고, 새로운 풍경화가 탄생한 것처럼 떠들지만, 이 건 어쨌거나 좀 모더니틱한 풍경화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말하자면 내용과 형식에 좀더 작가적 정체성을 투사한, 미술사적으로 ‘새로운 풍경화’에 속할 것이다. 이 역시 포스트 민중하고는 거리가 멀다.(민중미술도 물론 아니다.)

그 다음은 ‘기타’가 되겠다. 광주비엔날레에서 연탄쌓기 작업을 한 박불똥이 그럼 포스트민중일까? 아니라고 본다. 연탄은 분명 민중적 소재임에 분명하지만, 이 것이 현실과 사회에 대해 구체성있는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런 형식은 민중미술과 비엔날레적 멘탈리티가 결합한, 그야말로 ‘하이브리드’한 것으로 새로운 양식의 포스트모더니즘미술이다.

그럼 임옥상이 포스트민중일까? 역시 아니라고 본다. 임옥상이야말로 한국의 피카소요, 민중미술의 핵심인물인데, 어이없게도 이영철의 라인업엔 빠져있다. 그가 추구한 것이 ‘상업자본’과 ‘문화권력’이었던 때문일까? 아니라고 본다. 단지 그는 너무 매스컴을 자주 탔기 때문이다.(도대체 한국의 피카소가 매스컴 자주 타는 게 뭐가 문제인가?) 그는 왜 포스트민중이 아닐까? 그 건 포스트민중의 멘탈리티를 공유하지 않은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포스트민중은 유머감각은 있지만, 절대로 ‘예술가스런’ 오버를 하지 않는다. 그가 이런 예술가다운 즉흥성을 무기로 미술판의 스타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현재하고 있는 작업은 민중적 틀 안에도 포스트민중의 틀 안에도 집어넣을 수가 없다.

그리고 현재 투병중인 현장미술가 최병수가 있다. 그야말로 현재 유의미한 활동을 하고 있는 유일한 ‘민중미술가’이다. 그 이유는, 잘 알다시피 그는 오로지 ‘현장’에서 활동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행위예술 역시 매체적 적합성과 새로운 미학적 의미를 담기에 충분하지만, 그는 너무도 ‘민중미술적’이다. 말하자면 민중미술과 별로 달라진 미학적 층위를 발견할 수가 없는 때문이다. 그가 민미협소속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지만, 민미협이 계속 깃발을 올리려면 그가 단체의 일원임을 수시로 광고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잘난 ‘포스트민중’은 뭐고, 누구인가?
나는 일단 조습을 꼽는다. 그의 작업은 1.구체적인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한다. 2.매체의 선택이 그가 담고자하는 내용과 변증법적으로 일치한다. 3.현대인의 사유체계를 예리하게 관통한다.(이 세가지, 조습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포스트민중의 미학적 태도를 예측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한국 여성의 문제를 다루는 송상희다. 역시 현실의 문제를 다루고, 매체적 특성이 작품과 정확하게 결부된다. 박찬경, 고승욱, 배영환, 임흥순, 김기수, 플라잉시티, 믹스라이스, 옥정호...등등 무지 많다. 잘은 모르지만, 양혜규도 여기에 속할 것이다. 그 밖에 내가 전시장에 자주 가지 않다보니 모르는 작가가 많다.
그런데 이들에게만 보이는 특별한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이 것 때문에 그들에게 ‘포스트민중’이라는 거룩한 이름을 붙이기에 망설이지 않는데,(이 들 모두 이영철의 눈에는 ‘문화권력에 선봉에 선’ 사람이지만, 내 눈으로 보기엔) 바로 “문화의 제도화에 반대하고 제도의 문화화를 위해” 작은 실천이나마 해온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내가 볼 때, 궛등으로 들어 잘은 모르지만 ‘상황주의’등 외국의 사조에 자신을 끼워 맞출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우리에겐 민중미술이라는 확실한 전통이 있었고, 우리처럼, 오늘처럼 분단된 사회에서는 ‘포스트민중’의 약발이 가장 셀 수밖에 없다. 그리고 현대의 작가는 “‘제도의 문화화’를 위해 자신의 시간을 낼 것.”-참여할 것! 이 것이 ‘포스트민중’의 테제이다.

여기까지가 내가 쓴 글 중에 ‘예측’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전망’은?- 다른 누가 릴레이로 써주길 바란다.


  

어휴님 의견  2004-10-29 오후 11:13:00   Delete
자세히도나누신다


평택맨님 의견  2004-10-28 오후 1:59:00   Delete
최선생님 의견 잘 들었습니다. 자유게시판에 댓글을 달까하다가 이쪽에서 계속 논의되길 바래서 옮겨 왔습니다. '포스트민중미술'에 대한 저의 다른 의견을 써 볼까 합니다. 게시판의 댓글중에 김용익선생이 플라잉시티를 바라보는 시각을 표현할때 사용된 "사회적 실천"과 "미학적 실천"이란 단어에 연관지어서 생각해 보면 어떨까라고 생각해 봤습니다. 그리고,사조의 정의에 세대를 무시할수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관점의 차이인데, 강수미씨가 제전시 리뷰를 쓰면서 타이틀로 '중간세대'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민중미술의 내리막길은 87년 민주항쟁으로 군사정권을 항복시키면서 라고 생각됩니다. 포스트민중미술을 구분함에 있어서 최선생님같이 그당시에 모더니즘계열이건, 민중미술계열이건 80년대의 격동기를 미술계에서 겪었는가,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좀더 세밀하게 구획을 그어보면, 게시판에 언급되어진 배영환님과 고승욱님은 개인적으론 동년배지만, 배영환은 86학번이고 고승욱은 88학번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분수령은 87년입니다. 그래서 요즘, 주목받는 두작가는 비슷한 개념의 작업인 것 같아도 깔려있는 정서에서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정도의 세대구분은 불가피하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그러면, 포스트민중미술에 여러명의 작가가 언급됬지만, 제가 생각하는 작가는 강홍구선생 입니다. 이유는 그분의 작가적인 입장과 정치적인 노선을 들수 있겠습니다. 노정권의 총리가 스스로 '중도우파'라고 명명했지만, 군사정권시절에는 '급진적인 좌파'였을 겁니다. 이렇듯, 노선을 정의하는 것은 쉽지않지만, 민주화세력과 같은 노선임을 알수있습니다. 그리고, 강홍구의 개인적인 입장에서 만학으로 80년대에 학생신분으로 민중미술을 보았을 것 입니다. 강홍구의 초기작중에 광주5.18묘역을 도망치듯, 뛰어가는 자화상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작품이 '포스트민중미술'의 전형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형태 로든 암울한 시절을 견디어 온 작가의 모습과 시대적인 연속성을 느낄수있어야 하는데, 가장 적합한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광주와 부산에 갔더니, 80년대 민중미술을 대표할 만한 두분의 작품을 만날수 있었는데, 안창홍선생과 박불똥선생입니다. 두분은 민중미술가들중에서도 실력을 인정받는 작가들입니다. 특히, 박불똥은 시대의 변화에 걸맞는 감수성으로 뛰어난 감각을 보여주고 있는데 포스트민중미술을 하고있다는 느낌은 아닙니다.(최선생님 생각에 동의!) 최선생님의 글에 간단히 저의 생각을 써보았고 최선생님의 '시국선언'전에 출품하신 작품에 대하여 한국사회와 미술계의 작은 일원으로 벅찬 통쾌함을 느낄수있는 '역작'이라서 박수를 치고 싶습니다. 모더니즘계열에서 포스트민중미술계열로 변신하시는 신호탄이 될듯한 기념비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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